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양혜규 코끼리를 쏘다 象 코끼리를 생각하다

삼성미술관 리움 2.12~5.10

블라인드 설치작업을 통해 일찌감치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아온 양혜규 작가의 이번 삼성미술관 리움 전시는 필자를 기대감으로 부풀게 했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어떤 식으로든 블라인드 구조물을 발견하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블라인드 구조물인 <솔 르윗 뒤집기 – 23배로 확장된, 세 개의 탑이 있는 구조물> 작품은 얼른 눈에 띄지 않았다. 미니멀리즘 작가인 솔 르윗의 작품 자체가 주변 환경에 쉽게 동화되듯 양혜규의 블라인드 작품 역시 리움의 현대적 공간 구조물과 함께 작품이라는 인상을 깊이 심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양혜규의 작품에 대해 사전 지식이 없거나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무심코 지나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어떤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전시의 도입부에 <솔 르윗 뒤집기>를 설치함으로써 작가는 그 제목과 마찬가지로 ‘현대문명 뒤집기’를 시도하고 있음을 강력히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뒤집기는 또다시 기획전의 전체 제목과 의도인 ‘코끼리를 쏘다 象 코끼리를 생각하다’와 정확히 일치한다. 양혜규가 조지 오웰과 로맹 가리의 소설에서 차용한 코끼리의 의미는 현실에서는 연약하지만 주인공의 상상 속에서는 강인한 존재로서 자연 생태계를 의미하고, 자연으로부터 괴리된 인간 윤리를 호소하는 매개체와 같은 존재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 전시의 큰 목적은 자연과 야생을 현대문명 속에 부활시키고, 자연과 함께 사라져버린 인간들의 공동체적 관계의 회복과 소외와 고립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함이다. 이러한 전시 의도를 읽으며 전체 전시를 다시 보면 독립적이고 이질적으로 보이는 작품들이 전체적으로 공명하며, 마치 거대한 오케스트라처럼 서로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전시장으로 내려가면 짚풀로 제작된 설치물들이 한눈에 들어오며 전반적으로 농경사회로 이뤄진 과거의 한 시대로 우리를 인도한다. 농경사회는 공동체의 가치가 분명히 존재하고 이웃과 동일한 종교와 삶의 의미를 갖춘 사회였으리라. 그래서 지금 이 전시를 감상하는 모든 관람객은 일시적이나마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중간 유형>이라 명명된 짚풀 건축물들은 고대 마야의 피라미드, 인도네시아의 불교 유적 보로부드르, 피어나는 튤립이라 불리는 러시아의 이슬람 사원 라라 툴판을 참조한 구조물과 인체를 연상시키는 개별 조각 6점으로 구성된다. <중간 유형>은 다양한 출처의 문명들을 대변하는 문명의 파편들이다. 더 나아가서 전시장의 기둥은 마치 고대 신전들의 그것처럼 짚풀로 감싸져 있다. 작가 양혜규는 어쩌면 ‘문화 순례자’라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구조물들 사이에 놓인 인물상 같은 입체물에는 민속적 상상력이 깃들어 있다. 짚풀은 천연 짚이 아니라 인조 짚이다. 이러한 인조 짚의 사용은 모든 것이 시뮬라크르로 화한 현대문명에 대한 작가의 이중적 태도를 엿보게 해준다. 현대의 기술문명은 자연적인 것, 역사적인 것, 상상적인 모든 것을 진짜인 것처럼 복원할 수 있다. 사라진 자연, 사라진 공동체, 사라진 민속적 유물들이 엄밀한 과학기술과 고고학적 발견과 고증을 통해 실제보다 더 실제적으로 복원되고 전시된다. 다시 말해서 진정한 영혼이 삭제된 피상적인 복원이 창궐한다. 따라서 양혜규는 자신의 작품을 통한 부활이 이러한 피상성 속에 함몰되는 것을 극히 경계하며 이에 대처하기 위해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그중 첫째가 <VIP 학생회>라는 작품이면서 동시에 관람객들의 쉼터이다. 이것은 서울의 외교사절들과 정치인, 화가, 문학가들이 사용하던 의자와 탁자들로 관람객이 전시 감상 중 잠시 앉아 휴식하면서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장소이다. 여기서 작가는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 이래로 내려온 창작의 분업을 제안한다. 작가는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대여자들은 대상을 제공하며, 미술관은 예술작품임을 인정하는 전시장을 제공하고, 관람객들은 실제로 휴식을 취함으로써 작품 제작에 참여한다. 그리고 작품 구입을 통해 다시 한 번 작품에 참여할 수 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이 창작에 직접 행동으로 참여함으로써 양혜규 작가의 창작 공동체가 완성된다.
다음으로 작가는 영감의 부활을 위해 무속 신앙적인 요소를 다분히 가감한다. 작가가 관람객의 참여를 유발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사실 관람객이 전시장에 들어오기 전부터 요구된다. 즉 관람객은 전시장 입구에 준비된 <소리 나는 의류>라고 하는, 실제 착용 가능한 황금색의 금속 방울들로 엮어진 작품을 착용하고 방울 소리를 울리며 전시장에 입장한다. 대부분의 종교와 무속에서 방울은 영혼과 신성에 관계된 중요한 요소이다. <상자에 가둔 발레>도 인물 조각 6점의 표면 전체를 방울로 뒤덮었으며, <바람이 도는 궤도 – 놋쇠 도금>에도 선풍기 날개 대신 방울을 달아 청아한 방울 소리를 내게 한다. 이와 같이 이번 전시 작품들의 대부분은 종교적 색채를 짙게 풍기는데, 수공예 기법을 이용하여 정성들여 짠 <삼세번 희부연이>도 이슬람 문화권의 기하학적 문양에서 출발했고, 중앙 정면의 높은 벽면에 그려진 대형 벽화 <그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자춤 – 신용양호자 #240> 역시 바위산에 새겨진 토템을 연상케 하며 개인 정보를 지켜주는 수호신처럼 나타난다. 또한 <정지(井地)>의 귀목도 기이한 동물 모습을 하고 있는데, 마치 영성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종교적 분위기는 긴 벽을 뒤덮은 <만국애도실>로 이어진다. 위아래가 뒤집혀 강이 하늘 같고, 하늘이 강 같은 히로시마의 풍경 위에 거꾸로 선 작가의 작품 뿌리 공예, 묘비석 등의 이미지가 둥둥 떠다니는 초현실적 풍경은 원폭으로 희생된 히로시마를 배경으로 함으로써 사라질 현대문명에 애도를 보내는 것이 아닌가. ‘블랙박스’의 블라인드 설치작품 <성채> 역시 컴컴한 분위기 속에서 고해성사실에 들어온 느낌을 준다. 여기서는 끝없는 고해성사가 이뤄지는 것처럼 계속 중얼거리는 소리가 반복된다. 고해성사와 기도문을 중얼거리고 염불을 외는 듯한 소리는 아래층의 <창고피스> 안에서도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작품에 현실성을 주기 위한 방편으로 공감각의 활용을 들 수 있다. 양혜규의 작품세계는 시각, 청각 혹은 촉각 등 하나의 감각에 제한되지 않는다. 전시장 깊은 곳에서는 각종 소리와 음악, 해설 등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오며 공간을 채우고, <성채>에서는 빛과 어둠, 그리고 여덟 가지의 향을 분사하도록 해서 이미지에 현실감을 부여하고자 한다. 인위를 통해 인위를 극복하고자 하는 모순을 보이지만 말이다.
양혜규 작가는 이번 기획전을 통해 극히 복합적인 작품세계를 제시하고자 한다. 문화적・종교적 복합성, 모든 예술 장르를 포함한 장르의 복합성, 그리고 다양한 소재의 복합성이 그것이며, 여기에 시간과 역사, 장소의 다양성이 더해진다. 나아가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과 수용, 사회와 인간에 대한 성찰 역시 그 두께가 느껴지며 복합적이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시도들이 예술작품으로 성공적으로 실현되었는지 여부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현대예술에서는 작가는 제안하고 관람객과 공동체가 그것을 성공적인 예술작품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양혜규 작가는 자신이 의도한 바를 훌륭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수균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양혜규 <상자에 가둔 발레>(가운데) 2013/2015

양혜규 <상자에 가둔 발레>(가운데) 2013/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