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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보호수, 와:
남해 보호수 프로젝트 2021

7.17~12.31 남해 돌창고, 앵강다숲, 두모마을 느티나무, 남해각

시문마을 팽나무와 〈할아버지 정자〉
디자인은 가라지가게 장영철 건축가가, 시공은 가라지가게 시공팀, 돌창고 팀원, 그리고 시문마을 건축기술자 삼촌들이 도왔다.

이동면 신전리 743-1에 위치한 앵강다숲에는 지역의 젊은 창작팀 키토부와 남해 청년센터, 최정화 작가가 다양한 색깔의 천으로 나무와 나무 사이를 이은 〈해피해피〉가 있다.

상주면 두모마을 다섯 그루의 노거수 앞에는 팜프라와 최정화 작가가 남해에 버려진 의자 등을 조합해 만든 공공퍼니처 〈해피투게더〉가 놓였다.

남해 돌창고(삼동면 봉화로 538-1) 전시 광경. 노경 〈창선도 왕후박나무 -Ⅰ〉(사진 왼쪽) 디지털프린트 244×663cm 2021 최정화 〈살리고 살리고〉(사진 앞) 옹기 가변설치 2021 스기하라 유타 〈보호수 여행〉(사진 오른쪽) 디지털 드로잉, 천에 프린트 400×200cm 2021

남해 보호수 여행지도

그곳에서는 동제(洞祭)가 열린다

경남 남해군에는 노거수(老巨樹)가 많다. 이 노거수들은 바다로 나가 삶을 꾸리는 섬사람들이 풍어와 안녕을 기원하던 신목이자 당산목이었고,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이 되어주기도 했다. 남해는 외진 섬인 덕에 길게는 600여 년 동안 수호신 역할을 한 나무들이 마을 어귀마다 남아있다. 현재는 수령이 오래되고 동종의 나무보다 큰 노거수 31그루가 보호수로 지정 ·  보호되고 있다. 남해 노거수는 2021년 현재 여전히 마을 제단으로 쓰이고 정자 그늘이 돼주며 주변 풍치(風致)를 더하고 있다.

이런 보호수의 생태적, 인문적 가치를 일찌감치 간파한 남해 청년그룹 ‘헤테로토피아’에서는 2018년부터 보호수와 관련된 이야기를 발굴, 기록하고 관련 내용을 《남해 보호수》라는 제목의 책으로 엮었으며, 작년부터는 ‘돌창고’에서 전시로도 풀어내고 있다. 첫 번째 전시, 〈마을의 수호자〉에서 기억 속으로 점점 사라지는 대자연과 공동체의 연결자이자 수호자인 보호수를 일러스트 및 그래픽, 마을 어르신 초상화, 나뭇가지 설치 작품 등으로 불러냈다면, 올해 전시 〈보호수, 와〉에서는 관람객이 보호수를 직접 만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전시장에서 신비로운 〈창선도 왕후박나무〉 사진과 보호수에 관한 회화, 이주하는 마을사람들이 미처 챙기지 못했다는 좌선회하는 옹기들을 만난 후 남해 보호수에 궁금증이 생긴 사람이라면, ‘남해 보호수 여행지도’를 들고 남해 곳곳에 있는 보호수를 찾아가 보호수가 간직한 시간과 공간을 체험할 수 있다. 몇몇 보호수에는 지역 작가들이 참여한 ‘공공미술’을 더해 나무가 본래 지녔던 휴식, 놀이, 제의 장소 역할을 돌려주기도 했다. “할아버지”라 불린 시문마을 팽나무 옆 〈할아버지 정자〉, 색색의 천으로 숲의 신성함을 더한 앵강다숲 〈해피 해피〉, 두모마을 느티나무 앞 버려진 의자, 폐가 밥상 등으로 만들어진 공공벤치 〈해피투게더〉가 그 작품들이다.

보호수에는 각기 오디오 가이드가 있는데, 관람(광)객이 나무 앞에서 합장을 하거나 벤치에 앉아있으면 지나가던 동네 어르신들이 저마다 기억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스템이다. 그렇게 들을 수 있는 것이 나무에 얽힌 설화 외에도 조선시대 개국 설화, 장수 설화, 서불과차 이야기 등등이다. TV드라마 〈전설의 고향〉 종영 이후 도시에서는 듣기 어려웠던 이런 이야기들은 21세기 남해를 어떤 가상의 무대로 만들게 되는데, 이쯤에서 ‘돌창고 프로젝트’의 머리 격인 ‘헤테로토피아’에 대해서 이야기해야겠다. 최승용 대표가 이끄는 ‘헤테로토피아’는 미셸 푸코의 헤테로토피아 개념을 빌려 “다양한 시간대의 삶의 흔적이 빚어내는 서사”를 자양분 삼아 지역에서 문화인프라를 구축하고 그것으로 자립을 꾀하는 청년그룹이다. 이들은 지역의 유휴공간을 찾아내고 그곳에 묻혀있는 이야기를 캐내 잘 다듬어 그 위에 현재를 덧입힌다. 대표적인 공간이 1967년 지어진 시문 돌창고다. 이곳은 현재 전시장으로 쓰이고 있으며 인접한 건물도 각 시대마다 다른 기능을 지녔다가 유휴공간이던 것을 레지던시와 카페로 바꿔 운영하고 있다. 이들 덕분에 다시 깨어난 이야기들은 마을의 적막을 깨고 현재의 공간에서 일렁이고 있다.

남해 보호수 프로젝트 외에도 남해 전승 민요를 발굴, 편곡하여 음원과 공연으로 제작하는 ‘남해 소리’와 ‘남해각’, ‘돌창고’ 등의 유휴공간 프로젝트가 남해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각종 개발 및 지역 관련 이슈가 난무하는 이 시점에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러고 보니 이 글을 쓰는 음력 10월 보름, 오늘은 이팝나무를 보호수로 둔 은점마을에서 동제가 열리겠다.

할아버지 정자와 돌창고 팀원들. (왼쪽부터) 한송희 박성순 최승용 한다정

돌창고 외관
사진제공: 남해 돌창고

배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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