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시하는 먼 곳,
흔들리지 않는 질문,
전시의 발언들

김소정, 황수진 기자

12월 특집기사 ①

2025 월간미술 대상: 다섯 개의 창 × 열 개의 전시 

해가 바뀔 때면 어김없이 ‘올해는 유독 다사다난했다’는 회고가 반복된다. 본디 선형적 시간 개념에 기대는 인간의 사고로는 가장 가까운 기억이 가장 선명한 법이겠으나, 그럼에도 올 한 해 한국 사회는 사회정치적 층위에서든 문화예술의 영역에서든 이례적이고 특별한 장면을 유난히 자주 마주했다.

올해로 21회째 진행되는 ‘월간미술대상’은 전시 부문에서 매년 10개의 전시를 선정하여 동시대 큐레토리얼의 궤적을 점검하며 기관과 기획자의 초점을 지면으로 길어 올린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시의성 짙은 요구, 또는 그러한 기억을 소환해 왔다.

이번 특집에서는 올해 선정된 열 개의 전시를 들여다볼 다섯 개의 창을 준비했다. 다양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다학제적 연구와 실천이 대다수 전시의 기본 틀로 자리한 오늘의 환경을 고려하면, 선정된 전시들의 경향을 몇몇 축으로 묶는 시도는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투명한 창의 은유는 대상을 또렷이 비추는 동시에 언제든지 그 너머를 탐색할 가능성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이번에 제시된 다섯 개의 창은 고미술에서 동시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의제와 문제의식을 다룬 중요한 전시를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눈이 되어줄 것이다.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적군의 언어》 설치 전경 2025
사진:남서원. 제공:아트선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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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사회·정치적으로 극심한 혼란과 논쟁으로 점철된 한 해였다. 지난해 말 비상계엄 사태가 올해 상반기의 탄핵 정국, 그리고 조기 대선으로 이어지며 사회 전 분야의 재정비가 요구되는 어수선한 분위기가 펼쳐졌다. 이 와중에 서울시립미술관은 검열 논란으로 정치색 논쟁의 중심에 놓이기도 했다. 생태 담론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으나, 포스트휴머니즘·인류세·인간과 비인간 공존·신유물론 등 개념을 과도하게 호출하며 유사한 어휘를 반복 생산하는 경향도 있었다. 이러한 담론이 선언적 레토릭이나 시각적 효과로만 소비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올해 국공립기관에서 신체 다양성과 접근성을 화두로 한 전시가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진 흐름은 의미가 크다. 이는 팬데믹을 계기로 미술관에서 기후 위기 담론을 적극적으로 다룬 이후, 미술관이 ‘모두를 환대하는 공간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며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감각적·신체적 차이를 수용하려는 의지가 각 기관마다 크고 작은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2024년에는 각 기관의 소장품 기획전이 눈길을 끌었다면 올해는 대구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서울관이 소장품 상설전을 개최하며 한국 근현대미술을 보다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환경과 연구 기반이 형성되고 있음을 방증했다. 미술사 쓰기의 축이 견고해진 만큼 여러 기관에서 열린 원로작가의 전시도 더욱 정확한 맥락에서 평가받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이 연장선에서 신성희 강명희를 비롯해 김병기 엄태정 신상호 등 원로작가들의 전시가 잇따르며 그들의 미술사적 가치가 재고되었다.

이 흐름을 최근의 고미술 열풍과 함께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이는 미술계 내부의 움직임을 넘어 대중문화 전반에서 한국적 미감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조된 현상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이 커진 K팝과 상반기 화제를 모았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보여준 K컬처 산업의 저력,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맞물려 국립경주박물관 유물전을 관람하려는 사람은 물론 국립중앙박물관 굿즈를 구매하려는 이들로 박물관 개관 시간부터 ‘오픈런’ 현상이 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K’라는 기호가 미술계로 자연스럽게 유입되며 뜨거운 반향을 일으킨 한 해였다는 점은 국립중앙박물관의 500만 관람객 돌파에서도 확인된다. 또한, 여러 주요기관의 개관 기념 전시가 이어진 가운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 10주년, 아트선재센터 개관 30주년 전시는 ‘미술관과 예술은 미래에 어떤 형태로 지속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더욱 적극적으로 제기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이번에 선정된 월간미술대상의 10개 전시는 이와 같은 동시대 미술의 지형도를 선명하게 한 2025년 미술계의 한 단면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 전시가 올해 발생한 익숙하거나 생경한 난리와 혼란, 사건들을 직접 반영하거나 그에 대한 즉각적인 응답으로 기능한다는 뜻은 아니다. ‘올해의 우수 전시’라는 명명은 올해의 장면들이 형성되기까지 축적된 문제, 현상, 의도, 경험, 정신이 시각적으로 응축된 결과물에 부여되는 것으로, 엄밀히 말해 올해 이전의 과거를 반추하며 올해 이후의 미래를 가늠하는 여러 갈래의 화살표를 함의하는 지표에 가깝다. 이에 본 상은 ‘어떠한 문제의식을 어떠한 전시 언어로 풀어냈는가’라는 기획력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역사·지역·동시대 담론을 새롭게 재구성한 전시에 주목했다.

전시 후보로는 지난해 4월부터 올해 9월까지 개최된 국내 모든 전시가 포함됐는데, 이는 올해부터 연말에 개최되는 월간미술대상 시상식 시기에 맞춘 것이다. 그간은 8월에 개최된 시상식을 기준으로 전년도 4월부터 당해연도 6월까지라는, 한 해를 대표하는 전시를 담아내기에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은 기간이 설정된 것이 사실이다. 변경된 시기를 적용하는 첫해인 까닭에 올해 우수 전시에 선정된 몇 전시의 개최 기간은 작년 초까지 소급되기도 한다.

최우수 전시로 선정된 아트선재센터의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적군의 언어》는 위기의 시대로 감지되는 포스트인류세에 인간의 형상, 의미, 역할이 겪을 변화를 상상하게 한다. 미술관 전체를 폐허로 만들면서 전시장에 불을 지핀 파격적인 기획력은, 문명의 태동과 종말이라는 극단적인 가상 시나리오를 동시에 작동시키며 이를 압도적인 몰입감으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미래사회를 예견한 또 다른 전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는 최근 세계적으로 성공적인 행보를 보이는 김아영의 활약과 맞물려 화제를 모았다. 무한한 가상세계와 다중우주라는 미래시제의 언어가 공중에 매달린 삼각형 구조의 대형 스크린 세 개를 통해 일종의 스펙터클로 가동되게 한 기획력이 돋보인 전시다. 이로써 전시장은 흡사 디스토피아 영화에 등장하는 미래 도시를 연상시키는 장소가 되었는데, 이는 본전시가 ‘우수 전시’에 이어 ‘관람객이 선정한 화제의 전시’에도 선정되는 주된 요인이 되었다.

불확실하게 변화하는 세계에 대응하기 위해 환경, 세대, 시간성의 층위를 파고들며 뚜렷한 메시지와 모호한 태도로 동시대 미술의 불안정성을 지시한 세 전시는 다음과 같다. 먼저 d/p에서 열린 《박세진: 합판을 깨지 않고》는 작가가 4개월간 전시공간에서 작업하며 시시각각 변하는 공간 안팎의 풍경을 벽화로 만들어 낸 전시다. 통상 한 달 간격으로 전시를 개최하는 소규모 전시공간의 관행을 고려할 때, 작업 과정과 지향점을 중시한 기획자의 과감한 결정이 돋보였다. 하이트컬렉션의 《나는 너를 보고 있는 하늘의 눈이다》는 포스트 밀레니얼 세대들이 세계를 향해 투사하는 비판적 시선을 담아냈다. 하이트컬렉션은 젊은 작가전을 연례전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본전시는 기관의 축적된 경험과 기획자의 노련한 눈이 젊은 작가들이 가진 고민과 질문을 첨예하게 다듬어낸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이는 동시대 청년 작가들의 모순된 영원주의를 비판적 시각으로 해석한 일민미술관의 《포에버리즘: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와도 상응한다. 이 전시는 디지털 시대에 대두된 레트로 열풍에 착안하여 영원히 순회하는 시간, 즉 무시간성의 개념을 이끌고, 종말론적 은유로서 청춘의 미래를 제시한 대담한 기획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올해 미술계를 강타한 전통미술과 고미술의 열풍은 월간미술대상의 우수 전시 선정 결과에도 반영됐다. 삼성문화재단 창립 60주년이자 내년 정선 탄생 350주년을 기념하는 호암미술관의《겸재 정선》은 진경산수의 창시자이자 조선 회화의 거장인 정선의 작품을 미술계 역사상 최대 규모로 총집결시킨 자리였다. 국보와 보물을 포함한 출품작 165점을 통해 겸재 정선이라는 인물을 총체적으로 이해, 전달하려는 의도가 충실히 반영된 전시라는 평을 받았다. 아울러, 전남도립미술관 《오지호와 인상주의: 빛의 약동에서 색채로》는 20세기 한국미술의 거장 오지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전시다. 기획자는 호남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 오지호가 일생에 걸쳐 구축한 독보적인 화풍을 소개하고자 시기별 작업에 대한 선행 연구를 포함, 오랜 기간 전시를 준비하며 관련된 작품을 최대한 모으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한편,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의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는 김성환의 오랜 연구 연작을 통해 ‘앎’이라는 능동적 행태이자 상태가 인식되는 장을 만들어 또 다른 관람의 대안을 제시했다. 이러한 구성은 한인의 하와이 이주 서사라는 주변부의 이야기를 구술하기에 적절한 전시 문법으로 채택됐고, 관객을 협업자로 상정하는 워크숍 프로그램과 상호작용하는 경로를 열었다는 점에서 두드러졌다. 이와 함께, 주변부의 이야기를 전달하며 미술의 영역을 확장한 국립현대미술관《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는 한평생 건축 주위를 맴돌던 조경 설계를 전시라는 무대에서 조명했다는 점과 생태와 지속가능성이라는 동시대 미술의 시의적 의제를 짚어내었다는 점이 주효했다. 그런가 하면 이미 익히 잘 알려진 민화의 ‘이미지’를 현대적 맥락으로 재구성한 경기도미술관의 《알고 보면 반할 세계》는 지금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K팝 문화의 일면을 반영하며 눈길을 끌었다. 민화의 문화적 위상과 이상향을 팝아트의 속성과 효과적으로 연결했다는 점이 높게 평가됐다.

더불어 올해 신설된 ‘관람객이 선정한 화제의 전시’ 부문은 대중과의 접점을 확장하기 위한 시도다. 이 부문은 ‘널 위한 문화예술’과 공동 기획하여 관람객 참여 기반으로 마련되었으며, 올해부터 시상식을 연말로 옮긴 취지와도 맞물려 있다. 대중적 확산력과 전문적 평가를 아우르는 시상 구조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발걸음이다.

월간미술은 이번 특집에서 전시를 내다볼 다섯 개의 창을 제시함과 동시에, 각 전시기획자에게는 독자들이 기획자의 경험을 생각하며 전시를 돌아볼 수 있게 글을 써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전시를 시작하게 만든 첫 질문’, ‘전시 기획 시 중요하게 여기는 자신만의 방식이나 태도’, 기억에 남는 순간’, ‘관객에게 전하는 메시지’, ‘전시기획자로서 지속적으로 탐구하는 주제’와 같은 내용이 녹아있는 열 편의 글을 받을 수 있었다.

때로 예술은 과거와 미래 사이 불확실한 시점을 짚으며 먼 곳을 응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재의 토대 위에 견고히 서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발언하는 전시를 통해 우리는 좀 더 선명한 눈으로, 확장된 시선을 가지고 다음의 장(章)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번에 선정된 전시들이 독자 여러분께 그러한 의미로 가닿기를 바란다.

2025년 12월호 (VOL.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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