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 THEME 올해의 작가상 2015 김기라

한국 현대미술의 비전을 제시할 역량 있는 작가를 후원한다는 취지로 제정된 <올해의 작가상>이 올해 4회를 맞이했다. ‘2015 올해의 작가’ 후보 작가로 김기라, 나현, 오인환, 하태범이 선정돼 각자의 작업세계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프로젝트 전시를 밀도있게 선보인다. 전시는 8월 4일부터 11월 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며 전시기간 중 최종 선정 작가 1인이 발표된다.  취재·인터뷰 이슬비 기자

김기라 | 떠다니는 마을 Floating Village

“예술이란 인간의 죽음 이후에 만나는 휴머니즘”

‘Floating Village’라는 전시 주제와 이번에 선보인 작품들의 관계가 궁금하다. 이번 프로젝트의 작품들은 ‘사유’, ‘공유’, ‘향유’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개인의 경험과 기억의 사적 영역인 ‘사유’, 사적인 문제들이 공론의 장으로 관입된 ‘공유’ 그리고 공적 공간으로 확대되어 재생산된 공동-공공의 ‘향유’이다. 이른바 ‘88만원 세대’로 불리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젊은이들, 치솟는 전셋값에 언제 집을 비워주어야 할지 몰라 눈치 보는 서민들, 끊임없는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거대 자본력과 도시개발의 논리 아래 살 곳 없이 떠돌게 된 재개발 지역 원주민들, 자본의 권력 앞에 무너진 가장들, 역사의 수레바퀴 안에서 망가진 개인의 역사들, 실향민 등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실은 이처럼 떠다니는 사람을 무수히 양산해냈다.
‘플로팅 빌리지’는 이처럼 3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플로팅(떠다니다, 부유하다)’의 원의미처럼 문화적으로 개인의 상황, 역사, 정보, 이미지들이 사이버나 SNS의 공간과 현상에서 떠다니는 의미이다. 다른 하나는 사회적으로 정치의 실종, 비정규직(쌍용차 문제, 정리해고), 집 없이 떠도는 전월세, 기러기아빠, 노동자 문제, 88만원 세대, 세월호 침몰, 자살처럼 사회현상으로 침착되지 못하고 개인의 전반들이 사회 문화적인 현상과 상황으로 떠다니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 하나는 부유하는 개인의 역사와 관계의 문제들이 이 시대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돌아보는 의미가 있다. 나는 유동적이고 불확실한 현대사회 즉 ‘플로팅 빌리지’ 속에서 살아가는 동시대인에게 보다 넓은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며, 현 상황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기를 제안한다.
그리고 전시장 공간에 대해 설명하자면 나에게 물리적으로 개념적으로 한정된 시간에 주어진 전시 공간이 아파트 40여 평 크기와 같다는 점에 착안해, 마치 40평형 아파트 모델하우스 같은 공간구조로 연출하고자 했다. 아파트의 형태는 공중에 떠있는 공동체 공간이라는 생각도 집어넣었다. 이 공동체의 공간 안에서 개인과 이념, 역사, 시간들이 포함되고 충돌하는 영상과 공간을 연출하고 싶었다. 그 장소를 통해 지금 이 시대의 담론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심미적 측면에서 은유적으로 보여주고자 하였다. 그래서 플로팅 빌리지의 40평 공간은 개인의 사적 영역의 이야기들이 모여 공유되는 공동의 장, 그리고 그 공동에서 발생한 담론의 장으로 묶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최근 ‘공동선’이라 믿고 있던 보편적 가치의 본질을 밝혀내는 데 매진하고 있는데 당신이 해석하는 ‘공동선’은 무엇인가? 여전히 자본주의 모순과 전체주의 모순은 나와 우리 앞에 있다. 그것이 때로는 이데올로기로, 때로는 문화와 정치로 변형되어 나를 괴롭힌다. 요즘은 이념의 무게와 공동선이라는 명제 아래 대한민국의 현실, 오늘의 역사, 이념, 정치, 종교, 세대, 지역, 노사, 남녀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대립, 충돌을 공부하고 조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다시 예술이라는 형식을 통해 개인의 위치나 경계, 배치의 순간들이 조우하도록 유도하고자 한다. 이 지점들은 서로 다른 시간의 차이들을 나타내는데, 특히 서로 다르게 편재하는 시간들을 재편하여 동시대성을 발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 동시대성은 미래를 담보한다고 생각한다. 현재가 없이 미래가 없다는 가정 아래 미래의 시각에서 현재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현재의 상황은 어떠한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내가 관심있게 연구하는 공동선과 이념의 무게는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흑과 백의 공산주의 대 민주주의의 좌와 우 방식의 변증법적 대치 갈등과 충돌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선험하는 것과 같다. 나의 고찰은 공동체 전체를 위한 가치인 공동선(common goods)이지만, 이 또한 일반적으로 듣고 판단하기엔 현실적으로 허울과 허구에 가까울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문제의 지점에서 갈등과 분노를 보여주기보다 불가능하지만 그 안에서 예술의 관점으로 인본으로써의 가치, 혹은 인간다움의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물음 같은 것이다. 이 관점에 관하여 철학자 지젝은 ‘윤리의 정치화’로 공동선을 재구축하자 했고, 권력의 약한 지점을 간파하는 ‘자유를 위한 공동투쟁’으로 공동선을 정의하기도 했다.

한국 사회에서 이념은 특정한 이념의 대립 문제로 각인되어 왔는데 당신이 말하는 ‘이념의 무게’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를 주제로 계속해서 시리즈 작품을 만드는 이유도 궁금하다. 공동이라는 이념은 늘 아름답지만 역사는 폭력적이라는 생각이다. 이념이라는 허울과 정치적 상황이 모두에게 유익하고 좋은 ‘공동선’을 향하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망령이 돼 인간을 옥죄며 욕망을 부추긴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에도 갈등, 분노, 대립, 충돌로 달아오른 대한민국은 감정적으로 덥다. 미디어를 통해 혹은 피부로 직접 만나는 정치, 자본, 종교, 역사, 남북, 노사, 지역 간의 갈등에다 개인 간의 싸움까지 그칠 줄 모른다. 내가 말하는 ‘이념’ 혹은 ‘공동’은 좌우 색깔론을 넘어, 이 같은 갈등 유발요인 모두가 공동을 위한 이념이다. 그래서 그 이념의 무게는 삶의 무게와 가깝다. 이념의 무게에 짓눌린 세상, 그래서 나는 슬프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이 이런 사회갈등으로 치르는 경제적 손실, 즉 ‘이념의 무게’에 대한 경제적 비용이 240조 원 이상이라고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27개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다(1등은 터키다). 갈등에 대한 천문학적 사회비용과 물리적 낭비뿐만 아니라 공동선의 부재라는 현실에 나는 분노한다.
그리하여 요즘 나의 작업들은 그 물리적 비용을 가로지를 수 있는 방법과 내가 할 수 있는 실천을 향하고 있다. 갈등의 현장인 제주, 평택, 광화문, 백령도 등지를 돌아다니며 나는 공동선을 위한 이념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가벼이 할 방도를 찾고 있다. 이념의 무게로 타들어가듯 덥던 어느 날, 내가 책상 앞에 앉아 ‘수취인불명’의 편지를 쓰게 된 이유다. 물론 주제가 힘들고 무겁다. 그러나 난 이 작업에 앞서 문화와 역사, 삶을 공유하는 지금 여기 지역성을 넘어 개인의 삶과 한끼의 식사에 내 마음을 담았다. 더울 때 먹는 음식, 또 문화와 역사 민족을 공유할 수 있는 음식을 통해 나와 혹은 그 작업을 바라보는 이의 시간대에 공통의 언어 공통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지금 여기 우리가 직면한 상황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고 바라보길 원한다.

신작 <위재량의 노래>가 인상적이다. 위재량의 시에서 영감을 얻은 계기는 무엇인가? 힙합 뮤지션들과 협업해 음악을 만들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해달라.
2011년 난지창작스튜디오에서 레지던스를 할때 위재량이라는 소위 문학계와는 거리가 있는 삼류시인을 우연히 알게 되었고 시집 <가슴으로 우는 새>를 선물받아 밤새 눈물을 흘리며 읽은 기억이 있다. 시인 위재량은 9급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7급(서울시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재직 당시 위재량은 난지물재생센터에서 분뇨를 처리하는 기피업무를 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다.)으로 정년 퇴임한 인물이니 감동이 더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분의 경험과 삶의 노래 앞에서 나는 내가 꿈꾸던 유명하고 훌륭한 예술가가 허상임을 깨달았다.
위재량의 노래(시)는 한 인간의 삶과 경험을 노래하고 세상을 향해 비통을, 사랑을 쏟아내고 사람다움을 외치고 있더라. 그래서 그분의 시를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신파적인 방식보다 좀 더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언어를 기획했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음악가를 찾아 다녔다. 위재량의 노래를 좀 더 다층적 시각으로 볼 수 있는 협업자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위재량의 시를 가장 돋보이게 할 수 있도록 하위문화의 정신인 랩과 답가와 공연 등 미술관에서 다른 형식과 발언으로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이 궁극적인 의도였다.
위재량의 노래는 기본적으로 뮤지션들의 공감과 참여, 그리고 자본의 애완견이 된 대중가요에 대한 저항정신에 아직도 목말라 하던 MC메타를 비롯한 여러 힙합 뮤지션의 만남과 작곡자들의 조우로 이루어졌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공동 제작으로 참여한 김형규 감독(뮤직비디오와 광고 감독)과 아이삭 스코브(힙합 뮤지션 및 음반 디렉터)를 만나면서 구체화될 수 있었다. 위재량의 노래는 그렇게 첫 번째 음반과 퍼포먼스 그리고 예술 뮤직비디오로 완성됐다.

이번 전시에서 위에서 언급한 작품 외에도 다양한 협업 작품들을 선보였다. 최근 협업에 강조점을 두는 이유는 무엇인가? 동시대를 사는 다양한 예술가와 전문가들, 그 삶의 사유들을 협업과 과정의 결과로 보여주어 더 큰 담론을 생산하는 것이 가장 큰 의미라 생각한다. 그 이유는 경험이 빠지고 참여가 빠진 예술은 그냥 예술의 형태를 띤 박제된 오브제에 불과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나의 경험이 이 세상의 전부일 수는 없다. 그래서 다른 누군가의 삶과 그들의 역사도 들여다보고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예술가의 특수한 경험과 현상의 분석은 일반적이며 보편적 언어들을 획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건 대중에게나 예술가에게도 쉽지 않은 과제고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술이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것만은 사실이다. 예술은 사회, 정치, 제도를 바꿀 순 없다지만 심미적으로는 가장 중요한 삶의 이유를 찾는 기폭제일 수 있다. 희망은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전체를 감동시키거나 제도와 구조는 바꾸지 못하지만 사람 사는 사회의 올바른 태도와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방식이나 형식들을 바꾸고 탐구하고 있다. 형식은 내용을 담는 그릇이니까, 다른 실험과 협업 속에서 담론과 공유의 가능성과 담론의 형태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협업은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예술의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종의 다각도적 다층적 사유방식의 운동처럼 말이다.

김 기 라 Kim Kira
1974년에 태어났다. 경원대 회화과와 동 대학원 환경조각과를 졸업하고 골드스미스대 대학원 순수예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 덕원갤러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서울, 쾰른, 나고야 등지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다. 2009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미술부문을 수상했다.

김기라 작품 (3)

김기라 <마지막 잎새 #02_당신이 나를 원하는 것처럼>(왼쪽), <붉은 수레바퀴_당신은 나의 것>(오른쪽) 비디오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