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BOOK] 통섭 시대의 예술적 사유

통섭 시대의 예술적 사유


에릭 캔델 지음 / 이한음 옮김 《통찰의 시대(The Age of Insight)》 알에이치코리아(RHK)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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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캔델은 192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지금껏 생존해있는 신경과학자로,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다. 홀로코스트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캔델은 역사와 문학, 정신분석, 그리고 신경과학을 두루 연구한다. 이것이 《통찰의 시대》가 뇌과학과 예술사, 심리학, 인문학을 통섭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우리는 캔델의 통섭 시도 기저에 환원주의(reductionism) 에 대한 지향이 존재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환원주의는 근대적 과학과 학문의 기본적 방법이다. 그것은 연구대상을 그 구성성분들로 나누어 그 각각을 – 캔델이 말한 것처럼 – 한 번에 하나씩 집중적으로 살핌으로써 우리의 시야를 점진적으로 넓히고, 그렇게 부분들에 대한 지식의 양적 축적이 언젠가 전체에 대한 온전한 이해로 이어질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 가정 하에 환원주의자 캔델은 구스타프 클림트, 오스카 코코슈카, 에곤 실레로 구성된 20세기 초 빈 모더니스트들에 관심을 집중한다.

과학적 환원론은 이렇게 연구대상으로서의 전체를 그 부분들로 나누기를 전제하지만, 그 이상의 함의를 가지는 것으로 여겨진다. 결정적으로, 각 부분들의 연구는 동등한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 특정한 부분이 가장 중요하고, 나머지는 이 부분에 대한 설명으로 환원될 수 있다. 빈 모더니스트들에 대한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 모더니스트들이 보여준 예술적 활동을 신경과학적/ 뇌과학적 관점에서 설명하는 일이다. 빈 모더니스트들을 비롯한 인간의 모든 정신활동은 뇌의 활동에서 나오기에, 그 활동을 관찰함으로써만 그 활동의 결과인 미술작품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으며, 미술작품에 대한 감상자의 정신활동 또한 이해할 수 있다. 뇌와 그 작동 결과인 마음이 중요하다.

그런데 오늘날 뇌과학자들에는 두 부류가 있는 것 같다: 20세기 초 빈에서 활동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호의적인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한때 정신분석을 공부한 의사 캔델에 따르면 1890년에서 1918년에 이르는 기간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활동하던 프로이트를 비롯한 의사들은 인간 마음의 모더니즘적 관점을 제시하였다. 이 관점을 그림을 통해 제시한 화가 클림트, 실레, 코코슈카 등과 함께 말이다. 이 모더니즘 관점은 인간의 행동 결정에서 무의식적 본능이 맡은 역할을 강조한다. 이 관점을 이론적으로 잘 고안한 빈 의대의 의사들은 인간의 모든 정신 과정은 – 모든 정신 질환도 포함하여 – 뇌의 생물학에 토대를 둔다고 주장했으며, 그 의사 중 한 사람인 프로이트는 인간 행동의 상당수가 비합리적이며 무의식적인 정신 과정에 토대를 둔다고 제안했다. 캔델은 이 관점을 발전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의 책에서 빈 모더니스트들의 무의식에 집중한다.

캔델의 이러한 연구는 그가 생각하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터 잡은 것이다. 캔델은 세기말의 빈에서 기원하여 지금도 계속되는 예술과 과학 사이의 대화가 다음과 같은 세 단계를 거쳐 왔다고 말한다. 첫 단계는 모더니스트 예술가들과 빈 의대 연구자들이 마음의 무의식 과정에 관해 깨달은 것들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시작되었다. 두 번째 단계는 1930년대에 빈 미술사학파가 도입한 미술과 인지심리학 사이의 상호작용이 지속된 시기다. 세 번째 단계는 1990년대에 시작되었는데, 인지심리학이 생물학과 상호작용함으로써 정서적 신경미학의 토대가 마련된 시기다. 캔델이 한 것은 이 세 번째 단계의 작업이었다.

캔델의 연구는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술의 기저에 꼭 무의식과 정서만 있다고 봐야 할까. 의식적 사유는 어떨까. 20세기 중후반의 예술 중에는 보다 명시적인 지식, 특히 과학적 지식 같은 합리적이며 의식적인 정신활동의 결과물도 많이 있다. 캔델의 연구를 공부하고 나서 캔델을 또 다른 거인으로 여기고 그 어깨 위에 올라야 할 필요가 있다.

손영실 |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예술매체이론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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