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월간미술대상 전시기획 부문 1

이수균, 김윤서, 김주원, 노해나, 박현희

SPECIAL FEATURE

이수균

제19회 월간미술대상 전시기획 부문 수상자(최우수 전시)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파리 제1대학에서 현대미술사를 공부했다. 대림미술관 학예연구실장과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성곡미술관 부관장으로 재직중이다. 《문자와 이미지》(1996), 《몸과 사진》(1998),《베를린, 도시의 변화》(2002), 《화가의 옷_크리스찬 라크르와 & 배준성》(2003),《만 레이와 그의 친구들의 사진》(2010), 《네오산수》(2011), 《오를랑 테크노 바디》(2016), 《김나영 & 그레고리마스_리프로스펙티브》(2019) 등을 기획했다.

《그너머_원계홍 탄생 100주년 기념전》
2023.3.16~2023.6.4 성곡미술관

원계홍 화백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한국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원계홍의 예술세계를 재조명하는 전시를 진행했다. 아직 알려지지 않았거나 흐릿하게 지워져 가는 그의 업적들을 다시 복원하여 알리기 위해 진행된 전시는 일찍이 원계홍 작가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 작품들을 수집하고, 소장한 소장가 윤영주와 김태섭의 제공으로 아카이브 자료와 함께 회화 작품 100여 점으로 구성됐다.

참여작가 원계홍
기획 이수균
진행 전지희, 이시연, 김태희, 박혜정, 윤현정, 황수진
테크니션 최인석
그래픽 디자인 홍은주, 김형재, 이예린
편집 및 교정 & 교열 이수균, 전지희, 이시연, 김태희, 박혜정
인쇄 인타임
번역 이화여대 통역번역연구소
사진 박성훈, 안태연, 정효섭, 주명덕
도록 발행 박문순

어떻게 큐레이터가 됐나요?
학부에서는 실기를 전공했어요. 그런데 그때 우리나라 처음으로 이화여대에 미술사학과가 생겼거든요. 우연히 강의를 듣게 됐는데 내용이 너무 재미있어서 자연스럽게 미술사를 공부하게 됐습니다. 이후에 대학에서 강사 생활을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미술관에 들어오게 됐어요. 파리에 있을 때 작가 아틀리에와 갤러리를 많이 방문했었는데 그 경험들이 잘 축적된 것 같아요. 그리고 그때 마침 몸에 대한 담론이 활성화되던 시기였는데 자연스럽게 몸과 사진을 다룬 국내외 작가들의 전시를 기획하면서 전시기획을 시작했습니다. 시기상으로도 워커힐미술관, 호암갤러리, 대림미술관, 성곡미술관처럼 사립미술관들이 곳곳에 많이 생겨나던 때였습니다. 처음 큐레이터로 일하게 된 때는 1995년으로 대림미술관으로 당시 명칭은 한림미술관에서였어요.
미술계는 특히 이직률이 높은 편인데요. 한 기관에서 오래 일할 수 있는 요인이 있을까요?
성곡미술관은 이전에 짧게 근무한 경험이 있는 곳입니다. 이후에는 서울시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등에서 근무하였고, 2015년에 다시 성곡미술관에서 근무하게 됐어요. 사실 프랑스의 퐁피두센터나 해외 큰 미술관의 경우에는 30년 이상 근무한 큐레이터들이 대부분입니다. 한국에서는 그게 좀 어려운 것 같아요. 저도 한 기관에 오래 있으려고 처음부터 마음먹은 것은 아니지만 기관에서 큐레이터가 전시를 기획하고 계획을 세우려면 장기 플랜을 세워야 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해외작가의 전시나 기관과의 교류, 협의가 필요한 전시의 경우는 기본 2, 3년의 기간을 두고 전시를 기획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오래 근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유달리 애정이 가거나 혹은 아쉬움이 남는 전시가 있다면?
제가 대학에 다닐 때는 회화가 예술의 전부인 줄 알았어요. 그런 시절이었죠. 그런데 프랑스에서 영상과 사진에 관한 전시를 보면서 장르 변화와 연출, 표현 방법의 다양성에 크게 놀랐어요. 그때부터 매력적인 표현 매체인 사진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면서 기획한 게 2010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연 《만 레이와 그의 친구들의 사진》전입니다. 만 레이는 화가, 사진가, 영상, 설치를 모두 아우르는 작가잖아요. 만 레이의 어록 중 “회화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사진으로 표현하고, 사진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회화로 그린다”는 말을 기억하는데, 결국 작품을 만드는 것은 주제가 아니라 형식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원계홍도 비슷한 말을 했거든요. 작가 노트에 보면 “균형이 잡혀있고 색채가 조화되어 있으면 작품으로서는 충분하다. 주제 같은 것은 필수한 것은 아니었다. 회화는 말하자면 그 자체가 주제이며 아름다운 것에 영원한 기쁨이었다.”는 말이 있어요. 결국 같은 의미지요. 작가의 작품을 결정하는 것은 작가이고 그것을 회화로 할지, 사진으로 할지의 표현방식만이 달라진다는 것이지요.
본인이 생각하는 큐레이터의 소양은?
일단 작품을 많이 봐야 할 것 같아요. 큐레이터라면 안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비평할 수 있고, 이를 분류해 전시를 기획하려면 우선 작품을 선별해 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하는데 그러려면 많이 봐야죠. 또 작품이 어떻게 제작되고 완성되는지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 앞서 예술에 대한 열정이 있으면 되는 것 같아요. 예술을 사랑하고 새로운 창작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던지며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많은 전시를 보셨을 텐데요. 본인이 기획한 전시 외에 기억에 남는 전시가 궁금합니다.
좋은 전시가 너무 많아서 한 가지를 꼽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다만 좋았다고 생각한 전시는 과하지 않고 아쉬운 점이 없더라고요. 개최 시기, 작품 선정, 조명, 동선 등 전시에서는 그 모든 게 다 중요한데 어느 것 하나 소홀하지 않고 신경을 썼다는 것이 느껴지면 매료되죠. 2000년 프랑스 아비뇽의 고성에서 진행한 《Beauty》 전시는 참여한 작가도 유명했지만 청나라 때부터 현재까지 시대를 일별할 수 있는 사진, 조각, 페인팅 작품이 오랜 역사를 지닌 성에서 나열되듯 전시되었는데, 공간과 작품, 문화의 힘이 느껴져서 기억하고 있는 전시 중에 하나예요. 최근에는 덕수궁에서 진행하고 있는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같이 작가에 대한 다양하고 깊이 있는 연구와 작가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전시를 만났을 때 좋다고 느꼈어요.
개인적으로 꼭 해 보고 싶은 전시가 있는지?
1980년대에 미대를 다니면서 당시 시류와 관계없이 순수 조형예술을 추구했던 많은 작가를 만났는데요. 그때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작가들을 다시 한번 마주하고 싶습니다. 원계홍 전시를 준비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 전시가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으면서 좀 더 자신감이 생겼어요. 대형 전시, 해외 유명 작가의 전시도 중요하지만, 당시 꿋꿋하게 창작 활동을 하던, 지금은 잊힌 우리 작가들의 작품을 다시 세상에 꺼내 보이고 싶어요.

정소영 기자

《그 너머_ 원계홍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기획하며
이수균 | 성곡미술관 부관장

한국현대미술사에서 완전히 잊힌 원계홍元桂泓, 1923~1980)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그의 예술세계를 조명하고, 가치를 재고하고자 그 너머_원계홍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기획하였다. 성곡미술관은 이 전시를 통해 원계홍 화백의 유화, 드로잉 등 작품 100여 점과 아카이브자료를 선보이며 그의 순수한 예술혼과 실험적 회화를 널리 알리고자 했으며, 두 소장가의 특별한 열정을 기억하고자 했다. 아울러 (故)이경성 전국립현대미술관장, 오광수 미술평론가, 김현숙 한국근현대미술사가의 글을 소개하고, 작가노트 등 1차 자료의 아카이빙으로 한국현대미술사의 흐름 속에서 원계홍의 작품세계를 재평가하며, 후속연구의 물꼬를 트고자 했다.

어느날 일면식도 없던 두 소장가 김태섭과 윤영주가 원계홍이라는 무명작가를 소개하기 위해 미술관을 방문하고 싶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선뜻 호기심도 생겼지만, 가끔 있는 일이라 무심한 마음으로 약속을 정해 만났다. 두 분은 페인팅 원화 1점을 직접 들고 와원계홍이란 작가와 작품에 대해 많은 설명을 했다. 그 과정에서 2023년이계홍 탄생 100주년이 되는 특별한 해이며, 두 분이 그동안 그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고, 그 와중에 이렇게 성곡미술관까지 방문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원계홍은 근 33년간 한 번도 공개적으로 조명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커 보이는 화가였다. 이러한 망각의 늪을 건너뛰어 갑자기 솟아난 것처럼 우리 앞에 나타난 원계홍이란 낯선화가의 유화작품은 단번에 나를 사로잡았다.그 작품은 <수색역>(1979)이라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였다. 능수능란하게 유화를 다루는 방식이라든지, 그려진 구상적 대상들이 단순한 재현을 넘어 자신만의 고유한 조형세계를 탄탄하게 구축하고 있다는 것, 독특한 색채 감각과 화면 전체 구도와 같은 형식적 요소뿐만 아니라, 인적이 뚝 끊긴 새벽녘 서울주택가의 회색기가 감도는 묘한 분위기 표현에 이르기까지 그는 ‘창작’이 무엇인가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많이 그려봤으며, 나아가 ‘모더니즘 미술’에 대한 상당한 지식까지 소유한 특별한 작가라는 판단이 섰다. 즉 원계홍은 서양 현대미술의 영향을 받았으나 자신만의 고유한 조형언어로 우리에게 익숙한 1970년대 서울의 골목길을 독특하고 순수한 예술로 창조한 전문가라는 것이 결론이었다.

전시를 준비하며 알게 된 사실은 그가 경제학을 공부하기 위해 동경으로 유학을 떠났으나서양 현대미술에 빠져 지냈고, 급기야 마티스를 사사했다는 이노쿠마 겐이치로(Inokuma Genichiro, 1902~1993)의 아틀리에에서 그림을 배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원계홍이 당시 서양의 모더니즘 미술운동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가 평생에 걸쳐 스스로 물었던 ‘회화란 무엇인가?”란 질문은 이러한 배경에서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예컨대 “전체의 형식적 통일에 기반하여 결정된 색채의 배치로 회화공간을 완성했다. 균형이 잡혀있고 색채가 조화되어 있으면 작품으로서는 충분하다. 주제같은 것은 필수적인 것은 아니었다. 회화는 말하자면 그 자체가 주제이며 아름다운 것에 영원한 기쁨이었다.”라고 원계홍은작가노트에 회화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그 너머_원계홍 탄생 100주년 기념전의 작품연구를 위해 1970년대 원계홍을 직접 알았었고, 그의 허망한 타계를 누구보다도 안타까워했던 오광수 미술평론가에게 원계홍의 철학적 사색이 담겨있는 예술세계에 대한 글을, 그리고 한국근현대미술사가인 김현숙 박사에게 한국미술사 속 원계홍의 위상과 그의 작품분석을 요청했다.그리고 작가 생전에 그를 비범하게 여겼던 (故)이경성 관장이 1980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뜻밖의 사고로 타계한원계홍을 기리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한 <원계홍 유작전>(1987)을 참고하여 전시를 준비했으며, 이때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었던 작품 2점을 대여받아 함께 전시했다. 이 전시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많은 전문가가 각각의 위치에서 진심 어린 애정과 노력을 쏟아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늘날 원계홍 화백을 다시 마주할수 있게 해준 공로는 역시 작가의 작품세계에 깊이 공감했던 두 분의 소장가 김태섭과 윤영주에게 돌려야 할 것이다. 이 두분의 소장가가 원계홍의 작품 대부분을 소장하고 있어 작품 선정도 수월하게 진행됐다. 우리는 그의 전작을 미술관 전시공간으로 옮겨와 펼쳐놓고 골목길, 정물화, 풍경화, 인물화, 드로잉 등으로 구분하여 전시 작품 100여 점을 선별했다. 미술 애호가인 두 분은 일찍이 원계홍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그의 전 작품을 수집하고 30여 년간 소장함으로써, 이름없이 먼지처럼 흩어져 버릴 뻔했던 작가와 작품을 보호했다. 어떤 작품을 가치있는 예술작품으로 탄생 시키는 데에는 작가의 수준 높은 창작활동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그 작품의 예술성을 평가하고 인정함으로써 헛되이 사라지지 않도록 단단히 잡아주는 소장가의 역할 역시 매우 중요하다. 그 어떤 사심도 없던 기인이자 외골수였던 원계홍은 이 두 예술 애호가 덕분에 다시 세상에 나와 빛을 발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구인지도 모를 만큼 삶의 흔적이 지워졌던 예술가 원계홍의 작품을 이렇게 생생하게 다시 만나며, 그가 남긴 예술세계를 경험하고 즐긴다는 것은 예술에서만 가능한 기적과도 같은 부활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원계홍의 작품들이 전문적으로 보존되고 전시될 수 있도록 전문기관의 컬렉션으로 모아 유지될 수 있게 하는 후속조치이다. ‘원계홍 화백이 좀 더 작품활동을 이어갔더라면 조금 더 심화된 그의 예술세계를 접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홀로 묵묵히 창작활동에 매진하는 많은 예술가에게 이번 전시가 작은 힘이 되길 바라며, 그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엄격하고 충실했던 원계홍의 어록을 다시금 새긴다. “예술가는 끈질기지 않으면 안되고, 또한 겸허하고 탈속적이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최대의 위험은 성공이라는 것이다.”

《그너머_원계홍 탄생 100주년 기념전》 성곡미술관 전시 전경 2023
사진: Ahina 정효섭 제공: 성곡미술관

김윤서

제19회 월간미술대상 전시기획 부문 수상자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연구사로서 동시대 미술 전시와 연구를 기획한다. 공적 자원으로서 미술관의 역할과 예술 실천, 문화예술정책과의 결합에 관심이 있다. 기획전 《백남준의 보고서 1968-1979》(2022), 《오픈 코드: 공유지 연결망》(2021), 《침묵의 미래: 하나의 언어가 사라진 순간》(2020), 학술 심포지엄 《미술관 없는 사회, 어디에나 있는 미술관》(2020) 등의 전시와 연구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도록과 학술 저널을 출판했다.

《백남준의 보고서 1968-1979》
2022.10.13~2023.3.26 백남준아트센터 제1전시실

백남준 탄생 90주년 특별전. 전시 제목 그대로 백남준이 작성한 보고서에서 출발했다. 1968년에서 1979년 사이에 백남준이 미국에서 영어로 작성한 주요 보고서 「종이 없는 사회를 위한 확장된 교육」(1968), 「후기 산업사회를 위한 미디어 계획」(1974), 「PBS 공영 방송이 실험 비디오를 지속하는 방법」(1979)을 바탕으로 정책가 백남준을 주제로 살폈다. 전시는 백남준의 보고서와 작품을 함께 보며 그를 새롭게 ‘발견’하기를 권하는 한편, 정부의 제도적 지원은 물론 민간 재단, 메세나 기금, 학교, 연구소, 미술관, 방송국의 지원과 협업이 그의 사회적 역할 실천에 도움이 되었음을 드러냈다. 목표는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라는 익숙한 길에서 돌아 나와 또 다른 백남준과 맞닥뜨리는 것, 정책가 백남준의 구상과 실현을 가능하게 했던 예술 생태계와 제도적 기반을 살피는 것이다.

참여작가 · 컨설턴트 백남준
기획 김윤서
진행 안서연
테크니션 이기준
그래픽 디자인 홍박사
공간디자인 곽현정
보고서 웹디자인 릴레이스튜디오
번역 곽재은, 콜린 모엣
사진 지아니 멜로티
전시해설 목소리 녹음 장기하
작품대여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롯데칠성, 김희근
주최 · 주관 백남준아트센터, 경기문화재단
후원 두나무, 한국메세나협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협찬 롯데칠성, 노루페인트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직업을 선택했다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좇다 보니 이 일을 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아요. 학부에서 조각을 공부했는데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어요. 매 학기 인문대 주변을 기웃거리면서 타 단과대 재학생에게도 열린 수업을 열심히 챙겼어요. 특히 시에 매료되어 시집을 많이 샀는데, 시집 끝에 붙은 해설과 누가 어떻게 썼는지를 시만큼이나 관심 있게 읽었어요. 유종호, 정현종, 황현산, 신형철, 진은영 등의 문학비평가 또는 시인의 발문과 그들이 다룬 또 다른 글을 찾아 읽으면서 문학 비평 흉내를 내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저 스스로 작가가 되기보다는 아티스트의 창작을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는 일을 더 가깝게 여겼던 것 같아요. 창작자들과 만나면서 글 쓰고 연구할 수 있는 학술 공동체를 찾다 보니 예술학에 닿았고, 끝말잇기처럼 당장 호기심 가는 방향으로 걷고 있습니다.
기획한 전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가 있다면요?
소설가 김애란의 단편소설에서 착안한 전시《침묵의 미래: 하나의 언어가 사라진 순간》 (2020)이요. 오래전부터 시각성에 치중한 뮤지엄의 관습에 질문하는 전시를 만들고 싶었는데 결국에는 언어가 가진 힘의 균형을 묻는 기획으로 꾸렸어요. 영어와 그 외 언어들로 구분되는 언어 양극화, 문자언어 외에 몸으로 만들어내는 언어 등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언어들을 전시 형식으로 드러내는 시도였어요. 그런데 전시를 시작하기 이틀 전에 코로나19로 미술관 휴관 명령이 내려졌어요. 전시 개막 직전에 미술관 문을 닫아야 했기 때문에 큐레이터 투어를 촬영해 유튜브로 내보내거나 오디오 팟캐스트로 전시를 알렸고, 휴관이 해제되고 난 뒤에 전시를 연장하기도 했습니다. 팬데믹으로 그간 사회 전반에 만연한 양극화와 혐오 양상이 전면에 드러났는데, 이 전시의 기획 의도와 문화 다양성에 대한 고민이 만나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또 하나의 미디어로서 다양한 언어를 드러낸 전시로 좋은 평가를 받았고 한국박물관협회로부터 ‘올해의 전시’ 상을 받았습니다.
특정 기관에 소속된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저는 2009년에 국립현대미술관 인턴십으로 시작해서 국립, 공립, 사립, 대학미술관 네 가지 유형의 미술관에서 일을 배우고 지속해왔어요. 그러면서 특정 기관에 소속된다는 것에 고민을 꽤 많이 해왔는데 과거에 했던 생각과 지금의 생각이 아주 달라요. 커리어 초기에는 기관에 속해서 내가 원하는 기획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나의 관점과 연구를 기관의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해서 실현하고 확산하는 방법에 주목하고 있어요. 과정에서 계속 피드백을 받으면서 더 나은 결과가 나올 수 있고요. 학예실에서 함께 일하는 선후배 동료는 물론, 안내데스크, 어셔, 시설, 미화, 그리고 관객으로부터 전방위적이고 실질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아프기도 하고 부정하고 싶은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 피드백이 맞고요(웃음). 수정할 수 있고 저 역시 동의하는 부분들을 다음 단계에 반영하고 고민하면서 발전하는 걸 느껴요. 저 자신도, 프로젝트도요. 사무실에서 매일같이 보는 사람들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무 때나 만나기 어려운 전문가들이에요. 기관의 인적 자산과 물적 자산, 소장품과 연구 자료, 심지어 사무실의 A4 용지와 복사기까지, 기관의 구성원으로서 뮤지엄의 자원을 사용하고 내 프로젝트로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은 운이라고 생각합니다.
큐레이터로서, 자주 마주하는 한계가 있는지?
미술관의 존재 이유를 끊임없이 설득해야 한다는 사실이 매번 새롭게 마주하는 어려움입니다. 학예연구사로 일하고 있지만 성과를 가시화하기 어려운 연구에 힘을 싣지 못한다는 것도 한계이고요. 여러 전시가 점점 이벤트화되고 서비스 산업으로 변해가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연구의 동력으로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근본 없이 관성으로 일하게 되는 것을 가장 경계합니다. 우물이 말라 퍼 올릴 수 없는 상태를 두려워합니다. 개인적으로 인턴십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단 1개월의 공백도 없이 뮤지엄 종사자로 12년간 일해왔는데 별도로 안식년 제도가 없다 보니 저 자신에게 안식년을 주고 싶다는 생각도 종종 합니다. 일과에서 좁게 할당된 연구의 폭을 늘리는 방법, 전환의 계기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취미나 관심사도 궁금해요.
탁구를 하다가 말다 반복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지속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취미라고 볼 수 없지만 작심삼일을 십수 년째 반복하고 있기에 관심사라고 할 수는 있겠습니다. 탁구장 문이 가까워지면서부터 들리는 탁구공 소리에 머리가 쭈뼛 설 정도로 좋아해요. 그런데 전시와 프로젝트를 앞두었을 때는 운동 루틴을 우선하지 않아서 실력이 늘지 않고, 백전백패를 반복하면서 운동하는 재미를 잃는 악순환에 갇혀 있습니다. 10년째 기본만 다지고 있는데 그래도 다음 주부터 다시 레슨 받으러 갑니다(웃음). 탁구는 잘 못 치니까 선수보다는 국제심판으로 목표를 변경해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건강한 신체를 만드는 활동에 관심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기획하고 싶은 전시나 프로젝트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그간 작가들과 새로운 전시 기획을 만들어내는 일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미술관이 이미 가진 자산의 공공성을 증폭시키고 연구자들을 연결하는 데 주력하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카이브를 활용한 출판에 관심이 많아서 문학, 음악, 체육과 같이 미술이 아닌 것에서부터 시작한 연구 기획을 해보고 싶어요. 구체적으로는 스포츠의 규칙과 수행성을 문화 사회사와 연동해서 살펴보는 기획을 하고 싶은데, 방송으로 치면 KBS 스포츠국 이태웅 피디의 ‘씨름’이나 ‘모던코리아’ 같은 기획에서 자극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하도경 기자

전자초고속도로에서 만난 정책가 백남준
김윤서 |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연구사

백남준은 편지, 악보, 에세이, 기획안, 보고서 등 다양한 형식의 글을 여러 언어로 남겼다. 그중 뉴욕 이주 초기에 영문으로 작성한 보고서 종이 없는 사회를 위한 확장된 교육」에서 백남준은 모든 학계가 전자화에 대대적으로 주목할 것을 당부하며, 비디오와 같은 전송 가능한 텔레비전을 매개로 한 “인스턴트 글로벌 대학을 통해 배울 수 있다고 보았다. 동서양이 교류하고, 문화 다양성에 대한 몰이해를 예술을 통해 깨우고, 상호 참조할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에 대한 기록과 더불어, 자신의 전자TV 실험이 교육에 갖는 실질적 효용을 상상에 그치지 않고 실증적 데이터로 제시한다. 구체적인 실행 방안으로 음악, 예술, 철학을 아우르는 교육적 필름과 비디오테이프의 제작이 필수적이며 더 늦기 전에 기존 필름의 보존, 복구를 실행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한 대목도 주목할만하다. 글의 말미에는 한국인으로서의 자아를 드러내며, 동서양의 정보 격차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게 된 자전적 배경을 언급하기도 한다. 백남준은 이 외에도 후기 산업사회를 위한 미디어 계획: 21세기까지는 고작 26년밖에 남지 않았다(1974), 「PBS 공영 방송이 실험 비디오를 지속하는 방법」(1979) 등의 영문 보고서를 남겼다. 나는 백남준이 미디어 컨설턴트로서 작성한 보고서를 읽으면서 매우 중요하게 검토해야 하는 작가의 또 다른 창작 활동으로 보았다.

예술가 백남준은 왜 여러 건의 보고서를 작성했을까? 보고서에 드러난 백남준의 주제의식과 제안들은 그의 작품에 어떻게 구현되는가? 백남준이 보고서를 제출한 록펠러 재단은 그에게 어떤 의미였는가? 백남준 탄생 90주년 특별전 <백남준의 보고서 1968- 1979)는 작가가 남긴 보고서 형식의 기록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시작했다. 나는 보고서를 여러 차례 읽으면서 미디어 컨설턴트로서 백남준의 공식/비공식 자문활동이 1970년대 미국의 미디어 환경을 개척하는 주요한 영향력이었으며, 작가의 창작과 더불어 미디어 산업 생태계와사회기반시설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성과로 관찰했다. 백남준의 구상이 개별 예술의 창작과 공유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 분야의 전자화에 대한 실행 방안을 자문하고 아티스트들의 기용을 제안한 활동에 주목했다. 특히, 예술가 특유의 촉각으로 사회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하여 전 분야에 걸친 최신 연구를 자신의 창작으로 구현하는기반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사회 전환기의 모습을 예측한 여느 학자들의 연구보고서와 다르다. 메타버스, AI 자동화, 플랫폼 자본주의 등 다종다양한 기술혁명과 그 명암이 주된 화두로 떠오른 지금, 보고서의 기록들은 백남준에게 도래하지 않은 미래이자, 당시 시대상 속에서 작가의 문제의식과 비전을 함축한 1차 문헌이다. 인스턴트 글로벌 대학, 전자초고속도로, 다양성 등 보고서에서 백남준이 명명한 주요 개념과 작품을 함께 살펴보는 전시는 사회에 만연한 몰이해를 해결하고 세계 평화를 최우선 과제로 둔 정책가 백남준이라는 확장된 관점에서 아티스트의 사회적 역할과 성과를 구체화하려는 시도이다. 1968년부터 1979년 사이에 작성된 영문 보고서의 주요 개념에 기반해 '인스턴트 글로벌 대학', '전자초고속도로', '연구소, 방송국,미술관' 3개 소주제로 전시를 구성했다. 1부는 1968년 보고서에서 제안한 '인스턴트 글로벌 대학 개념과 함께 전자화 시대에 가능한 소통에 대한 비전을, 2부는 1974년 보고서에서 주창한 '전자초고속도로' 개념을 중심으로 백남준이 작품에 즐겨 사용한 바퀴, 탈것으로 구현한 작품들을 함께 전시하여 백남준의 미디어 구상을 작품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3부에서는 비전을 실현할수 있었던 방송국, 대학, 연구소, 미술관과의 협업을 파악할 수 있는 비디오, 드로잉, 자료와 연표를 소개하고 백남준이 일생에 걸쳐 성취하고자 했던 과업과 주제의식의 배경을 소개했다. 보고서는 모두 영어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한국어로 번역·편집해 원문과 번역본을 터치스크린으로 쉽게 읽을수있도록 구현해 전시장에서 글을 읽으면서 작품과 함께 조망할수 있도록 했다. 주요 전시작으로는 백남준아트센터 소장품 <코끼리 수레>(2001) 외에도 이탈리아사진가지아니 멜로티가 촬영한 백남준의 초상사진 6점을 비롯해 <벨랩에서의 디지털 실험>(1966~1968), 13점의 대형 연작 <나의 파우스트>중 하나인 <나의 파우스트: 자서전>(1989~1991), TV 로봇<해커 뉴비>, <하이웨이 해커>(1994), 광복 50주년 광고 계기 롯데칠성 커미션 작품 <꽃가마와 모터사이클>(1995) 등의 작품을 여러 소장처로부터 대여받았다. 이는 1968년부터 2002년 제작작품까지 포괄하면서 정책가 백남준의 사유와 실행을 작품과 더불어 선명하게 떠올리는 시도였다.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발굴, 연구하고 대여받는 과정에서 새로운 서사를 획득할 뿐 아니라, 작품의 보존·복원,관리에도 선순환이 이어졌다. 전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메세나협회 기업지원금과 펀드교부금매칭으로 여러 기관과 기업 간 협력의 시간을 거치면서 펀딩으로 외부재원을 유치했다. 덕분에 알려지지 않고 전원이 꺼진 상태로 잠자고 있던 작품들을 복원해 소개하면서 문헌에서 출발한 전시 주제를 더욱 시각적으로 극대화할 수 있었다.

사회전환기 예술가를 정책가로 드러낸 이 전시는 아직 출판하지 못한 나의 학술논문에서 시작했다. 학술대회에서 발표를 마치고 전시로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과 흥미를 가지고 추진했다. 논문에서 다루지 못한 것을 3차원 전시 공간에 구현하거나, 전시에 담고 싶었지만못담았던 것 들을 논문에 기록하는식으로두가지 형식을 전환하면서 전시와 논문 간의 상호성이랄지 연결고리를 경험했다. 기획과 연구과정, 전시를 매개로 한 여러 만남을 통해 보다 새롭고 다층적인 논의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획득한 자료들과 배움을 아카데미아에서 순환될수 있도록 박사 논문으로 출판하는 것이 목표다. 개인적으로, 전시 서문을 주로 쓰다가 이를 연구논문으로 전환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데 백남준에게는 비디오 아티스트로서의 창작활동과 컨설턴트로서 보고서를 쓰고 제안하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백남준이 보고서에 드러낸 당찬 포부를 현재진행형으로 맞닥뜨리고 있는 오늘날에는 그가 스스로도 인지했듯 낙관에 그친 맹점도 분명 존재한다.그럼에도, 팬데믹, 기후위기, 사회 양극화, 또 한번의 전쟁을 관통하는지금, 백남준이 보고서를 썼던 1960, 1970년대 사회전환기의 사유를 살피는 일은 분명 유효하다. 과거의 기록을 보는데 그치지 않고 당시에는 미래였던 현재 우리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에 함께 해주신 협업자, 대여, 전시를 계기로 후속 논의에 함께 해주신 연구자와 관객, 그리고 수상을 계기로 이 기획이 다시 회자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 월간미술에 감사드린다.

《백남준의 보고서 1968-1979》
백남준아트센터 전시 전경 2022~2023
제공: 백남준아트센터

김주원

제19회 월간미술대상 전시기획 부문 수상자

지난 10월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으로 5년의 임기를 마쳤다. 대구미술관, (재)유영국미술문화재단 학예연구실장, 2009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수석큐레이터를 역임했다. 일본 CCA기타큐슈 초청 펠로우를 지냈으며 홍익대 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해외전문가 국내 작가 스튜디오 방문 프로그램 ‘다이브 인투 코리안 아트(Dive into Korean Art)(2022, (재)예술경영지원센터)’를 공동 기획했으며, 주요 기획 전시로는 안토니 타피에스,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 질 아이요, 요게쉬 바브 등의 국립현대미술관 해외 작품 컬렉션을 통해 한국현대미술사 내면의 취향을 읽어낸 《이것에 대하여》(2020), 브루스 나우만, 윌리엄 켄트리지, 강서경, 이불 등이 참여하여 예술의 본질적 의미를 질문했던 《스코어 : 나, 너, 그, 그녀{의}》(2017)가 있다.

《개척자들: 박현기, 육태진, 김해민》
2023.5.2~2023.10.9 대전시립미술관 열린수장고 전시실

대전시립미술관의 미디어 컬렉션 중 박현기, 육태진, 김해민의 비디오 작업을 중심으로 한국 미디어아트의 세대별, 작가별 독자성과 실험성을 조망하는 전시. 실험적이고 전위적 태도로 새로운 예술을 표명했던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기술과 예술의 결합으로 변화한 미디어아트와 이를 둘러싼 미학적 쟁점과 그 의미를 살폈다. 작품 각각이 지닌 미학적 태도를 살펴봄으로써 국내 뉴미디어아트의 역사와 전개 등 새로운 기술 매체가 야기한 미학적 변화와 이를 수용, 주도하고자 했던 대전 현대미술의 실험성과 ‘과학도시’를 표방한 대전의 도시적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했다.

참여작가 박현기, 육태진, 김해민
기획 김주원
진행 김민경
보존 김환주
어시스턴트 안하성
디자이너 스튜디오엔아이엔
번역 푸른번역

국내에 큐레이터 제도가 안착하기 전에 이 직업을 먼저 접했다고요. 큐레이터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제가 미술대학을 졸업할 즈음, 국내에 큐레이터 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어요. 한국의 주요 전문지에서 해외 사례들을 소개하며 이를 국내에 어떻게 안착시킬 것인지 뜨겁게 다뤘죠. 그때 저널에서 다루는 ‘큐레이터’라는 직업 이미지가 졸업을 앞둔 저에겐 서구 근대 시스템의 선진적 표상으로 읽혔습니다. 왠지 제 불안한 미래를 건져줄 것 같았어요. 그렇게 미술관과 큐레이터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 이후 서구에서는 큐레이터의 입지와 위상이 올라간 현상을 가리켜 ‘큐레이터의 시대가 왔다’라고 표현하기도 했어요. 국내는 어떤 것 같나요?
국내 역시 큐레이터의 입지와 위상이 올라간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큐레이터의 위상이 올라갔다고, 역량까지 올라간 것 같지는 않아요. 전시, 작품 수집, 예산 등 미술계를 움직이는 모더니즘적, 자본주의적 권력이 실질적으로 큐레이터에게 집중되어 있다 보니 입지와 위상이 높아졌죠. 저를 포함하여 말뿐 아니라 지속적인 연구로 역량도 강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양한 공·사립 기관을 거쳤어요. 많은 큐레이터가 기관에 소속돼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 일을 난제로 꼽곤 해요. 기관에 속하면서 어떤 점이 난제로 다가왔나요? 큐레이터는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매우 중요해요.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들을 어떻게 공감시킬 수 있는가 하는 일이요. 그래서 미술, 시각예술이 가진 힘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늘 고민하고 있어요. 제게 난제는 조심스럽지만, 전문가라는 이름의 비전문가적, 정치적 태도를 요구하는 한국 미술관계의 구조적 모순이에요.
기획한 전시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전시가 있나요?
2020년 팬데믹 시기에 대전시립미술관에서 기획한 《이것에 대하여》라는 전시요.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 컬렉션 가운데 해외작가 작품 42점으로 한국미술계의 서양 취향을 읽어보고자 기획한 전시였어요. 당시, ‘미술관협력망사업’이라는 명목 아래, 국현 컬렉션을 대상으로 지역 공립미술관에 독자적 기획전시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저는 2002년 이후부터 현대미술 분야 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한국과 일본 등 비서구권에서 서구의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가 어떻게 변용, 구성, 발전되고 소통되는가에 관한 연구와 전시를 계속 병행해왔어요. 《이것에 대하여》는 국현의 연대별 컬렉션이 ‘한국 앵포르멜’로 시작되는 한국현대미술의 주요 아방가르드와 공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했습니다. 앞서 말했던 한국미술계의 ‘서양 취향’이 분명하게 작동하고 있었다고 생각했죠. 이 전시는 국현의 해외 작품 컬렉션에 대한 통찰의 첫 시도로서의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좋은 큐레이팅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는 연구자로서의 태도가 드러나는 큐레이팅에 영감과 에너지를 받아요. 예컨대, 마시밀리아노 지오니 (Massimiliano Gioni)가 기획한 《만인보》 (광주비엔날레, 2010)와 야콥 파브리시우스 (Jacob Fabricius)가 총 4막으로 구분해 개념화했던 《미니멀리즘 – 맥시멀리즘 – 메커니즈즈즘 1막 – 4막》(아트선재센터, 2022) 그리고 모리츠 뷜렌(Moritz Wullen)의 《Das abc der Bilder》(베를린 페라가몬뮤지움, 2007)은 여전히 제 큐레이팅에 영감을 주는 전시예요. 지오니의 《만인보》와 뷜렌의 《이미지의 모든 것》은 이미지의 역사성을 짚은 전시였다고 생각하는데, 삶과 지식의 모든 영역에 관여하는 이미지의 권력과 힘의 앞, 뒤, 측면에 대한 경험, 그리고 이를 활용, 생각, 질문하는 다양한 방식을 보게 했어요. 파브리시우스 전시의 경우는 작가가 어떻게 재료를 선택하고, 주변과 일상의 이야기를 전달하는지 살피면서 작업과 관찰자 사이를 연결해 점차 참여적, 관계적, 촉진적 전시로 발전시키고 있었어요. 감동적이고 매력적인 전시였어요. 세 전시가 보여주듯 저에게 좋은 큐레이팅은 예술가, 작품, 관람자 사이의 상호 관계에 관해 경험, 생각, 질문 등을 유도하는 대상으로서 큐레이터가 개입하는 전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면요?
작품, 전시는 직접 보지 않으면 그 미적 경험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늘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보지 않은 작품에 대해 말할 수 없으니까요.
취미나 목표가 있나요?
중고등학교 때부터 음악, 무용, 문학 등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가깝게 접하고 즐겼지만, 오늘날 광범위한 형태의 시각예술을 보면, 제 취미가 곧 대상화하고 다루는 일이더라고요. 우리 모두의 실존적 위기를 고민하고 해결하려 했던 여러 예술 장르를 향한 취미가 직업이고, 직업이 취미여서 재밌습니다.
큐레이터에게 필요한 태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연구자로서의 태도. 끊임없이 연구 조사를 즐기면서 작품과 작가, 미술관 나아가 아트신 내외부를 구성하는 신체에 대한 애정과 신념이 있는 태도가 갖춰졌으면 좋겠습니다.
꿈꾸는 미래가 있을까요? 그 가운데에 큐레이터라는 직업은 어떠한 보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난폭하고 어지러운 세태로 하루하루가 두렵고 불균형적이에요. 가속화하는 현대사회의 변화가 우리를 ‘인간다움’, ‘인간성에 대한 감각’을 끝끝내 지켜내도록 허락하지 않죠. 예술, 미술관 내외부가 ‘인간성에 대한 감각’을 지켜내는 방식을 계속 질문하고 모색하는 일이 당연시되는 미래가 올 수 있을까요? 지루하고 어려울지라도 모두에게 그 의미를 공감하게 하고 질문하는 일이 저는 큐레이터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도경 기자

《개척자들 : 박현기, 육태진, 김해민》
김주원 | 전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상명대 겸임교수, 큐레이터

《개척자들: 박현기, 육태진, 김해민>(이하 <개척자들》)은 대전시립미술관의 열린수장고 전시실에서 개최된 첫 번째 기획전이다. 미술관의 열린수장고는 2022년 10월 국내 공립미술관 가운데 처음 개관한 개방형 수장고로, 수장고 속 컬렉션이 어떻게 보존관리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더불어 컬렉션을 대상으로 한 기획 전시가 운영된다. 《개척자들>은 열린수장고 개관 후 본격적인 첫 기획전이었고, 대전시립미술관의 대표 컬렉션이라할수있는 백남준의 비디오 설치작업 <프랙탈거북선>(1993)이 상설전시되는공간 옆 전시실에서 열려 주목받았다. 93대전엑스포 당시 제작된 <프랙탈거북선>은 ‘거북선’을 모티프로 309대의 TV수상기와 앤틱 오브제가 높이 5m, 폭 12m, 깊이 10m의 초대형 규모로 콜라주되어 백남준의 통찰을 압도적으로 담아낸 역작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백남준의 비디오 작업과의 역사적, 미학적, 내용적, 형식적 관계 등을 의식적으로 고려하며 기획된 《개척자들》은 미술관의 컬렉션 중, 공간예술로서 물질성을 기반으로 한 고전적인 개념의 시각예술과는 달리, 한국의 비디오아트 1세대인 박현기 (1942~ 2000)와 1.5세대인 육태진(1961~2008), 김해민(1957~)의 주요 작업 8점을 소개하면서 세가지 질문 아래 기획되었다. 첫째, 백남준을 중심으로 정의되는 동시대 서양초기 비디오아트와의 관계 속에서 대비, 교환, 정의되는 ‘한국미디어아트’의 역사성과 구체성의 일면은 무엇인가?둘째, 후기 데이터 시대의 미술관은공간/오브제와 시간/ 비물질의 예술작품을 어떻게 보존관리하며 나아가 급변하는 개념, 범주에 대처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셋째, 과학도시를 표방하는 과학예술 본류로서의 지역위상과 정체성은 지속가능한 실존인가, 이미지인가?

이번 전시에 출품된 박현기, 육태진, 김해민의 비디오 작업들은 한국비디오아트의 독자성과 실험성을 일변하고 있다. 예컨대, 백남준이 <굿모닝 미스터오웰>(1984) 등의 비디오 작업으로 인종과 국가, 문화적 경계를 넘어 전지구적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만들고자 했다면, 이들 세 작가는 공통적으로 모더니즘적 이분법 체계에 관한 질문과 더불어 인간 삶의 더 근본적이고 실존적인 주제에 주목하였다고 할수있다.이러한 이유에서 전시는 박현기를 비롯한 육태진,김해민을 한국 비디오 아트의 본격적 전개를 이끈 ‘개척자들’로 소환할 수 있었다.

1970년대 박현기를 선두로 국내에서 제작 발표되기 시작한 비디오아트는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중반에 장르의 혼성, 새로운 매체의 도입, 테크놀로지와 뉴미디어에 관한 관심의 중폭으로 한국현대미술계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며 육태진등에 의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전시는 실재와 허구의 관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이어갔던 박현기의 대표적인 작품 <무제>(1993)와 <만다라>(1997)로 시작되어, 인간 삶의 더 내밀하고 근원적이고 심리적인 차원을 주목하는 육태진의 작품 <숨>(1999), <회전>(2004), <배회>(1996), 미디어에 대한 깊은 통찰력으로 가상과 실재, 과거와 현재, 현존과 부재의 절묘한 경계를 연출해 온 김해민의 <접촉불량>(2006), <구애>(2008), (1992)로 구성되었다.

한편, 전시는 20세기 이후 새로운 기술 매체가 초래한 미술 개념과 형식의 급진적인 변화가 전시와 소장품 수집 등의 미술관 활동과 그 형태에도 영향을 끼쳤음을 실감하면서, 이를 가시화 하고자 작품들과 더불어 미술관 전문 학예 연구 인력들만 공유하던 설치 매뉴얼,소장품 컨디션 리포트 등 작품에 대한 기록 보존관리 이력을 대중에게 공개 전시했다. 전통적인 미술 개념이 ‘공간’과 ‘물질’ 중심에서 비물질적 특성이 강화된 ‘시간’과 ‘테크놀로지’ 기반의 뉴미디어아트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특성을 관람자들에게 구체적이지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 위한 장치였다.

한국 미디어아트 신은 유독 기술 기반의 미디어아트가 담론의 중심으로 떠오르며 형성되었던 초기 특성을 배태한 채 일각에서 전개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지역성과 연관된 한국 비디오 아트의 독특한 현상으로, 88서울올림픽 이후 과학기술에 관한 관심 증가 및 정부의 과학기술진흥정책이 테크놀로지 미술로서 비디오 아트에 대한 이해를 부추겼던 사정도 요인 중의 하나이다. 즉, 당시 비디오아트는 기술에 대한 다소 과도한 유토피아적 관심과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등을 통한 정부의 적극적인 후원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자유로운 감수성을 표현하는 기술기반 매체’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스펙터클을 전제로 한 엄청난 크기의 공간규모, 예산, 신작중심의 출품작수로 밀어붙이는 관습적인 이벤트적 행위로 인해, 전시 기획자와 출품 작품 개별이 말하고자하는목소리는 숨겨지거나 들리지 않을 때가 왕왕 있다. 예술작품이 직면한 세계와 그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그 의미를 궁금해하지 않는 일!이는 미술관 학예직이 자초하고 자신을 내모는 실존적 위기인 것이다.

대규모 전시들과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는 컬렉션 전시 《개척자들>은 역설적으로, 박현기, 육태진, 김해민 작품 각각의 독자성과 실험성을 들춰내어 작품 각각의 미학적 성취를 살펴보면서 한국 비디오 아트의 실험적 독자성을 통찰하고자 했다. 예컨대, 최근 주요 메이저 갤러리의 전시로 빈번하게 노출되고 있는 박현기의 경우에 반해, 육태진과 김해민은 각각의 작품들이 지닌 미술사적 의미와 깊고 내밀한 그들의 목소리와 해석이 이 전시를 통해 환기되기를 기대했다. 작가들의 작업 역량이 다시 조명되는 재점화의 계기는, 미술관과 큐레이터가 ‘전시’라는 모더니즘적 시스템의 미덕을 성취하고자 하는 의지 유무의 경계를 오가며 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는 끝났다. 전시를 마친 지금 여전히 질문과도 같은 하나의 명제가 내 주위를 서성인다. 누가 개척자를, 아방가르드를 두려워하랴!ᄋ

왼쪽 육태진 〈배회〉(사진 가운데) 모니터, VCR, 우드박스, 모터 1996
가운데 박현기 〈무제〉(사진 오른쪽) 모니터, 돌, 나무 1993
오른쪽 육태진 〈숨, 회전〉싱글채널 비디오 1999《개척자들 : 박현기, 육태진, 김해민》 대전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2023
제공: 대전시립미술관

노해나

제19회 월간미술대상 전시기획 부문 수상자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현재 아르코미술관 큐레이터다. 대화와 화답으로서의 큐레이팅과 시공이 변화하는 현상을 포착하고 그 이후를 다루는 기획에 관심이 있다. 또한 과거의 유산을 잇고 현재의 시공간과 연결하여 지금의 위치를 가늠하고 경로를 열어주는 창작 매체로서의 전시, 프로그램에 대해 고민한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연구원으로 지냈고, 2019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추진단의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를 거쳤다. 2021부터 2023년까지는 기획자 공동 운영 플랫폼인 WESS를 공동 운영했다. 아르코미술관에서 《노원희: 거기 계셨군요》(2023), 《땅속 그물 이야기》(2022), 《정재철: 사랑과 평화》(2021), 《더블비전》(2020)을 기획했고, 그 외 기획한 전시로 《조각 여정: 오늘이 있기까지》(WESS, 2022), 《from유령사과§스테인드글라스@스티치그룹》(5%, 2020) 등이 있다.

《조각 여정: 오늘이 있기까지》
2022.6.10~2022.7.9 WESS

한국여류조각가회의 기획전시인 《사랑》(2001)의 도록을 보고, 해당 전시에 관한 질문을 품고 있던 노해나가 작가 이유성, 홍기하와 연구 모임을 하며 나눈 이야기들에서 출발했다. 전시는 행로를 압축한 과거의 전시에서 여성 조각가들의 작업을 살핀 방식에 주목했으며, 문헌 자료 조사를 토대로 인터뷰 질문지를 꾸리고 4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세대를 이루는 작가들을 만나며 ‘여성 – 조각 – 탐방’의 경험을 시도하며 본격화됐다. 이를 토대로 조각 매체를 통해 여성의 사회적 조건이 다르게 번역되는 방식을 김정숙, 배형경, 백연수, 윤영자, 이경희, 임송자, 황지선 총 7인의 여성 조각가를 통해 보여줬다.

참여작가 김정숙, 배형경, 백연수, 윤영자, 이경희, 임송자, 황지선, 이유성, 홍기하
방문작가 배형경, 김주현, 황지선, 백연수, 이경희, 임송자, 김정숙(유가족 김인회), 윤영자(유가족 윤재원), 강은엽 원정대 노해나, 이유성, 홍기하
기획 노해나
코디네이터 남은혜
포스터 디자인 이솔
작품 운송 김정훈
좌대 제작 고우현
편집 및 교정 & 교열 장서윤
사진 강신대

기관에 소속되다 보면 전시 방향이 기관의 성격에 좌우되기 십상이죠. 독립으로 활동하며 기획한 전시로 수상하게 됐어요.
기관에서 추진할 수 있는 예산과 네트워크가 있어요. 개인의 관심 주제가 기관 안에서는 소화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죠. 아무래도 기관의 방향 혹은 비전에 근거해 전시가 배정되기 때문에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온전하게 하기가 어려운 편이에요. 그래서 늘 별도의 기획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오는데 독립 기획 전시는 사비와 노동력을 들여야 해서 여건이 안 좋은 경우가 많아요. 그 과정에서 죄책감과 자주 마주하곤 하는데 그럼에도 별도로 기획하고 싶은 욕구는 계속 올라오더라고요. 외부 전시 기획을 한 번 하고 나서 이제는 그만해야지 하고 한참 쉬다가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돈과 인력을 모아 진행해왔죠.
WESS에는 왜 합류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동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WESS가 서로 아주 활발하게 교류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켜봐 주는 사람이 명확히 있다는 게 든든하기도 했어요. 다른 큐레이터는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는지 은연중에 알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WESS에서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큐레이터 일을 하면서 보람이라든지 의미를 찾아서 동력을 얻곤 하나요?
큐레이터는 제약받는 상황에 자주 봉착하지만, 창의성을 요구받는 직업이거든요. 이런 모순적인 상황을 잘 해결하면서 드러나는 기획의 관점과 발견되는 형식과 내용에서 흥미를 찾곤 해요. 제도의 공고하면서도 관습적이고 관성적인 것들 안에서 경로를 찾는 일이 창의적인 길을 찾아가는 경로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소속된 미술관에서 기획할 때, 일종의 제약이나 틀을 소화하면서 이를 극복하거나 대안적인 형식이 기획으로 보일 때 흥미를 느끼고 있어요.
전시에서 풀기 어려운 아이디어는 어떻게 해소하는 편인가요?
미술관에서 전시가 열리기 전에 사전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편이에요. 사전 프로그램을 하는 기점에는 전시 윤곽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이지만, 이를 디딤돌 삼아 전시의 방향이 설정되기도 해요. 사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새로운 에너지를 부여하는 요소이기도 하고요. 영감이나 에너지, 참여자들의 생각을 담아서 다음 단계로 이행하기도 해서, 사전 프로그램을 의도적으로 진행해온 편이에요. 이런 프로그램을 전시의 단계로 공식화해서 기획하는 단계를 가시적으로 보이게 만들기도 했고요.
일을 하며 자주 마주하는 한계가 있다면요.
‘과연 기획을 꾸준히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은 늘 따라다니는 고민이기도 해요. 전시 일이라는 것이 생각이 계속 이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출퇴근하면서 전환되기보다 제 삶에 계속 개입되거든요. 전시 과정에서 발견하는 것은 삶을 풍요롭게 하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괴롭게 하기도 하죠(웃음). 그래서 지속가능한 균형을 찾고 싶어요. 《조각 여정: 오늘이 있기까지》를 기획한 것도 여성 미술인들이 어떻게 생활과 미술을 함께 하며 사는지 보고 싶어서도 있어요. 그래서 제가 스스로 고민했던, 인생의 기점에서 결혼이 진짜 필요한가, 출산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선생님들께 던져봤어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결혼, 출산 등이 본인의 작업이나 미래 행보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현실적인 고민에 관해 물어봤었죠. 현실적인 조건에서 삶과 미술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어요.
협업을 잘하는 비법이 있을까요?
큐레이터가 기획의 전체를 통제하는 방식 대신에 디자이너, 테크니션 등 협업자들과의 열린 협력과 대화를 통해 조율하면서 전시가 만들어지게 돼요. 전시의 개념을 시각화하거나, 작가의 작업을 구현하기 위한 전문가들의 조언과 의견은 전시 전체를 만드는 데 크게 일조할 수 있죠. 《노원희: 거기 계셨군요》는 사회의 어두운 면모를 무게감 있게 전달하는 회화 전시인데, 오히려 귀엽고 가벼운 드로잉이 그려진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제시하니, 관객들이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왔다가 진중하게 볼 수 있는 경로를 생산하기도 했어요. 전시는 감각을 경험하는 일종의 매체이기 때문에, 감각과 정동을 발생시키는 큐레이팅의 방식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전시 디자인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들려주세요.
작품끼리 어떤 긴장감을 일으킬 수 있는지 사소하게는 섬세한 설치에서부터 시작하거든요. 작품과 작품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는 지점까지 신경 써서 정동을 일으키는 게 저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고, 큐레이팅의 핵심이라고도 생각해요. 큐레이터는 전시장 안에서 어떻게 관객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니까요.
일종에 직업병 같은 게 있다면.
어떤 공간을 보면 그 공간 안에서 전시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이 공간에서 전시를 연다면 감각을 자극하는 지점들을 어떻게 조절할 수 있는지, 관객의 정동을 어떻게 발생시킬 수 있을지를 상상해보는 거죠. 제가 예전에 아카이브 관련 일을 했을 때는 해외에 가서 아카이브 지지대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촬영하고 다녔어요. 아카이브 자료들을 잘 소장하고 있는 곳들이 어떤 지지대를, 어떤 각도로 보관하고 있는지 상세히 봤죠.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전시에 필요한 가구 및 지지체를 어떻게 제작했는지 찾거나, 캡션을 어떻게 달고, 캡션 크기를 어떻게 설정하고, 캡션에 작성될 정보 수준을 어느 정도로 잡는지를 파악했던 추억이 생각나네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 있나요?
여전히 전시로 보여주지 못하는 부분을 친밀한 만남이나 대화의 장소, 발언의 기회로 만드는 것에 관심이 가요. 시각예술에 한정하지 않고 사유를 함께 나눌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공동의 관심을 나누는 것을 프로그램을 통해서 해보고 싶어요. 그런 경험이 전시를 만드는 것보다 소중하게 전달될 때가 많기도 하고요. 미술관이라는 공간 안에 모인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함께 얘기를 하고, 이 상황을 목격한 사람들이 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서 여기서 파생된 생각을 확장해서 연구나 자신의 활동을 이어 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근래는 목격한 관객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관심이 많이 가기도 하네요. 현실과 너무 먼 주제보다 당면한 현실의 모습을 다루고 싶은 것이 현재의 관심사입니다.

하도경 기자

그 후: 《조각 여정: 오늘이 있기까지》
노해나 | 아르코미술관 큐레이터

이번 글은 <조각 여정: 오늘이 있기까지>(이하 <조각여정>) 이후에 대한글이 될 것 같다. 그동안 <조각 여정>이 ‘조각’ 전시들의 한 흐름으로 언급되는 상황에서 전시 ‘그후’를 엮어낼 기회가 있기를 바랐다. 전시 이후 휘발되어 버리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늘 있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다수의 리뷰, 대담’ 1 등이 있었기에 해소할 수 있었다. 이 전시는 2022년 조각 매체를 다룬 일련의 전시 <조각 충동> (북서울시립미술관, 2022.6.9~8.15), <각> (하이트컬렉션, 2022.5.28~7.17)과 함께 하나의 흐름으로 소개되었다. 언급된 전시는 오늘날의 동시대 조각의 재료와 변화된 인식, 전통 조각으로부터의 탈주와 당대 환경에서 조각성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조각여정>이 이런 논의에 언급되면서 ‘조각’으로 범주화되었던 것, 그리고 정작 어떤 장면을 놓치고 있었는지 말을 덧대어 본다.2

여정의 출발
코로나19로 인한 비접촉, 그리고 물리적 거리나 이동의 제한 없이 수월하다고 여겨졌던 기술과 디지털 매체의 대두와 포화상태는 오히려 물성과 촉각적 매체에 대한 갈증을 불러일으켰다. <조각 여정>에서 선택한 ‘조각’ 그리고 직접 찾아가는 방식의 ‘만남’은 그 시간에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시도이자 접촉의 방식이었다.<조각 여정>은 초반에 관심사와 질문을 공유한 기획자와 작가들이 모인 스터디에 가까웠다. 기획자, 작가 이유성, 홍기하가 여성 조각가의 작업실을 같이 방문하자는 작당모의를 하였고, 홍기하가 방문하려고 연락을 나눈 적 있던 조각가 배형경 선생의 작업실을 먼저 가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서문에서 밝혔듯이 나는 당시에 한 회고전을 연 이후 여성 조각가라고 소개하던 한 중견작가와 만났었는데, 미술계의 포착하지 못한 부분이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러한 계기에 덧붙여 ‘미술을 하며 삶을 살아가기’에 대한 오랜 고민을 안고 창작과삶이 공존하는 장면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작가들의 작업실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을 청하였다. 전시는 여류조각가와 여류조각가회의기획전 <사랑>(최태만기획, 2001)이라는 두가지 층위를 참조한다. 여성 조각가를 언급하는 이 전시의 방점은 여성의 삶의 경험이 조각하는 현실을 어떻게 타개해나갔는지를 지켜보고 이 과정에서 삶과 미술이 공존하는 가운데, 모순성과 얽힌 정서들을 발견하는 것에 있었다.

<조각 여정>에 보태는 말
WESS에서 열린 <조각여정>은 미술사의 틈을 파고드는 시도”, “미술관에서 더 큰 전시로 열려야 했을 전시 등으로 언급되며 그간 조각계에서 부재했던 여성 조각가와 세대를 조명한 미술사적인 전시로 뭉뚱그려졌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 전시가 미술관에서 열렸다면 다른 방식의 전시가 되었을 것이라 말해두고싶다. 미술사적 조명, 연구결과로서의 전시와 달리 WESS라는 큐레이터의 실험이 될 수 있는 공간의 성격도 작용했기 때문에 여기서 큐레이터는 연구자이자 창작자로서의 역할이 강조되었다. 또한 이 전시를 미술사적 조명이나 역사주의에 무게를 두기보다, 애초에 방향을 설정하지 않고 여성조각가를 만나며 만들어가는 방향성, ‘여류’에 대한 제각각의 생각과 현실, 이러한 것으로 인해 방향을 잃고 미궁에 빠졌던 ‘길 잃음’의 감각들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기로 했다. 「조각여정일지」에는 탐방을 함께 한우리의 인상과 감상, 작업실로 가는 길에 보았던 장면, 그들의 인생 이야기, 삶의 질감이 파편적으로 담겼다. 여기에는 홍상수 영화 같은 날것의 미감이나 민낯의 감상을 그대로 기록하기도 했다. 텍스트로 쓰인 작가의 형상은 부서지고 삶에서 미술 행위를 하는 작가를 발견하는 과정이 원정대의 길 떠남, 탐방에 있었던 것이다.3 그런 면에서 탐방은 조각과 전시를 삶의 이어짐 속에서 보고자 했던 움직임(performative)이었다. 이 전시는 여성 조각가들의 대표성을 의도하기보다 자연스러운 호명과 릴레이로 이어진 탐방을 통해 미술에서 지워지기 마련인 삶의 질감과 정서 상태에 다가가고자 했다.그렇기에 ‘역사 다시 쓰기’나 여성 조각가를 재발굴한 전시로만 바라본다면 구성이나 규모면에서 부족한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다.

권시우는 <조각충동>과 대비되는 차원에서 <조각여정>을 살펴보며 오늘의 조각(성)을 진단한다. “오늘이 있기까지’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당대의 조각(성)이 단순히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그것에 다다르기까지의 비연대기적인 역사가 전제돼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4고 언급한다. 하상현은 시간의 측면에서 전시를 읽어내며 퍼포머티브한 성격을 강조한다. 지나간 시간을 현재와 이어내는 새로운 회고의 형식을 실험한 조각 전시로 말하며, “과거의 여성조각과 현재의 여성 조각사이의 시간적인 연결은 일종의 연대를 만들어내지만, 그것은 기존의 무겁고 큰 남성적 기념비들처럼 하나의 형상을 세우지 않는다.”고 언급한다. 하상현이 말했듯 모여듦(gathering)”의 방식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시간 기념비5였기에 <조각 여정>은 여성 조각가나 그 업적을 기념하지 않는다. 안소현은 “작품은 작가가 지나온 ‘조각 여정’의 계기이자 결과물로 작동하면서 그가 여성으로서 직접 경험했을 삶을 지시한다고 말한다. 작품과 작가그리고 세계는 서로를 형성한다. 작가는 삶의 과정 가운데서 작품을 제작하고, 작품은 다시 작가를 변화시킨다. 그리고 둘 사이의 틈에 셀수없이 많은 요소가 끼어든다. 이를테면 감상자, 전시, 비평, 가부장제 등등.’6이라고 정확히 짚어낸다. 말하자면, 삶의 다양한 정동과 이를 겪은 여성 조각가의 옆에 삶의 중인 같은 조각이 있는 것이다.

<조각여정>이 남긴 장면은 겨울과 봄, 여름의 절기, 다락방에 있던 마케트, 석고모형, 작업실 밖에 쌓인 주물 더미들, 생활 엿볼 수 있는 집과 텃밭, 반려동물과 함께 있던 조각가의 모습들이다. 예측불가능한 삶의 길 위에서 다음 여정의 방향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이 여정, 그리고 전시는 당시 만나고 싶었으나 아르헨티나에 거주하는 관계로 만나지 못했던 조각가 김윤신과의 만남(2023년 2월 12일)을 끝으로 잠정적으로 마치기로 한다.

<조각 여정>은 이유성, 홍기하 작가와 공유한 시간과 대화들에서 만들어진 것이기에 이 여정에 함께 한 두 작가의 후기도 전한다. 조각가가 느낀 모순의 정서와 정동을 상상하며 조각장 내에서 파열하는 힘으로 전환하려 했던 이유성은 “조각 여정을 시작할 즈음 우리가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피상적으로만 경험하게 하는 인터페이스 속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무언가 참을 수 없는 상태였다고 시작의 계기를 말한다. 사람들과 깊게 연루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보고 싶었다. 감동도 느끼고, 끔찍함도 느끼고, 그런 복합적인 상태들을 생생하게 느끼는 것을 말이다. 전시를 만들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조각’이나 ‘여성’과 같은 큰 단어들에 앞서 우리가 실천적으로 사람들을 더듬더듬 찾아 나서고, 연결해서 펼쳐내는 감각이 가장 크게 남아있다.”라고 회상한다. 조각의 환경, 그 환경이 여성 작가에게 미친 영향과 이를 원동력으로 삼고자 했던 홍기하는 백색 공간에 덩그러니 놓인 작품을 보면서 한 작가가 왜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인지 근원적으로 궁금해질 때가 있다. 왜 작업을 하는지 작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 등 삶의 근본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은 나는 <조각 여정>을 통해 작가들을 직접 만나고 대화를 나누면서 작업 뒤에 펼쳐진 다사다난한 서사를 들춰볼 수 있었다.”라고 전한다

왼쪽 《조각 여정: 오늘이 있기까지》WESS 전시 전경 2022
오른쪽 「조각여정일지」, 『반달처럼 살다 날개되어 날아간 예술가 – 조각가 김정숙의 삶과 예술』(2001) 『한국여류조각가회 40년사』 등의 아카이브 자료가 함께 전시됐다
제공: 노해나

박현희

제19회 월간미술대상 전시기획 부문 수상자

학부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미학미술사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10년 부산비엔날레 전시팀 코디네이터, 2011~2013년 부산 고은사진미술관 큐레이터, 2014년부터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하며 전시기획과 소장품 수집·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주요 기획 전시로는 《강홍구: 사람의 집-프로세믹스 부산》(2013), 《백남준과 뉴미디어아트》(2014), 《사물이색》(2015), 《앨리스가 그곳에서 발견한 것》(2016), 《이상갑 탄생 100주년 기념》(2020), 《신소장품: 이어진 세계들》(2021), 《온라이프 Onlife》(2022), 《심문섭: 시간의 항해》(2023) 등이 있다. 인류학, 사회과학적 측면에서 자연, 인간, 예술의 관계를 탐구하며 특히 새로운 미디어생태 환경에서 예술의 역할과 실천에 관심이 있다.

《온라이프 Onlife》
2022.4.8~2022.6.26 경남도립미술관 1, 2층

전시 제목은 디지털과 아날로그,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차이가 점점 희미해져 이내 두 영역의 구분이 사라지고 하나의 통합된 세계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현시대의 기술 변화 현상을 적극 받아들여 이를 소재로 삼고 실험하는 동시대 작가 7명이 참여한 전시는 인간 정체성과 신체의 문제, 기술의 한계 그리고 인간, 기계, 자연과의 관계와 위치, 비인간 존재들과의 공존 등에 대해 질문을 끌어냈다. 전시는 기술에 대한 비관적 또는 낙관적 판단을 도출하지 않으며, 시대상을 읽는 여러 새로운 감각과 관점, 실험을 제시함으로써 기술의 발달이 일으키는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며, 새로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비판적 의식을 가지고 변화시켜 가자는 목표를 지녔다.

참여작가 김효재, 김희천, 안가영, 염지혜, 오주영, 이진준, 정진경
기획 박현희
진행 장여진, 김재환, 박지영, 안진화, 이미영, 최옥경
어시스턴트 이유영, 송혜영, 이지영, 정민주
평론 안진국
그래픽 디자인 마르시안스토리
공간디자인 더걸온더문
영상설치 데자뷰영상
공간조성 디자인하우스
운송·설치 (주)아트플러스
도록 디자인 엠제이디자인
번역 베이스통번역센터
사진·영상 스튜디오 정비소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학부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했어요. 부여박물관으로 답사를 갔는데, 경력이 많은 학예사가 전시와 역사, 유물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셨어요. 그 모습이 멋져서 막연히 학예연구사에 대한 꿈을 갖게 되었죠. 이후 미술에 이끌려 대학원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하게 되면서 미술관으로 방향을 전환했어요. 현시대의 작품을 현장에서 다루면서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작가와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어요. 그리고 대중에게 나의 관점을 더해 미술을 소개하고
그것을 매개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어요.
좋은 큐레이팅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일단, 다양한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한 전시기획 그리고 주제에 맞게 전시를 잘 구현해줄 수 있는 최선의 작품을 섭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기획 의도와 작품이 정교하게 맞아떨어져야 전시에 힘이 생기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 관계자들, 업체와의 협의를 통해 공간을 연출하고 실현하는 것까지가 큐레이팅의 완성이라고 봅니다. 전시 참여자들과의 소통과 조율이 중요한 이유는 전시 진행 중 언제나 예기치 못한 어려운 상황이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긴박하고 어렵게 느껴지지만, 참여자들과 협업하여 유연하게 상황을 정리하고 수습하다 보면 때로는 더 나은 방향으로 진행될 때도 있어요.
기획한 전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가 있다면요?
2023년 4월에 전시 《심문섭: 시간의 항해》를 열었어요. 한국 현대조각계의 거장인 심문섭 작가의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전시였어요. 작가 고향이 경남 통영이에요. 60년 전 배를 타고 부산을 거쳐 서울로 상경한 이후, 처음으로 고향에서 갖는 대규모 회고전이었습니다. 한 작가의 전 예술세계를 아우르는 전시라 부담이 컸어요. 처음 뵈었을 때 팔순 연세가 믿기지 않을 만큼 엄청난 에너지와 열정이 느껴졌고, 작가 역시 고향에 돌아와 작업을 마무리한다는 마음이 컸기에 심혈을 기울이셨습니다. 통영 작업실을 드나들면서 모든 자료를 아카이빙하느라 작가를 매우 귀찮게 했죠(웃음). 그러면서 한 예술가의 도전과 인생을 알고, 그 시대를 이해하면서 굉장히 감명 깊은 순간들을 마주했어요.
개인적으로 기획하고 싶은 전시나 프로젝트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미술관 아카이브 및 소장품 관련 전시예요. 경남도립미술관은 내년에 개관 20주년을 앞두고 있어요. 2004년 개관 이후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총 1,384점의 소장품을 수집하여 보존 관리하고 있고 이는 미술관의 근간이자 활동의 구심점 역할을 합니다. 그간 미술관이 걸어온 길과 소장품의 수집 과정, 현황을 정리하여 관람객들과 공유함으로써 지금까지의 활동을 점검하고, 앞으로 미술관이 가야 할 방향을 새롭게 모색해 보는 전시가 될 것 같아요. 미술관 아카이브에 대한 중요성이 진작부터 강조되었음에도 경남도립미술관은 아직 아키비스트가 없어요. 그러다 보니 학예사들이 그 일을 분담하고 수습해야 하는 실정입니다. 소장품만큼 아카이브 자료 수집과 기록 역시 미술관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분야이므로 소홀히 할 수 없고 지역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한계 및 문제점과도 맞닿아 있어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그 부분을 잘 해결해 나가고 싶네요.
취미나 개인적인 관심사도 궁금합니다.
2년 전 가족과 제 건강의 문제가 한꺼번에 겹치면서 인생의 뿌리가 흔들릴 만큼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정신력도 결국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거더라고요. 그때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 또는 회복탄력성이 중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인간에게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건 생존과 맞닿은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인문, 사회, 과학, 경제, 정치 등 경계를 두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 관심 가지려고 해요. 특히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생각하며 지구와 생명을 위한 큐레이팅 실천에 대해 고민합니다.
자주 마주하는 한계가 있다면요.
큐레이터는 직업 특성상 다학제적 배움을 지향하며 동시대 감각을 기르고 또 새로움에 늘 열려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상 공립미술관 큐레이터가 되어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마주하고 협조해야 하는 부분이 공무원들과의 행정적인 절차와 처리예요. 전시는 늘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비전공자인 공무원들에게 매번 변화하는 상황에 대해 설득하고 예산을 확보하여 원활하게 일을 진행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고 접점을 찾을 수 없어서 싸우는 일도 빈번했어요. 지금도 크고 작은 갈등은 있지만 서로 이해하면서 절충안을 찾아가요. 그 외에는 큐레이터로서 끊임없이 개인의 역량을 키워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늘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죠.
꿈꾸는 미래가 있나요?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미래에 어떤 보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안정된 미래 예측이 어려운 시점에 놓인 것 같아 안타깝고 한편으론 절망적이기까지 합니다. 이런 결과를 초래한 근본 원인 중 하나가 인간 중심의 근대적 사고에서 비롯되었고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결코 미래를 풀어나갈 수 없다고 생각해요. 도나 해러웨이가 『트러블과 함께 하기』라는 책에서 이야기하듯, 기존의 질서를 허무는 전복적 사고가 필요하죠. 제가 꿈꾸는 미래는 거창한 것이 아니고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잘 살아가는 겁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실천하는 삶이요. 큐레이터는 무언가를 연결하고 공유하는 일을 하는 직업이니까 비슷한 가치와 방향을 이끄는 작가, 학자의 실천을 돕고 함께 함으로써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하도경 기자

《온라이프 Onlife》전시를 떠올리며
박현희 |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지난 2021년 전지구적 감염병으로 인해 국경이 봉쇄되고 이동이 제한되어 집안에 갇혀있어야 했던 시간을 경험한 후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이 전시는 팬데믹 이후, 디지털 기술의 발달 및 온·오프라인의 융합으로 펼쳐진 우리의 변화된 삶을 되짚고 미래에 대한 사유와 전망을 가늠해 보기 위해 기획되었다.

팬데믹으로 멈췄던 인류의 시간은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많은 것을 원점으로 되돌려 다시 생각하게 했다. 생존이 달린 극심한 상황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개인과 사회, 국가, 인류에 미친 동시적 위기는 우리가 초연결 사회에 살고 있고 이전과 같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음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위기와 함께 성큼 다가온 미래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보며 우리가 앞으로 어떠한 의식과 태도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해 보게 되었다.

감염병의 확산과 재난의 장기화는 특히 물리적 이동의 제약과 함께 여럿이 한공간에 머물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 삶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왔다. 어디서나 상시 접속이 가능한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손안에 있는 다양한 기기는 우리가 온라인의 가상세계에서 계속해서 연결된 삶을 살게 하고 실시간 동기화되어 온·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당시 키워드로 떠올랐던 ‘메타버스’와 블록체인기반의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 같은 디지털 자산의 출현 역시 괄목할만했다. 이처럼 전지구적 감염병으로 인해 가속화된 기술의존도는 우리의 삶을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게 했다.

인류학, 사회과학에 기반하여 관련 서적과 웹, 전시, 작가, 작품 등을 다방면으로 찾아보면서 전시 제목을 고심하던 끝에 ‘온라이프 Onlife’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었다. 마침 그것은 디지털과 아날로그,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차이가 점점 희미해져 결국 두 영역의 구분이 사라지고 하나의 통합된 세계가 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탈리아 철학자 루치아노플로리디(Luciano Floridi)에 의해 2013년 처음 언급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재와 가상이 유연하게 중첩되어 우리의 환경으로 자리 잡아가는 현시대를 함축하는 용어라는 판단에 ‘온라이프’를 전시제목으로 정했다.

이미 우리 삶 깊숙이 침투한 가상의 세상은 언젠가 현실의 상당 부분을 대체하며 또 다른 현실이 될 것인데, 이러한 상황에서 이미 현시대의 기술적 변화와 현상을 적극적으로 감지하여 이를 소재로 삼고 실험하는 동시대 미술작가들의 작품들로 전시를 구성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본격적인 작가 리서치를 진행했다. 가능하면 최신 기술을 작업에 사용하면서도 우리가 처한 환경에 대한 다양하고 깊이 있는 시각과 사유를 이끌어줬으면 했다.

이후 학예팀 논의 결과 김효재, 김희천, 안가영, 엄지혜, 오주영, 이진준, 정진경 작가를 섭외하기에 이르렀다. 기획서를 본 작가들은 감사하게도 대부분 전시참여를 수락했으며 그때부터 전시 진행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는데, 특히 경남창원출신이면서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이진준과 정진경의 경우 전시 초기 단계에서부터 기획 의도와 작업 방향에 대한 활발한 논의 끝에 미술관 커미션으로 전시 주제에 들어맞는 신작을 제작하게 되어 고무적이었다. 그외 작가들 역시 전시에 가장 부합하는 작품을 선정하기 위해 그리고 최적의 공간구현을 위해 여러 차례의 대화와 협의를 거치는 과정이 필요했다. 이후 작가들은 저마다의 작품을 통해 기술 환경을 바라보는 새로운 감각과 세계관을 제시해 주었다. 전시의 구성은 3차원 컴퓨터그래픽스, AI, 애플리케이션, AR, VR, 머시니마(Machinima) 등 최신 기술 기법의 작품들을 관람객들이 직접 체험하고 느껴 볼 수 있도록 하여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사라지는 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인간 정체성과 신체의 문제, 기술의 한계, 인간,기계,자연과의 관계와 위치, 비인간 존재들과의 공존에 대해 질문하고살핌으로써 통합적 경험과 성찰의 시간을 가졌으면 했다.

플로리디는 AI를 포함한 디지털 정보 기술은 인간의 본성뿐 아니라 환경의 본성, 인간과 세계의 상호작용을 변형시킨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인간을 비롯한 동물, 식물이나 자연적 사물, 기계와 같은 인공적 존재는 모두 정보적 구조로 분석된 수 있는 정보적 존재자이다. 지구상에서 인간은 특권적 존재가 아니라 다른 생물학적 행위자 및 기술적 인공물과 상호 연결되어 존재하면서 정보권을 공유하는 정보적 유기체라는 것이다. 브뤼 라투르(Bruno latour)의 행위자-연결망 이론(ANT) 역시 정신/물질, 자연/사회, 비인간/인간 생명/기계 등의 근대적 이분법에 반대하며 인간중심적인 이원론을 극복하고자 새로운 기술과학에 대응하는 사유의 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전시의 이론적 바탕이 되었다.

전시는 디지털 기술이 인류의 재난과 맞물려 급속하게 전파됨에 따라 인간의 정체성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우리는 이미 인간을 둘러싼 여러 영역에서 경계의 해체를 목도하고 있으며 기술과 재난은 이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음을 실감하였다. 이러한 시점에서 서양근대 철학에서 비롯된 인간중심의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난 인식 전환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가상과 실제가 뒤섞인 ‘온라이프’라는 혼합현실(MR)을 미술의 언어로 먼저 경험하고 사유하기를 바랐다. 전시는 과학기술 자체에 대한 비관적 또는 낙관적 판단을 도출하기보다는 우리 앞에 놓인 변화와 혼란에 어떻게 대응하며, 새로운 문제에 접근해 나갈 것인지 예술적 성찰을 통해 헤아려보기를 제안하였다.

다각적인 프로그램과 홍보를 통해 더 많은 관람객이 생각과 경험을 나누었으면 좋았을 텐데, 시기상 그러지 못했고 관람객 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렇지만 전지구적 위기상황에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한 희망의 메시지가 작게나마 전달되었기를 바란다. 작가들과 안진국 비평가를 비롯하여 전시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한다.

왼쪽 이진준 〈그린 룸 가든〉 AI, AR, 비디오, 사운드, 그린 젤필터 라이팅, 월페인팅, 돌, 문, 가변 크기 2022
가운데 안가영 〈KIN거운 생활 쉘터에서〉 시뮬레이션 게임, 스크린에 프로젝션, 윈도우PC, 터치스크린 10~480분 2021~2022
오른쪽 정진경 〈Follow the White Rabbit〉 윈도우PC, 사운드, 인터랙티브 센서, 오큘러스 장비, 혼합재료 2022 《온라이프 Onlife》 경남도립미술관 전시 전경 2022
제공: 경남도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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