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기 미술시장, 고미술 날고 구원투수 박서보 등판

조상인

서울경제 미술전문기자, 백상경제연구원 미술정책연구소장

2022년 뜨거웠던 미술시장은 2023년 1분기 시작부터 ‘조정기’, ‘위축’, ‘침체’ 라는 표현으로 정리되었다. 낙찰률과 낙찰가 모두 감소하며 조정세를 보인 경매, 관람객은 북적였으나 매출은 감소한 아트페어와 2회차를 맞은 프리즈와 함께 국제화된 한국 미술시장, 그 실익은 우리 미술시장에 얼마나, 어떻게 반영되었을까? 2023년 한 해 동안의 미술시장을 경매와 아트페어를 중심으로 되돌아보는 2023년 미술시장 결산 리포트를 전한다.

〈백자청화오조룡문호〉 높이 56 구경 19.5 저경 20cm 18세기 제공: 마이아트옥션
올해 경매에서 거래된 가장 고가의 작품으로 5월 마이아트옥션에서 70억 원에 낙찰되었다

제아무리 고고한 미술시장이라 해도 경기변동의 흐름을, 국제 정세와 경제 지표의 영향을 벗어날 수는 없다. 시장 조정기의 분위기가 요즘 날씨만큼이나 쌀쌀하다. 미술관이나 아트페어를 찾아다니는 관람객은 여전히 적지 않으나, 이것이 작품 판매 성과와 일치하지는 않기에 시장의 고민이 깊다. 경매의 경우는 경기 위축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모양새인데, 낙찰총액은 지난해의 절반수준으로 꺾여 지난 2020년 팬데믹 시기의 시장 침체와 비슷한 상황이다. 다만 10월 14일 유명을 달리한 원로화가 박서보의 별세가 아이러니하게도 경매시장의 호재로 작동하고 있다.

올해 3분기까지 집계한 한국의 양대 경매회사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의 메이저 경매(오프라인 라이브 경매) 합계 낙찰총액은 약 681억 원으로 전년 동기 거래액 1396억원과 비교하면 약 49% 수준에 그쳤다. 말 그대로 ‘반토막’이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의 시장규모보다도 후퇴했다. 양대 경매회사의 메이저 경매 연간 낙찰총액은 팬데믹의 골짜기를 지나던 2020년의 731억 원과 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전망된다.

평균낙찰률은 간신히 69%를 기록했지만, 각 경매의 ‘간판’과도 같았던 고가의 주요 출품작이 경매 당일 줄줄이 출품 취소’를 선언한 상황을 잘 살펴봐야 한다. 구매력이 낮아졌고 더욱 신중해졌음의 방증이다. 매수의향자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출품자나 경매회사는 유찰 이력을 남기고 낙찰률을 떨어뜨리느니 ‘출품취소’의 배수진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경향은 한국 고미술의 재도약이다. 지난 2021~2022년 호황기 미술시장에서 컨템포러리를 넘어 ‘울트라 컨템포러리(Ultra Contemporary, 1974년 이후 출생 작가들의 작품)’가 주목받은 것과 대조적이다. 11월 23일 현재, 올해 경매에서 가장 비싼 값에 팔린 미술품은 고미술 전문 마이아트옥션에서 70억 원에 거래된 조선시대 도자기 (백자청화오조룡문호(白磁靑畵五爪龍文壺)>이다. 국내외 경매를 통틀어 한국 고미술 최고가 기록이다. 발가락 다섯 개인용을 청화로 그린 백자 자체가 희소한 데다, 높이 56cm의 수작이다. 마이아트옥션은 이 기세를 이어오는 12월 경매에 시작가 100억 원의 국가지정문화재(보물) <백자청화매조문병(白瓷靑畵梅鳥文甁)>을 올릴 예정이다.

10월 서울옥션 경매에서는 높이 47.5cm의 조선백자 달항아리가 34억 원에 거래되었다. 국내에서 거래된 달항아리 중 최고가다. 이로써 올 경매 최고가 낙찰작 순위에서는 고미술이 나란히 앞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훈풍은 밖에서부터 불어왔다. 3월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18세기 조선시대 달항아리가 약 60억원(456만 달러)에 낙찰돼 경매 출품 조선백자 중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고, 9월에는 소더비 뉴욕 경매에서 또 다른 달항아리가 약 47억 원(357만 달러)에 거래됐다. 두 백자 모두 높이 45cm 이상이었다. 정확한 구매자 정보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카타르 왕실이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몇 년 사이 나타난 주요 트렌드 중 하나가 고미술과 컨템포러리 아트의 조화인데, 올해 9월 아트워크 중 기획된 해외 갤러리 및 명품브랜드의 팝업 전시 중 상당수가 한옥공간을 활용하거나 전통미술과 현대미술의 콜라보레이션을 선보인 것이 대표적 사례다. 다만 국내 문화재보호법이 제작 50년이 지난 유물의 국외 반출을 제한하고 특히 해외 판매를 금지하고 있어 미술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법률 정비가 전제되어야 한다.

쿠사마 야요이 〈Watermelon〉 캔버스에 아크릴 38×45.5cm 1989 제공: 케이옥션
7월 케이옥션에서 13억 원에 낙찰되었다

이우환 〈바람과 함께〉 캔버스에 안료 181.8×227.3cm 1987 제공: 케이옥션
앞뒤 화면 모두에 작업한 작품으로 11월 케이옥션에서 12억에 낙찰되었다

올해 경매에서는 20억 원 이상의 고가 낙찰작이 극히 드물었다. 그 바람에 최소 20억~30억원 이상 가격대를 형성한 ‘한국미술의 우량주’ 김환기의 점화(點)가 경매에서 실종됐다. 한국인들이 유독 사랑하는 미술가 야요이 쿠사마의 작품도 25억 원에 낙찰된 초록색 Infinity Nets Green(TTZO)>가 최고가였다. 국내 경매에서 연간낙찰총액이 가장 큰 작가 이우환이 선전하고 있는데, 자유로운 펼치가 마치 빗줄기처럼 화폭을 가득 채운 1990년 작 <바람과 함께>가 21억 원에 낙찰됐다. 4폭 한 세트인 2000년 작 <조>은 13억 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11월 경매에서는 앞뒤 화면 모두에 작업한 1987년 작 <바람과 함께>가 12억원에 낙찰되는 등 위작논란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이우환의 중기 이후 작품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우환불패’인 것은 아닌데, 가격대가 높은 편인 추정가 6억 원 이상의 출품작 상당수가 출품 취소되거나 유찰되었다.

김환기의 빈자리를 유영국이 차지하려는 듯하다. 3월 경매에서 유영국의 1964년 작 가 10억7000만원에 낙찰됐다. 6월에는 1989년 작 가 10억 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2021년 1월 경매에서 7억3000만원에 팔린 작품의 리세일 사례인데, 2년 5개월 만에 2억7000만 원이 상승했다. 유영국은 글로벌 화랑 페이스의 전속작가가 된 후 미국 개인전이 열리는 등 호재를 안고 있다.

지난 10월 타계한 박서보의 유작이 비틀거리는 미술시장의 버팀목으로 작동하고 있다. 화가가 죽으면 그림값이 오른다”는 말이 모든 화가에게 적용되는 금언(金)은 아니지만 인기 작가의 부재가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유영국 별세 직후 2003년, 이대원 타계 직후인 2005년 미술시장에서 이들의 작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작품값이 치솟은 사례가 있다. 2021년 ‘물방울 화가’ 김창열의 별세는 유동성 완화의 경제 호기까지 맞물려 그림값의 급상승으로 이어졌고, 미술시장 호황기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

박서보의 타계가 김창열 타계 때와 같은 ‘폭발성’을 보여주지는 않을듯하다. 김창열의 작고는 시장 팽창기와 맞물렸지만 지금은 •명백한 시장 후퇴기라는게 이유이고, 박서보 작품가의 경우 수년째 꾸준히 가격이 우상향 곡선을 그려왔기에 드라마틱한 상승의 여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박서보의 작품이 경매에 등장하면서 위축된 시장에 활력을 더해준다는 점이다. 박서보의 <묘법 No.48-75- 77>은 11월 케이옥션 경매에서 10억6000만 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10월 소더비 홍콩 경매에서 약 35억 원에 낙찰돼 박서보의 경매 최고가를 경신한 것과 같은 1970년대 작품이며, 단색화의 태동을 알린 일본 동경화랑 개인전(1978) 출품작이라 상당한 경합을 보였다. 15호 크기의 <묘법 No.040302>는 2020년 11월 경매에서 4600만원에 팔렸던 것인데, 작가 별세 이후인 올 11월 경매에 다시 나와 1억2500만 원에 낙찰되며 271%의 가격 상승을 보였다. 1987년 작 <묘법 No.118-87>도 2020년 7월 경매에서 8000만원에 낙찰됐던 작품이 두 배 이상 몸값을 올린 1억7000만 원에 리세일 됐다. 260x182cm 크기의 <묘법 No.020503)은 2019년 9월 경매 때 1억6000만원에 낙찰된 작품이 4년여 만인 이번 11월 경매에서 5억8000만원으로 362% 나 몸값을 올렸다. 호황기를 거치며 박서보의 작품값이 2배 이상 상승한 상황을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추세이나, 경매시장이 2021년 하반기 고점을 찍고 조정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따져본다면 독보적인 상승세라 할 수 있다. 최근의 작가 별세가 구매심리에 영향을 준 것이다.

이우환 〈바람과 함께〉 캔버스에 유채, 미네랄 안료 196.5×290.5cm 1990 제공: 서울옥션, 7월 서울옥션의 대구 오프라인 경매에서 21억 원에 낙찰되었다

쪽 박서보 〈묘법 No. 48-75-77〉 마포에 유채, 연필 130.3×193.9cm 1975~1977 제공: 케이옥션
1978년 동경화랑 개인전에 출품되었던 작품으로 11월 케이옥션에서 10억 6000만 원에 낙찰되었다

‘시장 조정기가 꼭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조정이란, 과도하게 달아올랐던 시장이 정상(normal)으로 돌아선다는 뜻이다. 특히 경매에서는 경합 없이, 합리적인 가격대 안에서 여유롭게 작품을 구입할 수 있는 호기로 작동한다. 김환기 작품을 예로 들면, 고가 출품작이 사라진 대신 1억 원을 넘지 않는 신문지나 종이에 그린 수채화 출품이 잦아졌는데 올 초 대비 시작가 수준이 2000만원 이상 낮아졌다. 중저가 작품을 대거 선보이는 온라인 경매에서도 호황기 ‘오픈런’을 만들었던 젊은 인기 작가 작품의 낙찰률이 저조한데, 이 또한 ”의 기회로 해석할 수 있다.

경매장과 달리 아트페어는 여전히 북적인다. 올해 전국에서 열린아트페어가 90건 이상이었는데, 출품작의 수준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한주에 두 번꼴로 아트페어가 열려도 관람객은 꾸준히 찾아들었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다. 하지만 작년부터 한국화랑협회가 주최하는 키아프 등 주요 아트페어가 판매액 등의 실적을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조정기 시장 상황이 암중모색에 진입했다. 9월 6일 강남구 코엑스에서 나란히 개막한 프리즈서울과 키아프는 서울 전체를 미술축제로 달아오르게 했다. 키아프측이 발표한 폐막 보도자료에 따르면 관람객은 약 8만명으로 전년 대비 15%가량 증가했다. 아쉬운 점은 이들이 구매고객이라기보다는 관람객이라는 사실인데, 첫날 VIP 오픈과 함께 메가갤러리를 중심으로 수십억 원대 작품의 판매 소식이 전해지기는 했지만, 작년만큼 성과가 좋지는 않았다. 프리즈 특유의 실험성이 돋보이지 않았고, ‘한국에서 잘 팔린다’는 작품 위주로 전시된 것도 아쉬움으로 지적됐다. 하지만 한국 작가들을 다양한 외국 컬렉터들에게 선보이는 기회로는 충분히 긍정적이었고, 향후 중국 본토 컬렉터들의 작품 구매가 수월해질 상황을 내다본다면 낙관적 전망도 가능하다.

키아프와 함께 국내 양대 아트페어로 자리 잡은 아트부산은 신규 페어 브랜드로 ‘디파인 서울’을 11월에 론칭했다. 순수예술뿐만아니라 디자인 공예를 함께 선보이려는 전략인데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진출까지 염두에 둔 포석이다. 내년에는 콘셉트를 달리한 신생 아트페어가 여럿 선보일 예정인데, 당장의 수익성보다는 장기적 고객 유입을 내다보고 기획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장조정기는 실망의 때가 아니라 다시 올 호황을 준비하고 투자할 기회라는 금언이 우리 미술시장 곳곳에서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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