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세계 미술현장의 새 지형도 New York

뉴욕 (5)

윌리엄스버그는 브룩클린에서 가장 오래된 화랑가다. 많은 작가들과 화랑들이 다리건너 브룩클린로 옮기면서 최근에는 인접지역인 그린포인트, 브쉬익까지 넓혀가고 있다

 

지난해 10월에 브룩클린 윌리엄스버그에 완성된 에두아르도 코브라의 벽화. 사진작가 마이클 할스번드가 앤디 워홀과 바스키아를 모델로 한 유명한 사진을 변형한 것으로 ‘스트리트 아트를 위해 싸우자’란 글이 적혀있다

지난해 10월에 브룩클린 윌리엄스버그에 완성된 에두아르도 코브라의 벽화. 사진작가 마이클 할스번드가 앤디 워홀과 바스키아를 모델로 한 유명한 사진을 변형한 것으로 ‘스트리트 아트를 위해 싸우자’란 글이 적혀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대표지역
서상숙 미술사

뉴욕시에 화랑이 모여있는 대표적인 지역은 모두 5군데다.
맨해튼의 어퍼 이스트 사이드Upper East Side, UES, 소호SoHo, 첼시Chelsea, 로어 이스트 사이드Lower East Side, LES 그리고 브루클린Brooklyn 등이 바로 그곳이다.
맨해튼 동쪽을 흐르는 이스트 리버 건너편에 위치한 브루클린에는 윌리엄스버그Williamsburg, 덤보D.U.M.B.O, 그린 포인트Greenpoint, 부시윅Bushwick 등지에 화랑가가 형성되어 있다.
시티인덱스에 의하면 뉴욕에는 500여 개의 화랑이 있다. 그중 절반에 가까운 200여 개가 첼시에 몰려 있으며 LES에 100여 개, 브룩클린에 100여 개, 그리고 57가를 비롯한 UES에 50여 개, 소호와 나머지 지역인 롱아일랜드 시티, 트라이베카, 미트패킹 디스트릭에 50여 개가 산재한다.
지난 50여 년간 뉴욕 화랑가에 일어난 변화 중 네 가지를 꼽자면 (1)세계적 화랑가였던 소호의 붕괴 (2)‘뉴소호’로 부상한 첼시의 유명 화랑들이 대형화되는 반면 작은 화랑들은 문을 닫거나 새로운 장소를 찾아 떠나고 있다는 것 (3)LES가 뉴뮤지엄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미술구로 관심을 끌면서 그에 따른 관광화, 상업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 (4)브시윅 등 브루클린 화랑가의 확장 등이다.
이 같은 뉴욕 화랑가의 끊임없는 이동과 확장은 도시화 하는 현대에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의 대표적인 예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빈민가 혹은 낙후된 지역이 재개발을 통해 중상류층 주거지나 상업지역으로 변화하면서 경제적, 정치적 힘이 없는 기존 거주자들을 몰아낸다는 이론이다.
공장과 창고 건물이 대부분이고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가난한 동네였던 소호는 전설적인 미술상 파울라 쿠퍼가 1968년 갤러리를 처음 오픈한 이후 20여 년 동안 미국의 현대미술, 나아가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패션 부티크, 고급 레스토랑 등이 앞다투어 들어서는 고급 상업구로 변신하면서 급격히 올라간 집세를 견디지 못한 소호의 화랑들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첼시로 대거 이동했다.
1970, 1980년대에는 300여 곳의 갤러리가 몰려 있었으나 현재 소호에는 디아 미술재단Dia Art Foundation, 아티스트 스페이스Artists Space, 드로잉센터Drawing Center 등 비영리단체의 전시공간과 피터 블룸Peter Blum, 팀 갤러리Team Gallery 등 몇몇 화랑만이 남아 과거의 명성을 되새기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디아의 프로젝트 갤러리 두 곳이 월터 데 마리아Walter De Maria의 두 작품을 30년 이상 같은 자리에 전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상업적인 소호 거리에 조용한 경종을 울리는 동시에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은 반드시 한번은 봐야 하는 인식을 심어줬다.
또 지난해 스프링 스트리트에 위치한 도널드 저드
Donald Judd(1968~1994)의 작업실과 집이 수리를 거쳐 공공미술관으로 개관했다. 그리고 인접한 LES가 최근 새로운 미술구로 부상하면서 그 여파에 힘입어 아직까지 집세가 낮은 소호 남동쪽 지역의 LES와 연결되는 지역에 몇몇 갤러리가 들어서는 추세여서 변화를 기대하게 한다.
가고시언, 페이스, 파울라 쿠퍼, 메리안 보에스키, 메리 분, 바바라 글래스톤, 데이빗 즈워너 등 미국은 물론 세계적 화상들의 갤러리를 포함, 200여 화랑이 몰려 있는 곳은 첼시의 서쪽지역인 웨스트 첼시다.
1996년 10여 개의 화랑뿐이었던 첼시가 절정을 이루었던 때는 2008년으로 350여 개의 화랑이 성황을 이루었다. 이후 하향세로 접어들어 2011년에는 250여 개로, 현재는 다시 200여 개로 줄었다.
소호의 갤러리 중 가장 먼저 첼시로 이동한 곳은 매튜 막스로 1994년이었다. 이어 건물주와 맺은 계약기간이 끝나면서 오르는 집세를 견디지 못한 파울라 쿠퍼, 팻 헌, 아메리칸 파인아트, 폴 모리스, 바바라 글래스톤, 매트로 픽처스 등이 뒤따랐는데 이들을 일컬어 첼시 화랑가의 “오리지널 7인의 정착민들Original 7 Homesteaders”이라 한다.
첼시에는 디아 파운데이션이 1987년 22가에 4층짜리 창고 건물을 보수해 지은 미술관이 있었으며 1985년에 가고시언갤러리가 잠시 둥지를 틀긴 했으나 대부분 건물이 자동차 정비공장과 물품창고로 쓰였다.
이곳이 갤러리를 열기에 적합했던 요소라면 낮은 부동산 가격과 화랑에 적합한, 기둥이 없는 넓찍한 공간을 들 수 있다. 1층짜리 창고 건물들이어서 복수층 빌딩보다 가격이 낮았고 또 천장을 통해 자연광을 들여올 수 있었다는 것도 큰 매력이었다.
건물 용도를 규정하는 조닝zoning도 상품 보관 창고에 쇼룸을 낼 수 있도록 허용했기 때문에 화랑을 내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것도 큰 역할을 했다. 이곳에는 비영리 갤러리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두산, 그리고 국제화랑에서 운영하는 티나 킴 갤러리 등 한국인이 운영하는 갤러리가 위치해 있다.
최근 급격한 화랑 증가세가 주춤하고 주요 갤러리들이 첼시에만 두세 개 혹은 그이상의 갤러리를 확보하고 있고 또 갤러리 크기를 대형화하는 반면 소규모 갤러리들이 문을 닫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어 소호의 전철을 밟을 시기를 맞은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또 미술공원인 하이라인이 조성되었고 올해 휘트니 미술관이 업타운에서 첼시에 완공되는 새 건물로 이사할 계획이어서 그에 따른 인구 이동과 상업화가 필수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소호와 첼시 화랑의 큰 차이점은 초기 소호의 화랑들이 집세에 밀려 쫓겨나다시피한 전철을 다시 밟지 않기 위해 많은 첼시의 화랑은 건물을 빌리지 않고 매입했다는 것이다. 취약점은 지하철 등 공공 교통수단이 가까이에 없다는 것인데 그것은 오히려 지나친 상업화를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LES는 요즘 뉴욕의 가장 ‘핫한’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차이나타운과 리틀이태리를 경계로 하는 LES는 전통적으로 이민자 거주지역이었으며 마약중독자, 홈리스, 높은 범죄율 등으로 위험한 지역으로 소문난 곳이었다. 그러나 2007년 뉴뮤지엄이 보어리 스트리트Bowery St.에 개관하면서 갤러리가 앞다투어 들어섰고 그에 따라 개성있는 패션, 레스토랑, 액세서리 가게 등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2002년 뉴뮤지엄 건축계획이 발표된 직후인 2003년 미술관 근처에 2개의 갤러리가 문을 열었고 공사를 시작한 2007년 뉴뮤지엄이 개관하면서 14개로 늘었다. 현재 100여 개의 갤러리가 뉴뮤지엄 주변에 몰려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또 첼시의 하이라인 파크를 벤치마킹해 폐쇄되었던 윌리엄스버그 트롤리 터미널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지하공원인 로라인 파크 조성 계획이 이루어지고 있어 LES는 당분간 지속 발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작은 평수의 아파트 빌딩들 그리고 맘앤팝 스타일의 동네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곳이어서 화랑 공간이 작다는 점에서 첼시와 비교된다.
몇몇 갤러리가 벽을 허물고 유리로 대체하는 등 세련된 화랑의 면모를 갖추려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 정육점 간판을 떼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거나 칠을 하지 않아 외벽에 낙서가 그대로 남아있고 작은 출입문에 간판도 달지 않아 갤러리인지 모르고 지나칠 정도로 무심한 것이 오히려 신선함을 느끼게 한다. 집세가 낮은 데서 얻는 경제적인 자유로움과 뉴뮤지엄의 존재 자체의 문화적 장소로서의 당위성이 증명된 LES는 젊은 갤러리스트들이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취재 중 만난 신갤러리의 신홍규 씨는 미국에서 교육받은 20대 후반의 젊은 컬렉터로 지난해 그랜드 스트리트에 첫 화랑을 냈다. 무명의 한국 작가들을 소개해 좋은 반응을 얻었고 곧 두 개의 화랑을 더 열 계획이라고 한다.
브루클린에는 윌리엄스버그에 20여 년에 걸쳐 꾸준히 화랑가가 형성되었으나 최근 덤보(맨해튼에서 이스트 리버를 건너 브루클린으로 넘어오는 맨해튼 브리지 아래 지역을 이르는 Down Under the Manhattan Bridge Overpass의 줄임말), 그린포인트, 부시윅까지 확장되고 있다.
맨해튼에서 다리만 건너면 도착하는 브루클린은 오랫동안 맨해튼보다 싼 월세로 작업실과 아파트를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뉴욕 무명 작가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최근에는 100여 개의 화랑이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유명한 영화배우, 모델들까지 이사를 오면서 소위 ‘힙한’ 지역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부시윅은 56보가트Bogart 빌딩을 중심으로 화랑이 급격히 늘고 있어 맨해튼의 화랑가가 소호에서 첼시 그리고 LES로 확장된 것처럼 새로운 커팅에이지 아트허브가 조성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있다.
첼시처럼 창고 건물들이 몰려 있던 덤보는 다리 위로 수시로 지하철이 지나가 소음이 상당하지만 맨해튼이 가깝고 싼 월세로 큰 공간을 얻을 수 있어 관심을 끌면서 현재 40여 개의 갤러리가 들어서 있다. 다만 브루클린은 맨해튼의 ‘강건너 마을’이라는 심리적인 약점이 빠른 발전을 막고 있다.
윌리엄스버그에는 20여 년 전에 오픈한 원조화랑 피로기Pierogi가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뿐 아니라 제2 갤러리를 오픈하는 등 그 전성기를 맞고 있다. 피로기 화랑이 장수하는 비결 중 하나는 화랑주며 작가인 조 에메린이 화랑건물을 소유하고 있어 오르는 집세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화랑에 들어서면 큰 파일 캐비닛이 제일 먼저 눈에 띄는데 이것은 로컬 작가들의 작품을 파일로 만들어 직접 보여주거나 인터넷으로 볼 수 있도록 해 판매하는 플랫 파일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2000년 신개념주의 작가 마크 롬바디가 자신의 모든 작품을 피로기화랑에 옮겨다 놓고 같은 날 자살했는데 이 사건도 피로기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어퍼 이스트 사이드UES의 화랑가는 1906년 하스갤러리가 오픈한 후 맨해튼의 센트럴파크 동쪽 메디슨 애비뉴를 중심으로 60가에서 90가까지, 3번 애비뉴와 5번 애비뉴 사이에 200여 개의 갤러리가 퍼져 있다. UES에는 전성기였던 1950년대 200여 개의 화랑이 존재했으나 현재는 50여 개의 갤러리가 남아 있다.
특히 57가의 메디슨 애비뉴와 5번 애비뉴 사이에 가장 많은 갤러리가 몰려 있어 이곳을 따로 복도 중심으로 양옆에 죽 늘어서 있는 방을 일컫는 ‘57가 회랑57th street corridor’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어퍼 이스트 사이드는 뉴욕시의 전통적인 부촌으로 록펠러, 휘트니, 케네디, 아스토어, 최근에 뉴욕시장을 지낸 블룸버그 등 이름만 들어도 아는 미국의 상류층이 사는 곳이다. 이들을 고객으로 마스터들의 작품과 이미 검증된 현대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판매하는 안정적인 화랑가가 형성돼 있다. 또 최근에는 첼시와 LES에 화랑이 넘치면서 화상들이 다시 UES로 눈을 돌리고 있어 흥미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