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2050년 10월 5일 수요일
10.5~30 범일운수종점Tiger1
안성은 | 성북구립미술관 학예연구사

김재민이 〈서울 3대 명약〉 나무, 유리, 쇠, LED조명, 돌, 금속, 패드 가변크기 2022

남편과 13개월 된 아기와 함께 〈2050년 10월 5일 수요일〉이 열리는 전시장 범일운수종점 Tiger1을 찾았다. 금천구 시흥동, 버스 종점에서 5분가량 거리에 위치한 범일운수종점 Tiger1은 2017년 부터 아티스트 듀오인 ‘컨템포로컬(윤주희, 최성균)’이 기획하고 운영하는 작업실이자 비영리전시공간이다. 일상의 순간을 기획의 주요한 부분으로 여기는 컨템포로컬은 출산과 육아의 경험 이후, 돌봄 · 젠더 · 노동 · 생태 · 사회 등을 키워드로 한 다수의 전시와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비 내리는 오후였다. 우산을 접고 문을 열고 들어서자 유리관 속 천천히 돌아가는 판 위에 허물만 남은 매미와 돌가루와 금속 조각이 놓여있다. “서울이 미래로 가는 동안에도 우리는 이 도시의 땅에서 말 그대로 무언가를 파먹는다”라는 김재민이 작가의 〈서울 3대 명약〉이다. 뒤를 돌아 안내문과 채집 과정을 살펴본다. 먼저 정체불명의 돌가루는 만병 통치약으로 불렸다는 ‘시구문 돌가루’로, 장례 행렬이 드나들던 광희문(시구문)의 돌을 빻아 만들어, 수많은 원귀에게 단련되어 지독한 병마도 물리치는 효능을 가졌다고. 어릴 적, 뼈가 튼튼해지라고 외할아버지가 먹였다는 산골(자연동, 당시 구리인 줄 알았던)과 오랜 기간 땅속에서 자란 매미의 허물인 선퇴(반포주공단지에서 2018년 채집)가 함께 소개되었다. 이 둘의 효능 역시 더 말할 것도 없다. 무언가의 불행과 세월을 먹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일은 참으로 (지)독한 일이나, “부지런히 몸에 좋은 서울을 섭취”하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캡슐에 담긴 ‘명약’들은 복용법과 함께 전시장 입구에 놓여있는데, 심신을 달래고자 구매를 원한다면 만원에 구입할 수 있다. 효능은 과연, ‘믿거나 말거나’.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간다. 양 벽면을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영상이 눈에 띈다. 김용관 작가의 〈유토피아 프로필 픽쳐〉이다. 프로필 이미지 생성 알고리즘(Profile Picture)으로 제작했고, 28년의 일수에 해당하는 10,227개의 추상 이미지를 만들었다. 전시장은 빠르게 지나는 이미지로 번쩍번쩍, 가득 빛났다. 프로그램의 손을 빌려 만든 가상의 시공간은 이야기 없는 이야기로 눈앞에 펼쳐진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구체적이고 단일한’ 미래의 모습이 아닌, 작은 선택이 하나둘씩 쌓여 다채롭게 빛나는 ‘뿌옇고 추상적인’ 이미지를 통해 미래의 스펙트럼을 상상해보는” 4시간 15분의 이 영상은 전체를 다 볼 수도, 기억할 수도 없는 연속된 날처럼 여겨졌다. 해상도가 다른 일상의 장면 중 ‘유토피아’라고 부를 만한 일이 무엇이 있을까. 무수한 시간 가운데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선택한다면 그것은 또렷하게 남은 미래의 일이 아닐는지.
시선을 돌리면 중년의 남성이 참여한 인터뷰 영상을 볼 수 있다. 황예지 작가의 〈파파 papa〉다. 작가는 2050년이면 아버지의 죽음을 준비하거나 맞이할 자신을 떠올렸고, 그의 삶에 대해 질문한 기록을 담았다. 아버지는 “반갑습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고, 죽음에 관한 인사를 남겼다. 아버지는 무엇을 해도 “갸륵하고 황홀해 보이는” 아이의 시간을 함께 지나온 사람, “상이 맺히려면 일정량의 빛이 필요”하다는 걸 배우게 하는 사람, “동등하게 죽어간다는 것과 살아간다는 것”을 가르쳐준 사람이다. 이는 내게도 같았으므로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아버지의 말과 사이사이 숨 쉬듯 뱉어진 독백 속으로 기꺼이 숨어들었다.
두 손을 꽉 쥐었다가 폈다. 언어가 태어나고 영글어가는 과정에 관해 상상했다. 우리는 같은 말을 쓰며 전혀 다른 이해를 한다. 가족의 말과 기록은 그 연대기에 따라 특히 그러하다. 가족, 그리고 미래에 대해 생각했다.
발달한 기술이 인간의 노동력을, 또는 인간 그 자체를 대체한다는 ‘희망찬’ 미래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모든 일은 사람의 것이다. 손으로 짓고 머리로 그리고 몸으로 낳는다. 인간이 염원하는 가장 근본적인 욕구 앞에서 세상은 얼마나 달라져 왔을까. 어떤 시기를 통과했다는 자각이 들 때면 방법과 형태만 달라졌을 뿐, 세상은 그대로라는 생각이 든다. 〈2050년 10월 5일 수요일〉은 지금과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을까. 28년을 주기로 날짜도 요일도 오늘과 꼭 같은 달력을 쓰는 2050년은 미래이자 또 다른 오늘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늘 미래를 기억하는 셈이다. 많은 것들이 혼란스럽고 재난 같은 일상 속, 돌이켜보아도 특별히 다를 것도, 이상할 것도 없는 그런 하루가 이어지길 바란다.

김용관 〈유토피아 프로필 픽쳐〉 애니메이션, 빔 프로젝터 2대 4시간15분56초 2022 사진: 임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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