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critic 

EXHIBITION FOCUS 감각과 지식사이

미디어와 테크놀로지의 위력 사이

이수정 |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

 

피어스 바르네크&매튜 비더만 〈퍼스펙션〉 컴퓨터, 프로젝터, 스피커 2015 패턴을 맞추려 시선을 움직여야 하는 관람객에게 사운드를 들려줘 공간인지에 혼돈을 불러일으킨다. 이를 통해 관람객은 공간에 대한 재인식의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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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아트에 있어 테크놀로지는 양면의 성격을 지닌다. 인류의 지금을 최신의 문법으로 보여주는 훌륭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적절하냐 아니냐에 대한 판단은 보류되고 있기 때문이다. 〈감각과 지식 사이전〉(3.2~25,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바로 그러한 테크놀로지를 대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전시라 할만하다. 경외와 반성, 낙관과 부정 혹은 비판의식이 뒤섞여 있으니 말이다. 이는 미디어아트가 우리의 현재를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 꽤 괜찮은 리트머스지(紙)임을 증명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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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비더만&마르코 펠리한 〈우린 그 무엇도 당연하게 여길 수 없습니다-경각심과 지성을 갖춘 시민사회 건립에 대해〉 컴퓨터, 전파발생기, 안테나, 프로젝터, 사운드 2016~ 글로벌통신을 통해 수집한 개인정보 악용 일면을 드러낸다.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군산업복합체 구조를
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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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문화전당 전시협력감독으로 <감각과 지식사이전>을 기획한 아베 카즈나오는 시카타 유키코와 함께 1990년대 초부터 2001년 폐관 때까지 캐논 아트랩에서 캐논 사의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아트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야마구치시의 문화 교류 플라자 설립을 준비하는 연구자 그룹인 Soft Study Group을 이끈 일본의 대표적인 미디어아트 전문가이다. 10년 이상의 준비기간을 거친 뒤 ‘문화 교류를 위한 플라자’는 2003년 ‘야마구치 시립예술정보센터’(Yamaguchi Center for Art and Media, YCAM)로 개관했고, 아베 카즈나오는 YCAM의 학예실장과 예술감독을 맡아 지난해까지 국제적인 미디어 아트센터로서 YCAM의 활동을 이끌어왔다. 개관 기념 프로젝트인 라파엘 로자노 헤머의 <Amodal Suspension>(2003), 작곡가 류이치 사카모토와 미디어 아티스트 시로 다카타니의 협업 <LIFE – fluid, invisible, inaudible…>(2007), 세상을 떠난 세이코 미카미의 <Desire of Codes>(2010) 등 수많은 작품이 아베 감독과 interlab의 지원을 받아 탄생했다. 2000년을 전후해 영국 리버풀의 FACT, 일본 도쿄의 NTT ICC, 센다이 미디어테크, 한국의 아트센터 나비, 독일 카를스루에의 ZKM 등 세계 각지에서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인터넷 기술을 활용해 예술문화를 연결하는 예술적 실험이 진행되고 전담 연구 기관이 탄생했다. 캐논 아트랩과 YCAM은 선두 기관으로 새로운 기술의 예술적 수용과 접목을 이끌어왔다. 특히 야마구치시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YCAM은 국제적인 예술가와의 협업뿐 아니라 지역사회 구성원, 특히 아이들이 비판적이고 창의적으로뉴미디어를 체험할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 마련에도 집중해왔다. 즉,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어떻게 실제 삶에 연결할지, 예술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에 대한 고민이 그 속에 담겨 있다. 2014년 8월에 YCAM에서 열린 <Localizing Media Practice>는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달라진 관심사를 반영하고 있었다. 이 날 아베 감독의 발언은 대재난 앞에 제기된 근원적인 질문을 담고 있었다. 혁신성과 실험성, 즉 새로운 기술에 대한 실험보다 지역 커뮤니티, 그리고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지가 이날 세미나의 주요한 화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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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치 사카모토&다이토 마나베 〈세싱 스트림-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컴퓨터, 센서보드,전자파, 사운드 2014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와 미디어아티스트 다이토 마나베의 협업. 비가시적인 신호를 가시적, 청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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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과 지식 사이전>은 1990년 초부터 30여 년 동안 공적 기관에서 새로운 기술과 여러 분야의 예술가, 창작자를 연결하고 실험적인 작품을 제작하도록 지원해온 아베 감독의 그 깊은 반성과 고민이 어떤 결과를 맺었는지 보여주었다. 참여 작가들은 캐논 아트랩에서 함께 작업했던 마르코 펠리한부터 2014년 YCAM에서 <Promise Park Project>를 통해 인연을 맺은 문경원까지 대부분 아베 감독과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던 작가들이다. 신기술에 대한 경외감이나 낙관주의는 사라졌고, 기술과 미디어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과 인문학적 분석, 인류의 삶의 조건에 대한 고민과 비전을 담은 작품들이 전시의 주를 이루었다. 오픈소스 라이브러리인 오픈프레임웍스 커뮤니티 매니저이자 미디어아티스트인 카일 맥도날드의 작품 <군중 완벽하게 묘사하기>는 런던 버밍엄 빅토리아 광장, 광주 폴리, 네덜란드 담 광장 등 여러 지역의 영상에 대해 사이트 접속자들이 직접 특정 인물을 지정하여 묘사하고, 웹으로 공유할 수 있는 작품이다. 전시실 입구에서뿐 아니라 웹(www.exhaustingacrowd.com)으로 접속할 수 있다. 역, 광장, 분수대처럼 촬영된 장소는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자신이 촬영되고 있다는 사실도, 그 영상에 대한 타인의 묘사가 웹으로 공유된다는 사실도 미처 인지하지 못할 것이다. 2015년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감각과 지식사이>를 통해 광주의 지역이 추가되어 확장되었다. 도시 풍경과 인간 군상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군중 완벽하게 묘사하기>와 달리, 류이치 사카모토와 다이토  마나베의 <센싱 스트림-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은 일견 추상적으로만 보인다. 사운드와 추상적인 선과 파장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사실 ‘전자파’라는 비가시적인 매체를 시각화한 것이다. 작품 주변에서 스마트폰이나 전자기기를 사용할 경우 실시간으로 영상과 사운드가 변화한다. 전자파의 유해성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진위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감각으로 인지할 수 없지만 우리 주위에 전자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인지할 수 없기 때문에 방심하게 되는데, <센싱 스트림-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은 비가시적인 존재를 시각화하고, 사운드의 변화로 감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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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하르셰 아르라왈〈비행하는 팬터그래프〉드론, 화이트보드 2016 물리적인 제약을 극복하고 시각적 표현을 구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새로운 발상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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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비더만과 마르코 펠리한의 <이니셔티브 API-피닉스 선언과 이니셔티브 API 북극권 지도>는 남극과 북극 지역 거주민들과 오픈 소스 테크놀로지와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협력하고 그들의 권익을 증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두 아티스트가 설립한 비영리 기구이다. 극지에 사는 사람들이 문화와 과학, 테크놀로지와 교육을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오픈 소스를 활용하여 정보를 공유하고 연결한다. 정보 자체가 자본이 되는 정보화사회에서 ‘오픈 소스’는 자본과 권력의 독주를 견제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소외 문제를 해소하고 격차를 줄이기 위한 주요한 전략이자 비전이다. 안보를 위해 정부가 공공연히 개인의 정보를 통제하고 사찰하는 상황에 대해 비판하는 <우린 그 무엇도 당연하게 여길 수 없습니다>와 병치하여 전시된다. 즉, 디지털 사회에서 정보의 통제와 공유가 각각 사회를 어떻게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지를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구성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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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 맥도날드,조나스 존게한 〈군중 완벽하게 묘사하기(광주)〉 소셜미디어와 연동하는 영상, 컴퓨터 2017 공공의 장소에 설치된 CCTV를 매개로 해 미래 감시체계의 자동화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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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조원 볼트에 전시된 로렌 매카시와 카일 맥도날드의 <사회적인 영혼>은 시각적으로 화려하지만 서늘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참여자의 트위터 계정을 입력하고 사방이 유리로 된 공간 속에 들어가면, 맞춤형 알고리즘이 기존 방문자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눈) 계정을 소개해준다. 서로 반사되는 유리 상자 속에서 증폭되는 이미지를 바라보다 보면 그 천문학적인 정보의 양에 압도당한다. 이미 입력한 정보를 통해 우리를 계속해서 새로운 관계 속으로 이끌어가는 SNS는 ‘뜻밖의 인간관계’로 확장해주는 순기능을 갖는 듯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유한한 생명의 존재인 우리를 계획하지 않은 에너지와 시간을 소비하도록 끌어간다. <사회적인 영혼>은 우리가 처한 위험, 오히려 더 고립되고 공허해지는 빈곤한 인간관계의 처연한 초상이다. 디스토피아를 연상시키는 무거운 분위기의 작품들 속에서 하르쉐 아그라왈의 <탠덤 v2>는 일견 밝고 유쾌해 보인다. 웹이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출시된 드로잉 프로그램은 대부분 규칙에 따라 기존 작품과 유사한 형식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탠덤 v2>는 반대로 인간이 소프트웨어로 그린 그림을 자신의 상상력으로 변화시킨다. 기쁨, 슬픔, 분노, 몽상 등 성격을 선택하고 그에 따라 이미지를 조합해나간다. 지금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대체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 인간의 우월성, 인간만의 독창성을 기계가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다. 하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어쩌면 그러한 믿음 자체가 허구일 수 있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칠 때 밝고 장난스러워 보이는 이 작품은 가장 암울하고 어두운 미래를 보여주는 작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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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원&전준호〈자유의 마을〉〈자유의 마을_부재〉단채널비디오(각, 총2면) 2017 마을의 오랜 역사와 6·25전쟁 이후 조성된 마을 모습을 각각의 영상으로 대비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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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작품들을 통해 <감각과 지식 사이전>은 우리의 감각과 지식 사이에 여러 층위로 존재하는 미디어 환경과 테크놀로지의 위력을 가시화한다.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상황들을 대면하게 한다. 기존 현대미술계의 어휘와 맥락에서 벗어나 종횡무진하던 젊은 미디어 아티스트들과 그들과 함께 했던 기획자가 사회와 인간에 대해 날카롭게 되짚어보고, 사회적 책임과 공동체의 비전을 고민하고 있다. 혁신과 실험을 상징하던 한 세대가 책임감 있는 어른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를 담았다. 따라서 <감각과 지식 사이>는 ‘테크놀로지가 우리의 일상 속 깊이 침투해 있는’ 오늘날 예술과 기술의 교차점에서 주목해야 할 주제를 짚어준 전시인 동시에 아시아문화전당, 특히 ‘창제작센터’에 건네는 일종의 제언과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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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GHT & ISSUE Gangwon International Biennale 2018

 
〈강원국제비엔날레 2018〉(강릉녹색도시체험센터 일원)이 2월 3일부터 3월 18일까지 강릉에서 열린다. 올해부터 명칭을 변경하고 국제 미술행사로 치러지는 〈강원국제비엔날레〉는 58명(팀) 작가의 작품 110여 점을 선보였다. 하나의 독보적 가치만으로는 세상이 굴러가지 않는다는 의미를 내포한 주제 ‘악의 사전(The Dictionary of Evil)’이 어떻게 전시장에 구현됐는지 확인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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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도&이사벨 아퀼리잔 (Alfredo&Isabel Aquilizan) 〈Bounds〉 트럭, 현지에서 구한 물품, 끈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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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최 이유를 찾는 것이 당면과제가 된〈강원국제비엔날레〉

라파엘 고메스 바로스(Rafael Gómez Barros)〈House Taken〉 레진, 나무, 모래, 혼합재료 가변설치 2008~2017

국내에서 국제미술행사가 열릴 때마다 항상 듣는 말이 있다. “비엔날레의 홍수” “비엔날레의 과잉” 말의 온도에서 느껴지듯 결코 긍정적인 의미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지적의 근원은 그간 국내에서 열린 숱한 비엔날레 행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부실한 구성 등 여러 이유가 꼽히지만 미술이 시장의 시대로 접어든 마당에 비엔날레는 더 이상 동시대미술의 양상 혹은 미래 예언자로서의 역할을 상실했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이에 비엔날레는 그냥 열어야 하는 당위만 존재하는, 미술계 사교의 장이 되어 껍데기만 남았다는 극단적 비판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강원국제비엔날레〉는? 알려졌듯 〈강원국제비엔날레〉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와 개최를 기념하여 열린 〈평창비엔날레〉를 확대한 국제규모의 미술 행사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비엔날레가 차고 넘치는 현실에서 〈강원국제비엔날레〉에 대해서도 당연히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비판을 최대한 유보해도〈강원국제비엔날레〉의 탄생 이유였던 평창올림픽 이후 행사의 존속이 걱정되는 상황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강릉행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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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더욱 밝은 내일을 위하여〉금속,  스티로폼 2018

이번 〈강원국제비엔날레〉 홍경한 예술총감독이 내세운 주제는 ‘악의 사전(The Dictionary of Evil)’이다. 일견 그로테스크한 세계의 일면을 내세우는 것 같아 보이지만 전시장 안으로 한 걸음 들어가서 보면 세계를 움직이고 구조화한 가치가 다양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의미로 읽힌다. 즉 이른바 ‘선(善)’만이 세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가치가 아니라는 것, 그 대척점으로서 ‘악(惡)’은 세계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축이 된다는 점을 밝혀내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홍 감독은 《월간미술》과의 인터뷰(2월호)에서 올림픽이라는 화려함의 이면에 숨은 위선의 양상을 설명하고 그 존재의 당위성을 설파하면서 그것이 바로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라 강변했다.

그렇다면 이 주제가 과연 전시에 어떻게 발현되었을까? 이번 〈강원국제비엔날레〉는 알려진 바대로 주전시장인 강릉녹색도시체험센터와 인근에 세워진 가건물에서 진행되었다. 우선 주전시장인 체험센터 내부로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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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아치 〈가리왕, Tree Man, 孔雀夫人 Sings〉 영상, 설치 2018

양아치는 〈가리왕, Tree Man, 孔雀夫人 Sings〉를 통해 욕망이 발하는 악의 극한적 발현에 대해 이야기하고있다. 영상과 설치로 구성된 그의 전시장은 욕망이 그것의 출현을 매개하거나 도움을 주는 대상을 만나 등장하는 과정을 담아냈다. 실제로 벌어진 각종 재난과 정치적 사태를 배경으로 해 현실에 대한 응시를 이끌어낸 작업도 선보였다. 영상 다큐멘터리 작가 故 박종필은 〈잠수사〉를 통해 전 국민적 트라우마를 야기한 세월호 이야기와 장애인의 이동권 투쟁사를 담은 〈장애인이동권투쟁보고서-버스를 타자〉 등을 통해 우리가 애써 외면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침↑폼, 겐지 구보타, 에바&프랑코 마테스, 제이슨 웨이트가 참여한 큐레이터 그룹 Don’t Follow the Wind는 후쿠시마 지진 때 파괴된 원전에서 누출된 방사능으로 인해 폐쇄된 구역을 360도 영상으로 보여준다. ‘위기’에 대해 지속적으로 환기하고 있는 셈이다. 까맣게 벽면을 채운 대형 개미를 설치한 라파엘 고메스 바로스는 콜롬비아 내전으로 분리된 사회상을 보여준다. 두 개의 해골이 붙어있는 형태의 개미는 전 세계의 보편적 문제로 지적되는 이민자와 난민 문제를 상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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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승욱〈안정화된 불안_8개의 이야기가 있는 무대〉(부분) 아연도금강, 알루미늄, 사운드, 혼합재료 400×400×440cm 2018 최수진이 퍼포먼스를 벌이는 광경

체험센터 뒤편의 공터에 컨테이너와 철제 구조물로 만든 임시 전시장은 의외의 효과를 자아냈다. 가공되지 않은 공간에 설치된 작업들은 체험센터의 말끔한 화이트 큐브와 극명한 대비를 이뤄, 다양한 가치가 공존한다는 점을 드러낸 전시주제에 맞추려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프레스 오픈 당시 열린 심승욱의 〈안정화된 불안_8개의 이야기가 있는 무대〉를 배경으로 벌어진 최수진의 퍼포먼스와 신제현의 〈해피밀〉 퍼포먼스도 극명한 효과를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더불어 이 공간에는 이민자와 난민, 잊힌 산업세대로서 광부(鑛夫), 소통하기 힘든 비동일 언어권의 만남 등 인간의 보편적 문제부터 전쟁, 그리고 그로부터 발생한 피해자의 현실, 공공미술의 문제 등 동시대미술이 그간 적극적으로 취해온 다양한 주제의 작업이 선보였다. 주제와 작업, 공간이 조화를 이뤄 전시기간이 끝나면 철거되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근래 보기 드물게 완성형의 전시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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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영 〈타워〉 폐스피커, 사운드 2011〈Reflection〉(사진 앞 쇠사슬 작업) 2016

전시장을 나서며 이제 〈강원국제비엔날레〉가 숙고해야 할 과제는 개최의 지속여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했듯, 행사 개최의 이유였던 올림픽이 종료되었다. 미술행사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강릉에서 국제행사급의 미술행사를 지속할 이유를 찾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직전 〈평창비엔날레〉와 이번 비엔날레가 비평적으로, 운영 면에서 그렇게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고 존재의 이유를 증명해냈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 행사에서 주제와 전시형태가 상호 부합하는 나열식으로 이뤄졌다는 점은 주효한 전략이었다고 보인다. 물론 작품의 배경과 그 세부적인 내용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전시 맥락에 엮을 수 없는 예외적인 사이트도 있었지만 전시의 맥락에 크게 무리가 없었다고 보인다. 이에 앞으로 〈강원국제비엔날레〉가 새로운 개최의 계기를 어떻게 마련하느냐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강릉 = 황석권 수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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