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마음이 깊어짐을 느낍니다
– 예술가의 명상법
노란 은행잎과 붉은 단풍으로 물든 북한산 옆 은평구 진관동에 새 터전을 잡은 사비나미술관이 11월 1일 개관 22년 기념전이자 이전 개관전을 개최하며 진관동 시대를 열었다. 지상 5층, 연면적 1740.23㎡ 규모를 자랑하는 사비나미술관은 미술관 부지 선정부터 건축 재료, 내부 공간까지 어느 곳 하나 이명옥 관장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다. “새롭게 하라, 놀라게 하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사색과 명상 그리고 예술이 공존하는 사유의 장소이자 문화공간으로 더 높이 도약할 사비나미술관의 새로운 시작, 그 시작을 장식한 작품을 만나보자. 미술관 곳곳에 드리워진 美의 기운을 만끽할 수 있다.
어느 미술관의 꿈: 사비나미술관 재개관에 부쳐
글 : 김보라 | 성북구립미술관 관장
언뜻 보아도 시선이 머무는 삼각형 건물, 그 꼭대기에 초승달이 걸려있다. 흔히 볼 수 없는 독창적인 모양의 우윳빛 고벽돌 건물은 처음 마주한 이들의 궁금함을 자아내기에 족하다. 그리고 살며시 그 누군가의 일상에 문을 두드린다. 시각적 호기심은 곧 마음으로 전달되어 언젠가 그 곳으로 발길을 향하게 하리라.
사람들의 서정을 달래는 달은 러시아 설치작가인 레오니드 티쉬코프(Leonid Tishkov, 1953~ )의 작품이다. 작가는 인공적으로 달을 제작해 세계를 여행하며 곳곳에 설치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달빛의 위안을 전하고 있다. 이는 티쉬코프가 2003년부터 현재까지 프랑스, 대만, 뉴질랜드, 북극 등 다양한 장소에서 진행해온 〈Private Moon〉 프로젝트로 국내에는 처음 전시됐다. 티쉬코프는 특히 초승달의 미학을 탐색한다. 그는 초승달을 ‘예측 불가하며 위태로운 아름다움을 지닌 고혹적’인 존재라고 했다. 그러한 달에 동심과 치유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폴 베를렌(P. Verlaine, 1844~1896)은 ‘달빛은 나무에서 새들을 꿈꾸게 한다’고 노래했던가. 때로는 동화 속 이야기를 꿈꾸는 상상으로, 때로는 고독과 우울을 녹이는 판타지로 현대사회의 굳은 일상에 이상을 담은 숨통처럼 피안의 달을 선사한다.
이번 전시에 〈The Stairs to the Moon〉이라는 제목으로 설치된 그의 초승달은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빛이 되어 새롭게 시작하는 사비나미술관의 꿈을 담아 하나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미술관의 꿈. 사비나미술관이 꿈을 갖지 않았더라면 22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한결같이 우리 곁에 존속할 수 있었을까. 아직은 낯선 새로운 공간 앞에서 미술관의 오랜 꿈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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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관훈동에 처음 문을 연 갤러리사비나는 안국동으로 이전해 2002년 사비나미술관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이는 상업 갤러리가 공공의 미술관으로 변신한 이례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초기부터 사비나미술관의 색채는 명확히 드러났다. 타 장르와의 융합을 중심으로 기획된, 주제가 있는 참신한 전시들은 당시 미술관 문화에 신선함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대중에게 거침없이 다가서는 흥미로운 프로그램은 보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미술관으로 향하게 했다. 사비나미술관은 그 시절 큐레이터를 지망하던 필자에게도 미술관을 지속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전시 공간 중 하나였다. 미술관의 옛 기억은 빛바랜 습작처럼 여전히 마음에 남아있다.
우선 느린 템포로 미술관 건축을 들여다보자. 사비나미술관 건물은 대지의 비정형적인 모습을 건축적 예술로 승화시켰다. 북한산을 배경으로 한 주변 환경과도 조화로운 하나의 작품으로 신 미술관다운 외관을 보여준다. 미술관으로 다가갈수록 곳곳에서 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는 건립 과정에서 추진한 건축가와 예술가의 협업 전시인 〈AA(Artist&Architect)프로젝트-공간의 경계와 틈〉이다. 무의미한 하나의 조형물을 세우는 대신 건축과 예술이 융합된 공공미술 작업을 완성한 것이다. 이는 미술관 건축을 맡은 공간건축의 이상림 대표 등 다섯 명의 건축가와 여덟 팀의 설치작가가 설계 과정부터 협력해 온 장기 프로젝트다. 우연히 혹은 의도적으로 건축에 녹아든 작품을 발견하고 나면 누구나 색다른 경험에 도달하게 된다. 서로 다른 분야를 넘나드는 전시를 꾸준히 기획해온 사비나미술관이 다시 한 번 사고의 경계를 허무는 순간이다.
미술관은 5층 건물임에도 창문이 거의 없다. 그리하여 건물의 외벽은 각각의 면 자체가 하나의 캔버스다. 건물 후면에는 이길래 작가의 〈소나무〉가 외벽을 타고 자라게 되며, 카페 공간은 북한산의 자연을 탐하듯 진달래 & 박우혁의 〈초록의 구조〉로 싱그러움을 더한다. 김승영 작가의 〈말들의 풍경〉은 외벽 벽돌에 글귀를 새겨 넣은 작업이다. 신기하게도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글씨들이 하나의 글귀를 발견한 순간 곳곳에서 드러난다. 시각의 불안정함, 곧 우리가 얼마나 세상을 간과하며 대면하고 있는지를 사유하게 하는 작품이다. 주차장 입구에 설치된 베른트 할프헤르의 〈The Guardians〉를 지나 건물 내부로 들어오면 기대하지 않았던 공간이 펼쳐진다. 5층 천창에서 전시실까지 투영되는 빛이 인상적이다. 이러한 건축적 특성, 즉 공간과 채광, 구조와 동선 등을 탐구하여 작품이 건축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유도한다. 곳곳에 숨어 있는 작품과 마주하는 순간의 설렘을 만끽할 수 있도록 공간은 준비를 마친 듯하다. 3층과 4층을 오르는 계단에는 김범수 작가의 〈Beyond Description〉과 황선태 작가의 〈빛이 드는 공간〉이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그 곳에 있었던 것처럼 시간을 담은 창을 형상화한다. 옥상을 지나 루프톱에 오르면 박기진 작가의 〈통로〉가 설치되어 있다. 파노라마 같은 풍광을 벗 삼아 자갈을 밟으며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쉼의 공간으로 언제나 그곳에 멈추어 있으리라.
건축을 충분히 느꼈다면 다시 개관 전시로 회귀해 보자. 티쉬코프의 작업은 재개관 기념전시인 〈그리하여 마음이 깊어짐을 느낍니다-예술가의 명상법〉과 자연스럽게 그 의미가 이어진다. 이번 전시에는 국내외 작가 스물여덟 명이 참여하고 있다.
전시는 2층의 삼각형 꼭짓점 부분에서 시작된다. 확 트인 시야로 전시실의 모든 작품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시실은 삼각형 구조를 그대로 살려 확장되고 모여드는 공간적 묘미가 있다. 그러나 각각의 작품들이 서로를 의존하고 동시에 분리되어야 하는 쉽지 않은 공간이다. 이 특별한 공간은 작품들이 전체의 일부가 되기도 하고 작품 안으로 집중하도록 하면서 관람을 변주한다. 전시는 현대인의 지친 마음을 정돈하고 치유할 수 있는 명상의 방법을 예술가들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전시가 제안하는 첫 번째 명상법은 ‘몰입’이다. 최병소는 신문지 위에 볼펜과 연필로 선을 그어 글씨가 모두 사라질 때까지 지우는 작업을 해왔다. 단순한 반복적 행위는 곧 수행이 된다. 무엇을 지우는지 무엇을 채우고자 하는지 한 순간 모든 것을 초월하게 된다. 허윤희의 작업은 자연을 향하고 있다. 매일 산책하면서 나뭇잎 하나를 채집하고 그 단상을 적어 일기를 남긴다. 자신의 일상을 자연에 투영해 내면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삶에 조금 더 다가설 수 있다. 두 번째 방법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사유’다. 숯을 이용한 신작을 선보인 박선기는 강함과 약함에 대한 본질을 탐색하도록 한다. 실재하는 사물이 개념적으로 어떠한 근원을 갖고 있는지 그 생각의 차원을 확대시킨다. 이일호의 〈생과 사〉는 두상과 해골이 하나로 포개져 있는 조각작품이다. 그 자신이 걸어 온 삶을 투영한 작품으로 보이며 삶과 죽음이 곧 하나임을 숙명처럼 보여준다. 천창에서 길게 내려오는 빛줄기는 삶과 죽음을 하나의 스푸마토한 드라마로 제시한다. 표정이 사라진 안창홍의 〈가면연작은 위선으로 가득한 인간의 본성을 드러낸다. 그로 인해 우리가 궁극적으로 찾아야 할 의미 있는 것들에 관해 사색하도록 한다. 세 번째 방법으로 제시된 것은 ‘멈추고 그저 바라보라’는 것이다. 마이클 케나는 디지털 시대에 암실작업을 고수하는 사진작가다. 그는 자신이 찍은 것을 기다리며 그저 바라보는 느림의 미학을 전한다. 임창민은 시간이 멈춘 사진과 시간의 흐름을 담은 영상이 만나는 새로운 프레임을 경험하도록 한다. 그 낯선 시각적 장치를 그저 흘러가듯 보고 있자면 곧 익숙함으로 변하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작가들은 진정으로 나를 만나는 시간을 갖기를 제안한다. 덴마크 작가인 허스크밋나븐은 종이 한 장과 펜으로 짧은 시간 안에 자신만의 작품 만들기를 시도한다. 그 시간만큼은 자신에게 몰두할 수 있다. 또한 편안한 휴식으로 자신을 고립시켜 볼 수 있다. 김지수X김선명의 〈페트리코〉는 돔 구조물을 설치하고 누구나 그 안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외부와 차단시킨다. 그 곳은 향을 통해 호흡에 집중할 수 있는 자궁과도 같은 공간으로 본디 나 자신과의 대면을 시도한다.
마음을 충분히 정화시켰다면 이제 마지막 공간으로 향할 시간이다. 사비나미술관이 처음으로 공개하는 소장품 상설전시로, 향후 분기별로 작품을 교체하며 전시를 지속할 계획이다. 김창겸, 양대원, 유근택, 홍순명 등 사비나미술관과 함께 해 온 작가들이 크지 않은 4층 공간을 채운다. 마치 오랜 친구처럼 정겹다.
필자가 미술관에 종사하게 되면서 사비나미술관의 활동이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읽히기 시작했다. 한국의 중견 작가들에게 지속적인 전시 기회를 제공해 온 것은 지금도 풀어내지 못한 우리나라 공립미술관의 과제이기도 하다. 사비나미술관은 중견 작가들을 향한 정체성을 표명한 보기 드문 미술관이다. 필자 역시 사비나미술관을 통해 알게 된 작가가 다수이고 여전히 그 작가들의 변화를 함께 하고 있다. 작가를 발굴하고 성장하도록 거름을 주는 것은 미술관의 또 다른 사명임을 되뇐다. 앞으로 지속될 소장품 전시에서 사비나미술관이 바라보는 곳을 함께 공감하기를 기대해 본다.
신축 재개관을 기념하는 전시는 이처럼 짜임새 있게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각각의 전시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미술관이 속삭이는 하나의 울림으로 가득 차오른다. 공간이 확대된 만큼 더 오랜 시간을 미술관에서 머물 수 있게 되었다. 1층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도 좋다. 각양각색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사비나미술관에 축적한다. 필자에게도 새로운 기억들이 쌓이기 시작한다.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바로 그 순간, 흔적은 소멸이 아닌 생성임을 느낀다.
우리나라에서 개인미술관으로 자생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미술관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없다면 고착된 인식의 벽과 맞설 수 없다. 미술관 개념은 아직 정립되지 않았고 정책과 지원 시스템은 여전히 미흡하다. 사비나미술관의 발자취를 돌아보면 수많은 개진 과정의 중심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22년을 지켜온 둥지에 깊은 향수를 남기고 떠나 온 사비나미술관의 행로에 마음을 보태는 이유다.
사비나미술관은 재개관을 위한 장소로 도심이 아닌 아름다운 북한산 아래 쉼을 위한 지역을 선택했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전시는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 명상에 관한 이야기다. 이제 미술관은 더 이상 보여주는 곳이 아님을. 사유하며 함께 살아가는 곳임을 그 시작의 메시지에 담았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은 ‘지역의 미술관이자 국제적인 미술관’을 표명했다. 그 안에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는 듯하다. 미술관이 위치한 환경 속에서 자연처럼 숨 쉴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마을의 미술관이자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세계 속의 미술관임을 상기해 본다.
과거에도 미래를 담아낼 현재에도 사비나미술관은 늘 소통하고자 했음을 안다. 누군가의 일상이 되는 미술관, 자연과 사람을 품은 미술관, 그 진실하고 소박한 꿈의 실현을 기대해 본다.
이제 어렴풋이 사비나미술관의 오랜 꿈이 보이는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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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미술 > vol.407 | 2018.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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