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기후위기를 느끼는 곳

강찬수

환경신데믹연구소장, 전 중앙일보 환경전문기자

위 그래프는 연간 지구 평균 표면온도의 이례적인 상승 추이를 보여준다.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전까지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51% 늘어나는데 약 2만 년이 걸렸다. 그에 비해 기록을 시작한 이래 1958년부터 지금까지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32%가 늘어났다 편집자 주 출처: icewatch.london

지난 10월 6일 기상청은 올해 9월 전국 평균기온이 섭씨 22.6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체계적인 기상관측이 시작된 1973년 이후 9월 평균기온으로 가장 높은 기록이다. 대한민국만이 아니었다.지구 전체가 뜨거웠다. 유럽연합 기후변화 감시기구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 (CS)’에 따르면 9월 지구 평균기온이 16.38도로 관측 이래 최고를 기록했다. 산업화(1850~1900년) 전보다 1.75도나 높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1.5도 이하로 억제하자는 파리기후협정(2015년 체결)의 목표치를 넘어선 것이다.

같은 날 질병관리청은 올해 여름 폭염에 따른 온열질환자가 지난해보다 80% 넘게 늘어 3,000명에 육박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5월 20일~9월 30일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 체계를 운영한 결과, 총 2,818명의 온열질환자가 신고됐다고 한다.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도 남자 18명, 여자 14명으로 총 32명이나 됐다. 지난해 사망자(9명)의 3.6배다.

김재윤 한국은행 금융안정국 지속가능성장연구팀 과장은 같은날 공개된 수출입경로를 통한 해외 기후변화 물리적 리스크의 국내 파급영향」 보고서를 통해 지구평균온도가 계속 상승하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은 2023년에서 2100년 사이 누적 기준으로 최대 5.4%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23년 10월 6일 단 하루동안 접한 소식들이다. 기후변화로 지구가 몸살을 앓는다는소식,사람들 생명을 위협한다는 소식이 매일같이 들려오다못해 이제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쏟아진다. 기후위기가 이미 우리 가슴까지, 목까지 차올랐다. 기후위기의 신호는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리비아테르나 지역에는 열대성 폭풍이 강타하면서 하루에 40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고, 댐 두개가 한꺼번에 붕괴하면서 6,000여 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벌어졌다. 10월 들어 미국 뉴욕시도물에 잠겼고, 미얀마 남부지역도 홍수로 1만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남반구에서는 겨울에도 높은 기온을 보였고, 브라질 등 남미에서는 기온이 40도를 상회할 정도로 이른 봄부터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남극에도 ‘열파(heatwave)’가 닥친다. 겨울로 접어드는 지난 3월 엿새 동안 남극 동부의 넓은 지역에서 평년보다 10도이상 높은 기온을 경험했다. 지난해 3월 16일에는 평균기온보다 44도 높은 기온이 관측되기도 했다.

올해 지구 기온의 급격한 상승은 엘니뇨 탓도 있다. 하지만 좀 더 시야를 넓히고 관심을 가지면 인류가 처한 지구 생태계가 처한 기후위기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수있다. 이미 기후변화는 세계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기상기구(WMO) 보고서에 따르면기후변화와 기상이변으로1970~2021년에 전세계에서 200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4조3000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

앞으로는 더 큰 문제다. 이런식이면 오는 2041년에는 지구 평균기온상승폭이 2도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지난 8월 미국 캘리포니아 베이에리어 환경연구소(BAERI)와 미항공우주국 어스익스체인지(NEX)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 내용이다. 이에 따라 2040년대에는 강수량이 지금보다 더 늘고, 폭염으로 인한 건강피해나 산불발생 위험도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나마 기온이 2도 상승에서 멈추면 다행이라는 말도 나온다.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는다면 그 이상으로 상승할수도 있다.

정부간 기후변화협의체(IPCC)가 2021년 8월 발표한 제6차 기후변화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산업화 이전에는 50년에 한 번꼴로 나타나던 극단적인 폭염이 평균기온 2도 상승 때에는 13.9배, 4도 상승하면 39.2배 빈도로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1

기후위기에 대해 국제사회도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30여 년 전부터 노력은 했다. 1992년 6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환경정상회의가 열렸고, 기후변화협약을 채택했다. 1997년 12월에는 일본 교토에서 선진국들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담은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를 채택했고, 2015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는모든나라가 감축에 동참하는 파리기후협정을 채택했다.

하지만 감축목표 달성에는 실패했고, 늘기한이 뒤로 미뤄진 새로운 감축목표만 제시될 뿐이다. 정치가들은 제임기 동안 허리띠를 졸라 생각은 하지 않았고, 장기 목표만제시하는 것으로 책임을 회피한다.

한국의 경우 2018년을 고비로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고 있지만,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줄인다는 목표나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는 까마득해 보인다. 한전 적자에도 전기요금 인상을 미루고,기름값이 오르면 유류세를 내리고 명절 연휴에는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해준다. 이렇게 해서 온실가스는 언제 줄일까.

일부 선진국에서 경제성장을 이루면서도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인 탈동조화(decoupling)가 일어났지만, 지구 기온상승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의미 있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잘하고있다는 영국·독일 등 선진 11개국만봐도 평균적인 배출량 감축 속도는 연 1.6% 수준이다. 이런 감축 속도라면 2022년의 배출량을 95% 줄이는데 앞으로 평균 223년이 걸린다는 연구논문도 있다.

시나리오 1
산업화 이전 기온보다 1.5도 높은 수준에서 지구온난화를 유지한다는 파리협약의 목표에 도달하는 유일한 시나리오. 극단적인 날씨가 더 자주 발생하지만 최악은 피할 수 있다. 에너지, 토지, 사회 기반시설, 수송, 산업 시스템 등에서 유례없는 전환이 필요하다

시나리오 2
2030년 직후에 1.5도 상승을 돌파하지만 2100년까지 산업화 이전 시기 기준 기온 상승폭을 2도 이하로 억제하는 수준에 머문다는 파리협약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0.5도의 기온 상승은 큰 차이로 보이지 않으나, IPCC 보고서는 이로 인해 인간과 자연 시스템에 부정적인 영향이 크게 확대될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 폭염, 화재, 홍수, 가뭄과 같은 극도의 날씨 사건들의 강도와 빈도가 높아진다. 해수면 상승과 해양 산성화가 더해지면서 인간과 다른 종의 서식지가 축소될 뿐만 아니라 작물 수확량과 어획량이 줄어들어 식량이 감소한다. 기온이 1.5도이상 상승하는 모든 시나리오에서 이번 세기말에는 9월에 북극해에 얼음이 사실상 전혀 없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탄소 연감 네트워크 지음, 성원 옮김 『우리에게 보통의 용기가 있다면』 책세상 2022 p.96 참고

기후위기로 암울해진 미래에 세계의 청소년들이 시위를 벌이고 소송에 나섰다. 그레타툰베리가 대표적이다. 그가 주도해서 내놓은 기후 책(The Climate Book)』에서 툰베리는 “(각국 지도자들은 지난 30년) 그 긴 세월을 기후행동을 적극적으로 지연하는 데에, 즉 자국의 단기적인 경제정책과 자신의 평판에 도움이 될 허점투성이 제도를 만드는데 허비했다”며 정치인들의 거짓말과 안이함을 적나라하게 꼬집는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세계 소득수준에서 상위 10%에 속하는 사람들이 온실가스의 절반을 배출하고 있다. 하위 50%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전체 배출량의 10%도 안된다. 지구 기온 상승폭을 1.5도로 억제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배출할수 있도록 허용된 온실가스의 양을 계산할 수 있는데, 이를 ‘탄소 예산’이라고 한다. 부유한 사람들이 ‘탄소예산’을 다 사용한다면, 중·저소득 국가의 사람들은 생활수준을 높이기도 전에 경제성장을 억제해야하는 불평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항공기 여행을 즐기고 값비싼 자동차를 굴리는 부자들에게 ‘사치 탄소세를 높게 부과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현세대의 안일함은 미래세대의 희망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권리를 빼앗는 일이다. 인류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지속가능성을 확보한다는 말은 지구 생태계가 미래에도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사실 기후변화는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다양한 형태로 훼손한다. 지난  9월에 나온유엔과학 리포트」에 따르면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15%만 제 궤도를 걷고 있고, 나머지는 목표에 뒤처지고 있다. 2030년에는 6억7,000만 명이 기아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금도 대기오염으로 인해 연간 700만명이 조기 사망하고 있는데, 앞으로 폭염과 전염병으로 인한 건강피해가 점점 더 심각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기후변화 양상은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에서 이제는 지구 비화( 沸騰化, global boiling)로 일컬어질 정도로 빠르게 기온이 상승하면서 생태계 위기는 물론, 인류를 생존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끓고 있는 지구 기후위기의 해법은 결국 빠른 속도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늦어도 2050년까지는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20년 전세계는 코로나19 팬데믹 때 도시가 봉쇄되기도하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크게 줄였다. 그런 엄청난 고통속에 줄인 양이 7% 정도였다. 이런 식으로 2050년까지 계속해야 탄소중립에 도달할 수 있다. 매년 전년도에 비해 7%씩 줄여나간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갈수록 줄이는 게 더 힘들어질 것이다.

그런데도 코로나19 상황이 조금 나아지자 2021년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크게 늘었고, 2022년에도 다시 1% 더 늘어났다. 줄어도 시원찮은 상황인데,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기후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정말 코로나 때처럼 줄인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에너지, 산업, 교통, 가정, 상업 등 모든 부문에서 비상한 각오로 온실가스 줄이기에 나서야 한다.

모든 부문에서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면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 같은 작은기관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박물관과 갤러리에서는 조명, 냉난방, 전자장치 등에 전력을 공급한다. 직원의 출퇴근이나 방문객의 이동, 예술 작품의 운송 등에서도 에너지가 소비되고,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시설 내 수돗물 사용에도 직간접적으로 에너지가 들어간다. 크게 보면 미술품의 제작 과정에서, 또 작품 재료를 만들고 운반하는 동안에도 온실가스 배출이 일어날 수 있다.

파리기후협약 채택 5주년을 기념하는 2020년 12월, 그린피스 스페인 활동가들은 스페인 마드리드의 토레혼 데 아르도스(Torrejón de Ardoz)에 위치한 에펠탑 레플리카에 올라가 거대한 현수막을 달았다. 현수막에는 “가짜 약속은 그만하고 진짜 협약을 준수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편집자 주 © Pedro Armestre / Greenpeace

2000년대에 새롭게 지어진 대부분의 미술관은 건축적으로 환경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그중 파리의 팔레드도쿄는 1937년 건축된 오래된 건물로, 일부 공간을 리노베이션 하면서 건축의 지속가능성에 집중했다. 본 건축으로 2021년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한 안 라카통(Anne Lacaton)과 장-필리프 바살(Jean-Philippe Vassal)은 ‘기존 건물은 절대 부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기존 구조를 최대한 활용해 비용을 줄이고 건물의 역사를 살려냈다. 상층은 유리 지붕을 통해 햇빛을 투과하게 함으로써 에너지를 절감하고 친환경 재료를 사용하며 21세기에 좋은 건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답을 제시했다 편집자 주 사진 제공: Philippe Ruault 출처: archdaily.com

이는 역으로 미술관 등에서는 다양한 노력을 통해 탄소 발자국을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우선 처음부터 건물의 자연 채광이나 창문과 벽체 단열을 통해 에너지를 덜 사용하도록 설계하는 방법이 있고, 기존 건축물도 이런 점을 개선할 수 있다. 지붕에 태양광 흡수 설비를 설치하거나 지열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여름철에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태양광을 차단해 냉방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자동온도조절장치로 냉난방 에너지를 절약 할 수도 있다. 겨울철에는 환기 시설을 통해 실외로 내보내는 따뜻한 공기를 활용해 안으로 들어오는 차갑고 신선한 공기를 미리 데우면 난방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 실내 조명도 에너지 효율이 높은 설비를 사용하고, 센서를 사용해 필요 없을 때는 꺼지게 하거나 조도를 조절한다. 직원이나 방문객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자전거나 걷기를 통해서도 접근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개선해야 한다.

아울러 폐기물 발생량을 줄이면서 종이, 플라스틱 등은 분리수거를 통해 재활용률을 높일 필요가 있다. 방문객들에게는 일회용품 사용 자제를 요청해야 한다. 수돗물 절약을 위해 절수기기를 설치하고, 지붕에 내리는 빗물을 모아 정원수나 화장실 용수로 활용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술관에서 기획 전시할 때 기후위기의 인식을 높일 수 있는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다. 미술관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깨닫는 장소가 돼야 한다. 시민들이 관람을 통해 자연스럽게 우리가 처한 기후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깨닫게 된다면, 그리고 기후위기 예방을 위해 직접 행동으로 실천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다면 미술관으로서는 너무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열거한 에너지 절약방법을 미술관부터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다. 미술관을 방문하고, 거기서 보고 듣고느끼는하나하나가 실천에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아울러 미술계 종사자 개개인 모두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더는 미루지 말고 당장 실천에 나서야 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개인의 노력으로 거둘 수 있는 성과는 크지 않지만, 많은 사람이 참여한다면 분명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벌써 포기하기에는 이 지구가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1.“IPCC 보고서는 우리에게 배출량을 기온 1.5도 상승 수준으로 제한할 재정적 수단과 기술적 역량, 그리고 과학적 이해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한편 과감한 실천과 정치적 의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편집자 주. 탄소 연감 네트워크 지음, 앞의 책 p.96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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