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뿔의 자리

6.2 ~ 7.2 인사미술공간

김인선 |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대표

〈뿔의 자리전〉은 〈2015 ARKO 시각예술분야 작가 / 큐레이터 워크숍〉에 참여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 기획안 공모에서 선정된 세 개의 전시 중 하나이다. 김한나, 노은주, 윤지영, 전현선 4인의 작가가 함께 만든 전시이다. 이 전시는 이들이 초대한 장혜정 큐레이터의 전시와 작가이자 기획인 4인의 작품들, 그리고 마지막 동선에 위치한 10명의 필자에 의해 구성된 책자로 구성된다. 네 명의 작가는 기획자로서 일정 기간의 논의를 통하여 하나의 개념을 도출한다. 워낙 각자 작업 방향이 뚜렷한 이들을 하나의 개념으로 묶는 과정에서 결국에는 가장 원론적인 의문점으로 나아갔던 것 같다. 그것은 ‘무엇을 표현하는가’에 대한 각각의 대답에서 드러나는 시각예술의 해법인데 이들은 그 공통된 대답을 ‘형태’를 상징하는 ‘뿔’이라는 단어로 묶게 되었다. 이후 이들은 구체적인 관점에서 ‘뿔’을 의식한 채 스스로를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이 전시의 중심이 되는 ‘뿔’을 연구하는 과정은 이들에게 실험적인 공간을 끌어냈다. 전시를 제작하는 과정은 여느 기획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 전시를 끌고 나가는 이들이 모두 작가라는 점은 특수한 상황이다. 이 전시 속에서 이들의 작업 결과물은 각자가 해온 기존의 형식과는 조금 다르다. 그들이 하나의 단위로 묶이기 위한 공통적 형태를 ‘뿔’이라고 부르는 순간 이들은 스스로의 희생을 자처할 수밖에 없었음을 혹은 서로를 의식하는 행위로의 전환을 경험하게 된다. 타자와 나를 동일시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타자가 되어 볼 수밖에 없다. 교집합을 찾아서 스스로 내뱉은 언어를 실행하기 위해 자신의 작업을 객관화 해야 했을 것이며 성공적인 개념화를 이루어내고자 하는 일종의 의무를 지녀야 했을 것이다. 인사미술공간에서 선정한 세 개의 전시 모두 작가의 기획안이었다는 점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작가와 기획자가 분리되지 않은, 전시 자체가 하나의 작품으로서 협업적 연구 과정이 드러나는 일종의 커뮤니티적 전시를 기대했다면 이 전시는 꽤 성공적인 결과물로 보인다.
작가들은 자발적으로 큐레이터 한 명(장혜정)을 초대하여 전시에 삽입하였는데 이로써 지하 전시장의 풍경은 기획 행위에 초점이 맞추어지게 된다. 미디어로서의 전시를 요청받은 큐레이터는 벽면에 나열된 이미지들과 텍스트 등 나름의 아카이브와 공식에서 산출한 다양한 사이즈의 원형 좌대 위에 올라갈 각자의 ‘뿔’을 다시 요구하여 작가이자 기획자들에게 본연의 기능을 실천하도록 유도하였다. 그리고 벽면의 텍스트에서 서술하고 있듯 이성과 감성의 혼성적이며 시각적인 결과물을 확인하고자 공간 중앙에 이들을 위치시킨다. 작가들은 기획자들이 어떤 과정으로 작가를 선정하고 이를 보여주는지를 궁금해 한다. ‘전시’라는 형식을 매체로 다루게 된 기획자는 퍼포먼스 작가처럼 그의 작업 구상과 실현(전시)을 제시해 나갔다. 작가들의 궁금증에 비추어 온통 기호화된 이 공간 속에서 한 개인 기획자의 노트와 개념화 과정의 공간 속에서 기획의 일반론을 찾아볼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전시 전체에 깔린 텍스트적 흐름에 기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1층과 2층의 전시 공간에 배치된 작품들은 이들의 주제를 향한 논의가 시각화 되면서 구체화되는 비논리적 현상을 확인하게 한다. 노은주와 전현선 작가가 함께 작업한 거대한 화면이 정면에 자리 잡았다. 이들이 함께 만든 회화작업이 전시장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노은주와 전현선은 의식적으로 완벽한 협업을 위한 조건을 만들었다. 두 작가는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하나의 캔버스를 놓고 구도와 색체, 대상의 선택과 이를 그려나가는 방식을 논의하면서 번갈아가며 붓질을 하였다(〈하나의 기록들〉).
이 작업 후에는 같은 오브제를 두고 각자 따로 그렸는데(〈두 개의 기록들〉) 이 후속 작업이 오히려 힘들었다고 한다. 서로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 나올 수 있도록 서로를 의식한 것이다. 이러한 실험을 통하여 이들은 결국 다시 각자의 영역을 만들어내야 하는 작가의 근원적 활동에 대하여 진지한 고찰을 경험하였을 것이다. 구조와 회화적 표현이 공존하는 김한나의 작품 역시 ‘뿔’을 향해서 스스로의 작업 스타일을 비껴가본 작업이다. 김한나는 회화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하여 구조적 배치의 제스처가 삽입된 구조물을 만들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안과 밖의 환경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교차하는 재료의 선택과 이를 구조화하는 과정에서 회화의 표면이 구조 속에 흡수되도록 하였다. 그는 무엇이든 그 어떤 것이 될 수 있는 (천장이 바닥이 될 수도, 벽이 될 수도 있는) 형태의 무한한 가능성을 가늠하고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영상작업을 볼 수 있는데 이를 제작한 윤지영은 퍼포먼스 작가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서는 영상작업을 위한 시나리오와 편집과정을 거친다. 불편한 옷을 입고 불편한 신발을 신고 작은 구멍을 향해 끊임없이 창을 날리러 가는 작가의 행위가 이어진다. 이 행위는 어느 순간 익숙해지지만 동시에 숨이 가쁜 체력 고갈을 느끼며 지쳐간다. 결국 원하는 바를 힘겹게 얻게 되며 더 이상 움직이기 버거운 상태에 있는 스스로의 모습과 아주 낮은 확률의 성취를 향해 고군분투하는 예술가의 모습과 닮아 있는 것을 발견한다. 어떤 종류의 뿔을 지향하는지를 찾아내기 위하여 예전 작업의 기록을 동원하여 이 영상작업 속에 삽입하였다. 또한 참여 작가들의 ‘버려진 창작물’을 수집하여 이전의 작업 기록을 보여주는 영상물과 함께 배치한다.
마지막 동선에 배치된 책자에는 10인의 필자가 쓴 글이 실려 있다. 필자 각자가 가지고 있는 ‘뿔’의 개념을 글이라는 구조로서 드러내게 하여 이 전시의 개념을 확장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는 다시 지하 공간에 구현된 전시 형식의 작품으로부터 각자의 작업 과정을 상기시킨다. 장혜정 큐레이터가 전시를 의뢰받으면서 작가들에게서 받은 뿔에 대한 자료는 대부분 버려지고 새로운 자료가 생성되었다. 공간 어디선가는 각자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이 재생되었다. 기획의 글에서 밝혔듯 이 프로젝트가 뿔에 대한 전시이면서 뿔에 대한 전시가 아님을 상기시키듯 말이다.

위 노은주〈두개의 기록-납작한 조각-2〉캔버스에 유화 130.3×97cm 2016

CRITIC 고산금 오마주 투 유-자본과 사랑

6.2 ~ 7.2 갤러리 바톤

남선우 | 일민미술관 큐레이터

고산금은 텍스트를 화면에 옮긴다. 이번 전시 <오마주 투 유 – 자본과 사랑>에서도 작가는 소설, 이론서, 사람 이름 등 다양한 텍스트를 작은 진주알을 이용해 옮겼다. 수십 번 칠하고 갈아내기를 반복해 만든 백색 나무판에 모조 진주를 글자 수만큼 행과 열을 맞춰 붙여나갔을 지난한 과정이 그려지는 작업들은 어떤 방대한 책의 필사본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작업들은 실은 글자가 있던 자리를 진주로 바꾸어 텍스트를 없애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진주알은 글이 있던 자리에 눌러앉아 그것이 원래 가리키고 있던 것을 지워버린다. 의미와 내용이 사라진 가지런한 화면은 그것이 원래 절절한 부성이었든(오노레 드 발자크, 《고리오 영감》), 수치와 지표에 기반을 둔 자본 분석이었든(토마 피케티, 《21세기 자본》), 모두가 악인으로 알고 있는 자의 항변이었든(빅토르 위고, 《장발장》의 자베르) 간에 이제는 모든 것을 잊어버린 듯 마냥 반짝일 뿐이다. 그 위에는 투명한 풀 한 방울 위에 진주알을 놓고 온 신경을 다해 살짝 누르기를 반복했을 작가의 미세한 제스처만 남아있다.
전시장 안에 들어선 관객은 읽을 수 없는 화면, 그러면서도 아주 섬세하고 잘 짜인 모양 때문에 더욱 답답한 희고 빛나는 화면에 둘러싸인다. 화면에 놓인 진주알들은 텍스트와 일말의 형식적 동일성을 가지고 있지만 아무런 의미도 읽어낼 수 없다. 이는 작가가 사용한 언어의 문법을 몰라서가 아니다. 백색의 판 위에서 막막하게 빛나는 불통의 진주알들은 애초에 언어가 아니다. 고산금이 만든 새로운 텍스트는 어떤 것도 가리키지 않는다. 본래의 텍스트가 몇 개의 글자로 이루어졌었다는 지푸라기 같은 힌트를 담은 흔적일 뿐이다. 작가는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아니 언어가 아닌 것으로 텍스트를 바꾸어 이를 온전히 자기만의 것으로 만든다. 텍스트를 옮기는 것처럼 보였던 작업은 그것을 지우는 과정이기도 했다가 이제 텍스트의 번역, 아무도 알아볼 수 없는 나쁜 번역이 된다. 그러고 보니 처음부터 ‘옮긴다’는 말이 곧 번역을 뜻한다.
언어가 사라진 화면을 바라보며 그것이 본래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내 빈곤한 언어에 억지로라도 들어맞는 생각만이 밖으로 발화될 수 있고, 그중에서 역시나 빈곤한 상대의 언어로 포착되는 것들만이 받아들여진다. 이런 세상에서 사실 모든 말하기와 듣기, 쓰기와 읽기는 나쁜 번역이다. 가령 고산금의 작업이 알아볼 수 있는 텍스트로 쓰였다 한들,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적어도 수십 번의 번역을 거쳐 돌고 돌아 도착한 텍스트는 원래 의미를 얼마나 전달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원래 의미라는 것이 과연 있기는 한 것일까.
읽히기를 거부하고 차라리 빛나기만을 택한 고산금의 진주알 작업은 텍스트가 입고 있던 맞지 않는 옷을 벗기고 풀어주는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여기에 글자가 있었다고, 어떤 의미가 존재했었다고 말해주는 묘비와도 같다. 이제는 고인이 되어 정말로 기호로만 남게 된 유명한 이들의 이름이 진주알로 바뀌어 비석처럼 놓여있는 〈The Name Anonymous 1〉처럼 말이다.

위 고산금 〈레미제라블2(빅토르 휴고/Penguin), 부분발췌 pp. 338-369〉(왼쪽) 나무패널에 아크릴채색 4mm 인공진주, 접착제 162×116cm 2016

REVIEW

근대회화의 거장들: 서화(書?)에서 그림으로
6.16~10.29 호림박물관 신사분관

‘전통의 계승과 변화의 모색’을 주제로 20세기 초 수묵채색화의 대표작을 선보인다. 관서지방 화단에 대한 조명과 얼마 전 타계한 호림 윤장섭(1922~2016) 이사장이 마지막으로 구입한 작품인 민영익(1860~1914)의 〈노근란도〉가 전시되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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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황수 개인전
6.11~7.10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작가는 그래픽 툴을 사용해 원본 이미지를 조작, 재구성하면서 재현의 방식을 실험한다. ‘내가 무조건 이기는 게임’이란 제목으로 열린 이번 전시에서 기호화되고 변형된 이미지를 통해 이미지가 범람하는 사회에서 원본이 사라진 일상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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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경 개인전
6.15~26 백운갤러리

이 전시는 작가의 ‘에트로 미술상 은상 수상’을 기념하는 전시다. 몽환적이고 종교적 표현까지 연상시키는 작업은 존재하지 않는 피안의 공간을 만들고 있다. 그 공간에는 심해나 협곡 등의 모티프가 숨어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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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미 개인전
5.1~6.26 교보아트스페이스

<내 마음 속 서재>로 명명된 작가의 개인전은 전시장을 방문한 관람객이 마치 회화의 한 요소로 존재하게끔 한 작업이다. 공간과 그 안에 놓인 가구와 집기를 채색하여 이른바 ‘그림 속 한 장면’을 연출했다. 빛 연출가인 고기영 작가도 함께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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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채움
6.9~7.6 누크갤러리

하나씩 하나씩 비워내니 김미경, 김시연의 이야기는 가득 찼게 됐다. 비움과 채움이 공존하는 두 작가의 작품이 전하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켜켜이 쌓인 김미경의 색면과 김시연의 지우개 가루가 머금은 시간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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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원 개인전
6.23~7.3 대안공간 이포

하루살이나 나비 등 동물을 소재로 생명의 의미를 탐구하는 사진작업을 하는 작가의 이번 전시는 ‘꿀 젖 잠’으로 명명됐다. 이번 전시에는 돼지를 모티프로 희생, 생명, 순결, 박해 등의 의미를 환기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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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렙스
6.3~25 합정지구

이 전시는 혼돈의 상황과 이를 통제하려는 사회 시스템 사이의 모순에 대해 시각적으로 풀이했다. 무방비적인 사건과 사고가 일상이 되어버린 현시대에 대해 언급하며, 급작스러운 붕괴에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을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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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욱 개인전
5.12~8.12 김희수 기념 수림아트센터

흔들리는 찰나의 순간을 카메라에 포착하려는 듯한 작가의 이번 전시는 세 번째 개인전이다. 눈에 비친 자연의 모습과 그 사이를 감싸고 있는 공기의 흐름을 묶어두고자 하는 작가의 작업의도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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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환 개인전
6.23~7.22 조은숙갤러리

1995년 이후 프랑스에서 작업하고 있는 작가가 오랜만에 국내에서 여는 개인전이다. 작가는 잡지나 종이를 접어 중첩된 이미지로 만드는 작업을 한다. 일견 무질서한 작업으로 보이지만 명확한 패턴도 동시에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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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백
6.3~30 쌍리갤러리

강현욱 김남훈 김해민 허구영이 참여한 기획전. 전시타이틀 ‘Flashback’은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나 기법을 의미한다. 전시는 과거 제작된 영상작업을 재맥락화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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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민 개인전
6.10~16 부산대학교 아트센터

이번 전시에서 대형 수묵작업을 선보인 작가는 현실과 그것의 재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섬세한 움직임을 먹으로 표현하여 폭넓은 감성의 폭을 보여준다. 또한 주변의 풍경을 때로는 거칠게 표현하여 추상화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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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범 개인전
6.1~18 조은갤러리

‘진득한 즉흥과 숙고된 찰나’라는 부제는 그 자체로 아이러니를 내포한다. 작가는 이러한 주제를 중첩된 색채의 활용을 통해 형상과 추상이 융화되어 있는 화폭으로 드러냈다. 작가의 신작 20여 점이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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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선영
6.23~7.22 카이스갤러리

다양한 이야기를 조각으로 풀어가는 라선영의 세번째 개인전. 작가는 이번 전시 제목 <반짝이는 것들> 에서 현대사회와 현대인의 주관 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의식, 그들의 반짝이는 외형에 가려진 무질서한 욕망 등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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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림

추미림
7.6~28 트렁크갤러리

디자이너이자 작가인 추미림의 네 번째 개인전 <일렁이는 그리드에서 태어난 새로운 모듈>. 작가는 전시 제목에 시사하듯 그리드를 고정된 벽이 아니라 유동적으로 변형 가능한 것으로 보고 여러 형태의 기하학적 도형들을 결합해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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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리차드 아넬리

안녕, 생명의 비약
7.19~8.12 대구 아트스페이스 펄

드로잉을 기반으로 작업을 진행해나가는 김종구 리처드아넬리 디트쿤즈의 단체전.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세명의 작가가 길을 걸으며 한 드로잉을 통해 개인의 경험과 감성을 한자리에 풀어놓는다. 리차드아넬리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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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훈
6.27~7.16 금산갤러리

구의 형태를 반복·집적·배열해 대상을 은유하는 오동훈의 개인전. 작가는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해 비눗방울을 연상시키는 작업을 통해 가장 차가운 소재가 만들어낸 따뜻한 감성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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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뚡뀳_뗡뀽___뗡뀼_メ꼮_■녅_뗡뀼__study2,116x91cm, oil on canvas, 2013

Ensemble at 한남
6.23~7.21 갤러리 조은

인간의 자아를 몽환적인 배경과 상징적 이미지로 구현하는 윤상윤과 빛으로 사색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이은채의 2인전. 한 공간에서 각기 다른 예술적 정체성과 인간 본성으로의 회귀를 다채로운 표현방식으로 구현한다. 윤상윤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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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id vs. Fragile
7.1~30 갤러리JJ

회화 고유 매체에 충실하면서 내면의 감정으로 세계를 구축하는 윤지원과 회화, 영상, 사진 이미지를 자유로이 교차하고 중첩시키는 조이경의 2인전. 두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이미지의 재생산이라는 결과물로써 우리의 시지각에 관하여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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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진
7.1~16 이유진갤러리

20여 년간 서해안 일대를 관찰해온 최영진의 개인전 <The Lost Sea>.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갯벌이었고 바다였지만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땅으로 변해버려 지금은 볼 수 없는, 이미 사라져버린 풍경들을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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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준
6.24~7.23 그리고갤러리

작업을 위해 가게 된 프랑스에서 느꼈던 이주, 장소성의 문제, 차이와 반복에 관한 이야기 등을 설치를 비롯한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놓는다. 작가는 키치적인 패러디와 도발적인 어법으로 우리시대에 만연한 삶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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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

이정아
7.13~18 가이아갤러리 7.20~31 모네갤러리

비내리는 도시의 형상을 나타내는 이정아의 개인전. 작가는 샌드페이퍼를 사용하여 오브제에 모래의 질감을 중첩시켜 마티에르를 나타내고 거친 터치의 드로잉으로 찰나를 즉흥적으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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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
6.23~7.17 OCI미술관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은영의 개인전 <멀리 있는 산이 가까이 보이면 비가 온다>. 작가는 시간의 흐름과 주관적 감정에 의해 각인된 사건을 여러매체의 상호작용을 통해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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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숙희_作

2016 대전드로잉
6.30~7.7 대전 이공갤러리

권숙정 김희라 리명두 박팔영 배도수 변은정 안병란 유남안 이지영 장숙희 전현순 전형원 정장직 조인예 차선영이 함께 하는 전시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를 풀어내는 가장 기본적 방법인 드로잉을 통해 자신을 좀 더 뚜렷하게 표현해낸다. 장숙희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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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SUNG CSC

해시태그
7.12~29 갤러리 다온

어떠한 주제를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는 해시태그. 새로운 분류의 기준과 자료 수집의 역할을 하는 해시태그를 주제로 한 단체전. 청년 작가들의 모임인 YAP(Young Artist Power)의 회원 27명이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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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연
7.5~16 갤러리 파비욘드

보이는 것과 사실인 것 사이의 갈등,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에 대한 질문과 함께 그 갈등 안에서 공존의 길을 찾는 최재연의 개인전. 이번 전시에서는 포장되어 있는 현재의 모습에 대한 성찰을 주제로 한 2015-2016년 신작들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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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진리
7.18~30 핑크갤러리

멀티미디어 작가로 애니메이션, 페인팅, 판화, 설치 작업등 다양한 작업세계를 보여주는 진리의 개인전. 상상력이 어두운 동굴 안을 바꿔놓을 수 있듯 작가는 사람들과 상상을 나누어 세상을 변화시키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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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순

전은순
6.22~7.5 에이블파인아트갤러리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자연물을 화폭에 담으며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이야기하는 전은순의 개인전. 자신만의 독특한 창작세계를 펼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작가의 신작 20여점이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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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수
6.21~7.30 이든갤러리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지론을 펴는 작가는 파랑을 관계의 색으로 설정한다. 하늘과 바다처럼 닿을 수 없는 거리를 유지해 끊임없이 서로를 확인해주는 푸른빛을 통해 삶을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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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정
7.13~24 갤러리 시작

소박한 시골의 논과 밭 풍경을 화폭에 담아 자연의 아름다운 표정들을 시각화한다. 상상으로 재현된 공간이지만 실제로 본 적 있는 듯 낯익고 친숙한 화면 묘사를 통하여 마음속에 자리한 기억의 풍경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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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도-권민주

카코포니 12
7.11~23 대구 갤러리 분도

권민주, 박지윤, 박세희, 변호연, 최빛나가 참여하는 신진작가 발굴전. 5명의 작가는 순수한 붓질의 전통적인 페인팅 기법을 이용해 각각의 개성을 드러낸 작품으로 관객과 소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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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섭
7.4~31 여니갤러리

나무를 끌로 거칠게 깎아내, 부조 형상 위에 붙이는 방식의 작업을 진행하는 김경섭의 개인전, 주로 사람이나 동물, 꽃 등 생명체의 형상을 구상에 가깝게 표현하는 작가는 구체적 형상을 통해 끈질긴 생명의 기운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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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무

이승무
7.20~8.5 갤러리 오차드

회화를 통해 체득되는 경험과 작가의 해석을 제시하는 이승무의 개인전. 화면의 얼룩 속에 나타난 간명한 표현은 추억이라는 시간들과 소통하고 심상의 여유와 위안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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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록
7.21~30 부산 BNK부산은행 갤러리

그림의 소재는 단순히 구성을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삶을 포괄하는 대상이며 평범함 속에 비범함을 갖춘 대상이기에 작가는 그것에 대해 항상 고민한다. 작가는 자신의 고향마을을 그리며 그 안에 담긴 작은 사유까지 펼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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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회 부산 해운대작가회
7.19~28 부산 갤러리 조이

갤러리 조이의 그룹 후원전 일환으로 기획된 전시. 해운대 지역을 기반으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그룹의 구상과 비구상을 넘나드는 회화와 입체적인 현대미술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김주희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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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선
7.3~31 원갤러리

인식적, 철학적 측면에서 공간이 어떻게 감상자의 주의를 다른 영역으로 옮기는 동시에 여전히 같은 공간에 머물 수 있게 하는지를 묻는다. 작가는 모순과 역설 등 복잡한 문제를 추상적 공간에 담아낸 회화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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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정
7.27~8.4 미술세계갤러리

인간이라는 존재자체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그것을 화폭에 담아내는 고미정의 7번째 개인전. 작가는 인간이 인간에게서만 받을 수 있는 감정을 공유하며 그림을 보는 이들에게 인간적인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PREVIEW

황규태 / 한성필
6.25~8.13 / 7.16~8.13 한미사진미술관

예리한 심미안으로 포착한 대상을 흑백으로 표현하는 황규태의 개인전 <bLow UP aMeriKa>.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미국인과 그들의 문화를 소소하게 담은 초기 작품들과 현시점에서 그 당시를 다시 들여다보고 기억을 더듬어 ‘blow up 블로우 업’한 작업을 함께 선보인다. 각기 다른 표정의 얼굴, 머릿결, 눈동자 색과 피부 색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는 다양함 뒤에 감춰진 야누스의 얼굴을 통해 시각예술의 순수한 힘과 리듬감을 펼쳐낸다. 작가는 사진의 권위를 고집하기보다는 새로운 시각으로 감춰진 세상을 들추며 미국의 진면모를 찾으려 한다. 한미사진미술관에서는 또한 젊은 사진가 한성필의 개인전을 마련한다. <Fantasmagoria:판타스마고리아>로 명명된 이번 전시는 도시의 외피를 한 겹 들추어 그 뒤를 드러낸 한성필의 신작으로 구성된다. 그 동안 도시의 외피라 할 건축물들의 정면을 카메라에 담아온 작가가 스스로 도시의 뒤편으로 눈을 돌려 이면에 주목한다. 황규태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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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없는 미술
6.24~8.6 하이트컬렉션

현대사회 시스템에 얽힌 인간이 경험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감성을 다룬다. 강홍구 공성훈 구정아 김도균 박선민 연기백 오치균 이강원 이수경 채온 최대진 최병소 최수인 최의순 한상혁 홍범이 참여해 물질에 얽힌 기억을 되살린다. 구정아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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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상
7.7~8.21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조각과 사진의 속성을 한 작품 내에 결합해온 권오상의 신작을 소개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 <New Structure and Relief>에서 현대사회에 범람하는 이미지와 정보들의 멀티유즈, 현대미술 장르의 혼성과 경쟁을 매우 간명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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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무명
6.28~7.31 국제갤러리

현대사회가 암묵적으로 규정하는 유명인과 무명인에 대한 구분, 즉 기준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김영나 김희천 남화연 베리띵즈 오민 이윤이 EH가 참여해 각기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입체적인 현실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미디어, 설치, 디자인, 사진 작업 등을 선보인다. 이 작품들은 서로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끌림에 의해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연결되는 한편, 개별 작가 고유의 배경 차이에서 기인한 구분을 통해 ‘유명’과 ‘무명’이라는 무형의 가치가 가지는 다각적인 개념들, 즉 불확실성, 연약함, 변화 가능성과 동질화, 획일화에 대한 정밀하고 미묘한 저항을 제안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유명해지지 못하면 사라지고 마는, 일종의 강박에 가까운 현실과 유명을 향해 질주하는 세태를 반추하며 나아가 알려지기가 무섭게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공포감에서 자유롭지 않은 현 세대의 딜레마를 고찰한다. 김희천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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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선-면-TV
7.5~2017.2.5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의 작품세계를 아우르는 다양한 매체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며 ‘평면성’ 에 주목한다. 백남준의 실험 비디오, TV, 위성프로젝트, 그리고 그의 회화와 드로잉을 통해 시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든 그의 사유를 조명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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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

오윤 30주기 회고전
6.24~8.7 가나아트센터

오윤 서거 30년을 맞아 그를 기리는 전시를 마련한다. 오윤 예술의 진면목을 알려주는 목판화와 오윤의 친지가 비장하고 있던 드로잉 1백여 점을 선보인다. 오윤의 미공개 드로잉을 통해 오윤 예술의 원형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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궈웨이
7.1~8.14 학고재갤러리

사회주의 국가에서 체험한 격정의 시대와 그 속에서 느낀 감정을 자신의 신체를 통해 표출하는 궈웨이의 개인전. 이번 전시 <인간에서 인류로>에서 작가는 자신의 감정을 즉흥적이고 속도감있는 붓질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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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윤석원
갤러리 바톤 7.14~8.20

개인과 사회, 기억과 기록, 현재와 과거 등 상반된 듯하면서도 깊은 연결고리를 지닌 세계를 캔버스에 담아내는 윤석원의 개인전 <만난적 없는 것들>. 작가는 자신의 경험이 반영된 회화 작업을 매개로 사건의 관찰자이자 전달자로서 역할을 자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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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백
7.2~24 전주 서학동 사진관

더 이상 절대적일 것도 없을 이 시대에 일상에서 주변으로 밀려나는 것들과 대화하는 데 열중하는 연기백의 개인전. 작가는 대상을 따라 거슬러 가다 보면 드러나는 새로운 이야기들을 통해 세상을 더 여유롭게 바라보는 실험을 지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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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있는 방
6.25~8.14 일민미술관

1980년대 영화감독과 미술가로 활동한 포르투갈의 예술가 페드로 코스타와 후이 샤페즈의 2인전. 이번 전시는 2005년부터 듀오로 활동하던 그들이 4년 만에 함께 선보이는 전시로 대형 철제 조각과 영상작품이 함께 전시 된다. 후이샤페즈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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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권용주, 바르게살기운동본부 기념비 모각, 2012, 스티로폼 조각, 외부용 수성 페인#C1E7

퇴폐미술전
6.23~8.14 아트스페이스 풀

1937년 나치가 인종, 종교, 정치적 내용을 담은 작품들을 퇴폐미술로 규정하고 작품과 작가를 모욕을 하기 위해 벌인 전시 <퇴폐미술전>의 제목과 방식을 패러디했다. 9명(팀)의 작가가 참여해 사회의 경직된 시선과 편견을 드러낸다. 권용주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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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 조원득 52X45cm제목-요동치다

그 틈
7.7~8.17 신한갤러리 역삼

개인과 사회를 각자 다른 입장에서 조망하는 김선영 이지영 조원득이 모인 전시. 세 작가는 단단하게 구축된 시스템 안에서 수동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 군상 간 괴리를 하나의 틈으로 인식하고 작업으로 틈을 메우려한다. 조원득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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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메-정희우

관찰놀이터
7.2~9.18 블루메미술관

자연을 동경하며 이상세계를 꿈꾸는 정희우 조종성 삐에로&승민C의 마음이 함축적으로 담긴 산수를 미술관에서 재해석한다. 고정되고 확정적 시각에서 벗어나 정신적 공명을 중시하는 몰아이입적 태도의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정희우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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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순실

백순실
7.9~8.28 고려대학교 미술관

차에 관한 송가 동다송(東茶頌) 연작과 클래식 음악을 시각화한 회화작업으로 잘 알려진 중견작가 백순실의 개인전. 이번 전시에서는 베토벤의 곡들을 해석한 35점의 대형 신작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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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GOT STUCK IN THE WALL
7.15~8.6 갤러리 룩스

영화 <YOUTH>에 나오는 ‘감정’에 대한 짤막한 대화로부터 시작된 전시. 작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서로의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본 안옥현과 김병규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가시화할 수도, 간접적으로 숨길 수도 있는 양가적인 형태로 제시한다. 김병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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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필
7.7~29 박여숙화랑

‘그림 그리는 행위’를 통해 사물을 관찰하고 수행성에 이르는 과정으로서의 회화를 구축해 나가는 박종필의 개인전 <Unfamiliar Beauty>.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꽃이라는 소재를 통해 삶의 양면성, 이미지의 존재를 사유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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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철
7.20~9.3 송은아트스페이스

작가이자 전자음악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윤철의 개인전 <몽환포영로전>. 꿈, 환상, 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 등 무상의 이미지를 통해 어떠한 사물도 세계로부터 독립적이지 않으며 세계와의 관계속에서 확장됨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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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석
7.8~31 자하미술관

오윤석의 개인전 <감춰진 기억 ? 낭만적인 숭고>.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인간의 기억 속에 감춰진 내·외부적 요인에 의한 갈등, 공포와 두려움, 그것들로 기인된 여러 다면성에 대한 치유를 작업으로 표현한다.

 

HOT ART SPACE

리우 웨이 개인전
플라토 4.28~8.14

이번 전시는 중국 차세대 작가를 소개하는 자리인 동시에 플라토의 고별전이다. 1999년 개관한 로댕갤러리를 전신으로 하는 플라토는 그동안 국내외 다양한 작가를 소개하여 현대미술의 흐름을 관망할 수 있는 장이 되었다. 플라토의 폐관 소식이 알려지자 미술계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는 플라토가 선택한 마지막 작가는 리우 웨이(??, Liu Wei). 1972년생인 작가는 (1999)으로 데뷔해 상하이미술관 최연소 개인전 작가, 광저우비엔날레(2002), 베니스비엔날레(2005), 부산비엔날레(2008) 등 다수의 미술 빅이벤트에 초청받은 세계적 작가다. 전위적 작업을 펼치는 리우 웨이는 서구 시각에 영향받은 중국의 이미지에 반해 자기반성적 작업을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참을 수 없는>(1999), <풍경처럼>(2004), <하찮은 실수 Ⅱ>(2009~2013) 등 세계적으로 작가의 이름을 알린 작업과 근작이 함께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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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나 (1)

코리아나미술관 소장품 기획전
코리아나미술관 4.7~6.25

전시는 ‘백남준을 회고하다’(사진)와 ‘자인(姿人)-한국·프랑스의 미인’ 2파트로 나뉘어 열린다. 백남준의 작품은 2006년 개관전 이후 10년 만에 수장고 밖 나들이여서 그 의의를 더하고 있다. 또한 여성의 모습을 담은 회화와 조각, 사진 등 코리아나미술관의 정체성과 소장품 연구의 방향을 보여주는 작품도 다수 출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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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원배, 드로잉, 1995~2016

오원배 개인전
갤러리 밈 5.12~6.7

20여 년간 펼쳐온 드로잉, 콜라주와 프레스코 기법을 이용한 신작 6점을 선보인다. 기존 작업이 삶의 부조리와 인간의 실존 탐구를 추구했다면 드로잉 작업은 단순하고 기호화된 이미지로 한층 더 자유로운 형식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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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1)

이지은 개인전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2관 4.20~5.2

중견작가 이지은이 지난 20여 년간 해온 작품들을 선별해 개인전이자 회고전을 개최했다.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와 온 직후 발표한 어둡고 무거운 톤의 추상작품에서부터 밝은 색조로 꽃을 그린 근년의 작품 중 40여 점을 선별해 선보였다. 전체 색감과 그리는 방식의 차이는 있으나, ‘꽃’의 다양한 표정과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작가는 미의 일시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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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효 (1)

2016동시대미감전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 5.4~7.3

<2016동시대미감전>의 첫 작가는 이재효다. 25년에 걸친 작업을 회고하는 전시로 성남아트센터 공연장을 제외한 모든 공간에서 펼쳐진다. ‘Walking with Nature’라는 부제를 단 전시에서 작가는 400여 점의 드로잉과 대표작 130여 점, 그리고 미공개 대형 신작을 선보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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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환 개인전
문화예술공간 예술의 기쁨 4.27~5.21

광주교대 교수로 재직중인 조각가 박정환의 8회 개인전이 문화예술공간 ‘예술의 기쁨’에서 열렸다. <서로보다>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인물 두상작품은 치아가 없으면서도 억척스러운 한식 엄마, 허리가 많이 굽었지만 품위를 지키셨던 수원이 엄마, 마을 농수로를 청소하셨던 말수 적은 아저씨 처럼 그동안 작가가 만난 주변 인물의 모습이다.

EXHIBITION &THEME

행복의나라 (48)

위 함경아 <오데사의 계단>(왼쪽)나무, 폐기물 오브제 가변설치 2007 (경기도미술관 소장) 아래 ‘이면의 도시’섹션 전시장 전경

사회 속 미술 : 행복의 나라
ART IN SOCIETY : Land of Happiness

민중미술을 키워드로 풀어낸 <사회 속 미술: 행복의 나라전>이 5월 10일부터 7월 6일까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계속된다. 이번 전시는 당대의 사회·정치적 이슈를 민감한 시각으로 잡아낸 민중미술 1세대 작가부터 2000년대 이후 활발히 활동하는 이른바 3세대 작가들의 작업을 한곳에 모아 주목받고 있다. 더불어 전시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 ‘민중미술’, ‘포스트민중미술’이란 용어를 제거하고 사회·문화적 시각에서 작품 간의 공통적 맥락을 이끌어내고 있다. 현장을 벗어나 미술관에서 ‘사회 속 예술’이란 이름으로 묶인 이 작업들은 과연 비평의 다양성을 어디까지 확장시켜나갈 수 있을까?

이중적 상징투쟁으로서의 민중미술

김동일 대구가톨릭대 교수

나에게 민중미술은 흡사 유령 같았다. 1980년대 말 집회에서 처음 접한 민중미술은 독재에 대한 저항으로 무섭게 타올랐다. 그 화염은 독재가 타도되었다던 1990년대 초 갑자기 사그라져버렸다. 민중의 시대가 왔다는데 민중미술은 오히려 꺼져버린 것이다. 그 민중의 시대가 이른바 문민정부라는 기괴한 가면 아래 위장된 것이었음이 밝혀진 후에도 그 불길은 다시 타오르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 민중미술은 더 유령 같았다. 누가 민중미술가이고 뭐가 민중미술인지 구별되지 않은 상태에서 ‘풍경화’가 민중미술의 지배양식이 되었다. 제주 바다, 금강산, 오대산, 설악의 자연은 독재에 대한 과거의 투쟁이 화랑에서 환전되는 가장 무난한 방식이 되었다. 화랑에서 성공한 (극)소수 민중미술가의 전시회가 오픈하는 날이면 인사동은 더 스산해졌다. 한때 그들과 함께, 혹은 그들을 따라 민중미술의 화염을 가슴에 품었던 사람들의 좌절이 거리를 배회했다. 2000년대의 민중미술은 더 이상한 유령으로 나타났다. 사회와 예술의 무력함 속에서 더 이상의 나락을 찾을 수 없는 젊은 작가들의 용기가 되살아났다. 많은 사람이 그들에게서 이미 사그라져버린 민중미술의 가능성을 보았고, 이른바 ‘포스트민중미술’이란 호칭을 부여했다. 그들 역시 자신들이 포스트민중미술으로 범주화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1980년대를 계승하지도, 2000년대의 새로운 민중미술도 되지 못한 채 진부한 코미디를 반복하는 듯한 인상이다.
〈사회 속 미술: 행복의 나라전〉은 1980년대와 2000년대 민중미술 사이의 관계성을 복원한다.
그 시도만으로도 이 전시는 훌륭하다! 미학적 ‘사생아’였던 포스트민중미술에 ‘친부’를 찾아준 격이다. 세대를 건너뛴 민중미술가들의 가족사진은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 리슨투더시티의 〈옥바라지골목〉(2016)과 플라잉시티의 〈파괴의 땅에서 할 만한 일〉(2002), 김동원의 〈상계동올림픽〉(1988)은 십 수 년을 사이에 두고 개발과 철거가 반복되는 자본의 논리를 보여준다. 그 어울림은 ‘역사는 반복된다’는 주제로 묶인다. 비슷한 어울림은 ‘이면의 도시’, ‘행복의 나라로’ 섹션에서도 훌륭하게 반복된다. 그러나 그 감동적인 어울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 전시는 과거의 민중미술이 왜 소멸했는지, 포스트민중미술이 선배들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밝히지 않는다. 소멸된 이유도, 다시 호명되는 이유도 모른 채 소집된 민중미술에서 예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미학적 성과를 전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전시장은 1980년대 민중미술에서 늘 과도하게 주인공 대접을 받던 작가들의 진부함과 2000년대 이후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는 세대의 자기만족적인 시도들을 섞어놓았다는 인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한 혼합은 단순한 식상함을 넘어 이 전시가 문제 삼는 ‘사회 속의 예술’이라는 미학적 지평을 허물고 있다. 예술과 사회의 관계는 사회적 현실을 예술의 소재, 주제로 차용한다거나, 예술을 사회운동을 위한 선전선동의 도구로 삼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문제는 예술의 정치성, 혹은 정치의 예술성이다.
정치는 다양하게 정의된다. 카를 슈미트는 정치를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행위로 보았고, 탈코트 파슨스는 목적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하는 행위로 보았으며, 브뤼노 라투르는 네트워크의 재구성으로 보았다. 정치에 관한 서로 다른 서술은 궁극적으로 예술과 사회의 재구성으로 귀결된다. 예술이 사회의 조성을 바꾸고, 그 변화는 다시금 예술 개념의 확장으로 환류된다. 정치란 예술과 사회의 변화를 매개한다. 1980년대 민중미술의 불꽃이 절정에 달했을 때, 민중미술은 예술과 사회를 함께 변화시켰다. 1980년대 민중미술이 소멸한 이유는 민중미술의 지형이 제도권 편입에 성공한 소수의 스타와 정당한 미학적 평가를 거부한 채 민중의 삶 속에 스며들거나, 집회의 선전물로 휘발해버린 익명의 다수로 양극화하면서 예술과 사회의 환류가 깨졌기 때문이다. 민중미술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인정과 성과들을 독점했던 스타들의 ‘배신’과 그에 대한 대다수 민중미술가의 ‘증오’가 상호 작용하면서 민중미술은 거대한 허무의 텅 빈 공동(空洞)으로 황폐해져 갔던 것이다.
민중미술은 이중적 상징투쟁이다. 민중미술은 전시장을 중심으로 한 예술장 내부 투쟁과 이른바 현장으로 호명되는 사회공간에서의 외부 투쟁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그 결합을 통해 예술 개념은 진보했고, 또한 사회공간은 민주화라는 벅찬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민중미술의 제도권 내부 투쟁이 젊은 청년 미술가들의 외부 투쟁을 ‘배신’하고 외면했을 때, 민중미술은 실패했고, 학고재, 가나화랑, 가람화랑의 상품으로 전락해버렸다(난 아직도 그 도록들을 버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2000년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포스트민중미술은 1980년대 민중미술의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다소간 회의적이다. 그것은 이 전시의 한계라기보다는 냉정하게 봤을 때, 포스트민중미술이 아직 예술에 대한 사회의 요구와 사회에 대한 예술의 대응을 담보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성장하지 못한 현실 때문이다. 믹스라이스, 리슨투더시티, 옥인콜렉티브, 노순택, 정윤석, 박찬경의 노고는 여전히 인상적이지만, 현장과 예술의 환류를 지탱하기엔 힘겨워 보인다. 고승욱, 김상돈, 홍성민, 조습의 재치와 유머 역시 후기민중미술의 중요한 성과임에 틀림없지만 주재환이나 오윤의 풍자에 비할 때 뭔가 새로워 보이지 않는다. 이들에게 사회공간의 폭력적 위계구조를 재구성하기 위한 예술의 확장보다는 사회 속에서 과잉 자각된 개별 작가의 자아가 더 도드라져 보인다. 그러한 자아의 확인이 민중미술의 역사에서 중요한 성취라는 데 이견이 없지만, 그 성취는 이른바 예술계가 부여하는 인정과 명예에 쉽게 도취되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들에게 사회 속으로 뛰어들어 사회의 구성을 바꾸는 빅뱅의 폭발점을 기대하기에는 그들의 내면이 여리고 약하고 섬세해 보인다. 그 섬세한 자아는 거친 삶의 현장보다는 전시장이라는 공간에서 더 편안해 보인다. 그들은 어렵게 얻은 인정과 도취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이쯤에서 솔직히 말하겠다. 그저 민중미술을 사랑하고 민중미술가들에게 더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평범한 관객으로서 나는 사실 이런 종류의 전시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과연 ‘전시장’이 그러한 미학과 사회공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예술가들의 가열찬 왕복운동을 포착하기에 적합한 그릇일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 적합하지 않은 그릇이 민중미술의 미학적 파괴력을 합당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이젠 도심보다 더 도심스러운 변두리 아파트 동네 한복판에 세워진 근사한 미술관에서 열리는 민중미술 전시라니. 전시장은 권력을 도입한다. 근사한 미술관의 근사한 전시장이 그렇게 근사해지기 위해서 권력과 자본을 필요로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전시장을 통해 틈입하는 권력과 자본은 실상 상계동에서, 옥바라지 골목에서 철거민들을 거리로 내몰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민중미술가들은 전시장 밖의 거대한 권력과 싸우면서도 정작 전시장을 통해 투영되는 권력 앞에서는 저항하지 못한다. 예술의 미학적 파괴력을 두려워하는 권력과 자본은 늘 그런 식으로 예술과 예술가들을 길들여왔고, 예술가들은 또 그렇게 자신들에 대한 요구를 배신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1980년대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했던 미술가들이 그들이 원했던 민주화된 사회가 도래했을 때 발견한 것은 정작 헐벗고 가난한 상태로 내팽개쳐진 자신의 모습이었다.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미명 아래 정작 자기 자신은 예술가도 운동가도 아니었고, 자신들이 제작한 ‘찌라시’들은 투척된 돌멩이들과 함께 거리를 나뒹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시장으로부터의 호명은 얼마나 달콤했을까? 그들은 그렇게 무력화되어 간다. 예술가들이 그렇게 무력화되어 갈 때 사회를 변화시키는 예술의 힘은 소멸되어 간다. 이미 지난 몇 년간 사회참여형 예술가들이 〈올해의 작가상〉, 〈에르메스 미술상〉등을 수상할 정도로 우리 예술계의 지형이 변화했지만, 그 변화가 무색할 정도로 민중의 삶을 억압하는 권력과 자본의 힘은 커져가고, 예술가들은 돈 앞에 더 교활해져가고 있다. 사실 나는 최근의 이 ‘난데없는’ 민중미술 부흥의 배후가 지속적인 상품의 공급을 요구하는 미술시장과 그 수요를 지금까지 늘 저평가되었던 민중미술로 대응하려는 시장 세력들, 그리고 시장가치와 미학적 평가에 목말라 있는 민중미술가들의 욕망이 공모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물론 시장중심적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그러한 공모를 반드시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오늘날 새롭게 제기되는 예술과 사회의 환류 요구에 대처하는 정당한 방식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민중미술이라는 단어는 근본적으로 미학과 사회공간을 왕복하는 운동을 지칭한다. 민중미술은 그 왕복 운동 속에서 사회공간을 재구성하고 그렇게 재구성된 사회공간은 예술을 재규정한다. 민중미술은 예술과 사회 사이의 환류를 향한 끊임없는 자기 변화를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전시는 매우 제한적으로 읽혀야 한다. 이 전시는 ‘사회 속의 미술’을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그것도 전시장에 적응 가능한 형태만을 소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이 점을 망각할 때 이 전시는 민중미술의 ‘무덤’ 혹은 ‘종말’이라고 회자된 〈민중미술 15년전〉(이하〈15년전〉)이라는 유령의 또 다른 버전에 불과할 수도 있다. 〈15년전〉은 아주 조금만 민중미술적이었던 것들, 혹은 전혀 민중미술적이지 않은 것들에 민중미술이라는 보편적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정작 다수 민중미술가에게서 민중미술을 빼앗아버렸다.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제도미술의 정점에서 행해진 〈15년전〉이 민중미술의 무덤이 되는 역설이 거기에 있다.
1980년대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사회를 변화시키고 예술의 정의를 재규정하고자 하는 많은 시도가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 시도들은 공공미술, 뉴장르공공미술, 커뮤니티아트, 장소특정성미술, 예술행동주의, 상황주의, 스125202.jpg 등으로 개념화되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삶 속에서 권력과 자본의 작동을 관찰, 폭로, 경계하면서 사회 속에 침투해들어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민중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수행되는 예술과 사회 사이의 운동, 그 운동의 결과로서 얻어지는 사회의 민주화와 예술개념의 진보를 적절하게 포착하는 비평적 지평을 확보하는 일이다. 민중미술의 선배와 후배세대를 아우르는 적지 않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전시를 매우 제한적인 범위에서만 인정하는 이유는 우리가 충분히 주목하지 못한 시도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1980년대의 ‘두렁’과 ‘광자협’은 여전히 방치되어 있다. 권력/자본과 대결했던 2005년 〈오아시스 프로젝트〉, 2012년 〈부평구 갈산동 421?1 콜트콜택전〉의 울림은 여전하다.
민중미술이란 어찌 보면 서로 반대편을 비추는 한 쌍의 거울인지도 모른다. 즉 미술을 통해 가능했던 사회의 민주화 그리고 민주화된 사회에서 가능해진 예술의 해방은 하나의 동전을 지탱하는 서로 다른 면들이다. 나는 이 전시를 그 두 면을 잇는 작업의 소중한 일부로서 이해하고 싶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사회 속 예술의 의미를 되묻고 민중미술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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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사회 속 미술 : 행복의 나라〉를 기획한 두 주역
기혜경(왼쪽) 북서울미술관 운영부장과 신은진 큐레이터

최근 민중미술계열 작가 개인전 및 단체전이 연속해서 열리고 있다. 일각에선 서울시립미술관이 ‘민중미술’을 주제로 전시를 열면서 미술시장의 흐름에 편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 시점에 민중미술 전시를 개최한 이유는 무엇일까?

기혜경 비슷한 시기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린 〈가나아트 컬렉션 앤솔러지전〉(5.3~2017.7.31)과 연결해 이번 전시를 보는 시선이 있다. 그 전시는 2001년 가나아트 이호재 대표로부터 기증받은 200점의 컬렉션 안에서 작품을 선정해야 했다. 반면 〈사회 속 미술: 행복의 나라〉는 그 컬렉션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기획전으로서 전시에 부합하는 작업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민중미술이 시장과 국제 미술사 안에서 판을 만들어가는 상황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고민했다. 이번 전시는 시장과 연동한 전시가 절대 아니다. 그렇지만 그 동향과 전혀 무관하게 진행됐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적어도 시장에서 원치 않는 불편한 내용이 있는 작업이더라도 미술사에서,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를 미술관다운 방식으로 풀어내려 했다.
신은진 이번 전시에 출품된 70여 점 중 서울시립미술관 컬렉션이 37점, 그중 가나아트컬렉션은 10점 뿐이다. 미술계라는 프레임을 벗어나 전시를 바라보기를 원했다. 문화사회적인 부분에서 ‘민중미술’을 재조명한다면 건설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번 전시 중 사회비판적 내용을 담은 ‘역사는 반복된다’ 섹션의 작품을 보면 동시대 뉴스 타블로이드에 나오는 사건 사고와 30년 전 이슈가 일치하는 지점이 많다. 세대론이 만연한 시점에서 세대를 넘어 공유하는 메시지가 있다는 점을 부각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연대순의 구성을 피했다. 현재 30대인 젊은 작가와 민중미술 1세대가 30대에 한 작업을 함께 전시했다.

이번 전시는 역사화 맥락을 배제한 의도가 돋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회 속 미술’이라는 거친 범주 안에서 일부 작가는 ‘사회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작가’로 묶기에 한계가 있지 않나?

기혜경 전시명 자체가 다소 거친 것은 사실이다. 민중미술이 작가의 태도 측면에서 지금까지 지속된다는 지점을 보기 위해 제목에서 ‘민중미술’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민중미술’이라는 무게감을 덜고자 했다. 그러면서 사회 속에서 사회에 대해 발언하고 간섭하고 틈을 벌리고 그로부터 새로운 대안을 생각하게 하는 미술의 태도를 묶으려 했다.
신은진 여기서 사회란 ‘시스템 비판’에 가깝다. 국가의 이데올로기에 스며든 무의식적인 권력과 시스템에 대해 발언하는 작가를 보여주고자 한 지점이 있다.

1980년대 활동한 1세대 민중미술 작가들은 거대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취한반면 요즘 30~40대 작가는 대부분 개인의 메시지에서 시작해 사회적 발언을 하고 있다. 이 두 태도가 한자리에 모여 맥락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기혜경 민중미술을 동시대의 흐름으로 보겠다고 했을 때 이러한 전시 구성은 기본적으로 갖는 한계이자 상황일 수 있겠다. 한편으로 1980년대와 1990년대 이후 세대의 작업적 특징을 따로 분리해서 보아야만 하는가? 선배 세대와 후배 세대 작가는 작업을 대하는 태도에 분명 유사점이 있다. 현재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1980년대 작업을 역으로 찾아갔다.
신은진 2004년 이영철 선생이 기획한 〈당신은 나의 태양전〉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다른 분야를 흡수 통합하고, 출구를 열어보려는 노력을 했던 것 같다. 각 섹션별 작가의 태도는 분명 다르다. 1990년대 이후 각자도생이 미술계 흐름이라고 하지만 주재환, 박이소는 집단의 흐름 속에 있는듯하면서도 본인만의 컬러를 보였다. 사사(SaSa)가 1년간 본인이 먹은 설렁탕 그릇 수를 세는 작업을 한다 해서 사회적 메시지를 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1990년대, 2000년대에 들어 작업의 중심이 작가 자신에게로 귀착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사회담론 속에서, 미학의 흐름에서 찾을 수 있다. 박이소, 사사, 양아치, 최정화의 작업을 한 공간에 두고 그들의 스토리 변화를 읽어내면 훨씬 재미있는 전시의 스펙트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현장의 작업을 보여 줄수 있는 부분은 최열의 아카이브, 동시대에서는 현장사진가-대자보식의 텍스트와 사진-의 자료로 현장성을 강화했다. 리슨투더시티가 작가인지 아닌지에 대한 고민들을 넘어서 옥바라지골목에 대한 내용은 지금 이 순간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 미술관으로 들어오는 것에 의의를 뒀다. 이처럼 여러 코드를 읽으려고 했다.

전시에서 신은진 큐레이터의 큐레이팅 색깔이 확실히 드러나는 것 같다. 이전에 기획한 〈서울바벨전〉과 이번 전시를 연결해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신은진 사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서울바벨〉의 ‘형아뻘’ 되는 전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젊은 작가들이 가진 고민이 지금은 지엽적이라고 생각되지만 선배세대 작가들이 가진 고민과 일맥상통하리라 보았다. 큐레이터로서 그들이 작업을 대하는 태도를 비슷한 시각으로 바라본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이번 전시의 중심을 사회적 발언을 하는 1~3세대 작가들의 만남으로 봐야겠다.

기혜경 민중미술 3세대까지의 작가를 함께 다루자고 했을 때 신은진 큐레이터가 이들의 연결고리를 ‘박이소’에서 찾는다고 했다. 박이소라는 키를 통해서 달라 보이지만 같은 작가의 태도를 한곳에 모을 수 있다는 점은 전시의 중심축이다.
신은진 1층에 최민화, 최원준, 노재운 박찬경의 작업이 놓인 곳 바로 위층에 박이소의 〈풀〉이 놓여있다. ‘대안공간 풀’과 ‘그냥 〈풀〉’의 만남. 이번 전시의 숨은 디테일이다.
임승현 기자

EXHIBITION FOCUS ARTSPECTRUM 2016

아트스펙트럼 (63)

위 백정기 <악해독단>(오른쪽) 벽돌, 바셀린, 화강암, 혼합재료 560×400×400cm 2016 아래 박경근 <군대:60만의 초상> 2채널 HD비디오 영상 2016

삼성미술관 LEEUM이 2016년 첫 전시로 〈아트스펙트럼 2016〉을 개최한다. 〈아트스펙트럼전〉은 한국 현대미술의 신진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해 2001년 처음 시작된 격년제 전시이다. 올해로 6회째를 맞았으며 예년과 같이 작가 선정에 리움의 학예연구원뿐 아니라 외부 큐레이터 및 비평가가 참여했다. 선정된 총 10팀의 작가들은 개인사부터 한국의 근현대사까지 폭넓은 주제를 다루며, 회화·조각·영상 등의 매체 작업과 퍼포먼스·사운드·통계 및 그래픽 등을 시각화한 작업을 선보인다. 동시대 미술의 변화 양상을 개성 넘치는 형식미로 승화시킨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5월 12일부터 8월 7일까지 삼성미술관 LEEUM 기획전시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부의 다른 아트스펙트럼

강수미 동덕여대 교수

뒤샹의 ‘레디메이드’ 덕도 아니고 워홀의 ‘팩토리’ 탓도 아니다. 정확히 짚자면 20세기에서 21세기로 이어지는 세계의 기술, 사회, 산업, 경제 조건 변화와 그에 결부된 인간 삶 전반의 변화가 오늘 우리에게 익숙한 ‘예술의 종말(end of art)’ 그리고 ‘무엇이든 미술이 될 수 있다(anything goes)’는 아서 단토 식 미학이념의 뿌리다. 동의하든 않든, 좋아하든 안 하든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남성용 소변기가 예술작품이 되고, 브릴로 세제 상자의 대리/대량 생산이 독창적 창작 방식이 되는 단계를 오래전에 넘어섰다. 현재는 작가의 특정 의도가 효과적이기만 하다면, 미술계에서의 효용 및 이해관계에 부응하기만 한다면 무(無)에서 무(無)로 이어지는 어떤 것도 기꺼이 미술이라고 박수 치는 현실 원칙의 조류 속에 있는 것이다. 예컨대 아무것도 그리거나 만들지 않는 것은 물론 원칙적으로 도판조차 남기지 않으려는 티노 세갈(Tino Sehgal)의 작업이 그 세태의 절정을 보여주지 않는가.
하지만 나는 ‘잘만 하면 아무거나 미술’이 될 수 있는 미술계의 느슨한 자유가 창작자의 쾌락이자 고통이 되는 지점에서 현대미술의 두 번째 국면이 시작됐다고 본다. 무엇을 할 것인지와 왜 할 것인지가 ‘미술’이라는 선험적 원리 아래 미리 주어져 있지 않기/못하기 때문에 작가들은 끊임없이 이것도 되었다가 저것도 되어야 한다. 과거와는 달리 꽤 다양한 배경과 이질적인 기질 및 능력으로도 충분히 미술계에 진입할 수 있다. 다만 그 배경, 기질, 능력을 미술로 적절히 활용할 때만 제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다. 디자인이나 비디오/영화 연출은 기본이고 작곡, 악기 연주, 밴드 활동, 여행, 자료 조사, 빅데이터 분석, 디지털 프로그래밍, 건축, 엔지니어링, 오타쿠 행태, 수집, 디스플레이 및 연출, 컨설팅, 마케팅, 사회운동 등등을 미술로 이전 융합하고 종합 도금하기. 이미 어디선가 누군가 다 한 것 같은 데서 출발하지만, 그로부터 감각적으로나 개념적으로나 아주 작은 차이를 만들어내 동시대 미술계의 유력한 맥락 안에 ‘작품’으로 안착시키기.
삼성미술관 리움이 개최한 〈아트스펙트럼 2016〉은 위와 같은 점에서 지금 여기 한국의 젊은 작가들 미술뿐만 아니라 동시대 미술 전반의 실재를 함축한 시그니처 전시라 해도 좋다. 1990년대 후반부터 지난 20여 년간 국내외 미술계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구축한 현대미술의 미학적 경향 및 물질적/정신적 구조가 거기 뚜렷한 스펙트럼으로 펼쳐져 있어서다. 기획 글에 따르면 리움의 학예연구원과 외부(그러나 더 큰 틀에서 보면 미술계 내부) 전문가들이 “한국 현대미술을 보다 폭넓은 시각에서 조망하기 위해 (…) 작가 선정”에 나서 참여한 열 명/팀의 작가들 각각에서, 그리고 그 열 개의 미술 입면체가 모인 집합적 구성물로서의 전시에서 말이다.

아트스펙트럼 (21) 사본

김영은 <1달러어치〉스피커 3대, 모니터 4대, 드로잉 2점, 흡음재 3 가변크기 2016

<아트스펙트럼>에서 찾은 미학적 특수성
우선 우리가 올해의 〈아트스펙트럼〉에서 한국 젊은 미술가들의 특성으로 인정해야 할 사실은 이전 세대의 어떤 작가들에게서도 발견하기 힘든 복합적 전문 능력과 잡학적 기술이다. 그것은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천부적 미술 재능을 의미하지 않고 다재다능함과도 거리가 있다. 또 복합적이라고 해서 보편성을 띠는 것도 아니지만, 잡학적이라고 해서 수준이 낮거나 쓸모없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전문 능력이란 선천적으로 주어지거나 운 좋게 발현되는 미적 재능 대신, 의식적 학습과 지속적인 자기 훈련 및 실용적 조직화를 통해서 쌓은 현실 능력이다. 그런 이유로 여기 해당하는 작가들은 많은 경우 작가 개인의 특화된 경험과 이력, 창작으로의 에너지 투입과 노력의 정도가 작품의 성과 및 독특한 수준을 결정짓는 바로미터다. 이를테면 보헤미안 예술가처럼 방랑과 기행을 일삼아도 어쩌다 보니 뚝딱 천재적인 작품이 나와 있는 형편이 아닌 것이다. 그와 달리 〈아트스펙트럼〉에 근거해 볼 때, 여기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일명 ‘스펙’을 갖춘 전문직업인 혹은 성실 근면한 연구자의 그것처럼 인풋과 아웃풋의 인과관계가 투명에 가깝다. 참여 작가 중 김영은, 옵티컬 레이스, 제인 진 카이젠이 그에 해당하는데, 특히 김영은과 그녀의 〈1달러어치〉 사운드&비디오 설치작품이 이를 잘 보여준다. 어릴 때 바이올린을 배웠고, 대학에서 전공 외로 밴드활동을 했고, 국내 대학에서 조각과 매체예술을 전공한 후 네덜란드로 유학을 가서는 음향학(sonology)을 공부한 배경, 그간 쌓은 전문능력은 김영은의 작업 이력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고, 최근에는 〈1달러어치〉로 구현된 것이다. 그 배경 및 능력은 김영은이 시각예술을 청각을 중심으로 자기 조직화하는 데, 소리를 점/선/면/볼륨 등 조형적이며 공간적인 조건들로 교환시키는 데, 디지털 음원 형태로 1.29달러에 팔리는 비물질의 노래를 두부 썰 듯 길이, 높이, 폭으로 절합시키는 데 스며들어가 있다. 그리고 〈1달러어치〉는 애초 계산상 1.29달러짜리 음원을 1달러만큼만 구매하는 것인 만큼 정직하게 분절되는 가사, 파쇄 음정, 삭제된 주파수 대역 때문에 얇아진 소리 형태로 시청각화돼 작가의 의도를 감상자에게 전달한다.
다음, 우리가 현대미술계의 실제적 경향이자 한국 젊은 작가들의 특성으로 반드시 지목할 점은 매체에 대한 다원적 접근이자 사용 역량이다. 로잘린드 크라우스나 W. J. T 미셸 등 서구의 여러 이론가가 이미 논한 것처럼, 1960년대를 기점으로 미술에서 매체는 장르적 특성과 매체 자체의 속성이 일치하는 매체특정성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주제, 형식, 의도, 용도, 방법, 기교 등에 따라 얼마든지 광범위해지거나 이질적으로 혼용돼도 좋은 포스트 미디엄의 국면으로 진입했다. 하지만 그 국면은 2000년대 들어 미술의 다른 어떤 역사적 시기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 복합화, 심화했다고 봐야 한다. 그 맥락에서 나는 지금의 미술 매체 환경을 ‘예술 매체의 헤테로토피아(artistic medium’s heterotopia)’라 부르고 싶다. 이 헤테로 토피아적 매체 환경에서 어떤 작가들은 기존의 사실들, 다양한 출처의 이미지들, 기록 파편들, 익명적 정보들, 이질적 객체들을 리믹싱, 리포매팅, 트랜스포팅, 레트로 컨버전스 하는 데 열중하고 능수능란한 수준이다. 〈아트스펙트럼〉에도 여지없이 이 같은 면모를 여러 작품에서 발견한다. 앞서 김영은의 경우도 그렇지만 명시적으로는 박민하, 백정기, 안동일, 제이 진 카이젠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의 작품은 시각적으로는 완벽하게 재현되지 않는 작가의 작업 의도, 매체 사용의 목적 및 논리를 창작의 배경 내러티브로 전제한다는 점에서 대체로 개념적 미술로 분류할 수 있다. 그 중 박민하의 〈리믹싱 타임스페이스〉는 우주를 키워드 삼아 20세기 중반 이후 미국(비단 미국뿐일까마는)의 우주개발 열망과 그 실패 또는 부정성의 과정을 본인의 탐사 영상과 기성 SF 영화의 다수 풋티지로 리믹스해 만든 한 편의 영화다. 제이 진 카이젠이 취한 방법론도 크게 보면 박민하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작가의 개인사가 작업의 핵심 기저라는 점에서, 자신의 개인사를 한국인 해외 입양, 냉전기 아시아 디아스포라, 일본군 성노예, 제주 4·3항쟁 같은 역사적/동시대적 문제들과 구조적으로 엮어 탐구한 후 비디오(역사 자료, 인터뷰, 답사 등의 필름) 설치 및 포스터 제시로 형식화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지면상 모두 논할 수는 없지만 〈아트스펙트럼〉에서 헤테로토피아적 매체성을 띠는 이 작가들의 특이성은 다양하고 이질적인 매체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최종 작품이 예술작품으로서의 미적 기능으로 소급된다는 점이다. 이는 빈 대학의 교수이자 미술비평가인 자베트 브흐만이 미술의 매체특정성과 그 이후를 “기록, 정보, 소통, 참여, 상호작용 등 매체의 특별한 [사용 및] 기능”(Sabeth Buchmann, 《The (Re)Animation of Medium Specificity in Contemporary Art》)에 따라 분류한 점에 비춰보면 다소 제한적이고 내부 지향적인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아트스펙트럼〉에서 주목할 한국현대미술의 미학은 여기 젊은 작가들이 사회현실과의 접점 맺기를 당연히 필요하며 적극적으로 수행해 갈 미술의 미션으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나아가 예술과 삶/사회의 결합을 꿈꿨던 서구 20세기 아방가르드의 부르주아적 방식을 답습하는 대신 자기 현실의 날것 상태 세부에서, 한국 사회의 비린내 나는 생태에서, 척박한 대한민국 삶의 생활 구조에서 작품의 내용을 구상하고 미학적 형식을 결정짓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사실 이번 〈아트스펙트럼〉에 참여한 열 명/팀의 작가 모두가 그런 속성을 공유한다고 할 수 있지만, 특히 옥인 콜렉티브, 박경근, 옵티컬 레이스의 작업에서 그 특수성은 두드러진다. 옥인 콜렉티브는 거대한 마루와 언뜻 보면 미니멀리즘 영상 같은 모션 그래픽으로 이뤄진 〈아트 스펙트랄〉설치를 통해 현대미술계 내부의 작가이자 사회의 생활인으로서 딜레마에 빠진 이들의 존재를 문제 삼는다. 박경근의 영화 〈군대: 60만의 초상〉은 이 전시의 최고 수작이라 평할 만하다. 그가 2010년 〈청계천 메들리〉에서부터 파고든 한국 근현대사의 미시적 실재는 그 영화에서 한국 사회 폐부 깊숙이 각인된 군대문화와 걸 그룹처럼 춤추는 전도사 소녀들 앞에서 넋을 잃는 까까머리 훈련병들의 얼굴을 횡단하며 트리밍 되기 때문이다. 옵티컬 레이스의 경우 그래픽디자이너와 “정보 시각화 연구자”(?)가 한 팀을 이뤄 한국 사회의 여러 현상을 통계/시각화하는 식으로 미술을 한다. 이 전시에서 이들이 건드린 현상은 1979~1992년에 출생한 이들(에코세대)의 〈가족계획〉이고,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그 현상은 부모와 자녀의 소득, 결혼, 주거, 미래 설계 등이 걸려 있는 한국 사회의 복잡한 당면 문제로서 전시를 통해서는 수치를 담은 원, 막대그래프 등으로 그래픽 처리되었다. 이들 작품은 이전 세대의 사회적 미술과 비교하면 문맥이 훨씬 정교하고 담론이 풍부해졌는데 그와 동시에 시각적 감상의 대상으로서도 세련된 수준을 자랑한다. 물론 그 점이 지나치면 사회 참여적 예술에 필수 조건인 ‘신뢰’에 관한 한 민감한 지뢰가 될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결국 무엇이든 미술이 될 수 있는 예술이데올로기와 전략이 난무하는 현대미술계에서 〈아트스펙트럼〉 참여 작가만이 아니라 지금 여기 거의 모든 작가와 그/녀의 작업이 미술에 대한 신뢰와 함께 절묘하게 맞춰야 할 감각의 다른 논리지만 말이다. ●

아트스펙트럼 (75) 사본

이호인< The Tower > (왼쪽) 캔버스에 유채 227.5×162.2cm 2015 <다리를 건너는 자들> (오른쪽) 캔버스에 유채 227×181.6cm 2016

 

EXHIBITION TOPIC

서울 강남구 언주로에 새로운 문화공간,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Platform-L Contemporary Art Center)가 들어섰다. 개관 기념전으로 중국의 양푸동과 한국의 배영환의 개인전이 열린다. 양푸동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세 여성과 사슴 등에게 투영해 표현했으며, 배영환은 동시대를 살면서 느끼게 되는 상실감과 억압 등을 새로 은유하였다. 전시는 8월 7일까지.

나선형 역사 속에 비친 남성적 향수(鄕愁)

진휘연 한예종 교수

한 공간에서 동시에 열린 두 개인전에서 한국과 중국의 중견작가가 신작을 선보였다. 양푸동은 오프닝에 맞춰 마련된 작가와의 대화 시간에, 자신의 작품세계와 신작에 대해 비교적 상세한 설명을 들려줬다. 중국 근현대화와 경제적 팽창에 따른 도시화와 서구화, 그리고 중국 역사의 단면을 세계미술의 흐름에 근거해서 비디오와 설치, 사진으로 제작해온 작가는 이번에 차이추성 감독의 1935년 영화 〈신여성〉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로 〈천색: 신여성 II〉를 제작했다.
신여성은 타지역, 특히 발달한 서구의 영향으로 달라진 옷차림을 하고, 전통이나 관습에 저항하는 모습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 정치, 경제, 문화적 지위 향상이나 활동 영역의 확장은 물론, 가정 안에서의 역할 변화, 그것을 둘러싸고 진행되는 타자의 수용을 아우르는 복잡하고도 총체적인 인식을 포함할 뿐 아니라, 변화를 선도하는 담론의 주체로서 인정될 때 신여성은 현재진행형 존재가 된다,
그러나 양푸동은 새로운 매체의 시대에서 만나는 여성 이미지로 신여성의 범주를 규정하고 있는 듯하다. 광고나 잡지에 등장하는 여성의 멋진 외모와 상품과 연결된 이미지들, 핀업걸들을 연상시키는 행동이나 포즈를 따라 하는 모습으로 그려낸다. 그의 작품 속 신여성은 결국 대중매체에서 반복해 노출되는 여성의 이미지에 가깝고, 매체가 그것을 재생산하는 방식에 대한 관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런 점은 이미 1970년대 후반 신디 셔먼의 작품 〈무제: 영화스틸〉에서 다뤄졌고, 이후 여러 작가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여성 둘이 몸에 밀착된 짧은 옷차림으로 서로의 몸에 손을 대고 있는 장면이나 비키니를 입고 과장된 움직임으로 발랄함과 젊음을 드러내는 모습, 화면 밖 관객을 강렬하게 응시하는 모습 등을 취하며, ‘여성성’과 대중매체의 이미지 체계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발전해왔음을 시사하고 있다.
양푸동은 남성 시선의 타자로서 존재할 뿐 아니라, 매력의 주체로서 여성의 자의적 태도를 과장되게 표현함으로써, 소위 여성성, 아름다움, 젊음의 허구성을 드러낸다고 했다. 매체의 선정성을 암시하지만, 동시에 여성 스스로가 이미지 제작의 주체로서 모든 장면을 연출하고 있음도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그의 신여성은 신디 셔먼의 작품 속 여성들과 또 다른 측면을 갖는다.
눈에 보이는 것이 강렬할수록 그 뒤에 숨은 허상이 감지되지만, 작품은 실체가 아닌 것을 드러내기보다는 허구를 향한 여성과 매체의 양방향 욕망에 대한 포착이란 점에서 흥미로웠다. 무리 지어 포도를 기어가는 작은 벌레들에서 그의 의도는 절정을 맞는다. 서구 정물화의 전통에서 제기된 ‘베니타스,’ 허무함과 삶의 유한함이란 경구를 빌려와서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경계이자 유희의 함정을 지적한다.
장면마다 프레임의 시간을 조절하고 소리를 더함 으로써 극적이고도 흡입력 있는 영상 작품을 소개해온 작가는 중국 특유의 미적 감각, 여성에 대한 전통적 미학의 유산과 새로운 취향 간의 충돌도 담아낸다. 고대 진나라 황실에서 유래된 〈위록위마(謂鹿爲馬)〉를 기초로 한 〈사슴과 말〉에선 진짜처럼 보이는 사슴 주위를 빙빙 도는 말의 모습에서 2000년의 시간차를 두고 이어지는 중국의 역사와 예술적 감성의 연대가 부각되기도 한다.
경제적 부흥으로 사회 변화가 급격한 곳에서 여성의 이미지는 언제나 전면에 나타나는 기호가 된다. 작가는 중국 여성을 담아내는 매체의 역사적 흐름을 전제하면서도 이것을 어느 시기에도 보편성을 가질 수 있는 상황으로 전환시키려했다. 그래서 이들은 서양 기원의 옷차림에 중국 전통의 머리모양을 결합한, 모호하지만 동시에 탈지역적, 탈시간적 존재로 각인된다.
그러나 현재의 눈과 과거 사이의 거리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무수한 변수가 양푸동 작품에서 점차 정형화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여성과 매체, 그리고 진실과 허구라는 익숙하고도 반복적인 주제 너머의 무엇을 제시하기에 이번 작품은 매우 예스러워 보였다. 주제를 압도하는 감각적 영상도 이미 익숙한 느낌이다. 진짜와 가짜가 함께 존재하기 위해 설정된 구분과 분리의 경계가, 아슬아슬하게 숨었다 드러나기를 반복해야 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경계와 거리가 모두 너무 분명하고도 꾸준했다.

양푸동 〈천색: 신여성Ⅱ〉 5채널 HD 컬러 비디오 설치 12~15분 47초 2014

양푸동 〈천색: 신여성Ⅱ〉 5채널 HD 컬러 비디오 설치 12~15분 47초 2014

양푸동 (3)

정제된 공간에서 잠든 반항의 날개
시사적이고도 무게 있는 주제를 능숙하게 비튼 또 다른 작가, 배영환은 〈새들의 나라〉라는 낭만적 제목을 선택했다. 배영환은 자유와 억압, 권력과 욕망이라는 보편적 화두를 다룬다. 영상, 조각, 드로잉, 설치 등 입체적인 형식을 갖춘 전시에서 깃털 옷을 입은 댄서가 크로마키 배경에서 춤추는 모습을 촬영해서 〈추동추사〉란 동영상 연작으로 제작했다. 마치 새의 깃털만이 즉흥적으로 움직이듯 역동적인 모습을 담았다. 북소리의 빠른 비트에 맞추어 움직이는 깃털은 생명, 에너지, 기운, 자유의 상징처럼 보인다.
아래층의 〈말, 생각, 뜻〉과 〈사각 지구본〉은 함께 설치돼 있어서 마치 한 작품처럼 느껴진다. 눈금자 위에 눈을 가린 채 앉아 있는 큰 앵무새는 현실을 거부하는 존재이자 복종을 강요하는 권력의 실체일 수도 있고, 날기를 희망하지만 가린 눈 때문에 제한되고 억압된 세계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 주변에는 네모난 입방체 위에 대륙과 바다가 뚜렷하게 구분 돼 표시된 변형 지구본들이 놓여 있다. 진실을 거부하고, 자신의 세계에 빠져서 평평한 지구만을 신봉했던 과거 인간의 잘못된 신념, 거짓된 착각에 대한 작가의 일갈이다. 이번 전시에서 소리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자 작품의 한 부분이었다. 빠른 비트의 북소리는 경쾌한 움직임을 원시의 힘처럼 느끼게 하고 확성기와 라디오에서 나오는 각국의 뉴스들도 일상이 주는 소음과 정보의 간극을 강조한다.
배영환은 깨진 소주병 조각들로 화려한 샹들리에를 만들고, 각성제로 유행가의 가사를 적거나 악보를 만들면서 권력의 가시적, 비가시적 억압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애정어린 시각과 낭만적 감성으로 제시해왔다. 시각, 촉각, 청각을 모두 자극하는 그의 작품들에서 주제의 무게와 감각적 측면은 늘 균형을 맞춰왔다. 자유로운 움직임을 통해 제도의 모순과 통제를 거부하려는 그의 의도는, ‘지금 이 시간’이라는 시사적 관점과도 연관된다. 다만 매우 설명적이고 친절한 작품과 지나치게 정돈된 표현에서, 배영환의 이번 작품들은 새로운 변형을 앞두고 있다고 느껴졌다.
이 두 작가의 개인전은 플랫폼-엘의 개관전이라는 점 외에는 공통점이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볼 때, 현대사회에서 매 순간 마주치는 매체의 힘과 시민 간 상호성을 담보하고, 과거부터 연속성을 갖는 시간 안에서 오늘 이 시점의 문제, 역사의 아이러니를 이미지화한다는 점에서 큰 공통점을 갖는다. 또한 감각적, 감성적 표현과 만듦새도 닮아있다. 그런데, 이들이 분석한 역사와 이미지에는 남성 시각의 편향성도 존재한다. 보이는 것 너머에서 작동하던 권력으로서의 남성 실체에 대해 큰 비판 없는 수용은 동시대 억압과 모순 안에서도 이어질 뿐 아니라, 더욱 견고한 역사화 과정을 거치게 된다. 특히 양푸동의 작품들, 자본이 요구하는 여성의 이미지에서는 허구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 드러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여성들의 욕망만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배영환 작품에서 권력과 자유라는 구조 안에서 춤추는 주체의 모습 역시, 체제 안에서 이미 용납되는 수준이자 지극히 낭만적인 반항의 표현으로 보인다.
유사한 궤도를 도는 역사의 흐름이 언제나 확장된다고 믿는다면, 이 작가들의 낭만적 감성이 또 다른 변형을 준비한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출발점에 선 미술관 역시 여러 모양의 충돌을 수용할 수 있는 큰 시각의 기관이 되길 기대해본다. 지나치게 깔끔해서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을 듯한 공간의 성격도 앞으로 도전받아야 할 부분이었다. ●

배영환 (15)

배영환 〈말, 생각, 뜻〉 혼합재료 210×225cm 2016

배영환 (9)

배영환 〈추상동사-Can you remember?〉4채널 영상 2016

 

WORLD TOPIC| SHANGHAI Huang Yongping

 

황용핑 (40)

위 머리(头)> 객차, 철로, 동물박제 가변설치 2011~2016 2011년에 제작된 < Leviathanation >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당시 베이징에서 선보인 은 9.3m 차고와 머리가 없는 동물 40마리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번 작품에는 ‘좌회전 갈림길’ 철도를 함께 설치했다. 아래 < 곡마단(马戏团) > 나무, 대나무, 동물박제, 레진, 철 2012

<뱀 지팡이 Ⅲ: 좌회전 갈림길(蛇杖Ⅲ:左开道岔)>(3.18∼6.19)로 명명된 황융핑(黄永砅)의 개인전이 상하이 동시대예술박물관(上海当代艺术博物馆)에서 열렸다. 전시명은 익히 알려졌다시피 그리스·로마신화에 바탕을 두고 있는바,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순적 상황을 제시한다. 큰 스케일의 설치작업으로 유명한 작가는 일종의 경외감까지 자아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가가 직면한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그 궁금증을 풀어보자.

세상의 모든 충돌

권은영 예술학

중국 동시대 예술의 포문을 연 ‘85신조’ 미술운동의 대표적 단체 중 하나인 ‘샤먼다다(厦???)’의 중심에 서 있던 황융핑(?永?, 1954~)! 중국 저장미술학원(현 중국미술학원) 유화과를 졸업한 황융핑은 1989년 파리 퐁피두센터의〈대지의 마법사전〉을 계기로 프랑스로 건너가 정착했다. 그리고 10년 뒤, 1999년 그는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 대표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가 후한루(侯瀚如)기획으로 3월 18일부터 6월 19일까지 상하이 동시대예술박물관 역사상 최대 규모의 설치작품을 선보이며 대규모 개인전을 연다.
상하이 동시대예술박물관 개관 이래 최대 규모의 설치작품이 등장했다. 바로 40미터에 이르는 황융핑의 〈뱀 지팡이Ⅲ(蛇杖Ⅲ)〉가 그 주인공이다. 〈뱀 지팡이〉는 이번 전시의 제목이자, 황융핑의 국제 순회전으로, 본래 2014년 로마 소재 이탈리아 국립 21세기예술박물관(MAXXI)에서 선보인 바 있는 작품이다. 당시 황융핑은 로마 지역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어, ‘종교 대항’이라는 주제로 총 8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후 그는 자신의 개인전을 브랜드화하여 지난 2015년 베이징 소재 훙좐미술관에서 〈뱀 지팡이Ⅱ〉를 개최했다. 각각의 전시는 단순한 순회전이 아니라, 매번 소주제를 가지고 구성되는데, 두 번째 베이징 전시에서는 ‘영토 논쟁’을 주제로 했다. 왜냐하면 당시 중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영토’는 뜨거운 감자였기 때문이다.
3회를 맞는 올해 상하이 전시에서 기획자 후한루는 ‘좌회전 갈림길(左?道?)’을 통해서 세계 통치 역량의 운명에 대해 비판적 토론을 시도한다고 밝히고 있다. 가령 세계 경제체제와 중국의 경제체제는 상이하여, 여전히 완벽한 호환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또한 세계 대테러 공조는 또 하나의 세계 통치체제의 역량을 시험대에 올리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좌회전 갈림길’은 오늘날 세계의 흐름 속 우리의 운명’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갈림길’은 앞으로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표상이다. 세계화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제 지구 반대편 사건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없으며, 유일무이한 정답과 이별한 지 오래다. 선택의 홍수 속에 사는 우리에게 ‘좌회전 갈림길’은 어쩌면 매일 맞닥뜨리는 우리 일상의 단편일지도 모른다. 이번 상하이 전시는 총 25점의 작품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는 첫 로마 전시 규모와 비교해보면 약 3배에 달한다.
줄곧 동서양의 문화 관계, 인간과 동물의 관계, 이데올로기 충돌의 표현 방식 그리고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작업을 해 온 황융핑에게 〈뱀 지팡이〉 속 뱀은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뱀과 용은 신화 및 종교 경전에 등장하며 지식과 지혜 그리고 동시대 공포와 기만 등 모순적인 의미를 보여줬다. 결국 그의 뱀은 동서양 문화의 접점에서 이데올로기의 충돌을 보여주는 표상인 셈이다. 또한 전시장에 대단한 존재감으로 등장하는 그의 〈뱀 지팡이〉는 관람객에게 일종의 경외감을 자아내며 문화 부호 자체가 가지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사색하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이는 〈머리(?)〉작품은 25도로 기울어진 채 설치된 높이 7미터, 길이 11미터의 대형 설치작품이다. 〈머리〉는 본래 2012년 추즈제(邱志杰)가 기획한 〈상하이 비엔날레〉를 통해 상하이 동시대예술박물관에서 선보이고자 기획안이 만들어졌었다. 하지만 당시 실현되지 못했다가, 2016년 이번 개인전을 통해 비로소 현현되었다. 〈머리〉 작품이 이번 전시에서 갖는 의미 중 하나는 전시의 소주제 ‘좌회전 갈림길’의 은유라는 점이다. 기차의 한 끝에 이어진 철도는 두 갈래로 갈라지며 한 쪽은 에스컬레이터, 다른 한 쪽은 계단에 이어지며 동선으로 연결되고, 관람객으로 하여금 선택의 기로에 서게 한다. 갈림길에서 좌회전할지 우회전할지 말이다.
〈머리〉에는 총 41마리의 머리 없는 동물이 등장한다. 작가는 “머리가 없는 동물은 일종의 위기감을 자아내지만 개체는 각자 따로 존재하며 사실 각자의 의미를 가진다”고 강조한다. 본 전시에는 머리가 없는 동물이 〈머리〉 작품 외에도 몇 번 등장한다. 전체 전시에는 총 75마리의 몸통밖에 없는 동물이, 〈머리〉, 〈곡마단(???)〉, 〈부가라치 산(布加拉什)〉 세 작품 속에 등장한다. 75마리의 동물 머리는 또 어디에 있을까? 작가는 2층 빨간 커튼 뒤 〈우두머리〉 작품 속에 동물의 머리들로만 구성된 작품을 배치하여 연결고리로 삼았다. 개체의 존재성을 강조하며, 그들 각자의 의미를 언급했던 작가의 이야기에서 대중사회 속 소시민의 존재와 그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이렇게 황융핑의 작품에는 동물 혹은 곤충의 형상이 자주 등장한다. 후한루는 1990년대 초 〈황화(??, Yellow Peril)〉에서 처음으로 메뚜기 형상이 등장했다고 회고한다. 여기서 황화는 황색 인종이 서양 문명을 압도한다는 백색 인종의 공포심을 함의하는 단어로 동양인을 의미한다. 당시 황융핑은 중국과 기타 문화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메뚜기를 이용하여 그는 중국인과 피식민자의 편견과 고정관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즉, 동물의 형상을 통해 양자 대립의 관계뿐만 아니라, 명확한 일대일 대입이 불가능하게 서로 뒤얽힌 복잡한 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해외에서 많은 활동을 하는 황융핑은 사실 중국 미술사의 핵심 인물이다. 1989년 프랑스로 건너가기 전까지 그는 중국에서 ‘샤먼다다(厦???)’라는 미술 단체를 조직하여 중국 미술사에서 전무후무한 파격적이고 전위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중국 저장미술학원을 졸업한 그는 저장(浙江)성 인근 푸젠(福建)성 샤먼(厦?)시에서 린춘(林春), 린자화(林嘉?), 차이리슝(蔡立雄), 자오야오밍(焦耀明) 등과 함께 ‘샤먼다다’를 조직했다. 단체 이름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이들은 다다이즘 정신을 따르며, 부정, 부조리, 저항, 허무주의 색채가 가득한 작품을 쏟아낸다. 이들이 대륙에서 큰 주목을 받은 계기가 된 것으로 단연 1986년 11월 23일 〈분소사건〉(焚?事件)을 들 수 있다. 당시 황융핑이 이끄는 샤먼다다 그룹은 “예술을 제거하지 않으면, 생활도 안정될 수 없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자신들의 작품을 샤먼신예술광장(厦?新????)에서 소각하는 행위예술을 단행한다. 이렇게 중국 미술사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긴 황융핑의 이번 전시는 미술인들에게 중국 동시대 예술의 선봉에 있던 ‘자랑스러운’ 작가의 금의환향 전시로 포장되어 더욱 큰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정치적인 목소리가 담긴 작품도 적지 않은 이번 전시에 대해 중국 대륙의 예술계는 선배 작가에 대한 존경과 함께 매우 호의적이다. 전설적인 샤먼다다의 중심 인물의 상하이 동시대예술박물관 역사상 최대 규모의 설치 작품 전시일 뿐만 아니라, 후한루와 황융핑의 만남에서부터 본 전시는 개막 전부터 대륙 미술계에서 회자되었으며,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신작으로만 구성된 개인전이 아닌 구작이 다수 포함되었고, 〈뱀 지팡이〉는 세 번째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좌회전 갈림길〉은 중국 미술 애호가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호평을 받는 데 성공했다. 물론 〈뱀 지팡이〉는 매번 다른 소주제를 앞세워 새로운 이야기를 이끌었으며, 최근 연이은 테러 사건으로 ‘방향성’에 대해서 많은 이가 고민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과도 밀접하기에 더욱 큰 공감대를 불러일으킨 것은 아닐까? 이번 황융핑의 개인전을 통해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리는 청량함마저 느꼈다. ●

 소가죽, 양피, 대나무, 나무, 철 1570×1260×700cm 1997,사진 왼쪽은  알루미늄 2014 전시장 1층 가장 오른쪽에 설치된 화면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작품은 이다. ‘祸’는 냄비를 뜻하는 단어로 양 무리 속에 우뚝 솟은 소를 배치해 ‘양 냄비’ 속 소 한 마리를 비유한다. 소가 소를 먹어 걸리는 병의 원인을 신화적으로 해석해 사람이 소를 먹고, 소가 양을 먹고, 양이 사람을 먹는 구조로 인간의 잔혹함을 역설적으로 꼬집고 있다

< 양과(羊祸) > 소가죽, 양피, 대나무, 나무, 철 1570×1260×700cm 1997,사진 왼쪽은 <뱀 지팡이(蛇杖)> 알루미늄 2014
전시장 1층 가장 오른쪽에 설치된 화면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작품은 <양과(羊祸)>이다. ‘祸’는 냄비를 뜻하는 단어로 양 무리 속에 우뚝 솟은 소를 배치해 ‘양 냄비’ 속 소 한 마리를 비유한다. 소가 소를 먹어 걸리는 병의 원인을 신화적으로 해석해 사람이 소를 먹고, 소가 양을 먹고, 양이 사람을 먹는 구조로 인간의 잔혹함을 역설적으로 꼬집고 있다

 앞에서 포즈를 취한 황융핑

<양과> 앞에서 포즈를 취한 황융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