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후행동 (Climate Action)에

누락된 링크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조주현

큐레이터,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

테이트를 해방하라(Liberate Tate) 〈Time Piece〉 퍼포먼스 2015 제공: Liberate Tate

“화석 없는 문화(fossil free culture)” 운동

75명의 검은 옷을 입은 시위대가 어느 토요일 정오 직전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의 터빈 홀을 점령했다. 이날 영국의 행동주의 예술단체 ‘테이트를 해방하라(Liberate Tate)’는 25시간동안 500피트(약 152m) 길이의 경사진 터빈 홀바닥에 숯으로 예술, 석유, 그리고 기후에 대한 텍스트를 빼곡히 적으며 템스 강변에 방치된 뱅크사이드 발전소였던 테이트모던미술관의 유산이 저지른 기후재앙을 상기시킨 동시에 여전히 석유업계의 막대한 보조금을 받으며 식민화를 벗지 못한문화기관에 압력을 가했다. 폐관시간을 넘겨 런던 경찰에 통보할 것이라는 경고에도 밤새도록 계속된 이 퍼포먼스 <타임피스(Time Piece)> (2015)는 템스강의 만조시간인 다음 날 일요일 오후 12시 55분에 끝이 났고, 미술관을 방문했던 관객들은 활동가들이 떠날 때 박수갈채로 화답했다. 그리고, 이듬해 테이트는 26년간 이어온 BP(영국 국영석유회사)와의 후원 계약을 마침내 종료했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이 체결된 이후, 여러 국가의 주요 박물관, 미술관 및 극장들은 기후행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문화기관들은 예술가와 다양한 시민단체, 기후활동가들에게 시위와 포럼의 장이 되어, 오일머니로부터 예술계를 분리하려는 젊은 세대 활동가들의 목소리가 희망과 가능성의 새로운 시대를 구현할수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기후행동주의자들이 문화기관에서 BP나셸, 에퀴노르와 같은 석유회사들의 후원 로고를 삭제하기 위해 이러한 운동을 벌이는 이유는 사실 그 회사들이 수십년간 기후위기와 부정의 배후에 있었음에도, 대중의 신뢰를 받는 문화기관 현수막과 건물 벽면에 새겨진 후원 로고로 인해 마치 책임 있는 자선 사업체들이라고 믿게 만드는, 일종의 사회적 정당성을 유지할수 있는 값싼 방법을 제공하기 때문이다.1

석유기업 후원에 대한 반대 운동은 처음에 소수의 예술가와 활동가 그룹에 의해 주도되었지만 오늘날에는 큐레이터 등 예술계 종사자, 배우, 음악가, 과학자, 청소년기후운동가 및 지역 공동체에서 함께 참여하는 국제적인 문화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이러한 운동은 기후정의뿐 아니라 창의성에 중점을 두며, ‘석유기업 후원 반대’라는 초기의 문제의식이 심화되어 그 안에서 다른 목소리들도 성장했다. 시위는 이제 박물관과 미술관을 인종과 식민주의, 기후붕괴의 교차점을 다루기 위한 포럼의 장소, 중요한 플랫폼으로 활성화시키고 있다.

장영혜 중공업 〈해운대의 쓰레기〉 오리지널 텍스트와 사운드 2023 《자연에 대한 공상적 시나리오》 부산현대미술관 전시 전경 2023 제공: 부산현대미술관

문화: 기후행동에 누락된 연결고리

박물관과 미술관 등 문화기관이 오늘날 기후위기를 정밀 조사하는 장소가 된 배경에는 그곳이 다양한 대중의 참여를 이끄는 “신뢰할수있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크게 자리한다.2

파리기후변화협약 이후 환경위기가 고조된 8년동안 기후행동을 위한 풀뿌리 조직 및 단체들의 활동 이외에도 세계 각국의 뮤지엄에서 기후 비상사태의 중대한 결과를 진지하게 대하는 큐레이터들의 전시, 연구, 수집, 교육, 대중 참여 활동 및 새로운 개발 전략이 집중적으로 진행되며 온난화가 초래한 세계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원되었다. 팬데믹을거치며 이들의 네트워크와 조직은 더욱 크게 확산되었다. 그러나 예술계 기후행동의 폭발적 성장이나 자발적 노력에 비해, 문화예술에 대한 정책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아직 기후과학이나 파리협약에 따른 국가간약속을 고려하거나 보조를 맞추고있지 않다. 특히, 기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법적 요구사항이나 중요한 정책 결정 과정에 문화와 예술부문의 기여와 역할은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친환경적 예술활동을 연구, 컨설팅하고 있는 영국의 비영리 단체 줄리의 자전거(Julie’s Bicycle)가 2021년 수행한 연구문화: 기후행동에 누락된 연결고리 (Culture: The Missing Link to Climate Action)는 국가차원의 문화정책이 어떻게 창의적인 기후운동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대규모 행동을 동원할수있는지 조사했다.3 2021년 11월 글래스고에서 개최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앞서 영국문화원의 기후 연결(Climate Connection) 프로그램과 파트너십으로 진행한 이 연구는 25개국의 공개된 국가예술정책을 분석한 데이터와 법적 권한이 있는 예술 및 문화기관에 대한 설문조사, 국제적인 예술계 지도자들과 진행한 심층 라운드테이블 및 인터뷰를 종합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예술과 문화가 기후 및 환경 활동에 어떻게 기여할 수있는지에 대한 문화정책 부문 내의 이해가 있지만, 국가기후 완화 및 적응 계획과 전략에서 계속 소외되고 있다. 응답자의 3분의 2만이 자국의 환경 및 기후변화를 위해 국가 부처와 기존 관계를 맺고있다(63%)고 밝혔다.4

또한 이 보고서는 문화정책의 주된 환경적 우선순위가 ‘예술의 학제간 협력이나 파트너십'(776), ‘환경친화적인 행동변화를 위한 예술 지원 (68%), ‘환경/기후주제의 예술 창작지원 (65%)으로, 예술가들의 순수한 창작에 있어서 관련 주제를 탐구하기 위한 협력이나 실천 등 주로 프로그램, 커미션 협업, 그리고 소통자로서의 예술의 역할에 목표를 두고 이들을 지원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예술’ 또는 천연자원 소비 감소와 같은 ‘다른 환경적 영향을 줄이기 위한 예술을 지원하는 경우는 응답자의 절반 정도로 아직 국제적인 기후환경목표에 부합하는 창조적 문화 경제를 형성하는데 있어 예술계의 자원 격차가 있음을 지적했다.5

기후와 생태위기에 대한 조치를 취하기 위해 예술과 문화부문을 동원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기후에 대한 조치에는 시민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예술의 장은 시민들이 문제를 직시하고 서로 다른 의견과 갈등의 내러티브를 경청하게 만들며, 현실을 시뮬레이션해 시민들이 문제적 현장에 개입하고 참여할수있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러한 힘은 문화예술이 과학에 활력을 불어넣고, 정치적 긴장을 완화하거나, 변화를위한추진력과 합의를 구축하는 등의 기후전략에 매우 유리하다. 기후변화는 실제 존재하지만 인간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큰 규모다. 이는 티모시 모턴(Timothy Morton)이 ‘초객체(hyperobject)’라 부르는 개념으로, 우리가 지구온난화를 명확하게 보려면 세대와종을 넘나들며 고차원적 시공간을 점유할수있는 감각과 인식이 필요하다.

예술과 문화는 바로 그 기후변화라는 압도적인 과제를 우리의 즉각적 현실, 일상적 행동과 연관시키는데 필요한 ‘누락된 연결고리’로 작동할 수 있다. 팬데믹을 지나 2023년 현재, 사회 각 분야에서 기후변화가 중대한 관심사로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보고서는풀뿌리 문화공동체가 기후비상사태에 민감한 단계를 넘어 문화정책의 프레임워크와 권한, 예산 및 책임이 국가환경 계획에 주류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 일어나고 있는 사태, 이미 공개된 전문지식만 뒷받침하는 국가정책 입안자들과의 지연된 정책 대화의 누락된 링크를 연결할 창의적인 내러티브가 시급하다.

기후위기는 문화의 위기이자 상상력의 위기

아미타브 고시(Amitav Ghosh)는 자신의 저서 대혼란의 시대(The Great Derangement)』에서 기후위기는 문화의 위기이자 상상력의 위기”6라고 말했다. 확고한 사실 또는 과학적 데이터만으로는 변화의 필요성에 비추어 볼 때 다음에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한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하지 않다. 실행 가능한 태도 변화는 정책결정 이상의 것을 요구할 뿐만아니라 개인과 사회적 주체들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급변하는 세상과 우리의 관계를 표현하고 형성하며 지속가능한 세상을 재구상하는 사고, 미학에 대한 새로운들이 요구되는 것이다. 즉, 사회가지구의 장기적인 번영을 보장하는 새로운 가치, 목표, 정책에 의해 뒷받침되도록 하려면 다양한 주체들로부터 과학적, 철학적, 예술적 사고사이의 공생 관계를 만드는 것의 중요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줄리의 자전거에서 발표한 연구 보고서 「Culture: The Missing Link to Climate Action」. 총 46개 ODA(공적개발원조) 국가의 문화예술 정책을 담당하는 정부부처 등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인터뷰를 담았다

“기후 비상 상황에 대한 긴급하고 협동적인 조치를 요구하는 호소는 전례 없이 강조되고 있다.” 라미 타우피크(Rami Tawfiq) 영국문화원 파트너쉽 디렉터

기후위기가 단지 과학 기술적인 문제만이 아닌 사회문화적인 문제라는 것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 및 문화주체/기관들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평가보고서와 같은 사회구조 안에서 그 역할과 관점이 소외되어 있다는 점은 여전히 현재의 정치적 경제적 구조의 단기주의가 미래 세대에 지속가능한 환경과 사회를 남길수 있는 시스템의 부재를 의미한다. 2021년 네덜란드얀반에이크아카데미에서 조직한 ‘예술 및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ACC)’는 IPCC와 같은 제도적 틀 안에서 예술(A)이 어떻게 이해관계를 가질 수 있는지를 추측하기 위해 제안된 단체이다. 과학계, 정책입안자, 예술주체 및 기관간의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한 IPACC는 현재의 정치적, 경제적 근시안을 넘기 위한 일종의 장기적 사고 연습으로 설계된 하이브리드 포럼으로 구성된다.

이 사변적 포럼은 기후비상사태, 환경파괴와 관련하여 상호간 세대를 초월하여 생각하는 연습으로, 미래세대를 의사결정에 포함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IPACC의 개념적 기반이 된 7세대 원칙’은 일본의 경제학자 사이조다쓰요시가 개발한  ‘미래 디자인(Future Design)’ 운동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민주적 의사결정에서 단기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독특한 모델을 제공한다. ‘미래 디자인’은 현재 세대가 약 140년 후 미래 7세대 후손들의 이익을 위해 살고 일하도록 촉구하는 7세대 토착문화 원칙과 깊은 관련이 있다. 7세대 원칙은 북미의 역사적인 토착 연맹이자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살아있는참여 민주주의 국가인 이로쿼이 연합의 설립 문서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다른 북미 원주민들과 세계의 여러 토착민들도 공통적으로 지녀온 이 철학에 기반해 IPACC는 예술 분야와 그 밖의 여러 기후전문가, 정책입안자들이 한데 모여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 참가자들간의 사변적인 역할극 형식으로 기후위기와 관련한 정책 및 문화예술계의 전망과 과제를 논의한다.

어떻게 사변적이고 철학적인 생각이 기후정책을만드는전략으로 변환될 수 있을까? IPCC와 같은 제도적 구조가 기후 비상사태에 대한 행동에서 예술적 상상력의 중요성을 전달하는 데 적절할까? 그러한 구조의 내재적인 유산과 편견은 무엇일까? 예술의 비판적인 관점은 이러한 편견과 자연 과학-기후논의에서 작용하는 권력관계에 대응하는데 생산적일 수 있을까? IPACC가 미래에 가져올수 있는 변화는 무엇일까? 현재와 미래 세대를 대변하는 세대 간 참가자들은 그들의 견해와 생각을 공유할 뿐 아니라, 과학계, 정책입안자들, 그리고 다른 핵심 주체들과 연합하여 기후위기에 대한 논의와 행동에서 예술과 문화가 근본적인 목소리로서 더 큰 견인력을 얻을수있도록 하는 메타기관에 대한 전략을 추측하는데 힘을 모은다.

결론을 넘어 누락된 고리를 연결하는 어떠한
상상적 내러티브가 필요한가?

기후와 관련한 과학적 사실은 기후재난에 영향을 미칠 여지가 거의 없이, 이미 고정되고 예정된 결과라는느낌을 함께 전달한다. 그러나 기후변화를 포함한 모든 복잡한 문제에는 어느 정도의 과학적 불확실성이 존재하며, 이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측면이다. 불확실성은 희망의 원천이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기후행동을 위한 동기로 작용할수 있다. 기후변화는 확실히 일어나고 있지만, 과학자들은 기후변화가 언제, 어디서, 얼마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지 확신하지 못하며, 인간은 이러한 변화에 개입하여 상황을 완화할수 있는 상당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문화정책은 그것을 상상할수 있는 내러티브를 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예술과 문화정책이 누구의 경험과 지식을 이야기하고 전달해야할것인지 명확해진다. 누락된 연결고리는 유럽의 거대서사로부터 구성되거나 그에 반대되는 것이 아닌, 토착적 지역성이나 원주민 문화에서 비롯된 철학적, 예술적, 이론적 기여에서 비롯된다.

기후위기 시대에 요구되는 예술적 실천과 큐레토리얼 관행은 인식론적 불복종을 옹호하고 유럽 중심적 담론과 범주를 대안적 관점으로 대체하거나 보완하는것이다. 기후행동으로서의 예술 실천은 우리가 시간, 공간그리고 다양한 종들 사이의 관계를 구성하는 방식을 새롭게 창안해 토양이나 광물, 멸종된 동식물과 우리의 친족관계를 다르게 맺을수있게 한다. 이러한 물질적 전환을 토대로 서구 사고방식에서 존재론적으로 누락된 물, 공기, 토양이나 광물, 멸종된 동식물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그들로부터 배움으로써 상호 의존적인 돌봄과 연대, 소외된 커뮤니티와의 협력을 통해 사회적 행동주의를 촉진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기후행동으로서의 예술과 국가정책이 개인과 사회 주체들의 의미있는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일련의 관행, 제도 및 사고방식 등을 완전히 변경해 인간과 비인간이 상호의존적 관계로 게임의 주체가 되는 새로운 경기장이 필요한 시점이다.

줄리의 자전거 「Culture: The Missing Link to Climate Action」 p. 15

우르술라 비에만 〈어쿠스틱 오션〉 다채널비디오 설치 18분 2018 《횡단하는 물질의 세계》 아르코미술관 전시 전경 2021

1.Chris Garrard Taking The Logos Down, Reimagining Museums for Climate Action Rodney Harrison and Colin Stering ed. London: Museums for Climate Action 2021 p.52

2.그밖에도 소장품을 통해 생물다양성 보존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알릴 수 있는 가능성의 측면이나 대안적 소비 형태를 장려할 수 있는 전시의 기능 기후변화와 관련된 특정 대상 및 내러티브를 중심으로 한 문화 간 참여 기회, 그리고 다양한 보존 및 관리방식을 통해 자연과 문화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잠재력 등이 기후위기 시대 뮤지엄의 위상과 역할을 재정립시킨 요인이다

3.Summary Report Culture: The Missing Link to Climate Action British Council and Julie’s Bicycle 2021

4.lbid. p.15

5.Ibid. p.17

6.Amitav Ghosh The Great Derangement: Climate Change and the Unthinkable Chicago and Lond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6 p.9

7.https://www.janvaneyck.nl/calendar/ urgency-intensive-intergovernmental- panel-on-art-and-climate-change

© (주)월간미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