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ARTIST 신학철
엄혹한 시절, 작품으로 시대를 정의했던 작가가 있다. 혹자는 그의 작품을 “당대 민중운동의 공간 속에 가장 우뚝 높이 걸린 제단화”에 비유했다. 신학철은 그 제단화를 걸기 위해 시대가 발한 소용돌이에 기꺼이 투신했고, 그것은 필자의 말대로 “죽임의 현실”로 들어가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작업은 시대가 낳은 ‘괴물’ 앞에서 성호를 긋거나 십자가를 들이대는 사제의 종교적 행위와 같다. 지금도 신학철은 시대에 대해 순수하게 분노하며 작업을 통해 그 감정을 스스럼없이 보여준다. 이제 신학철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대해 시대가 답할 차례다.
신의 소리, 넋이 하는 말
김종길 미술비평
“철학자들은 창조적인 손으로 미래를 붙잡는다. 이때 존재하는 것, 존재했던 것, 이 모든 것은 그들에게는 수단이 되고 도구가 되며 해머가 된다. 그들의 ‘인식’은 창조이며, 그들의 창조는 입법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중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 사이, 신학철의 회화적 현실은 ‘일하는 노동자’ 화가로서 “내가 섬기는 것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것”의 재인식으로부터 다시 시작되었고1 그것은 구체적 현실에의 응전이었다. 그 응전의 결과로 ‘근대사 연작’을 새겼다. 1981년 <한국근대사-3>을 <방법전>(1981,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 첫 출품했을 때 그는 1970년대 A.G의 개념미술 작가가 아니라 화가로서 현실의 앞뒤를 꿰뚫어보는 사제였다.2 그는 A.G 시기를 회억(回憶)하며 “나 혼자 공중에 떠 있었다”거나, “현실과 관계가 없으니 공허했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러다가 “현실계로 내려왔다”고 했는데 그 말이 내게는 ‘신내림’으로 읽혔다.3 그것은 ‘개념적 상상계’에서 ‘비판적 현실계’로의 미학적 신내림일 것이다.
그의 비판적 현실주의 미학은 1970년대 후반의 <피난길>(1978)과 같은 작품들에서 시작되어 포토콜라주로 완성된다. 1980년의 <묵시> 연작, <여인> 연작, <상황> 연작 등이 그것인데 그의 포토콜라주 양식은 근대사 연작에 반영되었다. 미학에서 포토콜라주는 환상과 풍자를 표현하는 효과적 장치다. 그렇다면 신학철의 작품에서 환상과 풍자의 미학은 도시 샐러리맨들의 목에 검은 구두를 세워서 콜라주하거나(<묵시-802>), 푸른 술병의 목에 자본주의 상품들을 머리로 붙인 뒤 부릅뜬 눈을 콜라주 하고(<묵시-801>), 성의 상품화 또는 과도한 자기애적 욕망을 광고 이미지로 콜라주한 것들에서 생생하다.
샤먼리얼리즘은 샤먼의 눈으로 꿰뚫는 지금 여기의 현실주의 미학인데, 그의 작품들에서 자본주의를 꿰뚫는 ‘눈’이 발견된다. 동아시아인들에게 현실은 언제나 눈앞의 현실이면서(前景), 동시에 눈 뒤의 초현실을 마주했다(後景). 보는 현실은 물론이요, 보이지 않는 초현실을 맞붙여서 사유해 왔던 것. 그의 미학적 구조에서 현실이 풍자라면 초현실은 환상이다. 나는 그것을 ‘우물구조’로 이해한다. 우물면의 위가 현실이고 우물면 아래의 심연이 환상인 셈. 자, 그렇다면 위아래의 두 세계가 접점을 이룬 우물면은 무엇일까? 나는 바로 그 지점이 신학철의 샤먼 미학이 터지는 ‘생성지’라고 생각한다.
그가 섬기는 미학적 ‘현실’은 눈앞의 비루한 현실에 엉겨 붙은 그림자들이다. 그림자는 우물 밑에 존재했다. 그의 우물은 우물면을 형성하는 ‘시대현실’과 그 현실로 표상되어 올라 온 숱한 과거의 ‘서사들’로 이뤄진다. 그는 역사의 그림자에서 현실의 실체를 역추적 하듯 우물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가 처음 보았던 우물 속의 실체는 《사진으로 보는 한국 100년, 1876~》4에 실린 흑백의 이미지들이었다. 그 이미지들의 끊어진 서사와 사건을 꿰매는 방식으로 그는 콜라주하고 몽타주했다. 사진이라는 오브제는 그가 굳이 외쳐 말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근현대사의 형상과 그림자가 차고 넘쳤다.
그림자(後景/幻想)의 시간은 직선도 회귀를 반복하는 나선형도 아니다. 하나의 후경에는 몇 개의 직선과 곡선과 나선형이 몽타주로 펼쳐진다. 고구려 벽화에서 보듯이 장면들은 불일치하고 연속되지 않으며 사건들만 남아서 무질서를 이룬다. 일관성이나 통일성, 장면 구성의 치밀함, 사건의 기승전결 따위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바꿔 말하면 현실은 일관되지 않고 삐죽거리듯 튕겨나가며 예고 없이 불쑥 튀어 오르는 사건들로 진창이다. 샤먼 미학의 사제로서 신학철은 그런 초현실과 비현실의 그림자를 현실에서 이어붙이는 영적, 미학적 실험을 해왔다. 왜? 바로 그것이 또한 삶으로서의 지극한 현실이요, 초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그림을 ‘잡설이나 논설 또는 소설’이라 했고, ‘공격목표를 향한 무기’라고 강조했다.5
공격과 무기의 언어로서 그의 회화는 샤먼의 공수라고 할 수 있다.6 잡설로, 논설로, 소설로 터지는 그의 ‘설(說:회화)’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예술(藝術)의 본래적 ‘뜻/상징’을 상기시킨다. 예술은 기예와 학술의 ‘예’와 ‘술’을 따 붙인 것이다. 예술의 몸은 ‘예(藝)’가 본래 뜻하는 ‘심다, 기예, 궁극’의 생태성?창조성?철학성이 술(術)로 드러나는 실체적 ‘환(幻)’이다. 그의 작품에서 종종, 아니 가로 20미터의 거대한 <갑돌이와 갑순이>(1998~2002)에 등장하는 “군사기갑시설과 공장의 중간쯤 되는 불길하고 그로테스크한 느낌의, 거대한 기계 구조물들과 그 사이사이에 배치된 민중들의 소용돌이”(성완경)는 ‘술의 환 이미지’로밖에는 해석할 방법이 없다.
20세기 서구 모더니즘의 유입으로 동아시아의 예술은 ‘예’만 강조하고 ‘술’은 괴이하게 생각하거나 미신 따위로 몰아버리는, 그러니까 유물론으로서 ‘작품’이라는 ‘예’의 물성에 사로잡힌 꼴이 되었다. 초현실과 비현실의 샤먼미학은 완전히 저급하고 저속한 것 따위의 문화로 치부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술’이 없이 어떻게 예술작품의 판타지가 가능하고 영적 교감이 가능할 것인가? 신학철의 회화는 술(사건/서사/作)로서 예[品]를 완성하는 놀라운 전환이다. 작품은 예를 앞세워서 술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술을 일으켜서 예에 이르는 투쟁이다. 그 사실을 신학철의 회화에서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를 통해서 ‘술(術)’이야말로 21세기에 다시 호명해야 하는 ‘창조술’의 다른 이름이요, 공자(孔子)가 그토록 싫어했으나 일연스님이 《삼국유사》 들머리에서 꺼내든 ‘괴력난신(怪力亂神)’의 미학이라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자, 그렇다면 ‘술의 환’이라는 이미지의 실체는 무엇일까? 성완경은 그것을 “기계-야수, 그리고 남근적 에로티시즘”7이라 했고, 김윤수는 “우리의 근대사가 상처투성이요 몸부림치는 거대한 육체로서, ‘마성을 띤 존재’”8라 했으며, 심광현은 “한국 근?현대사의 트라우마”라고 했다. 그런데 작가는 인터뷰에서 “기(氣)의 에너지”, “올라가는 것”, “표적을 향한 화살”과 같은 말로 그것의 실체를 표현했다. 세 평론가의 비평언어는 현상학(성완경, 김윤수)과 심리학(심광현)에 바탕을 둔 해석이다. 실제로 신학철의 회화들에서 불끈 솟은 듯이 보이는 ‘남근적’ 형상과 괴물처럼 보이는 마성의 이미지에서 한국 근현대사의 트라우마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그가 “모든 사물들이 내가 아닌 관념이나 외부적인 것의 영향에 의한 베일”로 보이고 급기야는 “대항하기 힘든 괴물로 둔갑해버렸”을 때, “높은 산정에서 내려와 현재 속에서 나 자신을 던져야겠다”고 다짐했던 그 시대로 돌아가 ‘신학철’이라는 한 작가가 보았던 통시적 ‘현재’를 재사유할 필요가 있다.9 동학에서 식민지, 미군정, 6·25전쟁, 이승만 자유당 독재와 4·19혁명. 5·16군사정변, 그리고 1970년대의 유신독재와 1980년대 신군부 독재를 살아야 했던 현실을. 게다가 자본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세계화로 이어진 디스토피아의 현실이었고 그것은 또-한 늘 죽임의 현실이었다. 신학철의 회화 바탕은 그런 모순의 한국적 현실이 핵심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용오름(혹은 용솟음)의 구조로 형상화 되었다.
옛 동아시아 북방 샤먼의 머리에는 사슴뿔 관이 있었다. 진인(眞人)이 된 부처는 사슴벌에서 첫 설법을 터트렸고 반야세계로 가는 용배[般若龍船]를 만들었다. 용의 뿔은 사슴뿔이어서 사슴과 용은 동일한 상징으로 만난다. 동아시아에서 ‘사슴용’의 상징은 치유의 굿판을 벌이는 샤먼이다. 그와 인터뷰하기 위해 작업실을 찾았을 때 그는 광주항쟁을 형상화 한 ‘진혼굿’을 그리고 있었다. 오월의 넋들이 한 덩어리로 뭉쳐서 용솟아 하늘로 솟아오르는 형국이었다. 별(星)-빛(光/明)-사슴(鹿)이 모두 용(龍/미르/은하)의 상징과 만나고 그것이 ‘빛’을 은유한다는 측면에서 신학철의 회화는 새롭게 재사유되어야 한다.●
신 학 철 Shin Hakchul
1943년 태어났다.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1969년부터 1975년까지 <AG전>에 참여했으며,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서울방법전>에 참여했다. 1987년 그림마당 민에서 열린 민미협 주최 <제1회 통일전>에 출품한 <모내기>가 국가보안법에 위반된다는 혐의로 구속되었고, 2000년 사면복권됐다. 제16회 금호미술상(1999), 제1회 민족미술상(1991), 제1회 미술기자상(1982) 등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에서 작업하고 있다.
1 이 글에서 인용한 신학철의 ‘말’은 별도의 괄호표시가 없는 한 <오늘의 작가연구/신학철>(《계간미술》, 1983년 겨울호)에서 재인용한 것이다.
2 신학철은 당시 작가노트에 “나는 누구를 위하여 일하는 노동자이고 싶다. 즐김, 그 자체를 위해 그리기보다는 내가 섬기는 것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것”이라고 적었다.
3 올해 1월 15일 밤, 서울시 동대문구 장안동 자택에서 2시간가량 인터뷰를 진행했다.
4 동아일보사에서 1978년 11월에 발간한 책이다.
5 작가노트에서. “나의 그림은 잡설이나 논설 또는 소설이다. 달콤하거나 씁쓸한 맛과 같은 것을 즐기려는 것도 아니고, 고상한 척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공격목표를 향한 무기가 되었으면 할 뿐이다”가 전문.
6 1월 15일 밤 인터뷰에서 작가는 “표적을 향한 화살”이라는 말을 했고, 심리적 풍경으로서 내면적 리얼리티일 터인데 자신의 회화는 전달하려는 이야기가 명확하다고 강조했다.
7 성완경, <삶의 폭력성을 보는 두 시선>, 경기도미술관 기획전 <사람아, 사람아-신학철과 안창홍의 서민사전>에서 재인용.
8 김윤수, <일상과 역사에 대한 충격적 상상력>(《계간미술》, 1983년 겨울호, 111쪽)
9 나의 새로운 시도는 하나의 회의에서 출발했다. 모든 사물들이 내가 아닌 관념이나 외부적인 것의 영향에 의한 베일을 통하여 보여졌으며 그러한 감각에 의하여 작품이 이루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생각이 점점 뚜렷해졌고 현실화되었으며 마치 대항하기 힘든 괴물로 둔갑해버렸다.… 이젠 외진 곳에서 내면의 심연 속에서 그리고 높은 산정에서 내려와 현재 속에서 나 자신을 던져야겠다. 진정한 작가는 몸담고 있는 생활터전의 장소적 시간적 공간의 삶에 충실해야 하며, 역사적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사랑이 있어야 하고, 장소적 시대적 공감의 언어감각을 통해서 표현(이야기)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인간의 삶에 보다 가깝게 접근하는 것이고 이것은 영원으로 통하는 순간이다. 이것이야말로 자기의 삶을 확인하는 것이고 삶을 사는 예술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