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Topic] SeMA Biennale Mediacity Seoul 2014

Ghosts, Spies, and Grandmothers

올해로 8번째를 맞이한 <SeMA 미디어시티서울2014>(9.2~11.23)는 미디어라는 매체보다는
주제를 강조한다. 아시아에 대해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과연 아시아란 하나로 답할 수 있는 개념인가?
전시 제목이기도 한 ‘귀신 간첩 할머니’를 통해 해독해야 할 주술, 암호, 방언과 기억해야 할 섬과 산 같은 장소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 시대 모호해진 아시아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귀신이 없어진다

강홍구  작가

청탁을 받아 이글을 쓰기는 하지만 나는 이런 글을 쓰는 데 적격자가 아니다. 우선 비엔날레 종류의 미술전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국내외 여러 비엔날레를 보고, 참여도 해보고 내린 결론은 그렇다. 비엔날레라는 이름의 전시는 대개 거창한 주제를 내걸고 엄청나게 많은 작품을 모아 보여준다. 돈도 많이 쓴다. 그걸 다 집중해서 관심 있게 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애초에 관객이 전시를 어떻게 잘 보느냐에 큰 관심이 없다. 몇 명이 오느냐에는 관심이 있지만. 그래서 보고나면 화가 나거나 다리가 몹시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행히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4>는 규모와 짜임새 면에서 그렇지는 않았다.
다음으로는 전시의 제목 때문이다. ‘귀신, 간첩 ,할머니’라는 말을 들으면 내 정서와 감각 등은 섬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버린다. 신안군의 작은 섬인 내 고향은 곳곳이 귀신 나는 곳이고 도처가 죽은 자들이 묻혀있던 곳이었다. 집마다 있던 성주, 조앙 등의 집안 귀신들 말고도 일종의 동네 귀신으로 탱자나무 길 아래 차일 귀신, 터진목에 애장터의 애기 귀신에다 뻘밭에는 도깨비들이 있었다. 그리고 해당화 피던 모래밭에는 6.25 때 철사에 손이 묶여 죽은 사람들이 영광에서 떼로 떠밀려와 묻혀 있다고 했다. 바닷가에서 보았던 사람의 두개골은 돌을 던져도 잘 깨지지 않고 단단했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들의 넋을 건지는 굿이 바닷가에서 가끔 벌어졌고, 육탈을 기다리는 빛 바랜 초분이 밭 귀퉁이나 야산에 웅크리고 있었고, 어둡고 축축한 여름밤에는 안개 속에 도깨비불이 날았다.
귀신들을 잘 보고 만나는 사람들은 할머니들이었다. 밭 매고 집에 오다 보고, 날이 흐릿하고 빗기 품은 바람이 불 때 동네 고삿길에서 보고, 바닷가에 갯것하러 갔다 만났다. 간첩도 마찬가지였다. 섬 뒤로 펼쳐진 서해 바다가 간첩들이 드나드는 통로였다. 특히 바로 옆인 임자도에서 일어난 간첩단 사건은 초등학교 시절 우리의 삶을 바꿔 놓았다. 조그만 섬에 전투경찰대 일개 소대 정도가 참호를 파고 몇 해 동안 주둔했던 것이다.
이 따위 경험들은 물론 전시와 직접 상관은 없다. 하지만 ‘귀신과 할머니와 간첩’이라는 말을 듣기만 해도 정서적으로 그렇게 되어버린다. 일종의 병적 고착이다. 때문에 나는 이 글을 쓰는 데 적격자가 못된다. 전시 제목만 들어도 어릴 적에 보던 서늘하고 으스스하지만 이상하게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고 싶은 상엿집 분위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좋은 전시란 그럴 만한 질문과 그에 대한 반응으로 이루어진다. <귀신, 간첩, 할머니>는 언젠가 던져야할 좋은 물음이고 있어야만 할 전시였다. 주제를 중심으로 한 전시의 짜임은 불필요한 오버 없이 담담했고 동선도 큰 무리는 없었다. 전체를 둘러보고난 인상은 애초의 기대와는 달랐다. 상엿집은 아니더라도 어디선가 전시 제목인 세 단어가 만나 일으키는 시너지 효과를 보고 싶었는데 그건 없었다. 그러니까 전시 전체의 구성이 병렬적이었고 그것이 전시 전체의 의도였던 것도 같다.
좋은 작품이란 역시 일종의 질문이다. 답이 아니다. 하지만 비엔날레나 그룹전의 어려움은 작가들이 질문에 대해 답을 내야 한다고 생각할 때 발생한다. 이 전시도 일부는 그러했다. 예를 들면 여러 사람이 언급한 양혜규의 작업은 내가 보기엔 그 깔끔함과 명료함에도 불구하고 잘 쓴 답처럼 보였다. 양혜규의 작업은 평소에 해오던 작품의 무속적 변주이다. 양혜규의 작품들은 대개 무언가를 모으고, 움직이게 하고, 이동 가능하도록 한 경우가 많았다. 이번 작업도 마찬가지이다. 방울이라는 소재를 모으고, 자동으로 움직이게 하고, 수동으로도 돌릴 수 있게 만들었다. 때문에 무속용 소도구인 방울을 이용한 잘 다듬어진 작업 그 이상 어떤 것을 느끼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은 정보과잉 상태의 작품들에 관해서다. 그런 작품들은 거의 관습적으로 입체, 설치, 영상, 텍스트, 드로잉을 한 묶음으로 공간에 모아 동어반복 상태를 만든다. 물론 그 사이에 매체에 따른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말이 되풀이될 때 반복적 공허함도 매체에 따른 점층적 효과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메인 작품을 위한 장식으로 보인다. 때문에 오히려 작업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고 만다.
다른 하나는 일부 작품들이 가지는 약간 과도한 계몽적 태도이다. 나는 이것을 알고, 조사했고 작업했기 때문에 당신들도 알아야 한다는 강박증은 보는 사람의 피로도를 높인다. 물론 전시 주제의 영향도 있겠지만 정보와, 계몽과, 예술 사이의 관계에 대한 예민한 재고가 필요해 보였다.

쑤 위시엔  비디오(21분8초)와 설치 2013

쑤 위시엔 <화산치앙> 비디오(21분8초)와 설치 2013

김수남  연작 중에서 함경도 망묵굿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아카이브용 피그먼트 인화 40×58cm 1981

김수남 <한국의 굿: 만신들 1978-1997> 연작 중에서 함경도 망묵굿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아카이브용 피그먼트 인화 40×58cm 1981

불편함이 핵심이다
나는 미술관에서 비디오나 영상작업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영상 하나만 보아도 힘든데 그걸 연속 본다는 것은 고문에 가깝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흥미 있었던 것은 영상들이었다. 여러 개가 있지만 몇 개만 들자.
우선 베트남 프로펠러 그룹의 <쿠치의 게릴라들>이 그렇다. 내용은 간단하다. 베트남 호치민시 외곽에 쿠치터널이라는 지하터널이 있다. 쿠치터널은 베트남전 당시 미군과 싸우기 위해 복잡하게 판 이른바 땅굴이다. 그런 역사적 배경을 가진 곳에서 요즘 서구의 관광객들이 총알 한 발에 1달러를 내고 AK47이나 M16을 쏜다. 특별한 연출도 없는 다큐멘터리이다. 모든 장면은 슬로 비디오로 상영된다. 관광객들은 천천히 움직이며 총을 쏘고 그것을 잡는 카메라의 위치는 총구의 정면이다. 물론 방탄유리 뒤라고는 하지만 뭔가 불안한 느낌이 좀 든다. 그리고 낄낄거리며 웃고 총을 쏘는 관광객과 베트남전 당시에 만든 선전영화 내레이션이 부딪치면서 지극히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든다. 어쩌면 전쟁이 끝나고 통일을 이뤘으니 전쟁터를 관광상품화하는 여유를 가졌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보는 내내 불편하다. 그 불편함이 핵심이다.
다음은 에릭 보들레르의 일본 적군파를 다룬 <시게노부 메이와 시게노부 후사코, 아다치 마사오의 원정과 27년간 부재한 이미지> 라는 긴 제목의 다큐멘터리이다. 유감스럽게도 다큐가 너무 길어 다 보지는 못했지만 본 내용만으로도 지극히 인상적이었다. 다큐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영화와 테러가 유사하다고. 이는 물론 적군파 전투원인 에키타 유키코가 썼다는 “혁명의 시나리오는 영화 각본과 같은 식으로 쓰여 있어야만 한다”에서 따온 것이리라. 영화가 시나리오를 쓰고, 다시 검토하고 등장인물을 캐스팅하고, 스태프들을 모아서 촬영하듯이 테러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럴듯하다. 테러는 목표물을 정하고, 어떻게 작전을 펼칠지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자금과 테러리스트들을 모은 뒤 실행한다. 물론 테러에 재촬영이란 없다. 그리고 피차의 목숨이 걸려있다. 섬뜩했다. 테러를 일종의 예술로 볼 수 있다는 시각 자체가 무섭다. 아니다. 이건 인간이 세상 모든 일을 해나가는 기본적인 태도다. 누구나 어떤 일을 할 때는 시나리오를 쓴다. 글로 쓰건 상상하건 꿈을 꾸건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시행한다. 대부분 성공하지는 못한다. 예술이란 어쩌면 실제로 이루어질 수 없는, 그래서 실패한 시나리오에 대한 보상이다. 어떤 형태로든 그렇다. 그래서 테러에 대한, 테러리스트에 대한 다큐란 실패한 테러에 대한 만가(輓歌)이다. 젊은 시절 기사만 보아도 충격적이었던 적군파 사건이 수십 년이 지나 미술관 속에 들어왔다. 냉전, 혹은 열전의 일부였다고 간단히 말할 수도 있지만 여운은 간단치 않다.
다음으로는 미하일 카리카스의 <소리 내는 아이들>과 김인회를 비롯한 무속 연구가들의 굿을 기록한 영상물이다. <소리 내는 아이들>이라는 작업이 흥미를 끈 것은 살풍경한 배경과 아이들 사이의 기이한 대비도 대비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의 소리가 무당들의 무가와 겹쳤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노래하고 소리 지르는 과정들이 일종의 굿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무속 연구가들이 기록한 굿은 내가 서울에 와서 보았던 퍼포먼스에 가까운 굿들보다는 훨씬 굿 같았다. 굿의 원형들이 담긴 비디오들은 상태가 나빴지만 매력적이었다. 물론 너무 많아 다 보지 못했다. 정말 필요해서 열리는 굿판과 행사로서의 굿 사이의 어마어마한 차이-그걸 아우라라고 해야 할지 절실함의 차이라 해야 할지 모르지만 그렇다. 그리고 김수남의 사진뿐만 아니라 직접 연관이 없을지라도 이갑철의 신기어린 사진들과 육명심의 인상적인 무당 사진들이 같이 전시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물론 전시장에서 만난 디렉터의 말처럼 굿 영상물과 사진과의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근래 몇 해 동안 고향인 신안군을 촬영하느라 섬을 돌았다. 섬에도 이제 귀신이 없다.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할머니들도 더 이상 귀신을 보지 않는다. 산 속에서 나무를 하다가 친인척 누가 죽었다는 소리를 환청으로 듣던 할아버지들도 그런 이야기를 들어주던 아이들도 없다. 귀신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즉 기억하고 호명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 전시도 마찬가지다. 이름 부른 메아리가 얼마나 멀리 퍼질지는 알 수 없지만 아시아인의 식민지 경험과 냉전과 열전, 20세기에만 거의 1억 명 이상이 강제로 죽은 곳에서 그 피해자, 여성, 고통에 대한 질문은 당연히 지속되어야 하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디렉터의 표현대로 그들이 보내는 주문과 암호와 방언은 마땅히 기억되고 해독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질 수 있는 일종의 과도한 사명감이나 자신감, 혹은 이 전시와 상관없이 요즘 일부 작가들에게서 보이는, 죽은 자들을 이용하려는 태도는 마땅히 경계해야 하리라. 언젠가 거대한 규모의 넋 건지는 굿이 진도에서 벌어져야겠지만 그때도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산자의 부끄러움과 겸손함일 것이다.
참, 섬 주변에 간첩도 없는 것 같다. 배를 타고 북쪽에서 남쪽 섬까지 드나들었다는 그들의 소식도 끊긴 지 오래이다.●

프로펠러 그룹  비디오 20분4초 2012

프로펠러 그룹 <쿠치의 게릴라들> 비디오 20분4초 2012

필라 마타 듀폰트 (왼쪽) HD비디오 5분4초 2013 최진욱 와  각 캔버스에 아크릴 97×130cm 2000

필라 마타 듀폰트 <이상적인 포옹>(왼쪽) HD비디오 5분4초 2013 최진욱 <북한A>와 <북한B> 각 캔버스에 아크릴 97×130cm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