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REVIEW 송현숙
복잡하고 어려운 것을 단순화하면 그 힘은 강해진다. 최소한의 붓놀림으로 성숙하고 명료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작가 송현숙을 만나본다. ‘획’이라는 동양적 개념과 서구미술의 ‘시간성’이 공존하는 그의 회화에 드러난 리얼리티는 무엇일까.
2014년 11월 11일부터 12월 31일까지 학고재에서 열린 개인전 를 통해 한층 묵직하고 깊어진 그의 작업세계를 살펴본다.
적극적 내용미학으로의 모색, ‘붓질의 다이어그램’을 떠올리며
박석태 미술사
어떤 텍스트냐를 막론하고 그 안에는 작가가 추구하는 진실한 믿음의 세계가 존재한다. 그것이 세계평화나 미술의 사회적 역할과 같은 거대담론일 수도 있지만, 작가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좀처럼 알아차릴 수 없는 내밀한 태도 혹은 정서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작품에는 그 수만큼의 리얼리티reality가 존재한다고 할 터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려는 리얼리티는 흔히 ‘리얼한 표현이 인상적이다’라고 할 때의 사실적 표현을 지칭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작품으로서 다가가려는 작가의 구체적인 어떤 지점을 가리킨다. 이를 조형예술에 국한해 말하자면, 그 내밀한 지점에 다가가려는 태도 자체에 존재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구사하는 언설言說로는 도저히 표현되지 않지만, 특유의 시각적 장치를 통해서만 작가가 제시하고 싶어 하는 리얼리티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송현숙의 회화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리얼리티는 무엇인가. <3획>, <6획>, <28획> 등 작품 타이틀이 말하듯 최소화된 획으로 펼쳐 보이는 동양적(한국적) 개념인가, 그를 통해 작품과 작가가 대면하는 방식인가, 혹은 행위와 방식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내용적 측면의 리얼리티인가. 이때 리얼리티라는 개념은 1970년대 파독 간호사 출신으로 겪어야만 했던 디아스포라라는 정체성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탐구인가, 화면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횃대, 흰 천, 익명의 인물과 같은 소재들로 전달하려는 두고 온 땅에 대한 그리움인가.
그가 제시하는 ‘획’이라는 동양적 개념은 서구미술의 ‘시간성’과 일정 부분 맥을 같이한다고 보인다. 획은 필을 긋는 행위를 뜻하지만, 호흡이 만들어내는 시간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연담蓮潭 김명국金明國(생몰년 미상)의 <달마도>나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생몰년 미상)의 <풍설야귀도>에서 그 본질적 속성과는 별개로 그야말로 ‘일필휘지’가 만들어내는 정지된 호흡을 읽기도 한다. 반대로 공필工筆로 형사形似를 추구하는 그림에는 헤아릴 수 없는 붓질의 중첩이 만들어낸 시간이 응축돼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획을 긋고 그 수가 그대로 작품 타이틀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송현숙의 화면은 상당 부분 동양적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인다. 송현숙은 이번 개인전에서도 중첩된 시간성을 예의 그만의 태도로 기록하고 있다. 그가 겪어낸, 혹은 그려 온 지난한 시간의 쌓임을 어두운 색채로 증언하는 작업 태도는 절제된 획의 흔적을 보여주는 방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는 시간성을 기록하는 그만의 적절한 행위로 보인다. 그러나 시간과 행위를 기록하는 서구의 추상표현주의 방식과는 상당히 다른 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즉 서구의 방식이 실존적 사고에 근거해, 대상(화면)과 주체를 전제한 채 주체가 강조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고 한다면, 송현숙의 그것이 화면과 마주하는 주체가 구분되지 않는 몰아일체의 경지를 탐구함으로써 서구의 이분법적 사고를 해체한다는 점은 주목을 요하는 지점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획수를 기록하는 그의 작품은 시간의 경과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것이 외면화하기까지 사유의 기록이기도 한 것이다.
동양적 사고로 풀어낸 내면의 리얼리티
송현숙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시간에 대한 동양적 사고를 실험한다. 즉 시간 그대로의 시간positive time과 대비되는 개념적인 시간negative time을 형상화하는 방식을 취한다. 언뜻 보기에 그의 화면은 획수와 타이틀로 이어진 순환구조로 마치 촬영시간과 러닝타임이 일치하는 무편집영화를 연상시키지만, 그 이면을 채우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혹은 그 정체성에 맞닿은 재현을 넘어선 사의寫意의 흔적이라는, 기나긴 사유의 시간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고 보인다. 이처럼 가시적·비가시적 시간이라는 양면성을 표현하는 그의 방식은 마치 동양의 음양사상을 떠오르게 하는 지점인 바, 선형적 시간개념을 근간으로 한 서구적 사상에 대한 일종의 반전을 시도하는 듯하다.
한편 사유가 동반된 시간 개념을 증언하는 그의 행보는 시대의식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끈 작품은 <붓질의 다이어그램(4월 16일 세월호 비극을 생각하며 그림)>(이하 <붓질의 다이어그램>)이다. 검고 어두운 배경 속에 그가 오랫동안 택해온 소재들-횃대, 그 위에 놓인 흰 천으로 감긴 길고 날카로운 형상-이 마치 깊은 바다 속에 침잠해 있는 비극의 배처럼 검은 공간 속에 힘겹게 형상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들은 그가 두고 온 땅을 떠오르 하는 그리움의 기표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제목의 ‘다이어그램’이 뜻하듯 그와는 다른 무엇인가를 전달함을 목적으로 제시된 시각언어로 보인다. 통곡마저 삼켜버린 그 음험한 바다 한가운데서 서서히 가라앉으며 운명을 달리한 수백 명의 원혼에 수의를 연상시키는 흰 천이 감긴 듯한 장면은 고요하므로 더 큰 울림을 담아낸다. 유일하게 획수가 표기되지 않은 작품 제목이 상징하는 듯한, 적어도 이 작품에서만큼은 그가 줄곧 스스로 내면화해왔던 규율을 넘어선 태도로 인하여 그가 제시하려는 내용적 측면의 ‘리얼리티’를 얻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번 개인전에 선보인 16점의 작품은 <붓질의 다이어그램>으로 수렴되는 듯하다. 구도하는 수도승처럼 한 획 한 획 써내려간 그의 화면은 이국에서 사무치게 솟구치는 고향 땅에 대한 그리움, 그곳에서 벌어지는 갈등으로 인한 슬픔, 그리고 차마 외면하지 못할 시대의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붓질의 다이어그램>에 이어 <8획>에 등장하는 횃대에 감긴 흰 천이 우리 시대의 비극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면, 실상 그는 화면에 단지 여덟 번 붓을 그은 것만이 아니라고 보인다. 현상적으로 보이는 8획을 통해 그는 4월 16일, 그때부터 간단없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스스로의 아픔을 화면과 일체가 되어 증언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서두에서 리얼리티가 작가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좀처럼 알아차릴 수 없는 내밀한 태도 혹은 정서의 문제일 수 있다고 적었다. 또 내밀한 지점에 다가가려는 태도 자체에 존재 가치가 있다고 했다. 동양적 사고에 기반을 둔 조형언어라는 그만의 리얼리티는 바야흐로 내용적 측면에서 리얼리티를 획득하는 모색의 지점에 서 있다고 보인다. 달리 표현하자면 개인적 차원의 정서를 드러내는 태도가 사회적 인식의 범주로 나아가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더욱이 그 동안의 작업이 디아스포라로서 정체성을 모색하는 정서적 보편성을 획득하는 데 성공을 거두어 왔으므로 이러한 그의 변화는 작업의 이력에 깊이를 더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한다. 리얼리티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기법적인 해석과 표현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보편적인 속성으로의 전이, 나아가 이미지가 갖는 존재론적인 규명이 적극적인 내용미학으로 연결되었다는 데에 이번 송현숙 개인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
송 현 숙 Song Hyunsook
1952년 태어났다. 1972년 파독 간호원으로 독일로 건너가 4년간 독일의 병원에서 근무하다 함부르크 미술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독일 학술교류처 장학생으로 전남대에서 동양화와 한국미술사를 연구했다. 1982년부터 독일과 한국을 넘나들며 18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스위스 베른미술관, 독일 함부르크 미술관,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일본 모리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현재 함부르크에서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