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정아사란 무거운 마음과 얇은 땅
10.6~23 온수공간
이진 |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무거운 마음과 얇은 땅〉 온수공간 전시 전경

광활한 바다와 마주한다. 그 곁에는 겹겹이 쌓인 퇴적암이 있고, 오늘은 비가 내린다. 빗방울은 암석을 타고 뚝뚝 떨어진다. 타고 흐른 물은
마침내 다시 바다로 향한다. 이윽고 한 줄기 햇살이 반짝이며 창을 투과해 상이 맺힌다. 이제야 이 장면이 스크린을 경유한 디지털 세계임을 깨닫는다.
정아사란의 개인전 〈무거운 마음과 얇은 땅〉은 대자연의 유사 풍경처럼 마음에 남는다. 얇은 땅의 경계에서 여러 매체에 의해 운반되어 표면에 쌓이거나 침전된 퇴적물이 단단하게 굳어 스티로폼 조각이 되었다. 지구 역사의 기록물인 퇴적암처럼 여러 흔적이 정보가 되어 층을 이루고, 그와 함께 액체가 흐르는 장면이 일시 정지 상태로 놓여있다. 작가는 이렇게 디지털 이미지의 존재 방식에
대해 자신의 관찰과 생각을 이어가며 표현을 발전시켰다.
다소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발을 땅에 디디지 못한 디지털 정보가 빙하의 조각처럼 가상의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물질과 비물질로 대변되는 실재 세계와 가상세계의 감각과 관계에 대해 고민해 본다. 작가는 디지털 가상의 세계가 현실에 빚을 지고 있다고 표현하며,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연약한 디지털 세계를 부유하는 이미지로 상상한다. 이렇게 전시는 가상세계를 중간적 실존으로 다루는 작가의 감각을 적극 반영하고 있다. 한편,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원본이 상실된 시뮬라크르 개념을 끌어와 허상과 실재의 관계에 대해 전시가 다루는 지점을 재고할 수 있겠다. 현대 사회에 산재한 시뮬라크르는 원본과 복제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점차 복제물이 원본을 대신하도록 요구받곤 한다. 대량생산과 같은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뿐만 아니라 허상을 소비하며 이미지에 대한 신념을 만드는 현실의 선행으로 이미 자리를 뒤바꿔 앉은 것이다. 정아사란은 이에 대해 분명한 관계를 이미 설정한 듯하다. 작품 〈사이조각〉에서도 보여주듯 세계 어딘가에 어중간하게 끼워져 있는 가상의 이미지를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재에 기대어 등장하는 시뮬라크르는 결코 신체가 경험하는 현실 감각과 동일시되거나 우위에 서지 못한다. 작가에게 가상은 또 다른 세계이지만, 이 세계는 현실과 맞닿아야만 존재 가능한 얇고 연약한 존재이다.
하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부분은 가상세계와 현실 세계의 관계를 몸과 마음으로 직접 경험하는 수용자의 태도이다. 가상세계가 아무리 불안정하더라도 우리는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여전히 그곳에서 보낸다.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실재를 붙잡으려 몸을 흔들고 손을 부여잡는 작가의 감각은 고스란히 작품으로 옮겨진다. 스티로폼에 열선을 사용하여 녹이고 자르는 행위는 순간적이고 미묘한 실제 움직임의 궤적으로 나타나지만, 조각 자체는 디지털 이미지의 속성을 그대로 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가볍고, 손쉽게 열화되면서도 임시적인 스티로폼 조각의 특성이 참으로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더불어, 미디어의 틈새에서 새어 나온 문장의 표상은 특정한 틀로 그것을 단정 짓지 않는 작가의 유동적 태도와 맞닿는다. 흘러내리고 부유하는 액체의 감각과 영상의 공명이 전면에 두드러지며, 한 걸음 더 표현의 언어를 강화한다. 이 글에서는 이를 ‘액체성’이라는 표현으로 치환하고자 하는데, 액체성이란 보통 물리적  /  물질적 매체에 기반한 이미지와는 반대로, 전자적으로 시뮬레이션 되고 지속적인 변형, 생성의 과정에 놓이는 가상 이미지의 특성을 일컫는다. 즉, 리얼리즘적이고 재현적인 견고한 기호가 아니라 액체처럼 유동적이고 변형적인 특성을 지닌 디지털 기호가 등장한 것이다. 꽤나 오랜 시간 이와 같은 작가들의 행보에 이어 정아사란은 빛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반짝이는 물로 디지털 이미지의 양상을 은유화한다. 이렇게 울렁이고 예민하게 흐르는 스크린의 안팎을 넘나들며 디지털 매체는 빛을 반사시켜, 이를 더욱 투명하고 선명하게 만든다. 끊임없이 율동하는 영상처럼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 그 시간의 순간을 정지시켜둔 조각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상의 데이터 파도에 몸을 맡기더라도 결국 ‘바로 지금’ 그 물결을 감지할 수 있는 신체 없이는 촉매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글의 초반에 묘사한 전시에 대한 인상처럼 실제로 작가는 매일 번쩍이는 스크린을 경유해 가상 환경에 접속할 것이다. 영상을 통해 지구 곳곳의 자연 풍경을 간접 경험하지만, 그럼에도 작가는 이따금씩 이미지 허상의 주인을 찾아 길을 나선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 반짝이는 바닷물, 장엄한 퇴적암 지형을 이루는 해안절벽, 그리고 천천히 흐르는 구름의 유동 등 실제 자연 풍경은 지금껏 눈으로만 느끼던 장면들을 직접적인 심상으로 무겁게 가라앉는다. 무거운 마음으로 얇은 땅에 발을 디딘 채 걸음을 옮기면 한 편의 풍경이 스친다. 흘러내리고 부유하는 감각, 여전히 우리가 놓친 감각들이 수중을 거슬러 물 위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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