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K DONG SOO
박동수의 ‘時空 추상’
ARTIST REVIEW
박동수의 작업은 계획적이지 않고 습관적이다. 그는 자신의 작업 방식을 직관성과 우연성이라고 압축해 표현하지만 작품의 제작과정이나 표현방식을 보면 느낌과 마음의 동요대로 내면의 감정을 습관처럼 따른다. 뿌리고, 흘리고, 긁고, 붙이고, 칠하고, 그리는 등 자신에게 익숙한 표현 기법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습관처럼 분출한다. 박동수 작가의 예술세계를 대변하는 키워드로는 우주, Cette place-là, 화산, 원(圓), 사각형, 모태(母胎), 마티에르, 한지, 먹물 등이 있다.
박동수의 ‘時空 추상’
변종필 | 제주현대미술관 관장
왼쪽 〈Cette place-là〉 한지, 먹물, 아크릴릭 등 혼합재료 280×48cm 2000
오른쪽 〈Cette place-là〉 한지, 먹물, 아크릴릭 등 혼합재료 65×65cm(x4) 1998
1. 박동수는 자신의 작품세계와 관련하여 ‘우주’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그가 말하는 우주는 어떤 우주일까? 일단 자신의 작품을 ‘우주적 추상화’라고 칭하는 데 그 의미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주적 추상화’ 라는 표현은 ‘우주’의 단어만큼 추상적이다. 인류는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더 먼 우주를 탐사하고자 시도하지만, 여전히 인간이 관측 가능한 우주는 제한적이다. 따라서 우주는 어떠한 형태로도 명확하게 규정될 수 없는 추상적인 세계와도 같다. 시작과 끝, 밝음과 어둠을 분명하게 구분 지을 수 없는 우주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측면에서 작가는 우주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는 과거 별자리 연구를 통해 대작을 만든 전력도 있다. 하지만 우주에 관한 정보나 자료를 기억해서 논리적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단편적인 기억과 오랫동안 각인된 특정 이미지를 계속해서 반복 표현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는 그의 작품 전반에서 확인된다. 박동수에게 우주는 그 자체로 어떤 것도 표현 가능한 추상공간이다. 박동수의 우주는 ‘universe’, ‘space’, ‘cosmos’ 등의 영단어 중 ‘universe’의 의미에 가깝지만, 한자 표기인 ‘宇宙’가 더 적절해 보인다. 우주라는 단어와 관련하여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헌은 시교(尸佼, BC 390~ BC 330)가 저술한 『시자(尸子)』이다. 여기에 기록된 우주의 설명에 따르면, ‘위아래와 사방을 우(宇)라고 일컫고, 예로부터 지금까지를 주(宙)라고 한다 (上下四方曰宇, 往古來今曰宙)’.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우(宇)는 공간’이고, ‘주(宙)는 시간’을 의미하며 종합하면 우주는 시공간을 의미한다.1 박동수의 우주를 ‘시공(時空)’으로 볼만한 근거이다.
박동수의 의식의 흐름 속에 자리 잡은 우주는 프랑스에서 작가 활동을 시작하면서 선택한 후 현재까지 일관성 있게 사용하는 작품 제목 ‘Cette place-là’ 에서도 드러난다. 이는 ‘그곳에’, 혹은 ‘그 장소에’로 번역된다. 그러나 박동수의 ‘그곳에’는 특정 장소를 가리키지 않는다. 구체적이지 않다. ‘그곳에’는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그곳에’는 일반적으로 개인이나 대상이 속한 위치 또는 영역을 가리키지만 박동수의 작품에서는 인간의 존재, 의식, 현실의 한계 등 훨씬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작가의 내면, 정신 속에 자리 잡은 곳이다. ‘그곳’은 우주라는 무한공간, 빅뱅이 일어난(또 일어날 수 있는) 우주의 어느 지점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곳이 어느 곳이든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순환이 지속되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지구에서 볼 수 있는 달의 표면은 반쪽에 불과하듯 세상(우주) 에는 우리가 볼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갈 수 없는 곳, 가보지 못한 곳, 세상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그곳’은 결국, ‘사물이나 현상 등이 비롯되는 본바탕’인 근원지로 볼 수 있다. 이를테면 ‘Cette place-là’는 작가가 자주 언급한 인간 생명의 근원인 모태(자궁)이기도 하다.
〈Cette place-là〉 캔버스에 수채화 아크릴릭 320×320cm 2022
2. 박동수의 작품에서 조형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원과 사각형이다. 사각 틀 안에 크고 작은 원이나 동일한 크기의 원형이 작품마다 반복해서 등장한다. 사각형과 원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완전체를 형성한다. 그의 원은 특별한 밑그림 없이 곧바로 작업하는 방식으로 그려진 것이지만 완전체에 가깝다. 30여 년간 원형을 그리다 보니 원형만큼은 빠르고 정확하게 그려낸다. 그의 원은 시간이 축적된 반복과 집중의 결과물이다. 최근에는 오랜 시간 원을 반복적으로 그려온 경험이 집약된 연작을 집중적으로 그린다. 수많은 생명이 꿈틀대며 중앙의 원으로 모이거나 흩어져 나가는 듯한 강렬한 움직임이 돋보이는 105페이지 작품처럼 생명성·역동성이 한층 강하게 분출되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일반적으로 원은 시작과 끝이 없는 형태로 그 자체가 완전성, 절대성, 무한성을 상징한다. 이중 무한성은 박동수가 작품 표현내용으로 내세우는 ‘우주’와 직결된다. 원은 그의 모든 작품에 핵심을 이룬다.
사각형(특히 정사각형)도 원만큼 각별하다. 평면이든 입체든 사각형을 기본틀로 사용한다. 현재 프랑스 국립기메아시아미술관에 설치된 작품 중 사각형의 집합체를 이루는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106페이지 작품에서 보듯 1999년부터 제작한 사각 시리즈의 경우 개별 정육면체마다 각기 다른 형상의 표면을 지녔다. 이때 사각형은 소우주(혹은 대지의 한 면)를 상징한다. 수많은 사각 상자가 모인 큰 원 형태의 설치는 대우주를 상징한다. 작은 우주의 사각형들이 모여 사각형의 집합체를 이루면 무한한 차원의 우주로 확장된다. 이는 ‘하나가 전체요, 전체가 곧 하나다’, ‘부분은 전체이며, 전체는 부분이기 때문에 분리할 수 없고 결국 하나다’라는 작가 지론의 반영이다.2
그런데 박동수가 사각 형태를 고집한 실질적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재료 때문이다. 한지와 먹물을 주재료로 사용할 때 크기가 제한적인 한지로 작품 제작에 어려움이 따랐다. 규모가 큰 작품을 구상해도 실현할 수 없었다. 고민 끝에 일정한 크기의 한지를 이어서 그리는 일반적 방법에서 벗어나 오히려 한지에 맞는 판형을 제작했다. 그 형태가 사각형이다. 사각형은 구상한 작품의 크기를 일정하게 분할하여 표현하는 데 이상적인 형태다. 실제 이 방식으로 작품의 크기나 규모의 선택이 자유로워졌다. 그동안 전시 기록을 살펴보면 전시공간과 환경에 따라 작품을 유동적으로 배치한 것이 확인된다. 평면의 경우는 동일한 크기의 캔버스를 한데 모으거나 이어 그리는 형식으로, 입체의 경우에는 면적과 공간에 맞는 맞춤형으로 자유롭게 설치했다. 궁극적으로 박동수에게 원과 사각형은 시간을 담기 위한 틀이다. 시간이라는 순간적이면서 무한한 대상을 형태 중 가장 견고한 원과 사각형에 담았다. 원형과 사각은 그가 생각하는 근원지이다.
〈Cette place-là〉 한지, 먹물, 아크릴릭 등 혼합재료 120 x 500cm 207개의 큐브 가변설치 2022
〈Cette place-là〉 한지, 먹물, 아크릴릭 등 혼합재료 120×350cm 2022
3. 박동수가 한지를 활용해 만들어낸 독특한 마티에르는 그의 작품세계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부분이다.3 실제 용암이 화석이 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지금의 표면 질감을 얻기까지 보낸 시간은 작가로서 정체성 확립의 과정이라 할만하다. 그는 작품의 질감을 “나의 피부이고, 살결과 같다”라고 말할 만큼 마티에르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작품 표면을 만져보면 한지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만큼 견고하다. 어두운 톤의 질감에서 무게감과 단단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한지 한 장 한 장이 겹쳐 쌓여 만들어진 표면에 다양한 이미지 (세포분열이나 정자 모양)들의 흔적과 함께 화석 같은 질감을 얻기까지 필요한 시간의 축적이 촉각적으로 전해진다.4
한지와 함께 또 하나의 핵심 재료는 먹(물)이다. 먹은 어린 시절부터 그에게는 가장 익숙한 재료였다. 형제가 8명이나 되는 가난한 대가족에서 태어나 물감이나 파스텔 같은 재료를 살 수단이 없어서, 수중에 있는 검은 연필 등 간단한 것들을 이용하는 것을 즐겼다. 그게 습관이 되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검은색에 매료되어 자신의 정체성이자 개성의 색으로 삼았다. 작가로 활동하며 검은색이 가질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발견하기 시작했으며, 자연스럽게 값싼 중국 먹을 사용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파리에서 활동할 때 생활의 여유와 함께 여러 색의 사용을 시도했지만, 결국 검은색으로 돌아왔다.
동양에서는 먹의 본성을 우주 만물의 이치와 견준다. 그 표현의 넓이와 사용범위의 깊이가 우주만큼 크고 깊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실제 먹은 유화물감이나 인디언 잉크의 검은색이나 블랙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특히 먹이 물을 만나면 그 표현의 넓이와 깊이의 사용범위가 증폭된다. 먹은 물의 양에 따라 명암 단계의 확장이 가능하다. 물과 만나 표현되는 먹색을 단순히 검은색(블랙)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박동수는 먹을 직접 갈아서 사용하지는 않는다. 먹을 갈아서 현재 규모의 작품을 완성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기성 먹물을 작품에 따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 만큼 판매용 먹물 자체가 작품 제작에 걸림돌로 작용하지는 않아 보인다. 작품에 따라 부분적으로 아크릴을 비롯해 다른 재료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박동수 작업의 시작과 끝은 항상 먹(물)이다. 이처럼 박동수는 마티에르와 재료를 통해 자신의 오리지널러티를 확립해나가는 중이다.
〈Cette place-là〉 한지, 먹물, 아크릴릭 등 혼합재료 256×256cm 2022
4. 박동수의 작품세계를 정의하면 ‘시공(時空) 추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실험적 탐구를 통해 근원(우주)에 다가가는 것을 예술적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 애초에 시간과 공간에 대한 특별한 개념이나 논리, 서사를 갖고 있거나 표하지는 않았지만, 초기작부터 시간을 거슬러 근원에 대한 이미지를 그렸고 지금도 지속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근원에 대한 이미지는 광활하거나 모든 것을 삼키려 하거나 혼돈 속이거나 무한한 모습으로 변해왔으며, 이제는 자신만의 시그니처 이미지로 자리 잡은 듯하다.
무엇보다 박동수의 독특한 평면(마티에르)과 입체작품은 행위 자체가 시간을 쌓는 작업이다. 습관처럼, 어쩌면 운명처럼 다양한 행위로 시간을 쌓아왔다. 그 시간은 인류의 탄생부터 빅뱅, 생명의 탄생과 진화, 그리고 소멸까지 모든 것을 포함한다. ‘우주와 우주’, ‘물질과 시간’, ‘생명과 공간’ 등 시공간을 통해 상상할 수 있는 다양한 관계를 추상적으로 표출한다. 그리고 이 모든 시공간을 담기 위한 틀로 원과 사각형을 선택했다. 시공간이라는 무한한 대상을 형태 중 가장 견고한 완결체인 원과 사각형에 담았다. 여기에 한지와 먹물이라는 재료가 시공을 표현하는 최상의 재료로 활용되었다. 그에게 한지와 먹물은 시공을 담거나 연출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재료다. 때때로 원과 사각형에 다 담지 못한 시간, 이를테면 사각형의 육면체의 경우 시간의 흐름을 우리가 인지할 수 있도록 노출하기도 한다. 그렇게 시간은 멈춤이 없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습관처럼 이루어진다. 제작과정을 보면 드리핑 결과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면서도, 동일한 작품의 수준을 유지하는 힘이 있다. 30여 년의 시간이 축적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어떻게, 어디에 담을지 ‘그냥’ 안다는 느낌이다. 박동수가 표출해온 작품들이 그렇고, 이번 프랑스 국립기메아시아미술관 전시공간과 연출에서도 그렇다.
작업은 작가에게 평범한 일상과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삶의 일부분이며 통합된 요소이다. 작가는 창작활동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성장하며, 끊임없이 발전해 나간다. “성실한 노동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하루하루 노력한 만큼 성과를 얻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는 박동수. 그는 작가로 살아온 30년의 세월을 넘긴 지금에서야 밖이 아닌 작업실에서 삶과 예술의 의미를 찾았다고 말한다. 박동수가 말하는 예술의 의미는 결국 작품 안에 담겨 있다. 이제 그 의미를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할 때이다.
〈Cette place-là〉 한지, 먹물, 아크릴릭 등 혼합재료 244 x840cm 2021
- namu.wiki/우주 참조 인용
- “사각형의 집합체를 무한한 차원의 우주로 간주하고 각각의 사각형이 또 하나의 우주라고 한다면, 그 안에 원을 그려 넣는 것은 그곳에 행성이 있음을 암시하게 되고 원을 더 많이 그려 넣게 되면 하나의 별자리가 된다. 저에게 있어서 원은 완벽하고, 완전하며, 이상적인 형태이기 때문에 둥근 형태들을 그리는 것이 정말 즐겁다. 원형은 생명을 상징한다. 자궁 속 작은 세계부터 거대한 행성까지, 가장 크기가 작든 크든 상관없다.” ‘박동수와 앙리 프랑수아 드바이유’ 인터뷰 내용 중 2023.6.7.
- 박동수는 젊은 시절에 하루 13-15시간을 작업에 투자했고, 현재는 하루 평균 8시간을 작업에 매진한다. 매일 같은 기법을 사용하거나 일관성 있는 주제를 다루지만 단순 반복적 표현의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표현이 성숙해지는 것은 멀리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거의 본능적으로 습관처럼 반복한다. 박동수의 타고난 기질이다.
- “작가로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늘 세상을 표현하고 세상이 창조되는 순간을 담으려 노력해왔다. 화산의 메타포를 자주 사용하는데, 폭발한 화산에서 흘러넘친 용암이 수많은 파편이 되어 바닥에 흩뿌려지고, 이내 형태를 바꾸고 굳어져 작은 블록이 된다. 마치 화석인 것처럼.”‘박동수와 앙리 프랑수아와 드바이유’ 인터뷰 내용 중 2023.6.7.
박동수는 1964년 서산 해미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베르사유 미술학교, 파리8대학 학사,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1990년 파리로 유학을 가서 20년간 작품활동을 펼치다가 2008년 귀국 후 현재 충남 공주에서 작업하고 있다. 프랑스 국립기메아시아미술관 《Carte blanche》, 프랑스 카루젤 루브르, 다크블루, 휴고보스 후원 전시, 영국 런던 크리스티즈 《아시안 아방가르드》, 《하늘에서 땅끝까지》, 프랑스 몽토방 앵그르박물관 등 지금까지 해외를 중심으로 26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올해 9월 프랑스 파리 갤러리 박슬라시에서 초대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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