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숲

안소현 작가가 초대하는
쉼의 순간

2023. 6. – 12.
삼성서울병원 양성자치료센터

월간미술과 삼성서울병원이 함께 만드는 전시가 스물한 번째를 맞이했다. 이번《고요의 숲》은 그림을 마주한 이들이 잠시나마 안온한 쉼을 얻기를 바라며 기획되었다. 병원에서 힘든 하루를 보낸 이들에게 작가가 전하는 작은 위로가 닿기를 바란다.

휴식 의자 ( Rest chair ) 145.5×112.1cm, Acrylic on canvas, 2016

안소현 작가님과 이번 전시를 만들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월간미술 독자께 작가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우여곡절 많은 삶을 보내다가 다정한 신랑을 만나 현재는 자연 속 마을에서 동물들과 함께 지내며 그림을 그리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안소현입니다.

《고요의 숲》은 병원에 오가는 분들이 작품을 통해 쉼을 얻으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되었습니다. 작가님이 쉼을 얻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가끔 대자연으로 여행을 떠나곤 합니다. 아무도 없는 광활한 자연에 있다 보면 내가 자연의 작은 일부라는 것을 실감하면서 고민 많았던 머리가 한결 가벼워지고 평온한 쉼을 얻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런 시간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니 마음속에서 늘 고요함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작업으로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고, 완성된 그림을 보면서 쉼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여행에서 영감을 많이 얻으시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있으신가요? 

히말라야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처음 히말라야를 찾았던 때는 스물셋 쯤이에요. 현실도피를 위해 훌쩍 떠났었는데, 웅장하고 환상적인 산맥을 보며 십여 일을 걷다 보니 많은 고민과 힘들었던 일들이 모두 사그라지면서 무념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던 것 같아요. 그때의 가벼워진 기분이 너무 좋았고, 큰 힘도 얻어서 이후 연속해서 가게 되었어요.

보통의 하루, 일상을 어떻게 꾸려가시는지 궁금합니다. 

집에서 작업을 하는데 대략적인 출퇴근 시간을 정해놓고 지내요. 우선 일곱 시 정도에 일어나면 강아지들과 산책을 한 시간 합니다. 돌아와서는 신랑과 커피를 마시며 간단한 안부와 담소를 나누고 회사에 출근하듯 각자의 방으로 가서 일을 시작합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신랑과 같이 점심을 만들어 먹은 후 다시 작업을 하고요. 그러다 다섯 시경 퇴근하면 강아지들과 다시 산책하고 저녁을 간단히 먹은 뒤 잠들기 전까지 쉬어요. 정리해보면 산책-작업-식사-수면 이렇게 단순하게 이루어진 루틴을 지키며 사는 것 같아요. 이외의 잡다한 모든 일들은 고맙게도 신랑이 맡아주고 있어요. 덕분에 지금의 일상이 꿈인 것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휴식》 연작에서는 빈 의자가 반복하여 등장하는데요 여유로워 보이면서도 일면 쓸쓸해 보이기도 합니다. 의자를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만히 앉아 쉬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고민의 여지 없이 의자를 소재로 넣게 되었어요. 서 있거나 혹은 누워서 잠드는 것보다는 의자에 기대어 앉아있을 때 진정 쉬는 기분이 들어요. 인물을 넣어서 그리면 특정된 사람에 갇히는 기분이 들 것 같아서 누구든 쉴 수 있도록 빈 의자를 그렸습니다.

오후의 휴식 53x53cm, acrylic on canvas, 2018

작업이 전체적으로 몽환적이지만 표현은 굉장히 사실적입니다. 분위기와 표현 사이의 간극이 작가님 작품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데요, 이런 연출을 위해서 꼼꼼하게 계획하시는 편인가요. 아니면 즉흥적으로 작업하시는 편인가요? 작업 방식이 궁금합니다.

아이디어는 즉흥적이고 구상은 계획적인 편인 것 같아요. 하얀 캔버스를 보면서 무얼 그릴지 생각하는 것은 부담이 돼서 그렇게 작업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문득 일상에서 그리고 싶은 것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주로 어떤 아름다운 순간을 마주했을 때인데요, 저는 그 순간을 사진으로 포착해두고 이후 심상을 더하고 응용하여 작품으로 표현해봅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색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색을 다양하게 조합해보는 것에 흥미가 많은 저는 빈 캔버스에 두세 가지의 색을 섞어 그라데이션으로 칠해봅니다. 혼합된 색이 만드는 분위기 덕분에 저절로 어떤 심상이 떠오를 때가 있는데요,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실제 요소를 찾아 그려보거나, 상상해서 혹은 추상적으로 그려보기도 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또는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작품이 있으시다면?

우선 이번 전시에는 제가 원화를 소장할 만큼 아끼는 그림이 여러 점 있어요. 하지만 늘 작업에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느껴서 지난 작업을 보면 마냥 좋다기보다는 아쉬운 부분을 먼저 보게 되더라고요.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는 어떻게 그렸는지 스스로가 신기할 만큼 과거의 열정에 놀랄 때도 있어요. 지나고 보면 또 달라지겠지만, 작업하고 있는 그림들이 매 순간 가장 좋습니다. 아무래도 작업 중에 가장 마음을 쏟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요즘은 자연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풍경에 약간의 상상을 더해 작업 중입니다.

작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시다면요? 

어떤 말보다는. 잠시나마 작업을 보며 평안해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저는 아무 생각이 없을 때 가장 편안하다고 느끼는데 보통 아름다운 무언가를 보고 있을 때가 그런 것 같아요. 아름다움에 빠져있다 보면 무념무상의 상태가 되는 기분이 너무나 좋더라고요. 그때의 기분을 제 그림에 고스란히 담아내 보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함께 향유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느낌은 감상자의 몫이니 어떻게 느끼더라도 괜찮아요. 각자만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즐겨주세요.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올해는 10월과 12월에 개인전이 있습니다. 여행과 일상에서 보았던 순간들을 담은 신작들로 보여 드리게 될 것 같아요. 많이 찾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고요의 숲》을 마주하실 관람객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환자분들의 아픔과 고통을 위로하기에는 어떤 말도 부족할 것 같아요. 저의 어머니도 암으로 투병하시다가 일찍 돌아가셨는데,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무척 힘들었었거든요. 누구보다 아프고 힘겨운 시간을 겪고 계실 분들께, 또한 병원에서 애쓰시는 모든 분께 이번 전시가 위로와 응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림을 보는 순간만큼은 마음의 짐 대신 안온한 고요의 숲을 마주하시길 바랍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전시 전경

사진: 작가 제공
글, 전시 전경 사진: 문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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