[Hot People] 한국자수박물관 관장 허동화

보자기는 내  삶과 예술의 바탕

한 장의 천으로 물건을 싸서 보관하거나 운반하는 보자기 문화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과 일본, 터키에만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조각보는 한국 고유의 것이다. 곡선으로 이루어진 한복은 제작하는 과정에서 조각천이 나오기 마련인데 한국의 옛 여성들은 버려진 천 조각을 모아 보자기를 만들었다. 한국의 전통 보자기는 국내에서는 일상용품으로 치부되어 제대로 된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국외에서는 일상생활 속에서 터득한 삶의 지혜와 아름다운 조형성으로 특별한 주목을 받고 있으며,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여기에는 허동화 한국자수박물관장의 공로가 크다. 한국자수박물관은 1978년부터 40여 년간 미국, 프랑스, 일본 등지에서 55회에 달하는 전시를 열어 한국의 전통 자수와 보자기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앞장서왔다.
최근 서울 지하철 7호선 학동역 인근 한국자수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규방문화의 극치, 보자기>(7.7~31)는1683년 10월에 만들어진 <궁중화문자수보>를 비롯해 대표적인 소장품 80여 점을 선보였다. 올해 초 일본 교토 고려미술관, 지난해 터키 국립회화건축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에도 출품돼 큰 호응을 받은 작품들이다. 허 관장은 “우리는 우리 것이 귀한 줄 잘 모르고 계속 남의 것, 서구적인 것에 치중한다.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은 과거와 현대를 잇는 끈으로 창작을 하는 사람에게도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특별전과 함께 허동화 관장의 개인전(한국자수박물관 7.7~31)도 열렸다. 허 관장은 컬렉터이면서 1999년 하남 국제엑스포 초대작가로 개인전을 가진 이후 오브제, 콜라주를 넘나드는 작업을 선보였다. 심지어 그가 입고 있는 옷도 직접 디자인해서 제작한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버려진 옷감을 활용해 작업한 콜라주 작품과 버려진 기물들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작품 40여 점을 공개했다. 허 관장은 오랫동안 조각보를 분석하다보니 원, 네모, 세모 세 가지 문양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 “보자기는 하늘, 땅, 사람, 즉 천지인(天地人)이자 우주를 표현한 것이다.
내 작업도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 우주를 표현하고자 했다.” 또한 그의 작업에는 꽃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상상의 꽃이며, 축복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보자기가 버려진 조각천을 활용한 것처럼 낡고 하찮은 물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허 관장의 작품에는 환경친화적이며, 조화를 통해 아름다움을 추구한 한국의 전통적인 정서가 진하게 배어있다. 또한 그의 작업은 작가 개인의 색채보다 몇 백 년에 걸쳐 내려온 한국의 색에 뿌리를 두고 그 가치를 재창출하는데 의의가 있다. 허 관장은 몇 십년 혹은 100여 년이 된 옷감을 수집해 이를 자르고 오려 붙여 비구상적인 작품을 선보여 왔다. 색은 조금 바랬지만 오랜 세월을 머금어 특유의 색감을 드러내는 작품의 색채는  더 오묘하다. 허 관장은 “내 작품은 나의 단독 작품이 아니다. 자연과 선조, 나의 합작이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미수(米壽)전을 열기도 한 그는 앞으로도 수집과 연구는 계속하겠지만 작업 활동에 보다 집중할 계획이다. 89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내 작품은 기존 작가와 다르게 특별한 제약이 없고, 자유롭다”고 말하는 허 관장은  “기존 작가들이 하지 않은 표현방법을 시도해 한국의 전통적인 미에 기반을 두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슬비 기자

사전(絲田) 허동화는 1926년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육군사관학교와 동국대 법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미국 Linda Vista Paptist대, 명지대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전력공사 지사장, 재향군인회본회 이사, 한국사립박물관장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사전자수연구소와 한국자수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문화훈장 보관장, 제57회 서울시문화상, 자랑스러운 박물관인상, 한국미술 저작상, 제15회 월간미술대상 전시기획부문(<이렇게 소담한 베갯모전>) 장려상 등을 수훈 및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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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ght & Issue] 최재은 개인전 – The House that Continuously Circulates

오래된 장소, 오래된 시간의 기억

독일과 일본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작가 최재은의 개인전 <순환이 지속되는 집(The House that Continuously Circulates)>(6.23~9.21)이 열리는 체코 프라하국립미술관 성아그네스 수도원은 그야말로 수도원의 아우라를 고스란이 간직한 곳이었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프라하 1구역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골목길 깊숙이 자리하고 있기에 시끄러운 세상에서 분리된 차분함이 유지되고 있었다. 13세기에 지어진 이 수도원은 1963년부터 국립프라하미술관에 속해 전시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최재은의 개인전 <순환이 지속되는 집>은 이 공간의 역사와 분위기 그리고 건축적 구조 등과 맞물려 차분하지만 묘하고 또한 역설적이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방문 당시 전시를 앞두고 한창 설치에 몰두하고 있던 작가는 설치된 장면을 최대한 보여주겠다며 기자와의 만남을 하루 늦추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전시는 꽤 오래전부터 기획된 것이었다. 최재은은 2008년 이 미술관에서 열린 <프라하트리엔날레(ITCA)>에 참여, 이번 전시에 대한 영감을 받고 미리 200×100cm의 일본산 종이다발을 화학처리해 수도원 뒤편에 묻어두었다. 이러한 작업과정은 작가가 지속적으로 진행해 온 <World Underground Project>의 연계선상에 있다. 평소에도 오래된 종이를 모으는 것이 취미라는 최재은이다. 약 6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 색이 바랜 종이들은 수도원 중앙홀 전시장으로 옮겨졌다. 시간의 흐름을 담은 듯 빛바랜 종이에는 ‘1955’, ‘LUCY’ 등의 텍스트를 출력해 기록하고, 그리고 수분이 완전히 빠져나간 꽃, 암석 등을 올려놓았다. <Paper Poem>으로 명명된 이 작업은 한 인간의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는 하나의 서사시를 읽는 듯한 경험을 하게 한다. 비가시적인 시간의 흐름은 최소한의 작가적 개입에 의해 수도원이라는 공간과 어우러져 큰 공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번에 출품된 <Two Anežskys>도 마찬가지. 오래된 종이에 “YOU ARE IN ME I AM IN YOU”를 출력해 바닥에 깔고 비즈 등으로 장식한 의자와 그렇지 않은 원래의 의자를 마주보게 설치했다. 최재은은 이렇게 시간의 흐름을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닌 정지된 대기처럼 잔잔히 전하고 있다. 싱싱하게 피어있는 꽃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촬영해 완전히 말라버린 꽃으로 마무리한 <Somebody is there-Nobody is there>도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읽힐 수 있다.
전시를 주관하는 프라하국립미술관의 근현대미술부 디렉터 헬레나 뮈실로바(Helena Musilová)에게 이번 전시에 대해 물었다. 올해 초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체코프라하국립미술관 소장품전>(1.25~4.21)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던 그다. 그는 최재은의 전시에 대해 “이곳에서 최재은 작가처럼 설치작업을 하는 작가를 초청하기는 처음”이라며 “성아그네스 수도원이라는 특정장소에서 한국인과 유로피언의 생각이 혼합된 작품을 선보였다”고 평가했다.
프라하=황석권 수석기자

Somebody is there, nobody is there  c-print 150×100cm 2014

Somebody is there, nobody is there c-print 150×100cm 2014

 

[Hot Art Space]

젊은 건축가를 발굴하는 뉴욕현대미술관의 공모 프로그램 <YAP(Young Architects Program)>은 1998년 시작되어 칠레, 이탈리아, 터키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이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한국에서 진행되었다. 한국에서는 최장원, 박천강, 권경민으로 구성된 프로젝트팀 문지방의 <신선놀음>이 최종 선정됐다. 이 작품은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15_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전>(7.8~10.5)에 출품되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야외에서 관객과 만난다. 구름을 형상화한 풍선과 나무계단, 물안개, 잔디, 트램펄린으로 구성된  <신선놀음>은 관객이 스스럼없이 지나가며 관람할 수 있다. 서울관 제7전시실에서는 최종후보군에 오른 나머지 4팀(명)의 작업을 함께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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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샤오강

6월 14일부터 9월 10일까지 대구미술관에서 장샤오강 개인전 <Memory+ing>이 열린다.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장샤오강의 이번 전시는 한국의 미술관에서 열리는 그의 최초 개인전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1980년대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중국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삶을 보낸 장샤오강의 작업세계를 엿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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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을호 (1)

부부 건축가 서을호와 김경은이 참여한 글로벌 아트 전시 <Inspiring Journey: 소재로 꽃을 피우다>는 소재에 대한 작가적 시각을 보여준다. 이에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하고 늘 쓰이고 있지만 눈에 띄지 않는 소재를 전면에 등장시켜 그것의 존재를 환기한다. <4Havitats>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다. 부직포를 재료로 하여 인간의 형상으로 오려낸 160장의 중첩된 통로를 지나면서 쉽게 지나치는 것이 어떻게 미적 경험으로 작용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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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k (1)

설치작가 천대광의 〈아이소핑크 Nr.1(isopink Nr.1)전〉이 6월 16일부터 7월 15일까지 스페이스K 과천에서 열렸다. 전시장 공간에 정선의<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를 모티프로 한 대형 구조물을 인공적 소재인 분홍색 고밀도 스티로폼 단열재 패널 300여 장으로 축조했다. 관람객은 작업 내부를 통과하며 저마다의 인공자연을 경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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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뉴엘 (1)

피규어 디자인, 패션 디자인과 브랜드 매니지먼트를 아우르는 대만 팝아티스트 그룹 스테이리얼(STAYREAL)의 대표 작가 노투굿(NO2GOOD)의 첫 한국 전시가 7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롯데 에비뉴엘에서 열린다. 범람하는 캐릭터 이미지 속의 작가 자신을 표현한 마우지 시리즈를 대표하는 조각 20점, 페인팅 및 판화 10점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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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백자 (2)

<백자대호(白磁大壺), 빛을 그리다: 김환기, 오수환전>은 백자의 미적가치가 김환기 오수환이 작품에 구현한  현대미술과 어떻게 조우하는지 보여준다. 관객은 백자를 바라보는 김환기와 오수환의 감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7월 16일부터 8월 17일까지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보물로 지정된 백자 3점을 비롯, 총 7점의 백자대호가 조선청화백자와 함께 선보인다. 또한 김환기의 유화와 과슈, 그리고 오수환의 추상화와 드로잉 등이 함께 출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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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림 (2)

또 하나의 백자전은 호림박물관에서 열린다. 성보문화재단 호림박물관에서 기획한 올해의 특별전 두 번째 순서인 <백자호 Ⅱ_순백에 선을 더하다>(7.1~10.18)가 바로 그것. 1부에서 순백자항아리의 단아한 면을 통해 조선의 미의식을 살펴봤다면 이번 전시는 청화·철화백자를 통해 왕실의 엄숙함(청화백자)과 자유분방한 필치(철화백자)를 엿볼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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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회동60 (2)

박소영의 개인전이 7월 7일부터 16일까지 가회동60에서 열렸다.
이 전시는 가회동60이 기획한 <2014한국화 힐링을 만나다전>의 일환이다. 대나무와 매화를 원으로 표현하여 마치 포도를 보는 듯한 작업을 선보이는 작가는 이를 통해 우주와 자연이라는 주제를 구현한다. 또한 그 우주와 공간에 사색하며 거니는 작가를 그 것들과 공존하게끔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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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Text Monster>로 명명된 오윤석의 개인전이 7월 10일부터 30일까지 갤러리 아트사이드에서 열렸다. 오윤석은 종이에 칼로 구멍을 내는 방법으로 텍스트에서 발견되는 이미지를 구현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지속적으로 작업했던 <Hidden Memories> 연작을 선보이는데 작업이 곧 수행이라는 의미를 곱씹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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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화각 (3)

올해 처음 소장품을 미술관 문 밖으로 내어 관람객을 맞이한 간송미술관. 그 2부 전시가 <보화각(葆華閣)>이라는 타이틀로 7월 2일부터 9월 28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관람객을 만난다.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국보 제72호), 신윤복의 <미인도>(국보 제135호) 등 대표적인 유물과 함께 1부에 전시되었던 주요 지정 문화재가 재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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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1)

김범수의 개인전 <tête>가 7월 3일부터 15일까지 스페이스 선+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에서 조각과 사진작업을 선보인 작가는 익숙한 사물을 불안정하게 배치하거나 요소를 제거하고, 비정상적인 조합을 통해 기존 질서 구조의 근간을 흔든다. 이러한 과정은 시각 위주 담론에 균열을 제기함으로써 현대미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의미를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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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주_메이크샵 (3)

안정주의 개인전 <아득한 세계>가 6월 27일부터 7월 26일까지 파주 메이크샵아트스페이스에서 열렸다. 작가는 이승만 대통령부터 박근혜 대통령까지 전현직 대통령이 들고 국민 앞에 대통령직을 성실하게 수행할 것을 선서하는 이미지를 구해 A4 용지에 출력하고 한 장씩 테이프로 붙여 거대한 종이 현수막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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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용 (7)

 

한국 전위미술의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이건용(1942~)의 개인전 <달팽이 걸음_이건용>이 6월 24일부터 12월 14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 일환인 이번 전시는 실험성 가득한 이건용의 대표작 80여 점이 소개되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전시는 ‘관계의 시작’, ‘신체적 회화’, 그리고 ‘예술도 소멸한다’ 3개 섹션으로 나뉘어 <신체항>, <포> 등의 초기작부터 <장소의 논리>, <달팽이 걸음> 등 화제의 퍼포먼스까지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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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지 (1)

7월 4일부터 13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난지전시실에서 열린 <느낌의 공동체전>은 스튜디오 입주작가들이 기획과 출품에 참여한 전시다. 작가들은 이를 통해 입주작가 간 뿐만 아니라 작품과 공간, 관객 등과 교류하고 소통하는 장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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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3)

호남대 교수이자 국제미술평론가협회 본부 부회장인 윤진섭이 기획한 <여름, 7일간의 난장 퍼포먼스 페스티벌_Slow Slow Quick Quick전>이 6월 27일부터 7월 3일까지 쿤스트독갤러리에서 열렸다. 이 전시는 사전에 짜인 기획에 의해 행사가 진행되는 형식을 벗어나 기획자의 즉흥적인 발상과 영감에 의한 퍼포먼스와 이벤트가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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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경 (2)

전희경의 캔버스는 동양의 산수화를 보여주는 듯 이상향, 즉 유토피아적 요소로 가득하다. 그의 개인전 <Utopia in Emptiness>가 7월 9일부터 15일까지 갤러리 고도에서 열렸다. 전시 타이틀과 전희경의 작업에서도 보이듯이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제3의 공간으로 재해석했다. 이상을 좇지만 결국 현실과의 괴리감을 느끼는 우리의 지금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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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이 (1)

이윤이의 첫 개인전이 6월 20일부터 7월 27일까지 인사미술공간에서 열렸다. 출입문이자 회전하는 하모니움으로 관객과 조우를 꾀하고 관람객이 전시장의 안과 밖을 자연스럽게 넘나들 수 있게 했다. 작가는 전시와 관객 사이에서 벌어지는 담화를 담고 있으며 그 속에서 형성되는 다양한 알레고리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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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면_자하 (2)

‘공화(共和)의 터에서 움트는 유위(有爲)의 공동체’라는 다소 난해한 전시명을 내세운 강용면의 개인전이 7월 4일부터 27일까지 자하미술관에서 열렸다. 출품작 <현기증>은 고은의 시 <만인보>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수많은 이의 두상을 모아 설치한 것으로
폭 15m에 달하는 대규모 작업이다. 이는 각각의 개인이 동등한 자아로서 그것의 유기적 집합체가 이루는 이상적 공동체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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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강 (1)

홀씨의 이미지를 통해 역동적인 생명력을 표현하는 작가 김선강의 10번째 개인전 〈생명 사랑〉이 7월 16일부터 21일까지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에서 자기 전개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작가는 생명의 창조적 과정을 보여준다. 한지를 가득메운 채색이 또 하나의 여백으로 읽힐 수 있도록 얽매이지 않은 열린 공간을 창출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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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 (1)

옻칠로 회화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가 성태훈의 개인전이 7월 16일부터 29일까지 갤러리 이즈에서 열렸다. ‘날아라 닭’이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는 작업실에서 키우던 수탉이 날개를 파닥거리다가 나는 모습을 쫓으며 시작된 작업들을 선보인다. 현실과 이상의 부조화와 모순을 우화적 소재와 옻칠이 주는 짙은 질감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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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4)

2013년 문신미술상을 수상한 고정남의 초대전 <새총 곰의 초대>가 7월 4일부터 8월 13일까지 숙명여대 문신미술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곰을 소재로 유년시절 천진난만함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특별기획] 이상향, 그들이 꿈꿨던 어딘가 있을 그곳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자신이 있는 시공을 초월하여 보다 나은 공간과 상황을 꿈꾼다 즉 이른바 이상향을 꿈꾼다는 것이다 그 꿈의 내용은 역사적 상황과 문화환경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이 말은 이상향에 대한 인간의 상상력은 그 수치를 가늠할 수 없음과 같은 의미이리라 이러한 이상향을 주제로 한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대표작이 모였다  7 월  29일부터 9월 28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산수화 이상향을 꿈꾸다>가 바로 그것이다 이 전시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중국 상하이박물관 일본 교토국립박물관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품 중 이상향을 주제로 한 대표 산수화 40여 건을 선보인다. 이에 맞춰  월간미술 은 고미술품에 드러난 이상향을 주제로 특집을 내보낸다. 이번 전시의 프리뷰와 각 섹션에 대한 설명을 담아 전시장을 찾을 독자 여러분이 좀 더 진중하게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또한 이상향을 그린 작품이 산수와 만나 일으키는 화학작용과 그것의 구성에 대한 내용과 이유를 밝힌다 마지막으로 현재 이상향이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는 글을 싣는다. 이상향을 꿈꾸는 것조차 버거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는 의미다.  이상향의 모습은 작가의 수만큼 다양하게 존재할 것이다. 그 초월적 존재에 대한 동경은 인간이 그것에 도달하지 못하기에 더 강렬해지지 않을까?    비록 동경의 대상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 추락할 것을 알지라도 말이다.

이상향의 대표적 상징

<소상팔경도>는 중국 호남(湖南)성의 동정호(洞庭湖) 남쪽 소수와 상수가 합류한 곳의 절경을 장면으로 그린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에 전래 조선시대까지 다양한 형식으로 그려졌으며 일본에도 전달되어 또 다른 양식으로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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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징명(文徵明, 1470~1559)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비단에 먹 24.3×44.8cm(각) 명(明) 16세기 상하이박물관 소장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연사만종(煙寺晚鐘)> <산시청람(山市晴嵐)> <원포귀범(遠浦歸帆)> <강천모설(江天暮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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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창(董其昌, 1555~1636)  <연오팔경도(燕吳八景圖)>
비단에 채색 26.1×24.8cm(각) 명(明) 1596 상하이박물관 소장 동기창의 초기작으로 귀향을 앞둔 고향 친구 양계례(楊繼禮)를 위해 그렸다.
‘연(燕)’은 베이징을, ‘오(吳)’는 고향 ‘송강(松江)’을 가리킨다.
사진 왼쪽부터 <성남구사(城南舊社)> <서산추색(西山秋色)><방재후월(舫齋候月)> <서호연사(西湖蓮社)> <구봉초은(九峰招隱)> <서산모애(西山暮靄)> <서산설제(西山雪霽)> <적벽운범(赤壁雲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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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鄭敾, 1676~1759)  <장동팔경도(壯洞八景圖)>
종이에 담채 33.7×29.9cm(각) 조선 18세기 <백운동(白雲洞)>(왼쪽) <창의문(彰義門)> 인왕산과 백악산 일대를 장동이라 일컫는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산수를 이상향으로 삼아 그린 작품이다.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지다

 18세기 조선의 위정자와 지식인들이 꿈꾸었던 이상적인 세상은 무엇이었을까?
사람과 자연이 벗되어 살면서 경제적인 부를 누리는 장면을 통해 그들이 생각한 현실적 이상향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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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문(李寅文, 1745~1824?)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
비단에 담채 43.9×856.0cm 조선 18세기 폭이 8m가 넘는 대형작품인 <강산무진도>는 김홍도와 쌍벽을 이뤘던 이인문의 대표작이다.
산 아래 배가 정박해 있는 마을과 인물이 다양한 준법으로 표현됐다. 궁중 소장품으로 그렸다고 추정되며 이에 따라 조선 후기 위정자가 바라던 이상향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존경하는 그가 머물렀던 그곳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는 성리학(性理學)을 집대성한 주자(朱子, 1130 – 1200)가 찾은 중국 무이산(武夷山) 구곡계(九曲溪)의 경관을 그린 것이다. 현인의 거주 장소를 그려 우회적으로 존경의 마음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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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길(李成吉, 1562~?)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
비단에 담채 33.5×398.5cm 1592 두루마리 형식의 작품으로 계곡을 흐르는 강줄기를 따라 1곡부터 9곡까지 연결되어 있다. 조선 초기 안견(安堅)파 화풍과 명(明)대 절파(浙派)의 화풍이 절충되어 있다.

은자(隱者)의 삶을 살다

은거의식은 산수화가 문인들의 삶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이유가 되었다. 도연명(陶淵明)이 상징적인 인물로 전해지며 그의 행적과 시구는 이후 수많은 문학과 회화의 주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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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 전선  <귀거래도(歸去來圖)>
종이에 채색 26.0×106.7cm 원명(元明) 14~15세기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Image source: Art Resource, NY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주제로 그린 작품. 이 작품은 남송(南宋) 말부터 원 초에 활동한 전선(錢選, 1235?~1307?)의 양식을 반영하고 있다. 왼쪽의 제시(題詩)는 전선이 지었다.

여기가 내가 머물 낙원인가 하노라

정치와 제도는 현실을 이상적인 곳으로 만드는 데 있어 걸림돌일지 모른다.
그러한 시스템의 속박을 벗어나 오로지 인간의 본성에 충실할 수 있는 곳,
그곳도 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꿈꾸는 이상향이었다. 그러한 꿈은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의 무릉도원(武陵桃源)에 드러나 있으며 그것을 그린 <도원도(桃源圖)>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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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오카 데사이(富岡鐵齋, 1836~1924)  <무릉도원도(武陵桃源圖)>
종이에 색 178.0×365.0cm(각) 일본 메이지(明治) 1904 일본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봉래선경도(蓬萊仙境圖)>와 교체 전시된다.

[특별기획] 동아시아의 꿈을 담은 전시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리는 <산수화 이상향을 꿈꾸다전>은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이상향을 주제로 한 작품을 한데 모았다 각국의 대표작을 한자리에 모았다는 것도 큰 의미가 있지만 동일한 주제의 작품을 나라와 문화권과 연계해 비교하며 볼 수 있다는 점도 이번 전시가 가진 의의라 하겠다.

박은순・덕성여대 미술사학과 교수

뜨거운 폭염으로 심신이 수고로운 한여름을 맞아 많은 사람이 몸과 마음의 피로를, 삶의 피로를 덜어낼 휴가를 꿈꾼다. 멀리 떠나는 휴가가 아니더라도 이 여름 행복한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고 하여 마음이 설렌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때로는 예술에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담아왔으니, 이번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하는 특별전 <산수화, 이상향을 꿈꾸다>는 한중일 선조들이 마음속에 품어왔던 이상향에 관한 전시이다. 이 전시는 한중일을 대표하는 100여 점의 산수화 작품을 모아 비교, 전시하면서 동아시아 사람들이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 감상하고, 이루어온 예술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게 될 것이다.
이번 전시는 특히 세계 최고의 미술관 중 하나인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소장된 중국회화 명품을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최초의 기회라는 점에서 더욱 기대된다. 또한 중국회화 소장품으로 유명한 상하이박물관 소장 작품도 여러 점 전시되며, 일본의 대표적인 국립박물관인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일본작품들도 전시되어 유사한 주제를 다룬 한중일 삼국의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보는 의욕적인 기획이자 국립중앙박물관이 성숙해가는 모습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이 전시는 대규모의 전시답게 전체 내용을 일곱 개의 주제로 분류하여 진행하려고 한다. 이 글에서는 각 주제를 따라 가면서 주요한 작가와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 내용을 간단히 살펴 보고자 한다.
먼저 첫 번째 주제는 ‘이상향으로 가는 길’이란 개념으로 전시의 프롤로그가 될 것이다. 한중일 삼국에서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시서화 및 각종 시각예술품을 통해서 이상향에 대한 염원을 담아내는 전통이 형성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백제에 만들어진 <산수문전>과 작품을 통해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산수문전>에는 고대의 이상적인 산수 표현을 대변하는, 세 봉우리를 가진 삼산형의 산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공간을 표현하였다. 이러한 공간은 아마도 신선들이 살았던 봉래산이자 현존하지 않을 것만 같은 아름답고 영원한 이상향에 대한 개념을 시각화한 대상일 것이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시작된 이상향을 시각화하는 전통은 회화작품을 통해서 꾸준히 이어지면서 한국 특유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화가 김홍도(金弘道)는 풍속화가로 유명하지만 유명한 고사나 문학작품을 주제로 한 작품도 자주 그렸다.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는 세상사를 벗어나 근심 걱정 없는 삶을 살고자 하였던 조선시대 사람들의 평범하면서도 이루기 어려운 꿈에 대한 이야기를 구체화해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의 사람들이 꿈꾸었던 방식대로 이상향을 시각화하는 전통이 존재하였다.
두 번째 주제는 사람들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장소들을 더욱 이상화해 그려 늘 감상하고자 하였던 작품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경향을 대변하는 주제 및 작품은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이다. <소상팔경도>는 중국 최대의 호수인 동정호(洞庭湖)로 흘러들어가는 여러 물줄기 가운데서 가장 이름난 절경이었던 소수와 상수가의 아름다운 경관을 담은 산수화이다. 소상팔경은 소수와 상수 주변 이름난 경치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여덟 곳의 경치를 선별하여 이르는 것으로 중국 후난(湖南)성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다. 필자는 어느 해 더운 여름 이 여덟 곳을 답사한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 남한만한 면적의 후난성 전역을 8일에 걸쳐 버스로 답사하면서 빡빡한 일정으로 벅찼던 기억이 난다. 즉, 이 아름다운 여덟 곳은 실재하는 장소들이지만 차도 없던 그 옛날 이 장소들을 방문하고 감상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이 아름다운 명승 금강산 여행을 꿈꾸면서 금강산도를 그리고 감상하였던 것처럼 중국사람들도 <소상팔경도>를 그리고 감상하였을 것이다.
중국에서 11세기경 그려지기 시작한  <소상팔경도>는 특히 문인계층에게 선호되면서 후대까지 비교적 꾸준히 제작되었다. 중국에서 그러하였듯이 소상팔경은 시문(詩文)의 주제로도 선호되었다. 따라서 <소상팔경도>는 시화 (詩畵)일치를 대표하는 산수화의 주제이기도 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명대의 대표적인 문인화파인 오문화파(吳門畵派)의 대가 문징명(文徵明)이 그린 <소상팔경도>를 감상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상팔경도>는 고려시대 11세기 중엽 이후 소개되면서 꾸준히 애호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소상팔경은 꿈에서만 갈 수 있는 이상향이었다. 중국 사람들에게 명승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선 그야말로 이상향이었던 것이다 그래선지 <소상팔경도>는 어쩌면 중국에서보다 우리나라에서 더욱 많이 제작, 감상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도 15세기 이후 19세기까지 <소상팔경도>는 관념산수화의 대표적인 주제로서 지속적으로 제작, 감상되었다. 그리고 이상적인 명승을 대변하는 소상팔경의 전통은 18세기 진경산수화의 대가 정선이 한양 장동의 아름다운 팔경을 그린 <장동팔경도(壯洞八景圖>까지 그 여맥이 이어졌다.
세 번째 주제는   ‘현인이 놀던 아홉굽이, 무이구곡도’이다. 무이구곡(武夷九曲)이란 남송대 주자학의 창시자 주자(朱子)가 중국 푸젠(福建)성에 있는 명산인 무이산에 은거하면서 아홉 굽이의 물줄기를 구곡이라 명명한 것에서 유래된 개념이다. 조선시대는 성리학의 시대였고, 주자는 성리학의 연원이 된 신유학, 주자학의 창시자로서 지속적으로 존경받았다. 성리학과 그 시조인 주자에 대한 존경은 주자가 살던 무이구곡을 본따 이이(李珥)가 황해도 은거지에 고산구곡(高山九曲)을 설정하거나 주자가 지은 <무이구곡가>를 본따 <고산구곡가>를 짓는 등 특히 16세기 이후 조선 선비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무이구곡을 그린 <무이구곡도>를 본따서 조선에서도      <무이구곡도>를 그리는 일이 이어졌다. 중국에서는 의미있는 명승의 실경으로서 <무이구곡도>가 그려졌다고 한다면 조선에서는 이상적인 학자 주자가 살던 이상적인 장소로서 무이구곡에 대한 상상과 흠모를 전제로 그려지고 감상되었던 것이다. 즉, 시적인 영감을 일으키는 명승으로서의 <소상팔경도>와 또 다른 맥락에서 성리학의 이상향으로서의 <무이구곡도>가 존재하였다.
1592년 선비화가 이성길이 그린 <무이구곡도권>, 16세기에 제작된 필자 미상 <주문공무이구곡도>, 1915년에 제작된 채용신의 <무이구곡도> 등은 조선시대 성리학적 관념의 이상향으로서 무이구곡에 대한 열망과 흠모를 담고 있다. 또한 중국 청나라 때의 정통파 문인화가 왕휘가 그린 <무이첩장도(武夷疊嶂圖)>는 위의 작품들과 달리 단폭에 그려진 작품으로서 중국과 조선 무이도의 공통점과 상이점을 비교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죽주거

포기하지 않은 꿈
네 번째 주제는 ‘태평성대를 품은 산수’로서 시대를 초월한 이상으로서 훌륭한 정치가 이루어진 태평성대에 대한 이상을 담은 작품들이다. 이러한 이상은 때로는 현실적인 실경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그러한 시대에 대한 꿈을 담은 관념적인 산수화가 될 수도 있다. 18세기에 제작된 두 작품은 대조적인 두 가지 경향을 보여준다. 궁중에서 활동하던 화원들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태평성시도  (太平城市圖)>는 왕도정치가 이루어진 시절 번성하는 수도에서 살고, 노동하고 즐기던 백성들의 삶을 이상화해서 표현하였다. 그려진 건축물과 사람들의 모습은 중국인지 조선인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결국 가장 평화로운 시절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구가하는 백성들의 모습과 사회적 환경을 시공을 초월한 모습으로 표현한 풍속화이자 산수화이다. 이러한 작품이 정치적, 사회적 이상을 좀 더 현실적인 방식으로 재현하였다고 한다면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는 무궁하게 펼쳐지는 아름다운 자연의 경관을 모든 상상력을 다 동원하여 이상향에 대한 최대한의 가능성을 펼쳐본 작품이다. 이처럼 조화롭고 아름다운 경치를 누린다는 것은 곧 가장 이상적인 삶이고, 그러한 삶을 누린다는 것은 곧 태평성대의 도래를 통해 현실 속의 이상향을 만나는 것이리라. 18세기 말 정조연간 최고의 산수화가로 이름이 높았던 이인문(李寅文)은 당시 사람들이 꿈꿀 수 있었던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자연경을 창조하였다. 이 대작 속에는 당시 유행한 남종화(南宗畵)뿐 아니라 북종화(北宗畵)의 다양한 소재와 기법이 총체적으로 동원되었으며, 안정되고 번성하던 정조연간의 시대적 자신감과 예술적 수준이 성공적으로 담겨 있다.
다섯 번째 주제는 ‘자연 속 내 마음의 안식처’로서 자연 속에서 은거하는 이상적인 삶을 다룬 작품들을 전시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주제를 대표하는 화제로 <귀거래도(歸去來圖)>는 중국 육조시대의 유명한 시인으로 은거하는 삶을 구가하였던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유래했다. 명나라 초에 제작된 작자 미상의 <귀거래도>는 중국에서 제작된 <귀거래도>의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참고가 된다. <귀거래도>는 조선 초부터 말까지 꾸준히 제작되면서 조선 선비들의 이상을 담아냈다. 또한 19세기에는 전기(田琦)의 <매화초옥도>와 이한철(李漢喆)의 <매화서옥도>에서 확인되듯이 중인 여항화가들이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를 자주 그렸다. 이 또한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는 시절, 즉 겨울로 은유되는 시절에 깊은 산중에 은거하며 자신의 뜻을 펼 날을 기다리는 은자의 삶을 재현한 화제이다. 여항화가들은 조선시대 신분제도의 한계에 갇혀 뜻을 펼칠 수 없었던 중인의 고뇌를 이러한 화제를 통해서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여섯 번째 주제는 ‘도가적 세계관 속 이상적인 산수’이다. 도가적 이상을 잘 반영한, 가장 애호된 화제는 <도원도(桃源圖)>였다. 도원도는 도연명이 지은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유래된 화제로서 현실 속에서 발견할 수 없는, 평화롭고 안락한 삶을 사는 도화원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복사꽃이 활짝 핀 아름다운 도화원의 경치를 부각시켜 그리거나 현실과 유리된 장소로서 도화원을 그린 작품이 조선시대 내내 제작되었다. 물론 중국에서도, 또 일본에서도 도화원은 꾸준히 재현되었다. 불교에서 서방극락정토가, 기독교와 천주교에서 천국이 이상향이라고 한다면 한중일 동아시아의 선조들에게는 도화원이 그러한 이상향에 해당하였다.
중국화가 정운붕의 <도원도>와 20세기 초 일본화가 도미오카 데사이가 그린 <무릉도원도>, 조선 초 화원 안견(安堅)이 그린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그리고 19세기 화원 안중식(安中植)이 그린 <도원문진도(桃源問津圖)>는 곧 그러한 곳에서의 삶을 동경하는 뜻을 담은 작품들이고, 동시에 어쩌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에 대한 열망, 혹은 그러한 이상향을 현실 속에 이루고 싶은 소망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한 꿈이란 현대인이 꿈꾸는 삶과 그리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이처럼 더운 복날 따사롭고 기분 좋은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복사꽃이 활짝 핀 시절은 그저 먼 꿈이야기만 같다. 도원도를 보면서 우리는 언제나 꿈을 꾼다. 언젠가는 나도 그러한 곳에 살리라는.
일곱 번째 주제는 에필로그로서 ‘현대미술 속 재해석된 이상향’을 재현한 작품들이다. 이상향이란 시대를, 국적을, 민족을 초월하여 인간이 꿈꾸는 파라다이스이다. 선조들이 지녔던 이상향에 대한 소망은 시대를 초월하여 20세기, 21세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련한 봄날을 그린 이상범의 작품 속에, 낙원을 꿈꾼 백남순의 작품 속에, 순진무구한 동심의 세계로 표현된 장욱진의 풍경에도 이상향에 대한 소망이 담겨 있다. 시대와 국적을 초월한 인간의 꿈이 시대적 경향을 통해서 변화된 채로, 그러나 그 본질만큼은 영원히 변치 않은 채로 우리의 눈 앞에 펼쳐져 있다. 꿈을 포기하지 않은 한 이상향에 대한 우리의 시각화는 멈추지 않으리라는 것을 예견하면서 전시장을 나오게 될 것이다. ●

도원문진

 

[특별기획] 산수화로 그린, 이상향의 꿈

이상향은 왜 산수화로 표현되었을까?
우리는 그 의미를 알아야 할 이유가 있다 산수는 사람들이 꿈꾼 다양한 이상을 품고 있으며 그것을 소재로 그린 그림은 그 다양함을 담을 수 있는 것이었다 현실 너머의 그곳에 대해 알아본다.

고연희 ・미술사

산수화의 ‘산수(山水)’란, 처음부터 자연 속의 자연이 아니었다. ‘산수’란 오히려 인공의 개념이었다. ‘산수’는 현실적인 욕심이 제거된 청정한 도덕이요, 시비를 따지는 소리가 없는 고요함이며, 나아가 우주적 순리의 실현체로 인정받았다. ‘산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문명의 속도보다 지혜롭고 사회적 성취보다 현명한 사람이라, 말하자면 그 고상하고 뛰어남의 정도가 비현실적인 사람을 뜻했다. 손에 꼽을 만한 동아시아의 성현들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모두가 산수를 배울 만한 개념으로 정의했고, 좋아하기에 가장 마땅한 대상으로 제시했다.       “지혜로운 자는 물을 즐기고 어진 자는 산을 즐긴다”고 한 공자의 요산요수(樂山樂水)나 아래로 흐르는 물의 덕을 지목한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가 모두 고전의 상식으로 전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속된 기운(俗韻)이 없고, 본성이 산과 언덕(邱山)을 좋아했지”라고 말한 5세기의 도연명     (陶淵明), “그대가 정치를 안다면, 나는 구학(丘壑)을 더 잘 안다”고 자부한 같은 시절 사유여(謝幼輿)가 속된 현실과 고상한 산수의 대비를 정확하게 표현했다. 11세기 송나라 최고의 산수화가로 활약한 곽희(郭熙)는, 산수로 나가지 못하는 관료를 위하여 산수화가 필요한 현실사정을 역설하며 산수화를 널리 진작시켰다. 조선의 모든 선비는 산수를 사랑하노라고 시로 읊었고, 심지어 산수에 대한 그리움으로 마음에 깊은 병이 들었노라고 한탄했다. 그들은 관직을 떠날 의향이 없더라도 오직 산수를 사랑하노라고 읊음으로써 내면의 고상함을 표현하는 글쓰기를 그치지 않았다. 산수는 지고한 이상(理想)으로 의심 없이 인정되었다.
‘산수화’란 이러한 ‘산수’를 담은 그림이다. 동아시아 문명사에서 지식과 권력을 획득한 이들이 산수화를 꾸준히 요구했던 근본적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보기 좋게 산이 솟고 맑은 물이 흐르는 산수는, 현실적 문제가 말끔하게 사라진 곳이며 선량한 사람이 머무는 곳이다. 현실 너머로 펼쳐낸 꿈이나 특정한 이상사회의 소망이 있으면 산수화로 표현되었고, 그 가운데 어떤 테마는 산수화의 주요한 화제가 되었다.
동서고금의 사람들은 현실의 부족이 충족된 다른 세상을 상상한다. 동서의 역사 속에 만들어진 여러 종류의 이상세계를 보면, 그 시절의 정치사회적 모순이 사라진 사회이거나, 이데올로기가 제거된 곳, 혹은 억눌린 욕망을 마음껏 향유하거나 아예 인간적 시공간의 제한이 없는 절대영원을 향유하는 곳 등 다양한 모습이다. 동아시아에서도 극락정토나 불로불사의 선계 등 절대시공을 추구하는 종교적 상상세계가 있었고 현실사회 및 철학분야에 집중한 이상향도 여려 형태로 구축되었다.
유가와 도가의 사유방식에 근거한 이상향의 주제는, 현실 너머의 이상을 꿈꾸는 지식인의 산수 지향 개념과 근본적으로 일치했다. 산수화는 문학작품 못지않게 이러한 이상향을 담아내는 멋진 그릇이 되었다. 말하자면 산수화는 다양한 이상향을 표현하는 시각매체로 풍성하게 발전할 수 있었다. 예컨대 정치사회적 문제가 제거된 ‘도원(桃源)’, 지상 최고의 풍경으로 동경된 ‘강남(江南)’경, 성리학적 이상을 담은 ‘무이(武夷)’계곡과 군자로 추앙받은 사마광의 독락원(獨樂園), 도가의 최고경지 ‘선경(仙境)’ 등이 산수로 그려졌고, 이에 더하여 조선후기 중인들이 완벽한 아(雅)의 실현을 그린 산수화와 조선후기 학자들과 국왕의 비전으로 빚어낸 강산무진   (江山無盡)이 모두 이상경을 그려내어 회화사에 빛나는 산수화 작품들이다.
‘도원’(桃源)을 찾는 바람.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기록된 도원은 무릉 깊은 산에 자리한 상상의 마을이다. 길 잃은 어부가 우연히 입구를 찾아냈다는 도원은, 자급자족하는 작은 농촌이라 정부의 횡포가 없고, 국제 간 왕래가 불가하여 전쟁이 없는 곳이다. 도원은 폐쇄적이며 정태적인 사회였지만, 그 기원이 노자의  《도덕경》에 제시된 소국과민(小國寡民)에 이르고 이후로는 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이나 두보의 <위농(爲農)> 등 한・중・일의 모든 문인이 노래하였을 만큼 동아시아에서 오래오래 지속된 이상향이었다.

산수와 이상향의 만남
복숭아꽃잎 흩날리는 분홍빛 산수 속에 착한 농민들이 거주하는 전원풍경으로 떠오르는 도원은, 한중일의 산수화로 수없이 제작되었다. 그 가운데 어부가 도원으로 드는 장면이 가장 많이 그려졌으니, 도원을 찾아들고픈 꿈이 반영된 것이다. 우리나라 고려로부터 기록되는 청학동(靑鶴洞)의 전설이 모두 도원의 꿈을 반영한 상상이었으며, 조선초기 왕자 안평대군이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도원에 드는 꿈으로 선포하고 <몽유도원도>를 그리게 한 데서도 도원이 멋진 이상세계의 대명사로 통용된 사정을 보여준다.
‘강남(江南)’에의 동경. 모든 이상은 현실에서 비롯한다. 어떤 현실은 거부되고 어떤 현실은 과장되면서 이상이 만들어진다. 직접 갈 수 없기에 이상화된 곳으로, 중국의 소상팔경(瀟湘八景)과 서호십경(西湖十景) 등이 있었다. 소강과 상강이 흘러드는동정호나 서호가 자리한 항주는 중국에 실재한 풍경이지만, 중국뿐 아니라 한국이나 일본에서도 이곳에 대한 동경이 깊어지면서 이상향으로 정착되었다. 세계의 중심을 중국이라 여기던 시절, 중국 양자강 남쪽의 ‘강남’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수로 인정되었다.
호수의 수평선이 하늘과 이어져 망망한 ‘강남’경에 비바람이 몰아치고 가을달이 뜨고 기러기가 내려앉는 상상 속에 펼쳐지는 평화로운 풍광들은 한중일 산수화의 주요한 테마로 수백 년 동안 그려졌다. 특히 소상은 순임금의 아내들이 나란히 숨진 열녀 미담으로 조선에서 각별한 의미가 부여되었고, 효녀 심청이 인당수로 가는 길에 유람하는 꿈의 공간이 되었다. 민화라 불리는 산수화에서도 소상팔경은 가장 많이 그려지던 주제였다.
존모하는 사람이 머물던 곳. 사랑하거나 존경하는 사람이 머무는 곳이라면, 그들에 대한 이상화와 맞물려 그 공간도 이상화되기 마련이다. 주자성리학에 매료된 조선 학자들은, 주자의 시 <무이도가>(武夷棹歌, 무이계곡 뱃놀이)를 읽으면서 무이산 계곡을 굽이굽이 돌며 단계단계 철학의 경지가 오르는 만족을 꿈꾸었다. 무이산의 아홉 계곡을 상상한 <무이구곡도>를 보고, 이황 선생은 눈물을 흘렸고 그의 제자 정구는 감동으로 탄식하였다. 조선의 학자들에게 무이구곡은 대스승의 숨결이 감도는 곳이요 학문성취의 경지였다. 조선후기 이익이 병중에 무이산을 보고자 강세황에게 그림을 부탁하고, 국왕 정조가 김홍도에게 무이산 그림을 요청한 이유이다. 무이구곡은 민화라는 범주에서도 실로 많이 그려졌다. 굽어지는 물길을 따라 배에 탄 주자의 모습으로 점철된 무이구곡도는 철학의 이상을 담은 감동의 산수화였다.
이외에도, 공자의 태산 등반, 제자 증점이 꿈꾼 기수의 물놀이, 왕유의 망천, 소동파의 적벽, 주렴계의 연못, 백거이와 사마광의 정원 등 대학자 대문인과 함께 하고픈 꿈이 산수의 이상경으로 그려졌다. 송나라 사마광(司馬光)은 정치적으로 소외되었던 시절《  자치통감》을 저술하며 정원 독락원(獨樂園)을 경영했고 그 내용은 <독락원기>로 전한다. 독락원은 중국 명나라 문인들의 요구 속에 구영(仇英)이 여러 차례 그렸고, 조선후기에도 거듭 그려졌다. 이러한 그림들은 수백 년 전 공간에 대한 상상이며 당시 조선학자들이 누리고 싶어 한 정원이나 산수경의 이미지였다.
신선의 경지, 선경(仙境). 신비로운 식물과 동물, 불사의 선약, 신선과 선녀가 노니는 곳으로의 상상을 하노라면, 유한한 인간의 운명이나 현실의 질곡을 모두 잊고 무한한 행복을 만끽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신선의 경지는 실존하지 않은 고대의 신화로부터 실존한 인물의 신비화가 어울리며 이미지화되어 실로 오랜 역사를 가진다. 중국 한나라 박산(博山)의 상상에서《  산해경》,       《  장자》 등의 언급을 거쳐 조선시대 유선시(遊仙詩, 신선계를 노닐다)로 드러나는 조선 학자들의 선계 유람 상상이 어울려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신선경이나 신선을 그리는 그림, 잘 익은 반도복숭아가 주렁주렁 열린 서왕모의 요지를 그린 그림 등이 모두 현실을 잊는 행복을 공유하게 해주었다. 산수화로 그려진 신선산의 풍경은 먼 바다 속 신비로운 산으로 표현되었으며 뿌리가 가늘고 위가 넓어 오르기 어려운 오묘한 형태로 그려지기도 했다.  봉래 ·영주· 방장이란 기록을 바탕으로, 신선경은 ‘봉래선경’이라 불리기도 했다.
중인의 ‘아(雅)’ 추구. 지위가 높고 고결한 사람들의 행위를 ‘아(雅)’라고 부른 역사가 깊다. 우아하고 고아하다는 의미의 아(雅)란, 속(俗)의 반대말로, 옛 문인들이 추구한 이상의 개념이었다. 조선후기에 ‘아’를 간절하게 바라고 표현하는 문화그룹이 등장한 것은 주목할 만한 문화현상이다. 이들은 사회신분이 중인이라 양반사대부에 속하지 못했지만 경제적 성취로 문화적 수준도 높았기에, 그들 자신의 모습을 ‘아’로 표현하여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이들이 향유한 산수화를 보면, 실로 고상한 운치로 그려진 그들의 아집(雅集)이 있고, 산수 속에서 하염없이 독서를 하는 비현실적 장면도 있다. 산수에서 시간을 잊은 독서 ‘산중독서(山中讀書)’나, 이른 봄 매화 가득 핀 산속의 독서 ‘매화서옥(梅花書屋)’은 환상경이었다. 눈 향기의 밤바다를 연상케 하여 ‘향설해     (香雪海)’라 불린 매화서옥은, 간절한 바람이 만든 특별한 이상향이었다.
학자와 국왕의 비전, ‘강산무진.’ <강산무진도>는 특기할 만한 산수경이다. 기이한 산수가 펼쳐진 가운데, 시끌벅적한 수레 소리, 나귀 굽 소리, 도르레를 돌리는 함성이 산속 구석구석까지 진동하는 그림이라, 이 그림의 산수는 청정하고 고요하지 않고, 폐쇄적이고 정태적이지 않다. 백 척도 넘는 거대한 배들이 정박하고 드나들며 산비탈로, 폭포 뒤로 유통과 건축이 이루어지며 곳곳에서 수레가 돌아간다. 당시 조선에는 수레와 배와 나귀가 이렇게 발달하지 않았다. 튼튼한 배를 만들라 당부하고 요동과 심양까지 이르는 수레길을 꿈꾸었던 국왕 정조의 비전을, 이 그림 속에서 엿보게 된다. 정조 시절 우리산천은 관동절경으로 인기를 누렸기에 우리 국토 깊숙한 곳에 대한 국왕의 상상은 기암절벽이었다. 국토 깊은 곳까지 파고든 개발과 유통의 비전이 <강산무진도>로 표현되었다. 이 그림은 위정자의 이상이 반영된 문명추구의 산수화이다. 현실문명을 제거시켰던 오랜 산수화의 이상과는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각별하다.

산수 속 이상, 그리고 우리
‘산수’란 그 자체로 현실 너머의 이상이며 초월이었다. 그곳은 생각으로 빚은 ‘이상한 나라’였다. 그 속에는 가장 멋진 산수경이 펼쳐지고 훌륭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산수의 이상은, 사람들이 꿈꾼 다양한 이상향을 반영할 수 있었다. 산수화로 그려진 이상의 표현 속에서 우리는 그 시절의 결핍을 보고 그 결핍에서 자란 꿈의 형상을 만나보게 된다. 그 꿈과 이상은 현실을 왜곡하기도 하고 가끔 공허한 메아리로 울리는 것도 감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공허함 속에서 반짝이는 빛줄기는 우리에게  영감의 원천과 삶의 위안을 준다. 이상과 꿈은 고금과 동서를 초월하여 인간이 공유하는 또 다른 하나의 삶이기 때문이다.
전근대기의 산수화에 구현되었던 이상향의 모습은 근현대로 오면서 그 모습과 성격을 바꾸기도 한다. 성서적 파라다이스가 우리의 꿈에 포함되었고, 전통시대의 간절했던 이상은 과거의 아련함이나 푸근함으로 다가오는 또 다른 꿈이 되었다.
7월 말에 열리는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산수화, 이상향을 꿈꾸다전>에서 우리는 이 세상에 없었던 이상한 산수와 그 속을 노니는 이상하고 멋진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그 안에 산수화의 정수가 있었고, 그것은 옛 시절 꿈과 바람의 극점이었다(필자는 이 특별한 전시의 오픈을 기다리는 한 명의 관람자로서, 함께 관람하실 분들을 위한 작은 안내의 역할을 기대하며 이 글을 썼다.). ●

도 8) 소아미, 소상팔경(오른쪽)

소아미(相阿彌, ?~1525)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종이에 먹 173.4×370.8cm(각) 일본 무로마치(室町) 16세기 전반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Image source: Art Resource, NY 일본식 6폭 병풍에 그려진 <소상팔경도>. 강남의 습윤한 경관을 잘 묘사하고 있다

위·이한철(李漢喆, 1812~1893?)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종이에 담채 138.3×198.3cm 조선 19세기 1981 이홍근 기증 매화나무 사이에 가옥에서 책을 읽고 있는 선비를 그린 전형적인 매화서옥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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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산수화, 이상향을 꿈꾸다전>을 기획한 권혜은 학예연구사

“큰 구성 속에 한중일 작품들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다”

_MG_2281이번 <산수화, 이상향을 꿈꾸다전>은 아시아의‘이상향’을 주제로 한 흔치 않은 전시다. 이번 전시를 준비한 이유와 그 과정, 그리고 미술사적 의의에 대해 설명해달라.
‘이상향(理想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오랫동안 널리 애호된 회화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이번 전시는 이상향을 그린 한·중·일의 정통 산수화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최대 규모의 전시로, 동아시아 회화의 큰 흐름 속에서 형성된 이상적인 삶과 사회의 모습을 찾아보고자 기획하였다. 회화 전시는 일반적으로 작가나 화파, 장르를 주제로 하는데, 이상향이라는 주제로 산수화전을 개최한다는 점에서 외국에서도 드물다고 한다. 회화를 카테고리를 벗어나 하나의 주제로 묶어서 전시하는 것은 박물관 입장에서도 새로운 시도였기 때문에 걱정이 많았지만, 우리 박물관이 꼭 해야 할 일이라고도 생각한다.

이상향을 주제로 한 한·중·일 3국의 작품이 모였다. 모두 중국문화권이라 주제나 모티프, 그리고 형식이나 구현방식이 같거나 비슷한 작품도 눈에 띈다. 그래서 혹자는 이번 전시에 대해“중국회화에 드러난 이상향이 한국과 일본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펴볼 기회”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공통된 문화를 공유했다고 해서 모두가 중국회화의 영향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주자에서 비롯된 무이구곡은 조선에 들어온 이후 퇴계 이황이나 율곡 이이 등의 영향으로 조선만의 구곡문화를 형성한다. 성리학이 뿌리내리면서 중국보다도 다양한 구곡도가 성행한 것이다. 오히려 이처럼 같은 주제라도 세 나라의 문화권에서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그렸는지 비교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전시에서도 큰 구성 속에 한중일 작품들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다. 실제 전시작업을 하면서도 서로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세 나라의 작품이 잘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감상할 수 있었다. 전시 기획도 그런 방향으로 구성하였다.

이른바 이상향을 그렸다고 한다면 흔히 관념산수를 떠올린다. 그 의미를 살펴본다면?
중국의 문인 종병(宗炳, 375~443)은 산수의 아름다움과 감상 작용을 중요시하고, 산수화를 보는 것은 “정신을 펼쳐내는 것(暢神)”이라 하여 산수화의 위상을 높이 평가하였다. 특히 산수화를 곁에 두고 감상하며‘마음을 맑게 하고 도를 본다(澄懷觀道)’는‘와유(臥遊)’의 정신은 산수 자체에 도덕성과 자연미를 부여하고 이를 그린 산수화의 심미 작용과 나아가 교육기능까지 인정되어 산수화를 창작할 수 있는 토대가 굳건하게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하자면 마음의 눈으로 본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그리는 것이고, 여기에 마음속 바람을 담은 것이라 하겠다.

이른바‘이상향을 주제로 그렸다’고 한다면 당대의 현실에 염증을 느꼈거나 심정상 도피를 목적으로 작업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봄직하다. 조선 산수화에서‘이상향을 주제로 그렸다’라는 의미에 대해 설명해달라.
조선 문화와 예술의 부흥기인 18세기,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는 자연과 사람, 사회가 서로 평화롭게 어우러진 이상적인 세계를 그리고 있다. 백성들은 맡은 일에 충실하고 군주는 백성을 덕으로 다스리는 유교에서 추구하는 최고의 이상사회가 이 작품이 지향하는 바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개인으로는 선비들은 모름지기 벼슬길에 나아가 왕을 보좌하며 백성을 돌보는 것이 삶의 목표이지만, 그 뜻을 펼치지 못하면 자연에 귀의하여 조용히 덕을 쌓는 것이 도리였다. 한편으로 관직에 있을 때는 혼란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 은거를 꿈꾸기도 하였다. 이처럼 당시의 작품들을 통해 대의적인 이상사회를 꿈꾸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속세를 떠나 자연에서 안식을 취하는 은거를 표방하였던 조선시대 지식인의 면모를 찾을 수 있다.

이상향을 주제로 그림을 그린 작가들은 주로 어떤 이들인가? 그들이 이상향을 주제로 그림을 그린 이유와 함께 설명해 달라.
화가들은 워낙 다양한 화목(畵目)을 다루었기 때문에, 이상향을 주로 다룬 특정한 화가를 꼽기는 어렵다. 진경산수로 유명한 겸재 정선(謙齋 鄭敾) 역시 실경뿐만 아니라 은거(隱居)를 지향하는 다수의 작품을 남겼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조선시대 화가들 중에선 조선후기 대표적 화원인 이인문이나 조선말기 화가 이방운을 꼽을 수 있겠다. 이인문은 진경산수화보다 우리가 잘 아는 <강산무진도>나 산거(山居)를 주제로 한 <산정일장도>를 많이 남긴 작가이다. 산속 생활의 즐거움을 노래하거나 자연 속에서 은거하는 삶을 추구한 것 모두 조선후기 문인들이 애호한 주제 중 하나이다. 진경산수나 풍속화 등이 유행한 당시의 풍조 속에서도 그가 전통적인 화목들을 지향하고자 했음을 잘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는 별도의 영상으로 관객을 만나게 된다. 최근 고미술 전시에서 디지털 콘텐츠로 전시를 진행하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아닌가 싶다.
최근 전시에 디지털 콘텐츠를 활용하는 것은 고미술이나 현대미술을 떠나 꼭 필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는 전시실 입구에 이미지화 한 단순한 영상물 하나를 설치하고 내부에는 최근 많이 하는 디지털 전시기법을 배제하였다. 오직 작품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세부를 면밀히 살펴볼 수 있는 공예품이나 대형 유물의 경우 디지털을 활용한 보조물이 그 유물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만, 산수화는 멀리서 감상해야 할 작품도 있고 디지털 전시보조물이 오히려 작품을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신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한 전시해설 음성가이드를 운영하고 있다.

한·중·일의 대표작이 모였다. 작품 대여를 섭외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이번에 전시되는 총 109점 중 42점이 해외 박물관 소장품이다. 보통 우리 박물관을 비롯해서 해외에서 유물을 대여받으려면 최소 전시 1~2년 전에는 협의를 해야 한다. 이번에 우리가 원한 작품들은 모두 유명한 작품이라 전시 스케줄을 맞추고 협의하는 데도 많은 시일이 걸렸다. 다른 기관보다 한발 늦게 섭외하여 놓친 작품이 있었는데 매우 아쉬웠다. 또한 미국, 중국, 일본에서 여러 작품을 들여오다 보니, 기관별로 대여조건들을 맞추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전시작업 첫날 한국, 미국, 중국의 큐레이터가 한자리에 모여 작업을 하였는데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만, 각국의 전시방식을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작업이기도 했다.

큐레이터의 입장에서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이라면? 일반 관람객을 위한 관람 팁을 제시해달라.
정선(鄭敾), 김홍도(金弘道), 이인문(李寅文), 안중식(安中植), 장욱진(張旭鎭) 등 각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이번 특별전에는, 특히 18세기 조선 화단에서 쌍벽을 이룬 이인문과 김홍도의 대작 산수도가 모처럼 대중에게 공개된다. 이인문의 <강산무진도>와 김홍도의 <삼공불환도>에서 조선시대 문인들이 꿈꾸던 이상적인 나라와 개인의 삶의 모습이 아름다운 산수로써 구현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폭이 무려 8m50cm에 달하는 <강산무진도>의 전장면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으며, <삼공불환도> 역시 대작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나도록 전시하였다.
전체 전시 작품 중 42점은 국내에 처음 전시되는 중국과 일본의 명작들로 놓칠 수 없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문징명(文徵明)과 동기창(董其昌) 등 중국 산수화 대가의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시인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그린 <귀거래도歸去來圖>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중국 회화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명품이다. 일본 교토국립박물관에서 온 <봉래선경도(蓬萊仙境圖)>와 <무릉도원도(武陵桃源圖)>는 일본의 마지막 문인으로 불리는 도미오카 데사이(富岡鐵齋)의 대작이다. 여름의 더위를 잊을 정도로 시원한 대폭의 화면이 시선을 끈다.
한편 전시기간에 맞추어 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휴게공간에 디지털 산수로 유명한 황인기 작가의 <몽유도원도>가 전시 중이다. 전시 중인 옛그림과 이를 자그마한 못으로 픽셀화하여 재해석한 현대 작품을 비교해보는 묘미가 있을 것이다. 또한 이번 전시에는 애플리케이션으로 오디오가이드를 제작하였다. 오디오가이드를 받으며 작품들을 감상한다면 전시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황석권 수석기자

[특별기획] 이상향, 더 이상 꿈꿀 수 없는

우리 미술판에서 이상향을 그린다는 말은 요원해져 버린 것일까   
근현대 격동의 역사와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의 이상향은 과연 어떻게 바뀌었을까   
분명한 것은 있다 그렇게 꿈꾸었던 이상향에 가깝게 세상이 바뀐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

최열・미술비평

20세기 한반도가 탄생시킨 언어의 마술사 정지용은 1935년 고향을 노래했다. 정지용이 부른 <향수>의 풍경은 우리가 상상하던 아름답고 또 아름다운 세상을 훌쩍 뛰어넘는 또 다른 이상향 바로 그것이다.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그곳, 이제는 꿈에서나 있을 풍경이다. 그렇게 사라진 세계, 그 세계는 이상향처럼 우리의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식민과 전쟁의 탓만이 아니다. 일백년 동안의 산업화, 도시화를 떠올리거나 새마을운동과 4대강사업이 낳은 황폐한 현장을 생각할 일이다. 은빛구름 흐르고 금빛모래 반짝이던 물결에 몸을 빠뜨리던 고향 마을 냇가는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어이가 없다. 우리가 태어나 자라던 흔하디흔한 고향 풍경이 이상향처럼 여겨지다니 말이다. 저 청학동이나 무릉도원, 몽유도원 그리고 허균의 율도국(栗島國)을 지금 우리의 이상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건 아미타의 극락정토나 미륵의 용화세계, 예수의 천당도 마찬가지다. 사후 안식처일 뿐이다.
동북아시아는 19세기 말 서구문명을 수용하면서 이상향을 현실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도덕주의 세계관을 폐기했다. 대신 서구 근대가 설계한 사회주의 및 자본주의 이념을 이상적 가치관으로 삼았다.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핵심가치로 삼는 서구근대의 이상은 동양의 기존 정신가치를 전복해버렸다. 이에 따라 이상향을 상징하는 문인산수화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변관식, 이상범의 실경산수가 각광을 받으며 유행했던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도덕적 이상을 상징하는 사군자가 최후의 선비화가 윤용구를 끝으로 한갓된 정물화가 되어버린 일도 무척 자연스러운 시대 추세일 뿐이었다.
20세기 최초의 이상주의자들은 아마도 근대주의자들, 다시 말해 진화론의 세례를 받은 개화당원들로서 기술과학문명을 추종하는 세력이었다. 미술인으로서 오세창, 안중식, 이도영과 같은 개화당원들은 그러나 자신의 이상향을 예술세계로 형상화하지 못했다. 이상사회 설계도는 수용했으나 그 내면을 채우는 이념의 세계를 상상력으로 밀고 나가지 못한 까닭이다. 그것은 사회주의 이념의 세례를 받은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1920년대 이래 영민하고 강직한 사회주의자들은 반제민족해방과 독립자주국가 건설이라는 원대한 이상사회 설계도를 그려놓았지만 그냥 설계도였을 뿐이다.
현실은 그들에게 아주 작은 자유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오지호와 이인성이 그토록 화사하고 세련된 색채로 조선의 자연과 인간을 눈부시게 묘사했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이상향이 아니었다. 심미주의 미학이 지향하는 궁극의 이상향을 형상화하기에는 그들이 처한 시대가 지나치게 강퍅했다. 마찬가지로 다음 세대인 이중섭과 이쾌대가 몽환에 가득한 초현실세계를 그렸지만 그 세계는 환상이 아니라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악몽의 전설일 뿐이었다. 그렇게 식민지 시대가 흘러갔다.
20세기 미술사에서 가장 또렷한 이상향은 신기하게도 미증유의 학살과 파괴가 이어지던 6·25전쟁 한복판에서 탄생했다. 이중섭이 피난민으로 서귀포 시절 그린 <실향의 바다>와 통영 시절 그린 <도원(桃園)>은 낙원 풍경 그대로다. 통영이건 서귀포건 모두 남쪽바다 그 아름다운 물빛에 뒤엉킨 하늘 복숭아가 천상의 노랫가락을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만들어낸 풍경으로서 이상향은 난민의 고통을 벗어나고 싶은 소망이 반영된 것이었다. 현실을 초월하여 몽환의 세계로 순간이동하고 싶었던 욕망이 조작한 가상현실 말이다.
그 뒤로 우리 미술사에서 이상향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토록 염원하던 산업화, 기계화 시대의 미래상을 눈부시게 보여주는 저 숱한 새마을 기록화, 산업 기록화 제작 열풍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의 이상을 함축하는 예술작품은 결코 태어나지 못했다. 또한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거센 폭풍이 10여 년을 몰아쳤던 저 1980년대에도 그렇게 꿈꾸던 민중세상, 통일조국의 아름다운 이상향은 탄생하지 못했다.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 되는 세상을 구호로 내세웠지만 바로 그 이상세계를 어떻게 설계하고 어떻게 그렸는지, 그 민중이 그리워 가고 싶어하는 세상의 모습을 어떻게 갖추었는지 질문만 잔뜩 던져두고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상상력의 고갈
오히려 흐르는 시계의 반대쪽으로 방향을 잡고서 과거 농경사회의 두레와 대동굿 판에 어우러지는 농악과 춤의 선율에서 설레는 감동을 느끼곤 했던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오윤의 <통일대원도>가 참으로 20세기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참된 이상세계였던 것일까. 혹 지난날의 향수가 아니었을까. 이런 향수 취미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상향의 설정과 관련해서 가장 놀라운 현상은 한국형 단색 추상화 계열에서 일어났다. 이들이 노자나 장자의 철학을 자기 예술론으로 삼은 것은 한국형 단색화다운 선택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대나 사회로부터 단절된 미술임을 표방할 수 있었던 것인데 그렇게 하고 나면 너무도 공허해서 찾아낸 돌파구가 바로 아득한 과거로의 여행이었다. 그곳엔 소요유(逍遙遊)의 이상세계 즉 아무것도 없는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설정은 기묘하게도 1980년대 민중미술이 보여준 과거로부터 이상향 찾기와 같은 꼴이었다.
추상 및 민중미술 이후 1990년대 미술현상에서 이상향을 찾는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 아니 집단이 해체되고 기획자의 개념 설정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중심의 상실시대에 발맞춰 공동체의 가치와 이상 또한 파편처럼 흩어졌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비단 미술계만의 현상이 아니다. 그것이 어느 계급계층이건 모두 이익집단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있는 터에 유독 미술집단만이 공동의 가치를 추구할 까닭이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노동자 농민이 주인 되는 세상을 꿈꾸던 이념집단이 노동조합과 같은 이익집단으로 변화하는 바와 마찬가지로 지난날 뜻을 모아 하나의 가치를 추구하던 결사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가치는 개인의 이해와 욕망의 내면으로 잠복해 들어갔고 각자가 꾸는 꿈이 곧 이상향인 세상이다. 이제 더 이상 이상향은 없다. 꿈꾸는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많아져버렸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이상향이 아니다. 개인의 환상일 뿐.
사전에 나와 있는 이상향의 뜻은 평화롭고 완전한 상상의 세계를 가리킨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에 대한 반성이나 근대 과학기술문명의 미래에 대한 환상으로서 출현한 근대의 이상향은 여전히 활력을 제공하는 원천이지만 그것도 지나가버린 옛이야기인지 모른다. 생각해 보면, 지난 세기는 이상향을 꿈꾸는 행위 그 자체가 사치였다. 극단의 황무지 위에서 살아온 기나긴 세월 끝에 안식을 구하기는커녕 절망으로 미끄러져 들어갈 수밖에 없는 시대에 상상력마저 메말라갔던 것이다.
1990년대 이후 20여 년 동안의 미술사를 돌이켜 보더라도 현실에 대한 염세주의 시선과 태도는 난무하지만 고상한 윤리와 도덕의 시선을 내비치는 경우는 없었다. 허위의식이라고는 해도 19세기 이전 공동체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던 시절에는 계급계층에 따라 이상세계의 설계도를 제출했었다. <무이구곡도>나 <고산구곡도>,
<도산구곡도>가 설령 자기 문파의 세력을 강화하려는 욕망을 드러내는 홍보수단이었다고 해도 집단의 가치와 이상을 호소하는 방편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서는 그 모든 것이 괴멸당했고 남은 것은 벌거벗은 세속의 욕망 또는 음울한 도시의 냉소뿐이다.
이상향을 향해 거침없이 항해할 만큼 순결했던 미술가가 있었을까. 심미주의를 채택했다고 해서 그 예술가가 심미의 삶을 꾸려나갈 수나 있었던 것일까. 작업실을 나서면 시장에서 팔리기나 하는지 초조해 할 수밖에 없는 초라한 행색에서 무슨 공염불이란 말인가. 심미와 재물의 사이에 설 수밖에 없는 예술가의 자아는 결국 분열의 경계인일 수밖에 없는 시대였다. 한 손엔 세속의 욕망을, 또 한 손엔 심미의 이상향을 쥐고 흔드는 모순의 희극! 어디 그게 20세기만의 이야기일까. 오늘날 21세기를 살아가는 모든 예술가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정지용이 부르던 노래 <향수>마저 끝났다. 세속을 향하지도, 이상향을 찾아가지도 못한채 방황하는 자의 어리석은 이야기 속에서 말이다. ●

백남순낙원8곡병

 

백남순(白南舜, 1904~1994) <낙원(樂園)> 캔버스에 유채 166.0×366.0cm 1937 개인소장 ‘심산유곡(深山幽谷)’이 서구적 화풍으로 표현되어 있다. 백남순은 서양의 낙원도를 동양적 기법으로 표현했다

(위)채용신(蔡龍臣, 1850~1941)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부분) 종이에 채색 107.4×37.3cm(각) 1915 어진화사 채용신이 무이구곡을 그린 10폭 병풍. 성리학적 정서는 약화되고 형식화된 경향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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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과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장욱진, 시대의 마지막 이상향을 꿈꾸다

(장욱진)_photo by 강운구화가 장욱진(張旭鎭, 1917~1990)의 작품에서 산수화풍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는 1970년 중반 이후라 할 수 있는데, 덕소아틀리에(1963~1974) 시기 후기부터 작품의 표현이 수채화처럼 묽어지기 시작했다. 또한 1980년대 작품에서는 자연과 함께 유유자적하는 도가적 정서가 잘 드러난다. 이 시기 장욱진은 수많은 <풍경>을 그렸다. 전통 산수화 기법과 같이 한 획으로 그린 나무와 집, 그리고 집 안에서 가부좌를 하고 있는 인물, 나무 위나 하늘 나는 새, 해와 달이 공존하는 풍경이 주를 이루었다. 유화물감을 통한 수묵화기법과 화면 구성에서의 산수 표현은 동양과 서양을 하나로 잇는 실험적인 작업이자 전통과 현대를 잇는 혁신적인 활동이었다. 이러한 표현은 예술에 대한 그의 확고한 정신으로부터 나왔다. 화가 장욱진의 예술세계를 대변하는 핵심적인 철학은‘신사실’이라는 단어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1947년 김환기, 유영국 등과 함께 결성한 <신사실파(新寫實派)> 모임은“사실을 새롭게 보자”라는 주제의식을 표방했는데, 이는 사물 속에 내재하는 정신적인 본질을 찾고자 한 것이다. 특히 장욱진의 경우에는 사물 속에 존재하는 가장 이상적인 측면들을 발견해내고자 하였다. 그는 사물을 더욱더 사물답게 그리는 데 평생을 매달렸다. 즉, 나무를 나무로 그리고, 자연을 자연 그대로 그리고자 했다. 그랬기에 그는 순수한 아이로 돌아갈 수 있었다.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대상의 참모습을 그리는 것, 그것이 바로 장욱진이 추구한 예술세계인 것이다. 이러한 그의 이상적 세계관은 불교와 도가적 사상의 핵심인‘무위자연’의 단순함과 근원을 지향하는 정신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그렇기에 장욱진의 산수화는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모던한, 단순하면서도 풍부한 여백의 순수함 그 자체를 향하고 있다.
백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학예사

 

장욱진  캔버스에 유채 50×25cm 1988 장욱진미술문화재단 소장

장욱진 <풍경> 캔버스에 유채 50×25cm 1988 장욱진미술문화재단 소장

 

[Exhibition Focus] 홍순명 개인전-스펙터클의 여백

회화의 순수성을 탐구하기 위해 주변의 풍경을 그려 온 작가 홍순명의 개인전 <스펙터클의 여백>이 6월 28일부터 8월 28일까지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에 있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서 열린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보도사진을 주요 모티프로 삼은 회화작품 <사이드 스케이프> 시리즈와 사고 현장에서 수집한 물건을 오브제로 만든 신작 <메모리 스케이프> 연작을 선보인다. 인생과 예술의 동반자인 홍익대 미술대학원 김미진 교수와의 대담을 통해 작가 홍순명의 작업과 삶의 태도를 조명해본다.

주목받지 못한 독립체들의 연대

김미진(이하 ‘김’) 내년이 벌써 우리 결혼 30주년이네. 1979년, 대학에 입학해서 처음 만나 지금까지 예술과 인생의 동지로 살아왔잖아. 그 시절부터 얘기해볼까.
홍순명(이하 ‘홍’) 학부 때부터 해외 미술전문잡지를 보고 이것저것 실험적인 작업을 했지. 그러면서 자신감이 생겼고 1985년에 이미 스무 번이 넘는 전시에 참여했었지. 당시 부산지역 젊은 작가들이 모인 미술그룹 ‘강패’, ‘황색벌판’ 등에서 활동했고. 사범대학을 나오면 선생님을 해야 하는데 나는 그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지. 그래서 무조건 외국 가서 공부하고 싶었고, 결혼하자마자 확 떠난 거야.
1985년 결혼하고 곧바로 파리로 유학을 떠나 같이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하려고 했는데 나이제한이 있어서, 나는 파리 8대학 조형예술과에 들어갔고 당신은 한국에서 군복무한 것이 인정되어서 원하던 대로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했지. 거기서 운명이 갈린 거 같아. 당신은 일찍부터 ‘부분과 전체’라는 개념을 화두로 작업했는데….
파리에 있을 때 서양인들 속에서 한국 사람으로서의 내 위치에 대한 고민이 자연스럽게 작품의 주제가 되었지. 특히 그 무렵 독일의 과학자 하이젠베르크(Heisenberg)의《  부분과 전체》라는 책을 읽은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 같아. 과학 분야에 문외한이라 책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부분 안에 전체가 있고 전체 안에도 부분이 있어서 서로 간에 연결성이 있다는 내용이었지. 그 이야기를 나는 내 식으로 받아들였던 거야. 비록 서양 사람이 쓴 책이지만 그 책을 읽고 덩치가 작은 동양인인 내가 서양인에게 이론적으로 꿀리지 않는 당당함이랄까 자신감 같은 걸 갖게 됐어.
그때의 관심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사이드 스케이프(Sidescape)> 시리즈까지 연결된 건가?
파리에 있을 때 했던 작업 중에서 캔버스 옆면에 그림을 그려 책이 꽂혀있는 책장처럼 만든 작업 있잖아. 캔버스 옆면은 앞면을 존재하게 하는 보조 역할을 하지. 나는 일부러 보조 역할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을 택했어. 센터와 사이드를 와해시키고, 서로 조화롭게 사는 것, 모두 동등한 것, 이런 생각과 의도가 파리시절 작업의 주제였지.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런 맥락에서 작업을 이어갔지. <사이드 스케이프> 시리즈로 넘어오면서 작업의 내용이 완전히 달라진 건 아니지만 조금 각도를 달리한 게 뭐냐면, 보도사진을 보고 그렸다는 거야. 원래 보도사진에는 정확한 센터/주제/주인공이 있기 때문에 사이드/주변/배경이 있을 수밖에 없어.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주변 풍경을 화면의 중심으로 가져와 ‘실존’시키는 것이야. 사이드/주변/배경은 주인공을 보조하고, 사건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는 데 나는 오히려 이런 역할을 없애버린거지. 뿐만 아니라 그 유용성이나 기능성까지 다 배제하고, 순수한 풍경 그 자체로만 존재하도록 만드는 거지. 그렇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야. 그래서 보도사진이 가장 적절한 소재가 된 거야.
우리는 20대 후반부터 40대까지 인생의 중요한 시절을 파리에서 보냈어. 1980년대와 2000년대에 아날로그와 디지털, 중심과 주변, 글로벌과 디아스포라라는 두 개의 강렬한 패러다임이 교차되는 시기를 다른 문화권에서 산 경험이 어쩌면 행운일 수 있어. 우리는 몇 십 년간의 시간을 통해 국적·모더니즘·형이상학 같은 거대주제가 해체되고 일상적인 개인의 삶 안에서 주제를 찾거나, 예술 자체의 가치를 최고로 여기던 시대에 예술이 일상의 삶과 합쳐지는 변혁의 시대를 체험했어. 당시 프랑스는 미테랑이 재선되어 10년이나 대통령직에 있었고, 자크 랑 문화부 장관과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기념해 문화정책을 강력하게 펼쳤지.  사회주의 성격이 강한 정책으로 가난한 학생들과 예술가들이 많은 혜택을 받은 꿈의 시기였어. 덕분에 우리는 좀 더 자유롭게 사소한 곳에 눈을 돌릴 수도 있었고, 전체를 막 흔들 수 있었던 거야. 이런 경험 또한 당신의 작업 <사이드 스케이프>의 배경이 된 것 같아.
둘이서 꿈을 찾아서 유럽까지 갔는데 참 운이 좋았지. 요즘 같아서는 그 돈으로 거기 가서 한 달도 버틸 수 없을 거야.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가 있을 때 프랑스는 사회주의 정책이 강력해서 우리처럼 학비도 없고 가난한 유학생이 어떻게든 먹고살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줬지. 그런데 작품이라는 게 한 작가의 사상이나 인생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잖아. 한국에서도 대학생하고 정부하고 싸우던 시절이었는데, 파리에서도 10년 넘게 사회주의 성향이 짙은 정책을 경험하고 사회 분위기를 몸으로 직접 체험하면서 지금의 내 가치관이 더욱 굳어진 것 같아.
다시 매체 얘기로 돌아가서 질문할게. 지금은 컴퓨터가 우리 생활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고 매일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뒤적이는 시대잖아. 세계 각국에서 온갖 사건과 재앙이 발생하고, 우리는 그것을 단순하게 정보화된 이미지로만 접하지. 그런 점에서 당신이 단순한 이미지 정보가 아닌 실제와 가까운 풍경을 그리는 것은 기호가 아닌 진실에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행위가 아닐까?
나는 평론가들의 이런 말투가 불편하고 불만이야. 왜냐면 평론가들은 말이나 글로 나를 어떤 틀 안에 자꾸 집어넣으려고 해. 작품은 원래 살아 있는 물고기처럼 스스로 생명력이 있는데, 크리틱에 의해서 오히려 그 생명력이 약해지는 거야. 대신에 작품은 유명해지고 비싸질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평론가들은 어떻게 하면 작품을 그냥 있는 그대로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그것을 많이 연구하고 개발하면 좋겠어. 자기들이 읽은 책에다 끼워 넣지 말고,
우리도 천재적으로 어떤 새로운 언어를 개발하면 좋겠지만 지금의 언어는 이미 사회적 약속이잖아. 그리고 평론가는 그것을 위해 훈련받은 사람이야. 비평이란 학문의 사회적 소통을 위해 그런 틀에 맞추어진 거지. 우리 같은 사람의 고충도 이해해주길 바라.
<사이드 스케이프>에서 회화의 소재로 보도사진을 사용하는데 그림을 그릴 때 물감 색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지? 컴퓨터 화면처럼 보정을 하나? 아니면 그대로 써?
어떤 사람들은 “어디를 보고 프레임을 잘랐나요?”, “어떤 기준에서 사진을 선정하나요?”라는 질문을 하기도 하는데, 나는 이렇게 대답하지, “예쁘면 그냥 가고 안 예쁘면 색을 바꾸기도 한다”고.
평론가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사건의 중요성이나 위급성을 떠나 전체를 완전히 탈맥락화시킨다고 봐.
그 지점이 바로 입체작품 <메모리 스케이프(Memoryscape)>와 연결되는데. 방금 얘기한 것과 결부시켜 이야기하자면, 나는 미술, 특히 회화는 굉장히 많은 부분이 ‘감각의 문제’라고 보는 거야. 조금 전에 말했듯이 나는 부분과 전체에서 상생과 조화, <사이드 스케이프>에서는 독립이 참 중요하다고 본다고 이론적 맥락을 세울 수 있겠지만 그 맥락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림은 그냥 그림으로 결정되는 것이지 그 맥락이 결정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야. 그러면 도대체 화면 자체가 뭐고, 그것을 언어로 어떻게 표현하냐는 거지. 이건 굉장히 어려운 문제야. 왜냐면 언어를 벗어난 다른 분야의 것을 언어로 표현해야 하니까. 나는 그 대부분이 ‘감각적인 것’이라고 생각해.
그러면 감각적이라는 것은 사진에서 부분을 선택하는 감각이란 말인가?
그렇지. 부분을 선택하는 것, 또 그림을 그려나가고 완성으로 향해가는 것 등을 말하는 거지. 어떤 부분을 프레임으로 잘라낼지는 작가의 느낌으로 결정하는 거지. 그런데 이런 느낌을  정확하게 말해줄 수는 없지만 이렇게 표현할 수 있어. ‘뿌옇고 일시적이고 가볍고 금방 사라질 것 같고 뭔가 견고하지 않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웅적인 모습’이라고.
그게 완전히 순수한 예술의 순간을 찾아가는 것이고 작가로서 당신의 꿈인 것 같아. 작가는 예술의 원래 모습을 찾아가는 거잖아. 낯선 형태를…. 하지만 평론가는 처음 보는 것을 해석하기 위해 이론을 집어넣어. 예전에 존재한 작품에 덧붙여 언어로 설명하다보니 작품이 낡아지는 것 같아. 많은 작가도 이 방법을 써. 그런데 당신은 자꾸 새로운 것을 추구해. 나는 그것을 애매함이라고 보거든. 당신은 애매함으로 자꾸 비켜나가. 애매하면 소통이 안 될 수도 있지. 애매함보다는 조금 더 우리가 원하는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그런 작업들이 현재 소통되고 유명해지잖아?
그 소통이 미술에 애정과 지식이 없는 사람들을 향해 있다면 그 미술판은 후진 거지.
알았어. 이제 회화와 장소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봐. <사이드 스케이프>는 장소적 설치로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 같아. 당신은 설치작업도 많이 했고, 2008년 미국 뉴멕시코에서 열리던 <산타페 비엔날레>에서는 건축가가 당신의 작품을 미리 보고 작품에 맞게끔 건축적인 전시환경을 만들어줬어. 마찬가지로 건축가 알바로 시자가 만든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서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도 건축적 환경에 따라서 설치를 했지. 내가 볼 때는 3층의 <아쿠아리움-1402>에는 작품 사이의 틈이 창살처럼 보이기도 하고 공간에서 캔버스가 하나하나 독립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설치한 것이 특히 인상적이었어. 마치 동양의 산수화 안에 여백이 사물과 공간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심리적으로 전달되는 것처럼 실제 공간과 캔버스가 소통하는 것 같아. 그런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줘.
아까도 말했듯이 회화는 그냥 화면 안에서 끝나야 된다고 난 생각해. 그런데 회화 몇 점 가져다 놓고 거기에서 이해해라. 그건 굉장히 불친절하잖아. 불친절한 것이 현대미술의 하나의 유행이기도 하지만 내 방식의 설치는 하나의 서비스이고 소통을 위한 최소한의 제스처라 할 수 있어. 하지만 그냥 서비스라기보다는 내 작품에 사이드가 있고 비켜서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산타페 전시에서는 메인을 피해서 옆에 쭉 설치해서 작품이 가지는 의미를 좀 더 강조했지. 이 미술관은  공간 자체가 이미 유명한 건축가의 작품이고 실제적로도 무척 아름다워. 하지만 작품 설치하기에는 솔직히 좋은 공간은 아니야.
내가 보기에는 그런 맥락도 있고 이 건축물 전체가 이미 회화 같은 풍경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이 전시 하면서 많이 들은 이야기가 공간하고 작품이 너무 잘 어울린다는 거야. 나는 그냥 아름답게 보이는 상황이 어떤 것일까 고민했을 뿐인데 다들 너무 잘 어울린다고 하니까 내가 공간에 아부한 느낌이더라고. 그런데 공간을 바꿀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내가 거기에 맞춘 거지. 회화는 캔버스가 어디에 걸려있든 그 자체로 어떤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해. 그것이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회화라고 할 수 있어.
그럼 작품 안으로 들어가보자. 그림 안에서 붓 터치를 보면 무심한 듯 턱턱 던져놨는데 멀리서 보면 생동감이 들어. 이게 바로 감각과 연결되는 지점이야. 모든 힘을 빼고 붓하고 내가 일치되면서 붓이 가는대로 따라 가지만 서예를 하듯이 붓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힘이 빠진 상태야. 그래서 중성적이면서도 붓 자체도 독립적인 힘을 갖고 있어. 그림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독립적으로 존재하게끔 보이게 해.
오~! 이 얘기는 내가 원하는 것과 똑같아. 서로 말 안했는데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야. 사실 그림 대부분이 한구석을 그린 건데 나는 그 구석을 또 구석으로 몰고 나간거야. 그러다보니 한 개 한 개는 완전 비구상이 되어버리는 거지. 그때 남는 건 색, 터치, 느낌, 분위기, 마티에르 등 굉장히 재료적인 문제야. 형태가 아닌 재료적인 것이 어떻게 스스로 독립해서 서 있을 것인가. 까딱 잘못하면 비구상과 구분이 안돼. 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가고 싶은 마음은 없어. 주제적인 면에서도 초월성을 싫어해. 재료들이 스스로 그냥 독립해서 화면에 존재하는 것. 한 개 한 개 독립체가 모여 하나의 화면이 만들어지고, 또 그것이 모여 또 다른 독립체가 되고, 이런 상황들이 혹시 가능할까 그렇게 생각하고 계속 시도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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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 스케이프> 캔버스에 유채 18×14cm (각) 1700여 점 2005~2014

예술가의 삶의 방식
그것이 회화 자체가 갖는 힘이야. 작가와 관객이 서로 다르게 느낄 수 있지만 그 자유로움 속에 소통하는 순간이 있어. 그리고 삶의 태도를 볼 때 당신은 규칙적으로 작업실에 가서 일정량의 작업을 해. 주로 밤에 작업을 많이 하지. 그리고 집에 와서도 계속 컴퓨터로 소재를 찾고 있어. 잠도 3~4시간밖에 안 자. 거의 작품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거 같아. 은퇴 후 집에서 책 읽고 서예하시는 아버님의 영향을 받아선지 옛날 문인화를 그리던 선비의 태도를 가진 것 같아. 독서와 작업이 삶의 방식을 이루는 예술적 태도를 갖고 있어.
말만 들으니 너무 거대하다. 그렇지는 않아.
좀 찔리나보네. 하하
그 정도는 아니야. 잘 알잖아. 나 노는 거 무진장 좋아해.
물론 노는 것도 좋아하지만 55년 평생 그런 식으로 해왔기 때문에 작품이 쌓여 있는 것 같아.
그렇다기보다는 훈훈하게 마무리하려면 어쨌거나 내가 많은 시간을 작업에 투자하는 게 맞는 거 같애. 그런 조건을 당신이 다 만들어주잖아. 남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인 건 틀림없지. 또 하나 무척 고마운 것이 내가 밤에 작업을 많이 하는데, 작업이 새벽에 끝나면 집에 가기 애매해. 그냥 작업실에서 자는 거지.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작업실에서 밤새도록 작업하고 그 다음 날 저녁 때 집에 가고 이런 식으로 계속 살잖아. 그런 식으로 작업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주니까 내가 아무리 작업실에서 빈둥거리고 놀아도 작업량이 꽤 많은건 당연해.
마지막으로, 최근작 <메모리 스케이프>로 넘어와서 좀 더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방식의 작업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회화와 조각, 설치의 영역이 합쳐있는 상황인거 같아. 조각으로 보기에는 형태가 너무나 비정형이고, 얇은 표면 때문에 내부 오브제들의 형태가 짐작되고 일부는 노출되는 거. 버려진 장소의 당시  현장을 간직한 형태는 함께 뭉뚱그려져서 나와 매우 이질적으로 보여. 장르와 매체, 사건과 장소, 시간과 공간 등의 이질적인 부분이 합쳐져 만들어진, 그 안에는 무수한 혈맥이 흐르는 새로운 변종의 생명체처럼 새롭게 보여. 예술작품에서 ‘처음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은 아주 중요해. 그래서 매우 기뻐.
10년 동안 보도사진을 수없이 봐왔는데 사람들은 마치 내가 사회에 엄청나게 관심이 많은 줄 알지만 실제 나는 보도사진이나 사건 그 자체에 대해서 관심이 없거든. 내 작업을 위해 이미지들을 빌려오는 것뿐이지. 그렇게 계속 작업 하다보니 예술은 인간의 삶에 대한 얘기인데, 내가 너무 일상에서 벗어나 있는 건 아닌지, 내가 삶을 너무 관념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런 죄책감이 들더라구. 특히 이 정부 들어서는 그래. 그래서 내 삶에서 내 손에 닿고 내 눈에 닿는 조금은 일상에 가까운 작업을 해보고 싶어서 이 작업을 시작한 거야. 뭔가 좀 더 적극적인 행동을 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당시 이슈가 된 밀양 송전탑 현장을 직접 찾아가기로 했어.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건 보도사진을 볼 때에는 송전탑이 정말 가까이 있고 인근 마을에는 전류가 어마어마하게 흐를 것 같은데, 실제 밀양에 가서 보니까 내 눈에는 송전탑이 너무 멀리 있는거야. 이게 뭐지. 내가 보기에는 밀양 사람이 오버한 건지 한국전력이 거짓말을 하는 건지 뭔지 모르는 이상한 상황이 된거야. 현장에서 내 생각은 고발이 아니라 좀 더 솔직해지고 싶었던 거야. 그렇다면 작가로서 이것을 어떻게 풀 것인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다가 ‘보존’이라고 생각했어. ‘보존’ 하면 대부분은 숫자나 데이터, 증거 확보처럼 어떤 상황을 증명하는 식으로 존재하잖아. 나는 그런 거 말고 내식대로 감상적이고 시적인 생각을 한 거야. 그때부터 상황이 벌어지는 곳에 있었던, 그 상황을 자기 식대로 머금고 있는 물건들을 가지고 오기 시작한거지. 나뭇가지, 굴러다니는 석유통 등 쉽게 가져올 수 있는 쓰레기 같은 것들을 몇 차례 실어왔지. 그리고 내가 현장에서 찍은 수백 장의 사진은 데모하는 사진이 아니야. 전류에 대해서 무식한 내가 보기에는 문제가 되기에 너무 멀리 있는 송전탑, 그 옆에서 농부가 논을 태우는 일상적인 모습이지. 그리고 물건들을 랩으로 미친 듯이 감싸고 캔버스 천을 여러 번 덧붙여서 물건들 스스로 혼자 설 수 있도록 했어.
당신에겐 그게 굉장히 중요하지.
그렇지. 그리고 지금까지는 한 화면을 그리기 위해서 내가 프레임을 잘랐잖아. 처음에는 입체 형태에다 프린트한 사진을 보고 그리려고 했는데 전체 형태가 안보이고 돌아가면서 위 아래로 봐야 하는 입체 형태와 사각형 프레임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거야. 당혹감과 동시에 굉장히 재미있었어. 지금까지 그린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려야 하는구나. 그걸 그려보고 알았어. 그 다음부터는 형태에 맞게 적절한 화면을 뽑기 시작했는데 한 화면으로는 해결이 안되서 결국 밀양사진 여러 장을 얼기설기 겹쳐서 그리게 되었지. 그동안 나는 스케치는 안하지만 포토샵으로 이미 그릴 범위를 결정하고 그렸거든. 원래 상상력으로 여러 장면을 끌어모아 그리는 거 잘 못하는게 나에게 콤플렉스였는데 이 작품에선 그렇게 안할 수 없는 거야. 내가 잘 못하던 어떤 부분을 요즘 해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작업하는 과정에서 큰 재미가 있어. 이 작품에 대해 어떤 평가가 있든 그걸 떠나서 내가 이 사회를 사는 지식인으로서 무심했던 부분이 조금이나마 해소되고 있고, 순수하게 내 시각으로 보고 이 사건을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만족감이 크더라고. 이런 과정이 주는 즐거움에 이 작업을 포기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한동안 더 하려고. 전시 오픈하고 나서 당장 세월호 사고 현장인 진도 팽목항으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이런 저런 일로 못가고 있어서 안타까워. 보도사진은 다 확보해놨지만 그 사건이 끝나기 전에 가서 실질적인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작업으로 보존하고 싶어.
앞으로의 계획까지 이야기 했네. 나는 아내이자 미술계 동지로 당신이 작가로서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한 길을 가는 것이 훌륭해 보여. 물론 나에게는 손해겠지만… 가난하지만 떳떳해. 그리고 조력자로서 예술의 순수 목적을 위해 온전히 독립하려는 시도에 동참할 수 있어서 참 좋아. 훈훈한 마무리네. 진행 정리・이슬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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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서 열린 홍순명 개인전 광경 (맨 오른쪽) 캔버스에 유채 89.5×145.5c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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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명(오른쪽)은 1959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대학교 미술교육학과와 에콜 데 보자르를 졸업했다. 1989년 미국 티모티 티유 화랑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10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2002 광주비엔날레, 2008 산타페 국제비엔날레 등에 참여했다. 서울시립미술관, 대법원, 미국 산타페 아트 인스티튜트, 경기도미술관, 호암미술관 등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김미진은 1959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대학교 미술교육학과와 파리8대학교 조형예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파리1대학교에서 예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은미술관 부관장, 세오갤러리 디렉터, 예술의전당 전시예술감독 등을 역임했고, 현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hibition Topic] 굿모닝 미스터 오웰 2014

위성예술을 넘어서, 인터미디어 예술가로서의 백남준

1984년 1월 1일, 백남준은 위성을 이용해 뉴욕, 파리, 베를린, 서울 등지에서 100여 명의 예술가가 참여한 위성 텔레비전 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생중계했다. 이 역사적인 프로젝트가 시도된 지 올해로 30주년이다.
이를 기념해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 2014전>(7.17~11.16)은 백남준의 작업과 함께 예술과 매스미디어의 관계에 주목한 동시대 작가 16팀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선보인다.

김지훈  중앙대학교 영화·미디어연구 교수

<굿모닝 미스터 오웰 2014전>은 1984년 새해를 열어젖힌 백남준의 기념비적 인공위성 생방송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3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다.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요제프 보이스의 퍼포먼스와 뉴욕에서 열린 존 케이지의 즉흥연주를 실시간 네트워크로 접속시키고 앨런 긴즈버그, 로리 앤더슨, 톰슨 트윈즈(Thompson Twins), 오잉고 보잉고(Oingo Boingo: 팀 버튼의 영화음악가로 잘 알려진 대니 엘프만이 속했던 미국 록 밴드) 등을 한자리에 모은 이 프로젝트는 백남준이 개척한 비디오아트 하위 장르의 한 영역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예술과 사이버네틱스의 관계에 대한 백남준의 사유들을 가로질러보면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위성 비디오아트 (satellite video art)’의 선구적 작품” 또는 “위성 텔레비전의 대안적 활용”이라는 기존 예술사의 통념들을 넘어선다. ‘백-아베 비디오 신서사이저(Paik-Abe Video Synthesizer, 1970)’를 완성하기 전인 1967년, 백남준은 벨 연구소(Bell Labs)에서 초기 컴퓨터 그래픽과 사이버네틱스 이론을 연구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노베르트 위너와 마셜 맥루한의 방법은 확장된 예술 연구에 가르침을 준다. 이 둘은 단일 예술가에게는 출입금지구역이던 많은 구별된 지대들을 뛰어넘고 유영했다.”1 이렇게 볼 때 백남준에게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원격통신의 예술적 적용을 넘어 그가 신서사이저의 개발과 다양한 비디오 형성체들을 통해 구체화하고자 했던 인터미디어(intermedia) 이념, 즉 음악과 회화, 사운드아트, 퍼포먼스를 횡단하고 공존시키는 미디어예술이라는 이념을 연장한 결과다. 전자초고속도로의 구축이 예술과 삶에 미치는 영향을 성찰하면서 백남준이 예술가를 “처음부터 여러 매체를 횡단하여 다루고 말을 넘어선 언어를 구사하는 전문가”2로 규정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인터미디어 예술가로서의 이상에 따라 기획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기존의 교향악과 오페라를 다른 지역으로 송신하는 것”이 아니었다. 위성예술로서 이 프로젝트는 백남준이 착안한 여러 가지 이념인 대화적인 예술구조, 열린 회로(open circuit)로서의 예술작품, 공간적 합성, 시간적 가변성과 다차원성, 즉흥성, 불확정성을 이용하여 창조한 “복합적인 시공간의 교향악”3이다. 그리고 텔레비전과 비디오의 기술적 특정성인 실시간성, 이미지의 변형성(transformativity), 시청각성(audiovisuality), 아웃풋의 다양성과 비결정성 등은 이러한 이념들을 가능케 하는 재료들과 기법들이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 2014전>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서 선보인 “복합적인 시공간의 교향악”의 면모들을 새로운 전시 환경에 구현하면서 “인터미디어 예술가”로서 백남준이 가진 이념들, 그리고 위성예술로서 이 프로젝트가 펼친 회로들을 부각시킨다. 이 프로젝트의 안과 밖, 이전과 이후를 넘나드는 이 전시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기획 및 실현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자료들,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역사적 계보에 대한 통시적 조망,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협력자들인 로리 앤더슨(Laurie Anderson), 폴 개린(Paul Garrin) 등의 작품들에 대한 공시적 조망, 그리고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다양한 맥락 및 기술적, 미학적, 주제적 요소들과 조응하는 동시대의 미디어아트 또는 무빙 이미지 예술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전시장 1층과 2층에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다양한 모습들이 대형 프로젝션으로 펼쳐진다. 2층에는 뉴욕과 파리의 두 가지 방송 버전 및 KBS에서 방송된 서울 버전을 나란히 설치하여 이 프로젝트가 가진 시공간적 동시성의 이념을 구현하고자 했다. 1층에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서 실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배열되었던 출연 예술가들의 퍼포먼스들을 10개의 클립으로 나누어서 동시에 보여준다. 이 10채널 동시 프로젝션은 각 퍼포먼스의 개별성을 존중하는 동시에,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규정했던 “복합적 시공간의 교향악”이라는 이념을 부각시키는 데 적합하다. 또한 이는 백남준이 1960년대부터 비디오와 컴퓨터를 통해 탐구했던 사이버네틱 예술의 특질인 정보 흐름의 다층성과 접근의 다방향성을 환기시키면서 관람자들에게 각 퍼포먼스들 사이의 자유로운 조합과 연결을 촉진한다.
위성예술이라는 한정된 장르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오랜 역사를 가진 프로젝트다. 백남준이 실시간 원격통신 테크놀로지가 예술의 형태와 경험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전망에 도달한 시점이 1984년보다 훨씬 이전이라는 점은 1961~1962년 그가 샌프란시스코와 상하이에서 동시에 공연되는 피아노 콘서트를 구상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이러한 구상이 실현된 것은 1977년이었다. 백남준은 그해의 도쿠멘타6 오프닝 기념행사로 요제프 보이스, 샬롯 무어만, 더글러스 데이비스와 더불어 위성 생방송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같은 해에 키트 갤러웨이(Kit Galloway)와 셰리 라비노비츠(Sherrie Rabinowitz)는 두 장소에서 서로 다른 무용가들이 펼치는 공연을 합성하여 단일 화면에 공존시키는 “위성예술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 모든 프로젝트가 전시된 “텔레커뮤니케이션 카페”(1984년 갤러웨이-라비노비츠가 LA 올림픽에 맞추어 기획한 프로젝트인 ‘일렉트로닉 카페’에서 이름을 따온)에서 관람자들은 위성예술이 소셜미디어 시대 이전에 선구적으로 실험하고자 했던 참여와 사회적 네트워킹의 이념들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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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미스터 오웰> 이후
전시의 나머지 반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기술적, 미학적, 주제적 이념들과 공명한다고 큐레이터들이 판단한 동시대의 여러 작품이 다양한 포맷으로 배열되어 있다. 이 작품들을 지탱하는 매체와 예술형식의 스펙트럼 또한 비디오 퍼포먼스(리즈 매직 레이저, <PR(공적인 관계들)>, 2013), 원격현전 프로젝트 (엑소네모, <수퍼내추럴>, 2009~2014) 등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기술적 국면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작품들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목탄 드로잉과 초기 애니메이션, 필름의 기법들을 재해석하여 백인 남성의 악몽을 전보, 전화 등의 통신매체를 매개로 역동적으로 표현한 윌리엄 켄트리지(William Kentridge)의 <스테레오스코프>(1999)는 백남준 재해석을 비디오아트에 대한 매체 특정성의 신화에 가두지 않으려는 전시의 야심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 두드러진 하나의 섹션은 질 마지드의 <증거보관소(다시 추적한 사건)>(2004), 하룬 파로키의 <카운터-뮤직> (2004) 등 감시를 주제로 한 현대적 작품들의 배치다. 이는 언뜻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조지 오웰의 묵시록적 미래상에 대한 안티테제라는 세간의 통념과 배치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위성기술을 통한 ‘자유의 증대’는 기대와 달리 ‘강한 자의 승리’로 이어진다”4라는 백남준의 경고를 상기해 보면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유토피아적 비전은 통제사회에 대한 동전의 양면과도 같음을 알 수 있다. <카운터-뮤직>은 특히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이 작품은 프랑스의 릴(Lille)을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교통 통제와 건물 온도 관리를 위해 폐쇄회로 비디오카메라와 적외선카메라로 촬영된 디지털 영상들을 지가 베르토프의 도시 교향악(city symphony)인 <카메라를 든 사나이>(1927)의 영상과 교차시킨다. 파로키가 이 전시를 위해 특별히 선정한 이 작품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미디어예술의 역사와 관련하여 가질 수 있는 접점들을 가시화한다. 한편으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시공간적 동시성은 사회주의 도시의 24시간을 관류하는 기계와 노동의 물질적 네트워크들을 탈인간적 시각과 몽타주 역량으로 통합하는 <카메라를 든 사나이>의 전통과 공명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 작품이 정교한 몽타주로 분석하고 있는 감시 카메라 이미지들의 순환과 처리 양상은 백남준의 비디오 매체에 대한 이념과 은밀하게 공명한다. 백남준에게 비디오는 기계의 눈으로 포착되는 시청각적 정보들의 모듈레이션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일상과 시공간에 스며든 통제와 감시의 이미지 또한 인간의 파악을 넘어선 네트워크들의 복잡한 모듈레이션에 따라 생산되고 순환된다.
이 전시에서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국내 작가들의 작품 선정 방식이다. 국내의 각종 기획전을 주름잡고 있는 옥인콜렉티브의 <서울 데카당스>(2013)는 가상의 상황을 던지고 그러한 상황이 부여하는 미학적, 사회적 코드들과 그에 반응하는 개인의 표정과 몸짓을 주시하게끔 하지만 <굿모닝 미스터 오웰>과 쉽게 나란히 놓일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옥인콜렉티브의 작품을 배치한다면 제스처의 수행성과 현전을 탐구하면서도 비디오의 리믹스 미학과 파국에 대한 사유가 더욱 두드러진 <작전명-까맣고 뜨거운 것을 위하여>(2012)가 좀 더 적합했을 것이다. 송상희의 비디오 에세이 <그날 새벽,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2014)은 오웰의《  1984》와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를 인용하면서 일상적 세계의 풍경에 잠재된 폐허와 이상향을 끌어낸다는 점에서 <굿모닝 미스터 오웰>과 연결되지만 싱글채널 비디오 설치보다는 집중된 시간성을 가진 극장에서 상영되었을 때 더욱 적합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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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인콜렉티브 〈서울 데카당스〉(왼쪽) 1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48분 2013 이부록 〈워바타 스티커 프로젝트〉(오른쪽) 비닐 스티커에 프린트 300×450cm 120×480cm 2005~2014


1 Nam June Paik, “Norbert Wiener and Marshall McLuhan (1967),” in Judson Rosebush (ed.), Nam June Paik: Videa ‘n’ Videology 1959-1973 (Syracuse: Everson Museum of Art, 1974), unpaginated.
2 Paik, “Media Planning for the Post Industrial Age: Only 26 Years Left until the 1st Century (1974),” in Nam June Paik. Werke 1946–1976. Musik – Fluxus – Video (Kölnischer Kunstverein, Cologne, 1976), unpaginated.
3 백남준, <예술과 위성 (1984)>,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 에디트 데커, 이르멜린 리비어 엮음, 임왕준 외 옮김 (백남준아트센터, 2010), p.137.
4 백남준, <예술과 위성>, p.140.

[Exhibition Topic]13th Donggang International Photo Festival

한국 사진축제의 가능성과 미래

산과 산 사이를 휘돌아 굽이쳐 흐르는 동강이 품은 작은 고장 영월에서 열리는 <동강국제사진제>가 13회를 맞았다. <동강사진상 수상자-구본창전>, <특별기획전-에피소드:호주 현대사진전>, <강원도사진가전-강원도에 투영된 사진예술의 진실전>을 비롯해 <포트폴리오 리뷰 수상자-김전기전>과 워크숍, 공개강좌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7월 18일부터 9월 21일까지 동강사진박물관과 영월군 일대에서 펼쳐진다.
작은 마을, 큰 축제의 성공적 사례로 손꼽히는 <동강국제사진전>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최연하  전시기획, 사진비평

해마다 7월 셋째 주 금요일이면 <동강국제사진제> 개막식이 강원도 영월군 동강사진박물관 앞마당에서 열린다. 영월군은 21세기가 시작된 첫해인 2001년 ‘동강사진마을’을 선포했다. 이를 계기로 2002년 <제1회 동강국제사진제>가 시작된 이래 현재에 이른다. 이처럼 <동강국제사진제>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진축제다. 올해로 13회를 맞은 이 작은 마을의 사진축제는 ‘동강사진마을 운영위원회’와 ‘영월군’이 주체가 되어 사진예술과 지역축제의 이상적인 만남이 이루어낸 결실이었다. 여러 가지 여건이 여의치 않고 해를 거듭할수록 본래 취지가 희미해지기 쉬운 상황에서 행사를 치르는 것 자체가 지난한 일이었을 텐데, <동강국제사진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지역을 넘어 한국 사진축제의 새로운 가능성과 활로를 보여주었다. 축제를 만들어내는 기획력은 보다 탄탄해졌고, 행사의 형식적인 완성도도 높아졌다. 이처럼 <동강국제사진제>가 확장된 사진미디엄을 수용하고 매체의 물질적 특성을 견고하게 구축해 내기까지 기획자들의 노력을 높이 사야겠다.
올해 동강사진축제는 주 사진가 12명의 작품을 선보인 <호주현대사진전, Episodes: Australian Photography Now>(이하 <에피소드전>)과 <강원도사진가전>, <거리설치전>, <보도사진가전>, <동강사진박물관 소장품전>, <영월군사진가전>, <평생교육원 사진전>, <포트폴리오 리뷰 수상자전>(이하 <보이지 않는 풍경Ⅱ>) 등 지역의 서사성과 한국사진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전시 테마를 설정하여 변화하는 시대 상황에 사진이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짚어주었다. 이 가운데 특히 주목 받은 전시는 국제전으로 기획된 <에피소드전>과 작가 김전기의 작업으로 이뤄진 <보이지 않는 풍경Ⅱ>를 꼽을 수 있다. 이 두 전시에 반영된 역사인식은 참신했다. 실증적인 역사주의를 벗어나 현재주의적인 역사관을 미적 상상력으로 도약시켜 유쾌하나 가볍지 않고, 진지하나 과격하지 않게 형식과 사유의 변증법적 역동성이 특별했다. 리얼리즘을 근간으로 하는 사진매체에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와해될 수 있을지, 이 두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밀도 높은 철학적・미학적 고뇌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에피소드전>에 참여한 호주 작가들은 거의 모든 사진적 수단을 빌려 그들의 역사를 사실적으로 재현하거나 상징적, 우의적으로 표현한다. 특히 호주 원주민(Aborigine)인 트레이시 모팻(Tracey Moffatt), 마이클 쿡(Michael Cook), 크리스천 톰슨(Christian Thompson), 데스티니 디콘(Destiny Deacon) 등 네 명의 ‘에피소드’는 모든 대립적 가치가 프레임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주제를 향한 높은 환기력을 보이고 있다. 영국계가 주류이지만 다양한 민족이 존재하는 호주에는 예전부터 거주하던 원주민이 있었다. 하지만 호주 정부의 원주민 탄압정책으로 애보리진들은 자신의 영토를 빼앗긴 채 강제수용당하거나 호주 내의 디아스포라가 된다. 자신들의 과거를 호주정부에 의해 ‘도둑맞은 세대(Stolen Generation)’ 또는 ‘도둑맞은 아이들(Stolen Children)’이라고 부를 만큼 트라우마로 얼룩진 애보리진의 후예들의 작품은 이제는 희미해진 고향의 삶과 언어를 회복하려는 자의식과의 싸움처럼 보인다. 자신의 몸을 지나간 체험이나 역사 속에서 자신의 실존을 섞어내며 작업하는 것은 하나의 불가피함이다. 그러자면 지배적인 기억(dominant memory)으로부터 대항기억(counter memory)을 곧추세워 자신을 통제하고 강요해왔던 지배이데올로기를 해체해야 한다. 기억의 제도화와 다름없는 ‘역사’는 역사적 책무를 회피하려는 지배자의 담론일 뿐이다. 그러니 기억 속에서 사라진 망각의 역사, 즉 공식적이고 지배적인 기억이 아닌 대항기억의 부활에 사진은 생생한 그 역할을 할 것이다. “나는 학교에서 한 번도 애보리진 역사에 대해 배운 적 없고, 오직 유럽인의 호주 정착에 대해서만 배웠다”는 마이클 쿡의 에피소드와 정부와 선교사의 영향을 받지 않고도 지식과 역사, 문화에 박식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데스티니 디콘은 ‘생김새가 다르다고 주변에서 침을 뱉고, 돌을 던졌던’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를 기억해낸다. 호주땅에 처음부터(ab origine) 있었지만 자신의 땅에서 분리(ab-)된 애보리진 작가들에게 ‘수년 전에 몇몇 노인이 들려준’ 이야기가 작업의 모티프가 되기도 한다. ‘정신을 다시 대지로 돌려놓는 것, 예술이 그러한 이동을 가능하게 할 운송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믿음’(크리스천 톰슨)은 흘러가버리고 기록된 연대기의 역사가 아닌, 현재진행형인 역사의 공간에 작가를 합류하게 하는 것이다.

국가와 지역의 경계를 무력화 시킨 사진의 힘
<에피소드전>의 전시장은 중심 스토리가 아닌 주변의 에피소드들로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오래된 무덤에서 출토된 미이라가 묘한 영적 아우라와 함께 현재를 바라보거나(폴리제니 파파페트로), 익명의 군중은 거리에서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트렌트 파크). 진정한 소통이란 불가능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역설의 아포리아를 보여주는 작업(폴 나이트), 슬픔과 광기로 빚은 에로틱한 초상(폴리 볼란드), 앵글로-오스트레일리아 문화권에서 태어난 중국인으로, 이성애자들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동성애자인 윌리엄 양의 작업에서는 밝고 쓸쓸한 바람이 스친다. 중심이 아닌 주변, 몸체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들의 이야기로 즐비한 것이다. 에피소드 중 압권은 트레이시 모팻과 개리 힐버그(Gary  Hillberg)가 함께 작업한 영상작품 <다른 것(Other)>이다. 영화와 텔레비전 장면들을 몽타주한 이 영상은 침략자와 원주민, 보안관과 인디언, 남성과 여성, 백인과 흑인, 정의와 불의, 선과 악, 주인과 노예로 이분화된 대립각에서 전자의 도덕적, 지적, 문화적 우월성을 전복시키며 동일자의 표상체계 밖에 있는 타자, 상징계 너머에 있는 ‘인식’이나 ‘표상’의 대상이 아닌 ‘다른 것’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공동체 바깥에 있는 타자, 이방인으로 내몰린 호주 애보리진들은 실상 공동체의 구조에 속하면서 어떠한 타자성도 지니지 않는, 즉 공동체의 동일성을 위해 요구되는 원주민이 아니었을까.
전시장을 나와서도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한 장의 사진이 있다. 김전기의 <보이지 않는 풍경Ⅱ>에서 만난 주문진의 밤바다 사진이다. 해질 녘에 촬영한 후, 똑같은 자리에서 해 진 후 다시 이중촬영한 철책너머 보이는 동해의 풍경은 신비롭고 아름답다! 겨울 폭풍 후의 강릉 해안선, 실외 사격장 등 강원도 고성에서부터 삼척까지 동해안 7번 국도의 해안선을 따라 철책선과 군사시설물을 촬영한 이 사진들에서 분단 이후, 해독되지 않는 ‘틈’으로 남아있는 권태로운 동해안을 본다. 대형카메라와 네거티브필름으로 촬영한 이 사진들의 색감은 미확인 비행물체처럼 현실의 네크워크를 해체하며 은밀한 균형상태를 보여준다. 분단 이데올로기가 사진으로 표상될 때, 그 명료한 주제의식 때문에 범상한 소재주의로 빠질 수도 있을 터인데, 김전기의 사진에서 두 개의 한계를 뛰어넘는 고뇌와 성찰을 포착할 수 있었다. 김전기의 가능성은 여전히 38선 이남에 머무르면서 보이지 않는 지정학적 경계를 드러내는 데 있다.
‘지금・여기’의 동시대 작가들은 사진이라는 그릇에 역사와 현실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 올해 동강사진축제의 작품들을 보며 더욱 골똘하게 생각한다. 호주 작가들의 서술적이고, 자전적이고, 장식적이고 제의적인 에피소드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골짜기, 강원도의 작은 마을에서 잔잔한 공감을 일으키고 있다. 인간 삶의 복잡성과 다층성, 문화의 다원적인 가치들 속에서 주체(중심)가 타자(주변)를 배제 않고 배려하는 흥미로운 토대를 생각해본다. 국가 간, 지역 간 문화교류 및 기획에서 이해와 공감의 폭이 넓어지는 그윽한 차원을 그려보며, 국제전시의 타이틀이었던 ‘에피소드’ (해양과학용어 사전에 따르면 이 말은 ‘지질시대를 통하여 독특하고 뚜렷한 사건(들)을 시간의 함의 없이 사용하는 용어’라고 한다)가 사뭇 발본적이었음을 알아챈다. ●

강원도 출신 사진작가로 기획된  전시광경

강원도 출신 사진작가로 기획된 <강원도사진가전-강원도에 투영된 사진예술의 진실> 전시광경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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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전 <호주 현대사진-에피소드전> 공동기획자 나탈리 킹(Natale King)

“호주의 문화적 정체성을 보여준다”

_MG_1809이번 <동강국제사진제>에 대한 인상은?
개막식 행사에서 누군가 말한 ‘작은 마을의 큰 축제’라는 표현에 공감한다. 일주일 정도 영월에 머물며 영월이라는 지역에서 열리는 여름축제 가운데 <동강국제사진제>가 가장 핵심적인 행사임을 확인하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호주 현대사진의 현주소를 보여주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그동안 <동강국제사진제>는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여러 국가의 사진가를 초대했는데, 이번에 호주의 현대사진을 대표하는 12명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게 된 것에 보람을 느낀다. 그리고 전시 외에도 워크숍, 강의, 특별전 등 프로그램이 다양하다는 점도 돋보였다.
주제로 내세운 ‘에피소드(episode)’는 어떤 의미인가?
영어 단어 ‘에피소드’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심리적인 변화를 느낄 때의 분위기를 뜻하기도 하지만 영화나 TV 화면에서 볼 수 있는 어떤 순간의 장면을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진의 다양한 표현방식과 영역에서의 한 부분을 뜻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나와 공동 큐레이팅을 맡은 박영미(박건희문화재단 학예실장, 사진 오른쪽)는 호주의 ‘사진/영화/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한 키워드로 ‘에피소드’라는 단어를 내세웠다. 이는 과거와 현재 또는  원주민과 유럽인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의 역사와 모호한 정치성이 공존하는 호주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다.
이번에 출품된 호주 작가의 작품은 문화적인 정체성의 혼란을 표현한 것이 많은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매우 적절한 지적이다. 호주 예술가 대부분은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다. 그들은 유럽인에 의해 점령되고 식민지화되고 문명화된 호주라는 특수한 장소성에 관심이 많다. 따라서 그들은 그 안에 내재된 역사와 문화적 정체성을 탐구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크리스천 톰슨(Christian Thompson)은 영국 옥스퍼드대에 입학해서 박사학위를 받은 최초의 애보리진 예술가이자 사진가다. 그는 호주 원주민과 유럽인을 상징하는 다양한 오브제를 이용한 자화상 작업을 선보인다. 이밖에도 그리스계인 폴리제니 파파페트로(Polixeni Papapetrou)는 자신의 아들에게 갈기갈기 찢어진 전투복을 입혀 호주의 풍경을 배경으로 촬영한다. 이 전투복은 원래 사냥꾼이나 군인이 위장하기 위해 입던 것인데, 이처럼 평화로운 풍경과 이질적인 캐릭터의 조합은 배경과 인물의 긴장을 부각시키며, 유럽인과 원주민이라는 이질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호주 현대사진의 특성은 무엇인가?
호주의 많은 사진가 역시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창의적인 사진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그들의 활동영역은 기술적인 창의성뿐만 아니라 인물이나 다큐멘터리 같은 전통적인 사진부터 이미지 연출에 이르기까지 폭넓다. 내용적으로는 앞서도 말했듯이 호주라는 특수한 다문화 상황과 과거 식민지 역사의 배경과 그 영향이 두드러진다. 이런 맥락에서 정치적인 의식이 반영된 작품이 있다고 생각된다.
인상적인 한국 사진작가의 작품은?
올해 동강사진상 수상자로 선정된 구본창의 작품이 특히 좋았다. 풍경, 가면, 백자 시리즈 모두 매우 섬세하고 감각적이며 시적(詩的)이다. 그리고 백승우의 작품도 흥미롭다. 서울 도심과 황폐한 장소의 이미지를 표현한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영월=이준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