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때時 깔色, 우리 삶에 스민 색깔

2016.12.14~2.26 국립민속박물관

김용주 |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운영디자인 기획관

때時깔色, 우리 삶에 스민 색깔〉. 흥미로운 제목과 주제에 한껏 부푼 기대감을 가지고 현장에서 마주한 전시의 첫인상은 명료했다. 전시기획 방향과 공간 전개 방식은 본 전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흐름을 군더더기 없이 전달하고 있었다. 기획전시실로 연결되는 복도는 모든 색의 합인 블랙으로 도색되어 있어 과연 이 전시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관람자의 기대를 한층 고조시킨다. 블랙 컬러의 복도를 지나 전시실에 들어서면 시각적으로 대비되는 하얀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전시에서 하고자 하는 ‘색깔’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들려주기 위해 잠시 우리의 시선에서 색을 지워내는 듯하다. 그리고 얼마 후 하얗던 공간엔 각 영역에서 들려줄 색과 관련된 이미지와 텍스트들이 영상으로 투사되며 전시에 생기를 돋운다. 본 전시는 ‘우리의 삶 속에 스민 색깔’을 3개의 중주제, 11개의 소주제로 구성하며 전시실은 크게 7개의 물리적 영역으로 나뉜다. 단색(單色, monochrome)을 다루는 다섯 개의 영역과 배색(配色, color scheme)을 다루는 두 개의 영역, 그리고 다색(多色, polychrome)을 다루는 마지막 영역으로 구성된다. 각 색의 영역은 중앙 복도를 중심으로 대칭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배치의 공간 구조는 전시의 질서를 형성시켜주는 장치 구실을 하게 된다. 중앙에는 전시에 대한 전체 설명과 각 색 영역에 대한 배치도가 있어 관람 정보를 제공한다.
먼저 백(白)색 영역으로 들어서면 사물과 재질에 따라 백색의 빛깔이 같은 듯 다른 느낌으로 조화를 이루며 유물과 작품에 적용된 색의 미감과 의미를 전한다. 백색의 전시영역에서는 흑백(黑白)의 배색(配色) 조화를 함께 만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으며 공간 너머 반대 색인 흑(黑)색의 전시영역과 시각적 병치를 이룬다. 두 개의 반대되는 단색 전시영역 중간에 배색 전시영역을 배치하는 구성은 각 색의 미감과 의미를 전달하는 데 더욱 풍부한 설명이 되어준다. 예를 들면 하나의 단어를 이해하기 위해 유의어와 활용어 그리고 반대어를 함께 제시하는 방식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그 밖에도 각 색의 공간에서는 유물과 현대작품, 동시대 사람들에게 익숙한 주변 사물과 더불어 색을 나타내는 다양한 언어, 한시, 속담 등을 통해 우리 삶에 스민 색의 의미와 정서를 유??·???무형 콘텐츠를 활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관람자에게 전한다. 단색(單色)과 배색(配色)의 전시 관람을 끝으로 마지막에 배치되어 있는 다색(多色) 영역에 들어서면 공간적 개방감과 함께 색동과 이월오봉도 등 유물과 작품이 한눈에 펼쳐진다. 다색(多色) 영역의 오픈형 디스플레이 방식을 통해 앞서 들려주던 하나, 하나의 개별 이야기들이 합쳐져 절정을 이루듯 색의 클라이맥스를 느끼게 한다.
또한 이곳에는 관람자들이 미디어 매체를 통해 색 구성을 체험할 수 있도록 참여 코너가 마련돼 있다. 전시실에 들어서며 받은 첫인상이 전시를 다 둘러보고 나오는 마지막 발걸음까지 이어졌다. 어느 곳 하나 과함이 없는 구성은 명료했다. 전시디자인을 할 때 가장 어렵고 중요한 점은, 과하지 않게 전시 주제를 효과적으로 어떻게 드러낼 것인지에 대한 문제이다. 여러 전시 중 기획 의도와 디자인 콘셉트가 맞지 않아 전시 주제가 무엇인지 모호한 경우를 종종 본다. 전시디자인은 실내 장식이 아니다. 그리고 멋스러운 가구나 첨단 매체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전시 콘텐츠와 기획의도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간적, 시각적 논리를 만드는 것이 바로 ‘전시디자인’이다.
이렇게 기획된 전시는 새로운 관계와 의미를 형성한다. 즉 기획 스토리와 전시 공간구조의 관계, 공간과 관람자 움직임의 관계, 작품(유물)과 작품 사이 관계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관계들은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내고 주제는 같을 지라도 차별화된 전시를 가능하게 한다. 사실 그동안 ‘색(色)’을 주제로 한 전시는 여러 곳에서 있어왔다. 그러나 이번 전시가 차별화되어 관람자의 기억에 스미는 이유는, 전시 기획과 공간구조가 조화를 이뤘기 때문이다. 전시실을 거닐고 구획된 영역을 드나드는 행위는 책을 읽으며 책장을 넘기는 무의식적인 행위와 같다. 그리고 이 행위는 전시를 읽어내는 필요조건이 되며 전시실에 계획된 시선의 대비와 순차적 전개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화자의 방식과 같다. 한동안 색과 관련한 전시라 하면 먼저 〈때時깔色, 우리 삶에 스민 색깔〉을 떠올릴 듯하다.

위〈때時깔色, 우리 삶에 스민 색깔〉 전시장 입구

CRITIC 박상우 뉴모노크롬: 회화에서 사진으로

2.9~3.5 갤러리 룩스

이필 | 홍익대 미술대학원 교수

사진이 애초에 모노크롬으로 시작되었다고 보았을 때 작가의 전시제목이 〈회화에서 사진으로〉 가는 뉴모노크롬이라는 점은 흥미와 의문을 동시에 던져주었다. 갤러리 룩스로 들어서자 ‘어디선가 본 듯한’ 낯익은 작품들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그림이 아닌 사진이 다양한 모노크롬 추상회화를 떠올리게 한다. 전시장에는 미술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말레비치, 아그네스 마틴, 이브 클랭, 앨런 매컬럼, 박서보, 이우환을 연상할 수 있는 작품들이 걸려있다.
다수의 작품이 주로 사각형과 원의 형상을 띠고 있고 그 제목도 〈추락하는 검은 원〉 혹은 〈검은 사각형의 비밀〉 등이다. 이러한 유형과 함께 붓이 휙휙 지나간 이미지로 구성된 〈터치〉, 전면 모노크롬 작품 〈모노 골드〉 등은 사진을 이용한 서구의 절대 추상, 추상표현주의, 모노크롬의 패러디로 보인다. 〈디지털 묘법〉이나 〈선으로부터〉는 박서보와 이우환의 회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박상우는 “회화는 오브제를 버림으로써 모노크롬을 실현”하지만 사진은 “반대로 오브제에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모노크롬의 놀라운 우주를 발견”한다고 하면서 오브제에 대한 미시적인 접근을 통해 추상의 세계를 추구한다.
박상우의 모노크롬 사진은 보는 재미보다 미술사와 사진의 주요 개념 및 담론들을 환기시킨다. 내러티브가 제거된 추상 사진이 인간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표현할 수 있는지는 언제나 논쟁거리였다. 카핀이나 하트만 같은 모더니즘 사진 비평가들이 픽토리얼리즘을 버리면서 순수하고 꾸미지 않은 사진적인 수단으로 승부할 것을 주장했고, 모더니즘 사진에서 그것은 근접촬영을 통한 추상으로 시도되었다. 모더니즘 추상회화의 옹호자 그린버그는 회화와 사진을 엄격히 구별하여 추상을 추구하는 사진을 경계했다. 박상우의 사진은 단순히 추상을 흉내 낸 모더니즘 사진은 아니다. 패러디와 역설의 전략이 개입되면서, 그의 사진은 로잘린드 크라우스가 주장한 포스트모던적 원본 없는 카피들로 보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의 사진 이미지는 반드시 무언가의 이미지라는 인덱스의 원칙을 따르고 있다. 크라우스의 인덱스 개념이 모더니즘 추상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의 추상 사진은 또 다른 역설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추상이 비대상성을 추구한다고 할 때 박상우의 이미지는 추상을 가장한 대상 사진이기 때문이다. 그는 오브제의 표면을 확대 촬영하여 모노크롬 회화의 형태로 제시한 “추상이면서도 현실인” 역설의 이미지들을 통해 가장 기계적이고 가장 물질적인 것으로 깊이와 인간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과연 이것은 가능한 일일까. 작가가 강조하는 오브제의 물성은 사진의 표면이라는 투명 유리에 갇힌 것일 뿐이다. 회화에서 사진으로의 전이는 작품 표면의 다양한 물성과 텍스처가 프린트라는 단일한 물성의 표면에 갇힌 채 시각적 일루전의 유희를 제공할 뿐이다. 동전의 표면이건 깨진 휴대전화 액정을 찍건, 사진의 표면 물성은 늘 동일하다. 사진의 표면성은 언제나 사진 해석의 한계가 되었다. 그러나 박상우는 사진의 표면을 통해 과학적 무의식의 세계, 비물질의 세계, 무의식의 세계마저 제시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그의 모노크롬 사진의 표면은 우리가 무의식의 세계로 진입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것일까. 이것은 회화의 모노크롬이 물질과 더불어 추구했던 세계이기도 하였으니 박상우의 〈회화에서 사진으로〉는 한편 모노크롬 회화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박상우 〈디지털 검은 사각형〉(오른쪽) 2016

CRITIC 이동수

2.1~28 갤러리 조은

고충환 | 미술평론

숨결의 시(작). 작가 이동수가 자신의 근작에 부친 주제다. 대략 숨결이 시작되는 곳, 숨결의 근원 정도를 의미할 것이다. 유형무형의 가시적이고 비가시적인 모든 존재는 결을 가지고 있다. 바람에도 결이 있고, 주름에도 결이 있고, 세월에도 결이 있고, 심지어는 마음에도 결이 있다. 존재 치고 결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없다. 다르게는 길과 겹과 주름, 물리적으로는 파동과 파문과 파장, 동양학으로 치자면 기와 운과 생과 동의 상호작용, 그리고 운동으로 치자면 이행과 유격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모든 존재는 항상적으로 여기에서 저기로 이행 중이며, 그렇게 이행하려면 구조적으로 유격이 있어야 하고 길이 있어야 한다. 그 결(그리고 길)들의 궁극이 숨결(그리고 숨길)이다. 호흡이다. 최초의 숨결이 허다한 다른 결들로 분기되는 것으로, 그리고 그렇게 무명의 존재를 파생시키는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그렇게 숨결은 결들의 궁극이고 존재의 원인이다. 작가는 그 숨결이 시작되는 곳(것)을 겨냥한다. 궁극 중의 궁극을, 원인 중의 원인을 정조준 한다.
그림의 주제 치고는 좀 거창하다 싶다. 흔한 사발 아니면 다기에 담아내기에는 너무 큰 주제가 아닌가도 싶다. 아마도 숨 쉬는 그릇에서 처음 착상한 것일 터이다. 그릇은 숨을 쉬는데, 알다시피 이는 결코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실을 알고 보면 그 주제가 그렇게 거창하지만은 않을 수 있다. 다도 혹은 다례에서 보듯 차 한잔 마시는 행위 속에도 우주가 있고 각성이 있음을 생각하면 그다지 큰 주제가 아닐 수도 있겠다. 문제는 작가가 흔한 사발 아니면 다기 그림 속에 숨과 결을, 숨이 들고나는 길을, 존재의 원인을, 우주와 각성을 어떻게 담아내고 실현하는지를 살필 일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건 무슨 수학공식처럼 손에 잡히는 실체로서보다는 감각적인 아우라를 통해서 암시되고 감지되는 것일 수 있다.
사발 혹은 다기를 그린 작가의 그림에는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각각 숨을 강조하고 결을 부각한 경우로 볼 수 있겠다. 사발 표면에 바른 유약이 머금은 은근한 투명성 혹은 반투명성이 숨을 강조하고 있다면, 사발의 물성과 질감이 두드러져 보이는 또 다른 경우가 결을 강조한 것일 수 있겠다. 표면적으로 구분돼 보이지만, 숨과 결이 하나이듯 그 이면에서 하나로 통하는,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서로 공명하는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이런 공명은 모티프에 해당하는 사발과 검푸른 배경화면의 공명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검푸르다고 했다. 푸른 기미를 머금은 검은색이고, 빛의 기운을 함축한 어둠이다. 그리고 그렇게 작가의 그림은 수장된 사발을 보는 것 같고,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의 켜(질감)를 보는 것 같고, 어둠이 머금은 빛의 기미가 고요와 정적을 가만히 흔드는 것도 같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은 마치 찻잔 속에 담긴 우주 혹은 삼라만상처럼 존재의 원인에 대한, 숨결이 시작되는 곳(것)에 대한 명상에 가만히 빠져들게 만든다.

CRITIC 애나 한 Pawns in Space 0.5

2.16~3.18 갤러리 바톤

이승환 | 에이루트 디렉터

갤러리 바톤은 2월 16일부터 약 한 달간 애나 한의 작품으로 가득 차게 된다. 천장고 4m에 달하는 전형적 화이트큐브가 애나애나하게 바뀐 건, 작품 제작부터 설치까지 작가가 모든 걸 틀어쥐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혼자서 드로잉하듯 작품을 배치하고, 공간의 요소와 리듬을 통합하고 조율하는 재료들을 설치했을 것이다. 작가는 유학시절을 거쳐 귀국 후 여러 레지던시를 전전하며 여러 번 이사를 다녔는데, 그 경험이 아이러니하게 공간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고 한다. 작업실 환경은 2015년 에이루트에서의 개인전 때보다 나아졌으나 여전히 현실 공간(작업실)이 작품형식(전시장)의 모티프가 됐을 거다.
공간을 효과적으로 장악하는 방법 중 하나로 천장을 뚫거나 바닥을 쪼개는 게 있다. 이미 일리야 카바코프나 도리스 살세도 등의 작가가 쿵 뚫고 쫙 쪼갰으니 이후 웬만한 방법으로는 새로운 충격을 주기란 어려울 것이다. 애나 한은 공간 장악보다 ‘조율’을 선택했다. 그리고 일상적 오브제의 선택과 이들의 무심한 배열을 통해 얻어지는 생경함 대신 평면회화 본연의 매력에 집중하고 이 매력이 공간으로 넘치는 순간에 주목했다.
때문에 애나 한은 우선, ‘좋은 화가(painter)’다. 그녀는 기억을 물질로 바꿀 수 있다. 기억 중 절정의 순간을 잡아 캔버스 위에 고정한다. 물질로 전환될 때 기억은 예쁜 색과 최소한의 형태로 소환된다. 단색의 면이 광선에 따라 다른 느낌을 갖도록 섬세한 브러시 스트로크와 보카시(bokashi, gradation)를 계획하여 치밀하게 그려낸다. 색의 선택도 과감하다. 예쁜 색 선택에 주저함이 없다. 크건 작건 사각이건 다각이건, 스스로 선택한 프레임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넘친 기억은 작가를 공간 연출가로 만든다. 프레임 밖으로 확장된 세계는 3차원인데, 시시할 만큼 소소한 몇 가지 재료만 가지고 타블로를 효과적이고 경제적으로 공간화한다. 전시장으로 들어가서 왼쪽 상단에 걸린 〈Meteor Shower〉는 작품에 내재된 LED조명과 전시장 조명 덕분에 드러난 벽 ‘속’의 그림자까지 작품으로 맞아들인다. 〈Cast〉, 〈Sunset Boulevard〉, 〈Butterfly〉 등 작품 대부분이 천, 실, 조명, 크고 작은 캔버스를 마치 물감처럼 활용해 공간에 그린 ‘회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작업은 입구 쪽 스트라이프 벽면이다. 분홍과 연두, 이 두 색채가 아사무사하게(알 듯 모를 듯하게) 조합된 시트지는 프레임 안과 밖, 작품과 비(非)작품처럼 내 마음속에 그어진 경계를 흐트러뜨렸다. 그간 프레임 밖 세계를 상상하는 건 관람자의 몫이었다. 애나 한은 거기까지 과잉 친절을 베푼 걸까.

위 애나 한 〈Pawns in Space 0.5〉 전시광경

CRITIC 송창: 잊혀진 풍경

2.10∼4.9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

이영란 | 미술칼럼니스트, 뉴스핌 편집위원

민중미술 진영의 대표적 화가 송창(65)은 30년 넘게 ‘분단’을 테마로 작업해왔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반도의 아픈 현대사와 대치상황을 특유의 질박하고 묵직한 회화를 통해 일깨우고 있다. 하지만 증강현실게임의 포켓몬이 뮤지엄과 문화유적지에 출몰하고, 4차 산업혁명이 논의되는 이 시점에서 ‘분단’은 일견 진부한 테마로 여겨진다. “아직도 분단을 붙들고 있느냐”는 시선도 있다. 혹자에게는 시대착오적인, 케케묵은 주제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해묵은 주제를 끈질기게 붙들고 작업해온 송창의 생각은 다르다. 분단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요, 천착해야 할 이슈라는 것이다. 남북 대치 상황이 더욱 첨예해진 현 시점에선 모두가 질문하고, 숙고해볼 과제라고 본다.
그런 그가 오랜만에 본격적인 미술관 개인전을 꾸미고 대작들을 발표했다. 1997년, 지금은 없어진 동아갤러리에서 개인전 〈기억의 숲-소나무〉를 개최한 뒤로 20년 만의 미술관 초대전이다.
경기도 성남아트센터 내 큐브미술관에서 〈송창-잊혀진 풍경〉이라는 타이틀로 4월9일까지 열리는 작품전에는 근작 및 신작 회화, 입체설치 등 40여 점이 출품됐다.
전시작들은 송창의 뚝심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민간인은 더 이상 진입할 수 없는 민통선지역의 쓸쓸한 벌판을 꾹꾹 눌러 담듯 그린 〈민통선 들녁〉(1990)이라든지, 임진강변을 절규하듯 그려낸 〈임진갯벌〉(1993) 같은 1990년대 작품도 포함됐지만 이번 개인전에는 2011~2015년 제작한 작품이 주류를 이룬다. 근작들은 형식상으론 신표현주의, 내용상으론 리얼리즘 미술의 성격을 띠지만 그 카테고리에 집어넣기엔 송창의 조형실험은 다분히 초현실적이다. 현대사가 초래한 민족의 절망과 한(恨), 초자연적 세계관 등이 작품 속에 강렬하게 응집돼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인 〈섬광〉(2015)을 보자.
흰 눈이 내린 비포장도로 위로 장갑차의 깊은 바큇자국이 검붉은 흙길을 드러낸 가운데 저 멀리 군부대가 쏘아올린 포탄의 불꽃이 석양의 하늘로 솟구친다. 움푹 패어 질척거리는 흙구덩이에 고인 물은 60년 전 전투에서 누군가 흘린 선혈처럼 핏빛이다. 그 피는 질척거리는 구덩이 아래로 흘러내리며 화가의 발치에서 멈춘다. 이제 비무장지대를 떠나야 할 시간이다. 해가 지면 민간인은 머물 수 없다. 두 동강 난 조국을, 절망적인 대치상황을 절절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꿈〉이라는 그림 또한 섬뜩하다. 비무장지대에 건설되고 있는 교각이 어느 날 끊어진 다리처럼 꿈에 등장한 듯하다. 남북 분단이라는 이 길고도 어두운 터털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작가는 질문한다.
이번에 송창은 2개 또는 3개의 화폭을 이어붙인 회화도 내걸었다. 〈그곳의 봄〉(2015)이라는 3면화는 중앙에 영국군 유해를 화장했던 검은 화장탑을, 왼쪽엔 화장장 앞에 흐드러지게 핀 노란 망개초를, 오른쪽엔 영국을 상징하는 개가 그려졌다. 이미지의 중첩을 통해 분단을 서사의 영역에서 서정의 세계로 이끈 것.
송창의 근작들은 사회학자 김홍중이 최근 설파한 〈파상(波像)〉이란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김홍중은 〈사회학적 파상력〉(2016)이란 책에서 ‘상상력’의 반대가 되는 ‘파상력’이라는 말을 창안했는데, 기존의 것들이 산산이 부서질 때가 바로 파상이라 했다. 결국 파상은 위기이자 카오스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한 자각과 각성은 다른 가능성을 열어준다. ‘분단’을 주제로 한 송창의 음울하면서도 토해낼 듯 절박한 그림들 또한 비극과 혼동을 그리되 그 속에서 움트는 또 다른 가능성, 곧 ‘파상의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번에 작가는 삼베 끈을 화면 전체에 부착한 후 물감을 입혀 두터운 마티에르를 추구한 작업 등 다양한 실험을 했다. 대형 미사일을 입체로 빚어 “민중미술 하면 좌우 이념부터 따지는 통에 작가들이 많이 떠났다. 후배들도 무거운 주제는 잘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예술이야말로 다양성이 생명 아닌가. 한쪽으로 쏠린다면 그것은 고여 있는 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민중미술은 죽었다’고들 하지만 역사와 삶을 성찰하는 미술로 변모하고 있다고 강조한 작가는 자신의 〈잊혀진 풍경〉이 〈잊어선 안 될 풍경〉이 되길 소망하고 있다.

위 송창 〈망각의 통로〉(왼쪽) 캔버스에 유채 227×182cm 2004

CURATOR'S VOICE 사물들: 조각적 시도

1.11~2.18 두산갤러리

추성아 | 독립 큐레이터

〈사물들: 조각적 시도〉를 본 관람자 대다수는 덩어리와 물성이 두드러진 작품들을 “오랜만에 접한다”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전시가 끝나가는 시점에 진행된 작가와의 대화에서는 “그렇다면 현재 조각은 무엇인가?”와 같이 조각이라는 특정 장르에 대한 정의 내리기가 지속되었다. 최근 몇 년간 젊은 작가들의 회화에 대한 탐구, 영상, 설치, 퍼포먼스, 그래픽 디자인, 아카이브 전시들이 중심과 주변을 이루던 와중에 관람자들은 분명 눈으로 매스(mass)를 훑어나갈 수 있는 작품이 반가웠을 것이다. 기획자 3명(김수정, 추성아, 최정윤)은 전시를 기획하는 첫 단계에서부터 오늘날의 조각은 이러해야 한다는 식으로 규정하는 것을 피하고 동년배 작가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각적 시도(sculptural practice)를 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필연적인 조각의 특수한 감각에 초점을 두었다.
미술사에서 조각의 성격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해체되었기에 장르의 경계 짓기가 무의미할 수 있는 지금 우리가 다시금 조각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져본다. 조각이 갖는 속성이 오늘날 1980년대생 작가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사물과 이미지를 마주하는 납작해진 현실에서 시의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일상에서 2D와 3D가 뒤섞이는 모바일이나 컴퓨터 화면의 인터페이스에서 과하게 압축되고 빠르게 유포되는 비물질화된 데이터는 곧 이미지이며 이미지가 곧 비물질화된 사물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시제목 〈사물들: 조각적 시도〉에서 ‘사물들’은 그것이 담고 있는 포괄적인 개념이 조각적 시도와 필연적으로 맺는 지점을 건들며 조각이 갖는 특수한 영역에서 제자리를 지키게끔 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이 전시는 우리가 평면과 입체를 인식하고 “시각적 유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조각의 가치를 묻고 제안해 본다. 동시대적으로 공유되는 사물과 이미지의 시각성에 대해 문이삭과 황수연은 인체에 대한 감각의 반응을 형태에 대한 가장 초보적인 경험의 출발로 보고 역으로 매체가 갖고 있는 기본 속성에 충실하다. 조재영은 사물의 속이 비어있는 껍데기를 실존하지 않는 다른 공간의 표면으로 매핑하며, 최고은은 기성품을 해체해 완전히 다른 형태의 오브제를 실험해나간다. 이처럼 참여 작가들의 조각은 상징과 서사가 사라진 과정과 행위에 집중하며 매스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관념을 넘어서 표면 중심의 조각을 탐구하는 영역에 이른다.
기획단계에서 조각이 공간을 점유하고 서로 견주어보는 과정이 드러나는 지점은 참여 작가의 조각들이 물리적인 공간에 놓였을 때 상호-충돌하면서 발생하는 감각적인 순간들일 것이다. 이를 위해 전시를 준비하면서 설치 과정에 여러 번 난관에 봉착했다. 지난한 노동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조각이 서로 가까이 있을 때의 어색함, 비슷한 크기의 조각들이 놓였을 때의 빈약함, 물성과 재료가 유사한 조각의 충돌이 주는 조잡함 그리고 각자 뿔뿔이 흩어졌을 때 공간의 흐름이 끊기는 당혹스러운 풍경들이 조각 작업의 설치가 어려운 숙제임을 체감하게 하였다. 조각이 담고 있는 입체의 공간 차지와 시각적인 양감과 중량감까지 동원되어야 하는 특성은 어느 한 작가의 단일한 조각 오브제만 드러나게 하는 것이 아닌 주변 그 자체로부터 하나의 복합적인 형태를 시각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2016 두산 큐레이터 워크숍〉에서 기획자 3명은 과거 전시와 달리 조각이라는 특정 장르의 형식을 화두로 던진 동시에 단정적으로 규정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우려를 불식하듯 작품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태도와 공간의 충돌이 일으키는 감각적이고 물리적인 시선이 기획자나 관람자에게 꽤 유사한 잔상으로서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래 남게 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는 조각의 단편들에 대해 정의하기보다 조각적인 것에 균열을 가하며 진행형인 일련의 현상을 느슨하게 조망해보는 시도일 것이다. 나아가 “나, 조각을 한다!”고 거리낌 없이 외칠 수 있는 젊은 작가들이 수면으로 올라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위 조재영 〈Through another way〉(왼쪽)  판지, 나무 60×310×230cm 2014

REVIEW

이인 개인전
1.19~2.22 갤러리초이

도시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돌. 작가는 정적이며 거친, 무심하며 온기어린, 그러나 작위적이지 않은 ‘돌’에 대한 감정을 무채색으로 담담하게 표현했다. 문학작품에서 차용한 텍스트는 증류된 기억을 언어화하는, 캔버스 위 캔버스의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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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100 Albums 100 Artists
2.10~3.12 롯데백화점 잠실점 애비뉴엘관

국내 작가 100인이 참여한 이 전시는 《롤링스톤》이 선정한 100대 명반(LP)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들은 앨범 이미지와 수록 곡 등을 참고하여 LP앨범커버 사이즈로 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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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루비아

김주리 개인전
1.24~2.9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작가는 물이 많은 환경에 취약한 ‘백묘국’이라는 식물을 모티프로 전시장 전체를 하나의 풍경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번 전시는 사루비아다방의 중장기 작가지원 프로그램 〈SO.S(Sarubia Outreach & Support)〉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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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역삼

5인의 High Noon
1.19~3.16 신한갤러리 역삼

〈신한 영아티스트 페스타 그룹공모〉 5주년 기획전. 그 동안 공모에 선정된 작가들 중 허보리(2012), 김유정(2013), 임영주(2014), 이들닙(2015), 최병석(2016) 등이 전시에 참여했다. 새벽녘을 지나 정오에 다다른 이들의 발전된 작업세계를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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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도돌이표 – Da CAPO 2017
2.1~12/14~25 갤러리 담

2016년 한 해 동안 진행한 전시 중 다시 살펴봤으면 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모았다. 1부(SINZOW, Toshimatsu Kuremoto, 신나군)와 2부(김성호, 김정은)로 나뉘어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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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인

노수인 개인전
1.24~2.5 인디아트홀 공

시인 이제니의 〈별 시대의 아움〉에서 비롯한 작가의 개인전은 현장에서 관람객과 함께 완성하는 작품으로 꾸며졌다. 작가는 세계 질서의 해체와 그것의 재조립을 통해 인식의 구조를 이루는 외부 요소를 시각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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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

노상호 개인전
1.20~3.8 송은 아트큐브

인터넷에서 수집한 이미지들을 아크릴 물감이나 수채화로 옮기는 ‘데일리 픽션’ 작업을 선보인 전시. 작가는 가상세계와 현실의 물성을 넘나드는 작업 방식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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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정숙

명정숙 개인전
1.25~31 갤러리 루벤

닭의 해를 맞아 닭과 그것이 낳은 황금알을 주된 소재로 한 작업으로 꾸며졌다. ‘대박’으로 명명된 전시를 준비한 작가는 현재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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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천서금

박상천 개인전
1.21~2.3 서울아산병원갤러리

생성, 소멸, 탄생이라는 생명의 순환을 우주 생성의 원리로 풀어낸 ‘아름다운 시간(Lovely Moment)’과 우리 전통놀이인 딱지 문양을 통해 내면을 우주화하여 재현한 ‘Korean Papers Game’ 등이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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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선김강

김연선 개인전
2.2~7 한전아트센터

이번 개인전에서 작가는 상상 속의 내면과 전생, 현생이 어우러지는 스토리를 보여줬다. 이를 통해 내면을 현실에 등장시키고 있는데, 그 매개체가 바로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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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김근태 개인전
2.22~3.1 조선일보미술관

오랜 시간 단색화 작업을 이어온 작가의 이번 개인전은 20여 점의 작품이 벽면을 메웠다. 단조로움과 다채로움이 공존하는 그의 캔버스는 심오한 철학적 사유와 역사의 질곡을 품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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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희하미

한승희 개인전
2.1~28 몽갤러리

16회를 맞는 작가의 개인전. 자연주의를 지향하는 작가는 그곳에서 취한 소재를 바탕으로 캔버스를 꾸몄다. 이를 위해 수없이 선을 그어 중첩시키는 지난한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PRIVIEW

상상적 아시아
3.9~7.2 백남준 아트센터

아시아가 공유하는 다양한 역사적 경험들을 자기체화적인 개인의 역사로 풀어낸 전시. 기록과 허구,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교란하며, 개인의 상상을 통해 진실을 도출하고 현실 속에서 불일치의 흔적들을 주시하는 이번 전시는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공유이미지들의 형식적 변화와 함께 이를 이용한 예술의 발전을 함께 이야기해 본다. 시대의 상황을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상상하는 작가인 아이다 마코토,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하룬 파로키, 호 추 니엔, 문경원&전준호 등 아시아권역 17명(팀)의 영상작가들이 참여해 아시아의 다양한 이야기를 펼치며 백남준에서 시작된 무빙 이미지라는 융합적인 장르를 다층적으로 탐구한다. 또한 혼돈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예술과 이미지가 가져오는 사실과 허구, 사적 사유와 공적 사유의 영역 해체 등 매우 유기적이면서도 확장적인 가능성을 알아본다. 호 추 니엔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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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이근민, Matter Cloud, 2016, 캔버스에 유채, 182.9 x 457.2cm

예술만큼 추한
3.7~5.14 서울대학교미술관

아름다움과 대치되는 ‘추(醜 ugly)’의 감각에 주목하는 이번 전시는 미술에 기대되는 기존의 ‘미(美)’적 기준으로는 쉽게 정의되지 않지만 명백히 존재하는 강렬한 성향들을 다각도로 조망한다. 이근민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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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열이거

오세열
2.22~3.26 학고재갤러리

은유적 메시지들, 익명적인 인물의 형상의 기호와 장시간 덮인 바탕의 화면이 어우러져 독자성을 확보한 오세열의 개인전. 회고전 성격을 띠는 이 전시는 작가의 지난 30여 년간의 작품 활동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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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래정_작품_이미지

핑크 포이즌
3.10~6.11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일상 속에서 발견한 재료들을 감각적으로 조합하며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해온 구민정 심래정. 두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상대를 매혹하는 달콤한 원동력과 속임수, 그리고 욕망의 배신으로 인한 소화불량 상태와 이로 인한 구토를 표현한다. 심래정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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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_Albrecht_Fuchs

프레젠테이션/리프레젠테이션
3.17~5.28 성곡미술관

독일 현대사진전으로, 독일 전역에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는 독일 현대미술 작가들의 최근 경향을 살펴 본다. 이번 전시는 특정한 모티프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비교 분석하는 ‘다큐멘터리 언어’를 공통으로 구사한 작가 개개인의 표현 방식과 예술적 전략을 통해 기록, 문서 역할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예술창작 매체로서 현대사진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번 참여 작가는 컬러사진, 대형 출력, 디지털이미지 제작 등 다양한 기술을 융합해 화가의 영역이던 자유로운 이미지 구성은 물론 새로운 형식의 이미지를 창조해낸다. 현실을 대하는 작가들의 변화된 태도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으며 실재를 재현하기보다는 개념적 사고에 기반을 둔 생생한 시각적 이미지의 메타포로 세계를 제시한다. 알브레히트 푹스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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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미_0_and_chair_190x126cm_Inkjet_Print_2016

유현미
3.8~4.7 사비나미술관

공간을 회화로 전환시켜 보는 이로 하여금 현실과 가상의 세계에 대한 인식의 혼동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선보여 온 유현미의 개인전.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조각, 회화, 사진의 장르를 넘나들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2차원과 3차원의 경계를 아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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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리 시메티

투리 시메티
3.15~4.29 리안갤러리 서울

캔버스 화면에 대한 도전적 실험을 선보이며 새로운 모노크롬 회화의 가능성을 연 투리 시메티의 개인전. 한국의 단색화와는 또 다른 1960년대 이탈리아 모노크롬 회화의 다양한 면모를 살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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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블럭-제이미리

4慮공간
3.9~5.21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레지던시 결과보고전. 김선영 신선주 임승천 제이미리가 창작을 위해 부단히 고민한 흔적을 펼쳐놓는다. 4명 작가의 회화, 설치, 드로잉 등 다양한 작업으로 구성된다. 제이미리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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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김남표

像.想 상상-환상과 실재의 경계
2.14~3.31 리나갤러리

상상(想像)의 어순을 바꿔 환상이 실재가 되고, 실재가 환상이 되는, 지각과 사유의 모호한 경계를 보여주고자 기획되었다. 구이진과 김남표가 참여해 실재인듯한 환상, 환상인 듯한 실제를 화면에 구현했다. 김남표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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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named-1

Lappland de 13
3.3~17 라플란드

사회적 약자로 분리되는 여성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요즘 여성예술가가 모여 여성인권에대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13명의 작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여성 권리 신장에 다각적으로 접근한다. 김명미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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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하

정주하
3.4~5.10 부산 고은사진미술관

개관 10주년을 맞아 한국사진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통합 프로젝트로 진행하는 “시작과 시작”의 첫 전시.
일상 속의 은폐된 불안을 드러내고 핵문제에 천착해온 사진가 정주하의 작업으로 테이프 커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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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1503,181x227cm,캔버스에채색,2015

이만수
3.29~4.11 갤러리 그림손

사물과 자연 그리고 사이에 맺힌 일상적 삶의 모습들에 대한 개인적이고 경험적인 기억들을 표현하는 이만수의 개인전 〈투명한 회화〉. 작가는 일상적인 모습을 통해 숨은 희로애락의 주름들을 감성적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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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크-최한결

그림과 그림
2.23~3.12 누크갤러리

김지원 작가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과정에 재학 중인 ‘김지원 스튜디오’의 김민수 안혜상 임희재 정주원 최한결이 함께하는 전시. 동시대에 서울이라는 같은 공간 안에서 겪어온 각자의 경험을 나름의 방식으로 그림에 담아 풀어낸다. 최한결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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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윤환

배윤환
3.1~29 두산갤러리

다양한 서사구조를 갖는 회화, 드로잉, 영상을 만들어 온 배윤환의 개인전. 이번 전시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생산자라는 위치와 스스로 공간을 점유하고 의미를 만들어가는 작품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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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 가노미츠오

영상과 물질 – 1970년대 일본의 판화
2.10~3.24 KF갤러리

실크스크린, 옵셋 인쇄 등 새로운 판화기법을 선보인 일본판화 52점을 소개한다. 또한 일본의 현대미술을 주제로 한 강좌 등 전시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관객 참여 기회를 마련해 일본판화에 대한 전방위적인 이해를 돕는다. 가노 미츠오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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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김성호
3.8~4.16 두가헌갤러리

현대인의 소유욕을 책과 장난감이라는 소재를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해온 김성호의 개인전. 작가는 신작에서도 책과 장난감으로 캔버스 위에 새로운 질서를 세우며 기존의 구조들이 내포하는 모순과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대안적 가능성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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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_손진아,_Inscape_Scape,_acrylic_on_canvas,_60cm(지름),_2016

손진아
3.9~4.1 갤러리 비케이

손진아는 점, 선, 면, 색이 이끌어내는 기본적인 조형요소와 구조에 관심을 가져왔다. 이러한 관심은 화면을 빼곡하게 채워나가는 반복적인 행위들로 이어지며, 이 행위들은 유려한 선과 긴장된 선 사이에 무한한 패턴의 바다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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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래

박명래
3.22~27 가나인사아트센터

자연적으로 생성된 암석의 변화를 사진으로 담는 박명래의 개인전, 작가는 지속되는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 생기는 변화 속에서 자신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사진에 담기는 순간은 한 지점이지만 흐름 속에서 읽히는 사진의 맛을 통해 지속성과 연속성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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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0202017-P1

박종하
3.2~29 갤러리 초이

세상의 근간을 이루는 ‘도(道)’와 그것을 완성시키는 ‘상대성’. 박종하는 작업 ‘창세기’를 통해 이러한 모든 변화와 운동을 상징적인 붓의 흔적과 생, 그리고 다양한 성격의 선을 이용하여 표현함으로써 만물을 존재하게 하는 근원을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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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den blue 101x70cm mixed media on hangi_3

김선형
3.13~4.28 갤러리 마리

순수한 자연의 이미지를 푸른색으로 표현하는 김선형의 개인전. 응집되고, 풀어지고, 짙어지고 옅어짐을 반복하며 각각 다른 사물들이 결이 다른 호흡을 맞춰가며 부대껴 살아가는 모습에서 단편적이나마 현실에서 살아가는 삶의 이상적인 조화로움을 엿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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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lyn Monroe(John F. Kennedy),53 X 45.5 cm, Oil on canvas, 2016

오세열 & 김동유
3.7~4.7 갤러리 조은

독창적인 작품세계로 자신만의 영역을 공고히 다지고 있는 작가 오세열과 김동유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난다. 이번 전시는 신작과 미발표작 포함 오세열이 15점, 김동유가 10점을 선보인다. 김동유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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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구 안숙

Oscillate
3.3~31 갤러리 구

안숙과 김수민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일련의 교차점인 〈Oscillate〉, 즉 운동적인 감각, 심리적인 마음이 ‘왔다갔다’하는 과정에 주목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때로는 엇나가고, 때로는 미완으로 남아 있는 고민의 과정들을 펼쳐 보인다. 안숙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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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윤

송재윤
3.7~25 갤러리 다온

먹과 물감을 사용해 전통적인 산수화를 현대적으로 그려내는 송재윤의 개인전. 현대 사회안에서 여행이 삶의 숨을 틔어준다고 생각하며 그림으로 여행을 떠나는 작가는 그림을 통해 세상을 새로운 풍경이 아닌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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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안나

임안나
3.2~21 스페이스22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진 무기, 전쟁에 대한 이미지와 실제 그것들이 가진 이미지 사이에서 새로운 감각을 찾아내는 임안나의 개인전 〈차가운 영웅〉. 전시와 같은 제목의 책 출판기념회도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3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REGIONAL NEWS

제주
태풍의 눈처럼 고요했던 그날
〈바람 잔 날, 그때 제주〉 2016.12.15~3.15 제주 4·3평화기념관

김남흥, 김산, 김성오, 김시현, 조기섭, 강술생 등 6명의 작가가 참여해 32점의 작품을 선보인 〈바람 잔 날, 그때 제주〉는 2018년 4·3사건 70주년을 준비하는 프롤로그 성격의 전시로, 4·3 이전의 제주 풍경을 보여준다. 전시제목 ‘바람 잔 날’은 4·3 ‘이전의 시간’을 의미한다. 그때보다 과거인 때를 돌아보며 그날 이후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금 환기시킨다. 전시된 작품에는 하나같이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적막한 골목과 초가집, 파도가 일지 않는 침묵의 바다, 어둠과 빛이 대비되는 동굴의 모습 그리고 앙상한 가지들. 작품에 나타난 풍경들은 곧 다가올 광풍을 예견하는 듯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고 고요하며 정적이다. 역사와 예술이 끊임없이 맞물리며 이어져온 4·3미술의 한 예를 보여준 이번 전시를 통해 역사가 담긴 공간을 예술로 시각화하고 공유하려는 고민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다. 올해로 24회를 맞이하는 4·3 미술제 또한 한 달가량 앞두고 있다. 4·3을 직접 경험한 세대와 현 세대 간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는 요즘, 예술과 문화가 하나의 매개가 되어 무엇을 기억하고 드러낼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이승미 미술사
위 강술생 〈그리운 얼굴〉철 구조물, 천, 끈, 돌,스마트스트립조명,거울, 아크릴판,300×300×300cm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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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이정기〈표리부동-사과〉혼합재료 60×60×60cm 2015

전주
호남 미술, 작품으로 말하다
〈호남의 현역작가들〉 2.10~3.26 전북도립미술관

호남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알아볼 수 있는 전시가 열렸다.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전라도’라는 동질성을 갖는 전북과 광주·전남 지역 현역 미술가 교류전 형식이며 서로의 역량을 살피고 호남 미술의 외연을 확장하는 전시로 총 16명의 전업 작가가 1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전북작가는 김성민, 김영봉, 박성수, 서완호, 이가립, 이주리, 조헌, 홍남기 등이고, 광주·전남 작가는 김명우, 박세희, 박정용, 송영학, 설박, 이인성, 이조흠, 이정기 등이다. 김영봉은 인간의 생리적 현상을 통해 몸 밖으로 배출되는 에너지원을 모으고 이를 생태계로 되돌리는 설치작품인 〈생태화장실〉을 출품했다. 조헌의 〈상대적 시간1〉은 자화상 연작으로 자신의 본모습을 잊고 있다가 가끔씩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게 됐을 때 느끼는 여러 결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이정기는 사람에게 상처받은 경험을 빛깔은 좋지만 속은 곯아있는 사과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김명우는 흰 바탕 위에 검은 모래를 사용해 스마트폰 카메라로 스캔하면 링크된 포털 사이트의 영상을 볼 수 있는 QR코드를 만들었다. 최신 기법이지만 정작 재생되는 영상은 엉터리 한국어 강좌로,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의 과도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이번 전시는 전북도립미술관과 광주시립미술관이 지난해 호남 미술 발전을 위해 체결한 업무협약(MOU)에 따라 두 미술관이 협력하여 진행한 첫 번째 전시이며 오는 2018년에는 광주시립미술관에서 동일한 주제로 새롭게 작가들을 구성하여 전시를 개최할 계획이다.
양승수 소리문화의전당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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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광주
아카이브로 만나는 원로작가 3인의 작품세계
〈호남미술을 말하다〉2016.11.15~2.19 광주시립미술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조선후기 문장가 유한준(1732~1811)이 한 말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유홍준, 1993) 서문에 인용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애정 어린 호기심으로 지식을 확장해가는 과정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녹아들 것임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이번 광주시립미술관 아카이브 프로젝트는 동선을 따라 아카이브(기록물 자료)를 효율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원로작가 3인, 탁연하, 조규일, 박행보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게 전시장을 꾸몄다. 작가별로 구획된 독립 공간에 창작물과 유기적 연관성을 갖는 기사, 도록, 사진, 문헌 등의 1차 자료와 원작을 함께 배치해 그들의 예술관을 이해할 수 있도록 실증적인 단서를 제공했다. 또한 작품 제작 동기와 과정을 채록한 인터뷰 사운드가 전시장을 은은하게 감싸며 분위기를 환기시켜 관객이 작품 설명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하였다. 1970~1980년대 광주 전남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한 3인의 원로작가 활동 전개과정을 담은 기록 자료는 지역 미술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는 연구 자료로도 가치가 있다. 단순한 구도와 밝은 색감으로 생동감 있는 자연의 모습을 화폭에 담은 조규일, 간결한 필선과 먹의 농담, 그리고 자유분방한 표현력으로 한국화의 전통을 발전적으로 계승한 박행보, 4·19기념탑(1961), 어린이헌장탑(1966) 등의 작품을 선보이며 초기 광주 조각계의 기반을 다진 탁연하의 작품을 아카이브 속에서 감상하다 보면, 그 동안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되는 새로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이부용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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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iture accidentee dans une rue du quartier de Songpa-gu, Seoul. Air -Terre Projet Korea - ON/OFF Tendance Floue / Coree France 2015-2016

파트릭 투르는뵈프〈대기/땅〉 2,524장의 사진, 비디오 1,290,000초, 2015 ⓒ고은사진미술관

부산
낯선 이곳의 익숙한 시선
〈KOREA ON/OFF〉 2016.12.17~2.22 고은사진미술관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 해〉의 마지막 공식프로그램인 이번 전시는 프랑스의 사진창작집단 탕당스 플루가 지난 16개월(2014.10-2016.1)간 한국의 면면을 기록한 결과물을 선보이는 사진전이다. 총 14명의 작가로 이루어진 탕당스 플루는 독립성을 원칙으로 삼아 1991년부터 협업해오는 그룹으로, 이번 전시에는 12명의 작가가 참여하여 태극기의 구성 요소인 음양과 사괘를 모티프로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경향’을 뜻하는 ‘탕당스(tendance)’와 ‘희미함/흐릿함’을 뜻하는 ‘플루(flou)’의 합성어이기도 한 이 작가그룹이 바라본 한국은 어떠했을까? 인종이 다르다는 이질감에서 기본적으로 받게 되는 낯선 자극을 초월한 ‘한국적’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파트릭 투르는뵈프는 궁전이나 저택의 외관을 흉내 낸 채 원색적인 네온사인으로 괴이함을 더하는 ‘한국적’ 모텔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플로르-아엘 쉬렁이 담은 무당들의 굿판 표정은 수많은 영혼을 담아낸 그들에게서 비선형적 시간성이 감지되기도 했다. 알랭 빌롬은 2015년 메르스(MERS) 사태에 공포를 느끼며 마스크를 쓰고 다니던 사람들에게서 탈(가면/탈이 나다)을 발견해냈다. 한국의 ‘정체를 알 수 없는’ 근대성을 언제나 낯설게 느껴온 필자지만 남성적이고 피상적인 근대성 그 자체인 한국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보고 왠지 모를 민망함이 느껴졌다. 프레임을 탓하고 싶지 않다. 그들은 단지 보이는 것을 찍었을 것이다.
박수지 독립큐레이터, 《비아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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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대구
지난 10년, 대구 미술의 변화와 흐름
〈2017 DAC 소장작품전 [지난 10년]〉1.25~2.26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문화예술회관은 해마다 전년도 수집 작품을 선보이는 〈소장작품전〉을 개최하고 있다. 올해에는 ‘지난 10년’이란 제목으로 2007년 이후 수집한 작품 가운데 40점을 선별했다. 전시는 총 3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사유와 몽상 사이’에는 대구의 대표 작가 이명미, 정은주의 작품을 비롯한 회화 15점이 전시되며, ‘두 개의 현실’은 미디어, 설치작품을 통해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매체의 조형 언어를 제시한다. ‘보다, 다시 보다’는 사진 등을 중심으로 사회, 문화에 대한 다각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지난 10년간 대구 미술계의 변화와 흐름을 살펴보고자 기획되었는데, 신진 작가 양성을 위해 대구문화예술회관이 주최해온 〈올해의 청년작가전〉에 선발된 작가들의 작품이 두드러졌다. 참여 작가 40명 가운데 37명이 〈올해의 청년작가전〉에 선발된 작가들로 꾸려졌으며, 이들은 점차 지역을 대표하는 작가로 성장하는 추세이다. 작가의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연결되고 신진작가 지원 정책이 어떻게 지속적인 작업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전시이다.
이민정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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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대전
공동체를 보는 방식
〈대전다큐멘타 2016: 공동체감각〉 2016.12.16~3.1 dtc갤러리

복도의 끝에서 끝까지 걸으며 텍스트와 그림을 보는 사이 승하차 승객들이 서로 반대 목적지로 이동하면서 버스처럼 아쉬움을 남기고 작품 앞을 떠나는 모습. 대전복합터미널의 dtc갤러리에서 열리는 〈대전다큐멘타 2016: 공동체감각전〉의 제목은 필자에게 어떤 공동의 목적도 이념도 없는 ‘무위의 공동체’를 떠올리게 한다. 전시에 포함된 4인의 작가는 ‘임동식, 석용현, 우평남, 전범주’이며, 이들은 전문 화가의 길을 걸어온 작가와 일상 속에서 예술을 몸으로 습득한 작가로 분류된다. 문화관광박사로 일하면서 구름, 나무 등에 부처의 얼굴을 그리는 작가 석용현과, 산에서 주운 무뿌리 그대로 조각(자연물조각)을 만드는 우평남, 이들은 임동식의 그림 〈자연예술가와 화가〉에서 만나게 되는 일상의 화가들이다. 화가를 화가로 규정하는 것도 어쩌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결정되는 관점일지 모른다. 전범주의 알록달록한 아크릴판 작업 〈The Way of See the World〉에서 눈에 힘을 주어 글자를 찾아 읽으면 ‘블랙’은 흰색 점들로 쓰여 있고 ‘화이트’는 검은색 점들로 쓰여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나의 시선이 편견이나 선입견의 망점들로 뒤덮인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화가와 비화가, 전문가와 비전문가에 대해 갖는 우리의 환상 혹은 선입견들은 공동체 내부를 가르고 반목시킨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여기 예술가들처럼 오로지 그림이 좋아서 자신의 전시를 할 뿐이다. 어떤 특정한 목적으로 공동체를 규정할 필요는 없다고 전시는 말하는 것 같다.
유현주 미술평론

최예선의 달콤한 작업실 16

달콤한작업실 16(2)

소리와 목소리

폴은 작은 물건들을 파는 가게를 운영한다. 카푸친 수도회의 수사 같은 스타일을 하고서는 도자기를 굽고 세계 여러 곳의 독특한 물건들도 수집해서 판다. 그녀는 나와 동갑내기인데다 동향인 점은 우연이라 해도, 검은 수사복 같은 옷차림을 좋아하고 성별 구분하는 장신구를 썩 좋아하지 않는 취향까지 관통하는 사이다. 게다가 그녀와 나는 둘 다 연남동에서 용산으로 이사를 한 경험도 공유하고 있다. 나는 폴의 가게에 가끔 가서 물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독특한 물건들이 갖고 있는 제각각의 이야기를. 그리고 꿈값을 내듯 값을 치르고 하나씩 내 작업실로 옮겨온다.
이번에 가져온 것은 음반이다. 다홍색 천으로 감싼 음반 케이스 중앙에 정사각형 산화구리판이 붙어있었는데, 적황색의 금속은 미세하게 녹슬어 제 몸에 기묘한 무늬를 만들었다.

“DMZ에서 녹음한 사운드 스케이프예요. 제작자는 영화음악감독 출신이고요.”

그녀는 “이런 거 좋아하는 사람 별로 없는데”라며 음악을 틀었다. 폴의 가게에 스산한 바람 소리가 휘몰아쳤다. 열두 개 트랙 모두 바람 소리로 가득했다. 풀잎이 바스락거리고 빗방울이 떨어지고 폭우가 쏟아지고 새들이 지저귄다. 산사의 풍경 소리도 들린다. 그리고 무심한 바람. 이 길 위의 소리를 붙잡기 위해 복잡한 녹음 장비를 싣고서 얼마나 자주 그곳에 갔을까.

묘하게도 바람 소리에서 계절이 느껴졌다. 여름의 바람과 겨울의 바람은 소리에 묻어있는 물기도, 그 무게도 다르다. 온전한 자연의 소리가 남아있는 곳은 우리나라에서 오직 DMZ(비무장지대)뿐일지도 모른다. 오직 민간인통제구역이라는 경계 너머에서만이 자동차 엔진 소음이 자연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자연의 소리만을 담으려 한 것도 아니다. 국적을 가진 자의 발걸음을 허락하지 않는 어느 경계에서 들리는 소리인 것이다.

그 소리들은 특별히 아름답거나 영롱하지 않았다. 황량했다. 숲을 스치고 언덕을 기어오르고 강물을 쓰다듬고 무심하고 아슬아슬한 소리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정리되지 않은 소리들 속에 도시의 틀 안에서 안주하는 인간은 절대 범접할 수 없는 어떤 질서를 이해했다. 이 소리들도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을까? 영화 〈컨택트〉에서 들은 외계어 헵타포드어처럼, 목소리 같기도 하고 목소리가 아니기도 한 어떤 소리처럼. 자연이 내는 소리는 우리의 언어와 완전히 다른 체계의 언어일지 모른다. 혹은 노래인지도 모른다. 가령 이런 의미를 가진 노래. “…북쪽에서 철새 떼가 곧 도착한다니. 나무가 다칠까, 물이 병들까 걱정하지 말기를. 이미 많은 새가 오는 길에 죽어버렸으므로…거대한 폭풍이 시작되어 길 잃은 별들이 쏟아지고 세상은 아래와 위가 뒤바뀐다 하네…”

DMZ에서 시작된 바람은 남산 꼭대기에도 잠시 머물렀다 갈 테고, 어쩌면 나는 그와 닮은 소리를 이곳에서도 들을지 모른다. 남산 아랫길 해방촌 작은 서점에 한 문학평론가의 이야기를 들으러 간 그 밤에 내 귀를 때리던 찬바람의 소리도 DMZ의 그 바람 소리였을지 모른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그 소리 위로 사람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이야기를 하는 목소리는 달콤했다. 겨울이야말로 인간의 언어에 압도적인 권력을 주는 계절임이 틀림없다. 나붓한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언어의 주술에 나는 휘둘리고 만다. 목소리에는 무언가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 있다. 서점의 고요한 공기를 가르며 따뜻한 저음이 끊어질듯 이어졌다. 목소리는 강렬하게 존재하지만 실체가 없다. 탄생과 더불어 소멸하는 것이다.

젊은 평론가는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을 이야기했다. 나는 카버의 작품 《대성당》(문학동네, 2014)을 떠올렸다. 《대성당》의 내용은 이렇다.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과 함께 TV를 보게 된 주인공은 채널을 돌리다 대성당이 나오는 화면을 고정한다. 눈앞에 펼쳐진들 결코 보지 못하는 맹인은 당연히 대성당의 형태를 알지 못한다. 그는 맹인의 요청대로 대성당을 설명하려다 종이에 연필을 쥐어주며 그림을 그려 보인다. 그러니까 맹인의 손과 자신의 손을 겹친 채로 무언가를 그린다. 어느 순간 그는 눈을 감고 손에 의지하며 그림을 그렸다. 그리하여 비로소 거대한 건축물의 경이를 맞닥뜨린 주인공의 경탄에 찬 목소리가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큰 따옴표는 멋진 도구다. 목소리의 실체를 드러내는 유일한 도구)

눈을 감고서 더 잘 보이는 것이 있고 목소리를 듣고서 더 잘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소리는 풍경이며 목소리는 안내자이므로, 이 둘은 우리의 상상을 더욱 거대하게 만든다. 젊은 평론가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작업실로 돌아오니 벽을 통해서 옆집 사는 나이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후암동 작업실은 오래된 목조 집인데다 한 채의 집을 절반으로 나누어 각각 한 집씩 들어와 사는 구조다. 게다가 나무벽으로 두 집이 나뉘어 있으니 목소리와 다양한 소리들이 서로 넘나드는 것이다.

벽을 통해 들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분자분 길게 말이 이어지지도 않았고 부부의 대화가 흐르지도 않았다. 기침소리, 낮은 탄식과 신음, 단발적인 응답의 목소리가 웅얼거리는 TV 소리 사이로 들린다. 그 소리와 목소리로 나는 무언가를 조금 알아챈다. 타인의 삶이 흐릿하지만 분명하게 다가온다. 매일 저녁 6시엔 샤워를 하는 아들과 감기를 앓고 있는 아버지와 말없이 TV를 보는 어머니의 존재를 느낀다. 오래 지속되어온 한 가족의 삶, 나와 한 번도 교차한 적 없는 타인과 이렇듯 가까이 있음을 미세한 소리와 목소리로 듣는다. 그렇다면 나는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 벽의 반대편에서 들리는 소리와 목소리는 어떠할까? 그들에게 ‘나’라는 상상은 어떤 형태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