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REVIEW 백정기
화면에 구축된 대상을 표현하는 재료는 바로 그 대상에서 추출했다. 열에서 전기, 다시 열로 변환하는 에너지의 순환을 통해 생명이 탄생한다. 수분을 상실하여 쩍쩍 갈라진 흙 사이는 바세린겔로 메워 더 이상의 건조를 막는다. 이렇듯 백정기가 구축한 작품은 비가시적인 운동의 기운을 구체적 장치와 행위로 보여준다. 모두 그의 개인전 <Mind Walk>(두산갤러리, 6.3~7.4)이 이야기하는바, 백정기가 작품에 녹여낸 ‘수행’의 과정을 살펴보자.
의사(擬似, 意思)적인 공감의 미술
민병직 대안공간루프 바이스디렉터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상대의 조건이 되고 그렇게 인연이 되어 서로에게 복잡, 미묘하게 영향을 끼치면서(연기론(緣起論)) 중층적으로 이어진다(중중무진(重重無盡))는, 불가(佛家)의 가르침처럼 이번 백정기 개인전도 우연하게도 가뭄이라는 지금의 심각한 자연재해를 떠올리게 해서 기묘한 느낌이 앞섰다. 가뭄으로 타들어가는 대지처럼 보이는 <기우제> 때문인 듯싶은데, 물론 작가가 이 작품을 지금의 현실과 직접적으로 연결시킨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런 마음을 담은 기우제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 것이다.
전시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바깥 현실과의 이러한 연결들은 사실 외적인 것이고, 개인적인 느낌에 불과한 근거 없는 것들이겠지만 세상사란 어쩌면 이렇게 근거 없는 것일지라도 마음의 동(動)함에 따라 현실에 특정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가뭄으로 세상이 타들어가니 자연 앞에 무력한 한낱 인간으로서 그 비과학적인 효능효과와 상관없이 기우제라도 지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고, 다시 말해 근거 없는 믿음이라도 가지고 싶은 심정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한 간절한 마음이 쌓여야 세상의 어떤 변화들이 생기는 법일 테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의 작업을 굳이 동양적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그 바탕에 서양의 이성 혹은 과학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 혹은 그 한계에 대한 인식이 작동한다고 할 수는 있겠다. 물질과 정신, 인간과 자연을 이분법적으로 구획, 분리하는 사유의 흐름들 말이다.
작가는 이러한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의 설정들을 문제시하고, 그 분리 이전의 통합된 원형 상태를 지향한다. 곧 세상 만물이 서로 교류, 융합되어 있어 끊임없이 상호간에 영향을 끼치면서 돌고 도는, 혹은 주름 짓고 펼쳐지는 그런 사유체계에 대한 선호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작가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서구의 과학적인 방법론과 테크놀로지를 차용한다. 서구의 과학적 사유의 한계를 드러내고 비판하기 위해 다시 과학적인 방법론을 ‘전용(appropriation)’하는 셈인데, 그런 면에서 일종의 의사(擬似, pseudo)과학, 혹은 주술이나 연금술에 가깝고, 과학적 원리의 엄밀한 작동보다는 특정한 의미의 연결이나 발현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은 예술적 실험이나 행위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작가의 의중이 드러나는 작업이 <기우제>다. 전시장 한 벽면을 흙으로 바르고 흙과 함께 벽면에 접착시킨 물이 증발하면서 생겨난 균열된 틈을 바세린으로 메운 이 작업은 작가가 지향하는 바를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비가 오기를 소망하는 행위에 불과한 기우제는 인간의 어떤 행위나 물건들이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다는 (잘못된) 생각과 믿음으로, 그러한 힘을 이용해서 목적을 달성하려는 일종의 주술 행위이다. 비/반과학적 행위일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대지의 갈라진 틈을 메울 수 있도록 상징적 염원과 소망으로써, 대자연을 치유하고 순환케 하는 각별한 의미를 담아내는 행위인 것이다.
작가 역시 이러한 의미에 더해 자신의 작업 일반을 함축하는 (예술적) 대상의 갈라진 틈을 메우려 한다. 이때의 갈라진 틈은 실재 작업에서 갈라진 물리적 틈일 수도 있겠지만 대지와 자연의 갈라진 틈, 나아가서 물질과 정신, 인간과 자연의 이분법적인 간극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이러한 간극과 틈을 메우려는 행위는 그렇기에 분리되고 구획된 것들을 연결 접속하고 봉합함으로써 대자연의 원리가 서로 순환하여 흐르도록 하는 근원적인 행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자연 속 물의 역할처럼 말이다. 이런 이유로 작가의 작업에서 특히나 물을 소재로 한 작업이 많은데, 2008년 <Pray for Rain: Mhamid>는 사막화가 진행되는 모로코에서 작가 스스로 샤먼이 되어 한국의 전통 기우제의 요소를 접목한 퍼포먼스 작업이고, 2010년 <Sweet Rain>은 전시공간에 사카린을 섞어 단맛이 나도록 한, 이른바 단비가 내리게 한 관객 참여형 설치미술 작업이다. 이때의 작업들도 실재의 ‘비’라는 물리적인 현상보다는 대지를 순환케 하는 상징적 촉매재로, 물의 특정한 의미를 발현시키는 데 더 관심을 두었다.
의미의 확장과 공감의 전파
작가는 이처럼 어떤 현상의 물리적인 작동 자체보다는 그 물리적 작동과 연동되어 발생하는 의미의 발생과 구현에 더 비중을 둔다. 의미의 구동장치로 테크놀로지를 ‘활용’하고 ‘전용’한 셈이다. 이러한 의미의 발현은 다시 더 많은 의미로 연결, 확장되기도 하는데, 이번 전시에서 물 대신 바세린을 사용한 점은 물(바소르, wassor)과 기름(오레온, oleon)이라는 서로 다른 것들을 융합시키는 바세린의 어원상 의미도 있겠지만 화상으로 인해 신체적 고통을 치유해야 했던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도 연결되는 식이다. 앞서 말한 의미들에 치유라는 의미가 더해지는 것이다. 2007년 <Vaseline Armour> 연작부터 사용한 바세린은 작가가 생각하는 치유의 의미를 잘 드러낸다. 바세린으로 장갑, 투구, 갑옷을 만들어 전신을 보호하는가 하면 건물의 갈라진 틈을 보수하려 했던 이 작업은 작가의 치유 개념이 개인적인 치유인 동시에 사회적인 치유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피부 보습제에 불과한 바세린을 상처를 치유하는 만병통치약으로 사용한 것은 ‘플라시보 효과’ 같은 비과학적인, 하지만 어떤 믿음 때문일 것이다. 주술일 수도 있겠다. 작가 역시 자신의 작업이 가진 이러한 주술적인 면모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이번 전시의 <접촉주술: 새싹, 개나리, 진달래, 영산홍> 연작과 <접촉주술: 16개의 보> 작업은 작품명 자체를 접촉(감염)주술(contagious magic)로 설정했으니 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 연결 융합되어 있으니, 떨어진 후에라도 어떤 기운에 의해 서로 영향을 미치고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감주술(homeopathic magic)’로 명명된 작업도 있는데, <유감주술: 매화>는 작가의 아버지와 함께 협업한 신작으로 예부터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매화를 전기가 통하는 전도성 먹으로 그리고 라디오 전파를 송출하게 안테나 구실을 하게 함으로써, 매화의 신묘한 기운을 도처에서 받을 수 있도록 한 작품이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그러한 기운과 에너지를 받느냐 못받느냐 아니라 그 기운을 확산시키려는 마음, 곧 공감(empathy)의 차원일 것이다. 믿음이나 소망 말이다.
유사한 것은 유사한 것을 발생시킨다는 유감(모방)주술은 사실 잘못된 미신이거나 그 자체로 과학적 타당성, 유효성도 없는 것이겠지만 그 기저에 깔려 있는 간절한 마음이나 선용(善用)의 차원이 더 중요하지 않나 싶다. 기우제 역시 마찬가지다. 비나 물을 바라는 마음을 습한 속성을 유지하게 하는 바세린으로 대체하여 의미를 확장시키고 안테나처럼 널리 전파되는 매화그림으로 매화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널리 공감시키려는 그러한 마음, 혹은 시도 자체가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다시 시도된 <무제: 부화기와 촛불> 작업도 마찬가지이다. 촛불의 열로 전기 에너지를 만들어 계란을 병아리로 부화시키는 가시적인 기계적 작동과 장치에 앞서, 간절한 염원을 상징하는 촛불로 밤의 불길한 기운을 몰아내고 새벽을 알리는 닭을 탄생케 하려는 그 (엉뚱하기만한) 의도가 의미를 갖는 것이다. 작가가 활용하는 과학이나 테크놀로지는 이처럼 마음을 경험하고, 가시화함으로써 이를 관객과 공감하려는 그저, 한낱 장치일 뿐이다. 그렇게 작가는 대립된 세상의 간극과 틈을 연결, 교류, 융합시키려는 엉뚱하지만 의미 있는 실험과 경험들을 통해 과학, 주술, 연금술과 비슷하지만 결국은 그 무엇도 아닌, 자신만의 의사(擬似, 意思)적인 공감의 미술을 펼치고 있다. ●
백 정 기 Beak Jungki
1981년 태어났다. 국민대 입체미술과를 졸업했다. 영국 첼시 미술학교에서 순수미술을 수료하고, 영국 글래스고 미술학교 순수미술과(석사)를 졸업했다. 국내 및 슬로바키아 등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또한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 국내외 다수의 기획전과 그룹전에 출품했다. 현재 서울에서 작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