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FACE 2016 박광수

선(先) 긋고, 선(線) 채우기

“선을 긋다”는 관용구는 어떤 인물이나 단체의 경계를 확실히 지을 때 사용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 박광수의 드로잉은 ‘선을 긋기’보다 ‘선을 그리는’ 혹은 ‘선을 만드는’ 행위에 가깝다. 그의 작업은 가늘거나 굵고, 짧거나 긴 선의 움직임이 모여 하나의 모호한 공간을 이뤄낸다. 각 선은 그들이 캔버스라는 제한된 공간에 놓이는 순간, 저마다의 생명력을 부여받는다. 선의 역할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오히려 눈을 감은채 부분 부분을 더듬으며 형태를 찾아가듯 작가는 밑그림 없이 선을 그려간다. 선을 그리고, 그 선을 수습하기 위해 또 다른 선을 더한다. 적재적소에 균일한 선이 위치하지만 일관된 선의 반복이 지겹고 심심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리듬감 있는 표현과 구성을 위해 작가가 직접 제작한 도구가 한몫을 한다. 스펀지로 삼각형태의 펜촉을 만들고 이를 각목에 붙여 덧칠할 수 있는 다양한 굵기의 펜을 고안했다. 펜 제작은 드로잉의 스케일이 커지면서 구체화됐다. 주로 수첩이나 작은 종이에 드로잉을 해온 작가는 2012년을 기해 몸의 부피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회화의 크기 확대는 자연히 공간과 배경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드로잉을 작업의 중심으로 삼아 평면작업을 이어가는 작가는 많지 않다. 그런데 작가 박광수는 왜 드로잉을 고집할까? 선은 분명 표현에 한계가 있다. 그러나 작가는 “선은 해낼 수 있는 역할이 많다. 기호처럼 단순한 묘사가 가능한 기본단위가 선이다. 면보다 선이 이야기 전달에 효과적이다. 공간을 모두 장악하지 않지만 가득 메울 수 있는 점이 좋다”고 이야기한다. 캔버스, 펜, 색의 한정을 조건으로 걸고 그 안에서 변주해 나가는 과정 자체를 유희로서 즐기는 듯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양한 드로잉의 활용을 통해 드로잉의 범주를 확장하려는 노력을 한다. 작년 신한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에 선보인 〈검은바람, 모닥불 그리고 북소리〉의 경우 음악을 함께한 애니메이션 영상을 선보이기도 했다. 애니메이션은 시간의 흐름이 나타나, 드로잉보다 구체적인 상황 묘사가 가능하고, 내러티브도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종이 위에서 못다펴낸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을 통해 풀어낸 것이다. 물론 그의 드로잉은 그 자체로서 충분한 이야기를 뿜어낸다. 그는 이야기를 굳이 숨기지 않지만 대놓고 드러내지도 않는다. 새, 나무, 숲 등 익숙한 자연의 소재를 배치하여 비일상적인 공간을 구성해냄으로써 이질적인 공간을 만든다. 여기에는 다각의 시점이 공존하며, 현재성을 뒤흔들며,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선이 채워낸 구상적이지만 추상적인 〈좀 더 어두운 숲〉으로, 긴장감 넘치는 흑백의 비현실적 〈빈 허공〉으로 이끌어간다. 그리고 관객은 그 안에 서있는 또 하나의 ‘선’이 된다.
임승현 기자

박광수
1984년 태어났다. 서울과학기술대 조형예술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11년 갤러리 비원에서 열린 첫 개인전 〈2001: A SPACE COLONY〉 이후 4번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이후 다수의 그룹전과 협업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현재 금천예술공장 입주 작가로 활동 중이며, ‘금호영아티스’로 선정되어 1월 8일부터 2월 24일까지 금호미술관에서 전시를 이어간다.

 〈검은바람, 모닥불 그리고 북소리〉 전시광경

〈검은바람, 모닥불 그리고 북소리〉 전시광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