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문희

Behind a work 16

사진: 박홍순

1982년 출생. 중앙대 예술대학 조소학과를 졸업했다. 〈미지의 생명체들〉(2014)에서 생명체와 주변 환경이 교차한 이미지를 제시하며 세상을 새롭게 인식하는 방식을 이야기하였고, 〈일렁이는 세계〉(2019)에서는 사물과 상황 사이에서 발생하는 의미와 해석지점을 통해 일상을 감각적으로 사유하는 경험을 공유하였다. 최근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에서 진행된 〈Neo Frontier〉 (2022)는 그동안 작가가 경험하고 고민해온 것들을 다양한 요소로 사회적 맥락과 연결하며 의미를 더욱 확장하고 열린 해석으로 나아가는 시도를 하고 있다.

박문희의 영토는 이 세상과 일말의 연결고리도 없어 보이는 견고한 환상의 세계다. 하얀 전사가 흰 폐허의 땅에서 승리의 춤을 추고,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유기물과 인공물이 서로의 몸을 합쳐 녹아내리는 이 디스토피아는 그 자체로 자유로운 창작이 실현될 수 있는 유토피아를 의미한다. 이 새로운 영토에서 작가는 자신의 기이한 상상력과 미감을 자유자재로 펼쳐 보인다.

〈White Warrior〉 기록영상 스틸컷 연출/감독: 박문희 안무/퍼포머: 조우채 촬영, 편집: 마필 제공: 박문희

새로운 영토

염하연 기자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것들을 만든다.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는지.
지금은 시각적 소스의 시대다. 이 소스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일단 무엇이든 리서치를 시작하면 강박적으로 몰입하는 편이고 미술계의 룰에 따르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매니악한 것을 기반으로 작업을 한다. 어릴 때부터 워낙 이상한 생각을 많이 했는데, 덕분에 독특하고 기이한 소재들에 깊게 몰입하다 보면 그것이 결국 차별성이 된다는 것도 일찍 알게 됐다.

틀에 박히지 않은 작업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다.
개인의 성향과 개성이 존중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 똑같을 필요는 없으니까. 작업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종종 여행을 하는데 평범한 여행보다는 모험이 좋다. 배낭을 하나 메고 걷다가 힘들면 그 자리에서 잠을 청한다거나, 아무도 없는 곳으로 향하는 자유가 좋다. 그 자유 속에서 새로운 것들을 자꾸 발견하게 된다.

사진작업 〈새로운 영토〉(2022)도 그렇게 만들어졌나?
오지에서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주소지도 없는 갈대숲에서 작업했는데, 포토샵한 사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연출한 것이다. 헬륨으로 검은 풍선을 띄워 검은 해를 만들었고 갈대에 붉은 페인트를 직접 칠했다. 외계 행성에 떨어진 느낌을 즉물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사진으로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는 것이다.

〈Neo Frontier(네오 프런티어)〉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도 창작물이라기보다는 조물주가 만든 새로운 영토처럼 보였다. 특히 퍼포먼스는 이름 모를 세계의 굿처럼 제의적이었다.
〈Neo Frontier〉는 경직된 미술 권력 시스템에서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됐다. 전시의 전반적인 스토리라인은 주인공이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내기 위해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여정 속에서 겪는 시련과 극복의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다.
기존의 미술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솔직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싶었고, 판타지적 요소가 뒤섞인 디스토피아를 상상하며 공간과 퍼포먼스를 구성했다. 퍼포먼스가 끝난 뒤에도 조각적 의미가 새롭게 생겨나고 뒤섞여 자유로운 감각이 살아나는 세계를 만들고 싶었다.

작가가 경험한 디스토피아는 무엇인가.
경직된 한국 미술계 자체다. 중심을 차지한 세력의 취향에 맞게 유행과 맥락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독창적인 작업이 나올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이번 작업은 현실을 직설적으로 비판한다기보다는 이 척박한 상황을 비유적으로 드러내는 데 목적이 있었다.
〈병과 캔의 정치학〉도 한국 미술계의 한계를 말하는 작업이다. 병과 캔이 끼리끼리 모여 있는 형태에서 미술계의 편향된 권력 구조를 떠올렸다. 밖에서 봤을 땐 화려하지만 내부는 부패해 있는 현실을 말하기 위해 오묘하고 화려한 빛을 연출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Neo Frontier〉는 기존의 조각과 설치 작업에 퍼포먼스를 덧붙여서 연극적인 요소를 더한 것이다. 형식에 변화를 준 계기는?
연극적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굳이 말하자면 다원적이다. 패러다임에 갇히지 않고 뒤섞이면서 생겨나는 것이 다원적인 것이라고 본다. 섞이는 결 사이에서 의미가 생성되고 발전하는 것이다. 뒤죽박죽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 관객들도 관람이 아닌 경험을 하길 원했다.

퍼포먼스의 메인 캐릭터 ‘하얀 전사 (White Warrior)’는 어떤 인물인가.
현실을 기반으로 한 다크 판타지의 주인공이다. 하얀 전사는 표면적인 의미 그대로 ‘저항하는 자’이다. 자신의 감각으로 무장한 선하고 깨끗한 전사는 작가의 페르소나로서 황폐하고 척박한 흰 사막-미술계의 현실을 넘어서서 자유자재로 자신의 힘을 자랑한다.

퍼포먼스에 사용된 오브제들은 산호, 깃털, 나뭇가지처럼 한때 유기물이었다가 인공물이 된 어떤 경계에 있는 물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인공물이 따라갈 수 없는 퀄리티를 위해 자연재료를 많이 쓴다. 또한 오브제는 실제의 물질이고 유기물이기 때문에 고유한 의미가 발생한다. 그 의미를 원활하게 사용하는 걸 좋아한다. 이를테면, 〈변화의 성소〉에는 붉은 산호를 썼다. 산호의 강렬한 핏빛에서 대자연의 분노를 느꼈다. 그래서 기도하는 천사의 머리를 떼고 그 자리에 이 붉은 산호를 놓았다. 붉은 산호는 창작자들의 분노를 상징하는 샘이다.

퍼포머와 교감했던 오브제들의 의미는 무엇이고, 움직임을 만들면서 퍼포머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오브제들과 퍼포머, 이 전시 자체가 더 이상 기존의 권력에 순종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이라고 해야 할까. 예컨대 〈나의 악의 화신님〉은 실존 인물에 나의 얼굴을 섞어 만든 두상 조각이다. 사이비, 부정적인 유물, 권력집단을 의미한다. 시각적으로는 아리 애스터 감독의 영화 〈유전〉에서 여동생의 머리가 잘려 바닥에 나동그라지고 부패하는 장면을 어느 정도 참고했다. 〈부정한 은화〉도 권력을 상징한다. 성스럽지 않은 부정의 검은 이미지는 끓어오르는 검은색 물로 표현했다.
퍼포머는 오브제와 자유롭게 교감하며 의미를 만들어내야 했다. 그래서 틀에 박힌 주문을 하지는 않았고, 함께 안무를 고민하면서 공동 창작물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

입체 작업을 할 때는 조금 경직된 느낌이 있었다면 지금은 훨씬 더 자유로워진 것 같다. 향후 계획은?
단체전이 되었든 개인전이 되었든 〈Neo Frontier〉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것들을 보여주고 싶다. 거창하게 이야기하자면 문학, 철학, 종교, 인류학, 사회학을 아우르는 다양한 분야에서 다층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실제로 작동하는 다원적인 현대예술을 구현하고 싶다. 지금은 아직 이러한 계획에 미치지 못하지만 앞으로의 전시를 통해 충분히 설명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동안은 지금과 같이 장르를 가르지 않은 복합적인 표현과 새로운 전시방식, 색다른 플롯으로 다채롭고 특이한 경험을 제공하여 작업을 이해하기 위한 기반을 다지는 것을 목표로 할 생각이다.

〈White Warrior〉 공연 모습 연출/감독: 박문희 안무/퍼포머: 조우채 제공: 박문희
〈나의 악의 화신님〉 고목, 시멘트, 동판, 스티로폼 120×88×64cm 2022 사진: CJY ART STUDIO ⓒ 2022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 박문희
〈새로운 영토〉 피그먼트 프린트 119.5×164cm 2021 제공: 박문희
〈병과 캔의 정치학〉 병, 캔, 지점토, 종이, 시트지, 조명 가변설치 2022 사진: CJY ART STUDIO ⓒ 2022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 박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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