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美術 RE-READ

드뇌 빌뇌브의 〈듄〉 포스터

사막이 만든 세계

서기 2만6000년, 인류 문명은 중세시대로 회귀했다. AI에게 주도권을 뺏겨 생존을 위협받은 인류가 과학기술의 병폐를 뼈저리게 깨닫고 자발적으로 선택한 퇴화였다. 이 까마득한 미래의 어느 날. 우주에서 가장 귀중한 물질인 ‘스파이스’를 품은 죄로 우주전쟁의 중심이 되어야만 했던 비운의 땅 아라키스에서 아트레이디스 가문의 후계자인 폴은 피할 수 없는 운명과 마주하게 된다. 〈듄〉은 자연의 광대무변한 힘에 자신이 모래 한 알갱이처럼 순응하는 방식을 택하는 아라키스의 원주민 프레멘의 푸른 눈동자처럼, 위대한 자연의 힘에 대한 경외가 가득한 작품이다. 2021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는 1984년 이후 37년 만에 드뇌 빌뇌브 감독의 손에서 탄생했다. 영화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SF 대서사시라는 칭송에 걸맞은 압도적인 스케일과 광대무변한 세계관을 구현해냈다.

바다(심해)와 우주만이 인간의 하찮음을 방증하는 것인 양 생각했던 이들은 〈듄〉의 서사의 모태인 미지의 사막에서 텁텁한 갈증과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사막은 스파이스와 모래벌레의 안식처이자 인간의 욕망을 뱉어내는 곳,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곳으로서,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신비의 땅이었다.

쿠차 키질석굴사원에서 출토된 〈벽화 본생도 단편〉,
이란 지역에서 출토된 〈유익천사상〉,
투르판 베제클릭석굴사원 〈벽화 서원화 단편〉
《월간미술》 2004.1월호 p.63

〈진묘수〉, 〈복희여와도〉 등 내세관과 생활 풍습이 담긴 유물들
《월간미술》 2004.1월호 p.64

먼 미래의 사막에서 우주전쟁이 벌어진다면, 아주 오래전의 사막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과거에도 사막은 신비의 열락이었다. 극도로 건조했던 중앙아시아의 사막지대는 100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도 유기물질이 온전한 상태로 출토되는 기이한 곳이었다. 이곳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서구 열강의 약탈의 장이 되었음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사막은 얼마나 많은 인류의 문명을 부드러운 모래언덕 안에 감추고 있었을까. 《월간미술》 2004년 1월호에서는 ‘실크로드와 서역미술’ 제하의 특집으로 사막 탐방기를 실었다. 2003년 12월에 열린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서역미술〉을 통해 실크로드의 중심이자 동서양의 이질적인 두 문화가 교류했던 완충지대의 유물들을 살펴보는 기사였다.

중앙아시아는 사막 곳곳의 오아시스 소왕국들을 중심으로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다. 4세기부터 5세기에 걸쳐 실크로드에 위치한 주요 오아시스 국가에는 석굴사원으로 대표되는 대규모의 불교미술이 조영되었다. 불교는 이미 기원전 상인들의 왕래를 통해 중앙아시아에 입수되었으며, 종교적 목적을 뛰어넘어 동서의 문화와 미학의 신비한 혼성을 보여주었다. 사천왕상의 복식에 헤라클라스의 상징물이 부착되고, 불상의 보관에 이란 왕공 귀족의 두식이 첨가되는 식이다. 고신라의 지배계층 고분에서도 로마제 유리기들이 출토되었는데, 오이노코에라 불리는 황남대총 출토 유리병, 계림로 출토의 유리구슬 등이었다.①

극도로 건조한 사막지대의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형성된 지리학적 특성으로 목재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생활용기의 대부분은 흙으로 만들어졌다. 그릇 표면을 틀로 찍고 반복 시문하여 낸 장식효과는 몇 천년 전의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롭고 질박하다.

민병훈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의 글 〈오타니 컬렉션과 실크로드 탐험대〉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중앙아시아 미술품이 모두 ‘오타니 컬렉션’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주지시키며, 이 컬렉션을 통해 중앙아시아 미술의 성격을 살펴본다. 필자는 특히 역사학이나 미술사학을 비롯한 동양학 전반에 걸쳐 중국 일변도의 학문적 편식현상이 고착되었음을 지적했다. 또한 오타니 탐험대②의 탐험 자체가 문화재 약탈과 유적 파괴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오타니 탐험대가 수집한 유물들이 흩어지는 과정에서 조선총독부 박물관에 소장된 이후 보존되어 온 덕택에 지금 우리가 사막의 오아시스 지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것은 한국 문화를 아시아 문화의 주요한 갈래로서 새로이 이해할 수 있는 비교자료를 획득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모래와 물의 왕국에서 빚어진 시간은 흐르고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 고대인들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세계관을 가지고 자연주의적 유토피아를 꿈꿨던 것일지도 모른다. 미래의 사막과 오아시스는 과연 어떤 문명을 품을 것인가. 사막의 신은 어떤 세계를 창조할 것인가. 모르긴 몰라도 우주 최강의 환각물질 ‘스파이스’만큼 신비롭고 강력한 것이리라.

①권영필 〈동서 문화교류의 꽃 중앙아시아 미술〉 권영필 〈동서 문화교류의 꽃 중앙아시아 미술〉  p.73~74 《월간미술》 2004.1월호2
②일본 교토 서본원사의 오타니 고즈이(1876~ 1948)가 만든 탐험대

염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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