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최은경_어스름

contents 2014.2. review | 최은경_어스름
최은경의 작업이 달라졌다. 약간은 어설픈 듯하지만, 열심히 그린 흔적이 매력인 최은경의 회화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변화는 좋게 보면 기회이고, 반대로 생각하면, 기존의 장점이 약해졌다 할수도 있다. 최근에 열린 작가의 개인전에서 보여준 신작들은 미세하지만,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었다.
나는 최은경의 작업을 예전부터 관심 있게 지켜보았고, 변화의 과정을 잘 아는 편에 속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보여준 정물과 풍경화들, 2000년대 중반에 글자가 있는 실내 풍경, 2000년대 후반에 부모님의 귀향에 관한 서사가 있는 관청리 풍경들에서 보여주었던 한결같은 테마는 후미진 장소에 대한 애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너무나도 평범한 이력의 소유자인 작가 자신에 대한 나르시시즘이자 자기 고백과도 연관되어 있는 듯하다.
그것에 대한 연민과 에너지가 그를 끊임없이 그림 그리게 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작가는 그런 십 수년의 세월을 ‘오직 예수’가 아닌, ‘오직 회화’ 외길의 삶을 살아왔다. 지금부터 내가 얘기할 최은경 작품의 변화는 일반인은 이해가 안 될지도 모른다. 난 요즘에 ‘감성변태’ 라는 말이 매우 흥미롭다. 감성의 미묘한 변화에 반응하고, 움직일 수 있는 상태를 말하는데, 오감이 열려 있다고 해도 유사한 표현이다. 그런, 열린 감각으로 애정을 가지고 보면, 최은경의 회화는 중대한 변곡점 앞을 마주서 있다.
여태까지 최은경 회화의 차별성은 흉내 낼 수 없는 2%부족한 묘사력과 그 표현력에 부합된 감성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의 감성은 애잔한 느낌의 추억과 관련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바라보고 애정을 갖는 대상들이 그림으로 표현된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신작들에서 다른 느낌이 감지되고 있다. 뭔가 부족해서 매력이었던 묘사력에 테크닉이 붙었고, 그로 인해 애잔한 감성이 세련미로 바뀌고 있었다. 특히, 하늘과 같은 여백을 표현함에 있어 놀라울 정도의 세련미와 테크닉을 보여준다. 골목길의 야경을 그린 작품을 소개하자면, 야경을 소재로 회화작품을 그리는 작가가 적지 않게 있다. 그중에서 가장 원근감이 약하고, 입체감도 부족하고 색채도 애매하지만, 음산한 저녁 하늘의 표현이 최고였고, 야경 작품들 중에 가장 매력적인 작품인 것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은경의 회화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 확실히 열심히 하고 많이 그리면 느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표현력이 좋아졌다고 마냥 좋아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최은경 회화의 매력이 반감되면서까지 좋아져서 되나 라는 의구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변화의 과정으로 작가는 감성변태자의 마음가짐으로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 선택은 작가의 몫이다. 어느 방향으로 가든, 애잔한 감성과 시선은 유지하되, 부족한 느낌의 묘사력에서 조금 더 실체에 접근한다는 마음으로 한 단계 올라서길 기대한다. 작가 앞에는 기회와 위기가 동시에 도래해 있다. 한국미술계에서 10년 이상을 너무나도 잘 그리는 화가들 사이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고 남다른 존재감을 과시해왔다. 앞으로의 10년을 어떻게 구상하고 나아갈지에 관해 자신과 대화할 시간이다. 이것을 기회로 삼아 작품성과 대중성을 아우르는 화가로 거듭나길 바란다.
손성진・소마미술관 큐레이터

최은경 <실개천의 여름>(사진 왼쪽) 캔버스에 유채 130×162cm 2012
<골목 1>(사진 오른쪽) 캔버스에 유채 130×162cm 2013

[전시프리뷰] 프리뷰

contents 2014.2. preview | 전시프리뷰
온(溫)·기(技)
문화역서울284 2.11~3.2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관하는 공예페
스티발. ‘손’에서 시작되어 작품으로 마무리되는 순간과 과정 속에 담긴 작가의 직업관과 시선이 가지는 온기에 주목한다. 또한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이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가지는 화두, 담론 등을 두루 살피며 디자인과 순수미술사이에 있던 공예의 영역에 대해 살펴보고자 기획되었다. 이번 전시는 작가, 공예전문갤러리, 장인, 디자이너, 건축가 등 100여명이 참여하는 공예, 회화, 영상,설치, 퍼포먼스 등의 복합장르로 구성된다. 전시장 1층에서는 한국공예의 현재를 보여주고. 2층은 공예를 기반으로 한 디자인과 현대 예술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구성된다. 이외에도 다양한 생활공예 워크숍, 그리고 시연프로그램 등 체험위주의 전시 및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수작업을 통해 예술 미학을 끌어낸 작품을 통해 일상의 공예적 물건과 행위를 살펴본다 .
신상호작
사진과 미디어 : 새벽 4시
서울시립미술관 1.28~3.23
<사진과 미디어 : 새벽 4시>는 서울시립미술관이 선보이는 사진전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전국 4개 국공립 미술관에서 릴레이 형식으로 개최하는 “미술관 속 사진페스티벌”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이번 전시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 속에서 다중적 정체성을 갖게 된 현대인의 자아를 주제로 다중적인 자아를 가지고 현실과 가상의 시공간을 유영하는 현대인들, 그리고 그를 둘러싼 미디어 환경이 서로 부딪히며 작용하는 현실을 반영하는 다양한 사진 및 영상, 설치작품들로 구성된다. 강영민 구상모 박종근 박찬민 백승우 원서용 이문호 이상현 장태원 정희승 조이경 차지량 하태범 한성필 작가 참여한다. 사진작가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사진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작가들의 영상 및 설치작업, 현직 사진기자의 작업, 그리고 SNS에 업로드 되는 사진을 이용한 참여형 영상 설치작업까지 포함한다.
박종근 작
아트선재센터 2.15~3.30
오후 여섯시부터 여덟시까지 그동안전시장으로 사용된 적이 없거나 관람객에게 공개되지 않은 미술관 공간을 개방하는 프로젝트형 전시. 로와정 리경 이악 이원우 염중호가 참여해 미술관 관람에 대한 통상적인 인식을 깬다.
리경 작
종이에 실린 현대작가의 예술혼
갤러리 현대 2.5~3.9
한국 현대미술사의 흐름을 주도했던 작가들의 종이작품을 집중 조명한다. 예술의 영역이 점차 확장되어 영상,설치작업이 성행하며 다양한 예술가치를 생성하는 시대에 회화의 시작점이 되었던 종이에 주목해 예술정신을 되짚어본다.
이중섭 작
조기주
금호미술관 2.27~3.9
원’이라는 조형 어법을 기반으로 융합, 통섭을 이야기하는 조기주의 개인전. 이번 전시에서는 1998년부터 2014년까지의 작업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며 시멘트, 흑연, 구리 등의 재료로 새로운 시도를 한 신작들도 소개한다.
이타미 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1.28~7.27
재일동포 건축가 이타미 준의 건축과 예술의 세계를 살펴보기 위해 기획되었으며 미술관에 기증된 자료와 유족 소장품으로 구성되었다. 일본에서 활동한 1970년대 작업부터 말년의 제주도 프로젝트까지 40여 년에 걸친 그의 작업세계를 아우른다.
OCI CRE8TIVE REPORT
OCI미술관 1.23~2.23
OCI미술관 창작스튜디오 3기 선정작가 권오신 김유정 김희연 박미경 박종호 이주은 조문희 허용성의 입주작가 보고전. 작가 8인의 회화, 판화, 입체, 미디어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임으로써 창의적인 담론과 새로운 소통을 형성한다.
조문희 작
미쓰-플레이
인사미술공간 1.24~2.28
전시 제목 미쓰-플레이는 miscommunication과 play의 합성어로 오차에서 창의적인 움직임을 발견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 전시는 KKHH 장현준 강문식이 참여해 다양한 방법으로 ‘오차’를 재조명한다.
KKHH 작
Paint of View
갤러리 스케이프 1.22~3.9
이혜승 히데아쓰시바 제니조 최수정 에테르가 참여해 동시대회화에 대한 자신들의 비전을 펼친다.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적 어법의 계승과 새로운 시도들 사이에서 동시대회화의 풍경을 살펴보고 앞으로의 전망을 선보인다.
최수정 작
경계와 탈경계
포항시립미술관 1.16~3.23
동시대의 문제들을 예술적 언어로 다룸으로써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려는 기획전이다. 다양한 경계 및 탈경계 현상에 주목하는 작가 오인환 이완 이태희 임민욱 전준호 하원식이 참여해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태희 작
조형섭
오픈스페이스 배 1.25~2.23
작가는 평범한 일상의 경험에서 획득하는 작품의 모티프에 새로운 가공을 더해 익숙함으로부터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사물이나 정해진 기능을 수행하는 장치의 역할에 대해 발상의 전환 기회를 제공한다.
지용호
가나아트센터 1.23~2.16
이라는 타이틀로 열리는 지용호의 개인전. 작가는 근원 또는 기원의 의미로, 재현된 것이 아닌 ‘그것자체’라는 의미에 초점을 맞추고 단순한 재현에서 벗어나 조각의 본질적인 특성에 초점을 맞춘 근본적인 미적 가치를 표현한다.
스칼렛 호프트 그라플랜드
한미사진미술관 2.22~4.19
풍경에 대한 독창적인 접근으로 주목받고 있는 네덜란드 출신 스칼렛 호프트 그라플랜드의 개인전. 한국에서 처음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로 2004년부터 세계 각국의 오지를 여행하며 진행해온 결과물을 41점의 사진 작품을 통해 선보인다.
미래가 끝났을 때
하이트컬렉션 2.7~5.10
김홍석 박찬경 안규철 오인환 정서영 정연두가 추천한 11명(팀)의 작가 강정석 김다움 김동규 김실비 로와정 서보경 이병수 이양정아 정승일 최윤 함정식이 참여해 사회의 일방적인 시선으로 젊은 세대를 규정짓는 현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강정석 작
박노해
세종문화회관 2.5~3.3
티베트, 파키스탄, 인도 등 6개국을 다니며 기록한 7만 여 컷의 사진 중 120여 컷을 선별했다. 각국의 비슷하고도 다른 모습을 아시아라는 공통 속성으로 묶어낸 사진에서 흑백 아날로그 인화를 통한 깊이감과 대상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이정배 작
배종헌
갤러리 분도 2.12~3.8
자연적 체험과 사회적 체험을 특유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작업의 범주를 넓혀가는 배종헌의 개인전. 대기오염으로 도시에서 예전처럼 볼 수 없는 별들에 대한 참신한 관점을 제시하는 이번 전시는 미디어 영상과 사진, 설치 등으로 구성된다.
그래픽 노블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1.7~2.20
한국, 중국, 일본의 그래픽 노블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개성과 시각, 그리고 목적의 차이를 통해 만화라는 흥미로운 대중 문화가 미술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되짚어본다. 이동기 쑨쉰 고이치에노모토가 참여해 작품 30여 점을 선보인다.
고이치에노모토 작
그리 넓지도 않은 세상
앤드앤갤러리 2.4~22
사진전문 화랑 킵스갤러리가 앤드앤갤러리라는 이름으로 재개관하며 기념전을 마련했다. 알렉산더포포빅 루카코서 이길렬이 참여하해 사진, 회화, 드로잉, 설치에 이르는 다양한 매체와 기법을 바탕으로 장르의 경계를 허문다.
알렉산더 포포빅 작
쟝 마리 해슬리
고려대학교박물관 2.25~3.30 
고려대학교박물관과 금산갤러리의 공동기획으로 뉴욕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프랑스 출신의 추상표현주의 작가 쟝 마리 해슬리의 개인전. 작가의 최근작과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는 1980년대 이후 작품 등 총 70여점을 소개한다
고남수
갤러리 룩스 2.3~11
제주도의 돌담과 돌을 흑백사진으로 담았다. 작가는 제주의 조형적인 면을 사진에 담으며 예술의 목적이 심미적인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 그리고 그 속에서 자기의 자리를 찾아내는 방법에 있음을 사진을 통해 들려준다.
보이지않는 사람들
서울시립미술관 2.7~3.2
서울시립미술관, 유엔난민기구, 제일기획이 공동 기획하여 국내외 난민에 대한 인식을 제고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이번 전시는 국내 거주난민들과 아프리카 난민 캠프를 찍은 영상 3D 미니어처를 제작해 미술관에 설치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서혜영
갤러리 조선 2.12~3.5
사물과 환경의 관계에 주목하는 서혜영의 개인전.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작품이 전시장이라는 특별한 장소를 벗어나 새로운 공간에서 하나의 소장품, 사물, 가구, 소품 역할을
대신하게 됐을 때 공간과 작품의 관계를 조명한다.
Han Q
아트스페이스 휴 2.7~3.7
작가와 비평가, 전시기획자로 활동해온 윤진섭의 개인전. 퍼포먼스 활동을 하며 쓰던 ‘왕치’라는 예명을 버리고 ‘Han Q’라는 예명을 내걸었다. 예명을 끊임없이 바꾸는 것은 아무리 미분화해도 찾아지지 않는 자아 정체성을 탐색한다는 상징성을 지닌다.
박문희
송은아트큐브 1.16~2.22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재료를 조합해동물이나 인간, 자연의 이미지를 만들어 실재와 이미지의 편차와 간격을 생성한다. 작가는 일상에서 형성된 의미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 새로운 이미지의 간극 속에서 새로운 의미와 이야기를 찾는다
미술, 人文의 길
갤러리 이배 1.16~2.15
인간의 역사, 종교, 철학 등에 전반적으로 관여해온 인문학을 미술과 연결한 전시. 잊혀져가는 인문의 정신을 미술을 통해 다시 고찰해 보고자기획되었다. 이우림, 이승희의 작품을 전시해 미술감상을 통한 인문학적 성찰의 의미를 되새긴다
이승희 작
마이클 웨슬리
더컬럼스갤러리 1.22~2.28
장(長)노출기법을 통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하는 대상을 사진으로 풀어내는 작가 마이클 웨슬리의 개인전. 이번 전시에서는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특유의 기법으로 촬영해 눈에 보이지 않는 음악을 시각화한 사진작품을 선보인다.
그리다 & 느끼다
갤러리 JJ 2.18~3.10
장르가 세분화되고 소재가 다채로워지면서 예술의 영역이 확장되는 현대에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묻는다. 이번 전시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되며 사물을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에 대한 차이를 사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
문주호 작
유민아
갤러리 가비 2.19~26 
돌에 대한 감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놓이다>라는 말로 전시를 풀어간다. 작가는 돌의 흥미로운 형성 과정을 탐구해 시각화하는데 돌의 물성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극히 주관적인 작가의 해석이 더해져 구체화된 새로운 이미지의 돌로 표현된다.
시·공
갤러리 엘비스 2.13~3.8
공간을 모티프로 독특한 작업세계를 구축해나가는 권인경, 권오신, 전채강 작가의 단체전. 시야에 잡히는 공간이라는 한정된 범위를 넘어 다양한 차원을 지닌 가능성의 공간을 제시함으로써 시공간의 한계성을 극복하고자 한다.
권오신 작
강계정
롯데호텔갤러리 1.11~2.27 
대나무라는 대상을 통해 현대 산수와 전통적 문인화의 접점을 찾는 강계정의 개인전. 이번 전시는 롯데갤러리와 리서울갤러리가 공동기획한 전시로 전통 동양화기법인 적묵법과 적채법으로 표현한 대나무 숲속 풍경을 선보인다.
다시, 그리기
갤러리3 2.12~3.7
시각예술의 출발이자 과정이고 결과이기도 한 드로잉의 매력을 보여주는 전시로 기획.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작업하고 있는 김호득 나점수 박미화 서용선 이수종 정상곤 정하응 존포일 허윤희의 드로잉작업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
나점수 작
김동현
스페이스캔 1.27~2.20
미디어의 범람과 무분별한 소비문화풍토 속에서 젊은 세대들의 정체성은 바르게 형성되고 있을까? 작가는 젊은 세대들의 자아 형성과정을 살피며 표면과 내면의 이질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표류하는 젊은 세대의 모습을 특유의 색채로 그려낸다.
Fallin’ 두 번째…
토포하우스 2.19~25
진정한 자아에 대해 고민하는 작가 강동균 김쥴리정인 박기덕 장명균 최승민 최지영 한아림 호리나오코 황수정 황재영이 몰입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아 정체성을 구성하는 환경 속에서 물아일체의 순간에 주목한 작업을 선보인다.
한아림 작
Show House
G_Exhibition 1.22~5.13 
사물과 공간, 사람의 관계를 미술적 관점으로 플어내는 김정섭 위성범 장민경이 참여하는 G_Exhibition의 개관전. 조형성과 기능주의적 특성을 살린 작가들의 작품은 하나의 오브제로서 현대미술에 새로운 구조적 해법을 제시한다.
임만혁
장은선갤러리 2.5~22 
전통이나 외래 사조에 얽매이지않고 자유로운 사유에 따라 작업을 진행하는 임만혁의 개인전. 작가는 동서양화를 아우르는 재료와 소재의 사용으로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구축하며 전통적 회화를 열린 사고를 통해 받아들이는 시각을 제시한다.
김인옥
해운대아트센터 1.17~2.23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발묵을 통해 표현하는 작가 김인옥의 개인전. 관계의 연장선에서 이념을 조형적으로 나타낼 방법을 탐구해온 작가는 발묵을 통해 자연과의 합일이라는 전통회화의 기본적인 정서를 동시대적으로 표현한다.
ICEBREACKER
혜화아트센터 2.7~19 
쇄빙선 또는 긴장, 어색함을 풀어준다는 뜻을 가진 ICEBREACKER를 주제로 한 전시. 이혜승 서화숙 노준구 송재호가 자신의 경험이 담긴 노르웨이 이야기를 서로 다른 시선으로 풀어내 각자의 인식에 자리한 선입견에 대해 고찰한다 .
이혜승 작
2014 꽃피는 부산항
미광화랑 1.17~2.17
부산 근대미술 첫 세대와 두 번째 세대 작가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는 전시. 부산지역의 향토작가 23인의 작픔으로 구성된 이번전시는 세대를 뛰어넘는 예술의 본질을 되새기며 예술의 근본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김영덕 작
이현동
갤러리 예담 2.5~11
작가는 자연 속에 나타나는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해 흑백사진에 담아낸다. 작가는 변화무쌍한 날씨와 고된 상황 속에서 마주한 아름다운 자연현상을 통해 일상에서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에 주목한다.
남군석
가나아트 스페이스 2.12~18 
거칠고 마른 붓을 사용해 자신만의 필법을 만들어나가는 남군석의 개인전. 작가는 현장의 느낌과 직접적인 체험을 중시하며 일상에서 대면하는 자연의 인상을 수묵으로 표현한다. 거친 붓의 자취에서 자연에 대한 작가의 독특한 시선이 읽을 수 있다
이소영
평화화랑 2.5~11
민화를 재해석하고 현 시대의 욕망을 투명의자에 빗대어 표현하는 이소영의 개인전. 이번 전시는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면서 급속하게 변해가는 세계에 대응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형상화한 평면과 드로잉, 설치 등으로 구성된다.
윤병주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7~28
윌링앤딜링의 신진작가 지원 프로그램 ‘PT & Critic’의 선정작가 윤병주의 개인전. 작가는 우주의 ‘화성’ 탐사와 경기도 ‘화성’의 개발을 결부시켜 인류의 새로운 생존지역과 도시개발지역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장소의 정체성을 탐구한다.

[특별기획] NEW FACE 100

contents 2014.02. Special Feature | NEW FACE 100

[특별기획] 이 척박한 현실의 표층으로서의 젊은 작가들

contents 2013.11. Special Feature | 이 척박한 현실의 표층으로서의 젊은 작가들
이번호 《월간미술》에서는 국내에서 활동 중인 큐레이터 50인에게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의 작가를 각 4명씩
추천받아 그중에서 100명을 추려 소개한다. 미술대학과 대학원, 혹은 유학을 마치고 갓 돌아와 활동하는 연배
의 작가들인 셈이다. 아마 미술계에서 가장 젊고 신선한 얼굴들일 것이다. 물론 큐레이터들의 시각과 미술에 대한 입
장, 그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작가의 기준의 편차는 무척 클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추천을 받은 작가가 곧바로 한국
젊은 세대를 대표한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한편으로는 작가들을 추천하고 전시를 기획하는 주체들의 시각이 어
떠한지, 또한 그들이 바라보는 젊은 작가들은 누구인지를 알아보는 데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자료가 될 것이다. 사실
오늘날에는 이전과 달리 전시기획자, 평론가들이 거의 모든 공모전, 지원제도, 각종 심사에 빈번하게 참여하면서 작
가를 선정하고 그들을 모아 전시를 기획하는 주체들이기에 이들의 시선,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 따라서 여기
에는 전문성과 안목, 그리고 나름의 윤리성이 요구된다. 나는 무엇보다도 작업을 잘 분별해서 보는 안목이 너무도 중
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특집은 다양한 작업을 하는 젊은 작가들을 한눈에 보여주면서 동시대 젊은 작가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살펴보
고자 하는 취지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사실 오늘날 우리 미술계는 끊임없이 젊은 작가들을 주목해왔고 이들을 선
별해내면서 작업 기회를 부여하거나 언론에 소개하는 한편 각종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여러 종류의 지원제도를 통해
도움을 부여해왔다고 본다. 이전과 비교해서 현재 젊은 작가들의 작업환경은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편이다. 지금은
학교를 졸업한 이후 다양한 지원제도에 힘입어 곧바로 화단에 진출하거나 여러 전시, 아트페어 등에 참여하기가 용
이해진 측면도 있고 미술시장이 젊은 작가, 새로운 상품을 열심히 찾아내고 있기에 이미 20대 후반의 나이에도 왕성
한 활동을 하는 작가들을 자주 본다. 그런데 그것이 긍정적이냐 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이 문제다. 지원제도 등
에 맞춰 작품과 활동이 제약되거나 그 틀에 순종적인 작업이 양산되는가 하면 시장의 상품성에 과도하게 노출되는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작업의 내용도 획일적인가 하면 특정 스타일들이 양산되고 미술에 대한
인식의 협소함이나 피상적이고 상투적인 주제의식 등도 빈번하게 접한다. 작업환경이란 것도 좀 더 깊이 들어가 보
면 이 나라에서의 삶이 결코 녹록지 않기에 젊은 작가들의 작업환경이 이전과 비교해 좋다고만 말하기도 어렵다. 작
업 또한 이전과 비교해 좋아졌냐 하면(비교 자체도 어려운 일이지만) 선뜻 그렇다 말하기도 어렵다. 오늘날 젊은 작
가들의 작업환경과 작업수준, 나아가 이들의 삶과 작업 활동을 어떻게 볼 것이냐. 결론적으로 오늘날 젊은 세대 작가
들은 문제적이다. 그것은 미술계의 문제만이 아니라 동시대 한국 자본주의의 삶이 워낙 팍팍하다는 데서 기인한다.
현재 한국에서 삶이 가장 어려운 세대는 단연 노년 세대이다. 7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이 10만 명당 160명꼴이란다.
물론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청년들도 힘든 세대이다. 문제는 이 세대가 “한국의 사회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표층”
(한윤형)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바야흐로 후기자본주의의 문제가 불가피하게 파생시킨 인간형이 이들 젊은 세대
에 고스란히 낙인 찍혀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무한경쟁의 정글로 이루어졌고 이 한국적 특수성은 단 한 가지 룰에 입
각한 기이한 경쟁을 독려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기실 경쟁이 아니라 사회 독점 계급을 생산해내고 정당화하는 도구
에 불과하다. IMF 외환위기 이후 대학생들은 이전과는 달리 더욱 치열한 경쟁의 공간에 노출되었고 그럼에도 불구
하고 괜찮은 일자리의 숫자는 줄어드는 현실에서 산다. 따라서 학벌사회의 승자이면서도 잉여 인간이 되고 있다. 이
들의 열패감은 대단하다. 그러나 이 낭패감을 공론화하지 못하고 자기학대로 이어지거나 현실을 비참하게 바라보는 것이 하나의 문화, 루저문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냉소가 되고 보수화
되고 정치나 사회현실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미술계를 예로 든다면
이전에는 유명 미술대학을 나오면 조교를 거쳐 대개 스승이 심사위원으로 포
진해 있는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고 자연스레 시간강사를 거쳐 지방대에 취업
하거나 머지않아 서울에 있는 대학이나 운이 좋으면 모교의 교수가 되는 것
이 순리라고 여겼던 때가 있다. 유학을 갔다 오면 더 말할 나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유학은 필수고 심지어 실기 박사학위까지 반드시 요구되고 있다. 그
러다보니 외국 유학의 매력은 줄어드는 대신 죄다 박사과정에 들어가고 있
다. 유학을 마친 이들도 다시 국내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형편이다. 지방
대 출신들은 한결같이 서울에 있는 대학원을 거쳐 학벌세탁을 한다. 그렇다
고 대학에 자리 잡아 쉽게 전임이 되거나 좋은 작업을 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과도한 학벌 경쟁, 그로인한 경제적
지출을 무릅쓰고 그들은 이 한국 사회 못지않은, 더욱 심한 무한경쟁의 미술계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직업, 지위를 가
지려고 올인을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열정과 욕망이 작업으로 귀결되지 못하고 경력 쌓기나 스펙 만들기라는
차원에서만 작동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오늘날 젊은 작가들의 미술적 활동이란 결국 작업을 한다기보다는 그것을
수단으로 삼아 화려하고 그럴듯한 경력을 만드는 알리바이에 머물고 있다는 게 정확한 진단이라 할 것이다. 부모의
희생을 담보로 해서 말이다. 혹은 자신의 청춘을 죄다 소진하면서다. 내 주변에는 40대 이상의 미혼 작가들이 넘쳐난
다. 결정적인 이유는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결혼을 꿈꾸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잔인한
무한경쟁을 촉발시키는 한국 사회와 경력을 요구하는 미술계 제도의 문제이다.

불안의 세대와 파편화된 취향
결론적으로 세대의 특성은 사회가 만든 것이다. 따라서 청년세대를 분석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탐구하려면 한국 자
본주의의 현재에 대해 말해야 한다. 오늘날 청년세대의 특징, 즉 인터넷, 대중문화, 민족주의의 정치성, 취업난, 그리
고 파편화된 취향은 모두 한국의 사회적인 조건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의 미술계 구조나 현실 역시 이 사회로
부터 강하게 견인되어 있다. 아울러 그것이 작업의 경향과 내용을 채우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오늘날의 젊은 작가
들은 미술, 미술계가 현실과 무관하다고 봐서는 결코 안된다. 작업이 안풀리는 것은 삶이 풀리지 않아서이다. 사회를,
미래를 총체적으로, 전망적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년작가들에게 사회를 바라보는 총체적인 시각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납득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작업을 고민하고 미술계를, 자신의 작가로서의 삶을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젊은 세대, 청년문제에 대해 말하는 지식인들은 새로운 자기계발 담론을 통해 ‘멘토’
역할이나 가볍기 그지없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한다. 과연 그런 말이 위안이고 치유이며 대안일까? 그것은 더없이 보
수적인 언사들이다. 그리고 이는 삶에 지친 젊은 세대들이 듣고 싶은 조언을 소비하는 차원에서 작동된다. 요즈음에
스님들이 그 치유의 언사를 쏟아낸다. 머지않아 우리 미술계에서도 스님의 말씀이 미술평론을 대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수사가 삶과 작업을 결코 대신해주지 못할 것이다.
“오늘날 젊은 작가들의 미술적 활동이란
결국 작업을 한다기보다는 그것을
수단으로 삼아 화려하고 그럴듯한
경력을 만드는 알리바이에 머물고
있다는 게 정확한 진단일 것이다. 부모의
희생을 담보로 해서 말이다. 혹은 자신의
청춘을 죄다 소진하면서다. 그리고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40대 이상의 미혼
작가들이 넘쳐난다. 이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잔인한 무한경쟁을
촉발시키는 한국 사회와 경력을
요구하는 미술계 제도의 문제이다.
오늘날의 청년들은 각자의 고립된 공간에서 고립된 주체로 살아간다. 대
중문화와 인터넷은 파편화된 취향을 양산한다. 당연히 공동체의 공동 관심
사는 약화된다. 20~30대 작가들 역시 자기 또래의 젊은이들처럼 ‘파편화된
취향과 만성화된 불안의 세대’들이다. 이들은 미술계에서 인정받으며 작업
을 해야 한다는 비장한 욕망과 작업을 해서 먹고살아야 한다는 절박한 욕
망, 그리고 부모세대가 요구하는 번듯한 직장인으로서 가족을 부양하는 사
람이 되어야 한다는 집요한 요구사이에서 갈등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그래
서 무기력증과 우울함이 결합한 어떤 정신 상태로 내몰린 젊은 세대들이기
도 하다. 향후 한국자본주의가 어떻게 돌아갈지, 이 사회와 현실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과 어떤 세상을 살아가게 될지 알 수가 없다는 느
낌은 세계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는 욕망을 갉아 먹는다. 미래가 없는, 없다고 여기는 세대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젊
은 세대이다. 미술 역시 전망과 확신, 열정이 사라진 자리에 권태로운 그리기, 강박적인 회화(일러스트 같은), 괴이하
고 음산한 상상력의 창궐, 작위적인 개념미술, 형식에 맞춘 작업의 (어거지 같은)담론들이 횡행한다. 심사를 하다보
면 젊은 작가들이 대부분 작업을 위한 설정을 너무 많이 두는 경향을 보게 된다.
개념미술의 잘못된 영향이라고 보는데 그 개념들이 한결같이 유사하고 상투적이다. 따라서 나는 심사에서 작가들
의 포트폴리오에 실린 작업노트를 읽는 것이 너무나 괴롭고 곤혹스럽다. 차라리 “그냥 그렸다”거나 “그리는 게 너무
좋아서 그렸다”라고 쓰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새로운 작가, 새로운 미술운동이란 새로운 미적 환경을 창조함으로써 ‘사회를 정신적으로 그리고 물질적으로 재
구성할 수 있는 혁신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런 경우에 그것을 새로운 미술이라고 말하며 이를 주도해나가는 작가를
젊은 작가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미술운동을 추동해나가는 젊은 작가들은 매 시기 기성의
언어와 관습을 가로질러가는 자리에 피어났다. 그래서 그들에게 신세대, 혹은 젊은 세대의 감수성과 미의식, 새로운
미술 등의 수사를 붙여주었다. 그들은 이미 제도화된 미술언어를 구사하는 어른들과는 다른 감수성의 소유자들이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술운동과 소통방법의 확장에 대한 시도를 보여주는 존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작가들에게 나름의 기대를 걸게 된다. 1990년대 초반 한국미술계는 이른바 ‘신세대’ 논의로 뜨
거웠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이곳 미술계는 여전히 젊은 작가들에게 환호한다. 젊은 작가의 작품만이 가득하다는
인상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현재의 흐름은 이전의 ‘신세대미술운동’과는 어딘지 다르다. 기존 미술언어
와 제도에 저항하는 나름의 감수성과 미의식의 공유성도 없지는 않으나 오늘날 대다수 젊은 작가들의 작업은 이전으
로 되돌아가는 지극히 보수적 성향을 드러낸다. 더불어 달라진 삶의 환경, 자신이 살고 있는 이 현실 속에서 작가로서
의 삶, 그리고 이전과 다른 현재의 미술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와 고민의 흔적이 너무 엷어 보인다. 지금 젊은 작가들
의 작업이 과연 기존 미술계의 주류 언어를 문제시하고 달라진 미술개념을 구사하며 미술문화의 지형도 자체를 새롭
게 짜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기 시대를 관통하고 극복해나가려는 의지 아래 작가로서의 삶을 펼치고 있는 것일
까? 그런 의미에서 그들과 그들의 작업을 진정으로 젊은 작가, 새로운 미술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

[월드 토픽] 아름다운 케이오스, 21세기의 앗상블라주

contents 2014.2. world topic | 아름다운 케이오스, 21세기의 앗상블라주
서상숙│미술사
“이제 더는 다른 사람의 예술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죠. 아니면 다른 사람의 예술에 대한 관심을 끓었다고 할까요. 그저 제 작품만 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더 이상 그런 일들로 나 자신을 버겁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건 원하질 않아요. 난 지금 완전히 자유롭습니다.”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를 앞두고 독일관 큐레이터인 니콜라스 샤프하우젠 (Nicolaus Schafhausen)이 선정작가인 이사 겐즈켄(Isa Genzken, 1948~)을 상대로 진행했던 인터뷰에서 21세기에 들면서 급격하게 변화한 작업에 대한
겐즈켄 자신의 대답이다. 당시 59세였던 겐즈켄이 이제 다른 작가들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만의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확언하고 있는 것이다. 중견을 넘어선 작가, 그리고 세계 미술계에 잘 알려진, 영향력 있는 이 작가의 놀랍도록 솔직한 고백을 독일관 카탈로그를 통해 읽으면서 무더운 날씨에 들이켜는 차가운 한잔의 얼음물처럼 시원함이 느껴졌다. 그 후 6년이 지난 올해 뉴욕의 근대미술관(MoMA, Museum of Modern Art)에서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대규모의 겐즈켄 회고전(2013.11.23~3.10)이 열리고 있다. 초기의 포스트 미니멀리즘 작업부터 최근의 앗상블라주까지 150여 점이 연대기 순으로 전시되고 있다.
이사 겐즈켄은 독일 출신의 조각가이다. 비중있는 미술관에서의 전시는 물론 베니스비엔날레(2007)와 세 번의 도쿠멘타에 선정되는 등 유럽에서는 매우 잘 알려진 작가지만 미국인에겐 비교적 낯선 작가이다. 아마 겐즈켄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미국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장미 한 송이를 극사실적으로 묘사한 높이 90미터가 넘는 조각품, <장미Ⅱ> 정도일 것이다. 1993년 작을 2007년 다시 만든 것으로 2010년부터 뉴욕 뉴뮤지엄 건물 앞에 3년 가까이 전시되었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작가들의 작가’라고 불리우는 겐즈켄을 미국에 대대적으로 소개하는 전시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프로타주 페인팅 등 초기 작품들도 다수 전시되고 있어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겐즈켄은 독일이 나치와 히틀러 그리고 유대인 학살이라는, 결코 잊힐 수 없는 오욕과 상처를 남긴 2차 세계대전(1939~1945) 직후인 1948년에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가 나치였으며 전쟁으로 인한 물질적, 정신적 폐허를 복구하
려던 전후 독일에서 성장했다. 몇몇 대학을 거치며 미술에 점점 흥미를 느끼게 된 겐즈켄은 당시 남자친구이자 뒤셀도르프 대학에서 미술이론을 가르치던 벤자민 부흘로 (Benjamin Buchloh, 1941~)의 소개로 1973년부터 1977년까지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1932~)의 문하에서 공부하면서 자신의 인생과 작품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현재 하버드 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인 부흘로는 1945년 이후의 전후 현대미술을 논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이론가 중 하나다. 겐즈켄의 전남편이며 지금까지 생존하는 작가 중 최고의 가격으로 그림이 거래된 바 있는 게하르트 리히터 작품에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결정적 인물이며 겐즈켄에 관한 책 《그라운드 제로》의 저자이기도 하다.
당시 뒤셀도르프 대학에서는 독일의 통념, 인습, 주류를 타파하는 급진적인 사고를 가진 교수들을 중심으로 개념주의에 기초한 사진과 퍼포먼스 아트 등이 실행되고 있었다.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1921~1986), 동독 출신의 리히터를 비롯 개념주의 작가 마르셀 브루타스(Marcel Broodthaers, 1924~1976) 등이 교수로 재직했다. 겐즈켄이 태어난 1948년은 전후 독일 미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보이스가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던 전쟁에서 돌아와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뒤셀도르프 미술대학(Kunstakademie Dusseldorf)에서 공부하던 시기다. 보이스는 1961년 이 대학의 조각과 교수가 되어 겐즈켄이 입학하기 한 해 전인 1972년 낙방한 학생들을 위한 시위를 벌이다 해임되었으나 겐즈켄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겐즈켄은 도시건축과 환경, 사진 등에 지속적인 관심을 두고 있으며 1990년대까지 테크놀로지에 바탕을 둔 포스트 미니멀리즘, 개념주의, 비디오, 사진, 필름 등 여러 분야에서 조심스러운 탐구를 이어가던 아카데믹한 작업을 지속하다가 2001년 9월 11일 뉴욕에서 월드트레이드센터 테러 현장을 직접 목격한 후 급격한 변화를 보인다. 테러 이후 변화한 도시풍경, 미국이 이란·이라크등 중동에서 벌이는 전쟁이 야기한 긴장이 흐르는 앗상블라주 작업들이다.
<엠파이어/벰파이어(Empire/Vampire)>(2003~2004) 시리즈,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2007~2008) 시리즈, <오일(Oil)>(2007) 시리즈, <배우들(Schauspieler)>(2013) 시리즈 등이 테러 목격 이후의 대표적인 작업이다. <엠파이어/뱀파이어> 시리즈는 2001년 뉴욕 월드트레이드 센터가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그룹에 의해 공격당한 현장을 소재로 한 시리즈다. 미니어처 장난감 병정들이 총을 겨누고 어린아이들이 무너진 건물더미 위에 쓰러져 있으며 피로 범벅이 된 여성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서사적이며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이 같은 끔찍한 이야기의 전개가 실제 현대인의 도시 생활 주변에서 구한 레디메이드 오브제들을 조합해 만든 사실적 조각작품인 앗상블라주라는 방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테러와의 전쟁으로 시작한 21세기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그린 이 타블로(Tablau)들은 갠즈켄을 통해 재생산되면서 절망이나 위협을 넘어선 따뜻한 연민으로 승화돼 보는 이들과 소통한다. 그 소통을 통해 피로 얼룩진 전쟁터는 복구를 희망하는 아름다운 폐허로 변화하는 것이다.
겐즈켄의 미국, 특히 뉴욕에 대한 애정은 남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교시절 뉴욕을 처음 방문한 후 작업실을 얻어 장기적으로 머무는 등 지속적으로 방문했고 많은 작가와 교류해왔다. <나는 뉴욕을 사랑한다/열정이 넘치는 도시(I love New York/Crazy City)>(1995~1996)라는 사진책 형식의 작품을 만들기도 했고 시카고에서 스카이스크래퍼를 본 후 창문과 고층빌딩을 연상케 하는, 수지와 철 그리고 콘크리트로 만든 일련의 작품, <X>(1992), <창문(Fenster)>(1994) 시리즈가 나왔다.
2000년에 만든 <개 같은 바우하우스(Fuck the Bauhaus)> 시리즈는 뉴욕 등 미국의 견고한 건축물을 독일의 그것과 비교하면서 기능만을 강조한 ‘싸구려 건축물’인 바우하우스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 시리즈는 겐즈켄의
본격적인 앗상블라주 조각의 시대를 예고한다. 예를 들어 <개같은 바우하우스 2>는 합판으로 박스를 대충 만들어 건축물을 상징하고 차이나타운에서 구한 “동성 팬시 (Dong Sung Fancy)”라는 상호가 선명한 종이 쇼핑백, 오렌지색의 공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네트, 피자박스, 조화 등이 테이프로 얼기설기 붙어있고 돌, 플라스틱 인조나무, 노란 장난감 뉴욕택시 등이 바닥 여기저기에 놓여 있는 작품이다. <바우하우스 3>과 <바우하우스 4>에는 합판으로 급조한 구조물 표면에 조개껍데기를 붙였다. 나이 40이 넘은 가난한 시인이 미술가가 되기로 작정했던 마르셀 부르타스를 연상케 해 미소를 짓게 한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조개와 텍스트를 즐겨 사용했던 대선배에 대한 존경의 제스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낸 여성작가의 삶의 기록
모마의 6층 특별전시장 입구에는 겐즈켄의 최근작 <배우들> 시리즈가 전시되고 있다. 마네킹에 로큰롤 스타일의 자유분방한 패션을 입혀 놓은 작품들로 전시장 입구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싸구려옷과 장신구들로 치장된 마네킹들은 분주한 주말의 도시풍경을 연상케 한다. 게이나 레즈비언, 혹은 클럽에 가려고 재미있게 한껏 드레스업한 사람들처럼 흥분된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벽에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로큰롤 스타일의 패션이 눈길을 끄는 겐즈켄의 대형 사진과 마이클 잭슨이 포함된 그의 사진콜라주 등이 붙어있는데 한때 앤디 워홀에게 전화를 걸어 마이클 잭슨과 함께 밴드를 결성하자는 제의를 했던 작가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들이다. 화려한 <배우들>이 설치된 모마의 전시장 입구를 지나 들어서게 되는 첫 번째 갤러리에는 겐즈켄의 초기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두 개의 가느다란 막대를 세워놓은 <무제>(1974), 112개의 각기 다른 색을 칠한 단색 종이작업을 차례로 늘어놓은 <평행사변형(Parallelogram)>(1975>, 당시 일반인에게는 생소했던 컴퓨터로 무게중심을 계산해 바닥에 떠있는듯 놓여지도록 만든 <평행면/쌍곡면(Ellipsoids/Hyperbolos)>((1976~1983) 시리즈, 그리고 뉴욕거리에서 지나가는 행인들의 귀만을 찍은 <귀(Ohr)>(1980)도 전시되어 있다.
두 번째 전시실에는 겐즈켄의 1980년대와 1990년대의 플래스터와 콘크리트, 수지 작업들이 소개된다. 건축물, 특히 빌딩 이미지를 보이는 미니멀한 선과 형태를 지키면서 거친 표면을 실험한 것들이다. <밍 페이(Ming Pei)>(1985), <은행(Bank)>(1984) 등 콘크리트 작업과 <X>(1992), <창문(Fenster)>(1992) 등 수지와 철을 재료로 역시 빌딩을 연상케하는 한층 가벼워진 이미지의 모던한 추상작업들이다. 특히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프로타주 페인팅 등 1990년대 초반의 회화작업이 함께 소개되고 있다. 겐즈켄이 리히터와 이혼하기 직전의 작품들이다. 겐즈켄의 작업은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급격한 변화를 보인다. 평범한 오브제를 자유롭게 조합하고 변형한 사실주의 콜라주와 앗상블라주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1993년 게르하르트 리히터와 11년간의 결혼생활을 청산한 이후부터 마치 자신을 억누르는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듯하다. 겐즈켄의 초기 막대작업을 리히터는 “뜨개질 바늘”이라고 불렀고 그에 대해 겐즈켄은 “무기”라고 반박한 일화는 그들의 예술적 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이혼 후 주거지를 콜론에서 베를린으로 옮기고 게이와 젊은 작가들과의 교류, 나이트 클럽을 통해 접한 테크노 음악의 세계 등 작가의 라이프스타일이 크게 변화한 것도 큰 영향 중의 하나로 꼽힌다. 현재 겐즈켄의 작업이 그의 나이와 관계없이엘리자베스 페이튼 등 젊은 작가들과 함께 기획 전시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만한 점이다.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요셉 보이스의 유명한 발언은 당시 유럽의 많은 젊은이에게 영향을 끼쳤는데 겐즈켄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베니스비엔날레에 출품한 <오일 XI>(2007)은 고양이, 렘브란트의 사진 등 콜라주가 붙여진 여러 개의 여행가방이 바닥에 놓여 있고 미국의 우주인 3명이 천장에 매달려 있는 작품으로 보이스의 <고통의 방(Schmerzraum)>(1984)을 연상하며 작업했다고 작가가 직접 밝힌 바 있다. <장미> 역시 보이스의 <직접적인 민주주의를 위한 장미(Rose for Direct Democracy)>(1973)를 연상케 한다.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은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말로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점은 마르셀 뒤샹의 <샘(Fountain)>(1917)이 현대미술의 사고에 끼친 영향이 증명하고 있다. 겐즈켄의 2000년 이후의 작업은 이 두 가지의 개념을 동시에 실천한다. 전후 독일에서 성장했으며 자신의 스승이었던 유명 작가와의 결혼과 이혼, 알코올 중독,바이폴라 우울증 등 개인적인 아픔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작품세계를 찾아 이루어낸 갠즈켄의 작업들은 묵묵히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낸 한 여성작가의 삶의 기록이기도 한다. 특히 겐즈켄의 조각은 1960년대 이후 잊혀졌던 아상블라주의 복귀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냈으며 그에 따르는 일련의 작가군이 형성돼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또 그가 오브제를 찾아 모으고 붙이고 자르는 복잡한 작업과정을 보조작가를 두지 않고 직접 한다는 것도 아이디어만 내면 작업 자체는 보조작가들이나 테크놀로지가 대신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현대의 미술계 풍토에 수제작업의 의미를 다시 한번 일깨우는 것이다. ●

이번 이사 겐즈켄 회고전은 로라 합트먼(50)이 지난 2010년 10월 모마의 큐레이터(조각과 페인팅부)로 임명된 후 수석 큐레이터 사비나 브레트바이저(미디어와 퍼포먼스부 Sabine Breitwieser)와 함께 2년여에 걸쳐 준비한 야심작이다. 합트먼은 1995년부터 2001년까지 모마 드로잉부의 부(副)큐레이터였으며 그 후 피츠버그 카네기미술관 현대미술부장을 거쳐 뉴욕의 뉴뮤지엄에서 일했다.
합트먼은 재능있는 작가를 유명해지기 전에 알아내는 ‘발굴자(picker)’라는 평판을 받고 있다. 현재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오른 존 커린, 엘리자베스
페이튼, 뤽 튀망 등이 그가 발굴해낸 스타들이다. 이사 겐즈켄은 그가 뉴뮤
지엄에서 큐레이팅했던 <언모뉴멘털: 21세기의 오브제(Unmonumental:
The Object in the 21st Century)>에 젊은 작가들과 함께 초대했을 만큼
그가 “21세기에 주목할 만한 가장 영향력있는 작가”로 평가하는 작가다.
그는 겐즈켄에 대해 “지난 40년간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대담함으로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해온 작가”라며 “급진적인 사고방식과 창의력으로 일련의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밝힌다. <엠파이어/뱀파이어>, <그라운드 제로> 시리즈 등 뉴욕을 소재로 한 작품이 대량 전시된 것에 대해 “뉴욕 작업에 초점을 맞춘 전시는 아니다”라고 설명하면서 “2000년 이후의 작업은
대형작업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개 같은 바우하우스>를 포함, 주로 뉴욕을 소재로 한 것들이다”고 밝힌다. 그는 <그라운드 제로> 시리즈에 포함되어 있는 <오사마 패션스토어(Osama Fashion Store)>(2008)와 <디스코 순(Disco Soon)>(2008)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이라면서 <창문>, <귀>, <하이파이>, <월드 리시버> 시리즈처럼 초기 작품 이후 겐즈켄은 “현대사회
에서의 소통”에 지속적인 관심을 두었으며 그가 그리는 것은 “절망보다는 희망이다”라고 말한다.

뉴욕=서상숙 통신원

[특별기획] 사적인 오진, 젊은 작가들에게

contents 2014.02. Special Feature | 사적인 오진, 젊은 작가들에게
강홍구 l 작가
‘젊은 작가들에게’라고 쓰고 나니 낯설다. 나도 아직 철이 안 들었고 들 가망도 없는데, 뭔가 좀 아는 것처럼 쓰려니 그렇다. 하지만 생물
학적 나이는 도저히 속일 수 없어 오늘도 어깨가 아파 진단을 받으려 대학병원에 들렀다. 한데 충격이다. 몇 달 동안 다녔던 동네 병원에
서는 오십견이 문제가 아니라, 아주 작은 석회화 건염이 문제라고 했는데 대학병원에서는 명백한 오십견- 즉 회전근개 문제이니 한 달
동안 날마다 사우나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오란다. 다시 한 번 놀랍다. 내가 체험한 동네 병원 오진율이 거의 70%에 육박한다. 잘 낫지
않아서 대학병원에 가면 견해가 다르고 처방과 치료는 간명하다. 절망적이고 우울하다. 동네 병원이라고 다 그런 수준은 아니라고 믿
고 싶은데 내 몸은 그렇다고 한다.
지금 내가 쓰는 이 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잡지사에서 내게 청탁한 글의 주제는 요즘 젊은 작가, 대체로 1980년부터 1990
년 사이에 태어난 작가들에 관해 어떻게 보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동네병원일까, 대학 병원 수준일까? 아무래도 좋다. 그래야 글을 쓸
수 있으니까. 오진이라도 할 수 없다고나 할까? 동네 병원 의사들도 나 같은 기분일까?
작가가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일종의 병이다. 시간이 지나도 치유될 가망이 별로 없는 병이다. 요즘 젊은 작가를 그냥 그들이라고 부
르자. 나이는 대강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대 후반쯤- 한 십년 보자. 전시장과 작업실에서 본 그들의 작업, 그림, 설치, 영상, 공모전, 심
사 경험, 기타 등등을 생각해본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작품을 그럴듯하게 만드는 솜씨가 뛰어나다는 것이다. 자신이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작품처럼 보기
좋게 묶어내는 능력이 있다. 요는 포장 기술이 괜찮다. 그러나 포장을 풀어보면 별거 없다. 이때 별거는 내용이 심오하지 않다든지, 어
째서 사소한 문제를 다루고 있느냐는 질책이 아니다. 절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절실함이란 그 작가가 정말로 그 이야기를 꼭 하고 싶고,
해야만 했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건방진 충고 하나 하자면 좋은 작가란- 잘나가는 작가 말고- 세상에 대해 진짜로 자신이 꼭 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이때
이야기란 물론 내용이나 형식을 가리지 않는다. 아주 사적이어도 좋고, 아니면 공적인 것이라도 상관없다. 아니면 내용 따위는 아예 배
제하고 미술에 관한 새로운 형식적 시도도 좋다. 미술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바보가 아닌 이상 누군가의 작품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긴지 아닌지 금방 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말로 설명할 수 있으면 작품을 왜 만들겠는가? 그리고 알 수 없다면 작업을 그만두
는 게 낫다.
다음으로는 기본적으로 작업이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전에도 그랬
다. 하지만 21세기가 시작되자마자 한 차례 불어닥친 상업적 성공의 열풍이 잘 팔리는 작가들을 생산한 뒤 그러한 예가 일종의 모델이
되어버렸다. 이 때문에 앞서 말한 포장 기술과 결합해 여러 가지 방식의 유행을 낳았다. 예를 들면 저주에 가까운 묘사 기술의 과시에서
부터, 현장과 사회와 개념을 그럴듯하게 어중간하게 묶는 프로젝트화, 사소한 트릭과 시시한 관념을 크게 확장한 빤한 설치와 일종의
알리바이로 동영상 활용하기, 전통적인 것과 디지털, IT 등을 적당히 한 다발로 묶기 등등. 이는 아마도 자신이 사용하는 매체에 대한 아
주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는데서 비롯되는 일처럼 보인다.
좋은 미술작품이란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것이다. 최소한 자신이 하는 작품의 장르에 관해 이게 도대체 뭔가, 관습적
인가 아닌가를 묻고 새로운 정의를 시도하는 뭔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다른 학문이나 예술 심지어는 일상적 삶조차 창조적이려면 반드
시 창조적인 질문이 있다. 그걸 어떻게 하느냐고? 내가 그걸 알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창조적인 것을 가르치는
기술은 없다. 단지 어느 게 창조적이 아닌지 말해줄 수 있을 뿐이다.
이것들 말고도 쓰면 뭐 좀 나오겠지만 더 이상 쓰는 것은 무의미하다. 청탁시 요구받은 원고의 양도 거의 다 찼다. 글을 다시 읽어본
다. 이 두루뭉술, 애매모호한 진단은 어디에 해당될까? 내 스스로 늙어가는 환자인 주제에 잔소리를 해도 될까 하는 의심이 인다. 위에
서 말한 내용들은 오진일 수는 있다. 하지만 작업을 한다는 것은 이 후진 세상에 대해 개인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길을 내는
것이다. 비록 그 길- 작업을 한다는 것이 결국 환상에서 시작해서 환멸로 끝나더라도 숙명이기 때문에 하는 거라면 다시 생각해봐야 하
리라. 너무 올드패션이라고? 어쩌겠는가? 나도 낼모레 육십이다. 나이 먹는 것이 어쩔 수 없듯이 올드패션이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불만이면 새로운 뭔가를 좀 보여다오. 충격받고 싶다. ●

[월드 리포트] 시끌벅적한 추도식장에 펼쳐진 이미지의 향연

contents 2014.2. world report | 시끌벅적한 추도식장에 펼쳐진 이미지의 향연
신원정│미술사
여러 차례 계획의 변경과 연기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2013년 겨울 쿤스트베르크에서 막을 올리게 된 전시는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크리스토프 슐링엔지프의 작업을 포괄적이고 체계적으로 다룬 첫 회고전이라는 점에서–지난 2011년 베니스비엔날레의 독일관을 비롯해 그간 열린 전시들은 고인을 추모하는 행사에 더 가까웠기에–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슐링엔지프 작업의 방대한 스펙트럼을 감안할 때 ‘회고’적 성격의 전시를 베를린에서 열기에는 최소한 함부르거 반호프 미술관 정도의 규모라야 어울릴 듯하지만 전시가 실제 열리고 있는 곳은 그리 크지 않은 쿤스트베르크이다. 전시
를 기획한 큐레이터는 작가의 작업을 남김없이 총괄하기란 불가능하기에 그 보다는 관람객이 그의 예술세계를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고 강조했다. 큐레이터의 말에서도 드러나듯 장소가 다소 협소하다는표면상의 단점은 ‘선택과 집중’을 가능케 해준다는 점에서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한 듯하다. 이뿐만 아니라 베를린의 현대미술현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가지는 전시 기관인 쿤스트베르크가 가진 장점 중 하나인 주전시실 공간을 인상적으로 활용한 점 또한 이번 전시가 이곳에서 열려야 하는 당위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지상과 지하를 아우르는 높이와 상당한 크기의 주전시실은 한때 마가린 제조 공장이었던 쿤스트베르크 건물의 고유한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소이자 무엇보다 대규모 설치작품을 전시하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어두컴컴한 홀에 일곱 개의 굵직한 나무 기둥이 설치되어 있고 그 꼭대기마다 사람이 앉아있는 광경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무런 미동 없이 독서를 하거나 드물게 고개를 들다 자신을 관찰하는 관람객들과 눈이 마주치기도 하지만 이내 무심하게 시선을 옮기는 이 <주상 고행자>들은 슐링엔지프의 2005년도 작 <두려움의 교회>의 한 부분이다. 전시실 한가운데에는 회전무대인 <아니마토그래프>의 독일판인 <파르지파크(라그나뢰크)>(2005)가 자리하고 있다. 영화, 연극, 음악, 퍼포먼스와 오페라가 한자리에 모여 녹아내리고 서로 섞이는 현장이다. 여러 개의 세트가 나란히 설치되어 있고 조명이 극적 분위기를 강조하는 회전무대는 누구나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다. 장중하게 울려 퍼지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은 공간의 밀도를 조율하고 무대 위 오브제, 벽에 붙은 포스터와 그림, 영사기에서 나오는 영상이 빚어낸 이미지들은 전시실 공간을 시각적으로 재단한다. 관람객이 천천히 돌고 있는 무대 위로 올라서서, 쏟아지는 조명과 영상을 온몸에 직접 맞으며 스스로 이 움직이는 극장의 일부가 되는 순간 비로소 작가가 꿈꾸었던 총체예술작품은 완성된다. 한편 바그너의 오페라를 들으며 아돌프 히틀러의 초상화를 보노라면 어느새 느껴지는 개운찮은 뒷맛에 독일 출신 작가의 전시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될지도 모른다.
강한 정치성을 표방하는 슐링엔지프의 퍼포먼스 작업은 부조리하고 냉혹한 현실을 가감 없이 다루는데 공개될 때마다 온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을 만큼 도
발적이지만 그 전복성과 병행하는 신랄한 조소와 탁월한 비틀기는 다양한
층위를 갖춘 복합적인 작품의 탄생에 일조한다. 서바이벌 방식의 인기 TV프
로그램 ‘빅 브라더’의 포맷을 차용한 퍼포먼스 <오스트리아를 사랑해주세요>
는 2000년 빈 예술축제 기간 중 진행되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빈
국립오페라극장 앞에 설치된 컨테이너, “외국인을 추방하라”는 문구를 담
은 큰 배너가 붙은 이 컨테이너 안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는 외국인 12명이 1주일간 고립된 채 생활한다. 그들의 모습은 TV로 생중계되고 오스트리아 국민은 전화나 인터넷으로 송환자를 뽑는 투표를 할 수 있다. 투표 그 결과에 따라 매일 저녁 8시에 두 명씩 강제 송환을 위해 컨테이너를 떠나게 된다. 최종 우승자를 기다리는 것은 상금과 합법적인 오스트리아 국적 취득이다.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근본적인 윤리적 화두에서부터 인권과 직접(외국인 난민 및 정치적 망명자) 혹은 간접적(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을 대하는 시선)으로 관련된 테마들, 그리고 외국인 혐오 현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들이 극단의 자본주의를 대변하는 TV 예능프로그램의 달콤한 탈을 쓰고 평온한 일상을 가장한다.
아힘 폰 파첸스키와 공동으로 제작한 <프릭스타 3000>(2003)는 2002년 6월 8일부터 방영되었던 6부작 TV 프로젝트
를 편집한 비디오작업이다. 당시 독일 청소년들에게 선풍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킨 캐스팅 프로그램 <독일이 슈퍼스타를 찾다>와 비슷하면서도 뚜렷하게 다른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바로 넘치는 끼를 주체할 수 없는 장애인들이다. 캐스팅 과정부터 최종 밴드 멤버 선정 그리고 앨범 발매에 이르기까지 캐스팅 쇼의 전반적인 메커니즘이 화면에 담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회·관습적 구분은 모호해지고, 자연스러운 감정 표출에 제약을 받는 이는 실상 어느 쪽인가 하는 의문이 강하게 제기된다.
전시의 주인공, 슐링엔지프의 부재(不在)가 아쉬운
슐링엔지프의 작업에서 표출되는 정치성의 정점을 찍은 두 건의 사건을 보자. 먼저 그는 1997년 8월 말 제10회 도쿠멘타가 열리던 카셀에서 당시 독일수상 “헬무트 콜을 죽여라”라는 문구를 담은 포스터를 내건다. 이로 인해 퍼포먼스 현장에 긴급 투입된 경찰이 작가를 체포하고 일시적으로 구금했다. 그로부터 1년 뒤 연방의회선거에 기해 “당신 자신에게 투표하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찬스 2000’이라는 이름의 정당을 창설하고 특히 전국 600만 실업자에게 헬무트 콜 총리가 여름휴가를 보내는 볼프강호수가 범람하여 총리의 별장이 물에 잠겨버리도록 <볼프강호에서 수영하기> 퍼포먼스에 참여할 것을 촉구했다. 언론의 엄청난 주목에 비해 실제 참가자 수는 100여 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비록 최종 선거에서 0.058%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지만 “실패는 기회”라는 창당 슬로건부터 시작해 계속된 미디어의 관심과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영상예술에서 출발한 뒤 1993년부터 연극 쪽으로 활동영역을 넓힌 작가는 2004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초대되어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을 연출하게 된다. 페스티벌 총감독 볼프강 바그너와의 사이에서 빚어진 갈등으로 인
해 상당히 시끄러웠던 준비 과정–후에 폐암 판정을 받은 작가는 이때 받은 스트레스를 발병의 원인으로 꼽았다–과 연출을 맡은 슐링엔지프의 존재로 인해 예술계 악동이 만드는 <파르지팔>이 과연 얼마나 센세이셔널할 것인지에 대한 기대감이 날로 고조되었지만 정작 막이 오르고 나타난 것은 매끄럽게 잘 다듬어진 무난한 무대였다. 평단과 관객의 호평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사실 피에르 불레즈가 지휘한 오케스트라였다는 사실이 다소 아이러니하다.
현 시대의 잔인한 현실 앞에서 절대 고개 돌리거나 외면하지 않은 슐링엔지프의 작업은 필터 없이 바라본 세상을 담고 있기에 다소 불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작가의 진정 어린 진심에서 비롯된 만큼 강렬한 설득력을 지닌다. 독일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소년이 성장하며 꿈꾸었던 삶과 예술의 일치는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공화국에 그가 세운 <오페라마을>에서 작가가 저 세상으로 떠나고 없는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11년 10월에 문을 연 초등학교에서는 현재 아이들이 교육을 받고 있고 약 5헥타르에 달하는 면적 위에는 초등학교와 관련 건물(카페테리아, 녹음실) 외에도 진료소가 완공된 상태이며 그 외 일반 주택과 극장, 작가 레지던스 건물 등이 앞으로 건축될 예정이다.
조형예술과 음악, 연극 장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크리스토프 슐링엔지프의 작품세계는 그 복합성과 장르 해체적 급진성 때문에 미술전시장이라는 맥락 안으로 끌어들이기가 결코 용이하지 않다. 많이 알려진 유명한 작업들이 주를 이루는 이번 베를린 전시는 그런 점에서 영리하고 현실적인 기획이었다고 하겠다. 또한 수많은 비디오작업과 설치작품들은 작가의 조형예술가적 면모를 확실하게 각인시켜준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이미지들은 보는 이를 혼란스럽게도 하지만 이런 어지러운 무질서함 또한 슐링엔지프 작업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클라우스 비젠바흐가 공동 큐레이터로 참여한 이 전시는 2014년 1월 중순에 막을 내린 후 3월에 뉴욕으로 옮겨가 모마 PS1 현대미술센터에서 다소 달라진 모습으로 개막할 예정이다.
여러모로 성공적인 이번 전시에서 딱 하나 아쉬운 점을 들라면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주인공의 부재를 꼽을 수있을 것이다. 살아생전에 제도적 전시공간을 항상 비판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접근했던 작가가 이번 전시를 함께 기획했다면 그 결과물은 분명히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을 테니. 외국인에 대한 인종적 혐오와 극우주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결코 변하지 않는 정치판에 대한 불만과 불신 등 민감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의성 넘치는 테마를 다루었던 작가가 바라본 2013년의 세계는 과연 어떤 모순으로 얼룩진 모습이었을지 궁금하다. ●

이번 전시가 열리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이 당신이라고 들었다. 이 전시를 기획하게 된 상황을 설명해달라.
크리스토프 슐링엔지프의 작업은 미술과 정치의 경계가 사라지고 모든 관람객이 직접 행위의 주체가 되는 것을 지향한다. 그의 작업에 투영된 독일의 역사와 사회정치적 주제들은 오늘날에도 충분히 시의적이다. 전시를 열려고 생각한 시기는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작가와 구체적으로 논의하며 작업의 조형적 측면을 중점적으로 조명하기로 결정했다. 그가 다루는 주제들은 굉장히 복합적이지만 작가는 스스로의 작업을 강한, 어떤 의미에서는 도상학적인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전시 준비과정에서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작가는 하나의 완결된 작품보다 계속해서 현 시대의 문제를 제기하고 그를 심사숙고하는 작업을 중요시했고 이렇게 과정에 중점을 두는 것은 그에게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전시를 기획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끝없이 서로 맞물리는 개별 작품들을 전체적인 틀 안에서 바라보고 이해해야 했던 점이었다.
주인공인 작가의 부재가 전시에 끼친 영향이 있는가.
그는 생전에 엄청난 창작력을 발휘했으며 쉬지 않고 항상 뭔가를 만들어냈다. 어마어마한 양을 자랑하는 그의 작업은 그럼에도 부분적으로는 잘 기록되어 보관되고 있다.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퍼포먼스 작업의 경우 작가의 직접적인 지휘와 개입, 실행이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그는 자신의 작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그의 빈자리가 정말 크게 느껴진다.
전시작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는가?
그간 작가가 다루었던 주요한 테마와 장르를 고루 전시하려 노력했다. 작업 초기부터 후기까지 그리고 영화,연극, 오페라, 설치작품과 퍼포먼스 등 모든 종류의 작업을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이 전시는 3월에 뉴욕에서도 선보일 예정이다. 독일어가 많이 등장하는 작품과 외국(영어권) 관객 간 원활한 소통을 위해 큐레이터의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나는 슐링엔지프의 작업이 조형적 측면에서 그간 지나치게 저평가되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작업 속 이미지들의 영향력은 매우 강렬하고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한편 작가는 <100년 동안의 히틀러>나 <독일 전기톱 살인사건> 등에서 볼 수 있듯 오랜시간 독일의 역사와 전형적인 독일적 주제들을 깊이 탐구해왔고 또 서구권에서 큰 의미를 가지는 식민주의나 인종차별, 종교와 교회, 질병과 죽음 등의 주제도 즐겨 다루었다. 그러므로 감상하는 데 언어로 인한 어려움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나머지는 전시실의 작품 설명문과 미술관 교육 프로그램으로 보완할 수 있을 거다.
관람객이 전시를 보고난 후 어떤 것을 얻어가기를 바라는가?
작가는 항상
관람객들에게 스스로 사고하고 사색하며 능동적으로 행동할 것을 요구해
왔다. 우리 개개인이 얼마나 큰 정치적 책임과 힘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전시를 방문한 이들이 숙고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수잔네 페퍼(Susanne Pfeffer, 1973년生)는 베를린 훔볼트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후 쾰른 쿤스트페어라인과 이후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에서 전시 어시스턴트로 일하며 실무경험을 쌓았다. 브레멘 퀸스틀러하우스 관장을 지낸 후(2004~2006) 2007년부터 베를린 쿤스트베르크에서 큐레이터 겸 예술 감독으로 활동하며 뉴욕 모마 PS1 현대미술센터의 자문위원도 겸했다. 2013년 카셀 프리데리치아눔 쿤스트할레 관장으로 임명되었다.
베를린=신원정 통신원

[특별기획] 청년 작가들이여, 변화를 읽어내자

contents 2014.02. Special Feature | 청년 작가들이여, 변화를 읽어내자
한국의 미술은 지난 몇 십 년간 매우 압축된 역사를 경험했다. 소위 현대미술과 관련하여 한국은 1930년대 일제
강점기 선전(鮮展)부터 1950~1960년대의 모더니즘 미술, 그리고 1970년대의 실험적 아방가르드와 1980년
대의 정치적 미술, 그리고 1990년대 이후부터 시작된 국제적 동시대미술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미술이 보여준 궤
적은 매우 강렬하고 급진적인 것이었다. 나는 최근에 한국의 동시대미술이 1990년대 중후반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
다고 말한 바 있다. 그 이유는 ‘동시대성(contemporaneity)’이 본질적으로 전 세계에 걸친 예술적, 창조적 동시성
(synchronism)을 전제로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시대미술은 전 세계의 지역(local)들이 상호 연결되면서 최
대한 동등하고 호혜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어낸다는 전제가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한국미술이 한국 현지에서 국제
미술의 흐름과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시작한 계기를 1995년의 <제1회 광주비엔날레>라고 본다면, 이후부터 본격적
인 동시대성이 추동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동시대성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말하면서 이 글을 시작하는 이유
는 ‘젊은 작가들’에 대해 언급하려면 한국 현대미술의 ‘압축적 성장’과 ‘동시대성’이라는 이슈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
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압축적 성장과 동시대성은 미술만의 이슈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사회,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부분에서 거론되어야 할 이슈이기도 하다. 젊은 작가들이란 이러한 압축적 변화와 동시대성을 대면하
면서 수많은 모순과 갈등, 압박과 가능성 등을 동시에 경험하는 연령적 ‘계층’이다.한국의 동시대미술은 역시 지난 15년 남짓한 기간에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국제적인 무대에서 활동하는 작가 수
가 늘었을 뿐 아니라 정보, 이동, 전시, 학술, 인프라, 프로그램 등에서 많은 지원과 신설이 이루어졌다. 특히 인프라 부
문에서 통신 인프라인 SNS와 세계 각국의 레지던시를 연결하는 공모체제가 구축된 것은 엄청난 변화라고 할 수 있
다. 우리는 전례 없이 많은 예술가가 배출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수의 시각예술가가 현장에서
활동하는 시대가 되었다. 제도적으로 많은 개선이 이루어진 것만큼이나 인정제도 안에서는 커다란 경쟁적 상황이
형성되었다. 게다가 오늘날의 예술가들은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할 정도로 ‘교육 받은’ 관객과 대중을 상대해야 한다.
전시 상황에서 조우하게 되는 관객들은 경우에 따라서는 전문가마저 뛰어넘는 식견과 경험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
므로 예술에 관한 한 과거 예술가들이 취할 수 있었던 ‘계몽적’ 태도는 더 이상 요구되지 않는다. 2014년을 벌써 한 달
가까이 보내면서 ‘젊은 세대’라는 화제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들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동시대미술은 이제 다시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둘째, 한국은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의 주요 문화 콘텐츠 생산국가가 되었다.
셋째, 모방이나 참조가 아니라 우리가 선택하는 삶의 양상이 그대로 전범이 되는 자발적 생산구조가 떠오르고 있다.
동시대 패러다임과 미술계 구조적 문제점
첫째로, 동시대미술은 앞서 말했듯이 세계 내에서 확보된 ‘동시대성’을 전제로 한다. 통신과 이동의 포화를 통해 이러
한 동시대성이 극대화되면 그때부터는 동시대성의 내부를 조직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유형의 창조적 생산을 이끌어
내는 노력이 시작된다. ‘공동체’란 이 과정에서 새롭게 규정되는 조직의 양태, 혹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다양한 레이어의 공동체들이 만들어질 것이며 예술가 및 예술 전문가들 역시 이 과정에서 강력한 에이전트 역할을
담당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즉 다가올 동시대성은 더욱 유기적이고 복합적인 관심과 관점들에 의해 수많은 결절
청년 작가들이여, 변화를 읽어내자
유진상 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81
(nods)을 만들어내면서 더욱 흥미로운 현장을 만들어낼 것이다. 협업, 창업,
공유와 같은 키워드들이 예술가들에게 더욱더 중요하게 다루어지리라 생각
한다.
두 번째로, 한국은 매우 독특한 문화적 파생물들을 생산하고 있는 다소 예
외적인 후기-자본주의 국가 가운데 하나다. 일본과 더불어 한국은 아시아에
서 대중문화에 기반을 둔 강력한 문화 콘텐츠들을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콘
텐츠들은 보통 소모적이고 수준이 낮은 문화생산물들로 치부되어 왔으나,
최근에는 이러한 문화적 생산구조가 미디어 및 산업과 결합해 이루어내는
파급력이 강하고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실험적 파생물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나는 젊은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필드를 넓힐 것이라고 생각한
다. 실제로 대학을 나와서 모든 졸업자가 재래적 의미의 작가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만큼 선발의 규모가 크지 않
을 뿐 아니라 시장도 성장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은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겠지만, 전통적인 예술 재래시장이
아닌 새로운 파생시장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를 어떻게 예측하고 가시화할 것인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은 관
객, 대중, 시민이 될 것이다.
세 번째로, 한국은 국적일 뿐 아니라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사용해야 할 ‘그릇’이고 그것을 통해 삶의 최대치
를 구현해야 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우리는 간혹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서구
에 대해 가장 부러워한 것은 그들이 정말 ‘재밌게 논다’는 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까지 그들이 노는 방식을 따라
하고 모방해 온 것이다. 심지어 제 3세계의 미술, 음악, 인문대학에서는 제도적으로 서구가 발전시켜 온 ‘즐거움의 생
산’을 교육해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당위’로서 내면화했다. 결국 가장 잘 노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여기서 ‘이긴다’는 표현은 내셔널리즘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승부를 의미한다기보다는
스스로에게 부과했던 종속변수로서의 정체성을 자신도 모르게 극복하는 것이며, 나아가 각자의 존재가 스스로 세계
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우리의 삶을 멋진 스타일로, 쿨한 태도로 내면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나아가서
이를 압도적이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멋진’ 문맥들로 보여주어야 한다. 예술가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에 초점을
두는 것은 답이 아니다. 살아남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삶의 본질적 과제다. 예술을 선택한다는 것은 생존을 훨씬
넘어서는 과제를 추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반면, 이러한 패러다임 속에서 젊은 세대들이 직면하는 주된 문제점들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각각의 개별 세대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시스템이 여전히 불충분하다. 모든 세대는 가치부여(miseen-
valeur) 혹은 인정(recognition)의 시스템을 필요하다. 그것이 없다면 세대는 내부로부터 붕괴되거나 외부에
의해 몰인정의 상태에 놓일 것이다. 가치부여는 시선, 감탄, 선발, 비평적 인정, 토론, 유통, 재인정 등의 과정을 통해 조
금씩 공동체 내의 확신과 승인을 얻어가는 과정이다. 우리 사회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독일이나 러시아처럼 모든
관심이 정치, 사회, 경제적 문제들에 몰려있는 독특한 전방(前方) 국가형 사회다. 이념적 투쟁이 모든 화제의 중심이
된다. 따라서 가치가 이념적, 윤리적, 도덕적 가치로 수렴되는 상황 역시 가치의 분열을 초래하게 된다. 왜냐하면 모든
“‘젊은 세대’라는 화제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들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동시대미술은 이제 다시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둘째, 한국은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의 주요 문화 콘텐츠 생산국가가
되었다.
셋째, 모방이나 참조가 아니라
우리가 선택하는 삶의 양상이 그대로
전범이 되는 자발적 생산구조가
떠오르고 있다.”
개인이 이러한 가치를 내면적인 최고치로 받아들일지 불분명하기 때문이
다. 한국에서 예술의 가치부여 체제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예술적 가치에 대한 공동의 이해가 수립되어 있는 국가들에서와 달
리, 예술가들 스스로 자신들이 생산하고자 하는 가치를 규명하고 강요하는
어려운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두 번째로, 이러한 예술적 가치 생산을 지원하고 따라잡는 재정적 선순
환구조가 부재한다. 그리고 선순환구조는 예술시장에 의해 해결되어야 한
다. 나는 예술이 공공지원에 의존하는 상태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또한 예
술시장은 즐기는 시장이지 언제까지나 버텨야 하는 시장이 아니다. 예술시
장이 답답한 콘텐츠들로 채워져 있다면 이것은 대학이나 현장을 통해 시급히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무엇이 흥
미로운 것인지에 대한 공감과 인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예술에는 답이 없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서로의 얼굴만 바라
보고 있을 수도 없다. ‘미술판’은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수 십 혹은 백 개 이상의 서로 다른 ‘판’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
시아프>와 <공장미술제>는 서로 다른 ‘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울만 해도 문래동, 연희동, 상수동, 사간동, 평창동,
청담동 등은 전혀 다른 풍경의 판들을 만들어낸다. 한 사회의 미술은 이렇듯 다양한 ‘판’들이 연결되고 겹쳐져 있음으
로써 훨씬 풍요롭고 다양한 취향과 태도들을 수용할 수 있게 된다. 문화와 역사, 지역과 계층, 교육적 출신성분과 또래
집단의 형성 과정, 시장의 특성과 제도적 지원 방식에 따라 이러한 판들은 전혀 다른 세계들을 만들어낸다. 20세기 초
파리 몽마르트르라는 작은 지역에는 약 500여 개의 서로 다른 집단이 상이한 판들을 형성하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유럽과 북남미를 중심으로 세계 각국에서 모인 예술가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었다고는 하지만, 현재 한국의 미술풍
경 안에서도 이에 못지않은 다양하고 뜨거운 판들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나는 이들이 관객들에게 자신들의 가치를
강요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시민들이 재정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는 수준 높고 흥미로운 예술이 범람하게 되
길 바란다.
1990년대 초에 홍대 앞의 바에서 매일 저녁 만나던 작가들이 생각난다. 이들은 지금 50대의 중진작가들이 되었으
며 여전히 바에서 만나고 있다. 이들과 함께 한 세대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내게는 커다란 기회이자 즐거움이다.
나는 청년작가들 역시 그들만의 행복하고 흥미진진한 세대를 만들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이 성공하기 위해
서는 변화를 읽어내고 그것을 즐겨야 한다는 점을 말해주고 싶다. ●

[특별기획] 버티기, 우기기, 쑤시기

contents 2014.02. Special Feature | 버티기, 우기기, 쑤시기
공성훈 l 작가, 성균관대 교수
얼마 전에 모 케이블 방송에서 준비하고 있는 미술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심사하러 다녀왔습니다. 심사의뢰를 받고 처음에는
‘별걸 다 하네’ 하며 회의적이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이미 전시 지원과 레지던시 등 각종 공모
를 통해서 작가를 선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진 상태에서 방송에서는 좀 의심스러운 작가들(?)이 맹활
약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보다는 치열하고 진지한 작가들이 매스미디어에서 제대로 된 작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
했습니다. 오디션이 작가로서 단지 출발점임을 유념한다면, 그런 작가들이 미술의 생태계를 보다 풍성하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항상 그래 왔지만, 세상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작가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 세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버티기’ ‘우기
기’ ‘쑤시기’가 그것입니다. ‘버티기’는 작가로서 먹고살면서 생존하는 것, ‘우기기’는 남이 자신을 이해할 때까지 계속 보여주고 혹시
이해하지 못하면 암기할 정도로 보여주라는 것, ‘쑤시기’는 올바른 사람을 만나고 올바른 방향을 잡으라는 것입니다. 버티면 작가로 남
고 우기면 작가로서 알려지고 쑤시면 좋은 작가가 됩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또 나라를 막론하고 작가로서 버티는 일은 참 힘듭니다. 마치 추운 겨울에 짧은 이불 덮고 자는 것과 같아서 머리
를 덮으면 발이 시리고 발을 덮으면 머리가 시립니다. 위에서 세상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지만 특히나 작가로서 버티는 환경이 많이 바
뀌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와서 젊은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지원제도 많이 생겨서 흔히들 젊은 작가들이 작업하기 좋은 환경
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아르바이트할 게 별로 없습니다. 예전에는 학원
이나 입시 화실에서 강사로 일하면 들이는 시간에 비해서 꽤 쏠쏠하게 벌 수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입시학원의 강사 자리가 있지만
예전에 비해 전문화되어 있다보니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청년층의 임금도 싸졌고요.
공모를 통해서 창작 스튜디오에 입주해도 1년마다 이사 다니기 바쁩니다. 작가 레지던시 공간만 늘릴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작업실
지원정책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그럭저럭 작품성을 평가받아 미술관급 전시나 국내 비엔날레에 참여해도 아티스트 피(artist fee)
가 없습니다. 큰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뭘 먹고 살라고 그러는지. 아티스트 피가 없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미술시장이 커지면서 젊은 작가들 중에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그렇지만 몇 개의 스타일에 한정되어 있고 지
속가능성도 불확실합니다. 그래도 미술계 자체는 참 공정해졌습니다. 아마 바둑계 다음으로 공정해진 것 같습니다. 예전처럼 줄 안서
도 됩니다. 보는 눈이 많아졌으니까요. 대학의 권력이 줄고 상업과 기획의 힘이 커진 까닭도 있습니다. 그런데 미술계의 히에라르키
(hierarchy)라고 할까 작가의 지위가 변한 느낌입니다. 앞서 말한 작가 오디션 프로그램 모집기간에 지원 여부를 놓고 젊은 작가들이
눈치를 본다는 인터넷 기사를 읽었습니다. 출연하고는 싶지만 미술계에서 나쁜 평판을 얻을까봐 망설인다는 거죠. 심지어 평론가에게
지원할지 말지 여부를 묻는 문자메시지가 오기도 했답니다.
요즘에는 작가들이 여기저기서 심사를 받습니다. 기회가 많아지고 공정해지고 그래서 좋아지긴 했지만 작가들이 남의 시선을 끊임
없이 의식하게 된 것 같습니다. 당장 눈앞의 경쟁에 익숙하다보니 서로서로가 개인화되고 ‘작가 커뮤니티’도 약화된 듯합니다. 예전에
는 작가들이 전시를 조직하고 이슈를 생산해내며 주도적으로 움직였는데 제도가 강해지다보니 작가들이 ‘Sleeping Beauty’처럼 자신
이 선택되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작가 없는 미술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평론가도 저널도 갤러리
도 없어도 됩니다. 작가만 있으면 미술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미술계의 모두를 존재하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작가
‘가 되는 것은 독립적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백이라는 말 대신 ‘Author’라는 칭호를 붙이는 것은 작가가 세계에 대한 어
떤 독립적 태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독립적이려면 외롭습니다. 그래서 친구도 필요하지만 동지가 필요합니다. 예술적 동지
말입니다.
젊은 작가 대부분이 느끼는 현실적이거나 예술적인 문제들은 비슷합니다. 비슷한 문제들이 많다는 것은 그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
라 구조적인 문제이고 연대해야 하는 문제라는 뜻입니다. 사회 문제이든 미술계 문제이든 서로서로 공유해야 버티기 쉽습니다.
청춘에게 어려운 세상이지만, 그리고 작가라서 더 어려운 삶이지만 후배 작가분 모두 세계에 맞먹는 무게감을 지닌 예술가로서 성장
하시길 빌며 지면 관계상 군소리 그만 하고 이만 총총…. ●

[특별기획] 그리기, 감각의 재구성

contents 2014.02. Special Feature | 그리기, 감각의 재구성

위 왼쪽・손승범 <어릿;한 지도자> 장지에 채색 163×262cm 2013
오른쪽・김현정 <고요한 숲의 계절> 캔버스에 유채 130.3×162.1cm 2013
아래・강호성 <우리 시대의 동화 신화 읽기> 비단에 채색 180×600cm 201

왼쪽 위・고권 <바람 센 날>
한지에 먹 채색 72×60cm 2013
오른쪽 위・홍수정 <Nymph Forest 2>
캔버스에 아크릴 90×90cm 2013
가운데・류노아 <고민상담 Friends>
캔버스에 유채 130×162cm 2013
아래・김보경 <그린리듬그래프> 가변크기
종이 위에 아크릴 나무 2012

위・이화평 <유린옐로우> 디지털프린트 100×240cm 2013
아래・김진욱 <4 color of bibim> 148cm(원형) 혼합재료 2013왼쪽페이지
왼쪽・이우성 <가장 빛나는 별> 캔버스에 과슈 130.3×162.2cm 2012
오른쪽・김희연 <정지한 낮> 리넨에 아크릴 193.9×372.8cm 2012

위 왼쪽・윤진초 <Reigen_burden>
모노타이프 프린트 30×21cm 2013
가운데・이단비 <관점을 달리하면 다르게
명명할 수 있는 법칙적 드로잉 3>
crystal photo frame 50×60cm 2012
아래・김범종 <엮어내기>
종이에 먹 아크릴 380×280cm
가운데 왼쪽・장종완 <천개의 눈을 가진 밤>
캔버스에 유채 90.5×118cm 2012
오른쪽・전희경 <인간되기>
캔버스 위에 아크릴 116×91cm 2013
아래・배윤환 <Playground>
캔버스에 유채 파스텔 132×223cm 2013

위・이세준 <무한을 유한 속에
담는 방법&> 캔버스에 유채
183.3×738.1cm 10pcs 2013
가운데 왼쪽・김수민
<월화수목금금금>
캔버스에 종이컵 펜 아크릴
37.9×45.5cm 2013
오른쪽・신준민 <Dal-sung Park>
캔버스에 유채 181×227cm 2013
아래 왼쪽・윤향로 <299>
offset-printing 17×26×1cm 2013
오른쪽・조은주 <Empty Space>
162.2×130.3cm
장지에 혼합재료 2012

위 왼쪽・박종찬 <구영3길 81>
박스에 아크릴 가변설치 2012
오른쪽・김민주 <휴가(休家)>
장지에 먹과 채색 130×157cm 2012
가운데・이주리 <마지막 도시>
캔버스에 펜 아크릴 227×362cm 2013
아래・박기일 <Engine 9>
캔버스에 아크릴 130×194cm 2010

왼쪽 위・김혜나 <Duvet>
캔버스에 유채 162.1×130.3cm 2013
가운데・임영주 <신목167 East>
캔버스에 유채 73×91cm 2013
아래・구지윤 <일요일 오후>
캔버스에 유채 22×27.5cm 2013
오른쪽 위・김봄 <어떤 동네-개와 고양이>
종이에 아크릴릭 64×100cm_2012
가운데・조종성 <정물화된 풍경>
장지 위에 먹 66×62.5cm 2013
아래・빈우혁 <A man is standing near ofrest>
캔버스에 유채 차콜 240×330㎝ 2013

위・김해진 <옥상> 캔버스에 유채 24×33.5cm 2012
아래・오희원 <Blind Site : White Scene> 캔버스에 유채 89.4×130.3cm 2014
내가 신진이라는 ‘표현’을 피부의 체감으로 의식하게 된 것은 2006~2007년, 미술시장의 풍경 속에서였다. 보다 빨리, 먼저 “신진”을
찾아내야 한다는 미션은 최대 마진을 추구하는 화랑들의 전략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새로운 얼굴은 곧 어린 얼굴들이었고, 화랑들
중 일부는 작가와의 파트너십이 생기기도 전에 상품을 주문하듯이 그들의 취향(?)을 신진작가에게 요구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생산
적이어야 둘의 관계를 단순한 ‘속도전’의 양상으로 치닫게 만들었다. 불과 몇 년 사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시장의 거품 뒤에는 갤러리에
대한 냉소가 부풀대로 부풀어 있었다. 이제 어린 작가들도 상업 화랑에서의 작품 발표를 조심스러워하는 것 같다. 유통에 대해 터부
(taboo)시하는 작가들의 분위기는 안타까운 일면이기도 하다. 반면 이러한 불안은 젊은 작가들에게 발표 기회를 직접 찾아 나서게 하
는 동기로 작용하면서 정부나 지자체, 기업에서 운영하는 여러 가지 작가지원제도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아마 지원제도는 작
가들이 느끼기에는 더욱 비주체자로서의 확인과 허무함이 남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최종적으로 본인이 혜택을 받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 공모제도이다. 나는 프로그램에 선발된 작가가 지원제도와 혜택을 고사했다는 이야기를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작가들 중 누구도 작가지원제도의 순기능 자체를 부정하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락의 패배감은 실체도 형체
도 확인되지 않은 음모와 부정의 유령을 좇게 만든다. 사실 사회 시스템에서 구성원 모두의 여건을 수용할 수 있는 절대의 값, 궁극의 구
현이란 처음부터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다만 주최자가 기관의 철학을 굳건히 가지고 최대한 투명하게, 객관적인 과정으로 ‘최선’의 노
력하는 것이 건강한 제도의 할 일일 것이다. 더불어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지평에서의 지원정책을 늘려가는 것이 당면한 숙제이다.
한편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겪고 있는, 나와는 (세대적 측면에서) 그리 큰 차이도 없는 20~30대의 작가(우리)들은 흔히 일컬어지는
88만원 세대다. 그들은 해결이 어려운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도 주체성을 향한 적극적인 의지를 실천하고 있다. 거부하고 도망갈 수 있
는 것이 생활이 아니듯, 승자 독식의 사회상황을 목격하는 그/그녀는 작업과 동시에 사회와 노동에 대한 의식이 강해졌다. 한국미술사
에서 작가의 삶이 그렇지 않은 시절이 있었겠냐마는 개발도상국의 그림자 속에는 상대적인 박탈감과 허무하게 끝난 기대를 반동에너
지 삼아 사회적 목소리를 내고 있는 작가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젊은 세대의 성장 통으로 치부하기에는 최근 몇 년간 지속적이
고 다소 공통적인 패턴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것은 다수의 경우 비슷한 입장과 철학을 가진 작가들의 연대로 이어지고, 연대가 잉태한
대안적인 주체로써 ‘컬렉티브’들이 태어났다. 굳이 전시 활동을 위한 물리적인 그룹이 아니더라도, 학연이나 또는 지리적 구역을 중심
으로 다수의 구성원이 참여하는 협회들과는 달리 소규모이고 주체적이다. 작가들은 작업실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네트워크를 ‘스스로’
찾아다닌다. 기획자가 되기도 하고, 공간을 운영하기도 하고, 글을 쓰거나 매거진을 만들기도 하고, 아르바이트나 노동활동을 작업으
로 끌어오기도 한다. 협업과 연대의 목적이 미술계에 대한 냉소이거나 자조적인 현실인식이거나 미학적 구현을 위한 것이거나 간에,
비주체적인 염증을 동력 삼아 활동의 외연을 치열하게 넓혀가는 움직임이다. 이러한 연대들은 ‘따로, 또 같이’, 뭉쳤다가 흩어지기를 반
복하면서 미술계에서 작가의 역할을 실감나게 만드는 활력이 되고 있다. 활동반경의 확장은 딱딱한 틀을 느슨하게 만드는 전략에서 주목할 만하다.
미술의 역사에서 작가의 가치가 사후 세대에까지 걸쳐 조명되는 경우를 보아왔지만, 지금의 작가(우리)의 운명은 살아생전에, 심지
어 학교를 마친 후 몇 년 안에 승부를 보아야 하는 경쟁, 검증을 마쳐야 하는 게임처럼 오해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적어도 작가에게 작
업은 평생에 걸친 고민해야 할 터이기 때문이다.
결국 ‘신진’은 타자에 의해 호출될 때 비로소 생겨나는 표현인가보다. (본인을 소개할 때 “저는 신진작가입니다”하는 작가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 ‘표현’으로의 신진, 제도의 기준으로서 그것의 반대말이 ‘기성’이라면, 작가라는 말 속에 이미 숙명
적으로 지고 가야 하는 태도로서 ‘신진’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신진세대들을 지켜본 입장을 짧은 글로 전한다는 것이
솔직히 망설여졌다. 순간적이거나 지엽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는 그들을 나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가의 문제를 생각해본다 치면 어
느 순간 별 볼 것도 없는 내 얼굴을 새삼 들여다보는 거울보기와 다를 바 없다는 식의 결론으로 허무하게 돌아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생기기도 했다.
나는 나의 동료인 그들이 영원히, 지금의 순간보다는 앞으로의 미래가 궁금한 작가이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