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지금, 여기의
전시와 큐레토리얼 프랙티스

심지언 | 편집장

SPECIAL FEATURE

월간미술 지면의 3분의 1은 전시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진다. 기자들은 매달 빼곡한 전시 리스트를 점검하며 간담회와 오프닝 현장을 부지런히 방문한다. 업무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전시장이고, 또 전시에 대해 주로 소통하는 이가 기획자이다. 매체는 전시를 통해 미술 현장을 체험, 취재하고 또 독자에게 전달하는 플랫폼이다. 따라서 월간미술은 올해부터 연간 전국에서 개최되는 수많은 전시 중 10건을 선정하여, 월간미술대상 우수 전시 Top 10’을 발표하고 시상했다. 이를 통해 한 해 동안 개최된 전시와 그 경향을 정리해 보고, 큐레이터를 함께 호명하여 그들의 성취를 축하하고 감사를 전하는 자리였다.

월간미술대상은 1996년에 시작되어 2012년까지 17년을 지속하며 매해 미술계 담론 형성에 기여한 기관 및 기획자, 저술가의 공로를 격려해왔다. 그간전시기획 분야에서는 첫해 백남준, 김홍희, 신시아 굿맨을 시작으로 윤진섭, 김선정, 백지숙, 이동국, 최태만, 이영준, 김종길, 이영준, 김인혜 등의 기획자와 호암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경기도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대전시립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의 학예연구실이 선정되었다. 근 20여 년의 시간을 이어오며 한국현대미술의 전시사에 방점을 찍은 기획자에게 미술현장을 기록하는 매체로써 보내는 응원과 헌사의 의미였다.

내부사정으로 잠시 중단된 시기가 있었으나, 2022년 재개하여 올해 19회를 맞은월간미술대상은 방향성과 정체성을 재점검하여 시상부문과 내용 등을 보완하였다. 제19회 월간미술대상의 가장 주요한 변화 중 하나는 전시기획 부문의 시상을 1건이 아닌, 10건의 전시로 확대하여 선정한 것이다. 매해 무수히 많은 전시가 개최되고 그 조건과 내용이 무척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단 1건의 전시를 선정하는 아쉬움과 곤란함을 보완하기 위함이자 동시대의 전시동향을 더 다층적으로 살피고자 하는 의도이다.

2023 월간미술대상은 5월부터 7월까지 2개월에 걸친 심의를 거쳐 선정하였으며, 시상은 8월에 진행했다. 따라서 편의상 월간미술대상 우수 전시 Top 10’의 심의 대상은 2022년 1월부터 2023년 5월까지 개최한 전시로 한정되었다. 그러므로 선정된 10건의 전시가 2023년 전체의 전시 경향을 대표하기엔 시간적 한계가 있다. 우수 전시 10건의 선정은 월간미술 기자단과 5명의 현장 전문가에 의한 추천 전시 38건을 바탕으로, 5명의 전문가 심의로 최종 선정되었다. 추천 목록에 있는 모든 전시를 심의위원 모두가 관람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나 대부분 교차적으로 관람하였고, 부족한 부분은 전시 리뷰와 추천자들의 의견, 그리고 각종 자료 등을 참고하여 논의한 결과이다.

심의는 기획과 주제, 전시의 구성, 예술적 교류 및 사회적 발전 기여도의 세 부분으로 구분된 평가지표를 바탕으로 진행되었다. 전시 주제의 시의성과 독창성, 해당 분야의 담론 확장에 기여 여부, 주제와 세부 프로그램의 조응 등이 기획 및 주제 부분의 주요 검토 내용이었다. 참여 작가의 다양성과 타당성, 전시 공간 연출의 창의력과 주제 표현의 적합성, 기관의 규모 및 예산에 따른 전시의 밀도와 완성도 등은 작가 선정 및 전시 구성 부분의 착안 사항이며, 작품 및 전시에 대한 자료의 접근성, 해당 분야의 사회적 관심 확산에 대한 기여, 전문가 및 연구자의 호응 여부는 예술적 교류 및 사회 발전에 대한 기여 부분의 주요 검토 내용이다.

또한 장르와 공·사립 등 개최 기관의 형태와 성격, 지역 간의 비율 등을 고려하여 소외되는 부분이 발생하지 않도록 다방면의 검토와 논의의 과정을 거쳤다. 월간미술 12월 특집은 월간미술대상 우수 전시 10건에 대한 주목으로, 전시의 기획자가 소개하는 선정 전시와 큐레이터 본인의 큐레토리얼 실천에 대한 회고로 지금, 우리의 미술현장을 전시라는 틀을 통해 들여다보고자 한다.

‘Curator’라는 용어는 ‘다루다’, ‘돌보다’ 라는 의미의 라틴어 ‘cura’에서 비롯된 것으로, 원래 미술 작품, 박물관의 소장품, 혹은 다양한 형태의 컬렉션을 연구, 해석하여 전시를 담당하고 기관의 소장품을 구입, 관리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초기에는 주로 박물관의 관리자나 미술관 및 갤러리에서 소장품의 관리와 전시를 담당하는 전문 영역의 사람을 지칭했으나, 점차 다양한 분야에서 콘텐츠나 자원을 선택하고 관리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로 확장되어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도서, 음악, 온라인 콘텐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큐레이터’ 라는 용어를 흔히 사용할 만큼 모든 분야에서 큐레이션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1960년대 이전까지 큐레이터의 역할은 소장품의 관리와 전시, 미술사적인 연구가 중심이었으나, 개념미술과 다양한 형식의 미술이 부상하는 등 현대미술의 개념과 제도가 급격히 변화함에 따라 큐레이터의 역할도 변화해 왔다. 새로운 전시 문화의 대두와 동시에, 큐레이터는 다양한 매체와 형식의 작품을 포함하는 전시를 기획하고 작가와 협업하는 등 그 역할이 확장되었다. 또한 1990년대 이후 제도 밖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독립 큐레이터가 등장하는 등 활동 형태에도 변화가 생기며, 하랄드제만,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오쿠위엔위저 둥과 같은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스타 큐레이터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서구중심의 역사서술과 거대 담론을 의심하고 반성하며 특정한 주제를 내세운 기획을 시도했고, 전시 외 출판, 행사, 플랫폼을 마련하며 큐레이팅은 ‘전시 만들기’를 넘어 확장되는 다성적 실천의 경향으로 변모했다.1

이러한 흐름 아래, 동시대 큐레이터는 문화담론의 생산자이자 문화비평가, 실천적 행동주의자로 그 역할을 확장하고 있다. 더이상 시각예술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미술을 넘어 교육, 환경, 사회 등 다학제적 연구와 협업을 실천하고, 또한 다양한 사회적 참여를 강조하여 예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과 참여를 독려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전시의 형태로 우리 앞에 제시되는 수 많은 주제와 이슈들은 기존의 문화와 제도에 대한 큐레이터의 비평적 시각이자 새로운 대안 모색, 권유, 실천 등이라 할 수 있다.

큐레이터의 큐레이터 하랄드 제만은 “큐레이터란 얄팍한 정치인, 기부자, 후원자들과 대면해서 그들과 담판을 지어야 하는 외로운 사람”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동시대의 큐레이터는 다양한 기관을 배경으로 일하며 작가와 행정가, 후원기업과 컬렉터 그리고 관람객 사이를 매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기에 기획력과 자본력, 다양한 인맥과 외국어 능력 뿐 아니라 기업과 예술기관, 공공기관과 예술가 사이에서 소통할 수 있는 특별한 언어 능력이 요구된다. 비평적 글쓰기와 디자인적 감각, 협업을 위한 커뮤니케이션과 디렉팅 능력 또한 장착하고 전시와 관계된 모두와 모든 것을 조율하는 만능인이 큐레이터이다. 그러니 외로울 수밖에.

제1회 월간미술대상 수상 기사 『월간미술』 1996년 7월호

월간미술대상에 선정된 10건의 전시는 각기 다른 조건과 환경, 주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 10건의 전시는 지금, 여기 한국미술현장의 큐레이팅, 큐레이터십에 대한 지형도이자 파노라마라고 할수 있다. 월간미술은 전시와 작가 뒤편에 머물러 온 만능인 큐레이터들을 전시의 전면으로 소환하였다. 여기 기획자 10팀의 다양한 큐레토리얼 실천을 통해 외롭지만 멀리서 오롯이 자기 길을 가고 있는 동료의 온기를 느껴보자. 오랜 고민과 리서치 연구를 거쳐 우리 앞에 전시를 내놓는모든기획자에게 감사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1 권혁규「1990년대 이후 큐레이팅의 확장에 대한 논의들: 동시대의 역사적 징후로서 큐레토리얼」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58, 2023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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