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Artist] 정복수

작가 정복수의 그림은 인간의 육체에서 시작해 육체로 끝난다. 그가 그린 인간의 모습은 벌거숭이다. 심지어 몸 속 머리속까지 보인다. 그의 그림에 나타난 얼굴과 몸은 생물학적 인간의 형상인 동시에 정신과 내면의 초상이다. 지난 40여 년간 한 가지 테마, 즉 인간의 육체에 몰입해 온 정복수의 ‘그림 그리기’는 수행자의 몸짓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이 시대 인간의 비망록이다. 인간의 본질과 원형을 탐구하며 자의식의 심연을 드러내는 작가 정복수의 작품세계를 살펴본다.

욕망의 탈주선을 따라 그린 욕망지도, 몸 지도

고충환  미술비평

느끼는 사람에게 삶은 비극이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삶은 희극이라고 했다. 느낌으로 사는 사람에게 삶은 순간순간이 고통의 연속이고, 생각으로 사는 사람에게 삶은 우습지도 않을 만큼 우습다는 얘기다. 느낌으로 산다는 것, 그것은 삶에 밀착된 삶이며 몸으로 산다는 것이다. 생각으로 산다는 것, 그것은 삶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남의 집 불구경 하듯 관망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이 세계를 읽는 코드는 원체는 다중채널이지만, 그 채널은 크게 정신코드와 몸코드로 구분되고 모아진다. 당연히 상대적이지만, 정신코드로 사는 사람이 있고, 몸코드로 사는 사람이 있다. 정신코드가 발달한 사람이 있고, 몸코드가 발달한 사람이 있다.
정복수는 몸으로 사는 사람 같다.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사람 같다. 겉과 속이 같아서 속이 없는 사람을 생속이라고 한다. 작가는 그런 생속 같다.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믿는 사람 같다. 심성이 투명해서 그럴 일도 없겠지만, 상대에 대한 배려 때문에 속에 없는 말을 하지도 않고 할 줄도 모르는, 그런 사람 같다. 그런 사람은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믿는다고 했다. 그럼, 표면만 보고 표면을 믿는다는 말인가. 너나 할 것 없이 이미지의 정치학이 대세인 시대에, 그리고 그렇게 저마다 이미지로 자신을 포장하기에 급급한 시대에 표면만큼 의심스러운 것도 없음을 다들 안다. 그래서 행간읽기와 이면읽기가 중요한 거다. 그럼 다시, 작가는 표면만 보고 표면을 믿는 사람인가.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정반대다. 그런 사람의 감각촉수는 거의 동물적이기 때문에 우회를 모른다. 대상 자체를 직접 겨냥하고 사물 자체를 직접 향한다. 그래서 행간읽기며 이면읽기랄 것도 없이, 사물대상 자체를 바로 꿰뚫어본다. 뭐 직관이며 혜안이랄 것까지는 없을 것 같고, 생속(속이 따로 없는)이 생속(사물대상의 진상)을 알아보고, 투명한 것이 투명한 것을 알아채는 것,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정복수는 그렇게 몸으로 살고 몸으로 그린다. 그리고 그렇게 몸을 그린다. 그러므로 그의 몸 그림은 어느 정도는 자기 자신을 그린 것이기도 하거니와, 다른 사람들을 그린 것이기도 하고, 인간일반을 그린 것이기도 하다. 그림 속 사람들은 꼭 누구를 그렸다기보다는, 그저 익명적 주체들을 그린 것이고, 심지어 성기가 아니라면 남녀 구별조차 없는, 그런 그림이다.
다시, 작가는 몸을 그린다. 성기가 노출된 것으로도 알겠지만, 발가벗은 몸을 그린다. 창자와 같은 장기가 적나라한 것으로 보아 거듭 벗겨진 몸을 그린다. 옷을 벗기고 살 껍질을 벗겨낸, 그런 몸을 그린다. 무슨 말인가. 작가는 몸속 장기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몸을 그린다. 투명한 몸? 투명한 사물이 유행이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시계, 투명가전, 투명액세서리가 유행이다. 그 자체가 시대양식 내지 모드로 볼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불신시대를 증언해주는 알레고리처럼 읽히는 것은 왜일까. 표면만 봐선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시대, 온통 정체를 까발리기에 급급하고 연연해하는 시대, 그래서 더 이상 숨을 수도 숨을 데도 없는 시대에 대한 증거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와는 정반대로 온통 이런 이데올로기며 저런 이념, 이런 가치관이며 저런 세계관, 이런 진리며 저런 진실, 이런 상식이며 저런 합리로 첩첩이 중무장한, 그리고 그렇게 중무장 뒤에 숨는 사람들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복수가 그린 투명인간은 바로 이런 시대적 증언으로 인해 비로소 그 의미를 획득한다.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사람들의 옷을 벗긴다. 특히 자본주의 시대에 옷은 계급과 신분의 기호다. 그렇게 계급과 신분으로 사람들을 포장해주는 위선의 옷을 벗어던지라고 주문하는 것이다. 옷은 그렇다 치고, 살 껍질은 또 왜 벗기는가. 살 껍질은 문명이 만들어준, 또 다른 옷이다. 인간을 인간이게 해주는, 인본주의와 휴머니즘의 이름으로 유통되는, 이성과 상식과 합리라고 새겨진 레테르를 무슨 장신구처럼 치렁치렁 매달고 있는, 도덕과 윤리로 중무장된, 그런 옷이다. 그 옷을 벗겨내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인간이 자연에서 문명으로, 문맹에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억압된 것들이 귀환한다. 야생과 야성, 본성과 본능, 동물성과 식물성, 무의식과 잠재의식, 폭력욕망과 살해욕망, 마술과 주술과 같은 어둠의 자식들이 줄줄이 되돌아온다. 작가는 사람들의 옷을 벗겨 그렇게 귀환한 탕아들을 보고 싶고, 맞이하고 싶고, 방기(방출?)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진인(문명화 이전의 본연의 인간)의 도래며 회복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되돌아오는 것들이 줄줄이 잇지만, 그것들은 크게 욕망과 욕구로 모아진다. 욕망과 욕구는 하나같이 억압된 것이란 점에서 같지만, 욕망이 영원한 결핍으로 조건 지워진 인간의 존재론적 조건이란 점에서, 그리고 욕구가 근본적으로 해소될 수 있는 생물학적이고 생리적인 현상이란 점에서 다르다. 흥미로운 것은 욕망과 욕구가 반비례한다는 점이다. 욕구가 해소되면 꼭 그만큼 욕망이 억압된다. 욕구를 좇으면 꼭 그만큼 욕망이 허해진다. 욕구가 없으면 덩달아 욕망도 없어지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해소되거나 덜어졌다는 착각을 줄 수는 있다. 불완전하지만, 금욕주의가 의미를 갖는 이유로 봐도 되겠다. 게다가 자본주의 시대에 욕망은 또 다른 의미기능을 수행한다. 자본주의가 약속하는 욕망은 사실은 또 다른 욕망 아님 더 큰 욕망을 불러들이기 위한 계기로서 작동하며, 따라서 욕망 자체는 결코 채워지지도 해소되지도 않는다. 애당초 욕망은 해소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욕망은 존재론적 결핍 아님 존재론적 원형 같은 것으로서 주체가 세계의 맨살과 대면하는 일(현상학적 에포케와 불교의 면벽수행이 겨냥하는)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 실체를 알기도 붙잡기도 어렵다. 생물현상과 유리된 것은 아니지만, 생물현상에 기인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작가는 욕망하는 인간을 그리는가, 아니면 욕구하는 인간을 그리는가. 표면적으로 작가는 욕구하는 인간을 그리고, 생리적 인간을 그리고, 허기진 인간을 그리고, 실존적 인간을 그리고, 지금 여기의 긴박한 인간을 그리는 것 같다. 그리고 욕구로 나타난 그 생리적 현상은 욕망이라는, 보다 근원적이고 존재론적인 뿌리의식에 연동되고, 이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 것 같다. 작가는 무엇보다도 지금 여기의 긴박한 인간을 그린다고 했다. 말하자면 작가가 일종의 투시도법을 적용해 그린, 엑스레이필름 기법을 적용해 그려서 보여주는 신체의 부분들, 이를테면 성기와 창자, 눈과 입술은 사실은 이 신체부위들로 대리되는 인간시장의 탐욕과 권력다툼을, 그리고 건전한(건강한?) 욕망의 표출을 그린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마구 남근을 휘두르고 싶다. 죽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수행되는 법의 입법자가 되고 싶고, 질서의 집행자가 되고 싶고, 권력의 주체가 되고 싶다. 그리고 나는 출세를 위해서라면 누구라도 기꺼이 빨아줄 용의가 있다. 모든 것이 상품으로 심지어 인간마저 상품으로, 통용되는 이 천민자본주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나는 기꺼이 너를 밟아줄 준비가 돼 있다. 작가는 그런, 상대를 향해 날름거리는 세 치 혓바닥을 그리고, 상대를 유혹하는 고혹적인 입술을 그리고, 전시만으로도 상대의 기를 죽이기에 충분한 단단한 놈을 그린다. 그리고 건강한 성욕과 건전한 식욕을, 축복처럼 터지는 성기의 환희와 절정을 그리고 창자의 추억을 그린다.

 나무에 유채 110.4×89.5×6.5cm 2004~2010

<존재의 집> 나무에 유채 110.4×89.5×6.5cm 2004~2010

 캔버스에 유채, 오브제 259.1×193.9×6.5cm(입체 143×40×20cm) 2008~2011

<꽃이 떨어지는 시간> 캔버스에 유채, 오브제 259.1×193.9×6.5cm(입체 143×40×20cm) 2008~2011

존재의 비망록
창자의 추억? 작가는 몸으로 살고 몸으로 그린다고 했다. 여기에 작가는 몸으로 보고 몸으로 생각하고 몸으로 느끼고 몸으로 욕망한다. 작가는 말하자면 온몸으로 본다. 그래서 몸 전체에 눈이 달려있다. 작가는 또한 온몸으로 욕망한다. 그래서 몸 전체가 성기다. 무슨 말인가. 작가에게 욕망의 지점들은 특정의 신체부위에 연루되지도 한정되지도 않는다. 욕망의 탈주선을 따라 욕망의 성분들은 몸 바깥쪽으로 확장되고, 몸 안쪽으로 연장되며, 의식 너머로 범람하고, 무의식을 파고든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에서 신체 부위는 더 이상 전체와 부분과의 유기적인 관계에 예속되지 않고, 오로지 욕망의 성분들에 연동될 뿐이다. 무슨 말인가. 작가는 신체를 고정된 실체로 보지 않는다. 대신 욕망의 성분 여하에 따라서 항상적으로 이행 중인 대상, 자유자재로 재편되고 재구성되고 재구조화되는 대상으로 본다. 여기서 대상은 곧 몸에 해당하고 주체에 해당한다.
다시, 무슨 말인가. 작가의 자의식은 포스트 모더니즘적이다. 모더니스트와 포스트모더니스트는 어떻게 갈리는가. 모더니스트는 세계가 하나의 유기적인 전체로서 구조화돼 있고, 주체 역시 그 전체를 한눈에 조망하는 총체적 인식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에 반해 포스트모더니스트는 이런 세계의 형이며 주체의 꼴이 사실은 신념 내지 욕망일 수는 있어도 그 자체 사실이 아니라고 본다. 말하자면 그에게 세계는 파편화돼 있고, 주체 역시 조각나 있다. 그래서 겨우 부분인식만을, 그러므로 불완전인식만을 할 수가 있을 뿐이다. 이를테면 맥락 속의 사유가 가능할 뿐이다. 맥락 밖에는 아무것도 없고, 텍스트 밖에도 아무것도 없다. 그저 이런 맥락 아님 저런 맥락 속에서 저마다의 세계를 짓고 공 굴릴 뿐. 거대담론과 대서사와 같은 거시적인 비전이 흘러간 옛 노래로 치부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작가의 그림에서 신체가 마구 절단되고 자유자재로 결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저 신체를 그린 것이라기보다는, 바로 욕망의 탈주선을 따라, 욕망지도를 그린 것이고 몸 지도를 그린 것이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창자 끝에 매달린 성기를, 허벅지 안쪽에 숨어 있는 입술을, 가슴 위에 정박한 입술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작가는 이런 그림이 지겹다. 허구한 날 욕망을 직시해야 하고, 항상 의식의 성기(레이더?)를 곧추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지긋지긋한 자기 그림을 밟아달라고 주문한다. 그렇게 밟아서 그림이 더럽혀질 때 비로소 그림은 완성된다고 보고, 최소한 그림이 의미를 획득한다고 본다. 무슨 말인가. 작가가 그린 그림을 밟는다는 것은 작가를 밟는다는 것이다. 마조히즘인가? 마조히스트인가? 맞다. 그러나 그 마조히스트는 감각적 쾌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인식을 향하고 존재인식을 겨냥한다는 점이 다르다. 욕망을 외화하고, 욕망을 직시하고, 욕망을 죽여라. 그러면 비로소 욕망(불교에서의 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을 것이다. 다만, 죽음을 담보할 때만이 그렇다는 전제를 기억할 일이다. 조르주 바타유 식으로 말하자면 마조히스트는 작은 죽음이고 예비적인 죽음이다(바타유는 에로스를 작은 죽음이라고 했다).
작가는 리어카에 화구를 싣고 전국을 주유하면서 오로지 그림만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한편으로 그림이 지겹다면서, 다른 한편으론 오로지 그림만을 그리고 싶단다. 이 무슨 모순화법이고 이율배반인가. 그러나 사실은 그렇게 볼 일은 아니다. 지겹기 때문에 그려야 하고, 지겹기 때문에 살아야 한다. 할 줄 아는 것이 그림밖에 없고,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그림밖에 없고, 세상에 복수할 수 있는 무기가 그림밖에 없기 때문이다. 니체는 미학이 아닌 그 무엇으로도 이 삶은 정당화될 수가 없다고 했다. 태어난 이유를 해명해주는 것으로 치자면 오로지 미학밖에는 없다는 말이다. 쥐가 궁지에 몰리면 내면으로 숨는다고도 했다. 내면 말고 따로 숨을 데도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내면과 미학은 하나로 통한다. 그러므로 니체에게 미학은 더 이상 삶을 아름답게 해주고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는 휘황찬란한 무엇, 의미심장한 무엇이 아니었다. 미학이란 자기 내면을 파고들고, 삶을 직시하는 것을 의미했다.●

정복수는 1955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1985년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1979년 청년작가회관에서 첫 개인전 <바닥畵-밟아주세요>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20회 여회 개인전과 <한국미술 -인간 동물 기계전>(국립현대미술관 1997), <1980년대 리얼리즘과 그 시대>(가나아트센터, 2001) <다시보는 1970-80년대 한국미술>(서울시립미술관, 2012)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현재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작업실에서 작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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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의 여행> 캔버스에 유채 72.7×90cm 2008~2011

 

[Exhibition Focus] 건축적 부록

Architectural Supplement

협업을 통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부부작가 이부록, 안지미가 이번에는 소설가 김연수와 함께 새로운 작업을 선보인다.
9월 18일부터 10월 8일까지 갤러리 잔다리에서 열리는 <건축적 부록전>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영감을 받은 전시다.
세 명의 예술가는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현재적 시점에서 한국 사회를 바라보고 다시 30년이 지난 2048년, 미래의 모습을 상상한다.

폭력으로 제거할 수 없는 오류의 세계

안지미 (이하 안) 2002년 일주아트센터에서 열린 <동상이몽전>에서 작가와 디자이너로 처음 만났죠. 당시 저는 일주아트센터에서 리플렛과 도록 등 시각이미지를 총괄하는 객원 디자이너로 활동했고 부록 씨는 영상작업을 하는 작가로 전시에 참여했어요.
1996년부터 북 디자이너로 출판계 일을 하면서 디자이너로서 뭔가 다른 새로운 시도에 대한 고민이 많은 시점에 이부록이라는 작가를 만난거죠. 같이 작업한 것이 시기적으로도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부록 씨는 영상작업에서 다른 매체로 확장하려는 시점에 저를 만나서 작업 영역이 좀 더 확장하지 않았나 싶어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데 지금까지 서로 이런 얘기를 해본 적 없는 것 같네요.
이부록 (이하 이) <동상이몽전> 리플렛을 통해 지미 씨와 함께 하게 되었는데,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우리는 서로의 작업에서 매력을 느꼈죠. 이후 2004년 인사미술공간에서 두 번째 개인전 <워바타> 때 픽토그램 작업을 책으로 출간하면서 함께 작업을 시작했고, 당시로서는 전시와 책이 만나 서로 보완해 완결되는 방식의 전시였어요. 만일 우리가 그때 만나지 않았다면 작품이 어떤 방향으로 흘렀을지 예측할 수 없어요. 원래부터 책에 관심이 많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전시와 책이 같이 나오는 일이 흔하지 않았죠. 도록과 책은 확실히 다르잖아요. 그런 점에서 전문적인 편집능력을 가진 지미 씨의 도움이 컸고 이후 전시와 동시에 책을 기획해 발간하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취한 것 같아요.
안 전시는 관람객이 특정한 공간과 시간에 보지 않으면 안되는 한계가 있는데 반해 책은 시간과 공간에 자유로운 편이죠. 물론 책 역시 독자가 구입해서 책장을 넘기지 않으면 그 안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알 수 없죠. 전시와 책 두 매체 모두 각자 폐쇄성과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굉장히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한 점 때문에 두 매체를 연결하면 굉장히 흥미롭겠다 싶었어요. 우리가 사실 처음부터 협업을 하자고 선언한 것은 아니지만 부록 씨가 저를 통해 출판에도 밀접하게 개입하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작업을 많이 했죠.
이 본격적으로 협업한 것은 2008년 청계천스튜디오에 입주하면서부터죠.
안 2008년 청계창작스튜디오에 함께 입주해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는 거의 청계천에 살다시피 하며 청계천이 주는 이상한 매력에 흠뻑 빠져 지냈어요. 제  경우 동교동에서 태어나서 프랑스에서 유학한 4년 빼고는 거의 홍대 지역을 떠난 적이 없는데, 서울에 살면서도 서울을 잘 몰랐던 거죠. 청계천에서 노동하는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고,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시 저는 기존의 커머셜한 작업을 대폭 줄이고 부록 씨와 함께 컨셉추얼한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이때 청계천 주변 구도심을 탐사한《  창백얼굴》과 뉴욕이라는 거대 도시 뒤집어 보기를 시도한《  UPSET NEWYORK / NY》, 두 권의 책이 나왔죠.
《  창백얼굴》은 작은 피규어의 목 부분에 자석을 이식해 얼굴이 바뀌어가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드러낸 것이라면《  뉴욕》은 같은 피규어가 뉴욕이라는 도시에 이식되어 거꾸로 박혀있는 모습, 책을 거꾸로 뒤집어서 보면 도시가 뒤집혀 있는 풍경이에요. 마침 우리가 뉴욕으로 여행을 간 시점이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한 직후라서 모든 사고의 패턴이 바뀌는 순간이었죠. 서울과 뉴욕만큼 모든 것이 빠르게 사라지고 변화하는 도시도 없는 것 같아요.
얼마 전 영국 일간지《  가디언》 기자가 한국 생활을 체험하고 쓴 기사를 봤는데, ‘미래도시를 보려면 서울로 가라’ 그런 내용이더군요. 유럽은 과거 전성기 때의 기억에 집착해서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한국은 모든 것이 시시각각 새롭게 바뀌며 24시간 돌아가는 미래세계 도시라는 거죠. 하지만 세월호 사건의 충격으로 한국 사회가 과연 선진국을 건설한 건지, 작동 불능의 도시를 건설한 건지 의아해 한다는 내용이었어요.
다시 청계천 얘기로 돌아갈까요. 청계천은 서울의 중심에 있으면서 고층빌딩과 동대문시장 사이에 있는 특이한 공간이죠. 사회적으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문화적 유산이자 정치적 발판 구실을 했죠. 이후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 의해 청계천창작스튜디오가 추진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오프닝 때 오세훈 시장이 온다고 떠들썩했죠.(웃음)
결국 스튜디오 운영도 정치적으로 활용되다보니 주체가 없이 서울문화재단과 서울시설관리공단을 떠돌다 결국 3년 만에 사라졌어요. 근데 청계천이라는 공간이 과거의 화려했던 시기에 비해선 못하겠지만, 근대화에 중추적 역할을 했던 곳이고, 실제로 무엇이든 만들지 못하는 게  없을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모두 만들어내는 보물상 같은 곳이었죠. 그때 청계천에서 큰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앞으로의 작업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지만 현재까지 저희 작업의 뿌리는 청계천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이 그러고 보니 2004《  워바타 전쟁 그림 문자》(명성출판사)부터 10여 년 동안 우리가 낸 책이 총 11권이 되었네요. 그러지 않아도 처음엔 10년쯤 지나면 우리가 하는 작업의 윤곽이 보이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물론 지금 딱 뭐라 정의내릴 순 없지만 여태까지 지속적으로 해왔다는 것이 참 의미 있는 것 같아요.
안 그동안 매번 지원금을 받아 책을 냈으니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죠. 그 사이 독립출판 붐이 일어났지만 초창기 때 시작해서 지속적으로 생각의 끈을 놓지 않고 출판을 계속 해왔죠.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준히 지속적으로 뭔가 만들어 내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는 것 같아요.
저도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원금은 곧 국민의 세금으로 진행하는 만큼 작업이 단순 자기만족에 그치면 안돼요. 작업 내용도 그렇고 작업태도에도 작업 자체는 사회 환원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죠. 그림문자에서 출판한 책은 2006년 작가 김태헌의《  1번국도 –평택에서 임진각까지》가 첫 작업이고 그 다음부터는 전시와 연계해서 우리 책을 주로 냈죠. ‘업셋프레스’는 프로젝트 이름이고.
근데 생각해보면 우리 작업은 추상적인 개념의 언어가 많아요. 그렇다보니 소통이 수월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면에서는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타자와의 소통일텐데 지금까지 작업은 소통에 소극적이지 않았나. 다들 작업이 난해하다고 얘기해요. 물론 쉬운 예술이 곧 좋은 예술은 아니지만 작업도 깊이가 생길수록 훨씬 편안하게 소통되는 것 같아요. 작업이 아직은 너무 젊은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네요.
지미 씨 말대로 어떻게 하면 작업으로 소통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네요.
단적으로 <워바타>, <스티커 프로젝트> 등 픽토그램의 경우 디자인적 개념이자 소통을 위한 세계 공통언어인 픽토그램에 새로운 개념을 덧붙여 다른 의미를 확대 재생산하는 작업이었어요. 픽토그램이 보편성 추상성을 획득하기 위해서 폭력적으로 재단한 부분을 복원시키는 방향으로 진행했는데, 픽토그램이라는 굉장히 기능적 언어에 새로운 개념을 부여해 기능성을 제거한 작업 즉, 다양한 오류의 세계를 보여주고자 했어요.
일종의 오독놀이, 파자놀이인데, 평화라는 단어는 존재하지만 평화라는 개념은 인류에게 존재하지 않아요. 단어는 있지만 의미는 일치하지 않는 그런 용어들이 많죠. 지미 씨가 프랑스에서 유학했다면 저는 DMZ (비무장지대)에서 유학했다고 말하곤 하는데, 감옥처럼 완전히 고립된 그곳에서의 복무생활은 은둔형인 저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지요.
DMZ는 남과 북이 거대한 스피커를 통해 서로 유토피아라고 아우성치는 모습을 통해 이념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의 장소이죠. 불통의 극단적인 지점이 전쟁이라 할 수 있는데, 픽토그램은 가장 원시적인 언어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작업에 도입했어요. 이후에도 스티커프로젝트 작업으로도 파생되어 이어졌죠.
《     세계인권선언》(프롬나드)의 경우 충분히 예술적이면서도 위트가 있고 소통에도 성공한 사례라고 생각해요. 선언문을 가지고 시각화하는 작업을 하고 싶었는데《  워바타》(2004)를 출간해준 선배와 술자리에서 1948년 국제연합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 작업을 하기로 결심하고 부록 씨와 작업하게 되었죠. 의외로 많은 사람이 세계인권선언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더라고요.
활자로만 머물렀을 때 얼마나 멀게 느껴지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죠. 선언문을 읽어보면 짧은 문장에 응축적으로 담아냈기 때문에 참 어렵게 느껴지는데 부록 씨가 익숙한 이미지를 차용하고 또 현재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선언문을 대비시켜 보여주니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됐죠. 그 작업을 하던 2012년은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오큐파이(occupy) 운동’이 일어난 시기였죠. 당시 “1% 대 99%”라는 구호가 시각화되면서 파급효과가 굉장히 커졌어요. 기회가 된다면 선언문의 시각화 작업을 계속해서 하고 싶어요.
제 경우 군생활 이후《  한겨레 21》에 카툰 연재를 위해 진보와 보수성향의 기사를 동시에 읽으면서 의식을 깨우치게 된 게 그 작업의 근간이 됐어요. 그리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지배권력을 비판한 팔레스타인 출신 만화가 나지 알 알리의 작품에서 큰 영향을 받았죠. 카툰을 통해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발언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그게 바로 ‘세계인권선언’을 시각화한 작업이었죠. 해독이 안되는 텍스트가 의미없듯이 해석이 안되는 이미지도 무의미하죠.
잔다리에서 열린 이번 전시 <건축적 부록>은 부록 씨와 소설가 김연수 씨와 협업하는 새로운 시도였어요. 김연수 씨와의 인연은 1998년에 시작되었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협업을 하게 되었죠. 소설가와 설치작가의 협업과정이 개인적으로는 무척 흥미로운 경험이었어요.

이부록_워바타 스티커 프로젝트_2005-2014-1

이부록 〈워바타 스티커 프로젝트〉 2005~2014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린 <굿모닝 미스터 오웰> 전시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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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록 <금자탑> 나무 자석 철부산물 2014

유토피아, 디스토피아에 대한 질문
사실 지난 4월 세월호 사건 이후 저 역시 굉장한 충격을 받아 예술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괴감에 빠져 있었는데 ,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린 <굿모닝 미스터 오웰전>에 참여하면서 조지 오웰의 텍스《  1984》와 백남준이 바라본 1984년, 그리고 30년이 지난 이 시점에 대해 좀 더 보충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오늘날 30년 전에 비해 긍정적인 면은 더 발전했지만 감시사회, 시스템의 문제와 같은 부정적인 측면도 더 극대화됐죠. 현재를 담고 있는 미래에 대한 입장에서 소설과 같은 형식을 책으로 풀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러던 차에 김연수 씨에게 제안을 하게 되었고, 함께 작업하게 된거죠.
이번 전시에서 전시장 지하1층은 빅데이터가 지배하는 미래사회에 사라진 어떤 인물에 대한 설정을 내용으로 하는 소설과, 종이책이 사라진 미래사회에 책을 복원하는 지하출판의 개념으로 풀었고, 지하 2층은 청계천에서 수거한 폐기물을 활용해서 유물이나, 우주 폐기물처럼 보이게끔 했어요. 이번 전시는 1984년 백남준이 바라본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에 비추어 세월호 이후 시스템 문제를 건드리고 있어요.
그 당시 미디어를 송출하는 인공위성을 통해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인공위성이 우주 쓰레기가 되었잖아요. 청계천의 쇠들의 꿈도 사실은 인공위성이나 탱크가 되는 것이죠. 청계천에서 우주에서든 쓰레기가 되어버렸어요. 빅데이터도 따지고 보면 엄청나게 수집된 정보이지만 쓸모없어 버려지는 것을 상징하죠. 그런 맥락에서 보면 청계천에서 소외받은 것들에 대한 메시지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금자탑으로 연결되죠.
이전의 작업이 사라지는 근대 풍경에 관한 것이어서 과거에 대한 재해석이었다면 이번 전시는 과거, 현재, 미래까지 보는 계기가 되었죠. 이번에는 오웰의 입장을 통해서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설정이죠. 세월호 이후의 문제들을 그런 방식으로 바라보고 싶었어요.
종이책이 금지된 미래의 어느 시점에 어두운 곳에서 비밀스럽게 책을 보듯 스폿 조명이 큰 역할을 한 것 같아요. 부록 씨가 효과적인 조명을 찾아냈죠.
정보통제와 상호감시, 자기검열 등 이 모든 것이 이뤄지는 노트북용 USB LED조명과 콘셉터 등을 조합한 것인데, 미래조명은 최소한의 전력과 최대한의 전달효과라는 가정에 따른 거였어요.
무대에서 자주 활용되는 스폿조명의 개념은 사실 집중되는 곳이 아닌 그 이면을 생각하자는 것인데, 언론의 방식을 포함해서 박물관이나 전쟁기념관에서 택하는 전시방식처럼 과거의 시간을 차단해서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죠.
이번 전시를 준비 과정에 이부록 씨는 설치작업에 집중했고, 저는 김연수 씨와 협업해서 책을 만드는 데 집중하면서 기존의 작업방식과는 조금 다르게 작업이 어느 정도 분리된 것 같아요. 앞으로 부록 씨는 작가로서 프로젝트 작업을 계속 해나갈 것이고 저는 내년에 출판 쪽에 무게 중심을 두려고 합니다. 그래서 협업이 올해처럼 활발하지 못할 수도 있겠네요.
폭력을 동력으로 하는 사회 시스템이 변화하지 않는 한 <스티커 프로젝트> 등 기존 작업은 계속 진행할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내 안의 다른 타자와 함께 하자는 생각에 저 스스로 분열해서 지난해부터 ‘이무부(리무부, 李無不, Remove)’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어요. 부록을 제거하다 이런 식으로…. 저는 은둔형 성격이지만 협업의 필연성을 동시에 느끼고 있어서 제 안에서 충돌이 발생하고 끊임없이 이중사고가 일어나고 있어요. 협업하면서 느끼는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리고 자본화된 예술가와 그에 저항하는 예술가 사이의 충돌 등 여러 측면에서 이중사고가 발생하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분열하게 되었어요. 내 안에서 다른 입장도 보고, 나 자신도 그런데 타자와는 더 심할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 분열이 가속화될 것 같아요.
이야기가 너무 장황해진 것 같은데요. 개인적으로 작가가 계속 이름을 바꾸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아요. 누구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있겠죠. 단지 부록 씨는 이름을 바꿔 나가면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이름 설명하다가 장황하게 되었는데 이름을 바꾸는 것은 이름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이 작업은 이부록의 것이고 저 작업은 이무부의 것 그런 건 아니죠. 그런 식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아요.

안지미와 이부록이 지난 10년간 출간한 책

안지미와 이부록이 지난 10년간 출간한 책

진행 정리・이슬비 기자

안지미는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파리 ISCOM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공부했다. 정병규 디자인, 월간 《지오》, 솔출판사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했으며 2003년 작가 이부록과 함께 출판사 ‘그림문자’를 설립해 시각 이미지 생산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부록은 1971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했으며, <제5회 광주비엔날레> <신호탄전> (국립현대미술관), <1번 국도>(경기도미술관) 등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했다. 안지미와 함께 <Sticker Project> (아르코미술관/ 그림문자), <세계인권선언> (이음갤러리 / 프롬나드), <금지된 숲> (복합문화공간에무 / 그림문자), <Warvata> (인사미술공간, 인더페이퍼갤러리 / 두성북스) 등을 전시와 출판으로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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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 <건축적 부록전>에 참여한 소설가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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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협업

이부록 씨와는 10년 전《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라는 소설집을 펴낼 때 처음 알게 됐다. 여기서 알게 됐다는 것은 그 이상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뜻이다. 편집자가 내 소설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다며 일러스트레이션을 청탁했는데, 나중에 출판된 책을 보니 과연 소설과 그림이 서로 어울리는 바가 있었다. 편집자에게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작업을 위해 내 소설을 읽어본 이부록 씨는 자신이 대학 시절에 쓴 글과 비슷하다는 소감을 피력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나 역시 매우 독특한 소설을 쓴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때는 사람들이 ‘표지의 이 괴상한 피에로는 너냐?’라고 종종 묻곤 했던 그 얼굴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전혀 모를 때였다.
그러다가 지난 여름, 2010년 이상 탄생 100주년을 맞아 나랑 광화문광장에서 이상의 <오감도> 연작 11편을 낭독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비디오로 촬영하는 작업을 했던 구민자 씨가 통인동의 시청각에서 전시회를 연다고 연락을 해왔다. 아울러 전시작품 중 하나가 내 소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을 필사한 노트라며 내게 잠시 시간을 내어서 소설을 낭독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열린 작은 낭독회가 끝난 뒤, 찾아온 관객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는데 어쩐지 낯익은 얼굴이 보이는 것이었다. 다름아닌《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표지에 실린 그 얼굴, 그러니까 이부록 씨였다.
그가 10년 전의 인연 때문에 내 낭독을 들으러 통인동까지 찾아올 리는 없다는 걸 한눈에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무슨 사연인가 얘기를 들어보니 솔깃한 바가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백남준 씨가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라는 위성쇼를 선보인 지 올해로 30년째가 되는 해여서 용인의 백남준아트센터에서 기념전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들 알다시피 백남준의 기획은 조지 오웰이 1948년에 쓴《  1984》를 1984년의 시각에서 재조명하는 것이었다. 조지 오웰은 1984년의 세계를 전체주의적 통제가 일반화된 디스토피아로 그렸지만, 백남준은 과학기술의 힘으로 연결된 세계를 낙관적으로 봤다.
이부록 씨는 그 기념전의 연장선에서 디자이너 안지미 씨와 나, 이렇게 셋이서 조지 오웰의《  1984》를 2014년 서울에서 되돌아보는 전시를 하자고 내게 제안했다. 그 제안은 흥미로웠다. 1984년에 중학교 2학년이던 나는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인상적으로 시청한 바 있기 때문이었다. 3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1984년의 그 감동을 되새겨본다면 어떨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 자신부터가 중학교 2학년생에서 40대의 중년이 된 것처럼, 이 세계 역시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변한 게 틀림없을 테니까. 그렇게 해서 나는 2048년의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한 편 쓰기로 했다.
내 소설 속의 서울은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가 아니라 빅 데이터가 모든 개인의 사생활을 파악하고 있는 세계다. 어떤 점에서 조지 오웰의 예측은 옳았다. 1984년에는 세계의 각 도시를 위성 생중계로 연결하는 과정을 통해 세계의 확장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과학기술이 제시했다면, 인터넷이 보편화되고 인간만이 아니라 사물까지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이 시대에는 점차 사생활의 종말이라는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완전한 통제사회를 뜻한다. 이 통제사회에서는 반드시 인간의 자유라는 이슈가 발생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 소설 속의 인물들은 조지 오웰의《  1984》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자유를 위해서 투쟁한다.
이번 전시를 위해서 이부록 씨와는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눴다. 지금 세계의 변화에 대해서 서로 공감했고, 지금까지 해온 각자의 작업 안에서 그 공감의 맥락을 연결하자고 방향을 잡았다. 안지미 씨의 디자인 역시 디스토피아에 도래할 종이책의 종말이라는 문제를 제대로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소설과 미술의 접점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될 테지만, 경험해보니 서로 만나서 대화하는 것 자체가 이미 대단한 협업이었다. 이부록 씨와 안지미 씨, 두 사람과의 유쾌한 대화를 통해서 내가 제대로 보지 못한 것들을 다시 확인하게 된 것이 개인적으로는 이번 전시의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김연수・소설가

 

[Review] 강애란 – 책의 근심, 빛의 위안

강애란 – 책의 근심, 빛의 위안

갤러리 시몬 8.28~10.26

알루미늄이나 종이죽으로 캐스팅해 만든 ‘책 보따리 오브제’들까지 넣는다면, 강애란은 거의 15년이 넘는 동안 책에 대한 존재론적 탐구와 인식론적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씨름해왔다. 그녀의 책들은 도서관과 서점의 선반 위에 놓여 오랜 역사의 축적된 지식을 암시하기도 했고, 계몽의 빛으로서 이성과 지식을 외치듯 안으로부터 밝은 빛을 발하기도 했으며, 보자기와 끈에 묶여 감추어짐으로써 은밀한 주술적 행위로서 지식의 속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렇게 강애란이 제시해 온 실제의 책, 가상의 책, 멀티미디어로 이루어진 책들의 세계는 유토피아와 헤테로토피아가 공존하는 ‘이질성’으로서의 세계이자 지식의 무게로 가득 차 있는 장소들 또는 ‘숭고함의 공간(The Space of Sublime)’이었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 탈물질화하는 시대에 책의 미래에 대한 우려의 표현으로 이해되기도 했던 그녀의 책 설치작품들이, 관람자의 ‘인터랙티브 읽기 방식’ 혹은 ‘공감각적 읽기 방식’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다양한 디지털 기술과 인터페이스, 그리고 비디오이미지들을 동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시몬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강애란 전시는 여전히 책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리얼리티와 버추얼 리얼리티가 중첩된 공간 안에 LED와 비디오이미지들, 촉각적인 사물들과 추상적인 숭고의 의미들이 공존하던 이전의 방식과는 달리, 이번 전시에서는 표현 방식 및 내용에서 구체적이고 새로운 요소들이 추가되어 있음이 눈에 띈다. 우선 1층에 전시된 작품들에서는 이전에 3차원의 공간에 놓이던 ‘책-사물들’이 2차원의 회화 공간 안에 ‘책-그림들’로 존재하게 되었다. 차곡차곡 쌓아올린 ‘책-그림들’은 마치 기하추상과 극사실주의 사이 혹은 평면과 사물 사이의 중간 어딘가에 놓인 것처럼 보이는데, 작가가 혼용해 온 디지털과 아날로그 방식의 타협점을 보는 듯하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12명의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을 기록한 2층의 비디오설치 작품들이다. 그동안 책이 존재하는 방식 자체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작가는 이제 책 안에 기록되는 내용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빛을 발함으로써 비어있던 라이트박스로서의 디지털 책이 존재의 외적인 부분을 표현한 것이었다면, 지나간 아픈 역사 속에서 체험된 슬픈 삶으로 꼭꼭 채워진 책 속의 이야기들(비디오 영상들)은 작가의 시선이 내부로 향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작가가 만드는 책이 더 이상 비어있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한 서문에도 쓰고 있듯이,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작품은 작가의 작업 궤적에서 새로운 분기점을 형성하고 있다. 역사적 아픔이자 사회적 이슈이기도 한 위안부 문제를 조심스럽게 다루면서, 그동안 여성과 테크놀로지와 미디어에 대한 고정관념을 와해시켰던 작가 강애란의 미술가로서의 위상은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야기가 되어 책의 내부에 자리 잡게 된 배춘희 할머니의 노래와 삶과 죽음에 대한 기록을 보면서, 역사 속에서 과거와 현대 여성들의 삶과 예술, 문학으로 관심을 옮겨가고 있는 작가의 내적 시선의 확장을 기대해본다.
전혜숙・이화여대 교수

[Review] 아시아 민주주의의 거울과 모니터

아시아 민주주의의 거울과 모니터

광주시립미술관 상록전시관 8.22~9.28

대안공간 루프 디렉터 서진석과 아시아 20개국, 20명의 기획자 공동기획으로 ‘2014 아시아 창작공간 네트워크’ <아시아 민주주의의 거울과 모니터전>이 광주시립미술관 상록전시관에서 열렸다. ‘민주주의와 예술’이라는 개념을 공공적 담론으로 확장하여 제시하고자 하는 이번 전시는 역사적 배경이 서로 다른 아시아 민주주의의 다양한 정체성을 아시아 각국의 사회, 공공적 예술가들의 새로운 해석적 관점으로 살펴본다. 한국의 좌우 이데올로기로부터 비롯된 이항대립적 민주주의처럼 20세기 타의에 의한 근대화와 급격한 성장을 겪은 아시아 국가들은 서구적 산물로서 이식된 민주주의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과정에서 왜곡된 민주화를 체험해왔다. 처음 모든 국민이 자신이 일처럼 아파했으나 이제는 진영의 논리에 빠져 더 이상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세월호 문제처럼 이분법적인 사고가 횡행하고 생명의 가치가 경시되는 이 시대에 공공적 예술 활동을 통해 21세기 새로운 인본주의적 민주주의를 모색해보는, 시기적으로도 적절한 전시였다.
<아시아 민주주의의 거울과 모니터전>은 아시아 각국의 사회적, 공공적 예술가들의 시각을 통해서 아시아 민주주의의 다양한 의미와 정체성을 재해석하고자 한다. 아직도 좌우 이데올로기로부터 비롯된 이항대립적 민주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사회의 특징을 특유의 미적 감성으로 표현하는 배영환은 <유행가-이상한 열매>라는 작품을 내놓았는데, 캔버스에 깨진 술병 조각으로 인권운동의 상징처럼 된 빌리 홀리데이의 동명 제목의 노래 가사를 형상화했다. 소재와 내용면에서 대중성과 통속성, 키치적인 하위문화를 통해 정치적 언급을 드러내는 작품으로서 전체 전시공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았지만 큰 울림을 전해주었다.
일본의 비디오아트 그룹 침↑폼은 <실시간>이라는 영상에서 후쿠시마 원전사고 현장에서 실시간 중계하듯 흰 천을 바닥에 펴놓고 붉은색 스프레이로 그림을 그리는데 마치 일본 국기처럼 원으로 시작한 그림은 곧 방사능 표시문으로 완성된다. 작가의 몸에 상처를 내는 작업을 통해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정치사회적 이슈를 충격적 퍼포먼스로 해석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던 중국의 허옌창과 종교가 중심이 되는 교조적 민주주의를 내포하고 있는 인도 작가 케미 바센느 그리고 왕이 지배하는 군주제의 가치관이 민주주의에 영향을 주는 태국 작가의 작품도 눈에 띄었다.
20세기 외세에 의해 개방을 하고 근대화된 서구적 산물로서 민주주의를 받아들여야 했던 아시아 국가들은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성장했다.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적 특수성 위에 이식된 서구식 민주주의는 해석하고 적용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로 분화하며 아시아 각국의 정체성을 이뤄왔다. 이렇듯 서로 다른 사회적, 역사적 배경을 가진 아시아 국가들에 민주주의라는 의미는 서로 다르게 인식될 수밖에 없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서 아시아 국가들의 민주주의 양상들을 예술을 통해서 비교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먼지 하나에도 우주가 담겨있다’는 말처럼, 개별적인 것 어느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개별이 조화를 이루면 우주가 되고, 우주는 개별의 존재 이유 하나하나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든 가치를 존중하는 태도가 절실하다. <아시아 민주주의의 거울과 모니터전>은 새로운 위기에 봉착해 있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정점을 지나 자기분열의 위기를 맞은 시대에 던지는 작은 담론적 질문이자 과거와 현재에 걸쳐 아시아 민주주의의 다양한 정체성을 되짚어 보는 것을 넘어서서 21세기 미래의 새로운 조화론적 민주주의와 예술의 공공적 역할에 대해 논의하고 전망하는 전시였다. 이러한 다양한 시도들을 통해서  ‘존중과 공감’이라는 가치를 배우고 ‘민주주의와 예술’이라는 공공적 담론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앞으로도 공동연구와 시각이미지 생산을 통하여 아시아 민주주의라는 중요 담론에 대한 또 하나의 해답을 찾기 위해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나갈 아시아 창작공간 네트워크 협의체의 다음 행보에 큰 기대를 걸어본다.
전동휘・예술학

[Review] 임영숙

임영숙

월전미술문화재단 한벽원갤러리 8.26~9.7

향기 향(香)자는 벼(禾)가 햇볕(日)에 익어가는 것을 뜻한다. 들판에 누렇게 익어가는 벼는 분명 시각적인 것이지만, 이를 감성적인 것으로 변환시켜 그 감동을 배가시키는 옛 선인들의 지혜가 새삼 놀랍다. 이 벼(禾)가 사람의 입(口)에 들어가게 되면 평화로움을 뜻하는 화(和)가 된다. 이에 이르면 단순한 글자 하나에 담긴 의미가 예사롭지 않게 전해진다.
작가 임영숙의 작업은 밥을 주제로 한다. 하얀 쌀밥에 꽃을 더하는 그의 화면은 정갈하고 소박하다.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진 화면은 현대미술의 난해한 설정이나 교묘한 복선의 구조 같은 것은 지니고 있지 않지만, 그 평범한 일상성을 통해 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직설적인 듯하고 즉물적인 듯하지만 그것을 통해 전해지는 시각적 메시지는 결코 단순한 한두 마디의 단어로는 정리되지 않는다. 그것은 개인의 내밀한 삶의 어떤 부분들과 연계되어 묘한 여운을 증폭시키며 전해진다. 그것은 지식을 통해 읽힌 이성적인 앎의 결과가 아니라 극히 인간적인 감성을 통해 감지되는 안온한 정서의 확인이다.
우리 사회에서 하얀 쌀밥으로 대변되는 삶의 상징성은 이미 그 의미가 반감되었지만, 밥은 여전히 특정한 정서와 감성의 상징으로 읽힌다. 작가는 하얀 쌀밥을 가득 담고 갖은 꽃으로 장식하였다. 그것은 작가가 지니고 있는 삶과 인간에 대한 의식의 구체화인 셈이다. 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사물을 통해 내밀한 사유를 개진하는 작가의 섬세한 감각은 그 자체가 소박하고 따뜻한 것이다. 굳이 과장하거나 꾸밈이 없이 소박하게 드러내는 작가의 감성은 수용성 안료 특유의 부드럽고 침착하며 깊이 있는 색조를 통해 효과적으로 수렴되고 있다. 그것은 한국화가 지니고 있는 고답적인 전통주의나 경직된 소재주의에 함몰되지 않은 것이기에 더욱 신선하고 반갑다.
미술, 혹은 문화가 지닌 공능 가운데 하나가 영혼, 혹은 정신적인 것에 대한 치유라 할 것이다. 작가가 전해주는 한 그릇의 따뜻한 밥은 그저 한 끼의 배를 채우는 물질이 아니라 문명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물질이 범람하는 시대에 인간과 그 삶에 대한 정신적인 위안으로 느껴진다. 그것은 밥 한 그릇으로 축약된 시대적 담론이자 밥 한 그릇으로 표현된 감성의 확인이라 할 것이다. 향기 향(香)자가 시각적 이미지를 감성적인 내용으로 수렴하여 그 상상의 외연을 무한대로 확장하듯이 작가는 흰 쌀밥으로 이루어진 소박한 화면으로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감성의 성찬을 배려해주고 있다 할 것이다.
김상철・동덕여대 교수

[Review] 시대의 눈 – 회화

시대의 눈 –  회화

OCI미술관 9.12~10.31

그곳에 가면 물감 냄새가 자연스레 콧등에 와 닿으며 눈과 머리를 자극한다. 어렴풋한 잔상들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미술관의 흰 벽은 그간 수많은 이미지의 거소였다. 2010년에 개관한 OCI 미술관은 시작부터 회화에 대한 고집스러운 시선을 드러냈다. 신진 작가부터 젊은 작가의 개인전을 지원하고, 중견 작가들의 날카로운 혜안 또한 놓치지 않고 회화가 가는 길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당시 미술시장의 침체로 인해 그간 마켓에서 선호되던 회화가 잠시 주춤하고, 대신 설치 형식의 복합매체 작업이 전시공간에 활력을 불어넣던 시기라 회화에 대한 미술관의 진득한 관심은 화가들에게 여러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회화의 물성과 치열한 화폭 그 자체를 담아내던 전시장에 이번에는 강서경, 공시네, 박미나, 박진아, 배윤환, 안두진, 정수진, 차혜림, 허수영 총 9명의 작품들이 모아졌다. 주로 30대 중후반에서 40대 초반 사이의 작가들은 현재 미술계에서 왕성히 활동하며 화단의 주목을 받는 화가들이다. 이 중 절반의 작가는 국내의 주요 상업 갤러리와 관계하고 있으며, 다수의 작가가 국공립미술관 전시, 레지던시 프로그램 참여, 국내외 미술상 수상, 대안공간에서의 활동 등 국내 미술계 시스템과 관련해 총체적인 활동 범위를 지닌다. 본 전시가 접근하고 있는 회화의 ‘동시대성’은 국내 화단에서 대두되어 온 회화의 범주를 관통한다.
작년 이맘때쯤 OCI미술관에서는 <진경, 眞鏡>이라는 제목으로 한국화를 동시대적 관점에서 조망했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동양화 전시에 이은 두 번째 회화 기획전으로, 한국 현대회화의 현주소를 살피며 컨템포러리 회화에서 두드러진 변화와 특징적 현상을 주목하고 있다. 본 전시가 접근하고 있는 회화의 동시대성은 전시제목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시대의 눈-회화: Multi-Painting>에서 페인팅 앞에 붙은 ‘멀티’는 다중, 혼성, 복합성, 다시점 등 다원주의적 성향의 현시대성으로부터 부여된 것이다. 전시장에 걸린 회화작품들에는 켜켜이 내러티브들이 중첩돼 있으며, 화가의 손끝에서 사투한 붓질의 흔적도 가득하다. 게다가 벽으로부터 나와 공간에 놓인 설치 형식으로 인해 회화의 복합적 형식과 중층의 내러티브는 현실 공간 속으로 연장되어 나간다. 전시된 작품에 내포된 멀티의 관점은 내용, 형식, 기법, 소재 등 회화의 안팎에 걸쳐 살펴볼 수 있다.
9명의 작가가 다루는 회화에 대한 관점은 미술관의 수직적인 공간 구성에 의해 세 개의 층에서 진행되며, 각 공간이 특정 주제로 구분되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몸의 움직임에 따른 시각적 구성을 따르게 된다. 회화를 멀티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세상을 감지하는 화가의 시선으로부터 시작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서 대면하는 박진아와 허수영의 작품은 시공간의 흐름을 가시적 영역으로 확장시켜 보인다. 스냅사진을 활용하여 동일 인물의 흔적을 중첩된 시공간으로 파악한 박진아의 회화와 1년간의 계절 변화를 하나의 화면에 겹겹이 중첩시킨 허수영의 회화에는 스쳐지나가는 시공간의 흐름이 그림 속에 담긴다. 비가시적이라고 믿고 있는 것에 가시적인 실존을 부여하는 과정은 정수진의 회화에 담긴 의식의 다차원적 세계관, 그리고 공시네의 작업에서 상상의 실체가 차원의 과정을 거쳐 회화의 실체로 나아가는 것과 관련된다. 박미나의 ‘딩벳 회화’와 안두진의 회화는 형상을 재현하는 방식으로부터 벗어나 정보, 개념적 교환체계로서의 독창적인 회화의 언어를 구사해낸다. 이렇게 무가 유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생성된 다층적 언어는 회화의 매체적 측면에서도 새로운 시도들로 이어진다. 강서경, 차혜림의 회화는 설치 형식을 통해 회화적 개념을 공간 속으로 확장시켜 현실 공간과 환영 공간 사이를 매개시킨다. 50m의 두루마리 형식으로 벽면을 가득히 에워싼 배윤환의 작품에서 회화는 무궁무진한 저장고와 같다. 그는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다양한 장면과 내러티브를 복합적으로 화면에 배치시켜, 회화에 여전히 새롭고 독창적인 묘사법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란 듯이 펼쳐 보인다.
근래 젊은 화가들이 회화의 전통적인 재현 기능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매체적 가능성을 찾아 나선다. 그 과정에서 회화는 더 많은 정보를 유입하고,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들이 화면 안에 담긴다. 가시화를 더하는 과정은 보는 것에 한정된 닫힌 층을 파괴하고, 멀티적인 층으로서의 새로운 층들을 화면으로 이끌어낸다. 하지만, 이 다층의 회화들은 더 이상 관람객들로 하여금 유유히 전시장의 동선을 따라 차분히 그림을 감상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멀티-회화는 관람객들에게 전통적인 관람 형식에서 벗어나 현실 공간과 환영 공간 사이를 저울질하며, 이 사이의 영역을 더 적극적으로 탐색하길 요한다.
심소미・갤러리 스케이프 책임 큐레이터

 

[Review] 안규철 –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

안규철 –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

하이트컬렉션 8.29~12.13

실패하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며 사는 세상에 실패를 목적으로 하는 작업들로 이루어진 전시가 열렸다. 안규철의 개인전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All and but Nothing >은 목표가 없는 온갖 헛수고를 텍스트와 오브제, 그리고 영상작업으로 보여준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서로에게 물을 분사하는 <세 개의 분수>, 바람으로 구슬을 굴리는 <바보웅덩이>, 시곗바늘과 시계 자체가 같이 돌아가 시간을 알 수 없게 만들어버린 <두 개의 시간>이 정겹게 우리를 맞이하며 먼저 가벼운 웃음을 선사한다. 컴컴한 비디오 방으로 들어가 맞딱드리는 <실패하는 법>은 실패자들의 정곡을 찌르는 10개의 지침으로 1번과 10번이 압권이다. 계획은 세우지 말고 그냥 포기해버리라고 한다. (10. No plan, 1. Give up) 본격적인 헛고생은 프로젝트와 모니터로 보여주는 영상작업인데, 총 10편을 다 보는 데에 100분 가까이 걸린다. 비디오 속 작가는 나무가 되어 아주 천천히 숲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중력을 이기려고 벽 옆면 걷기를 시도하고, 쓸데없이 탱고를 익히기도 한다. 익숙해지면 이내 그만 두는 것은 악기연주도 마찬가지이다. 딸이 좋아하는 음악을 간신히 연주하고 난 후 아코디언을 분해하여 조각들을 마을의 곳곳에 버린다. 한 번의 연주는 다시 재연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되지만 다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된다.
헛수고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상 작업은 본격적으로 비디오 방에서 계속된다. 마치 노동으로 참선을 하듯 벽돌을 쌓아 완성되지도 않을 건축물을 짓고, 광화문 한복판에서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며 사다리에 오르고, 목적 없이 나선형으로 걷고, 땅을 파고 다시 묻는 삽질도 하고, 페인트칠을 하는 사람의 등에 다시 페인트칠을 하는 등의 쓸데없는 노동을 한다. 보고 있으면 한심하고 미련해서 답답함과 지루함이 일지만, 영상에 등장하는 작가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하고 무엇이 더 있을까 하는 보는 이의 기대를 무참히 저버리며 끝을 내버린다. 시간과 수고는 아무 소용없이 소비되고, 목적 없는 갖가지 행위를 장시간에 걸쳐 본 관객은 어이가 없다.
그러나 안규철은 헛수고의 과정만을 보여주며 우리가 겪고 있는 수많은 실패를 기억하게 하는 것만이 아니다. 현 시대에 목적과 성과에 피로한 우리를 위해 손을 내밀고 따뜻한 말을 건네듯 다양한 장치로 관객을 위로하기도 한다. 여러 개의 거울을 한곳으로 반사해 전시장에서도 아름다운 달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달을 그리는 법>이 마치 시구와 같이 우리를 맞이하였다면, 마찬가지로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인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수많은 비즈를 천장에 매달아 마치 보석으로 만든 커튼과 같은 형상으로 다른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존재감을 나타내며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가는 관객들을 위로한다. 유리잔 연주로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나는 너를 위해> 역시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사실 지루하게 반복되는 동작이 연속되는 비디오작업에서도  잔잔하고 포근하게 관객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음악적인 사운드가 배경에 있었다. 반복되는 실패를 보는 것이 답답하고 미련해도 화가 나지 않는 이유는 치유의 효과가 있는 사운드 덕이다. 실패를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나는 괜찮아요. I am OK.”라고 말해도 괜찮지 않아 보이지만 이러한 사운드는 진정으로 실패를 아름답게 만드는 장치인 것이다.
작가는 매일 아침 한 장의 노트에 글을 쓰거나 드로잉을 하며 하루를 연다고 한다. 실패에 대한 안규철의 작업노트는 담담하면서도 절절하다. 매번 실패를 주는 사회에 대해 최대의 복수로 자행되는 작가의 의도적인 실패는 이미 성공한 실패이다. 작정하고 시작한 소소한 실패는 성공을 꿈꾸다 매번 좌절한 현실의 뼈저린 기억을 치유해준다. <두 벌의 스웨터>는 한쪽에서는 스웨터를 짜고 다른 한쪽에서는 스웨터를 풀어 결국은 제로가 되는 작업이다. 성과가 없음은 무의미한 것이고 보잘것 없는 것이고 그렇게 행한 사람은 바보이고 미련퉁이인가?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은 이러한 무의미한 일들을 반복하며 실패를 안고 살고 있다. 이는 당연한 일인데, 우리는 당연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두려워하며 성공과 목표에 집착한다. 자신이 찾는 성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 수 없으면서 마구 달려가려고만 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숨은 상처와 우울감은 그대로 방치되어서는 안된다. 이번에도 안규철의 작업은 살며시 우리를 달래주고 있다. 의도된 실패를 위해, 무의미한 헛수고를 위해, 작가 자신은 엄청난 노동을 감수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괜찮아. 달라지는 것은 없어. 아무 일도 없을거야.”
가슴이 따뜻해진다.
한금현・아시아문화전당 정보원 책임연구원

 

[Review] 김민애 – 검은, 분홍 공

김민애 – 검은, 분홍

두산갤러리 9.3~10.4

전시제목은 ‘검은, 분홍 공’이다. 전시 안내문에 의하면 이번 전시는 ‘습관에 관한 소고(Thoughts on Habit)’라는 작가의 지난해 개인전과 연결된다고 한다. 그때 김민애는 전시장 벽을 기준으로 14도 튼 펜스를 전시장에 추가함으로써 관객의 이동을 제한했고, 영어로 번역한 윤동주의 <자화상>을 설치하여 작가로서 자신의 삶을 반추하였다. 그런데 전시 개막 몇 시간 전, 김민애는 검은 풍선 3개와 분홍 풍선 1개를 펜스와 벽 사이 등에 끼워놓았다. 미리 계획된 바에 따라 작품을 제작·설치하고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자신의 스타일이 좀 답답했다고 한다. 긴장이 있으면 이완이 있어야 하는 법. 가볍고 소프트하며 부수적이었던 풍선들은 이번 전시의 제목이 되었다.
두산갤러리의 전시장은 네모나다. 김민애는 불투명한 천으로 벽을 세워 방을 조성했다. 그 결과 네모난 전시장 안에 네모난 방이 생겼고, ‘ㅁ’자 형태의 통로가 만들어졌다. 그 통로에서 관객은 불투명한 벽에 비친 사물의 실루엣들과 움직이는 2개의 분홍색 동그라미를 볼 수 있다. 그렇게 통로를 따라 세 번째 모퉁이에 다다르면 문을 마주하게 된다. 문틈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면, 작가가 대학 때부터 제작했던 작업들이 어떤 역할이나 기능을 수행하지 않은 채, 또 장소특정적이지 않은 채 널브러져 있다. 즉 실루엣의 주인공은 작가의 과거 작업이고, 분홍색 동그라미는 조명에 의해 나타난 것이다. 더불어 설치 때 사용한 사다리가 있고, 작업을 포장하고 남은 것을 공처럼 둘둘 말아놓은 것도 있다.
그리고 이 문 옆에 ‘들어가지 마시오’란 말이 반전되어 적혀 있다.(방 안에서 봐야 글자가 똑바로 보임) 방 안에서 밖으로 가지 말라는 것으로, 엄밀히 말하면 밖의 관객에게 해당되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관객들은 이 텍스트 때문에 방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꺼리게 된다. 동시에 그는 전시제목, 작가명, 전시기간도 반전된 형태로 벽에 적었다. 이 방에 들어가야만 작품과 텍스트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관객은 주변을 맴돌며 작품의 실루엣과 반전된 글자만 보게 된다. 김민애는 이렇게 작품으로부터 관객을 소외시켜버렸다. 게다가 작품으로부터 기존 전시장도 소외시켜버렸다. 그는 기존 전시장 벽과 조명을 사용하지 않았다.
김민애는 관객이 작품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작품도 관객에게 보일 준비가 덜 되게 함으로써 작품과 관객의 관계를 느슨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그의 작업은 관객과의 관계를 통해서, 또 전시장과의 관계를 통해서 드러나는 모순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만약 소설의 2인칭 시점이 미술에도 있다면, 김민애의 이번 작품이 2인칭이 아닐까. 나아가 그런 2인칭을 통해서 작가의 삶을 반성하는 게 아닐까.
류한승・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Review] 코드 액트

코드 액트

코리아나미술관 스페이스 씨 9.4~11.15

신체, 여성 등의 컨텍스트와 퍼포먼스의 수행적 역할에 대한 관심사를 확장시켜 온 코리아나미술관은 <코드 액트(Code Act)>를 통해 관람객에게 흥미로운 감각적 상황들을 제시하고 퍼포먼스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무용, 드로잉, 조각, 설치, 영화, 연극, 건축, 음악 등 다양한 매체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10명(팀)의 작품은 미술관을 멀티플렉스(multiplex) 공간으로 탈바꿈시킴으로써 시각예술과 퍼포먼스의 공간적 확장을 꾀하였다.
전시장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마주치는 정금형의 작품 <7가지 방법> (2009/12)은 연극적 무대를 통해 ‘몸’과 ‘오브제’를 매개로 한 소통과 관계를 만들어내는 감각적 상황들에 대해 질문한다. 신체와 오브제(기계)의 이질성을 극복하고 적극적 관계 맺기를 통한 퍼포밍을 시도한 그룹 코드 액트(Cod. Act)의 작품은 인체의 ‘숨’을 통해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영향과 관계에 대한 실험적 영상작업이다. 지하 1층 전시장에서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윌리엄 켄트리지(William Kentridge)의 작품은 영화적 상상력과 시각적 효과를 이용한 작품을 통해 초기 영화에서 사용했던 스톱 모션, 화면 겹침, 디졸브 효과 등을 로맨틱하게 구현하고 시각예술을 영화적으로 탐구함으로써 관람객으로 하여금 혼성의 공간 안에 머무르게 한다.
계단을 따라 한 층 내려가면 본격적인 프로젝션 룸으로 변모된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일상적인 오브제를 그로테스크하고 뒤틀린 퍼포먼스와 결합하여 인간의 광기와 본성을 표출하는 욘 복(John Bock)의 작업 옆에는 조앤 조나스(Joan Jonas)의 대표작 <리딩 단테 III>(2010)와 뮤지컬 형식을 통해 신체와 오브제의 인터랙션을 기반으로 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로리 시몬스(Laurie Simmons)의 작업을 만나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우스터 그룹(The Wooster Group), 덤타입(Dumb Type), 메리 레이드 켈리(Mary Reid Kelly)의 작업 또한 다양한 오브제와 실험적 무대 연출을 통해 연극, 신화,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문적 문맥에서 퍼포밍의 형식적인 결과를 포용하고 편입시킴으로써 그동안 경험한 퍼포먼스보다 확장된 층들을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캐서린 설리반(Catherine Sullivan)의 <수요의 삼각형(Triangle of need)>(2007)은 영화적 내러티브의 구조 안에서 기괴한 동작과 해체된 언어로 재해석함으로써 직조된 내러티브, 역사적 판타지, 그리고 영화의 파편들을 재구성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이 다양한 매체를 통한 의미작용과 레퍼런스를 참조하고 있는 만큼 사전에 관련 정보를 알고 간다면 더욱 작품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코드 액트전>은 이렇듯 관람(viewership)의 몰입을 통해 우리를     ‘몸’을 매개로 한 퍼포먼스 작품 안으로 안내한다. 다양한 인문학적 맥락 안에서 본인만의 ‘신체’의 조형 언어를 구축해 온 10명(팀)의 작품들은 퍼포먼스의 다양한 가능성을 살피고 관객들에게 관람의 확장을 경험하게 한다. 코리아나미술관은 이번 전시 기간 동안 프로젝션 룸으로의 변모를 통해, 다양한 융합과 레퍼런스들을 구체적으로 가시화하고 교감을 이끌어냄으로써 전시 공간에 유기적인 이음새를 만들어내고 관람객들로 하여금 총체적인 공감각성을 환기시킨다.
홍이지・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Review] 마류밍

마류밍

학고재 9.2~10.5

9월 2일부터 다음 달 초까지 학고재에서 열리는 마류밍 개인전은 ‘펀     (芬)・마류밍’ 탄생 2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이다. ‘펀(芬)・마류밍’은 1993년 마류밍이 그의 행위예술을 통해 처음 고안해낸 작가의 또 다른 자아로, 이번 전시는 작년과 올해 베이징, 상하이에 이어 동일한 제목의 세 번째 전시이다. 이번 서울 전시는 초기 작품들에 대한 기록 영상과 사진이 함께 전시되어 일종의 회고전 형식을 띠고 있다.
전시된 작품은 우선 마류밍의 데뷔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길버트 & 조지와의 대화>(1993)에서부터 여성복을 찾용한 탄생 초기의 ‘펀(芬)・마류밍’, 이후 여성 복장을 벗고 남성의 신체를 드러낸 ‘펀(芬)・마류밍’의 다양한 작품들까지 약 10년간 지속된 마류밍의 행위예술 역사를 축약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 외 2004년부터 2008년 무렵 제작된 회화와 입체작품들도 함께 전시돼 있다. 최근작을 선보인 본관 전시장에는 2000년대 리옹, 뮌스터에서 관객 참여 형식으로 진행된 ‘펀(芬)・마류밍’ 영상이 입구에서 재생되고 있고, 이어지는 공간에 그 작품들을 토대로 그린 회화-설치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마류밍은 흔히 중국 행위예술의 1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중국에 행위예술을 시도한 작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마류밍이 행위예술을 처음 접촉하게 된 계기 역시 1980년대 스승의 행위예술 작업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1980년대 급진적인 아방가르드 미술운동의 조류 속에 시작된 중국의 행위예술은 평론가 가오밍루(高名潞)의 지적대로 서구의 행위예술에 대비되는 나름의 특징을 갖고 있다. 즉 ‘공연(performance)’ 보다는 ‘신체예술(body art)’ 의 성격이 강하고, 각 작품에서 신체가 다뤄지는 방식은 ‘의식화(儀式化)’, ‘사회화’ 된 특징을 띤다는 것인데, 이는 마류밍도 예외가 아니다.
자신의 신체에 양성성을 표현한 그의 작품은 흔히 동성애와 관련된 성 정체성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해석되곤 한다. 그러나 마류밍이 무수히 해명했듯, 그는 동성애 경험이나 취미가 전혀 없고, 단순히 성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근본적 차원에서 인간에게 존재하는 각종      ‘이화(異化)’ 현상과 그 실존을 자신의 신체를 통해 집약적으로 제시한 것일 뿐이다. 그가 ‘펀(芬)’이라는 글자를 통해 여성적 자아를 제시하면서도 ‘마류밍’이라는 이름 사이에 반드시 ‘・’을 배치하는 것은 바로 모순된 두 가지 속성 간의 분리와 구분을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처럼 ‘펀(芬, 分과 동음)’으로 상징되는 모순적, 궤변적 자아는 관객들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듯 다의적 의미의 절대적 ‘미(美)’를 대변하며 마땅히 존중 받아야 할 그 무엇을 상징한다. 그러나 마류밍의 작업에서 ‘미’는 종종 그것과 어울리지 않는 다양한 환경 맥락에 놓임으로써 결국 그의 작품은 인간의 삶과 자유에 관한 사회적 화제로 전환되곤 했다.
2000년대 들어 각종 국제 행위예술제를 통해 그가 관객 참여 형식의 작업을 시도한 것은 전 세계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기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수면제를 복용했든 아니든, 즉 마류밍이든 펀     (芬)・마류밍이든 사람들과의 교류는 점차 유형화되었고, 오히려 진정한 소통과 교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사람 대신 10마리의 토끼를 풀어 사람과의 대화를 거절해버린 그는 2004년 홀로 만리장성을 걸은 후에 10년간 함께해 온 펀(芬)・마류밍과의 인연을 마무리했다.
실제로 마류밍의 실패한 첫사랑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기도 한 ‘펀      (芬)・마류밍’은 그로 하여금 이렇게 ‘분리’를 체감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끊임없는 그리움과 집착을 단절하기 어렵게 만드는 존재이기도 하다. 최근 작품들은 그러한 그리움 속에 진행되고 있는 반복적 관조와 사색을 보여준다. 과거 분리-연결된 자아를 게시, 조명했던 그는 이제 분리-연결된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묵상하는 듯 보인다. 일명 ‘누화법(漏畫法)’이라는 기법은 결코 정면으로 합치될 수 없는 캔버스의 양면을 안료라는 매개로 침투시켜 양자 사이를 배회하며 그 분리된 양면의 관계에 끝없이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20년간 분리-합일이라는 동일한 주제의 양면을 계속해서 왕복하는 마류밍의 작업세계는 그만큼 집요하고 어느 면에서는 자폐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더불어 동일한 주제에 관한 고민이 점차 관념적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는 점은 그가 다루는 주제와 40대 중반에 불과한 연령을 고려할 때 과연 충분한 것일까 하는 우문을 남기기도 한다.
이보연・성신여대 미술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