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TOPIC | BOSTON
Megacities Asia
아시아에 대한 동시대의 평가는 급속한 경제발전을 기반으로 한 도시문화 발달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주목받는 아시아의 도시라면 서울, 베이징, 상하이, 뭄바이 등이 있는 바, 이 도시에 기거하는 작가가 미국 보스턴에 모였다. 보스턴뮤지엄(Museum of Fine Arts Boston)에서 열린 (4.3~7.17)이 바로 그것. 해당 도시의 급격한 성장을 체험하며 성장한 작가들이 각자의 도시를 어떻게 미술을 매개로 풀어내는지 살펴보자.
시적 도시, 메가 시티
최다영 | 독립큐레이터
‘메가 시티(Mega City).’ 우리는 이 단어를 단순히 거대 도시 혹은 대도시, 인구 천만이 넘는 도시로 번역한다. 2009년 도시의 인구가 전 세계 인구의 반을 넘어서는 ‘사건’이 기록되었고, 인구 천만을 넘어서는 초거대 도시도 점차 증가하고 있음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행정적 구분을 넘어 국가 경제력으로까지 해석되는 거대 도시라는 뜻을 지닌 메가 시티. 2015년 유엔의 보고에 따르면 상위 10개 메가 시티 중 8개가 아시아 국가의 수도로 아시아에 집중되어 있다. 현재 1위는 도쿄로 3,800만 명, 2위는 상하이로 3,500만 명이다. 서울은 2,500만 명으로 세계 4위다. 인구 밀집도뿐만 아니라 도시를 중심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만들어낸 아시아 국가들이 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한강의 기적.”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역사와 특징은 이 한 문장에 함축돼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8년 올림픽 이후에 눈부신 발전과 변화에 따른 경제적인 풍요의 혜택을 받은 곳이다. 하지만 급속한 도시 성장 이면에는 소외와 빈부격차 같은 사회의 모순이 심화하고 있었고 최근 그 동안의 결계가 무너지며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문제의 현장을 우리는 온몸으로 마주하고 있다. 작가들은 거대하게 팽창해 나가는 도시에서 어떤 단면을 포착하고 있을까? 메가 시티로 특정지워진 아시아 몇몇 도시의 동시대 미술 현장을 조명하는 전시를 위해 각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작가들이 미국에서 가장 유서깊은 도시 보스턴에 초대되었다. 전시 기획자들은 아시아 메가 시티의 이야기와 그곳에서 도시의 팽창을 겪으며 성장한 작가들에 의해 발화된 형상들이 어떻게 조우하는지 관찰하고자 했다.
뮤지엄 오브 파인 아트 보스턴(Museum of Fine Art, Boston, 이하 ‘보스턴 뮤지엄’)에서 한국, 중국, 인도 작가들을 초대한 <메가 시티즈 아시아(Megacities Asia)> 기획전이 4월 3일부터 7월 17일까지 열린다. 제목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급속도의 성장을 일궈낸 거대 도시를 조명하는 이번 전시에는 서울, 베이징, 상하이, 뭄바이, 델리를 중심으로 거주하고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 19점이 출품되었다. 보스턴 뮤지엄의 알 마이너(Al Miner) 와 로라 바인스타인(Laura Weinstein)이 대표적인 아시아 메가 시티를 일일이 방문한 뒤 총 11명의 작가를 선정했다. 한국에서 전용석(플라잉시티), 최정화, 한석현이, 중국에서 아이웨이웨이(Ai Weiwei), 쑹둥(Song Dong), 후샹청(Hu Xiangcheng), 인슈전(Yin Xiuzhen), 인도에는 수보드 굽타(Subodh Gupta), 앗디티 조쉬(Aaditi Joshi), 헤마 우파디야(Hema Upadhyay), 아씸 와키프(Asim Waqif)가 참여하였다. 이들의 작품은 보스턴 뮤지엄 지하에 위치한 기획전시실 외 미술관 곳곳에 설치되어 유물들과 함께 관람할 수 있다.
세계 4대 미술관 중 하나로 평가받는 보스턴 뮤지엄은 서립된 지 100년이 넘었으며 수준 높은 전시로 명성이 높다. 특히 1854년 일본이 미국에 의해 강제 개항된 이후 일본뿐만 아니라 아시아 각국에서 수집한 미술품이 총 10만 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1994년 이후 19년간 재임한 말콤 로저스(Malcolm Rogers) 관장이 물러나고 대신해 2015년 취임한 매튜 테이텔바움(Matthew Teitelbaum)이 이끄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면서 야심차게 마련한 기획전이다. 참여한 작가들이 포착한 지역을 거점으로 예술의 동시대성을 다양한 층위에서 섬세하게 다루어냈다기보다는 ‘메가 시티 아시아’라는 다소 직설적인 전시 명칭에 걸맞게 아시아 미술 현장을 평면적으로 재단하고 작가들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발화 형식과 구성 방식을 집중 조명한다.
서울을 대표하는 작가로는 전용석(플라잉시티), 최정화, 한석현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공동 기획한 로라 바인스타인은 특히 최정화의 작품세계가 ‘메가 시티’를 주제로 기획하는 데 있어 모티프가 됐다고 전시 오프닝 당시 짧게 언급한 바 있다. 전시 기획 서문에서도 ‘중첩’적이라는 표현을 일종의 키워드로 삼았는데, 이번 전시에서 최정화 외에도 많은 작가에게서 발견되는 특기할 만한 부분은 작품의 구성과 조형 언어에 있다. 다수의 작품에서 보이는 ‘누적’ 혹은 ‘축적’의 표현 방식 때문이다. 이 구성은 최정화의 대표작인 플라스틱 바구니 작업에서 눈에 띄게 드러나는데, 이번 보스턴 전시에서는 많은 관람객이 드나드는 중앙 계단 로비 쪽에 층층이 쌓여 일종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2016)는 시내 99센트 마켓에서 찾은 듯 보이는 바구니와 플라스틱 장식품들을 화려하면서도 위태롭게 쌓아 올린 작품으로 그 모습은 마치 메가 시티들이 단시간에 만들어낸 도시의 형국과도 유사하다.
아시아의 도시, 내부의 직설적 제시
이러한 표현 방식은 베이징을 대표하는 아이웨이웨이의 작품에서도 드러나는데, 이 작품 또한 미술관 로비 중앙에 설치되어 메가 시티즈 아시아가 바로 이러한 축적의 이미지와 관계 있음을 전달하는 데 이번 전시 기획 의도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전시 출품작 (2003)는 베이징 도시 생활자에게 자전거가 주는 의미를 통해 도시 사회사를 기리고 있다. 자전거로만 조립되어 그 형태를 유지하는 이 작품은 로비에 많은 사람 사이에 위태롭게 버티고 서있으며, 첩첩이 쌓여있는 구성은 언제든지 무너질 것만 같은 불안함을 드러낸다.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작품은 작가 쑹둥의 (2005~2006)이다. 베이징에서 태어나 자신의 개인적인 역사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작업세계로 잘 알려진 그는 이번 전시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발표해온 연작 중 대표 작품을 선보인다. 베이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의 가족들이 살아온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한 이 작품은 천장에 비둘기집을 만들고 아래는 오래된 후통(골목)에서 그대로 가져온 문짝과 기왓장들을 블록쌓기 하듯 쌓아 올려 간신히 한 칸 정도의 집 형태를 갖춘 공간 설치작업이다.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은 전통적인 베이징 노동자 계급의 집의 형태를 설명한다. 지금의 베이징에 수도 없이 세워지는 화려한 고층 아파트의 형세와 사뭇 다르나, 오랜 세월을 견뎌낸 문짝이 서로 기대고 기대어 구축된 좁디좁은 공간에선 아늑한 온기가 느껴진다.
뭄바이를 기반으로 활동하던 헤마 우파디야 역시 전시에서 주목할 만한 작가이다. 그는 불행히도 지난 해(당시 43세) 전시 준비 기간 중에 살해되어 전시에 참석할 수 없었지만, 뭄바이의 오래된 슬럼가인 다라비(Dharavi)의 모습을 기록한 설치작품 <8’×12’>(2009)와 수십 개의 장난감 새로 구성한 (2011)가 이번 전시에 초대되었다. <8’×12’>(2009)는 너무나 촘촘히 들어서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인도 슬럼가의 집들이 마치 인형 집처럼 마구잡이로 엉켜있는 형상이다. 이 구역 내에서 과연 인간적인 삶이 가능할까하는 의문까지 들게 하는 이 작업은 커다란 컨테이너 박스 안쪽에 붙어 대도시가 번영해가는 메커니즘을 적나라하게 설명하고 있다. 또한 그의 두 번째 작업은 장난감 새 수십 마리가 한 줄의 글귀가 적힌 종이를 물고 한 줄로 나란히 앉아있는 형태다. 이 새들은 클레이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모두 인도 토종이 아닌 외래종 새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뭄바이에 살고 있는 이민자들을 상징한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뭄바이의 생활자들 속에서 소외받아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나타낸다.
이 외 한창의 개발 논리에 따라 공사 현장이 도시를 뒤덮었을 때 일각에서 웰빙 문화를 주장하며 내놓았던 초록 플라스틱 병들과 제조된 도구들을 쌓아 설치한 한석현의 (2011) 현대 서울의 도시문화와 공간을 연구하고 비평을 목표로 작업하는 플라잉시티 전용석의 작품, 격변하는 인도 도시의 사회 문제를 일상의 오브제를 이용해 꼬집어 드러내는 수보드 굽타의 작품 등 한국, 인도, 중국 작가들의 작품을 묶은 <메가 시티즈 아시아>는 경제의 급속한 성장으로 거대 도시가 된 생활권 내 예술가들이 어떠한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지를 관찰하고 있었다.
이번 전시는 급속도로 거대해진 아시아의 도시를 중점적으로 다루며 그 속 도시 생활자이자 동시대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조형적 언어를 직설적으로 드러내고자 하였다. 그 속의 문화와 사회의 현상을 ‘중첩’, ‘반복’을 키워드로 삼아 압축적으로 설명하면서, 중첩의 언어를 운율로, 반복의 위태로움을 역설적으로 시적으로 환원하려는 기획자의 의도가 엿보인다. 하지만 본 전시는 표면의 일부만 직설적으로 전달하는 방식과 더불어 다양한 층위의 동시대 거대 도시 미술 현장의 모습을 드러내는 점에서는 다소 한계가 있었다고 보인다. 그 동안 동시대 현대미술의 현장과는 동떨어진 기획 전시로 주목받지 못했던 보스턴 뮤지엄이 이번 전시를 계기로 추후 다양한 전시를 선보이길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