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ATOR'S VOICE 사물들: 조각적 시도

1.11~2.18 두산갤러리

추성아 | 독립 큐레이터

〈사물들: 조각적 시도〉를 본 관람자 대다수는 덩어리와 물성이 두드러진 작품들을 “오랜만에 접한다”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전시가 끝나가는 시점에 진행된 작가와의 대화에서는 “그렇다면 현재 조각은 무엇인가?”와 같이 조각이라는 특정 장르에 대한 정의 내리기가 지속되었다. 최근 몇 년간 젊은 작가들의 회화에 대한 탐구, 영상, 설치, 퍼포먼스, 그래픽 디자인, 아카이브 전시들이 중심과 주변을 이루던 와중에 관람자들은 분명 눈으로 매스(mass)를 훑어나갈 수 있는 작품이 반가웠을 것이다. 기획자 3명(김수정, 추성아, 최정윤)은 전시를 기획하는 첫 단계에서부터 오늘날의 조각은 이러해야 한다는 식으로 규정하는 것을 피하고 동년배 작가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각적 시도(sculptural practice)를 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필연적인 조각의 특수한 감각에 초점을 두었다.
미술사에서 조각의 성격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해체되었기에 장르의 경계 짓기가 무의미할 수 있는 지금 우리가 다시금 조각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져본다. 조각이 갖는 속성이 오늘날 1980년대생 작가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사물과 이미지를 마주하는 납작해진 현실에서 시의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일상에서 2D와 3D가 뒤섞이는 모바일이나 컴퓨터 화면의 인터페이스에서 과하게 압축되고 빠르게 유포되는 비물질화된 데이터는 곧 이미지이며 이미지가 곧 비물질화된 사물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시제목 〈사물들: 조각적 시도〉에서 ‘사물들’은 그것이 담고 있는 포괄적인 개념이 조각적 시도와 필연적으로 맺는 지점을 건들며 조각이 갖는 특수한 영역에서 제자리를 지키게끔 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이 전시는 우리가 평면과 입체를 인식하고 “시각적 유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조각의 가치를 묻고 제안해 본다. 동시대적으로 공유되는 사물과 이미지의 시각성에 대해 문이삭과 황수연은 인체에 대한 감각의 반응을 형태에 대한 가장 초보적인 경험의 출발로 보고 역으로 매체가 갖고 있는 기본 속성에 충실하다. 조재영은 사물의 속이 비어있는 껍데기를 실존하지 않는 다른 공간의 표면으로 매핑하며, 최고은은 기성품을 해체해 완전히 다른 형태의 오브제를 실험해나간다. 이처럼 참여 작가들의 조각은 상징과 서사가 사라진 과정과 행위에 집중하며 매스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관념을 넘어서 표면 중심의 조각을 탐구하는 영역에 이른다.
기획단계에서 조각이 공간을 점유하고 서로 견주어보는 과정이 드러나는 지점은 참여 작가의 조각들이 물리적인 공간에 놓였을 때 상호-충돌하면서 발생하는 감각적인 순간들일 것이다. 이를 위해 전시를 준비하면서 설치 과정에 여러 번 난관에 봉착했다. 지난한 노동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조각이 서로 가까이 있을 때의 어색함, 비슷한 크기의 조각들이 놓였을 때의 빈약함, 물성과 재료가 유사한 조각의 충돌이 주는 조잡함 그리고 각자 뿔뿔이 흩어졌을 때 공간의 흐름이 끊기는 당혹스러운 풍경들이 조각 작업의 설치가 어려운 숙제임을 체감하게 하였다. 조각이 담고 있는 입체의 공간 차지와 시각적인 양감과 중량감까지 동원되어야 하는 특성은 어느 한 작가의 단일한 조각 오브제만 드러나게 하는 것이 아닌 주변 그 자체로부터 하나의 복합적인 형태를 시각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2016 두산 큐레이터 워크숍〉에서 기획자 3명은 과거 전시와 달리 조각이라는 특정 장르의 형식을 화두로 던진 동시에 단정적으로 규정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우려를 불식하듯 작품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태도와 공간의 충돌이 일으키는 감각적이고 물리적인 시선이 기획자나 관람자에게 꽤 유사한 잔상으로서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래 남게 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는 조각의 단편들에 대해 정의하기보다 조각적인 것에 균열을 가하며 진행형인 일련의 현상을 느슨하게 조망해보는 시도일 것이다. 나아가 “나, 조각을 한다!”고 거리낌 없이 외칠 수 있는 젊은 작가들이 수면으로 올라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위 조재영 〈Through another way〉(왼쪽)  판지, 나무 60×310×230cm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