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ator’s Voice

조선, 병풍의 나라 2

아모레퍼시픽미술관 1.26~4.30
편지혜 |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큐레이터

위 장승업 〈홍백매도10폭병풍〉 종이에 수묵채색 19세기 후반 개인소장
아래 채용신 〈장생도10폭병풍〉 비단에 채색 1921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제공: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조선시대부터 근대기에 이르는 우리 병풍의 정수를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지난 2018년 개최된 《조선, 병풍의 나라 1》 이후 5년 만에 선보이는 두 번째 병풍 전시다. 2018년 전시에서는 조선을 대표하는 전통 회화 형식인 ‘병풍’ 자체를 전반적으로 조망하기 위하여 다양한 주제의 병풍들을 한자리에 모아 소개하였다. 이번 전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조선시대부터 근대기까지 제작된 병풍들의 미술사적인 가치와 의의를 되새기고, 병풍에 담긴 우리나라 전통 미술의 다양한 미감을 대중에게 알리고자 기획되었다.
병풍(屛風)은 족자(軸), 화첩(帖), 두루마리(卷)와 더불어 한국 회화의 장황(裝潢) 형식 중 하나이다. 조선은 ‘병풍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유독 병풍으로 제작된 회화 작품이 많이 전해진다. 병풍은 격자로 짠 나무틀에 여러 겹의 종이를 바르고 그 위에 그림이나 글씨, 자수 등을 붙인 후 화면 주변을 비단으로 장식하여 제작한다. 사전적으로는 ‘바람을 막거나, 무엇을 가리고, 혹은 장식용으로 공간을 둘러치는 물건’을 의미한다. 예부터 온돌 구조의 난방을 사용하였던 한옥에서는 상대적으로 벽 쪽에 웃바람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기능적인 측면을 강조한다면, 병풍은 추위와 바람을 막기 위하여 펼쳤던 일종의 이동식 가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공간을 나누거나 가리는 파티션의 구실을 하였으며 동시에 실내를 아늑하고 아름답게 꾸며주는 장치이기도 했다.
병풍의 폭은 경첩과 같은 구조의 돌쩌귀로 연결하여 접고 펴기에 편리하도록 구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폭의 각도에 따라 펼쳐지는 공간의 범위를 조절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또한, 폭과 폭이 서로 마주 보며 접히는 구조이기 때문에 2, 4, 6, 8, 10, 12폭과 같이 짝수의 폭을 이룬다. 일반적으로 병풍 한 폭의 길이는 가로 약 35~45cm, 높이 60~180cm이고, 병풍틀의 두께는 약 1~1.5cm로 병풍을 접었을 때 총 두께가 10~15cm 정도이다. 이러한 가변적인 형태 때문에 병풍은 취급이 용이하고 이동이 편리하여, 많은 사람의 일상 속에서 두루 사용되었다.
조선시대 민간·사대부가에서는 돌잔치, 과거급제, 혼례, 회갑연, 회혼례와 같이 일생일대의 중요하고 경사스러운 잔치에서부터 인간의 삶을 마무리하는 상례(喪禮), 세상을 이미 떠난 이들을 기리는 제례(祭禮)에 이르기까지 모든 관혼상제(冠婚喪祭)에 병풍이 펼쳐졌다. 이와 마찬가지로 왕실에서도 길례(吉禮), 흉례(凶禮), 군례(軍禮), 빈례(賓禮), 가례(嘉禮)를 비롯한 국가의 중요한 행사에 병풍을 설치하였다. 또한, 병풍은 일상생활 속에서 늘 가까이에 펼쳐 놓고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왕실 교육용으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외국에서 온 사신들에게 외교선물로 전해지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이어 근대기에도 병풍은 지속적으로 제작되고 소비되었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도화서가 폐지되면서 전통화풍을 계승해 온 마지막 화원들은 생업을 위해 점차 상업적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로 인해 길상적이고 장식성이 짙은 병풍이 20세기 초에도 꾸준히 제작될 수 있었다. 또한, 20세기 초 서구의 전람회 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공공장소에서 대중이 감상할 수 있는 대형 작품이 등장하면서 병풍 형식이 효과적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더불어 근대기 화가들은 주체적인 의식을 가지고 새로운 한국화의 방향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병풍을 캔버스처럼 활용하기도 하였다. 한편, 광복 후에는 혼수품으로 자수병풍이 인기가 있었는데, 혼기가 찬 자녀를 둔 어머니들 사이에서는 전국적으로 ‘병풍계(屛風契)’가 유행하였을 정도였다. 이렇듯 병풍은 시대와 계층을 막론하고 인간의 삶과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함께 해온 시각매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조선시대부터 근대기에 이르는 다양한 병풍을 아우르면서도 사용 및 제작 주체에 따라 민간병풍과 궁중병풍으로 나눠 민간과 궁중의 문화적 특징을 대비하며 감상할 수 있게 했다. 민간병풍을 통해서는 일상생활에 녹아있던 자유분방하고 개성 넘치는 미감과 그 안에 담긴 스토리를 엿볼 수 있다. 궁중병풍을 통해서는 조선 왕실의 권위와 품격, 그리고 궁중 회화의 장엄하고 섬세한 면모를 감상할 수 있다. 근대 병풍의 경우 제작 시기를 고려하여 별도의 전시실에 배치했다.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시대의 도래와 함께 변모한 한국 근대 화단의 일면을 병풍이라는 형식 안에서 관람할 수 있게 구성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지난 전시에 소개되지 않았던 작품을 중심으로, 기존에 대중들이 접하기 어려웠던 작품들, 그리고 그동안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새롭게 수집한 병풍들을 소개한다. 이를 위해 15개 기관과 개인이 소장한 작품 51점을 한자리에 모아 선보인다. 채용신의 〈장생도10폭병풍〉, 이상범의 〈귀로10폭병풍〉, 〈일월반도도12폭병풍〉 등 다수의 병풍이 새롭게 공개되었으며, 보물로 지정된 〈평양성도8폭병풍〉(송암미술관)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곤여전도8폭병풍〉(부산박물관) 등 지정문화재도 출품되었다. 이에 더해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종임인진연도8폭병풍〉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임인진연도10폭병풍〉(국립국악원)을 통해 조선의 마지막 궁중연향(宮中宴享)을 한 공간에서 만나볼 수 있게 배치했다.
특히, 병풍과 관람객의 물리적인 거리를 최대한 좁혀 병풍 안에 담긴 붓터치, 색감 및 디테일 등을 자세히 살피고 전통회화가 지닌 개성과 자유분방함, 그리고 품격과 정교함 등의 다양한 미감을 감상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기존 고미술 전시에서는 거대한 진열장 안에 설치되어 먼 거리에서만 작품을 볼 수 있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병풍과 쇼케이스 유리 사이의 거리를 5cm 내외로 좁혀 마치 눈앞에서 실물을 생생하게 보는 것과 같은 경험을 관람객들에게 제공하고자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현대적인 분위기의 공간 디자인을 시도하여 고미술은 고루하다는 편견을 깨고, 우리나라 전통 미술이 대중에게 세련되고 트렌디한 모습으로 다가갈 수 있는 관람 환경을 조성하고자 하였다.
한편, 전시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과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기존의 공간 구조와 재료를 전면 재검토하였다. 이에 따라, 전시 후에는 파기해야 하는 가벽을 모두 없애고 재사용이 용이한 철제 구조물과 조립식 프레임을 사용하여 공간을 연출하였다. 새로운 재료로 설계된 구조물은 향후 전시에서도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전시 철수 후 발생하는 폐기물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요즘 MZ세대에게 ‘병풍’은 유난히 존재감이 없는 대상을 뜻하는 의미로 익숙할 것이다. 병풍은 무대 뒤쪽에 펼쳐 놓는 경우가 많아 그동안 특정 인물이나 장소, 행사 등을 빛내주는 조연의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병풍을 주인공으로 삼아 시각매체로서 갖는 미술사적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 아울러, 병풍에 담긴 다양한 그림들을 통해 우리나라 전통 미술의 아름답고 세련된 미감을 새롭게 느낄 수 있는 장이 되길 바란다.

《조선, 병풍의 나라 2》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전시 전경 2023 제공: 아모레퍼시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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