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표류하는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재정비, 디렉터십에 달렸다
박신의 미술비평 경희대 교수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관 개관을 기점으로 그 위상이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서울관 개관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존재감을 기대 이상으로 올려놨다. 가장 큰 수확은 북촌이라는 위치에 따른 대중적 접근성에서 이루어낸 감동적인 변화다. 과천 시절을 생각한다면, 과연 대중의 머릿속에 국립현대미술관의 존재가 있었을까 싶지만, 서울관에 대한 대중적 호응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니 말이다. 게다가 현대자동차의 파격적인 후원까지 생각한다면, 국립현대미술관은 이전에 없던 화려한 변신을 이룬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와 성장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여겨져 안타깝고 불안하다. 그런 인식은 변화에 값하는 우리 미술계의 내부 역량이 여전히 미흡하여 준비되지 못했다는 생각에서 연유한다. 서울관이라는 존재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여러 가지면에서 유리한 지점을 확보했다고 말할 수 있으나, 정작 이를 ‘기회’로 만들어가는 데는 역부족으로 보여 그렇다. 이제 국립현대미술관은 대중적 시선만이 아니라 국제미술계의 시야에도 노출도가 높아졌다. 그에 상응하는 내부 역량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모처럼 얻어낸 행운을 날려버릴 수도 있다는 염려 아닌 염려가 앞서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디렉터십의 요구와 맥락
그런 점에서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리더십과 역할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서울관 개관전 사태로 당시 정형민 관장이 직위 해제되면서 불명예 퇴진한 마당에, 미술계 전문인력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내적 요구와 당위성 때문에라도 국립현대미술관은 이제 다시 시작한다는 다짐이 필요한 터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도 관장 선임이 마무리된 상태가 아니지만, 누가 선임되든지 디렉터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디렉터십이란 단적으로 말해 관장이 발휘하게 될 리더십이다. 리더십은 미술관 운영에서 관장의 역할과 그에 따른 조직 운영의 문화, 관리 의사소통 절차, 그리고 조직 내 역학관계를 헤아리는 일이다. 물론 리더십은 비단 리더만의 일이 아니라, 조직 구성원 내에서도 각각의 업무에 따른 역할과 수행과정에서 발휘되는 것으로 봐야 하고, 결과적으로는 조직 전체의 리더십을 말한다.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과 같은 예술분야에서의 리더십은, 예술적 리더십(artistic leadership)의 영역으로서, 예술적 수월성과 경영 효율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을 목표로 발휘된다.
무엇보다도 국립현대미술관에 요구되는 예술적 수월성은 전시 및 소장품 활동을 통해 한국현대미술의 우수성을 알리고, 한국현대미술의 경쟁력을 키우며 진흥을 꾀하기 위한 몫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대중의 문화 향유 기회와 수준을 확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경영 효율성은 서울관을 비롯하여 과천관, 덕수궁관, 그리고 2017년 개관 예정인 청주 국립미술품수장보존센터 4관 체제와, 창작스튜디오와 미술은행, 정부미술은행 등의 하부 관리시설을 보유하는 방대한 규모의 조직에 대한 합리적인 운영 및 경영 성과 관리 역량을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역할을 염두에 둘 때 과연 우리에게 디렉터십을 이야기할 만한 모델이 있느냐는 질문을 하게 되면, 그 답이 시원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역대 관장을 보면 주로 미술사나 미술평론 분야 인물이 담당해왔다. 경영 역량보다는 전시기획 역량에 따른 개인적 성향을 드러냈고, 3년이라는 짧은 임기 내에서 충분한 디렉터십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중간에 배순훈 관장과 같이 기업 경영인 출신이 발탁된 바 있지만,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결과적으로 우리에게는 예술적 수월성과 경영 효율성이라는 두 개의 목표를 모두 성취할 만한 인물이 없었고, 그런 면모는 어떻게 보면 초기적 양상이라고 양해할 수도 있겠다.
물론 이 모든 역량을 갖춘 완벽한 디렉터십을 기대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일 수 있다. 어쩌면 현대미술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기반으로 미술계의 복잡한 역학관계를 헤아릴 수 있는 역량과, 조직 운영 훈련을 거친 경영 역량을 겸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일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주어진 상황에 따라 시급한 사안을 중심으로 문제 해결의 우선순위와 비중을 두고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실제로 미술관 성과(관람객 수, 전시 개최횟수, 재정 효율성 등)도 본질적으로는 전시와 소장품, 연구기능의 수월성이 전제되는 것이어서, 현대미술의 수월성과 경영 성과가 분리되는 것이 아님은 자명한 일이다.
변화 주도의 리더십과 관리 능력의 배합
이상적인 디렉터십을 거론할 때 리더십과 관리(leadership and management)의 차이를 살피는 것은 나름대로 도움이 된다. 관리란 제도와 규칙, 구조에 초점을 두고 통제와 지휘를 행함으로써 안정적인 조직 운영을 목표로 하는 경우다. 리더십은 장기적이고 미래지향적 구도에서 현 상태를 유지하기보다는 변화와 혁신을 꾀하면서 비전을 제시하는 유형이다. 관리는 세세한 부분에 관심을 갖는 미시적인 계획인 반면, 리더십은 거시적인 계획에 무게중심이 실린다. 따라서 관리는 ‘일’이나 ‘성과’를, 리더십은 ‘사람’의 ‘자율성’을 중시한다. 사람에 대해서도 관리는 책임을 요구하지만, 리더십은 사람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더욱 중시한다.
그런 점에서 국립현대미술관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관리적 기능보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리더십으로 보인다. 그래서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션과 비전을 먼저 물을 수 있겠다. 하지만 현재 홈페이지에 미션과 비전은 제시돼 있지 않다. 대개 미술관은 대내외 환경이 바뀔 때마다 미션과 비전을 교체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이번이 국립현대미술관에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지역적 맥락만이 아니라 국제적 위상을 고려한다면, 안팎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현실과 도전 과제는 무엇이고 국제 현대미술의 동향 속에서 어떠한 전략이 필요한지를 고심한다면, 그리고 대중의 문화향유와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 증진을 추구한다면 미션과 비전의 맥락은 힘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미술관 업무별로도 미션과 비전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전시와 소장품 정책, 교육프로그램을 위한 미션과 비전은 활동의 목표이자 기준이 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디렉터십은 각 분야별 책임자가 갖는 전문성을 최고의 가치로 설정해주고, 그들 스스로 자기 발전과 변화를 주도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그럴 경우 큐레이터의 전시 기획력은 상승하고, 소장품의 수준과 관리 역량은 높아질 것이며, 에듀케이터의 미술관 문화 활동은 큰 호응을 받을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학예직이 갖게 될 전문성은 곧 디렉터십의 권위이고, 미술관 경쟁력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2006년부터 책임운영기관제를 실시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추후 전망할 조직의 성격도 디렉터십에 부과된 주요 과제라 하겠다. 책임운영기관제는 일반 행정기관보다 폭넓은 조직・인사・예산상의 자율성을 부여하는 한편, 성과의 책임 및 보상을 강화함으로써 운영의 효율성 및 서비스 수준의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제도다. 그런데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의 조직을 보면 책임운영기관제를 수행하는 기관치곤 뚜렷한 실행체계가 눈에 띄지 않는 중성적인 모습이다. 성과에 대응하기 위한 홍보와 마케팅 차원의 맥락이 거의 체감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전시 기획에서의 전략도 현재 조직 속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다.
게다가 현대자동차의 기업 후원이 지속되고, 문화재단을 통해 수익사업이 진행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디렉터십의 대응은 준비돼야 할 것 같다. 실제로 이러한 정황은 책임운영기관제라는 체제보다는 법인화에 걸맞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연 추후 국립현대미술관이 법인화로 갈 수 있을 만큼 내적 역량이 준비되어 있을지는 되물어야 할 일이다. 그래서라도 강력한 디렉터십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하지만 홈페이지에 역대 관장의 연혁이 제시되지 않을 정도로 관장의 존재는 미미하다. 과연 이 미술관이 관장의 역할을 중시하기는 하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디렉터십을 이야기하고 강구해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