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의 감각을 ‘전환’하는 사람들 ③

심성아 도슨트
김아영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4월 특집기사 ③

심성아
도슨트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 세종미술관 전시 해설 현장 2025

전시는 어떤 ‘몸’으로 전환되는가?
전시에는 예술가, 큐레이터, 도슨트 그리고 관객의 언어가 공존한다. 전시는 이 서로 다른 언어들이 한 공간에서 만나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열리는 장이다. 사람마다 고유한 DNA를 지닌 몸을 가지고 있듯, 전시장에는 저마다의 감각과 경험을 지닌 관객들이 모인다. 그 서로 다른 몸들이 같은 공간에서 작품에 반응하며 감각을 확장하는 순간 전시는 정적인 대상에서 관람객의 경험 속에서 움직이는 살아 있는 ‘몸’으로 전환된다.

도슨트의 시선에서 바라본 전시장 풍경은 관객의 몸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하나의 거대한 퍼포먼스에 가깝다. 그중에는 전시장을 반복해서 찾으며 작품을 경험하는 이들도 있다. 미술 애호가의 몸은 전시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시를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꾸준한 단련이 필요하듯 전시를 보는 몸 역시 반복된 경험 속에서 감각이 확장되며 형성된다.

2024 부천아트페어 전시 해설 현장

전시를 언어로 번역할 때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지는가?
도슨트는 예술의 언어를 관람객의 언어로 풀어내는 ‘번역가’다. 그러나 이 번역은 언제나 완전할 수 없다. 현장의 경험을 돌아보면 해설에 과장된 언어로 힘을 줄수록 관람객에게 남는 것은 오히려 적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작품과 관람객 사이에서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시 해설은 큰 틀은 같지만 관람객의 반응에 따라 매회 조금씩 달라진다. 초반에는 큐레이터와의 대화나 전달받은 자료, 미술사적 맥락을 중심으로 비교적 객관적인 설명에 무게를 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해설은 변한다. 현장에서 만난 관람객의 질문과 반응이 쌓이면서 설명의 방식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떤 지점에서 사람들이 공감하는지, 무엇이 이해를 돕는지 경험을 통해 알게 되면서 해설의 언어도 자연스럽게 조율된다.

큐레이터의 언어로 시작된 해설은 관객의 반응을 통과하며 보다 살아 있는 관객의 언어로 확장된다. 그럴 때마다 예술의 언어는 완벽하게 번역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어쩌면 그 불완전한 번역의 과정 자체가 전시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요소일지도 모른다.

안토니 반 다이크 〈영국 왕비 헨리에타 마리아〉 1636~1638년경
제공: 가우디움어소시에이츠

도슨트 해설은 관람 경험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도슨트 해설은 작품을 대신 해석해 주는 일이 아니라 관람객이 작품과 새로운 관계를 맺도록 돕는 과정이다. 그래서 전시 해설을 할 때 종종 관람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정답을 찾기보다 작품을 바라보는 상상의 여지를 열어두기 위해서다. 관람객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서로 다른 경험치를 가지고 있기에 같은 전시라도 매번 예상치 못한 반응이 나온다.

세종미술관에서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 해설 당시 안토니 반 다이크의 〈영국 왕비 헨리에타 마리아〉 초상화 앞에서 관람객들에게 던진 질문이 기억에 남는다. “이 인물은 얼마나 잘 살았을 것 같나요?”라는 물음에 한 초등학생이 “삼성 이재용 회장보다 더 잘 살았을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이 재치있는 비교 덕분에 전시장에는 웃음이 터졌고, 관람객들은 17세기 유럽 궁정의 권력과 부를 훨씬 쉽게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순간 전시는 과거의 초상화에서 오늘의 경험으로 확장되었다. 도슨트 해설은 이처럼 정보를 전달하는 시간을 넘어 관람객이 작품과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연결하는 계기가 된다.

전시는 관람 이후에도 계속 확장될 수 있는가? 전시의 ‘소비기한’이 있다면 언제까지라고 생각하는지?
발터 벤야민은 예술작품에 대한 대중의 관례적 태도가 양에서 질로 전환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통찰은 오늘날 전시를 바라보는 방식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전시는 더 이상 전시장 안에서만 존재하는 경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슨트의 해설 역시 관람의 순간에서 끝나지 않는다. 전시장에서 들은 이야기나 작품 앞에서 느낀 감각은 관람객의 기억 속에서 계속 확장된다. 누군가는 전시 이후 작품을 다시 찾아보거나 온라인 콘텐츠를 통해 작가와 작품을 탐색하고, 또 다른 이들은 SNS에서 감상을 나누며 경험의 수명을 늘린다. 그래서 전시에 명확한 소비기한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시는 전시장에서 끝나는 경험이 아니라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계속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심성아
도슨트이자 토커바웃아트 시니어 디렉터. 프리즈 서울, 
롯데뮤지엄, 예술의전당, 세종미술관 등에서 전시 해설을 진행했으며, 예술의전당 인문아카데미 등에서 미술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김아영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2025 모두를 위한 예술 프로그램 ‘쉬운 글쓰기×확장=미술관에 갑니다’의 참여자 의견 공유 및 발표 장면
제공: 서울시

전시는 어떤 ‘몸’으로 재매개되는가?
미술관에서 오랜 기간 연구 업무를 수행하며 ‘전시의 또 다른 몸’이 파생되는 장면을 목격한 사례 중 하나는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세마 코랄’의 시작이다. 전시가 의제와 연동된 담론을 길어 올리고 질문을 던지는 장이라면, 세마 코랄은 그 사이에서 파열음을 터뜨리며 파생되는 것들을 포착해 지식으로 번역하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지식은 단순 텍스트에 그치지 않고, 웹을 기반으로 작가들의 사유가 다양한 실험적 형태로 가시화되는 점이 핵심이다.

세마 코랄은 생산자와 사용자가 큰 축을 이룬다. 특히 사용자는 생산자들의 지식을 재구축하는 개별적인 알고리즘을 수행하며 또 다른 단위의 지식 생산자가 된다. 수많은 클릭과 링크로 연결된 지식의 연동 구조, 메인 화면에 축적되는 연결어 간의 관계 생성, 생산된 지식과 정보를 엑셀로 내려받아 재조직할 수 있는 기능 등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세마 코랄’이라는 이름처럼, 산호와 같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세계는 전시의 또 다른 몸이 파생되고 재매개되는 지식의 구조체로서 여전히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2025 모두를 위한 예술 프로그램 ‘초대장’에서 미술관에 오는 길 퍼포먼스 및 기록 공유 장면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전시를 해체하고 번역하는 과정에서 끝내 옮겨지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반대로 이러한 매개를 통해 새롭게 생성되는 경험이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번역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끝내 옮겨지지 않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번역이 실제로 일어나는 지점은 관람객(참여자)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의 역할은 미술관이나 전시의 ‘태도’를 일종의 ‘지속 가능한 구조’로 전환하는 일이다. 굳이 말하자면 번역자보다는 편집자에 가깝다. 관람객이 자신의 조건을 문맥 삼아 이미 자신들의 언어로 문화 번역을 시도하는 독립된 ‘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2025년 ‘모두를 위한 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신체 조건, 인지 수준, 연령이 서로 다른 관람객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이들은 무용, 관람 보조 도구, 미술관까지 함께 걷기, 전시 텍스트 다시 쓰기 등 매개 방식을 이용해 저마다의 번역을 시도했다.

그중 미션잇(김병수) 작가와 함께 만든 상설 전시 관람 도구 ‘모든 가방’은 이러한 번역물들을 한데 모은 앤솔로지이자 새로운 창작을 끌어낸 사례다. 워크숍 참여자들은 ‘이동’, ‘관람’, ‘소통’의 관점에서 각자 몸의 조건과 경험을 바탕으로 대화했고, 그 속에서 추출된 공통 요소를 누구나 쉽게 미술관을 이용할 수 있는 도구 모음으로 고안해냈다.

특히 공을 들인 지점은 이 가방이 기관의 시스템 안에서 지속 가능하게 작동하도록 연결 구조를 만드는 일이었다. 어떤 전시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질문을 담고, 부서 간 협업을 통한 대여 시스템과 홈페이지 개편, 직원과 사용자의 인식 개선 등 보이지 않는 운영 체계를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 이 연결망이야말로 가방이 미술관의 태도로 정착하는 데 필수 조건이었다.

전시장 안에서 ‘모든 가방’을 사용하는 이들을 종종 마주한다. 그들이 어떤 번역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지만 그 거리를 존중하며 지켜본다. 전시의 의미는 기획자의 손을 떠나 관람자라는 독립된 주체들에 의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의 수명을 연장하는 과정에서 고수하는 원칙이나 경계하는 지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전시와 연계된 프로젝트의 관점에서 보면 ‘해석의 주체인 참여자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참여자들이 각자의 문맥으로 전시를 재해석해 ‘또 다른 몸’을 입힐 때 전시는 비로소 그들 곁에 지속 가능한 형태로 남는다.

이 과정에서 경계하는 지점은 기획자의 관성적인 개입이다. 2022년부터 진행한 ‘쉬운 글쓰기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참여자들이 쓴 결과물의 편차를 줄이기 위해 전문적인 윤문을 거쳐 퀄리티를 맞추려는 유혹이 늘 존재한다. 지난 프로젝트를 돌아보며 기획자의 입장에서 지나치게 개입했던 것은 아닌지 성찰하게 되었다. 매끄러운 ‘파인튜닝’과 참여자 고유의 문장이 지닌 ‘편차’ 사이에서 어느 지점까지 개입하고 멈춰야 할지는 여전히 현장에서 고민하는 화두다.

또한 참여자의 기여를 소모적으로 다루지 않고 크레딧을 명확히 인정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긴다. ‘모든 가방’ 프로젝트 역시 40여 명의 워크숍 참여자 모두에게 확인과 동의를 구하며 ‘공동 창작’임을 분명히 했다. 전시의 수명은 기획자가 규정한 틀에 머물지 않고, 참여 주체들의 목소리가 기관의 구조 안에 반영되는 장면을 볼 때 비로소 연장된다고 믿는다.

전시의 ‘소비기한’이 언제 끝난다고 보는지?
기획자의 관점에서 전시의 소비기한은 사실상 없다고 생각한다. 공공 기관에서의 전시는 그 자체로 미술사적·전시사적 맥락의 한 지점을 점유하기 때문이다. 기록된 역사는 생략될 수는 있어도 지워지지 않으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재소환되고 재평가된다.

그렇기에 전시를 기획하기에 앞서 지금 이 시점의 사회·문화· 미술사적 구도 안에서 ‘왜 이 전시가 필요한가’에 대한 치열한 설득 과정이 진행되어야 한다. 결국 기획자에게 전시는 단발적인 행사가 아니라 미래의 누군가에게 다시 읽힐 텍스트를 남기는 일과 같다. 나 역시 내가 만드는 전시나 프로젝트가 훗날 어떤 맥락에서 소환되더라도 유효한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기획에 임하고 있다.

*김아영
감각 기반 상설 관람 도구 ‘모든 가방’(2025)과 ‘모두를 위한 예술 프로그램’(2025)을 기획했으며, SeMA 코랄(2021) 파운딩 에디터로 활동했다.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2021, 2019), 『이불-시작』 모노그래프(2021), 『SeMA 소장품 가나아트 컬렉션』 연구서(2018) 등을 기획 및 편집했다

2026년 4월호 (VOL.495)

© (주)월간미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