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캐슬린 킴의 예술법 세상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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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캐슬린킴의 예술법 세상15 :

옥션을 위협하는 ‘음험한 손’, 담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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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0일 뉴욕 크리스티에서 공개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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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섹시하다. 예술에는 돈이 몰린다. 예술은 계층 상승을

노리는 돈과 섹시함이 공존하는 환상적인 분야다.”

    – 토머스 호빙 전 메트로폴리탄뮤지엄 관장______________

11월이다. 뉴욕 옥션하우스들의 경매시즌이다. ‘이번 시즌 어떤 예술품이 경매 최고가를 경신했다’, ‘어떤 옥션하우스가 누구의 예술품 컬렉션을 위탁받았다’, ‘누구에게 낙찰됐다’ 등 예술 애호가라면 관심가질 만한 뉴스와 가십들이 쏟아지는 시기다. 이번 이브닝 세일(evening sale)의 주도권은 단연 ‘크리스티’가 행사하게 되었다. ‘남자 모나리자’로 널리 알려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역사적 명작 〈살바토르 문디(Salvator Mundi)〉(1490)가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됐기 때문이다. 러시아 억만장자 드미트리 리볼로프레프의 소장품으로 현재 20점이 채 남지 않은 다빈치의 회화작품 중 하나다. 다빈치의 모든 작품은 뮤지엄에 소장돼 있는데 유일하게 개인이 소장해온 작품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크리스티는 1억 달러(약 1135억 원)의 추정가를 제시했다.

예술의 또 다른 묘미 중 하나로 소장 이력이 있다. 〈살바토르 문디〉는 영국의 찰스 1세가 소장하다 왕정 복고 후 아들 찰스 2세가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내 자취를 감췄다. 다빈치 제자의 작품으로 취급되며 오랜 세월 유럽을 떠돌던 〈살바토르 문디〉는 1958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고작 45파운드(약 7만 원)에 거래됐다. 그런데 2005년 다시 경매에 나와 새 소장자를 만났을 때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새로운 공동 소장자로 작품의 가치를 알아본 미국의 올드 마스터 전문가 로버트 시몬 등으로 구성된 ‘아트 딜러 컨소시엄’은 심한 덧칠 등으로 훼손된 작품을 되살리고 6년여에 걸친 과학적 분석과 다빈치 전문가인 마틴 켐프를 통해 정밀 재감정을 실시한 결과 다빈치의 작품임을 확인한 것이다. 2013년 현재 소장자인 리볼로프레프가 높은 가격에 작품을 매입했다. 그리곤 2017년 10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모습을 드러냈다.

경매는 민법상 계약의 한 종류이다. 그것의 특징을 꼽자면 ‘경쟁’이다. 우리 민법상 여러 상대를 경쟁시킴으로써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하는 방법에는 경매와 입찰이 있다. 경매는 경쟁자끼리 서로 상대가 제시한 내용을 알 수 있는 경우이고, 입찰은 상대가 제시한 내용을 알 수 없는 경우이다. 경매를 비즈니스로 하는 회사가 옥션하우스다.

현대 예술시장에서 옥션하우스를 빼놓고는 아트 마켓을 논하기 어렵다. 옥션하우스가 아트 마켓의 가장 중요한 플레이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아트 마켓은 크게 1차 시장과 2차 시장으로 구분된다. 예술가의 작품을 갤러리 전시 등을 통해 선보이고 흥정을 통해 고객과 직접 거래하는 곳이 1차 시장이다. 이렇게 1차 시장에서 한번 거래가 이루어진 작품들을 경매 등을 통해 다시 거래하는 것을 2차 시장이라고 한다. 경매가 대표적인 2차 시장이다.

예술 비평가 로버트 휴즈가 말했다. “예술품의 가격은 실제 또는 유도된 희소성과 맹목적성, 비이성적 욕망이 서로 만나 결정된다. 사실 인간의 욕망처럼 배후에서 조종하기 쉬운 것은 없다. 그러한 점에서 예술품의 공정한 가격이란 컬렉터가 지불하도록 유혹할 수 있는 최고 가격이다.” 경매는 이러한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충실히 반영한다. 거기에 시장의 본래적 징표인 경쟁이 끼어든다. 누군가는 경매를 ‘가격의 토너먼트’라 했다. 다른 이는 ‘지위의 콘테스트’라 했다. 소유하려는 욕망에 대한 근원적 경쟁, 예술가의 순위 경쟁, 옥션하우스간 경쟁, 구매력 경쟁 등을 놓고 벌이는 돈과 명성과 지위에 대한 완전 경쟁 시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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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앨프리드 토브먼 소더비 회장
오른쪽 앤서니 테넌트 크리스티 회장 (사진 출처: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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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션하우스의 대명사 소더비와 크리스티 간 250년이 넘는 라이벌 관계가 시작된 것은 1700년대다. 소더비는 1744년 새뮤얼 베이커가 영국 런던에서 희귀 중고서적을 경매에 부치면서 시작했다. 1778년 조카 존 소더비가 회사를 물려받고 나서 이름이 소더비가 되었다. 22년 뒤 제임스 크리스티가 크리스티를 설립하고 예술품 경매 시장에 뛰어들었다. 소더비가 1955년에, 크리스티가 1977년에 각각 미국에 진출하면서 뉴욕은 현재 가장 큰 경매 시장이 됐다.

매년 봄, 가을에 열리는 메이저 경매의 흥행을 위한 두 옥션하우스 간의 경쟁은 치열하다. 유명 소장자나 유명 컬렉션의 위탁권을 따내기 위해 위탁 커미션을 대폭 낮춰 주거나 낙찰자로부터 받은 프리미엄의 일부를 제공하겠다며 제안하기도 한다. 단골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구매 프리미엄을 할인해주기도 한다. 2005년에는 일본 TV 부품업체 마스프로 덴코의 하시야마 다카시 사장이 자신의 컬렉션을 처분하는 데 양대 옥션하우스가 파격적 조건을 제시하며 경쟁하자 가위 바위 보를 통해 결정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렇듯 아름다운 경쟁이 있기도 하지만 한편에는 음험한 담합도 있었다. 1980년대 후반 경기 침체로 아트 마켓은 큰 타격을 입게 됐다. 경매 실적이 지속적으로 떨어지자 두 회사는 1992년부터 1996년까지 10여 차례 은밀한 만남을 가졌다. 앨프리드 토브먼(Al Taubman) 소더비 회장이 담합을 제안했고 앤서니 테넌트(Anthony Tennant) 크리스티 회장은 화답했다. 1992년 일주일 정도의 시차를 두고 경매 낙찰자(구매자)에게 부과하는 수수료인 ‘프리미엄’을 15%로 나란히 인상했다. 1995년에는 한 달 반의 시차를 두고 경매 위탁자(판매자) 수수료인 ‘커미션’을 올렸다. 미국은 완전경쟁시장을 추구하는 나라다. 그래서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경매 또한 시장의 일종이라서 불개입이 원칙이다. 하지만 불공정 거래, 담합이나 독과점에 대해서는 반시장적 행위로 보고 강력하게 규제한다.

미국 법무부가 두 회사 간의 담합 행위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고 조사에 들어갔다. 조사가 시작되자 1999년 12월 당시 크리스티 회장이던 크리스토퍼 대비지는 곧바로 담합 사실을 시인하고 각종 증거 자료를 제출하는 등 수사에 협조하는 조건으로 형사처벌을 면제받았다. 반면 끝까지 부인한 토브먼 소더비 회장은 연방 독점금지법인 셔먼법(Sherman Act) 위반을 이유로 유죄가 인정됐다. 회장은 징역 1년에 벌금 750만 달러를 선고받았고 회사도 4500만 달러의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두 옥션하우스의 책임은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1993년부터 1999년까지 소더비와 크리스티를 이용한 피해자들이 집단소송(class action)을 제기한 것이다. 미국의 집단 소송은 우리와 달라서 피해자 집단의 대표 중 한 사람 또는 몇 사람만이 소송을 제기해도 그 판결 효과를 나머지 모든 피해자가 누릴 수 있다. 2001년 뉴욕 법원은 양사가 독점금지법을 위반해 부당 이득을 취득했다고 인정했다. 법정에서 합의한 대로 두 회사가 총 5억3천700만 달러의 합의금을 피해자들에게 지급하는 것으로 종결했다.

그런데 여기가 끝이 아니다. 2002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도 두 회사가 1993년부터 2000년까지 담합을 통해 중개수수료와 경매가를 조정해온 사실을 확인하고 2040만 유로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전 해에 전 세계에서 올린 매출액의 6%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크리스티는 이번에도 EU측에 담합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각종 증거 자료를 자진해서 제출하고, 그 대가로 과징금을 면제 받았다.

공정경쟁의 적, 담합을 규제하기 위해 각 나라는 다양한 제도를 운영한다. 공통적으로 둘 이상의 사업자들이 경쟁을 제한하는 내용의 합의를 하는 것을 금지한다. 가격고정의 담합을 입찰담합과 함께 가장 심각한 경쟁법 위반행위로 보고 무거운 제재를 부과한다. 우리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이 있다. 공정거래법 제19조는 “계약·협정·결의 기타 어떠한 방법으로도 다른 사업자와 공동으로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를 할 것을 합의”하는 것을 금지한다. 담합, 카르텔 등의 부당한 공동행위에는 “가격을 결정·유지 또는 변경하는 행위”, 즉 경쟁을 회피하기 위해 다른 사업자과 공동으로 가격을 결정하거나 인상하는 등의 행위가 포함된다.

예술은 자유다. 예술 시장도 자유다. 하지만 예술 시장에 반(反)시장적 요소가 개입할 경우 반시장의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이것이 경매시장에 가하는 예술법의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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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캐슬린 김 | 미국 뉴욕주 변호사, 홍익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