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Topic] 이브 수스만 전

배명지 코리아나미술관 책임 큐레이터

리안갤러리 대구에서 열리는 <흰색 위에 흰색: 알고리즘적누와르>는 국내에 알려진 이브 수스만의 작업들과 명백한 간극을 보여준다. 영상의 출발점은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회화 <흰색 위의 흰색>(1918)이다. <알카자르에서의 89초>와 <사비나 여인들의 약탈> 등이 과거 회화를 이미지의 차원에서 전유하면서 현재 시점에서 재맥락화하는 데 주목했다면, <흰색 위의 흰색: 알고리즘적 느와르>는 말레비치의 회화를 이미지-표상이 아닌 내적 의미작용의 차원에서 인용한다. 말레비치의 흰색 회화는 자연 대상을 초월한 순수한 ‘무(無)’로서 ‘유토피아’의 실재를 사각형 내에 응집한 것인데, 이브 수스만의 동명의 영상은 절대주의 회화가 추구하는 이러한 초월의 지대와 순수한 공간, 그리고 우주적 감성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절대주의자의 급진적 정신을 환기시키기 위해 이브 수스만과 루퍼스 코퍼레이션이 찾은 영화의 로케이션은 유토피아적 기획이 ‘러시아 혁명’의 실행으로 옮겨졌던 소비에트연합(러시아)이다.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의 거리, 풍경, 인물들은 2년여에 걸쳐 촬영되었고, 구 러시아의 오래된 건축과 도시 풍경은 기존 영화에서 수집된 3000개의 영상과 80개의 보이스, 150개의 음악 등과 함께 영화 <흰색 위의 흰색: 알고리즘적 느와르>를 구성하는 주된 소스로 사용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영상의 모든 재료가 ‘알고리즘’의 메커니즘에 따라 유기적으로 결합된다는 사실이다. 작가가 ‘뜻밖의 행운과도 같은 기계 (serendipity machine)’ 라 명명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모든 영상과 보이스는 무작위적으로 결합되고 전시공간에서 실시간 편집된다.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각각 태그되어 있는 프로그램을 선택하여 랜덤으로 재생시키면서, 화면에 비치는 영상은 같은 장면과 사운드가 결코 반복되지 않는, 문자 그대로의 ‘네버 엔딩 스토리’를 재생시킨다. 따라서 영화 <흰색 위의 흰색: 알고리즘적 느와르>의 이야기는 기계에 의해 제어되고 관객에 의해 사후적으로 재구성된다. 볼 때마다 새로운 내러티브로 재구성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영화이면서 동시에 영화적 프레임 외부에 있다. 디터 메르쉬가 전자 코드와 상호작용을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의 매체론 신화의 토대로 지적했듯이, 여기서 모든 의사소통은 내러티브와 상징이 아니라 데이터의 변환에 의해 이루어진다.
eve3ok특히 영상 <흰색 위의 흰색>는 공상과학, 과학, 보이스(시), 철학, 미술사 등의 제(諸)학문적 전략을 작동시켜 상호텍스트적인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 영상은 공상과학 영화이기도, 고도의 심리극이나 정치극이기도, 한 편의 시적 영상이기도 하다. 또한 제학문적인 경계를 교차시키고 복잡하게 만듦으로써 연쇄적인 구문론을 제시할 뿐 아니라 하나의 결정된 메타포를 거부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의미의 혼돈으로 향하게 한다. 모든 의미는 정착되지 않으며, 알고리즘의 변형에 의해 끊임없이 유보되고 지연된다.
영원히 이어지지만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는 이브 수스만의 기이한 흑백 영화는 공상과학영화와 필름 누아르 사이에 놓여있다. 이 영화에서 제프 우드(Jeff Wood)가 분한 주인공 홀츠(Holz)는 지구물리학자로, 유정 시멘트 회사가 지배하는 City-A라는 메트로폴리스에 갇혀 있다. 미래 도시에 갇힌 홀츠를 향한 관찰과 감시로 영화는 이어지는 듯하지만, 무한히 이어지는 영상의 순환반복으로 인해 총체적 내러티브는 결코 파악될 수 없다. 외관상 관련 없어 보이는 대상들과 보이스는 서로 대비되면서도 미묘하게 연결되어 관객들을 영화적 환영에 빠져들게 한다. 또한 영화 전체를 감도는 어두운 색채와 흐릿하고 우울한 영상, 의혹에 잠긴 내러티브와 디스토피아적 감성은 필름 누아르의 감성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혼재된 공간과 시간
이브 수스만의 이 영화는 장 뤽 고다르의 영화《 알파빌(Alphaville)》(1965)에 대한 오마쥬와도 같다. 고다르 영화에서 알파빌은 이브 수스만 영화에서의 City-A와 유비적이다. 이곳은 러시아 아방가르드 작가들이 추구한 미래의 유토피아를 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황량한 폐허가 의미화하는 디스토피아를 현실에 투사한 곳이다. 이브 수스만과 루퍼스 코퍼레이션이 촬영한 유토피아를 향한 건축들이 21세기 폐허의 잔상으로 각인되는 것은 역설적이다.
사이먼 리(Simon Lee)가 영화 제작기간에 촬영한 사진작품들은 이러한 디스토피아적 감성을 전달한다. 사진 <카루셀>과 <파일론> 등이 보여주는 해질녘의 잔광, 버려진 회전목마와 송전탑, 비에 젖은 음습한 풍경은 어두움과 슬픔, 공포감을 전달한다. 이곳은 발전과 진보 세계관에 역행하는 무질서와 퇴보를 지향하는 엔트로피적 공간으로 읽힌다. 이브 수스만의 영상과 사이먼 리의 사진은 러시아 아방가르드가 내세운 진보의 목표인 유토피아가 결국 허구의 세계임을 재단하는 듯 보인다. 발터 벤야민이 폐허를 언젠가는 붕괴될 역사에 대한 알레고리로 주목했듯이, 사진 속의 공간은 영원함에 반하는 일시성과 공허, 단절, 불안의 요소들을 담아내고 있다.
영원히 현존할 것 같은 소비에트 건축의 잃어버린 유토피아는 이브 수스만과 사이먼 리가 공동으로 제작한 시적 영상들에서 재생된다. <Seitenflugel(Side Wing)>, <겨울정원(Wintergarden)>, <미래와 과거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How to tell the Future from the Past)> 등은 모두 기하학적 형태의 특정 프레임-창문을 통해 보여진 일상의 풍경들을 제시한다. 사진과 영상의 경계에서, 정지된 듯 서서히 진행되는 영상 <Seitenflugel(Side Wing)>에서 창문 너머의 풍경은 익숙한 일상의 파편들이다. 관음증적 시선으로 바라본 일상의 풍경들은 그러나 실재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연출된 장면이다. 그러나 밖에서 훔쳐보는 듯한 ‘거리두기’의 시선은 내부 일상 풍경의 섬세한 알레고리를 모두 꿰뚫지 못한다.
3채널 비디오 영상 <겨울정원>에서 반복되는 기하학적 형태의 질서정연한 건축-창문 구조는 모더니즘 건축가가 꿈꾸었던 근대적 질서의 구현체이다. 이는 영화 <흰색 위의 흰색>에서 발견되는 20세기 중반 모더니스트들이 고안한 건축 형태의 동어반복이기도 하다. 1960년대 지어진 콘크리트 아파트 블록의 동일한 발코니를 보여주는 영상에서 발코니는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그 모습이 변한다. 동일한 구조 속에 여러 개의 다른 발코니 형상을 담아내는 것이다. 반복성과 동일성을 주장하는 사회주의 건축의 정치적 메타포는 소거되고, 대신 서서히 변화하는 영상의 시적 정취가 획득된다. 흔들리는 자동차 창문 너머의 풍경을 포착한 <미래와 과거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는 시간성이 혼재한 가운데 속도가 부여된 흔들리는 영상 이미지를 제시한다. 이러한 영상 이미지들에서 의미작용을 하는 두 가지 지점은 건축적 ‘공간’과 ‘시간’이다. 공간이 가지는 정치성과 내러티브는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시간성에 의해 희미해진다. 이브 수스만의 영상에 내포된 느린 시간은 서서히 변화하는 모습을 짚어낼 뿐 아니라, 시간을 일시적으로 멈추게 하여 오랜 세월 그 건축에 깃든 삶의 겹들을, 기억들을 사유하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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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Focus] 정연두 전

정연두의 작품세계-‘가볍거나 무거운’일상의 리얼리즘

입체와 평면, 가상과 실재의 관계를 다루는 작가 정연두의 개인전이 3월 13일부터 6월 8일까지 플라토에서 열린다.
지난10여 년간 선보였던 작가의 대표작 일부와 신작 〈크레용팝 스페셜〉을 선보인다. 작가중심에서 벗어나 대상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그의 시선은 주체와 대상을 전복시킨다. 작가와 피사체 그리고 관객의 시선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전영백 홍익대 교수

jung2ok플라토에 열리는 정연두의 <무겁거나 혹은 가볍거나>전은 도심 한 가운데에 청량제 역할을 하는 듯하다. 밝고, 즐겁고, 따듯하다. 그리고 가벼운 느낌도 든다. 전시된 작업이 대중 유행가를 다룬 동영상이거나, 일상생활의 장면을 포착한 사진이어서 그런가 보다. 아니면, 인터랙티브 매체안경을 활용해 이 미술관의 상징인 로댕의 무거운 <지옥의 문>을 가볍게 눈앞으로 당겨오기 때문일 수도. 죽음처럼 검은 지옥의 나락에서 뒤엉킨 신체들은 순식간에 생생하고 육감적인 누드의 군상이 되어 시각의 표면으로 떠오른다. 작가 스스로 ‘사진 조각’이라 부른 신작 <베르길리우스의 통로> (2014)는 정연두의 사진미학이 가진 핵심을 함축한다. 조각을 전공한 사진작가라서일까. 입체와 평면을 넘나드는 시각이다.
결과적인 이미지는 하나의 사진작품이나, 그 배후에 피사체(인물)와의 소통을 위한 수많은 시간과 엄청난 수공(手功)의 노력이 있다. 로댕이 표현한 단테의 지옥은 정연두의 <베르길리우스의 통로>에서 연옥으로 끌어올려진 것인가. 관람자 개인별로 보는 가상공간에서 청동의 지옥에 갇혔던 인간들이 표면으로 부상하며 소생하는 듯하다. 이를 위해 작가는 수개월 동안의 <지옥의 문>에 관한 연구에 기반을 둔 모델들의 포즈를 수백 번 촬영, 이를 합성하는 복잡한 작업 과정을 거쳤다. 다수의 드로잉이 그 포즈의 형태적 탐구를 보여준다. 사진이 가진 순간의 포착과 가시적 표면이라는 특징과 대비되는 오랜 시간의 발품과 집요한 관찰, 그리고 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를 엿볼 수 있다.
작가는 평범한 보통사람들의 꿈을 이뤄주는 비현실적 사진으로 그 이름을 알려왔다. 2000년대 초의 <내 사랑 지니>(2001~), <원더랜드>(2003) 등이 그의 대표작인데, 인물의 꿈을 사진으로나마 실현시켜주는 이러한 작업의 시초가 된 초기작 <영웅>(1998)이 이번 전시에 걸렸다. 이러한 작업은 그 내러티브를 사진이 찍히는 대상 (인물)의 입장에서 만들고, 그(녀)의 소망을 작업의 내용으로 삼는 것이 특징이다. 작가가 모든 것을 주관하는 작가중심에서 벗어나려는 점과 대상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포스트모던 미학에 이보다 적합한 사진을 찾기가 힘들 정도이다.
한마디로, 어깨에 힘을 뺀 작업이다. 정연두의 작업이 관객 다수의 사랑을 받는 건 당연하다싶다. 내용과 주제 면에서 누구나 쉽게 동감할 수 있는 건, 작가 스스로 피사체가 되는 인물의 입장, 시각, 그리고 욕망과 동일시하고 눈높이를 맞춰서이다. 맞춤 시각이다. 누구나 일반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어 안달인 거다. 더구나 ‘작가’란 존재는 보통사람보다 그 정도가 심하고, 스토리텔링에 능한 자들이라 할 수 있다. 정연두의 작업은 ‘들어주는 작가’라는 발상의 전환을 거쳤다. 그의 사진처럼 대상과의 동일시에 충실한 ‘착한’ 작업이 또 있을까 싶다.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순순히 보여준다. 인물이 원하는 대로 꾸미고 구체적으로 실현시켜준다. 대상과 주체(작가)의 공감대 형성이라는 점에서 정연두를 따를 작가는 없을 것이다. 미술의 근본 메커니즘이 이러한 대상과의 동일시에 있다고 볼 때 그는 훌륭한 ‘작업 태도’를 지녔다. 이 태도가 중요한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전시의 화제작인 <크레용팝 스페셜〉도 이러한 태도의 결실이라 볼 수 있는데, 이는 반짝이가 ‘촌티 나게’ 화려한 파란색 커튼을 열고 들어가면 마주치는 동영상과 설치작이다. 이 작업의 주인공은 걸그룹 크레용팝이 아니라, 이들을 의리있게 응원해온 아저씨 팬(‘팝저씨’)들이다. 작가는 지난해 10월부터 5개월간 카톡방을 통해 이들과 소통했고, 급기야 이들을 미술관을 무대로 한 영상 퍼포먼스에 등장시켰다. 50여 명 팝저씨의 우렁찬 ‘떼창’을 찍은 영상, 크레‘용’팝을 의식하고 만든 반짝이는 ‘용’과 현란한 조명의 빈 무대가 마련돼 있다. 그리고 팝저씨들이 헌정한 이름표와 배지들이 부착된 트레이닝복을 수건처럼 말아 크레용 셋트처럼 정렬시켜 벽에 붙인 설치 등 이들의 지극정성이 감동이다. 부성애가 전우애로 맺어져, 엉성하지만 자연발생적으로 뿜어내는 이 중년의 막무가내 열성은, 이들이 초지일관 응원해온 그룹이 처음에 거리를 전전한 무명의 ‘B’급 그룹이었던 점에서 누구에게나 공감대를 형성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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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와 대상 사이 시선의 메카니즘

이렇듯 집단성과 사회 동질성을 다루는 작가의 관심이 일찍이 일상 삶의 공간을 관찰하여 제시된 작업이 <상록타워>(2001)이다. 서울 광장동 임대아파트 상록타워의 32가구를 찍은 사진연작인데, 소위 남에게 보이고 싶은 이상적인 가정의 이미지를 전형적으로 포착해 보여준 작업이다. 이 역시 작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사진의 대상(인물들)이 가진 집단의식과 사회적 고정관념을 드러냈다. 한국 사회 중산층이 생각할 수 있는 ‘이상적 가정’의 전형은 그들이 사는 동일한 규모와 구조의 공간만큼이나 유사해 보인다. 획일적 아파트의 사각형 틀 속에 한껏 과시하는 가정의 행복은 그래봤자 별반 차이가 없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가족의 모습은 판에 박힌 듯 행복을 연출한다. 높은 산 정상에 올라 까마득히 내려다볼 때 밀려오는 인간적 연민이 느껴지는 장면들이다. 그러나 자세히 볼수록 집단의 획일성을 뚫고 각 가정의 개별성이 차츰 드러난다. 정연두가 다수를 다루면서도 개별적이라 보는 이유이다.
요컨대 작가가 주목하는 가장 중요한 모티프는 주체와 대상의 시선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시선은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리얼리즘을 담고 있다. 때로 보는 이를 마비시키듯 차갑고, 상품시장의 물건처럼 대상화하고, 또는 상대를 무장시키거나 가면을 씌운다. 그의 초기작 <도쿄 브랜드 시티>(2002)는 명품 숍에서 일하는 점원들의 모습을 현장에서 촬영한 10점의 사진연작이다. 상품시장에서 작동하는 시선의 메커니즘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그것이 유발하는 조소, 위선, 긴장 등의 불편한 감정을 그대로 노출시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소비문화로 가득 찬 대도시 공간을 사는 우리의 일상생활은 그것이 다른 문화와 교차될 때 더욱 힘겨워진다. 그의 연속 사진작업 <여섯 지점(Six Points)>(2010)은 이러한 다문화 대도시에 사는 현대인의 삶을 빗대어 뉴욕의 여섯 구역에 사는 다양한 민족별 소수자의 대형 파노라마 영상을 보여준다. 커다란 스케일로 연속장면에 펼쳐진 도시 공간 속 개인들의 모습은 강한 명암의 대조로 인해 더욱 고립적으로 보인다. 밝은 햇빛으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인물들은 개별적으로 도드라지고 이들을 천천히 둘러보는 시선은 하나의 시점으로 집결된다.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여 길게 늘이는 영상기법으로, 익숙한 도시의 거리를 낯설게 만든다.
이 주체(작가)의 시선을 동일시하면서 우리는 지극히 평범하나 제각기 힘겹게 살아가는 개인 존재의 중요성을 설득당한다. 그들이 바로 우리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글로벌 시대의 다문화주의가 가진 불통과 소외, 그리고 그 세계를 살아가는 개인의 고독감을 지극히 실제적으로 표현하였다. 여기에, 독백하듯 들리는 남저음 내레이션에 이민자들의 애환을 곁들인다. 이 작업에서 보는 리얼리즘은 수많은 인물이 드리운 그림자처럼 명확하고 개인적이다. 낯선 풍경 속 인물들은 초현실적으로 정적이며 고독해 보인다. 여섯 군데의 다른 지역 속 인물들과 오브제들이 이음새 없이 연속된 하나의 세계는 작가가 각고의 노력을 들인 4년 동안의 결과물이다. 천천히 돌아가는 파노라마 영상은 밝은 스포트라이트로 조명한 거리의 장면을 미세한 간격으로 찍은 수백 장의 컷을 합성하여 구성한 장면인 것이다. 정연두 사진의 제작 과정은 놀랄 정도로 전문적이고 고도로 노동집약적이다. 작가는 때로 이미지의 연출, 미장센의 조작을 그대로 드러낸다. 실제의 장면이 편집되지 않은 채 노출되지만, 최종적인 사진의 가시적 결과는 기막히게 매끈하다. 그러고 보면, 이 작가의 궁극적 관심은 가상과 실재의 관계라 봐야 할 것이다. 그 관계가 만난 사진의 글로시한 표면이 경쾌하고 가볍다. 그러나 그 표면을 받치는 보이지 않는 덩어리의 중량감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정연두의 작업은 무겁거나 혹은 가볍다. ●

[작가리뷰] 김성연 – 불투명성, 불확정성이라는 감동

김만석 미술비평

‘감동’이라는 말은 생각외로 특별한 순간에만 발화하는 용법이 아닐 수 있다. 감동은 감각과 운동이 합쳐진 단어로, ‘마음’이나 ‘정서’의 변화나 이행을 포착하고 있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이 말이 갖는 함의는 생각보다 훨씬 광범위할지 모른다. 특히 ‘동(動)’이 무거움(중력)과 (외부적) 힘이 적절한 기울기로 결합되어 있는 단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즉, 중력이 고정된 힘이라면, 그것에 외부적 힘들이 주어질 때 운동이 생성되는 것이니, 실상 삶은 곧 감동의 연속이고 감동의 지속이라고 해야 마땅할지 모른다. 우리가 감동을 특별한 순간이나 예술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그러므로 삶에서 ‘감동’을 형성하기 힘든 건 이 감동을 주체의 동력으로 삼을 수 없게 되어버린 어떤 기이한 조건들이 삶으로 급격하게 그리고 거부할 틈도 없이 구성되었음을 뜻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예술적 행위와 실천들은 삶을 다시 감동의 연속으로 구성하는 것이어야 할 테고, 삶이 살 만한 방식으로 주어져 있어야 한다는 말을 세계에 되돌려 주려는 악전고투라고 해야 할 것이다. 김성연이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미국 뉴욕대를 졸업한 뒤 부산으로 돌아와 평면과 설치, 사진, 비디오에 이르는 다채로운 작업과 활동을 통해서 그리기 자체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세계 형식, 도시적 삶과 풍경 등을 비판적으로 해부하고 재구성해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자신의 문제의식을, 다룰 수 있는 거의 모든 매체를 경유하면서 치밀하게 배치하는 작가를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각각의 미디어를 통해 표현된 그의 작업들이 갖는 무게는 허투루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의 작업 궤적을 일별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다만 김성연이 세계를 차가운 시선으로 대하면서도 그 차가움이 외려, 그의 일상 삶에서 만나는 대상이나 사물에 대한 ‘사랑’에 기초를 두지 않았다면, 그의 작업이 그토록 다양한 매체를 경유할 이유가 없었으며 지속적으로 동일한 대상의 ‘이면’을 다른 방식으로 포착하려고 애 쓸 필요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섬> 전시장 2층 공간에 배치된 영상작업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까, 비디오로 촬영된 그의 일광작업실 앞 바다에 있는 작은 ‘섬’이 다채롭게 변주되는 것은 그 사소한 대상에 숨결을 불어넣을 때 일상적 지각 너머에 다르게 존재하는 거의 무한한 방식이 있음을 뜻한다. 세계가 불안정하고 불투명한 것이라면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물이나 대상은 우리의 앎 바깥에 있으니 그것을 안정적으로 포착하는 것 자체가 무리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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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되지 않은, 불완전성의 구축

따라서 세계를 고화질-디지털로 포획하여 미시적인 세계마저 시각적 반경 내로 회수하려는 현존 시스템의 지각능력을 무력화하는 방식이 그의 작업에 도입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작업은 대체로 확실성을 의도적으로 결여하고 있으며 선명하거나 작은 세계를 고화질 카메라로 선명하게 확대하는 것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세계의 불투명함을 강조하며 일상적 시지각의 무능력을 초점화한다. 3전시실에 설치된 작업이 이를 잘 보여준다. 즉, 불투명한 케이스에 담긴 체크무늬로 채색된 작은 형상들은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으며 시각적 ‘앎’과 그것이 갖는 욕망을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린다. 달리 말해, 그에게서 이 세계는 ‘포장’된 것이고, 세계의 진면목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다. 무엇이 세계를 포장하는가?
자본이 세계를 포장함으로써, 세계의 진면목이 감추어진다는 점에서, 김성연의 포장 연작은 상품세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함축한다. 디자인이 사물의 본성으로부터 이미지의 자율성을 획책함으로써 사물의 사물성이 상실되어 차갑게 변모해버렸다는 비판적 진단은 그의 평면작업이나 설치, 비디오작업들을 예민하게 만나는 데에 유효한 시각을 제공한다. 마치, 보르헤스의《 과학적 정확성에 관하여》에서 현실과 똑같은 크기의 정밀한 지도를 제작하는 제국의 우화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불투명성이야말로 관계가 구성되는 기초이자 ‘우애’를 나누는 원리가 되며 삶이 서식할 수 있는 장소라고 역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차라리 잘 보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세계와 내가 정직하게 대면하는 것일 수 있다.
kim3ok도시는 김성연의 작업에서 가장 불투명한 공간이자 삶의 장소로 나타난다. 사진과 비디오를 통해서 도시의 다양한 모습을 디지털 이미지로 포착하고 이 이미지를 다시 그리는 방식의 작업을 통해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도시의 외관과 이미지를 전면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을 냉정하게 바라보면서도,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자연’의 맨몸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산의 일부가 공룡으로 그려지거나 산복도로 마을의 옥상에 빨래와 파란 물통의 강렬한 색채가 남겨진 것은 삶의 기억과 흔적들이 급격하게 사라지는 사태에 대한 개입일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비가시적인 체제로 내모는 논리에 대한 비판을 함축하기도 한다. <불꽃놀이>와 같은 영상작업에서 특히 이런 태도가 잘 드러난다. 달리 말해, 쾌적하고 매끄러운 도시는 제 속살을 감추고 있으며 그 속에서 거주하는 존재들은 제 삶의 역사와 결을 유실한다는 것.
김성연의 작업들 역시 일정한 방식으로 불안정성을 구축하려는 경향을 띠기도 한다. 그의 작업은 전시되는 ‘현재’로 완결되지 않고 항상 미래의 사태로 개방된다. 이는 자신의 작업이 전시되는 순간으로 종결되는 게 아니라, 이후의 전시에서 다시 도입되면서 전시 방식을 항상 변용하고 변주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에게는 작업 역시 불투명한 것으로 남겨져 있으며 지속적으로 다른 것으로 이행해야 할 것으로 주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평면도 이런 태도로부터 비켜설 수 없으며 사진과 비디오작업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김성연의 작업은 항상 이행의 사태로 기입될 수밖에 없다. 같은 제목의 작업을 제시하더라도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상 다른 작업이 된다.
그러니까, 김성연은 하나의 텍스트가 자신으로부터 소외되지 않기 위해선, 완결적인 구조를 갖기보다 지속적으로 형질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듯이 자신의 작업을 구성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작품을 작가로부터 소외시키는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상기해보라. ‘소외’가 자본주의적 삶의 일반적인 양식이라면, 소외 자체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술적으로 생산된 그것을 김성연은 지속적으로 돌보고 다듬는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은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 역시 작업에 항상 밀착해 있는 묘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작가의 세계인식과 그 생산물 역시 세계인식의 방식으로 취급하는 태도는 작업을 물신화하는 경향들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예술 텍스트임을 주지시킨다.
그는 왜 이렇게 집요하고 철저하게 자신의 작업과 세계를 대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성곡미술관 2관 1전시실 전면에 전시된 새 떼가 망명하듯 파도와 바람을 거스르며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는 작업에서 엿볼 수 있을 듯하다. 이를테면, <야간비행/trans->에 따르면, 영상에 등장하는 새 혹은 새들은 무엇보다 그 자신으로 여겨진다. 자유를 강하게 열망하는 사람들의 생애가 그러하듯, 그는 자유로운 비행을 꿈꾸었고 서식지를 공중에 마련하려 했음을 감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세계의 운동 속에서 미술적 실천이나 생산 그리고 어떤 결과물들을 결코 고정된 방식으로 두지 않으려는, 근본적으로 자유로운 존재로서 그 자신과 그의 정서를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여, 새로서 그의 비행이 어떤 비행이 될지, 그 불확정적인 행로가 무척 기대된다. ●

김성연은 1964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미술대학 서양화과와 뉴욕대 대학원(석사), 동명대대학원 시각디자인과(박사)를 졸업했다. 15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국내 및 타이베이, 일본 등지에서 열린 다수의 기획전과 그룹전에 출품했다. 부산의 대안공간 반디의 디렉터를 지냈다. 현재 부산에서 작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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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리뷰] 한경우 – 정교한 계산, 절제된 귀결

반이정 미술비평

개인전 제목과 동명의 작품 (2014)는 언뜻, 의심할 수 없는 명제, ‘생각하는 나의 존재감’에 이른 데카르트의 근대적 사유를 차용한 것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번 전시의 얼굴 마담 격인 의 면모를 파편화된 시점들의 총합을 확인할 때 가늠할 수 있는 점에서, 확실한 명제에 도달하려던 데카르트의 세계관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이 작품의 정면은 암전된 전시장에서 상영 중인 흑백 비디오작품을 닮았다. 혹은 점증적인 흑백 채색을 나열한 추상회화의 전형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근접 거리의 측면에서 바라본 작품은 백색 구조물을 비스듬한 각도로 나열한 입체 구조물로 확인된다. 결과적으로 비디오아트의 모니터나 추상회화의 캔버스 같은 평면작품을 수공으로 시늉한 입체작품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시점 이동을 통해 또 다른 위상을 얻는다. 작품이 놓인 전시공간의 위층에서 내려본 작품은, 영단어 ‘I MIND’의 3D 입체 텍스트로 작품 제목을 자기지시하는 개념미술의 모양새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전시장에선 내러티브를 제거한 환원주의적 추상예술에 충실한 외관이라면, 전시장 위층에서 본 작품은 ‘생각하는 나의 존재감’을 명시하는 내러티브를 품은 작업으로 변신한다. (듣자하니 MIND를 동사형 ‘거절하다’로도 해석해 중의적으로 사용했단다. 그러니 데카르트적 사유와는 역시 무관한 셈이다)
복수의 상이한 존재들을 단수의 존재 속에 다시점으로 구현하는 기술은 한경우가 꾸준히 애용하는 시점 계산의 연장선 위에 있다. 이 계산법이 적용된 단순한 원점은 정삼각형, 정사각형, 원형을 다면체 하나 속에 구현한 비디오 설치물 <Triangle, Circle, Squa- re>(2008)가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전시의 대표작 혹은 전시의 표제이기도 한 ‘I MIND’는 외관상 추상화, 비디오아트, 자기지시적 개념미술 등 상이한 매체의 예술 행위들을 하나의 백색 입체 조형물 안에 합체한 경우다. 이 같은 다층적 착시가 가능한 건 다시점에 대한 정교한 계산에서 비롯되며, 다시점 계산법은 한경우의 전작 대부분을 중의적으로 해석하게 만든다.
한경우가 화단에서 흔히 만나는 미디어아트의 일반론으로부터 빗나가는 지점에는 항상 단순한 전략이 있다. 장황한 러닝타임으로 관람의 피로를 높이는 비디오 아트의 생리에 비추어, 한경우의 작업은 3~6분의 러닝타임에 압축적으로 담기기 일쑤이고 고정된 카메라를 쓰지만 화면에서 진행되는 극적인 반전 때문에 관전의 긴장감을 놓칠 수가 없다. 또 흔히 비디오아트가 시간예술의 매체성에 집착한 나머지 무거운 스토리텔링에 치우치는 반면, 한경우의 비디오아트는 수수께끼를 숨긴 평면회화의 전통에 오히려 가깝다.
이를테면 눈속임회화, 트롱프뢰유(trompe-l’oeil)의 긴 전통을 따르되 뉴미디어로 변환시킨 경우에 해당된달까. 이 때문에 동일한 눈속임이지만 트롱프뢰유와 한경우가 걷는 노정은 정반대다. 정통 트롱프뢰유 그림이 캔버스 화면 안에 실물이 있는 것처럼 속이는 민첩한 수공 재현 능력에 의존한다면, 한경우의 눈속임은 모니터 화면 속에 예술이 있는 줄 알았는데, 종국에는 예술을 닮은 실물들의 나열일 뿐이라는 귀결에 이르는 점에서 시점 계산의 능력에 의존한다. 거의 예외 없이 작가는 원근적으로 교란되게 배열된 일상 집기의 조합을 영상 촬영해서 흡사 평면을 보는 것인 양 오인하게 만든다.

일상으로 극적 귀환하는 아나키즘적 결말

응시의 집중력이 곧잘 흐트러지기 쉬운 비디오아트를 짧은 러닝타임으로 붙든 것만큼이나, 그가 집착하는 전략은 손쉬운 아이콘을 작품의 진입로에 두는 것이다. 이 대표 아이콘들은 미학적 중의법을 관철시킬 때도 유효하다. 초기작에 해당할 (2005)은 구시대 컬러TV의 화면 조정시간화면을, (2008)는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화를, (2011)는 성조기를 썼는데 모두 익숙한 도상들이다. (2011)의 언덕은 필시 컴퓨터 운영체계 윈도의 철지난 버전 바탕화면을 차용한 것일 테다. TV 화면 조정시간화면, 윈도 바탕화면은 시각체험이 모니터로 수렴된 동시대에 피할 수 없는 화면이 되었고, 재스퍼 존스가 회화와 사물 사이의 관계를 평면성으로 일갈할 때 동원한 단골 아이콘이 성조기임을 감안한다면 몬드리안과 성조기는 시각예술 종사자라면 피할 수 없는 화면이다. 또 몬드리안과 재스퍼 존스가 결과적으로 평면성의 도그마에 일정 부분 관여한 선배 미술인이라면, 한경우는 선배의 평면미학을 교란시키는 작업을 통해 세대 격차를 확인시킨다.
han3짧은 러닝타임과 미디어 시대의 도상들을 통해 미디어아트를 전에 없이 친숙하게 만들었다면, 한경우가 가장 자주 애용하는 화면 구도는 좌우대칭 또는 뉴미디어 데칼코마니다. (2006)의 4등분된 CCTV화면, 수면으로 집기들이 반사된 듯 착시를 일으키는 (2009)의 상하 대칭, (2012) 등은 모두 대칭구도 속에 착시기술을 숨긴 작품이다. 좌우대칭의 범주를 느슨하게 잡는다면 (2007)와 (2007)까지 대칭구도로 착시를 견인한 사례 안에 포함시킬 수 있다.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 이번 개인전에도 좌우대칭의 불문율은 (2014)가 계승하고 있다. 로르샤흐 테스트란 우연적으로 발생한 좌우대칭 화면에서 피험자들이 발견하는 문맥을 분석하여 그들의 심리를 검사하는 심리 테스트이다. 로르샤흐 테스트 검사지가 우연적으로 형성된 좌우대칭 이미지인 반면 는 작가가 인위적으로 좌우대칭 형상을 집어넣은 경우랄 수 있다. 해당 분야에서 오랜 권위를 누린 도상을 차용해서 멋대로 문맥을 변형시킨 점에서, 몬드리안과 성조기(혹은 재스퍼 존스의 해석)의 미학을 멋대로 변형했던 선례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셈이다.
로르샤흐 테스트는 심리분석 분야에서 긴 전성기를 누렸다. 그렇지만 검사 결과에 대한 정확성과 신뢰성이 검증 불가능한 것이라 피험자가 조작된 답을 내놓거나 실험자가 주관적 견해를 덧붙일 위험을 견제할 수 없다는 비판을 줄곧 받았다. 경험적으로 입증되지 못한 로르샤흐 테스트를 의사과학이라고 평가절하하는 회의주의도 완고하게 남아있다. 그럼에도 심리분석 영역에서 퇴출되지 않고 살아남은 게 로르샤흐 테스트다. 검증 불가한 권위의 지속성, 모호한 해석에 대한 공동체의 묵인, 해당 분야에서의 장기집권 등 로르샤흐 테스트의 생리는 화단에서 추상미술이 겪은 전력과 닮은 데가 많다. 로르샤흐 테스트에서 피험자의 진술이나 실험자의 해석의 근거는 오로지 그들의 주관성일 뿐이다. 실제 로르샤흐 검사지에 우연히 찍힌 형상은 추상적이기도 구상적이기도 한 모양새인데, 그중 상당수는 성기의 모양새를 연상시키는 게 사실이다. 이 검사법을 고안한 헤르만 로르샤흐가 스위스 프로이트 학파 출신인 점과 연관성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성적 메타포를 연상시키는 로르샤흐 검사지는 왠지 특정한 답변으로 피험자들을 몰아가는 인상마저 준다. 로르샤흐 테스트를 둘러싼 심리학계의 회의야 어떻건, 한경우가 검정 비닐과 색채 비닐들을 인위적으로 구겨서 내놓은 좌우대칭 비닐의 절대 다수는 성기 모양을 띠고 있다. 아마 작정하고 성적 코드를 연상시키는 모양으로 형성한 걸 테다. 심리학계에서 장기집권 하면서도 끊임없이 권위를 의심받은 이 검사법의 약한 고리를 시각적 농담으로 고의로 부풀린 것이리라.
사진이건 입체건 비디오건 매체를 가리지 않고 한경우가 당도하는 곳에는 거의 예외 없이 무정부주의적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재현된 예술이 일상으로 극적으로 귀환하는 스토리라인을 따른다. 그런 결말은 더러 화면 속에서 작가의 등장과 퇴장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성조기 화면은 한경우가 착용한 채 퇴장하는 별무늬 재킷으로, 화면조정시간은 집기들의 재배열을 통해 빨간색 캐비닛이라는 일상 사물로 환원되는 식이다. 예술이 사물로 둔갑하는 대반전은 언제나 원근감과 사물의 비율 사이를 정교하게 계산한 결과이다. 한편 현란한 예술이 일상 집기로 환원되는 여러 작품의 결말을 포함해서, 의 원점이 백색 구조물일 뿐인 점, 초기작 (2007)의 마무리가 검정색과 흰색으로 구분된 투 채널로 끝난다는 점 등, 결론과 본질이 언제나 절제된 표현으로 수렴된다. 이는 시감각 자극의 과잉시대에 응하는 작가적 태도의 확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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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지난달 끝난 전시 <사진과 미디어 : 새벽 4시>에서 초대 작가들 가운데 최소한 3명(이문호, 원서용, 한성필) 이상은 착시효과에서 기민한 안목을 발휘한 경우다. 그 점에서 한경우와 상통하는 부분도 크다. 일군의 주목받는 작가들이 착시의 변주에 집중하는 까닭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환영주의를 날로 강화시키는 뉴미디어 시대에 전업 시각예술가의 농담어린 응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한경우는 197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조소과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와 스코히건 회화·조각학교를 졸업했다. 총 4회의 개인전과 삼성미술관 리움의 <아트스펙트럼 2012> 등 다수의 기획전과 그룹전에 참여했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 조형예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작가리뷰] 황인기 – 물신주의적 표면이 사라진 자리

정신영 미술비평

그간 0과 1로 재정의된 픽셀 산수화로 전통과 동시대의 성공적인 융합을 제시해 온 황인기는 마치 과거의 선인이나 문인들처럼 사회와 격리된 무위자연 속에서 회화의 방식과 역사에 대한 고민에 집착하는 듯했다. 그러나 3년 만의 개인전인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신작들은 그의 정치,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드러내 보임과 동시에 다듬어진 이미지에 대한 거부, 그리고 제작자로서의 신체적인 개입 결과물들을 통해, 여느 때보다도 적극적인 발언 의지가 돋보이는 것들이었다. 전시 제목에 암시되어 있는 것과 같이 물질적 풍요의 일과성 매력에 대한 회고적 태도와 과도한 소비에 대한 반발이나 저항은 황인기의 작품 속에서 보다 물질적인 형태로 제시되어 우리를 압도한다.
프랑스의 패션하우스 루이비통이 만들어낸 가죽 가방은 하나의 사회현상이기도 하다. 소지품을 넣고 이동하기 위한 가방이라는 본래 기능은 이미 부수적인 것이고 소비자에게는 이 제품을 소유하여 과시함으로써 브랜드가 상징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스스로에게 이항시키는 것이 보다 핵심적인 기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0년에 가까운 전통을 자랑해 온 루이비통은 자사 이미지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무라카미 다카시를 비롯 리처드 프린스나 최근에는 쿠사마 야요이 등 국제적인 현대미술 작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하나의 가방에 우월한 패션감각이나 재력 이상의 예술성마저 부여하는 전략을 취해 성공했다. 어깨에 매달린 루이비통 가방 속에는 지갑이나 전화, 열쇠 외에도 문화, 예술, 사회적 부가가치가 담겨있는 셈이다. 황인기는 아마도 루이비통 제품이 갖는 이러한 복합적 측면에 착안한 것 같다.

in2전시장에는 먼지나 얼룩으로 오염되어 찢기거나 일그러진 형태의 루이비통 가방 44개(전 작품의 제목은 전시명과 같음)가 날카로운 쇠갈고리에 걸려 진열되어 있다. 우리 사회와 소비자들이 이 가방들에 기꺼이 부여해 온 모든 누적된 비물질적인 가치들을 작가는 일말의 주저나 참을성 없이 단숨에 박탈하고 있다. 일렬로 늘어뜨려진 낡고 해체된 검은 덩어리들은 유럽 전통의 고급 상품으로서의 아우라를 잃고 가방 주인의 허영과 조바심과 함께 변질되어 가까이 가기조차 꺼려질 정도로 흉물스럽게 변해 있다. 작가는 가공된 가죽에 지나지 않은 명품 가방들의 물리적 정체를 드러내 보인다.
84권의《 타임(TIME)》지를 동일 간격으로 조심스럽게 유리 선반 위에 진열한 설치는 1주일의 유통기한이 지난 지 오래된 이 시사주간지들을 마치 고대 파피루스나 중세 수사본인 양 취급하고 있다. 먼지와 흙모래로 뒤덮인 책 표지들은 아마도 세계사의 한 시점에 우리와 공유했었을 그 1주일에 대해 강렬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표지를 장식해 온 수많은 사건이나 인물들도 이들이 뒤집어쓴 먼지보다 더 뿌옇고 흐릿하게 우리의 기억 속에 잠식되어 잊혀간다. 가슴에 새겨진 고백이나 문학작품 속 한 구절의 영속성에 비해 매순간 우리를 자극하는 최신의 시사정보란 인쇄된 얇디얇은 종이만큼이나 무의미하고 덧없는 것일까. 미니멀 조각처럼 규칙적으로 나열된 우리 사회의 잊혀진 증언들은 스스로의 가벼움과 반복적 성질에 허탈해 지레 퇴색해버린 화석인 듯하다.
시간의 진행에 따라 극적인 변화를 겪은 것은 작가가 2011년부터 의도적으로 부패시켜온 평면작품이다. 물감 대신 콩, 바나나 등의 식품으로 나무판 위에 그려진 유명 브랜드의 로고는 이제는 갈색과 흰색의 무기질적 가루로 변질되어 이미지 식별이 어려울 정도이다. 신성시되어야 할 캔버스 표면을 오물로 뒤덮는 방식은 단순한 파괴행위를 넘어선 자괴적인 수법이라고 할 수 있다. 1977년 앤디 워홀은 캔버스에 금속도료를 바른 후 소변으로 부식시킨 결과물을 작품으로(<산화 회화(Oxidation Painting)>) 제시해 그때까지의 작업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시각적, 개념적 전환점을 제공했다. 대량 생산, 소비가 미덕이던 찬란한 미국의 경제부흥에 발맞추어 각종 공산품과 스타들의 이미지를 섭렵해온 워홀에게 떠오른 소변이라는 소재이자 재료는 화려하고 지배적이던 물질문명에 대한 비웃음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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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한 계산을 거쳐 산출된 정교한 이미지를 재현하기 위해 까마득한 수의 플라스틱 블록을 하나하나 꽂아가며 이미지를 생산하던 황인기의 산수화 작업을 생각할 때, 부패라는 일종의 자연현상에 화면 구상을 내맡기다시피 한 것은 작가의 기술적 우월성에 대한 저항적인 태도의 분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대량 생산되는 완제품으로 뒤덮여 매끈한 인공적인 광택이 흐르는 물신주의적 표면이 사라진 자리에는 바타유(Georges Bataille, 1897-1962)가 말하는 ‘저속한 물질성(base materialism)’이 자리 잡는데, 이는 바타유의 이상주의와의 싸움의 가장 중요한 무기였으며, 황인기의 경우에도 그에게 기대되는 익숙한 질서를 파괴하기 위한 궁극적 수단으로 사용된 듯 보인다.
in4지하공간을 차지하는 것은 백색 천을 쓴 다섯 개의 부유하는 듯한 신체 지표이다. 중세의 카타콤과 같이 비밀스럽고 의식(儀式)적인 이 공간에서는 머리를 중심으로 향해 누운 인체의 흔적들이 순교자들의 석묘보다도 더 미련 가득히 무덤의 고요함을 깨고 주문을 되뇐다. 낮은 음성으로 반복되는 것은 7개 국어로 해석된 동물학자 로렌츠(Konrad Lorenz, 1903-1989)의 현대문명비판이라고 하는데, 역사시대로 진입하여 문명이 시작된 이래로 인류는 항상 지금, 현재의 상태에 대해 우려하고 회의하며 후회해왔다. 조상들의 미이라처럼 우리의 현재를 비난하고 우려하며 경고하는 이들의 불협화음이 어둡고 폐쇄적인 이 공간을 채워간다. 그럼에도 작품의 에너지가 결코 절망적이거나 자학적이지 않은 것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팽팽히 당겨진 듯 고정된 5명의 존재가 주는 긴장감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신체를 합성수지로 본떠 만든 복제된 형상 위에 천을 씌워 굳힌 이 구조물들은 말 그대로 작가 스스로의 허상이다. 예술가로서 세상만물의 허상을 만들어내는 것을 직업으로 한 그가 흥미를 가진 것이 창조자로서의 작가의 허상임은 겹겹이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환영을 만드는 것과 나를 환영으로 만들어내는 과정 사이에는 교묘한 주체의 치환이 일어난다. 화면상에 이미지를 그려나가듯이 나의 유령을 만들며 작가는 유체이탈의 상태처럼 누워있는 나를 분명 몇 번이고 직시하며 개념적인 가사(假死)상태를 경험햇을 것이다. 나를 바라보는 나에 대한 발견, 즉, 자아에 대한 경외(境外)시는 라캉이 말하는 거울 속 이미지로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과 같이 스스로의 부족과 미숙을 깨닫고 충족해가는 단서로 작용할 것이다. 소비사회의 허상뿐만 아닌, 마치 허물을 벗어놓은 듯한 스스로의 껍질을 제작하며 작가가 각성한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이번 전시에서 육체의 한계에 대한 자각과 이에 대한 극복의지가 그 어느때 보다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은 역설적으로 전시된 작품들의 물리적인 위압감 때문이다. 무겁게 늘어뜨려진 44개의 가방을 비롯해 50여 개의 액자로 채워진 벽면, 수년치의 주간지들과 반복되는 인체형상, 전 3층에 걸친 의욕적인 인스톨레이션에서는 마치 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 작가와 같은 패기와 열정, 그리고 창조적 욕심이 느껴지는데, 이는 전시 전체에 충만한 죽음에 대한 연상과 대조적이다. 작가는 디지털화된 시각표현을 주 매체로 삼던 때에 잠복해 있던 신체적, 물리적 감각이 올라오는 것을 참지 않은 결과라고 풀이한다. 언뜻 상반되어 보이는 충만한 창조적 에너지와 이를 선동하는 퇴화나 부식, 부패와 같은 비구조적이고 비정형적인 경향에 대한 관심은 황인기를 통해 한곳에 집약되어 그 작품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갈 듯하다. ●

황인기는 1951년 충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공과대학 응용물리학과를 중퇴하고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와 프랫 인스티튜트 대학원을 졸업했다. 지금까지 11회 개인전을 열었으며, 1997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 2011년 아르코미술관 대표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예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충북 옥천에서 작업하고 있다.

[스페셜 아티스트] 제여란 – 추상인가 형상인가

김원방 홍익대 교수

제여란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2010년 가인갤러리와 대구 누오보갤러리, 2011년 조은숙갤러리, 2013년 스페이스 캔(베이징), 그리고 올해 1월에서 3월에 걸쳐 대구와 과천 두 군데의 <스페이스 K>에서 열린 개인전들을 통해 그녀의 막대한 양의 작업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제여란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작업에 대한 미학적 논평을 먼저 꺼내기보다는, 제여란이라는 이름이 생소한 이들을 위해 그녀가 ‘어디 있던 작가’였는지를 먼저 이야기하는게 순서 같아 보인다. 그러고 나서 그녀 작업의 미학적 특징을 논할 것인데, 이것은 “그녀의 작업은 결코 일반적 의미의 ‘추상’이 아니다”라는 명제가 될 것이다.
“제여란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라는 자극적 표현을 내세웠지만 이는 사실 옳은 표현이 아니며, 우리가 그녀에 대해 갖기 쉬운 선입견을 드러내려는 표현일 뿐이다. 여태껏 그녀가 어디로 떠나 칩거한 적은 결코 없다. 단지 이 떠다니는 안개 같은 미술계(라는 이름의 ‘집단적 욕망의 등록소’)가 이곳저곳 몰려다니다가, 우연히 그녀와 또다시 마주치고 그녀의 진가에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젊은 세대의 미술인들에게는 제여란이란 이름이 생소할 수도 있는데, 사실 제여란은 1980년대 후반부터 활동을 개시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작품활동을 쉬어 본 적이 없는 작가이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1980년대 암흑기부터 시작하여 오직 대한민국에서 시대를 몸으로 관통해 살아오면서, 미술 트렌드의 대세가 어느 쪽으로 가건 말건, 자신의 이름이 세상에서 완전히 잊히건 말건, “이제 세상 밖으로 좀 나오라”라는 무례하고 가식적인 조언을 듣건 말건, 20여 년의 긴 시간 내내 시장통이나 산 위의 작은 작업실에서 그 엄청난 양의 작업을 해낸다는 것이 과연 아무나에게 가능한 일인가? 결코 아닐 것이다. 대부분은 도중에 포기한다. 예술가는 대부분 ‘예술 그 자체에 대한 도취’보다는 ‘예술가가 되려는 욕망’이 강한 사람들이다. 무대 위가 아니라 어두운 칸막이 뒤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예술에 대한 도취는 줄어들고, ‘사회적 욕망’이 그를 광포하게 지배하기 시작한다. 이 욕망은 헤겔이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서, 그리고 라캉과 지젝이 연달아 논하듯이, ‘세상 속에서, 타인들의 눈 속에서 인정받으려는 욕망’, 즉 ‘사람들의 보편적 욕망의 대상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것은 ‘파티에서 주목받고픈 욕망’으로 압축된다. 인정이 이루어지는 ‘타인들의 머릿속’을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행복을 찾는 거처로서는 너무 초라한 곳”이라고 규정했는데, 이는 예술가가 꼭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의 불행한 초상이다. 이제 우리는, 디오니소스처럼 예술에 도취할 것인가 아니면 단지 ‘예술가의 욕망’을 좇을 것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다시 던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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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으로 귀환하는 아나키즘적 결말

국내의 미술관과 갤러리들은 욕망만을 좇던 나머지, 제여란이라는 작가를 잘 알아보지 못했다. 예를 들어 미술관들이나 큐레이터들은 이미 다른 곳에서 앞서 인정받은 작가를(얄팍한 트렌드 때문이건, 외국 큐레이터가 좋아한다는 후광 때문이건) ‘다시’ 인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실은 미술관이나 큐레이터 자신도 그 욕망의 네트워크 속으로 뛰어들어 스스로가 욕망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변태적’ 욕망의 표현일 뿐이다. 제여란은 그러한 ‘욕망의 생태계’에서 벗어나 있던 작가인데, 지금이라도 미술계가 그를 점차 주목하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로 보인다.
이제 제여란의 작업 전개과정을 간략히 짚어보자. 제여란의 첫 개인전이 열린 곳은 1988년 윤갤러리였고, 좀 더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지금은 없어진 동숭동 인공화랑에서의 1990년 개인전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까지 국내 미술계는 설치, 복합매체, 그리고 비디오를 위시한 테크놀로지 예술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이 와중에서 회화는, 인테리어에 어울리는 무난한 미니멀풍 추상회화, 또는 잔재미를 추구한 포스트모던풍 아류회화(엔초 쿠치, 줄리앙 슈나벨 )나 팝아트 아류 등이 조금 살아남았을 뿐이다. 반면 밝은 곳에서조차 디테일 식별이 잘 안 되는 컴컴한 흑색톤, 용암처럼 솟구치는 물질덩어리, 환희인지 공포인지 알 수 없는 불길한 정조에 관객을 대면시키는 제여란의 그림은, 트렌드를 좇는 기획자나 무난한 그림 좋아하는 화상, 양자에게 모두 ‘부담스러운 그림’으로 인식되었던 듯하다. 그리고 이로 인한 전시활동의 감소가 그녀를 칩거한 것처럼 잘못 보이게 한 원인이지만, 최근 몇 년간 일련의 전시들은 그러한 생각을 완전히 바꿔주고, 놀라운 역량의 작가를 우연히 발견한 듯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
이제 제여란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미학적 특징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많은 이가 그녀의 작업을 편리하게 ‘추상화’라고 불러왔지만, 나는 결코 ‘추상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이 점은 그녀의 작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점이다. 그녀의 회화는 추상화가 아니라, ‘형상성의 회화(painting of the Figural)’이다. 형상성의 회화는 ‘형상회화’ 또는 ‘구상회화’라고 부르는 성향, 즉 figurative painting과 전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용어로서의 형상(구상)회화는 재현적 지시기능을 지닌 ‘구체적 형상(figure)’을 내세운 것이고, 반대로 추상회화(abstract painting)는 그 재현적 형상들을 삭제하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형상성의 ‘현존/부재’, 말하자면 ‘예/아니오의 변증법에 따라 ’형상 대 추상의 구분이 미술사적으로 유지되어왔다. 이러한 형상 대 추상의 구분은 롤랑 바르트가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레키쇼와 사이 톰블리에 대해 1970년대에 쓴 글에서, 그리고 또 리오타르와 들뢰즈의 형상성 철학에서, 1990년대 이후로는 로잘린드 크라우스, 존 레이크먼, 디디 위베르만 같은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에 의해서 사실상 폐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아는 그런 추상회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추상회화란 20세기 초에서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미술사의 맥락 속에서만 성립했고, 오직 ‘스타일’, 달리 말해 ‘형태학적 유형학’의 사고를 통해 구축된 ‘재현의 정치학’에 불과하다. 미술사의 구태의연한 도상학적 전통은, 구체적 형상들이 실은 우리의 시각적 욕망에 의해 포착된 최종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형상들은 사실 관람주체의 응시와 시간 속에서 우발적으로 출현하고 사라지는 역동적인 과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즉 ‘시각적 무의식(optical unconscious)’의 측면을 완전히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제여란의 작업은 바로 그러한 ‘형상들의 기괴한(uncanny) 출현과 소멸과정’을 극대화한 회화이다. 그것은 관객의 시선을 전복시키는 이상한 공포의, 혹은 시선을 좌절시키는 재난적 힘 같은 것이다. 그것은 회화에서, 형상의 출현/소멸을 통해 ‘응시’라는 최근의 정신분석학적 주제를 강력히 드러내는 흔치 않은 회화의 사례이다. 질 들뢰즈가 형태의 오형화(誤讀化, catamorphose des formes), 또는 바로크적 추상이라고 부른 것, 디디 위베르만이 ‘스스로 형상화하는 형상’이라고 부른 바로 그것이다. 우연히 망치고 우연히 드러나는 형상들은 제여란뿐만 아니라, 특히 게르하르트 리히터에서 탁월하게 나타나는 면모이다. 그의 회화를 지배하는 까닭 모를 ‘정신분열적 불안감’은 거기에 연유한다. 제여란의 회화는 들뢰즈의 관점을 빌리면, 잭슨 폴록이나 앵포르멜 회화처럼 혼란만으로 채워진 공간도 아니고, 또는 반대로 칸딘스키 경우처럼 기호화된 코드로 채워진 공간도 아니다. 대신 그것은, 롤랑 바르트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나타나는 것과 사라지는 것을 하나의 상태 속에 결합시키는 것, 에로스도 타나토스도 아닌 것, 바로 ‘삶-죽음’을 하나의 사유 속에, 하나의 행위 속에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제여란 자신도 그 점을 명확히 의식하고 있다. 그녀는 작업 노트에서 “범주적 경계들을 어떤 지점에서도 인정하지 않기”, “사물이 모든 그물을 빠져나오는… ”, “모든 사물의 자발적 방황운동” 등을 강조한 적이 있다.
je3제여란의 회화는 무엇을 재현하거나(형상회화) 또는 반대로 재현으로부터 도피하는것(추상회화)이 목적이 아니라, ‘형상들 자체가 연출하는 에로티시즘’을 추구하는 회화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제여란의 회화는 추상회화가 아니라, 포스트모던적인 ‘형상성의 회화’, 또는 들뢰즈적 의미의 ‘바로크적 추상’이라고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제여란의 회화가 만약 전통적 추상회화라면, 왜 그 작품들은 수많은 ‘숲 같은 것’, ‘짐승이나 덤불 같은 것’, ‘폭포나 피의 분출 같은 것’으로 가득 차 있단 말인가? 실은 바로 이 ‘무엇 무엇 같은 것’이야 말로 내가 말하려는 핵심이다. 그것은 실은 차이의 출현, 즉 형상이 분열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 같은 것’은 동시에 ‘…같지 않은 것’과 동의어이다. 이것이 바로 기괴한(uncanny) 출현과정이며, 무슨 이미지이든 ‘형상 대 비형상’, ‘형상 대 배경’으로 구분해 내려는 우리의 ‘시각적 욕망’에 저항하고, 회화를 인식론적 도구로 전락시키는 도상학적, 지성주의적 전통에 저항하는 회화인 것이다.
초기부터 제여란 회화는 어두운 숲 속, 습지, 심연, 폭포 등을 연상시키는 어둡고 심지어 재앙적인 느낌의 풍경으로 채워져왔다. 그것은 완결되어 형상을 갖추어가는 풍경을 급작스레 무너뜨리는 재앙과 트라우마의 풍경과 같으며, 바로 이 점이 제여란의 회화를 일종의 정신분석학적인 ‘억압된 것의 귀환’에 연관지을 수 있는 이유이다. 따라서 이것은 미학적이면서도 동시에 신경증적인 정조이다. 연극의 장르 구분을 빌리자면 분명 그것은 그리스 비극 같은 것에 해당할 것이다(급작스러운 비극적 운명, peripeteia). 물론 비극의 정의가 단지 눈물과 가련함의 정조를 뜻하는 것이 아님은 당연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니체, 그리고 크리스테바에 이르기까지, 예술로서의 비극은 ‘내 안의 혹은 세계 속의 타자라는 괴물적 존재를 기꺼이 수용하도록 만드는 승화의 힘’을 의미한다.
이번 스페이스 K에서 열린 전시를 비롯해 최근 몇 년간 개인전에서 우리가 볼 수 있었던 작품들은 그녀의 막대한 양의 작업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우리 미술계의 역동성? 그런 것은 없다. 욕망의 생태계는 실은 놀라울 만큼 정체되어 있고, 역동적이라기보다는 증기처럼 휘발적이다. ‘예술가의 욕망’보다 ‘예술에의 도취’를 우선시해온 이 작가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보는 것은, 우리 미술계가 정말로 좀 더 역동적이 되고 있다는 좋은 반증일 수 있다. ●

제여란은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년 윤갤러리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1회 개인전을 열었다. 한국현대판화가협회 공모전 대상을 수상했고, 현재 경기도 의왕시 청계산 기슭 작업실에서 작업하고 있다.

Art Journal

정부 지원에 힘입어 국내 미술시장에 봄바람 부나

제32회를 맞은 성황리에 폐막
1979년 시작해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아트페어 ‘화랑미술제’가 3월 5일부터 9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이번 행사에는 화랑협회 소속 94개 화랑이 참여해 32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특정 작가의 작품이 여러 화랑에서 중복 출품되는 것을 방지해 미술시장의 균형 발전을 도모하자는 취지에서 2013년 도입 시행된 ‘집중조명작가’ 제도는 화랑당 주력 작가를 3명으로 제한한 것을 올해 5명으로 늘려 컬렉터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줬다. 방문객 수는 지난해 보다 증가한 3만6000여 명을 기록했고, 다양한 작품들이 거래되어 총 620여 점이 총 37억 원에 판매되는 성과를 거뒀다. 30억8000만 원이었던 지난해 대비 20%이상 증가한 수치다.
한편 개막식에는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정형민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참석해 안창홍 의 <꽃>(2009, 왼쪽)과 강주영의 <향기- 떠다니기>(2013, 오른쪽)를 현장에서 구매해 미술시장 활성화에 앞장서려는 적극적 행보를 보여주었다. 총 1억 원의 예산으로 구매된 두 작품은 정부미술은행에 귀속돼 국가기관 대여에 활용될 예정이다. 정부미술은행은 정부 미술품의 전문적 구입과 국가기관 무료 대여 등을 통합한 제도로 올해 6억원의 예산이 편성됐다.
유진룡 장관은 “미술시장 활성화에 정부도 힘을 보태겠다. 정부 미술품 구입규모를 점차 확대해 100억 원대로 끌어올릴 것”이라며 “정부는 미술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미술시장 중장기 발전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5월 중에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행사기간 중 ‘올해의 CEO 대상’을 수상한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이 ‘아트콜라보레이션-기업과 미술의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윤 회장은 화랑의 뛰어난 감각과 인프라를 활용한 아트 콜라보레이션의 성공사례를 소개하고, 이를 통해 국내 화랑에는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의 방법을, 기업에는 브랜드 가치 상승 방안과 새로운 투자 방향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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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작가는 누구일까?

구동희 김신일 노순택 장지아, <올해의 작가상 2014> 후보 작가로 선정돼

aj2국립현대미술관(관장 정형민)은 SBS문화재단과 공동으로 주최하는 <올해의 작가상 2014> 참여 작가로 구동희, 김신일, 노순택, 장지아가 선정됐다. 오는 8월 5일부터 10월 2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는 선정작가 전시에서 후보작가 4인은 각자 신작을 선보이며 선의의 경쟁을 펼치게 된다.
전시작가 4인은 ‘올해의 작가상’ 운영위원회의 미술계 추천위원 10인에 의해 추천됐고, 이숙경 테이트 아시아태평양 리서치센터 큐레이터, 이영준 계원예대 교수, 구로다 라이지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 학예실장, 톰 트레버 전 아르놀피니 미술관장 등 5인의 국내·외 심사위원단의 스튜디오 방문과 인터뷰를 통한 심사를 거쳐 선정됐다. 전시작가에게는 SBS문화재단에서 제공하는 각 4,000만 원의 후원금이 제공된다. ‘2014 올해의 작가’ 최종 수상자는 전시기간인 9월 중에 발표될 예정이며, SBS를 통해 다큐멘터리가 제작·방영되는 혜택이 부여된다.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수상제도로 자리매김한 ‘올해의 작가상’은 제1회 때 문경원·전준호, 제2회 때 공성훈이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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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정한 세계 속에서 예술의 역할은?

<2014부산비엔날레> 주제 발표

aj3개막 200일을 앞두고 지난 3월 4일 <2014부산비엔날레>(9.20~ 11.22)를 관통하는 주제가 발표됐다. 부산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되는 본전시 감독을 맡은 올리비에 케플렝(Olivier Kaeppelin)은 ‘세상 속에 거주하기’라는 주제를 통해 “오늘날의 불안정한 세계 속에서 예술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안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Voyage to Biennale-비엔날레 속의 한국현대미술 50년’을 주제로 기획되는 <비엔날레 아카이브展>은 부산문화회관 대전시실과 중전시실에서 개최되며, 이건수 큐레이터 (前 월간미술 편집장)가 전시 기획을 맡았다. 한편 또 하나의 특별전인 <아시안 큐레토리얼展>은 아시아 주요 도시의 젊은 기획자들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전시이다. 이외에도 다채로운 부대행사가 펼쳐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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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가 11년간 테이트미술관을 후원한다

테이트모던 ‘터바인홀’ 전시 지원 및 백남준 작품 9점 구매

aj4현대자동차가 지난해 11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2014년부터 10년간 120억 원을 지원하기로 한 데 이어 지난 1월 20일 영국의 세계적인 미술관 ‘테이트 미술관(Tate Muse-um)’과 향후 11년간의 ‘글로벌 마케팅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테이트미술관의 원칙상 후원금액은 밝혀지지 않았다.
테이트미술관 니콜라스 세로타(Sir Nicho-las Serota) 총관장은 3월 7일 방한해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자동차가 백남준(1932~2006)의 작품을 9점 구매하도록 후원했으며, 테이트 모던 하반기 첫 전시로 백남준전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테이트미술관은 2010년 테이트 리버풀에서 백남준 회고전을 개최한 바 있지만 지금까지 그의 작품을 소장한 적은 없다. 이번에 구입한 백남준의 작품은 <캔 카>(1963), <세 개의 달걀>(1975~1982), <오피스>(1990~ 2002) 등 1963년부터 그가 세상을 뜨기 전까지 백남준의 40여 년 작업세계를 아우르는 작품이다.
또한 이번 협정에 따라 테이트 모던의 심장부인 ‘터바인홀’에서 2015년부터 2025년까지 10년간 ‘The Hyundai Commission’이라는 이름의 전시가 매년 가을부터 봄까지 열리게 된다. 터바인홀은 동시대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되는 국제적인 현대미술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1층에서 5층까지 하나의 공간으로 관통된 초대형 전시장이다. 아니시 카푸어, 루이즈 부르주아, 올라퍼 엘리아슨, 아이웨이웨이 등 세계 정상급 작가들의 전시가 이곳에서 열렸다. 세로타 총관장은 “특별 커미션 작가는 당해 프로그램을 발표할 때 공개한다는 테이트의 원칙에 따라 리스트는 공개되지 않지만 한국 작가는 1명 이상 포함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 작가로 첫 전시를 시작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각국의 미술계에는 알려져 있지만 세계 미술계에는 인지도가 낮은 작가를 발굴해 터바인홀 전시를 통해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시키겠다”고 말했다.
테이트미술관은 테이트 브리튼, 테이트 모던, 테이트 리버풀,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 총 네 개의 미술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서 테이트 모던은 연간 관람객 수가 500만 명이 넘는 세계에서 관람객이 가장 많은 현대미술관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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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속 작가 12명이 최고의 자산

갤러리 시몬 개관 20주년 기념전

aj5<시몬의 친구들>역량 있는 작가를 꾸준히 발굴하고 지원해 온 갤러리 시몬(대표 김영빈)이 올해 개관 20주년을 맞았다. 3월 20일부터 5월 9일까지 열리는 <시몬의 친구들전(Simon’s Friends)>에는 문범 배형경 노상균 강애란 최선명 권소원 김주현 황혜선 구자영 김신일 이창원 김지은 등 전속작가 12명이 참여했다. 갤러리 시몬은 1994년 개관년도부터 해마다 4월이 되면 ‘시몬의 친구들’이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열었다. 작가와 화랑은 친구라는 개념으로 기획해 온 그룹전이다. 신사동 본점과 청담동 분점을 운영하던 ‘강남 토박이’ 화랑에서 2011년 종로구 자하문로에 건축가 유병안이 설계를 맡은 4층 건물을 신축해 활동무대를 옮겼다.
김 대표는 “미술시장이 불황이지만 큰 걱정 없다. 갤러리 20년 운영해서 12명의 작가가 남은 게 가장 큰 자산”이라고 말했다. 전속 작가를 선정하는 기준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내가 작품을 보고 매혹되어야 한다. 작품과 인품이 일치하지 않는 작가를 싫어한다. 작가의 인품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에는 시퀸으로 작업하는 노상균의 별자리 형상 작품과 책을 소재로 빛과 기술을 이용한 강애란의 작품 등이 출품됐다. 김 대표는 “앞으로 젊은 작가를 계속 발굴해 전속작가를 늘리고 세계무대에 적극적으로 소개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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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교육 활성화를 위한 토론의 장

전국 미대 학장협의회 심포지엄

aj7전국미술디자인계열 학장협의회(회장 이순종, 서울대 미대 학장)는 미술과 디자인분야의 교육과 연구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예술교육 연구 진흥을 위한 Art Korea(AK)’ 사업을 계획하고, 3월 2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창조국가를 위한 예술교육의 미래’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현재 우리나라는 예술교육과 연구 분야에 대한 국가 지원이 매우 미비한 수준이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의 기조 발제 <창조사회와 예술교육 활성화를 위한 제언>을 시작으로 1부에서는 김성희 서울대미술관장의 <예술교육의 새로운 시대적 요구>, 하준수 국민대 교수의 <국내외 예술교육 연구 지원현황과 한국 예술교육 연구의 과제>, 2부에서는 최민영 성신여대 교수의 <창조국가 구현을 위한 AK사업의 제안> 등이 주요 발제로 진행됐다. 토론에서는 예술교육과 예술진흥을 위한 AK사업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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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벼랑에서 희망을 시작한다.

대안공간 힘이 기획한 지역협업전 <옥상의 정치>

aj17부산 수영구에 새롭게 자리 잡은 ‘대안공간 힘’이 ‘벼랑의 삶, 벼랑의 사유’를 주제로 지역협업전 <옥상의 정치>를 기획했다. 3월 14일 5개 도시(부산, 광주, 대전, 대구, 서울)에서 동시 오픈한 <옥상의 정치>는 옥상을 다루는 작업들을 통해 우리 시대 미술이 삶의 어느 지점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고자 한다. 삶의 임계와 미술의 임계를 통해서 우리 삶과 미술이 처한 상황을 진단하고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은 부차적 효과일 수 있다.
전시의 연장선에서 동명의 책《 옥상의 정치》가 갈무리 출판사에서 발간된다. 글쓰기를 통해서 ‘옥상’의 의미를 검토하고 도처에 펼쳐진 삶의 임계들을 통찰하려 한다. 삶의 경험 그리고 문학, 영화, 건축, 미술, 역사를 아우르며 동아시아적 맥락을 포괄하는 ‘옥상’을 통찰한다.
부산 전시는 권도유 김경화 김해진 노순택 박항원 방정아 서평주 은주 이영현 전이영 작가가 참여했다. 전시는 3월 28일까지 열렸다.부산=김은경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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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미술사에 끼친 효산의 영향력을 조명하다

<효산 이광열–필묵의 흐름전> 열려

aj8전북도립미술관 (관장 이흥재)에서는 <효산 이광열-필묵의 흐름전>(2. 21~4.20)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시서화 삼절에 능했던 효산 이광열(1885~1966)이 한국 근현대미술사에 끼친 영향력을 명확히 밝히고 전북미술사에서의 위상을 정리하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1935년 호남지역 최초의 서예학원인 한묵회(翰墨會)를 결성하여 서화 발전에 힘썼던 효산은,《 전주부사(全州府史)》를 편찬해 전주 지역의 숨은 역사를 찾아 기록하고 많은 작품을 남기는 등 작가이자 교육자 그리고 향토사학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면서 항일정신을 불태운 그는 글씨와 그림 (사군자)분야에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다. 1927년과 1928년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작품을 출품하여 입선했으며, 1930년에는 일본 교토문예전에 입선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는 효산의 서예, 문인화, 전각, 사료 등 100여 점을 비롯해 효산의 필묵을 이어받은 두 아들인 인당 이영균과 윤당 이기봉의 작품 30여 점, 특별한 인연을 맺은 고암 이응노(1904~1989)와 묵로 이용우(1902~ 1952)의 작품 등 모두 160여 점이 선보였다.
눈길을 끄는 것은 효산과 교유한 묵로 이용우와 고암 이응노의 작품이 한 자리에 선보인다는 점이다. 효산은 17세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묵로와 절친하게 하게 지냈다. 효산은 묵로의 작품에 화제를 써주기도 하고 서로 평생을 의지하며 생활했던 인물이다. 고암은 1928년 젊은 나이에 고향을 떠나 전주에 7년간 거주하면서 ‘개척사’라는 간판집을 운영했다. 이 당시 고암은 효산의 문하에 들어가 서화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번 전시에 고암이 효산의 진갑을 기념하여 제작한 <묵죽> 작품이 최초로 공개되어 고암에게 효산이 어떠한 존재였는가를 짐작게 한다. 전주=최정환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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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장 대중화를 위한 미술박람회

<A&C Art Festival 2014> 열려

aj9한국미술평론지《 미술과 비평》이 주최하는 <A&C Art Festival 2014(이하 ACAF)>가 3월 15일부터 26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렸다. 문화체육관광부, 서울시,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등이 후원한 이번 행사는 한국 미술시장의 대중화, 작가와 컬렉터 간의 교류를 구축하고 역량 있는 작가들이 국제무대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취지로 올해 7회째를 맞이한다.
회화, 조각, 사진, 판화, 영상 미디어 작품을 망라하는 작가 공모를 통해 선정작가와 초대작가 총 120여 명이 참여해 한국 현대미술의 다양한 동시대성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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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맞서 짱돌을 쥐어라

프로젝트 스페이스 반야지에서 열린 여상희 개인전

aj10여상희의 7번째 개인전이 프로젝트 스페이스 반야지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는 제도와 권력, 이데올로기와 전쟁 등 수많은 폭력에 대항하는 분노와 저항 등을 주제로 한 작업들로 구성됐다. 강렬한 색감의 극사실적 유기체를 다루던 이전의 작품들은 최근 큐브 등의 미니멀한 형태와 무채색의 설치작품들로 변모하고 있었다. 주된 매체로 사용된 신문지는 지난해 부산시청에서 열린 <한일 리싸이클링 아트전>에서 선보인 바 있는데, 신문지를 물에 담가 불린 뒤 틀에 응고시킨 작업들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 전시에 새롭게 등장한 것은 짱돌이다. 신문지를 일일이 만두 빚듯 손으로 꾹꾹 눌러 빚고 매끈매끈하게 닳도록 여러번 바닥에 문질러 동그스름하고 단단한 돌과 같이 윤을 냈다. 짱돌은 때론 저항의 상징으로, 때론 바둑돌과 같이 정치적 사회적 의도의 역학적 점유와 영역 표시, 즉 땅 따먹기를 은유한다. 신문지 역시 물에 풀어지고 문자가 해체되는 현상으로 권력의 옹호자 언론에 대한 분노를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다. 바로 옆에 놓여있는 콘크리트 큐브들은 체스판을 상징하며 같은 맥락의 영역 찾기 게임을 상징하고 있었다.
한편, 전시장 입구에는 작은 원뿔, 큐브 등의 입체모형들을 방사형으로 쌓아올리고 가운데 동그란 등을 낮게 달아 마치 원자폭탄을 맞은 히로시마처럼 파괴, 소멸되고 재생되는 도시를 연상케 하는 작품을 설치, 보이지 않는 권력에 의한 도시파괴를 재현하였다. 이것은 또 다른 작은 방안에 있는, 책《 집단 기억의 파괴》와 함께 놓인, 건물이 분진을 일으키며 붕괴되는 모습의 드로잉이나 모형들과 같이, 한 집단의 정체성을 말살시키고 그 속에 담긴 가치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파괴자의 도시학살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들이다.
여상희 작가의 독립자생공간인 반야지의 이번 전시는 기획 의도부터 전시 형식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고정관념 비틀기를 표방했다. 전시기간을 ‘3월’로만 정해 전시시작과 마침의 날짜를 없앴으며, 홍보는 인쇄 매체없이 SNS만을 활용하는 자율적 운영을 시도했다. 작가로서 운영자로서 여상희의 작업 근간은 미술과 사회, 예술과 정치가 분리될 수 없다는 의지와 신념으로 읽힌다. 그것이 끊임없이 그 접점을 찾고자 하는 작가의 다음번 선택을 벌써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대전=이정윤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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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림 없는 인간과 풍경에 대한 탐구

이상국 화백 별세

aj11소시민의 생활상과 자연풍경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표현해 온 이상국 화백이 3월 5일 대장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67세. 7년 전 대장암 판정을 받은 고인은 투병 중에도 작품 활동에 매진했으며, 2011년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에 이어 지난해 가을에는 관훈동 나무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학교 회화과와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고인은 1970년부터 약 40여 년간 투박하지만 절제된 조형언어의 그림과 목판작업을 고집했다. 그의 작업의 주제는 ‘사람’과 사람을 둘러싼 ‘풍경’이었다. 삶의 현장에 다가가 <산동네>, <공장지대> <맹인 부부 가수> 등 암울한 시대상을 그려내 화단의 주목을 받았으며, <산>과 <나무> 시리즈 등 굵고 거친 선과 제한된 색을 통해 자연의 생동하는 기운을 신명나게 표현했다. 고인은 한때 민중미술운동에 참여한 바 있지만 미술사의 흐름이나 사조에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작품세계에 천착해 한국적 정서와 인간의 삶을 드러내는 데 집중한 점을 높게 평가받아 2011년 제12회 이인성미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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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정, 허수아비 철학

서양화가 남궁원 개인전

aj14‘허수아비’라는 인간 대리역을 통해 인간의 희로애락을 탐구한 서양화가 남궁원의 개인전 <2막1장-Fantasy of Husuabi>(3.19~27)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에서는 약 2년간 작업한 회화, 디지털아트, 설치미술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그의 ‘허수아비 철학’을 심도 있게 표현했다. 허수아비란, “허(虛)- 비움과 나눔, 수(守)-지킴, 아(我)-키움, 비(非)-세움”의 철학을 뜻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는 지난 44년간의 교직생활을 뒤로 한 채 40여 년간의 작품세계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작품세계를 선보이는 작가인생을 연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100여 점의 작품을 독도수호기금으로 전달함으로써 의미있는 나눔활동을 펼친다.
남궁원은 가천대학교 회화과 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남송미술관 관장을 맡고 있다. 2009 성남시문화상, 2010 문화예술대상 등을 수상했으며, 2013 황조근정훈장을 수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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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골목에 담긴 시간의 흔적

제이 안 개인전

aj12오랫동안 미국에 거주하면서 뉴욕을 비롯한 유럽 대도시 거리의 분위기를 독특한 색채감각으로 담아 온 사진가 제이 안의 5번째 개인전 <청계천- 기억될 시간들>이 3월 19일부터 2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렸다. 작가는 2004년부터 지금까지 청계천 공구상 골목의 독특한 정서와 풍경을 자신만의 색채감각으로 표현한 사진을 선보였다. 사진평론가 김승곤 순천대 교수는 “제이 안의 멈춰선 시간에는 빛과 그림자와 색채가 빚어내는 초현실적인 광경이 민감한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적인 조형과 화려한 색채를 가진 도심의 번화가가 아닌 청계천의 뒷골목을 누비면서 이제 곧 사라져 볼 수 없게 될 공구상 거리의 사람 냄새와 이야기를 오랜 세월 그곳에 켜켜이 쌓여서 높은 밀도로 응축된 시간의 흔적으로 담아냈다.
제이 안(안정희)은 숙명여대를 졸업하고 동양방송(TBC) 아나운서, 뉴욕 한미방송 아나운서를 했다. 현재 한국여성사진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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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장생도의 현대적 의미

라오미, <제1회 KOTRA 한류미술공모전> 대상 수상전 열어

aj16서양화가 라오미의 개인전 <행복의 진화>가 KOTRA 오픈갤러리에서 3월 5일부터 26일까지 열렸다. 작가는 지난해 4월 시행된 <제1회 KOTRA 한류미술공모전>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으며 이번 전시에는 수상작인 <십장생도 – 복 짓는 길>을 비롯해 십장생도를 다각적으로 해석한 회화작품 13점을 선보였다. 라오미는 “동양의 유토피아를 담은 십장생도를 통해 현대인이 갖는 불로장생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밝혔다. 전시장 전면에는 십장생과 십이지 모양의 전통 나무인형 ‘꼭두’ 150여 개로 채워진 <백수백복도 (百壽百福圖)> 아트월이 설치됐다. 작가가 ‘한류 문화체험 문화교실’을 두 차례 진행하면서 다문화가정 어린이들과 함께 만든 작품이다.
라오미는 추계예술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인도 뉴델리 한국문화원 오픈 아트월과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외벽에 작품을 설치한 바 있으며, ‘인터파크 아트월 프로젝트 NO.1’ 대상을 수상했다. 2013년부터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주관 아트키스트(ART KIST) 레지던시 1기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특별기획] 미술과 通한 사람들 – 미술은 이동한다_윤동희

미술은 이동한다

출판사 대표 윤동희

“회화는 이동한다.” 세계적인 출판사 리졸리(Rizzoli)에서 출간된 피터 도이그(Peter Doig) 화집에 서문을 쓴 리처드 쉬프(Richard Shiff, 오스틴 대학 모더니즘연구센터 디렉터)는 도이그의 그림을 이렇게 정의했다. 스코틀랜드, 트리니다드, 퀘벡, 온타리오에서 성장해 런던, 몬트리올, 트리니다드에서 작가 활동을 하고, 최근에도 런던과 캐나다를 오가며 작업하며 뒤셀도르프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화가의 지리적 ‘이동’이 만들어내는 일시적이면서도 자유롭게 수정되는 회화의 개념적·기술적 ‘이동’을 간파한 것이다. 쉬프에 따르면 ‘이동’에는 뿌리가 없고, 안정적이지 않으며 그에 따라 인내가 필요한 부정적인 측면과 변화하는 삶의 조건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이 한 몸을 이룬다고 한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전전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drifter’를 피터 도이그의 정체성으로 바라본 그의 시각은 미술 안팎을 오가는 나 같은 사람에게 적잖은 위안을 준다.
미술이라는 우연 그리고 운명 그저 막연했다. 밀레니엄 맞이로 세상이 분주하던 시절, 1999년 여름, 낯선 곳에 도착했다. 《 월간미술》. 전통을 자랑하는 미술전문지. 대학시절 애독했던 잡지의 ‘기자(editor)’. 그때까지 미술은 내 시간의 바깥에 있었다. 지하철 2호선 시청역 9번 출구를 나와 중앙일보 7층 사무실에 들어가는 길을 몇 번이나 두리번거렸다. 내가 있을 곳이 맞나, 하는 생각이 내내 이어졌다. 그래도 미술기자 생활은 즐거웠다. 가야 할 미술 현장도, 만나야 할 미술인들도, 써야 할 미술 담론도 넘쳐났다. 마치 미술기자를 하도록 각본이 짜인 듯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질문이 내 안에서 솟아났다. “다음엔 뭘 해야 하는 거지?” 사람들에게도 물었다. 공부를 더해 학교에 자리 잡거나, 큐레이터를 하거나, 미술평론가로 살아가거나……. 거짓말이라도 상관없으니 ‘다른’ 경로를 이야기해주는 이는 거의 없었다. 시대는 탈경계를 넘어 ‘초(超)’경계로 나아가는데 미술은 미술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내 삶은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디자인에 바탕을 두고 책을 만드는 사람. ‘안그라픽스’에서 다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대학원에서 시각문화를 공부한 직후였다. 실리콘밸리가 세상을 주도할 준비를 마쳤고, 로버트 라이시(부유한 노예), 다니엘 핑크(프리에이전트의 시대가 오고 있다), 세스 고딘(보랏빛 소가 온다), 말콤 글래드웰(티핑 포인트) 등의 ‘구루(Guru)’들이 새로운 삶과 노동, (기술)문화를 예견하고 있었다. 반면 미술은 젊은 작가 전성시대, 미술시장 전성시대, 한국형 팝아트 전성시대, 상업화랑 전성시대 등 난생 처음 찾아온 ‘호황’을 즐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미술은 진짜 미술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1960년대 이후 생산된 동시대미술은 그렇게 낡아가고 있었다. 그래도 미술로 향한 발길을 끊을 수 없었다. 미술대학에서 미술 이론을 강의하고, 광주비엔날레 학술지 편집위원을 병행하고, 젊은 작가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미술무크지.
《 debut(데뷰)》를 창간하며 버텼다.
장르의 경계, 분야의 이동 그리고 새로운 척도 미술기자 5년, 편집자 5년. 10년의 시간을 채우고 2007년 대형 출판사의 투자를 받아 ‘북노마드’라는 출판사를 만들어 현재까지 130여 종의 책을 만들었다. 연예인 책으로 ‘대박’도 쳐봤고, 달콤한 (여행) 에세이로 지속 가능한 출판을 가능케 했고, 조금씩 미술, 디자인, 건축 곁으로 다가갔다. 그사이 미술은 거품이 꺼진 미술시장을 빠져 나왔다. 많은 이가 위기라고 호들갑 떨었지만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 셈이다. 이제부터 다시 미술을 이야기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대신 미술이 아닌 것으로 미술을 이야기하자고 다짐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그래픽디자인, 기술문화, 인문학, 고전 등의 화두가 문화계를 구성하고 있었다. 디자인은 미학적 기능을 넘어 우리 시대의 중요한 틀을 형성했다. 이름만 들어도 믿음이 가는 ‘제너럴그래픽스(문장현), ‘워크룸’(김형진 박활성 이경수), ‘슬기와 민’ ‘김영나’ 등은 인문학과 예술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나아갈지를 아는 그래픽디자인의 ‘선수들’이었다. 그 곁에 전시 도록, 단행본 등의 형태로 문경원, 전준호, 정재호, 유근택, 이동기, 권오상, 문성식, 서용선, 김주현, 임근준, 정은영, 사사(44), 사무소(samuso), 플라토 등의 미술이 함께했다. ‘JOH&Company’의 조수용은 디자인을 플랫폼 삼아 기술문화(네이버), 건축(네이버 그린팩토리), 매거진(B), 외식문화(1호식)의 틀을 바꾸었다. 장르의 경계와 분야 사이의 이동은 새로운 장소와 척도에 적응하고 그것과 관계하게끔 영향을 미친다는 마리아 린드(Maria Lind, 스톡홀름 아트센터 관장)의 말이 옳았다는 것은 독립서점(북소사이어티, 유어마인드, 땡스북스, 가가린, 포스트 포에틱스)이라는 새로운 장소에 적응한 독립출판물들이 보여주었다. 이게 과연 책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호기심으로 바꾸어버리는 대안적 움직임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미술이 다른 영역과의 접점을 모색했던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알렉스 콜스가 《 디자인과 미술》에서 정리한 대로 19세기 말 비평가 존 러스킨이나 미술가이자 디자이너였던 윌리엄 모리스를 시작으로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운동(소련의 구축주의, 네덜란드의 데 스테일, 데사우 바우하우스 등) 그리고 장소-기능-미술 양식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호르헤 파르도, M/M, N55, 토비아스 레베르거, 슈퍼플렉스 등 미술을 디자인세계에 팔고, 디자인을 미술세계에 판매하는 예술가들의 실천으로 이어져왔다. 네덜란드 디자이너이자 비평가인 키스 도르스트가 강조한 것처럼 미술과 다른 영역 사이의 경계는 단지 미술로부터 향하는 것이 아니라 “넘나들 수 있는 것”이다. 어느 시대나 예술이라는 이름의 통섭-융합-협업은 있었다.
자율과 대안이라는 이름의 통섭-융합-협업 최근 나는 또 다른 ‘일’을 저질렀다. 자율적-대안적 미술학교를 꿈꾸며 ‘a. school(에이스쿨)’이라는 소규모 미술학교를 꾸렸다. 인문학적 관점으로 미술을 바라보는 아카데미를 진행하고, 미술대학(원) 학생들이 짝을 이루어 협업을 실천하는 ‘art duo(아트 듀오)’, 외부 전문가들을 모시고 학생들의 작업을 깊이 있게 점검하는 ‘critic(크리틱)’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 작가들에겐 기획전을 열어주고, 미술평론가가 인터뷰 또는 비평함으로써 미술무크지《 debut》에 소개하고 있다. 이제 시작인지라 a. school은 아직도 자유파행(自由爬行) 중이다. 하지만 미술이라는 드넓은 대지에서 이리저리 굽이치면서 흐를 그날을 기대하며 지속하려 한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미술이 현실이라는 실재와 대면할 수 있는지 보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미술과 접속 가능한 또 다른 공간을 만들기 위해 ‘조정해온(coordinating)’ 지난 시간의 출발과 끝은 결국 미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술의 영토에 머물 생각이 없다. 북노마드를 출판-디자인-미술-교육이 어우러진 ‘스튜디오’로 만들고 싶다. 물론 시대는 수상하기만 하다. 세상의 모든 분야는 ‘기업형’ 독과점에 넘어간 지 오래다. 하지만 내겐 그 사이를 비집고 자율적인 생존을 이어가는 각양각색의 스튜디오문화가 미술, 출판, 디자인의 대안이 될 것이라는 무모한 믿음이 있다. 나는 그 믿음을 믿으려 한다. 기술문화 잡지《 와이어드(wired)》를 창간한 케빈 켈리(Kevin Kelly)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궁극적인 디지털화로 인해 모든 분야가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바뀔 거라고 예견했다. 산업이든 예술이든 복제 가능한 것은 무료로 나눠주어야 생존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유연성과 분권화, 열린 마음일 것이다. 자신이 속한 특정 분야에서 전형성에 머물기보다 그것이 갖는 사회적・문화적 영향력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그의 말에 밑줄을 그어본다. 이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은 에드 루쉐는 “자신이 전문 사진가로 인식되기를 바라지 않으며,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 구성을 만들려고 애쓴다”고 고백했다. 루쉐는 그렇게 함으로써 “눈에 띄는 스타일”을 이루어냈다. 이제 예술은 고유한 목적을 최대한 달성할 수 있는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요소들을 배치해야 한다. 내용보다 인기와 상업성으로 일관하는 미술, 출판, 디자인, 기술에 대한 것이 아니라 (미술의, 출판의, 디자인의, 기술의) ‘문화’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늘 의심해야 한다. 이것은 미술이 아니라고, 이것은 출판이 아니라고, 이것은 디자인이 아니라고 말이다. ●

동희는 연세대 영상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다. 월간미술, 안그라픽스, 광주비엔날레 학술지 《눈(noon)》 편집위원으로 일했다. 세종대, 성신여대, 이화여대 대학원, 서울대 대학원, 인천가톨릭대, 동국대 대학원 등에서 미술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 북노마드 대표, 미술학교 a. school(에이스쿨) 대표, 세종대 회화과 겸임교수로 일하고 있다.

[특별기획] 미술과 通한 사람들 – 옛 그림은 나의 친구이자 멘토_손태호

옛 그림은 나의 친구이자 멘토

여행사 대표 손태호

꾸벅. 고개가 살짝 꺾이다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지만 교실 화면에 떠있는 사진자료는 이내 초점이 흐려지고 만다. 점심시간 이후 오후 수업시간은 항상 이 모양이다. 졸음을 참으려 해도 자꾸 고개가 숙여지곤 한다. “이게 무슨 사서 고생이람” 눈을 비비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려본다. 40대 중반이 넘은 나이에 다른 아빠들은 자녀 교육문제로 고민할 나이에 강의실에서 앉아 있는 내 모습이 지금도 그리 익숙하지만은 않다. 어린애들 손잡고 사적지나 문화재를 재미삼아 보러 다니던 내가 점점 옛 그림에 빠진 것은 30대 후반. 미술책에서만 보던 옛 그림을 간송미술관에서 직접 보면서 느낀 감동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 후 시간만 허락되면 국립중앙박물관과 간송, 호림, 호암미술관 가는 것이 취미였고 옛 그림 전시회가 있다는 소식만 들으면 지방까지 달려가 관람했으며 인사동, 북촌, 동대문, 장안동 고서화점들을 찾아가 그림 감상하러 왔다고 소장품을 보여달라는 뻔뻔함도 그 당시 새로 발견한 나의 모습이었다. 그림을 감상하며 너무 감동스러워 눈이 빨개지기도 했고 화가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서 먹먹하기도 했으며 그런 감정들은 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곤 했다. 지쳤을 땐 어깨를 툭 쳐주는 친구가 되기도 했고 소심할 때는 같이 용기 내서 앞으로 걸어가자고 손을 잡아주는 동료가 되주기도 했다. 게으르고 나태할 때는 회초리 들고 호되게 나무라는 선생이기도 했으며 온 세상이 회색으로만 보일 때는 손가락으로 멀리 아름다운 곳을 가리켜주는 멘토이기도 했다. 어느새 옛 그림은 나에게 그런 의미가 되었다.
그렇게 혼자 좋아 그림을 보러 다니면서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던 스스로의 안목 부족을 절감하고 보다 전문적인 시각과 이론적 토대의 필요성을 느껴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낮에는 직장 다니고 밤에 학교를 가는 야간 대학원이었지만 새로운 그 무엇을 배운다는 설레임에 피곤한 줄도 모르고 학교를 다녔다. 딱 반은 즐겁고 반은 힘겨웠던 석사과정 중 그림을 통해 느낀 감동을 한 편 한 편 글로 정리하여 블로그에서 벗들과 소통했던 글들이 어느새 제법 양이 쌓여 책으로 묶여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내 이름과 사진이 인쇄된 책을 받아들고 내가 너무 전문가 행세를 한 것 같아 조금은 쑥스럽기도 했지만 그동안 그림을 보며 웃고 울고 감동스러웠던 순간들을 정리했다는 뿌듯함도 느꼈다. 책을 출간한 후 여러 매체와 글로 인연을 맺기도 했고 저자와의 만남 형식으로 강연을 통해 독자들과 직접 소통하기도 하였다. 나로서는 참으로 예상치 못했던 도전이자 새로운 경험이었다.
거기에 이젠 한술 더 떠 지금은 미술학과 박사과정에 도전 중이다. 굳이 박사과정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고민도 많이 했지만 석사 때 공부했던 불교조각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으니 미혹되지 않아야 할 나이라는 불혹이란 말이 참으로 무색하다. 일 년에 한 번도 미술전시회를 가지 않았던 30대 중반 시절부터 생각해보면 참으로 엉뚱한 길에서 엉뚱한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애초에 여기까지 오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고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인생은 알 수 없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물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학교를 가지 않는 날에는 본업인 여행사를 운영하면서 고객들에게 세계 곳곳을 소개하며 그곳의 문화와 풍물에 대해 설명하고 상담을 한다. 여행업이 실제 출국하기 전까지는 말로 떠드는 서비스업이다 보니 늘 이런저런 일로 스트레스가 쌓이곤 한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가 지근거리고 속상한 마음이 있어도 힘겹게 찾아간 심산유곡에 자리한 사찰에서 너무나 잘생긴 불상을 만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옛 그림 전시회에서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그림 한 점을 보면 나도 모르게 머리가 맑아지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니 어찌 하겠는가. 늦깎이 학교생활도 학기가 시작되기 전 어마어마한 학비 고지서를 보며 손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제외하면 좋아하는 것을 공부하고 같은 관심사의 동료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 일인가?
사람마다 좋아하는 취미와 여가활동이 다 있겠지만 그중에서 그림과 조각, 즉 미술을 좋아하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생각해본 적이 있다. 여행과 운동은 좋아해서 여행을 다니거나 여러 운동을 취미로 여기는 것에 충분히 공감하지만 동, 식물을 가꾸고 키우거나 장난감을 모은다거나 쇼핑이 취미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과연 즐거울까 의심스러운 생각이 든다. 사람마다 다 취향이 다른 법이니 나에게 안 맞다고 해서 안 좋다는 건 아니고 다만 내 취향이 아니라는 거다.
오늘도 난 사무실에 앉아 이런저런 일로 씨름하고 있다. 조각과 그림을 감상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딱딱한 일을 반복한다. 여행업이란 게 고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일이란 사명감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가끔은 언제까지 일을 해야 하나 하는 자조감이 들기도 한다. 역시 즐기면서 하는 것과 해야 하기에 하는 일은 하늘과 땅만큼 느낌이 다르다. 하지만 조선후기 화가 조영석과 김홍도의 풍속화에 등장하는 일하는 자의 모습에 고단함만 있는 그림이 어디 있는가? 윤두서와 윤용의 <나물 캐는 여인>에서 삶에 억눌린 기색이 어디에 있는가? 모두 힘겨운 노동 속에서도 땀의 신성함과 노동의 즐거움도 함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역시 옛 그림은 여전히 나에게 멘토이자 선생이다. 앞으로도 그런 옛 그림과 함께 잘 살아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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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호는 남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을 찾다가 여행사, 항공사 등에서 근무했고 현재 인도 서역 전문 여행사를 경영하고 있다. 2005년 간송미술관 봄 전시에서 단원의 〈황묘농접도(黃猫弄蝶圖)〉를 보고 우리그림에 푹 빠져들었다. 40대에 들어와 불교미술로 관심사가 넓어져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에 입학해 2011년 조선후기 조각승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다. 불교미술과 조선회화를 쉽게 풀이하는 글을 쓰고 있다.
블로그: blog. daum.net/thson68

[특별기획] 미술과 通한 사람들 – 감동으로 하나 되는 예술_권순훤

감동으로 하나 되는 예술

피아니스트 권순훤

피아노를 전공한 내가 미술가와 미술작품을 다루는 책을 쓰게 되기까지,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 있다. 2007년 12월, 런던의 왕립음악학교에 시험을 치르러 간 나는 귀국 전 파리를 방문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미술관 해설을 담당하는 ‘이용규’란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엔 그가 하는 일에 대한 관심보다 파리를 속속들이 아는 친구와 도시의 정취를 한껏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술관을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친구의 말에 오르세 미술관을 방문했다.
전문적인 식견이 있는 것도 아니니 ‘과연 이게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하는 막연한 궁금증으로 작품을 보았다. 작품 감상 방법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르세 미술관에서 마네의 <올랭피아>에 대한 친구의 설명을 듣고 그림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친구는 어떤 직업의 주인공을 그렸는지, 침대 위의 고양이가 내포하는 의미는 무엇인지, 그림 속 주인공의 시선이 누구를 향해 있는지, 그림에 담긴 사회적 분위기와 비판적 어조의 상징 등을 흥미진진하게 설명해 주었다. 또한 고흐의 그림에 보이는 강렬한 붓터치는 고흐의 정신적인 압박감과 심신의 질환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며, 르누아르 그림의 모델은 당시 르누아르의 애인이자, 로트렉과 다른 거장의 애인이기도 했던 누구였다는 점 등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무릎을 탁 쳤다. 클래식 음악도 이와 유사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이 있는데, 이를 공연에서 이야기하면 어떨까? 이 여행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진행하게 된 공연이 ‘미술관에 간 피아니스트’였다. 훌륭한 프로듀서들과 함께 작업한 이 공연은 유료관객 매진이라는 즐거운 기록을 남기며 무척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미술관에서 얻은 감동이 클래식 공연장에서도 이어지는 모습을 보며, 한발 더 나아가서 이 두 가지를 통섭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이 생각을 실천으로 옮긴 저서가 얼마 전 출간된《 나는 클림트를 보면 베토벤이 들린다》다.
spec5왜 클림트를 보면 베토벤이 들릴까. 나는 이 두 예술가가 가진 ‘미완의 사랑’에서 힌트를 얻었다. 클림트와 에밀리 플뢰게, 베토벤과 줄리에타 귀차르디에. 클림트는 동생의 처형이던 에밀리 플뢰게와의 이룰 수 없던 사랑을 <키스>라는 작품으로 완성했다. 이 그림은 두 남녀가 절벽에서 불안하게 키스하는 장면을 담았는데 남성은 여성의 입술에 입을 맞추지 못하고 볼에 키스를 하며, 여성 역시 불안한 표정으로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두 사람이 처한 당시의 상황이 보이는 듯했다. 물론 보는 이에 따라 이 작품을 다르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감상자로서 예술작품을 느끼는 데 ‘감동하는 마음’이 중요하기에 감상의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한편 베토벤의 사랑 이야기와 그가 작곡한 <월광 소나타>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베토벤이 당시 만났던 명문가의 소녀인 줄리에타 귀차르디에와의 사랑의 감정이 녹아있는 곡으로 베토벤은 그 소녀에게 이 곡을 헌정하기도 했다. 베토벤은 음악가로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지만, 당시 음악가라는 직업의 사회적인 위상이 귀족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기에는 힘든 위치였다. 월광곡에는 베토벤 스스로 명문가의 자제인 줄리에타와 정말로 결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유명한 피아니스트였음에도 경제적인 풍요, 사회적인 배경도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하여 고민하는 여러 감정이 녹아 있다. 특히 1악장에는 이러한 베토벤의 암울한 정신적 고뇌가 녹아 있다. 그리고 이 곡이 완성될 때쯤 줄리에타 귀차르디에는 집안의 뜻을 거역하지 못하여 다른 귀족과 결혼을 했다. 베토벤도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3악장은 그 분노를 담아 작곡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3악장은, 과연 이 악장에 <월광>이라는 제목이 가당키나 한가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모든 예술은 ‘감동’이라는 조그마한 ‘점’이 되는 곳에서 최후에 조우한다고 말하곤 한다. 미술, 음악, 영화, 공연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의 최종 목표는 ‘감동’이다. 또한 그런 ‘감동’ 뒤에는 그 작품을 만들어낸 예술가들의 삶이 녹아들어 있다. 나는 작가의 삶과 시대적인 배경을 통해, 새로운 재미와 감동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미술 속 이야기를 들으며 음악가의 삶을 떠올리고 음악인으로서 음악을 다양한 각도로 이해한 듯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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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훤은 피아니스트, 네오무지카 대표, 서울종합예술학교 겸임교수로 그의 이름 뒤에는 많은 타이틀이 따른다. 가수 보아의 큰오빠도 그의 타이틀 중 하나. 선화예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 전공으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영국왕립음악원에 합격했으나 전문 피아니스트가 되기보다는 클래식 음악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길을 선택했다. 다양한 장르 간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