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영 Soyoung Moon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 ③
문소영, 맥락을 읽고 세상을 엮다

심지언 편집장

The Interview

경제학의 언어로 세계를 읽기 시작한 한 기자는, 그림 속에 담긴 이야기를 쫓아 미술 전문기자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경제, 예술, 저널리즘을 교차하며 세상을 읽는 방식을 제시하는 논설위원이 되었다. 중앙일보 문소영 논설위원이 생산하는 콘텐츠는 개별 작품을 넘어 그것이 태어난 시대와 인간의 욕망, 그리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현실의 좌표를 비추는 역할을 한다. 월간 미술 창간 50주년 기념 인터뷰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의 세 번째 주인공인 문소영의 인터뷰는 한 저널리스트의 커리어 기록이 아니라, 동시대 콘텐츠가 어떻게 세계를 해석하고 연결하는지에 대한 사유를 담고있다.

사진: 아인아 아카이브
이미지 제공: 문소영

서울대 경제학 학사 및 석사, 홍익대 예술학 석사, 런던대 골드스미스칼리지 문화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홍익대 예술학과 박사 과정 중이다. 중앙일보의 영어신문 『코리아중앙데일리』에서 경제부 기자로 시작해 문화부장과 『중앙일보 S』 선데이국 문화전문 기자로 일했다. 『그림 속 경제학』(이다미디어, 2014),『명화독서』(은행나무,2018), 『광대하고 게으르게』(민음사, 2019), 『혼종의 나라』(은행나무, 2025) 등의 저서를 발간했다. 성신여대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앙일보』 논설위원이며 한국콘텐츠진흥원 비상임 이사를 맡고 있다


저널리스트 문소영, 커리어와 시각의 형성

『월간미술』 독자 여러분께 간단한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현재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 일하고 있고, 20년 넘는 경력을 가진 기자입니다.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미술을 워낙 좋아해 독학으로 그림 이야기를 다룬 블로그를 운영하다가, 회사에서 본격적으로 미술 분야를 맡게 되면서 대학원에서 예술학을 전공하여 깊이를 더했습니다. 지금까지 총 6권의 책을 낸 기자이자 필자, 그리고 신문의 관점을 세우는 논설위원으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경제학을 전공한 뒤 기자의 길을 걸어왔는데요,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사실 기자는 우연히 되었어요. 대학원 시절 아르바이트로 당시 중앙일보 에서 영어 서비스를 위한 업무를 맡게 되었는데, 1년 일하다 보니 뉴욕 타임스와 제휴해 정식으로 영어신문을 론칭한다고 함께 일하지 않겠냐는 제의가 있었어요. 그렇게 얼떨결에 기자가 됐어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저랑 맞는 면이 있더라고요. 저는 게으른 주제에 완벽주의 성향은 있어서 일의 마무리를 잘 못 짓는 습성이 있었는데, 기자가 되니 무조건 마감을 맞춰야 하잖아요. 억지로라도 마감을 지키다 보니, 그 과정에서 원고가 생산되고 또 보람을 느끼게 됐습니다.

영문 일간지 『코리아중앙데일리』에서 한국 문화와 경제를 영어로 전달하는 역할을 해왔는데, 그 경험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코리아중앙데일리』는 뉴욕타임스와의 제휴로 출범했는데, 뉴욕타임스 기자 교육 방식을 받아들여 내부 교육이 굉장히 엄격했어요. 예를 들어 보도 자료에 ‘아시아 3위 규모’라는 표현이 있으면, 아시아의 범위와 기준이 무엇인지 등을 집요하게 따지고 의심하게 했죠. 동시에 엄격히 크로스 체킹(교차 검증)하는 훈련을 받았어요. 언어적인 측면에서도 차이가 컸습니다. 영어는 언제나 주어가 명확히 들어가야 하고, 논리적으로 엄밀하게 써야 하는 등 말을 두루뭉술하게 쓰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죠. 그 훈련이 기자로서 기본을 다지게 했다고 생각해요. 또한 편집장이 영미 신문사 출신이었고, 이중 문화적 배경을 가진 구성원이 많은 개방적인 조직이었어요. 국적이 다양한 동료들과 일하면서 그들의 개방적인 시각과 편견을 동시에 경험하며 충돌도 하고, 많은 것도 배웠습니다.

경제부 기자로 출발했는데, 미술을 본격적으로 다루게 된 것은 언제부터 였나요?
개인적으로 활발히 하던 블로그 활동이 계기가 됐어요. 블로그가 알려 지면서 책도 내고 강연도 하게 되었어요. 그러던 중 2007년 중앙일보의 주말판인 『중앙SUNDAY』를 론칭하며 제 출판과 강연 활동을 본 선배의 제안으로 미술 칼럼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2010년에 영어신문 문화부 데스크가 갑작스럽게 공석이 되면서 제가 그 역할을 맡게 됐어요. 직급은 평기자인데 문화부장 일을 맡게 된 거죠. 앉아만 있는 데스크는 싫어서 직접 미술 현장을 취재하겠다고 나섰어요. 미술을 독학으로 했으니 고전 미술이나 20세기 초 모더니즘까지는 다룰 수 있었는데, 현장에 나가 동시대 미술을 접하니 한계가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정식으로 공부해야겠다 싶어 예술학과 대학원에 진학해 기반을 다졌습니다.

문화 전문기자에서 논설위원으로의 이동은 직함의 변화만은 아닐 텐데요, 기자와 달리 논설위원은 시각이나 콘텐츠를 다루는 범위 등이 크게 확장되었을 것 같습니다.
기자 시절에는 관심사나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다루었습니다. 그러나 논설위원은 현재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는 것들을 다양하게 다루어야 해요. 제가 스포츠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동계올림픽과 관련된 사회 현상을 써야 하는 것처럼요. 그러다 보니 강제로라도 시야를 넓힐 수밖에 없었어요. 사실 영국에서 문화학을 공부한 뒤로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와 같은 연재를 맡으며 시야를 조금씩 넓혀왔어요. 미술을 다루기보다 더 넓은 문화 현상, 이를테면 왜 사람들이 ‘의절’ 대신 ‘손절’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나와 같은 것들을 분석하면서 점점 사회적 맥락으로 관심사와 시야를 확장해와서 그 부분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문화 현상을 읽어내는 콘텐츠

취미로 시작한 ‘미술관 속 비밀도서관’은 5.6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블로그입니다. 짬짬이 쓴 글로 블로그를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처음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지금까지 유지해 온 동력은 무엇인가요?
혼자 공부하며 알게 된 정보가 너무 재밌는데 나만 알고 있으니 입이 근질거리는 마음이 시작이었어요. 마침 블로그 문화가 막 꽃피기 시작하던 시점이라 이 신매체에 이야기를 풀어보자고 블로그에 글을 올렸는데 반응이 무척 좋았어요. 그러다 보니 신이 나서 더 하게 되었죠. 그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블로그로 모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무척 재미 있었어요. 독자들의 댓글과 응원 등 다양한 반응이 큰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문소영 논설위원의 저서 『그림 속 경제학』(이다미디어, 2014)와
『혼종의 나라』(은행나무, 2024) 표지

미술과 문화 현상을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읽어내는 특유의 시각은 어떻게 형성되었나요?
제가 블로그에 처음 쓴 글이 ‘미술로 보는 신화와 문학’이었어요. 저는 그림 속에 담긴 이야기를 읽어내는 것을 좋아했는데, 같은 그리스 신화 얘기도 작가마다, 그리고 시대에 따라서 다르게 표현한 것을 비교하는 것에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역사적 맥락에서 그림을 보게 되었죠. 한 작품을 작가가 처했던 시대적 상황으로 접근하는 편인데 거기에는 경제학의 영향이 있다고 봅니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원래 철학에서 출발했고, 한정된 자원으로 어떻게 인간이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를 연구라는 학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술도 사회적 맥락에서 바라보게 된거죠.

문학과 영화, 미술작품과 철학, 사회사까지 아우르며 촘촘히 엮어내는 글의 전개를 보며 필자만의 소재별 콘텐츠 폴더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평소 자료 조사와 정보를 관리하는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나요?
특별한 폴더가 있다기보다 머릿속에서 정리하는 편입니다. 원체 생각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는 편이라 무언가를 엮고 꿰는 것을 잘하게 됐어요. 여기저기 쌓여 있던 정보들이 어떤 하나의 주제를 생각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유기적으로 엮여서 나옵니다. 또한 제가 ‘검색의 대가’예요.기자 생활을 하며 어떤 검색어를 넣어야 원하는 답을 빠른 시간 내에 찾을 수 있는지를 익혔고, 처음 보는 자료도 빨리빨리 이해하고 습득하는 훈련을 해왔습니다. 이렇게 빨리 습득하고 이해한 것들이 쌓여 소화되고 콘텐츠로 나오는 것이죠.

같은 주제를 책, 신문, 인스타그램 등 다른 매체에 담아낼 때, 콘텐츠의 방향을 조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기사는 확실한 포맷이 있어 거기에 맞추어 작성하지만, 블로그에는 인간미 있는 글을 쓰고, 인스타그램은 처음부터 감정을 담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등 차별화를 두고 있습니다. 신문 기사는 감정을 배제한 채 사실을 중심으로 완전히 중립적으로 작성하는 것인데, 요즘은 기사와 사설, 칼럼 같은 오피니언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고 있어요. 지금은 독자가 오히려 객관성 너머 의견까지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죠. 한편 깊이 있는 단행본 중 정보 전달의 성격이 강한 콘텐츠는 리서치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 그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해야 쉽게 쓸 수 있다는 점이에요. 신문사에서도 엄하게 교육받은 것이 그 부분이었어요. 빠르게 숙지하고, 소화해서 내 언어로 다시 쓰는 훈련, 기자 생활이 만들어준 글쓰기 태도죠.

2019년 돌연 휴직 후 유학을 결심하셨어요.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게 만든 결핍이나 갈증은 무엇이었나요?
그 시기에 무언가 정체된다는 느낌과 자리를 옮겨야 하지 않나 등의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입사가 2000년 말이었고 유학을 2019년에 갔으니 18년간 일하고 난 후였죠. 오래 일하다 보면 오는 변화에 대한 고민이 본격화된 시기였죠. 제가 즉흥적인 기질이 있어요. 막연히 6개월에서 1년 정도 영국에서 공부하고 싶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시기에 갑자기 유학을 가야겠다 마음을 먹고 실행하게 되었습니다.

2024년 출간한 『혼종의 나라』에서 K-컬처의 성공을 ‘혼종성’이라는 키워드로 분석했습니다. 이전 책들이 미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있었다면, 이 책은 더 넓은 사회 문화 비평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책의 바탕이 된 칼럼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의 기획과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한 키 아이디어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영국에서 공부했던 2019~2020년은 저에게 큰 전환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BTS 공연에 사람들이 열광하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타면서 한국의 달라진 위상을 경험했습니다. 동시에 영국에서 지금 우리를 지배하는 서구 모더니즘의 기원을 확인할 수 있었죠. 특히 자연사박물관에 갔을 때 고딕 성당식으로 지은 건물에서 제단이 있어야 할 자리에 찰스 다윈의 조각이 있는 걸 보곤, 이 오래된 박물관에서 우리가 오늘날 당연시하는 동식물 분류와 체계의 초기 모습들을 발견하면서 ‘이 모든 것의 시작이 여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나라는 인간의 혼종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서구 모던 시스템이 제국주의적이고 일방적이며 폭력적이기까지 하지만 나는 이미 이 시스템에서 나고 자랐는데, 이런 시스템이 없던 시대가 과연 더 좋았을까? 나는 근대화와 서구화를 통해 지금의 삶을 누리고 있는데,만약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양반도 아니고, 게다가 여자인 삶이 지금과 얼마나 다른 것일까? 영화 〈아가씨〉의 명대사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가 딱 생각났어요. 그리고 한쪽에서는 케이팝이, 그것도 서구의 영향을 받은 완전한 혼종이 견고한 서구 문화를 흔들고 있는 놀라운 현상을 보게 됐죠. 한국의 변종성과 혼종성에서 오히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내용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단독으로 보도한 「갑신정변 주역 김옥균 한글 편지 영국서 발견」
『중앙SUNDAY』 기사  
2025년 6월

현재 더중앙플러스에서 연재 중인 ‘문소영과 떠나는 아트 여행’은 별도의 구독료를 지불하는 유료 콘텐츠입니다. 무료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독자가 기꺼이 지불하게 만드는 콘텐츠의 힘은 어디서 나온다고 생각하나요?
유료 콘텐츠는 모든 인쇄매체의 절박한 고민이죠. 제가 발견한 힌트는 ‘체험’이었습니다. 독자가 콘텐츠를 보고 직접 갈 수 있는 곳, 즉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정보’일 때 반응이 압도적으로 좋더라고요.『중앙SUNDAY』 기사 중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을 따라 서촌 일대를 걷는 루트가 좋은 참조 사례입니다. 조선시대 최고 부촌이었던 장동(청운효자동)은 정선의 후원자였던 안동 김씨 가문의 위세가 대단했던 곳이죠. 인왕산과 북악산이 품고 있는 그 높은 지대에 서면 ‘이래서 그들이 여기 살았구나’라는 느낌이 확 옵니다. 이런 뒷이야기들과 함께 조선 후기 전란이 끝난 후 경제적 여유와 조선 산천 여행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우리 산천을 그림에 담던 당시의 ‘부심’ 섞인 정서가 담긴 작품을 소개하면, 독자들은 몇백 년 전 이야기에서 현대인과 다를 바 없는 생생한 연결고리를 발견합니다. 결국 내가 직접 돌아다니며 볼 수 있는 장소에 역사와 문학을 엮어내는 실감 나는 인문학이 유료 콘텐츠로서 독자들에게 선택받는 콘텐츠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본인 기준에서 ‘좋은 콘텐츠’란 무엇이며, 어떤 글이 오랫동안 살아남는 생명력을 가진다고 보시나요?
필자 자신이 그 주제에 대해 완벽히 소화하고 흥미를 느껴야 좋은 콘텐츠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독자는 필자가 정말 흥이 나서 썼는지, 예의상 썼는지를 단번에 알아채더라고요. 저는 대안 없는 비난은 지양하지만, 명확하게 할 말이 있을 때는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기만의 확고한 관점을 콘텐츠에 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필자가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쓴 글이야말로 강렬한 에너지를 가지며 독자의 반응을 끌어낸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나의 기사를 꼽는다면?
우선 작가들과 깊이 있게 진행한 인터뷰 기사들을 꼽고 싶습니다. 서도호, 김수자, 구본창, 안토니 곰리, 피에르 위그 등 작가들이 인터뷰 기사에 만족해할 때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기획 기사 중에는 생성형 AI 붐이 본격화하기 전인 2023년 초에 썼던 「[AI 예술 시대] ‘싸우는 국회의원’ 만평 형태로 뚝딱, 우주 거북선은 실패…“창작 경쟁자 아닌 파트너”」와 같은 AI 예술 기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2024년 말에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조선 궁중화가 이택균의 책가도가 가치에 비해 너무 낮은 추정가에 왔을 때, 분연히 추정가보다 높은 가격에 제가 직접 응찰하고 그 경험담을 쓴 기사가 기억에 납니다. 그 책가도는 나중에 보니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구입했고 《조선민화대전》에 그 책가도가 나왔어요. 반가운 마음에 또 관련 기사를 썼습니다. 또한,「그 많던 민족기록화의 행방: 교과서에서 봤던 강감찬 귀주대첩 그림,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2024년 4월), 「복을 부르는 물건의 진화: 복주머니 복조리에 담았던 복, 요즘은 달항아리에 한가득」(2025년 1월), 「K오컬트의 진화: 판타지 액션 로맨스로 흥행 코드 된 K귀신 K무당」(2026년 7월)처럼 예술과 역사, 사회학을 엮은 기획 기사들, 케임브리지대 오지연 사서의 도움으로 작성한 「갑신정변 주역 김옥균 한글 편지 영국서 발견」 단독 기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칼럼 중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시리즈는 모두 자부심을 가지고 썼습니다.

AI가 기사를 쓰는 시대입니다. 저널리스트만이 가질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지점은 무엇일까요?
좀 오만한 생각일 수 있겠지만, AI는 우리가 활용하는 대상이지 우리를 대체하지는 못한다고 자신해요. AI는 진부하게 좋은 글은 쓰지만, 독자적인 관점이 담긴 훌륭한 글은 작성하지 못하거든요. 그러니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영혼 없는 글을 생성하죠. 저는 AI를 활용할 때 어떤 주제에 대해 질문을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내용을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결국 좋은 글을 만드는 기반은 자기만의 관점과 논리 전개죠. 따라서 AI와 잘 협업하려면 그 콘텐츠에 대한 깊은 이해와 명확한 관점이 먼저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선배들이 다시금 강조하는 것이 현장 취재와 인터뷰의 힘입니다. 더 많은 현장을 살피고, 전문가에게 질문해 다양한 관점을 담아내는 기사가 더 읽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문기자로 오래 활동하신 입장에서 한국 미술계를 어떻게 보는지요?
한국 작가들의 수준은 이미 서구와 다를 바 없이 훌륭합니다. 다만 미술계가 여전히 웨스턴 리버럴(서구 자유주의 엘리트)의 담론과 비엔날레 문법에 지배당하고 있는 부분이 아쉽습니다. 대중문화가 “아카데미는 로컬일 뿐”이라고 선언하며 주류를 뒤흔든 것처럼, 미술계도 그들의 인정을 갈구하기보다 우리만의 변종적이고 독창적인 목소리를 낼 때라고 봅니다. 저는 동시대 미술 자체가 가진 관습화된 문법에 대해 일종의 회의를 느끼며 이제는 새로운 판도가 필요한 전환점이라고 진단하고 있어요.

요즘 새롭게 관심을 가지는 주제나 분야는 어떤 것이 있나요?
요즘 기술과 자본의 흐름에 관심이 생겼어요. 자본과 기술의 움직임이 곧 세상이 변하는 방향을 보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영국 유학 시절 느꼈던 서구 진보 담론의 한계를 목격하며 세상을 보는 관점이 많이 변했습니다. 과거에는 의심치 않았던 국제기구들의 권위나 엘리트 중심의 이념들이 과연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최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적색육(赤色肉) 논쟁은 단순히 건강 식단의 문제를 넘어 식단에 기후 담론을 넣으려는 이들과 그 담론에 의문을 제기하고 전통을 중시하는 세력 사이의 이념과 문화 대결이죠. 내가 식탁에서 고기를 먹느냐 마느냐의 문제조차 이토록 정치적인데, 예술계는 오죽하겠나 싶어요.

지금의 세상은 20세기 후반을 지배해온 구(舊) 서구 글로벌리스트 리버럴 엘리트 세력과 이에 동의하지 않는 신흥 테크 엘리트 세력 간의 거대한 전쟁터 같습니다. 미술계를 지배하는 관습적인 문법도 이 판도 안에서 변하고 있다고 봐요. 이처럼 이념과 자본, 테크가 뒤섞여 국제 질서와 문화 지형을 바꾸어 놓는 전환기적 현상들을 예의주시하며 이를 콘텐츠로 풀어내 보려고 합니다.

예술과 역사, 사회학을 엮은 기사 「K오컬트의 진화: 판타지 액션 로맨스로 흥행 코드 된 K귀신 K무당」
『중앙SUNDAY』 2025년 7월

콘텐츠를 만드는 후배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시나요?
우선 본인만의 관점을 확실하게 가질 것. 그리고 기자로서는 발로 뛸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이 말이 굉장히 고전적으로 들리겠지만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발로 뛰며 쓴 기사는 다릅니다. 직접 보고 듣는 현장의 힘은 책 10권을 읽는 것보다 강력하며, 그것이 결국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시도해 보고 싶은 일이나 계획이 궁금합니다.
매체 환경이 격변하고 있으니 거기에 적응해야겠죠. 처음 블로그를 시작할 때부터, 인스타그램까지 계속 새로운 매체에 적응하면서 변화해 왔는데요, 최근 회사에서 짧은 영상 콘텐츠를 실험하고 있어 저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릴스도 만들고 유튜브도 시도해 볼까 합니다. 쇼츠 등 짧은 영상을 보면 제목이 궁금해 클릭하게 되는데 내용을 보면 왜곡이 많잖아요. 그래서 후킹은 하되 확실한 내용이 바탕이 된 왜곡 없는 정보를 숏폼으로도 전달하고 싶습니다.

문소영의 이야기는 근원적인 것에 질문을 건넨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어떻게 해석하며, 어떤 목소리로 말할 것인가. 자기만의 관점을 가지되, 그것을 끊임없이 검증할 것. 지겨울만큼 철저한 확인과 검증만이 살아 있는 콘텐츠가 출발한다는 그의 말은 오늘날의 글쓰기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2026년 4월호 (VOL.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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