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이원호 진품명품전(傳)

서울문화재단 서울시창작공간 금천예술공장 PS333 2015.12.18~1.10

백기영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

이원호는 독일 유학시절부터 사회의 규칙을 위반하거나 경계를 해체시켜 새롭게 재규정하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테니스장이나 탁구대 위에서 경기장의 면적을 한정하는 가장자리 흰색 라인에 뿌려진 분말을 모아서 흔적도 없이 지운 후, 경기장 중간에 이 분말로 구성된 하얀색 단면을 만든다거나(<The White Field> 시리즈), 전시장 바닥을 잘라내서 만들어진 육면체가 세상을 떠돌다가 흔적을 돌아오게 하는 (<두 개의 큐브, 두 개의 공간>) 작업에서 이원호는 사회제도가 규정하는 기존의 질서를 해체해서 미궁에 빠지게 했다. 아니 오히려 그의 태도는 본질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고행에 가까운 성찰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태도는 2006년 자기 스스로에게 감행했던 가학적인 퍼포먼스 작업 <ARTNOW>를 연상시킨다. 이 작업은 동시대예술 카탈로그 위에서 얼차려(원산폭격)를 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을 기록한 사진이었다. 책 위에 머리를 박고 있던 그의 신체는 2007년 제작한 <ARTNOW Ⅲ>에서는 머리와 발 부분만 남기고 지워졌다.
금천예술공장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 <진품명품(傳)>은 한동안 TV에서 방영된 적이 있었던 미술품 감정 프로그램을 다룬 작업이다. 이원호는 이 프로그램에서 위품(僞品)으로 판명 난 물건들을 사들여서 전시했는데, 작가는 진위 감정행위 전후에 드러나는 애장품 소장자들의 태도 변화에 주목했다. 이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자신의 애장품이 진품이라고 믿고 소중하게 관리하고 보관해 왔다고 말했다. 또한 그에 얽힌 사연들이 이 애장품과 더불어 소개되었다. 사연은 남루해 보이는 사물들을 더욱 진품처럼 보이게 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감정을 통해서 위품(僞品)으로 판명 났을 때, 이 신화들은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고 사물들은 무가치한 쓰레기가 되거나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덕분에 작가는 싼값을 지불하고 이 사물들을 전시장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명품을 규정하는 여러 가지 요인(유명인의 유품이나 글씨, 도자기, 공예품)은 감식안이 없는 일반인에게는 신화적으로 작용한다. 이 프로그램에 감정을 의뢰한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자신이 그동안 품어왔던 명품의 환상을 버리고 실망스럽게 돌아갔다. 순간 이 사물을 지탱해주던 명품으로서의 가치의 가장자리는 지워져버리고 텅빈 공허함으로 가득 찼다. 이원호는 가장자리가 지워져버린 이 공허한 사물들을 모아 전시를 만들었다. 본래 전시장이라는 가장자리는 어떤 사물이든 ‘예술’로 둔갑시키는 프레임 기능을 해왔다. 진위감정 프로그램에서 가짜로 혹은 희소가치가 떨어지는 사물로 판명난 사물들을 주목하는 행위는 경기장의 지워진 가장자리들이 모여 이룬 하얀색 부유하는 사각형을 닮았다.
이 영토는 보잘것없는 것들이 공존하는 유토피아적 피안의 세계다.

위 이원호 <진품명품傳>(왼쪽) 영상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