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박대조 Where do we go now?

갤러리 나우 4.1~14

조관용 미술비평
박대조의 어린아이는 작품에서 어른과 대립하는 아이콘인가? <테러 2>(2008)나, <태안기름 유출>(2008) 등의 작품에서 어린아이는 폭력이나 사고로 인해 훼손된 자연을 무표정한 눈으로 직시하는 아이콘으로 비치지만, 실존주의에서 이야기하는 어른들의 부조리한 삶의 양상과 대립하는 아이콘으로 기능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어린아이의 아이콘과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테러의 현장은 박대조의 작품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린아이의 아이콘은 <기도>(2012)에서 두손모아 기도를 하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이나, <누구를 위하여>(2008)의 창백한 낯빛을 띤 유약한 모습에서 보듯이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말하는 초인과도 같은 순진무구한 상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린아이의 아이콘은 <나는 누구인가>(2012)에서 어린아이와 자연 풍경이 하나로 오버랩되고 <염원-트랜스페어런시>에서 어린아이와 도시 풍경이 하나로 오버랩되는 이미지에서 보듯이 어린아이와 자연 풍경은 동일한 실체이며, 또한 도시 풍경도 하나의 동일한 실체를 의미한다. 즉 어린아이의 실체는 인간과 자연 풍경이 일체화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노자가 말하는 “덕은 만물을 기르며, 덕을 두터이 지닌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으며, 음양의 조화가 완전한 상태가 된다”는 구절과 일맥상통한다. 그렇기에 <테러 2>나 <태안기름 유출>에서 보이는 무표정한 어린아이의 실체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인간의 실존적인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렇듯 박대조의 작업은 노장(老莊) 철학을 기반으로 인간과 자연이 일체화된 정신을 수묵화로 표현한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먹과 한지는 <누구를 위하여>에서 보듯이 대리석에 음각과 채색으로 대체되거나, <염원>(2010)에서 혼합재료와 조명으로 대체된다. <염원-트랜스페어런시>에서 보듯이 입체렌즈와 배면조명과 색상변환장치를 통해 대체된다.
다시 말해 어린아이의 아이콘은 그의 작업에서 고형 물질인 대리석과 조명에서 발산되는 무형의 물질인 빛을 통해 에너지에서 물질로, 물질에서 에너지로 전환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킴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합일 상태를 현대물리학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어린아이의 눈동자 렌즈는 마치 사진기의 렌즈를 연상시키며 한 개인의 주관적인 시선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마주하게 되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향하게 한다.

위 박대조 <나는 누구인가> 비단에 채색, 배면조명, 색상변환장치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