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FACE 2015 최현석

“최현석의 독특한 기록화 작품들은 기존의 심화된 전반적인 문제들을 수면에 드러내기 위해, 다각적 시선과 사실적 연출로서 당시 사건을 동시 다발적으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 김유연 독립큐레이터

권력과 관습을 전복하는 기록화

최현석의 회화는 눈길을 끄는 힘이 있다. 전통 기록화를 닮은 독특한 작품 형식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기록화, 민화, 고지도의 다양한 패턴, 다원적 시점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며 화폭에 동시대 이슈를 자유분방하게 담아낸다. 요즘 작가들이 사진, 영상 등의 매체에 의존하는 것에 비해 그는 선조들이 그린 그림에서 흥미로운 요소들을 발견하고 독자적인 길을 개척한다. 그의 작품에는 따로 사인이 필요 없다.
최현석의 작업에서 흥미로운 점은 전통 기록화 고유의 권력적 속성을 전복한다는 것이다. 그는 “전통 기록화는 권력자들이 당대의 영광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기록으로 남긴 욕망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학부시절 그는 박물관에서 기록화를 처음 접하고 감응과 동시에 불편함을 느꼈다고 한다. 전통 기록화는 일반적으로 값비싼 종이나 비단에 그려진 것이지만 그는 천연 직물 중에서 가장 저렴한 재료인 마직물을 선택했다.
작품의 주제도 부조리한 현실에서 시작한다는 점에서 권력을 정당화하는 전통 기록화와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천안함 사건을 그리기 시작해 초기에는 구제역, 국립현대미술관 화재 등 동시대 사건에 집중했다. 최근에는 미디어에 노출된 장면이라도 자신만의 관점을 확보한 상황을 그리거나 장례식, 결혼식, 종갓집, 예비군 훈련 등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상에서 관습을 내면화하는 불편한 지점을 그린다. 하지만 그는 작업을 통해 개인의 목소리를 내기보다 하나의 사건 혹은 풍경을 관조하는 방식을 택한다. 현실의 모순 그 자체를 직시하고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화폭에 옮기는 것이다. 이때 작가는 사건이나 풍경을 입체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구체적인 상황도 동시에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이 내포하는 상황은 상당히 복합적이고, 화폭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예를 들어 장례식장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하면 집중해서 머릿속으로 떠올린 장례식 장면을 그림으로 옮긴다. 고인은 아직 관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그의 영정 앞에서 사람들은 절을 하고, 조의금을 모으는 상자에는 자물쇠가 잠가져 있다. 사람들 대부분은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기보다는 준비된 음식을 먹기 바쁘다. 어떤 이는 식장에 화환을 누가 보냈는지 명단을 정리하고 식장 한 켠에서 화투를 치는 사람들은 ‘호상好喪’이라고 외친다. 작가는 그림을 다 그리고 나면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불편한 지점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 말한다. 그는 완성된 작품에 ‘장례호상도’라는 제목을 붙였다. 사람들은 쉽게 ‘호상’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그는 참 잔인한 말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작가는 작품 제목을 마지막에 정하는데 이것이 작업의 직설적인 힌트라고 넌지시 말한다.
기록화의 힘은 전달력이다. 작가가 생각한 지점을 관람객도 가장 근접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기록화는 매력적인 도구이다. 그는 작가가 왜 이 장면을 기록했는지 관객이 의문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기를 바란다. 그의 작품에서 인물들은 얼굴 표현이 없는데 특정인물로 간주하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구분 짓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주제를 공유하고 함께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를 제안한다.
작품의 주제는 비판적이고 무겁지만 최현석의 작품은 밝고 화사하다. 그래서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그는 불편한 내용을 불편하게 그리기 싫다고 말한다. 그리고 “현실의 문제를 당장 해소할 수는 없지만 반성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예술의 반성적 원리는 작가 자신에게도 해당된다. “제가 비판적으로 그린 그림을 내가 어느 순간 그대로 한다면 그 그림은 거짓말이 되고 말죠. 갈수록 더 신중하게 작업하고 내 그림에 책임감을 지려고 합니다.”
앞으로 작가는 보다 다양한 주제를 기록화 형식으로 선보일 것이며 틈틈이 영상, 입체작업 등의 실험도 병행할 생각이다.
이슬비 기자

DF2B3765최현석은 1986년 출생했다. 서원대학교 미술학과와 중앙대 대학원 한국화학과를 졸업했다. 2012년 아트스페이스 에이치에서 열린 <기록정신-현실을 직시하다전>을 시작으로 2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OCI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로 활동했다.

NEW FACE 2015 이병찬

“신경질적이던 행태는 차분해졌고, 위태롭던 움직임은 무게감을 찾아간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현재 괴물의 성장이 거칠 것 없이 힘차고 작가 또한 열등감이 아닌 건강한 감정을 괴물에 투사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 김소영 큐레이터

 비정상 생태계에 숨을 불어넣다

거대한 괴기 생명체가 전시장에 나타났다. 형형색색의 몸체가 스스로 빛을 발하다가 이내 암흑 속으로 사라진다. 들숨날숨에 따라 몸체를 팽창했다 수축하기를 반복하며 제자리에서 사부작사부작 움직인다. 영화 ‘아바타’의 ‘나비족’이 뛰어나니던 곳에서나 봄직한 형상의 이 생명체는 그야말로 기기묘묘하다.
작가 이병찬은 현대사회 시스템을 비꼬는 논리로 작가만의 생태계를 표현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그리고 생태계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그곳에서 살아가는 괴기 도시생명체를 창조했다. 작가가 바라본 현대 사회 구조는 모순적이고 비정상적이었다. 송도신도시 개발이 한창이던 시기에 그곳을 자주 오가던 작가는 오로지 개발논리에 따라 건설되는 기형적인 도시의 모습을 목도했다. 인간에 의해 철저히 구획되고 계획된 도시는 인위적인 자연과 거주공간을 ‘(부)자연스레’ 병치한 모습이었다. 길가에는 곳곳에 부동산 투자 유치 현수막이 걸렸다. 오롯이 소비에만 초점이 맞춰진 세상으로 비춰졌다. 현대인의 끊임없는 소비 패턴은 늘 채워지지 않는 물질적 탐욕을 반영한다. 소비하고 소진하는 행위는 무한히 순환한다. 작가는 대학시절 주변에 버려진 오브제를 주워 작업을 진행하곤 했다. 누군가 버린 물건은 작품으로 변주되어 소비되었다. 때로는 그가 버린 오브제를 다른이가 작업 재료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병찬에게 물건의 소비는 순환구조로 비쳤다.
작가의 판타지로 만들어진 생명체는 독특한 소재로 눈길을 끈다. 물건을 담는 비닐봉지는 소비된 물건을 운반하는 데 긴요하게 사용된다. 그러나 비닐봉지에 담긴 상품이 빠져나오는 순간 봉지는 거침없이 구겨지며 그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다. 반면 비닐봉지는 불필요한 것을 담아 버리는 용도로도 쓰인다. 그러다보니 비닐봉지는 버려지는 것들의 총체적 메타포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쉽게 용도폐기되는 비닐을 마치 실크천에 바느질을 하듯 한 땀 한 땀 수작업으로 이어 붙인다. 도시 생명체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것은 비닐과 작가의 손, 그리고 라이터다. 작가는 라이터 불로 비닐을 부분적으로 녹여 용접한다. 그 후 에어모터로 비닐의 끝부분까지 바람을 불어넣고 움직임을 부여한다. 재료의 특성상 작업을 수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에 작업에 들어가는 시간과 공력이 만만치 않다.
초반에 비닐 작업은 다채로운 색보다는 단색을 사용했다. 또한 새로운 생명체의 모습보다는 개, 늑대나 사슴 등 실존하는 동물의 형상을 본따 작업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작가는 소비사회의 구조가 점차 악화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작가가 구현하는 생태계도 극단적으로 변했고 생명체의 형상도 점차 괴기스럽게 표현되었다.
그러나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보는 이에게 위압감을, 혹은 불편한 감정을 줄 수도 있는 이 비닐 생명체는 전시 종료와 함께 돌아가던 모터가 정지되는 순간, 한줌의 비닐봉지로 압축된다. 마치 물건을 뺀 봉지가 처참히 뭉개지듯 바람을 빼는 순간 생명체는 힘을 잃는다.
작가는 “판타지 속 생태계를 표현한다”면서 동시에“창조자적 입장으로 서있기를 거부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괴기스러운 생명체가 자신의 눈에는 전혀 무서워 보이지 않다”고 덧붙였다. ‘특이한 짓’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20대 후반의 평범한 남자가 생각하는 세상을 미술로서 표현했을 뿐이라고 전했다. 작업을 하는 작가도,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우리도 소비사회의 일원이다. 작가가 제3의 생명체를 탄생시키기 보다 그 자신과 우리 시대의 인물을 형상화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작가의 작품을 마주한 관객은 괴기스러운 세상에서 무지막지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자화상을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임승현 기자

이병찬 인물 (3)이병찬은 1987년 태어났다. 인천가톨릭대 환경조각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도시환경조각과를 수료했다. 2010년 AG갤러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포함해 5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다수의 단체전에 참가했다. 경남도립미술관에서 1월 29일부터 5월 13일까지 열리는 〈사물이색전〉에 참여한다.

NEW FACE 2015 김진희

“카메라를 든 김진희가 그녀의 이 시간여행을 동반한다. 미세한 물방울들처럼 솟아나는 속삭임에 따스하고 연한 빛을 비춰준다. 사랑의 행위 후 그녀들에게 남아 있던 말 없는 어떤 시선, 그 잔여에 빛이 가 닿는다. 그렇게 우리는 그녀들의 몸에 채 새겨지지 않은, 혹은 거칠게 새겨진 이야기들과 조우하게 되었다.”

– 김영옥 여성학자, 이미지비평가

 그녀들의 상처, 그리고 남은 이야기

김진희는 이번 송은아트센터 전시 <이름 없는 여성, She>(2014.12.12~1.21)에 <She>와 <April> 연작을 출품했다. <She> 연작이 20대 여성 초상사진을 통해 그들의 불안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면 <April> 연작은 풍경사진에 자수를 넣어 불안을 봉합하고 상처를 치유하려는 의지를 담았다.
작가의 <She> 연작은 텍스트로 감지되는 직접적인 표현 이면에 숨은 어떤 이야기와 분위기 등을 프레임에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관객은 작가의 사진 앞에서 대상이 숨겨놓은 이야기를 궁금해 한다. “제 생각에 인물 사진은 그 어떤 사진보다 강한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물 내면의 다양한 감정과 이야기는 한 장의 사진으로 담아내기엔 그 크기가 너무 큽니다. 그럼에도 제가 계속 인물 사진을 찍는 이유는 무질서의 공식이 인물 안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물 사진을 찍는 작가의 고단함과 그래서 더 하고 싶은 심정이 담긴 답변이다. 실제 그의 프레임에 등장하는 인물이 큰 용기(?)를 내준 지척 간의 인물이지만 그들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며, 그래서 작업의 고단함이 느껴진다.
이번 전시와 더불어 이전 작업인 <Wisper(ing)> 연작을 보면 김진희의 작업은 매우 솔직한 작업이다. 특히 젊은 여성을 등장시킨 <Wisper(ing)>과 <She> 연작은 공허하고 불안함 가득한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하거나 아니면 그것을 외면하는 20대 여성의 모습이 자수로 이뤄진 레터링과 함께 프레임에 담겨있다. 그 불안함의 근원은 무엇일까? 그것은 프레임이 담지 않은 대상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인물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솔직한 작업이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타인인 제가 그들의 상처를 다 이해할 수 없었다는 고백이 담겨 있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치유의 행위는 반드시 상처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인물들의 불안함을 프레임에 담고자 했습니다.”
초기작과 이번 전시의 차이점은 텍스트가 전면에 등장한다는 데 있다. 초기작의 은밀함이 이번 전시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제시된 것으로 보였다. 철저한 타인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을 포함한 많은 여성이 사회나, 남성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지점에서 성을 느끼고 경험하고 있음을 말하고자 했다고.
그 과정에서 자수는 작가가 선택한 일종의 치유 방식이라고 고백했다. 자수를 위해 사진에 구멍을 내는 행위가 상처를 내는 것인 셈. 그래서 작업은 결코 지워지지 않을 상처의 흉터를 남기는 과정이다. 같은 여성이지만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한 개인이 삶에서 받은 상처는 아물긴 해도 그 흉터는 남기 마련이다. 이 작업은 최근 작가를 둘러싼 어떤 사건이나 상황이 계기가 된 듯한 인상을 풍겼다. “아무래도, 세월호 사건입니다. <April> 연작이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진도에 가서 보고 느낀 것들을 모티프로 하게 된 작업이고, 인물의 상처를 더 용기있게 바라보고자 생각했던 시점도 세월호 사고 이후입니다.”
작가의 초기 연작 <Wisper(ing)>은 20대 여성의 성(性)에 대한 이야기다. 분명 어떤 내러티브를 갖고 있음을 짐작게 하지만 그것을 속단하기가 조심스럽다. “제 삶의 이야기예요. 보시다시피 설명할 수 없는 무게감이 작업으로부터 느껴지지요. 불특정다수의 20대 여성을 만나 그녀들의 성에 관련된 경험이나 생각, 느낌들을 듣고 그것들을 나의 시선으로 재구성했어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단다. 무엇보다 대상으로서 그들의 마음을 여는 작업이 가장 어려웠을 터이다. 그래서 그들과의 대화는 눈물과 웃음 범벅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녀들이 저를 만나기 꺼려 할수록, 제게 자신의 이야기하는 걸 꺼려 할수록, 카메라 앞에 설 자신이 없을수록 나는 이 작업을 놓을 수가 없어요.”
마지막 질문을 좀 엉뚱하게 해봤다. 스스로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아직 잘모르겠습니다. 시간이 좀 더 지나야 제대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드릴 수 있는 답변은, “김진희는 사진을 주 매체로 작업하는 여성 작가이다” 정도?”

황석권 수석기자

IMG_0055김진희는 1985년에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동 대학원을 중퇴했다. 서울과 도쿄에서 4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또한 한국을 비롯 일본, 중국 등지에서 열린 그룹전에 출품했다. 아이포스 사진비평상(2011)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에서 작업하고 있다.

SPECIAL ARTIST 안창홍

A218

위  캔버스에 유채 114×194cm 2014 아래  캔버스에 유채 114×194cm 2014

위 <맨드라미 예찬> 캔버스에 유채 114×194cm 2014 아래 <비바람 이후> 캔버스에 유채 114×194cm 2014

작가 안창홍의 세상을 향한 날카로운 시선과 화면을 압도하는 특유의 회화적 어법은 한국 현대미술에서 각별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지난 30여 년간 그가 보여준 예술적 성취와 첨예한 작가의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도발적인 인간형상으로 시대정신을 그려왔던 안창홍이 이번에는 꽃을 그렸다. 아름다움을 넘어 기괴하고 처연하게 보이는 꽃은 안창홍의 또 다른 심상풍경이다. 2014년 11월 28일부터 12월 28일까지 더 페이지 갤러리에서 열린 작가의 29번째 개인전 을 계기로 그의 작품세계를 탐구한다.

고통으로 기록한 처절한 아름다움
최태만 국민대 교수

안창홍의 작품을 보면서 나는 도록 뒤쪽의 여백에 ‘맨드라미의 꽃봉오리는 검붉은 물감덩어리이자 짓이겨진 육질이고, 폭발하는 장기臟器이다’라고 적었다. 29번째 개인전 개막을 앞둔 11월 15일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작가노트에서 “내 눈에 의해 관찰된 맨드라미는 느낌이 식물이라기보다는 동물에 가깝다. 마치 정육점 진열장의 붉은 조명등 아래 놓인 살코기 같은 느낌! 꽃의 형태 대부분이 좌우가 비대칭이고 괴이한 데다 원초적 느낌의 현란하고 강렬한 붉은 빛, 질긴 생명력이 느껴지는 다양한 모양의 억센 줄기와 다양한 색의 잎들. 온 몸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듯이 시들어갈 때의 처연함. 망연자실, 꽃이긴 한데 꽃이 아닌 듯한 느낌”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그림 속의 꽃들은 실핏줄처럼 엉겨있는 줄기와 가지 위로 솟구치는 에너지가 응고된 곳에서 요염하면서도 강인하게 몽우리를 피우고 있다. 선명한 원색의 물감덩어리가 도도하게 짓이겨진 꽃은 화려하면서 처연하다. 그래서 대지에 낭자하게 뿌려진 선홍빛 피가 그대로 굳어버린 듯한 그의 그림은 처절한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것이다. 그의 그림이 불러일으키는 정서적 긴장, 즉 처절한 아름다움은 그가 단지 자연을 재현한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식물을 동물로, 붉디붉은 빛깔의 꽃을 살코기로 표현한 것은 모두 죽음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그의 그림은 죽음의 비유이자 환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화려하게 만개했지만 왠지 쓸쓸하거나 혹은 아예 시들어 말라버린 안창홍의 꽃밭은 풍경이라기보다 정물에 가깝다. 서구미술에서 정물화는 ‘여전히 살아있는still-life’이란 뜻을 지니고 있으나 동시에 ‘죽은 자연natura morta’이란 의미도 담고 있다. 특히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발전한 정물화 속의 활짝 핀 꽃은 언젠가는 시들기 마련이고 자신을 태우며 어둠을 밝히는 촛불도 곧 꺼져버릴 운명이며, 투명한 유리잔도 깨질 것이고 거품은 허공으로 사라질 것이므로 부귀영화와 같은 세속적 욕망은 물론이거니와 삶조차 덧없음vanitas을 상징한다. 대체로 이 그림들은 이러한 대상들을 통해 삶의 허망함을 일깨움으로써 ‘죽음이 항상 네 옆에 있으니 기억하라memento-mori’란 교훈을 담고 있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자면 삶에의 욕망eros과 죽음의 충동tanathos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한짝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안창홍도 죽음 자체만을 강조하기 위해 이렇게 농염한 개화의 절정을 그린 것일까? 이번 전시에서 중심을 이루는 것은 그 길이만 10m가 넘는 세 개의 꽃밭 풍경을 연결한 작품이다. 화려하고 농염한 빛깔을 자랑하는 다른 그림과 비교해 볼 때 이 작품은 꽃밭에서 일어나는 생명의 생성과 소멸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삶의 순환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 앞에 놓인 보라색의 커다란 두상은 그의 작품이 단지 삶의 덧없음에 대한 경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함의를 지니고 있음을 일깨우고 있다. 그는 이 입체작품의 제목을 사람의 피를 먹고사는 좀비 세상을 다룬 영화제목에서 따와 <눈먼 자들의 도시>라고 붙였다. 물론 전시장이나 도록에서 그 제목을 발견할 수는 없지만 꽃밭으로 둘러싸인 이 보라색 두상은 그의 작품에 담긴 수수께끼와도 같은 의미를 푸는 열쇠구실을 하고 있다.

A234

<내 이름은 맨드라미> 캔버스에 유채 91×71.5cm 2014

정물같은 풍경
안창홍은 새로운 작업을 시작할 때마다 어김없이 나를 호출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소환장을 받은 사람처럼 그의 작업실로 출두한다. 덕분에 나는 이 꽃밭작업의 시작부터 볼 수 있었다. 그것도 부족한지 내가 작업실을 다녀온 후에도 그는 SNS 문자메시지를 통해 작업과정을 사진과 함께 꼭 보고 한다. 2014년에 보낸 문자를 보자. 4월 2일 그는 ‘안창홍의 정원’이라 이름 붙인 첫 작품을 보내왔다. 그리고 작업에 대한 글보다 한국사회를 고통에 빠뜨린 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의 문자는 대체로 침몰한 세월호에 대한 정보나 심경을 토로한 짧은 글로 채워졌다. 그리고 한동안 작업에 대해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더니 6월 20일에는 210호 크기의 유화 <검은비>를 완성했다고 알렸다. 7월 20일에는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을 생각하며 그린 작품과 함께 풍경과의 오버랩이 쉽지 않다는 글을 보냈으나 7월 30일에는 드디어 이 작품을 완성했음을 알렸다. 그리고 이 작품을 꼭 봐야한다며 작업실 방문을 독촉했다. 그의 출두명령을 받고 간 작업실에서 한 무더기 맨드라미가 뒤엉긴 그 작품을 봤다. 좌우에 평행으로 맨드라미가 두 그루씩 쓰러져 있고 화면의 중심에는 맨드라미 군락이 한 몸처럼 뒤엉겨있는 이 작품은 그 구조에서나 분위기에서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을 떠올리게 했다. 전면으로 돌출된 꽃에 비해 평면으로 처리하여 원근을 파괴한 배경은 작품을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들었다. 훗날 전시를 개막할 즈음 《조선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그것에 대해 ‘구도의 도발’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의도적인 구도 해체는 안창홍이 정물 같은 풍경을 위한 연출 즉, 연극이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미장센mis-en-scene이란 점에서 작품에 담긴 비유와 환유, 그리고 상징을 감추면서 드러내는 수사이기도 하다. 나는 고야가 그린 <1808년 5월 3일>에 대해서 미술사 서적보다 홋타 요시에堀田善衛가 방대한 자료 조사와 소설가의 상상력을 동원해 쓴 고야 평전 번역본을 통해 더 재미있게 읽은 것으로 기억한다. 고야는 이 작품을 사건이 일어난 지 6년 후인 1814년에 그렸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통합한 지역을 지배하기 위해 나폴레옹이 보낸 프랑스군에 맞선 마드리드 시민들의 봉기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 경비병부대가 봉기에 참가했거나 검문 중 조그만 칼이라도 소지한 사람이라면 모조리 잡아다가 프린시페 피오 언덕에서 처형하는 장면을 그린 이 작품은 겉으로 볼 때 선과 악이 분명하게 나뉘어 있다. 잔인한 처형 앞에 무기력한 시민들과 비교할 때 표정을 감춘 프랑스 경비병들은 살인기계로 표현돼 있다. 더욱이 화면 속 흰색 셔츠를 입고 두 손을 치켜든 남자의 손에 못자국과 같은 상처가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그를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예수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야는 이 그림과 함께 5월 2일에 일어난 스페인 시민들의 봉기도 그렸다. 마드리드 시민들이 프랑스군에 소속된 이집트인 지휘관이 이끄는 용병부대와 뒤엉겨 싸우고 있는 이 작품에는 선악의 경계도, 위대한 영웅도 없다. 혼란스럽고 산만한 구도는 이 혈전의 잔인함만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사실 대부분의 전쟁화는 전투에서 승리한 자의 용맹을 과시하기 위해 전투의 끔찍함을 왜곡한다. 고야는 불과 하루 사이에 일어난 두 사건을 왜 이토록 다르게 그렸을까. 고야는 5월 3일의 사건을 목격하지 않았고 훗날 다른 사람들의 증언을 참고해 <1808년 5월 3일>을 그렸다. 그 뒤에는 누구보다 생존본능이 강했던 고야의 정치적 고려도 작용했지만 또 한편으로 당시 유럽과 스페인의 복잡한 정치에 대한 그의 의식도 작용하고 있다. 그때까지 스페인에는 종교재판이 존재했고, 나폴레옹이 그것을 금지하자 스페인 교회는 스페인인들로 하여금 나폴레옹에 반대해 봉기할 것을 사주했다. 반면에 왕정과 교회의 무능과 억압에 지친 스페인인들은 프랑스가 혁명의 이념을 전파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결과적으로 스페인인들은 프랑스군이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임을 깨닫고 저항했다. 이러한 복잡한 정치 구조 속에서 고야는 프랑스군이 떠나고 페르디난도 7세가 복권한 후인 1814년 의회에 청원하여 왕의 재정지원을 받아 작품을 제작했다. 고야는 <1808년 5월 3일>에서 희생자를 순교자로 표현하고 있으나 스페인왕정은 자취도 없고, 교회조차 더 이상 시민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상황을 포착했다. 따라서 그림 속에서 전통적인 기독교미술의 구원이나 부활의 상징을 발견할 수는 없고 잔혹한 살육만 강조돼고 있다. 고야의 작품에서 강조된 야만과 폭력의 섬뜩함이 안창홍의 작품에서 맨드라미의 핏빛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내가 작업실을 다녀간 후인 8월 23일 그는 90% 완성했다는 소식과 함께 시들어가는 맨드라미 꽃밭을 통해 가깝게는 우리나라, 멀게는 지구촌의 절망과 슬픔을 이야기한 <안창홍의 뜰, 개 같은 여름>이란 작품의 이미지를 보내왔다.(도록에는 이 제목들이 모두 빠졌고 단지 ‘뜰’이란 애매하고 중성적인 제목만 붙어있다.) 다시 안창홍의 작업노트로 돌아가 보자. “2014년은 나에게 가혹한 해였다.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의 무차별적인 학살, 여객기 피격으로 사망한 259명의 사람들, 이라크 내전, 슬픈 아프리카 빈국들의 끝없는 전쟁과 살육, 에볼라로 사망한 5000여 명의 사람들, 전 세계를 수렁으로 내몰고 있는 이 모두가 피도 눈물도 없는 약육강식의 경제논리가 모든 가치의 우위에 있는 광기와 탐욕의 결과물들이 아닌가! 그리고 잊혀질까 두려운 세월호 사건.” 그렇다. 4월 16일 이후 한국은 깊은 절망의 수렁 속에 잠겨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여름이 지나갔지만 진전은 없었고, 10월 말 생일을 맞은 황지현 양의 시신이 인양되었다. 그러므로 안창홍의 풍경 같은 정물은 죽음이 네 옆에 있을지니 항상 그것을 기억하란 보편적인 경구가 아니라 죽음 앞에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와 고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안창홍은 이년 전부터 작업실 앞마당에 작은 꽃밭을 일구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꽃을 통해 자연과 투쟁하며 살아남기 위해 생존의 몸부림을 치는 인간의 삶을 표현하고 싶어 했다. 그것은 어쩌면 안창홍 자신의 모습을 꽃을 통해 투영하려는 욕망의 발로일 것이다. 그러다 그는 자신의 뜰에서 맨드라미를 발견했다. 돌담 밑이나 장독대 부근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그 꽃이다. 맨드라미의 학명은 셀로시아 크리스타타Celosia cristata로서 린네가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셀로시아는 그리스어로 불타오르다는 의미를 지닌 ‘켈로스κηλος’에서 파생한 것으로서 꽃봉오리 모양이 불꽃처럼 보이기 때문에 붙여졌다. 그래서 맨드라미의 꽃말도 ‘불타오르는 사랑’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안창홍의 맨드라미는 죽은 자연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분노를 불태우며 부활하는 살아있는 자연은 아닐까. 그는 “예술은 규범과 단정의 부산물이 아니라 모호함과 불안함과 갈등의 긴장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라야 더욱 아름답다”고 했다. 그래선지 그의 작품이 나에게는 처절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

 캔버스에 유채 97×194cm 2014

<검은비> 캔버스에 유채 97×194cm 2014, 더 페이지 갤러리 개인전 전시광경

 IMG_0421안 창 홍 Ahn Changhong
1953년 태어났다. 부산 동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까지 개인전 29회와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3년 제25회 이중섭미술상, 2006년 제1회 부일미술대상, 1998년 부산봉생문화상, 1989년 프랑스 카뉴국제회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현재 경기도 양평에서 작업한다.

ARTIST REVIEW 송현숙

복잡하고 어려운 것을 단순화하면 그 힘은 강해진다. 최소한의 붓놀림으로 성숙하고 명료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작가 송현숙을 만나본다. ‘획’이라는 동양적 개념과 서구미술의 ‘시간성’이 공존하는 그의 회화에 드러난 리얼리티는 무엇일까.
2014년 11월 11일부터 12월 31일까지 학고재에서 열린 개인전 를 통해 한층 묵직하고 깊어진 그의 작업세계를 살펴본다.

적극적 내용미학으로의 모색, ‘붓질의 다이어그램’을 떠올리며
박석태 미술사

어떤 텍스트냐를 막론하고 그 안에는 작가가 추구하는 진실한 믿음의 세계가 존재한다. 그것이 세계평화나 미술의 사회적 역할과 같은 거대담론일 수도 있지만, 작가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좀처럼 알아차릴 수 없는 내밀한 태도 혹은 정서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작품에는 그 수만큼의 리얼리티reality가 존재한다고 할 터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려는 리얼리티는 흔히 ‘리얼한 표현이 인상적이다’라고 할 때의 사실적 표현을 지칭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작품으로서 다가가려는 작가의 구체적인 어떤 지점을 가리킨다. 이를 조형예술에 국한해 말하자면, 그 내밀한 지점에 다가가려는 태도 자체에 존재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구사하는 언설言說로는 도저히 표현되지 않지만, 특유의 시각적 장치를 통해서만 작가가 제시하고 싶어 하는 리얼리티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송현숙의 회화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리얼리티는 무엇인가. <3획>, <6획>, <28획> 등 작품 타이틀이 말하듯 최소화된 획으로 펼쳐 보이는 동양적(한국적) 개념인가, 그를 통해 작품과 작가가 대면하는 방식인가, 혹은 행위와 방식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내용적 측면의 리얼리티인가. 이때 리얼리티라는 개념은 1970년대 파독 간호사 출신으로 겪어야만 했던 디아스포라라는 정체성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탐구인가, 화면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횃대, 흰 천, 익명의 인물과 같은 소재들로 전달하려는 두고 온 땅에 대한 그리움인가.
그가 제시하는 ‘획’이라는 동양적 개념은 서구미술의 ‘시간성’과 일정 부분 맥을 같이한다고 보인다. 획은 필을 긋는 행위를 뜻하지만, 호흡이 만들어내는 시간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연담蓮潭 김명국金明國(생몰년 미상)의 <달마도>나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생몰년 미상)의 <풍설야귀도>에서 그 본질적 속성과는 별개로 그야말로 ‘일필휘지’가 만들어내는 정지된 호흡을 읽기도 한다. 반대로 공필工筆로 형사形似를 추구하는 그림에는 헤아릴 수 없는 붓질의 중첩이 만들어낸 시간이 응축돼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획을 긋고 그 수가 그대로 작품 타이틀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송현숙의 화면은 상당 부분 동양적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인다. 송현숙은 이번 개인전에서도 중첩된 시간성을 예의 그만의 태도로 기록하고 있다. 그가 겪어낸, 혹은 그려 온 지난한 시간의 쌓임을 어두운 색채로 증언하는 작업 태도는 절제된 획의 흔적을 보여주는 방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는 시간성을 기록하는 그만의 적절한 행위로 보인다. 그러나 시간과 행위를 기록하는 서구의 추상표현주의 방식과는 상당히 다른 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즉 서구의 방식이 실존적 사고에 근거해, 대상(화면)과 주체를 전제한 채 주체가 강조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고 한다면, 송현숙의 그것이 화면과 마주하는 주체가 구분되지 않는 몰아일체의 경지를 탐구함으로써 서구의 이분법적 사고를 해체한다는 점은 주목을 요하는 지점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획수를 기록하는 그의 작품은 시간의 경과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것이 외면화하기까지 사유의 기록이기도 한 것이다.

(오른쪽) 캔버스 위에 템페라 150×200cm 2014

<28획>(오른쪽) 캔버스 위에 템페라 150×200cm 2014

동양적 사고로 풀어낸 내면의 리얼리티
송현숙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시간에 대한 동양적 사고를 실험한다. 즉 시간 그대로의 시간positive time과 대비되는 개념적인 시간negative time을 형상화하는 방식을 취한다. 언뜻 보기에 그의 화면은 획수와 타이틀로 이어진 순환구조로 마치 촬영시간과 러닝타임이 일치하는 무편집영화를 연상시키지만, 그 이면을 채우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혹은 그 정체성에 맞닿은 재현을 넘어선 사의寫意의 흔적이라는, 기나긴 사유의 시간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고 보인다. 이처럼 가시적·비가시적 시간이라는 양면성을 표현하는 그의 방식은 마치 동양의 음양사상을 떠오르게 하는 지점인 바, 선형적 시간개념을 근간으로 한 서구적 사상에 대한 일종의 반전을 시도하는 듯하다.
한편 사유가 동반된 시간 개념을 증언하는 그의 행보는 시대의식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끈 작품은 <붓질의 다이어그램(4월 16일 세월호 비극을 생각하며 그림)>(이하 <붓질의 다이어그램>)이다. 검고 어두운 배경 속에 그가 오랫동안 택해온 소재들-횃대, 그 위에 놓인 흰 천으로 감긴 길고 날카로운 형상-이 마치 깊은 바다 속에 침잠해 있는 비극의 배처럼 검은 공간 속에 힘겹게 형상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들은 그가 두고 온 땅을 떠오르 하는 그리움의 기표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제목의 ‘다이어그램’이 뜻하듯 그와는 다른 무엇인가를 전달함을 목적으로 제시된 시각언어로 보인다. 통곡마저 삼켜버린 그 음험한 바다 한가운데서 서서히 가라앉으며 운명을 달리한 수백 명의 원혼에 수의를 연상시키는 흰 천이 감긴 듯한 장면은 고요하므로 더 큰 울림을 담아낸다. 유일하게 획수가 표기되지 않은 작품 제목이 상징하는 듯한, 적어도 이 작품에서만큼은 그가 줄곧 스스로 내면화해왔던 규율을 넘어선 태도로 인하여 그가 제시하려는 내용적 측면의 ‘리얼리티’를 얻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번 개인전에 선보인 16점의 작품은 <붓질의 다이어그램>으로 수렴되는 듯하다. 구도하는 수도승처럼 한 획 한 획 써내려간 그의 화면은 이국에서 사무치게 솟구치는 고향 땅에 대한 그리움, 그곳에서 벌어지는 갈등으로 인한 슬픔, 그리고 차마 외면하지 못할 시대의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붓질의 다이어그램>에 이어 <8획>에 등장하는 횃대에 감긴 흰 천이 우리 시대의 비극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면, 실상 그는 화면에 단지 여덟 번 붓을 그은 것만이 아니라고 보인다. 현상적으로 보이는 8획을 통해 그는 4월 16일, 그때부터 간단없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스스로의 아픔을 화면과 일체가 되어 증언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서두에서 리얼리티가 작가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좀처럼 알아차릴 수 없는 내밀한 태도 혹은 정서의 문제일 수 있다고 적었다. 또 내밀한 지점에 다가가려는 태도 자체에 존재 가치가 있다고 했다. 동양적 사고에 기반을 둔 조형언어라는 그만의 리얼리티는 바야흐로 내용적 측면에서 리얼리티를 획득하는 모색의 지점에 서 있다고 보인다. 달리 표현하자면 개인적 차원의 정서를 드러내는 태도가 사회적 인식의 범주로 나아가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더욱이 그 동안의 작업이 디아스포라로서 정체성을 모색하는 정서적 보편성을 획득하는 데 성공을 거두어 왔으므로 이러한 그의 변화는 작업의 이력에 깊이를 더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한다. 리얼리티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기법적인 해석과 표현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보편적인 속성으로의 전이, 나아가 이미지가 갖는 존재론적인 규명이 적극적인 내용미학으로 연결되었다는 데에 이번 송현숙 개인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

 캔버스 위에 템페라 135×174cm 2012

<1획 위에 4획(왼쪽), 8획(오른쪽)> 캔버스 위에 템페라 135×174cm 2012

 송현숙 인물송 현 숙 Song Hyunsook
1952년 태어났다. 1972년 파독 간호원으로 독일로 건너가 4년간 독일의 병원에서 근무하다 함부르크 미술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독일 학술교류처 장학생으로 전남대에서 동양화와 한국미술사를 연구했다. 1982년부터 독일과 한국을 넘나들며 18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스위스 베른미술관, 독일 함부르크 미술관,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일본 모리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현재 함부르크에서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ARTIST REVIEW 나현

DF2B1686

<바벨탑 프로젝트, 체리나무 바벨탑>(사진 앞 오른쪽)120×120×140(h)cm 2013

나현의 개인전 <프로-젝트(PRO-JECT)>가 LIG아트스페이스에서 2014년 11월 27일부터 12월 31일까지 열렸다. 나현은 이 전시에서 수집한 역사적인 자료를 작가 개인의 주관과 결합하여 객관의 역사 속 절대 진실을 보여주는 일련의 작업을 선보였다. 따라서 관람객은 전시장에서 결과물이 아닌 지금도 지속되는 작업 과정을 목도하게 된다. 객관의 역사가 재구성되는 나현의 전시장으로 들어가 본다.

‘절대 진실’에 저항한다
김주원 미학

“민족의 피가 더럽혀져가는 이 시대에 자국의 가장 우월한 인종 보존에 최선을 다한 국가는 언젠가 분명 세상의 지배자가 될 것이다. 우월 인종 보존을 두고 성공 가능성이 있는지를 당이 요구하는 희생과 비교하며 불안해지는 일이 있더라도 이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아돌프 히틀러 《나의 투쟁Mein Kampf》 중에서

한 작가의 작품세계에 관한 글을 내가 이렇게 불순하게 시작하는 이유가 있다. 한 사람의 광기어린 편견과 민족, 인종에 대한 오해가 다른 민족을 절멸의 운명으로 이끌고 세계지도를 전쟁과 학살의 피로 얼룩지게 한 것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라기보다는 작가가 말하는 ‘절대 진실Absolute truth’, 즉 근대와 근대성의 표상이며, 이를 교육받고 강요받으며 유년기를 보낸 세대의 작가 나현이 이에 대한 의심으로 자신의 프로젝트들을 전개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이성이자 말인 로고스에 대한 신뢰와 확신의 시대에 대한 의심인 셈이다. 합리주의와 식민주의/우생학, 진보에 대한 믿음과 인종/민족주의, 자본주의와 실증주의 등의 근대 프로그램은 작가 나현의 <실종Missing>(2006~2009)에서부터 현재진행형인 <바벨탑The Babel Tower>(2012~)에 이르는 거의 10년 동안 진행되는 프로젝트 등의 비판적 대상이며, 이로 인해 만들어진 객관화된 ‘하나’의 사실 혹은 역사로 불려온 것들이 사실은 두껍고 단단한 마스크를 쓴 복잡한 ‘여러’ 다른 얼굴을 감추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물론 이것은 그의 작업이 어떻게 진행돼왔고 어떤 성격을 지녔는지를 살피는 일에서 확인될 것이다.
LIG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는 작가 나현의 전시 <프로-젝트PRO-JECT>에는 작가가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현재 진행 중이거나 지금까지 진행해 온 회화, 드로잉, 영상, 사진, 설치 등 다양한 매체의 작업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의 프로젝트는 <실종>(2006~2009), <나현 보고서-민족에 관하여NA Hyun report-about the Ethnic>(2008~2011), <로렐라이의 노래A Song of Lorelei>(2010~2013), <바벨탑>(2012~) 등 크게 네 개로 구별되지만 이들은 연쇄적 성격을 지녔다.
프로젝트들은 하나의 특정한 레퍼런스, 장소, 그리고 시간에서 시작해 관련된 자료나 문서들을 수집하고 실재 인물 인터뷰 등을 이용하는 리서치 기반의 작업 형식을 띤다. 그러나 그 특정한 레퍼런스와 장소적 그리고 시간적 편협함 안으로 미끄러지지는 않는데, 이는 나현의 작업이 리서치 과정과 결과물의 형식에서, 아카이브나 기록이라는 전형성과 박제성에서 멀리 나아가기 때문이다. 즉 사건으로서의 역사적 사실과 그것을 에워싼 담론들의 축조들을 여러 맥락에서 살피고 다시 현재 혹은 각기 다른 장소, 시간과 엮고 구성하여 역동적 읽기와 새로 쓰기의 가능성을 여는 흥미로운 과정을 끌어오는 것이다.
예컨대, 작가가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된 독일제국의회의 1912년 혼혈혼 논쟁Die Mischehendebatte im Reichstag 자료에서 출발한 <바벨탑>의 경우를 보자. 사실, 인종 혼합이라는 공포의 이미지는 근대 식민주의 담론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식민지의 지배 인종이 피식민지인과 혼합되면서 식민 주도의 힘을 상실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인종 혼합=종種의 퇴화라는 우생학적 담론이 바탕에 있다. 이 정치적 논쟁의 법률적 도덕적 성격 판단 여부를 떠나 이러한 논쟁의 사건 속에서 지속적인 역사적 과정의 인식들이 생기게 된다고 작가는 보았던 것 같다.

 아틀리에 에르메스 서울 전시광경 2013

<바벨탑 프로젝트> 아틀리에 에르메스 서울 전시광경 2013

네 개의 프로-젝트와 질문들
혈통, 민족, 로고스(이성이자 말), 신화 등으로 대응되는 바벨탑 이야기는 작가 나현에 의해 전후 전쟁 쓰레기로 만들어진 베를린의 토이펠스베르크Teufelsberg(악마의 산)과 자본의 논리 아래 쏟아지는 산업, 생활 쓰레기로 이루어진 서울의 난지도라는 두 도시의 인공산으로 연결되었다. 프로젝트에는 7000년 전 유럽과 한성 백제시대의 <목조우물>의 재현, 베를린 거주 외국인들의 모국어 <인터뷰_크로이츠베르그>(2013~2014) 프로젝션, 외래종과 토착종의 채집 식물들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목조우물> 속에 프로젝션 되고 있는 <인터뷰>는 터키, 미국, 일본, 캐나다, 에티오피아, 그리스, 폴란드, 이탈리아, 이스라엘, 브라질, 한국 등 각기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지만 한 가지 언어(‘영어’)로 질문하고 다시 한글로 번역되는 과정을 보인다.
이 작업들은 나현의 프로젝트가 고대 유적 바벨탑의 발굴 프로젝트임을 상징한다. 서로에게 대응한 공간과 시간 속에서 로고스를 둘러싼 분리와 단절의 계기들을 혼합된 경계지대로 이끌어내어 서로가 ‘적’이자 ‘위험한 것’이었던 민족 간 혹은 인간과 신, 자연과 인간 등이 스스로 품었던 두려움, 공포, 경계 등을 끄집어냈다. 이는 서로 연결될 수 없을 것만 같던 공간과 시간, 여러 가지 계기들이 작가 나현에 의해 다시 직조되어, 지배적인 판단, 정의, 역사라는 확정된 절대 진실에 대한 수사학적 전복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프로젝트 <바벨탑>은 <로렐라이의 노래>, <나현 보고서-민족에 관하여>와 동일한 맥락에 서있다. ‘기적’과 ‘개발’의 수사로 언급돼 온 독일의 라인 강과 한국의 4대강을 연결하여 3년에 걸쳐 진행된 또 다른 발굴 프로젝트 <로렐라이의 노래>는 14세기 독일의 성과 영토를 위한 경계 목A boundary post <PILE(말뚝) PROJECT>(2012)을 재현한 것으로 시작된다. 나현은 2년 동안 강변에 <말뚝>을 박고 자연의 흐름과 그것을 둘러싼 인간의 사회정치적인 태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관한 압축적 지표화를 시도했다. 라인 강을 둘러싼 정벌과 전쟁, 교역과 공업, 생태도시로의 전환이라는 시간차를 둔 이 모순적인 역사적 모델들은, 아름다운 소녀의 감미로운 노랫소리가 죽음의 유혹이라는 전설의 노래와 하이네의 시 ‘로렐라이’로 수렴되어 <말뚝>에 흔적으로 남게 했다. 그리고 다시 <말뚝>은 테이블로 제작되어 ‘기적’과 ‘개발’이라는 근대적 신화를 만들기 위한 충돌과 모순, 경계를 통합하는 가능성으로 전환됐다. 라인 강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한국의 남한강대교-한강, 구담교-낙동강, 담양호-영산강, 금강 등지에서도 나현의 프로젝트는 그렇게 수행되었다.
사실 <나현 보고서-민족에 관하여>는 앞의 두 프로젝트가 의심하고 있는 문제들, 즉 근대와 근대성이 요구해온 ‘절대 진실’로서의 동일성과 균질성, 그리고 경계가 그 이면의 것들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질문에 닿아있다. 다른 것들에 비해 상당한 갈래를 갖고 있는 작업들은 시베리아나 몽골의 바이칼 호와 쿠바 그리고 한국의 서남해안 등지를 여행하며 수집한 역사와 자료들에 기초한다. 작업은 민족(혹은 ‘국민’, nation)의 구성적 특징이라 여겨진 초역사적 단일성과 동질성의 개념을 흔들고 민족ethnic의 문제를 디아스포라와 잡종, 그 경계에 주목하게 했다. 원시시대 소금과 먹이를 찾아 이동한 매머드를 따라 인간 역시 이동했다는 작가의 가설이 설득력을 갖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1950년대 한국전쟁에 참전한 프랑스 군인 중 실종자 7인에 관한 도큐멘트에서 출발한 <실종>은 프랑스군, 연합군, 실종자라는 무정체적 정체를 지닌 보편 혹은 덩어리들인 7인의 병사를 12인의 개인, 혹은 파편으로 찾아내고 소생시켰다. 실종이라는 이미 멈춰버린 사태와 그 사태의 해체 혹은 재구성을 위한 그의 작업 과정은 실종자 7인의 실종확인 도큐멘트, 시테 섬의 7개의 다리, 관을 연상시키는 7개의 함석 제작품 등으로 가시화된다. 특히 7개의 함석제작품 안의 <물 위에 그리기>는 지나간 시간들이 사건으로 남는 방식에 관해 말하고 있다. 물위에 그린 그림, 증발된 물, 함석 바닥에 남은 물감의 분명치 않은 흔적 등은 주체에 따라 매우 상이한 방식으로 인식되고 상상될 것이다.
<우물>, <말뚝>, <매머드 터스크>, <물위에 그리기>는 네 개의 프로젝트 각각의 중심에 있다. 현지 조사와 수집을 통해 모아진 레퍼런스들에 기대는 종류의 작업이 잃기 쉬운 미학적 터치들은 작가가 설정한 발굴 지표로서 이들 작업에서 해소되고 상징화됐다. 나는 근대와 근대성의 모순적인 모델들을 마술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으로 이들을 상정한 작가의 진심을 여기에서 읽는다. 그래서 그의 작업이 프로젝트가
아닌 프로-젝트일 수 있는 가능성을. 다른 시간들과 공간들, 그리고 다른 공동체들의 담론적 네트워크를 실천하는 수행성을. ●

 2010/2012/2013

<로렐라이의 노래 프로젝트, PILE-Rhine> 2010/2012/2013

 

DF2B0389나 현 Na Hyun
1970년 출생했다. 홍익대 회화과, 동 대학원 그리고 옥스퍼드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과 일본, 독일, 영국 등지에서 15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또한 한국을 비롯하여 인도, 일본, 미국, 영국 등지에서 열린 다수의 기획전과 그룹전에 출품했다. 프랑스 파리 시테, 쿠바 아바나, 베를린 쿤스트하우스 베타니엔 등 국내외 레지던스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현재 서울에서 작업하고 있다.

 

NEW FACE 2015 고재욱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

사랑의 상처는 많은 사람을 파멸에 이르게 한다. 사랑의 아픔을 주체하지 못한 개인이 저지른 행동이 나비효과로 사회적 사건, 사고에 영향을 끼친 사례도 많다. 작가 고재욱의 작업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이해하고 느끼는 ‘사랑’이란 감정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진중한 언어로 작업을 풀어나가기보다는 자신의 일상 속 이해의 폭 내에서 재치있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업은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면서 솔직하다. 모든 작가가 이해하기도, 다가가기도 힘든 거시적인 문제에 집중해 이러쿵저러쿵 무겁게 풀어나갈 필요는 없다. 작가 고재욱의 개인적 고민은 진정성을 갖고 관객은 이에 자연스럽게 다가간다. 그는 주변부를 건드려 세대의 목소리, 사회의 문제들이 은연중 작품에 드러나는 것을 즐긴다.
고재욱은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인터랙티브 작업을 주로 한다. 그리고 이 작업은 그것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차치하고서 일단 관객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작가가 미리 선곡해둔 이별노래의 반주가 흘러나오는 반투명 유리 노래방 작업인 이 그 중 하나다. 작가는 살짝 문이 열린 노래방에 들어가 열창하고 관객은 그를 바라본다. 이 작업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원하면서 한편으로 이를 숨기려는 젊은 세대들의 모습을 풍자했다. 는 헤어진 연인의 물건을 3개월간 보관하는 프로젝트였다. 2013년 당시 60여 명의 신청자가 몰려 카메라 가방부터 헝겊조각까지 다양한 물품이 수집되었다. 작가는 개인적인 역사가 담긴 오브제를 병치해 그들이 가진 저마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2009년부터 진행했던 는 관객과 작가의 상호관계가 더욱 강한 작품이다. 작가는 자신의 사진을 물리적으로 가기 힘든 지역으로 보냈다. 이 사진을 받은 이는 작가의 자신들을 함께 찍은 사진을 작가에게 되돌려주게 한 프로젝트였다. 허구의 이미지가 세계를 이동하며 실존하는 인물들 간의 묘한 관계를 형성했다. 이미지가 부유하는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이는 지극히 일상적인 발상이었다. 그리고 이 사진들을 모아 전시장 한 벽면을 채운 방식은 마치 SNS에서 테그에 걸린 여러 사진을 펼쳐놓은 듯한 인상을 주었다.
2014년, 그의 관심은 유휴공간을 이용한 대안주거에 쏠렸다. 서울 시내에도 주위를 둘러보면 곳곳에 공터가 있다. 그러나 막상 점유할 수 있는 ‘나만의’ 주거공간을 구하기란 어렵다. 최근 빈집, 빈고 등 대안적 공동거주 형태들이 생겨나는 상황에서 그는 이동할 수 있는 <렌터블 룸> 프로젝트를 생각했다. 이 프로젝트는 2014년 11월 11일 공간해방을 시작으로 오렌지 연필(2014.11.27~2014.12.3), 반지하(2014.12.4~7), 가우스(2014.12.10~17) 그리고 서교예술실험센터(2014.12.22~27)로 옮겨갔다. 설치된 방을 연인에게 대실하는 프로젝트다. 본래는 미술과 무관한 서울시내 유휴공간에 설치할 계획이었으나 임차공간을 구하지 못해 아쉽지만 문화관련 공간 일부를 빌려 진행했다. 이용객은 미술작품이라는 인식 없이 온 경우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미술과 숙박업의 경계가 모호한 상황이다. 일종의 ‘대실’ 프로젝트이다보니 한 숙박업체 사이트에 이벤트 형식으로 공고되어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숙박업체를 공유하는 사이트에 올라온 사용자후기를 보고 예약문의를 하는 등 웃지못한 에피도드도 있었다. 덕분에 프로젝트 기간 내내 룸은 만실이었다. 작가는 찾아온 이들에게 작업의도를 설명하고, 자신이 꿈꾸는 집의 구조를 그려달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프롤로그 역할을 하는 짧은 소설을 읽도록 했다. 누군가는 작업이 가볍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는 말한다. “이론적으로 보면 참여미술로 분류할 수도 있겠고, 거주형태에 대안을 제시하는 사회 참여적 메시지를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을 해석하고 분석하는 겹겹의 층을 제거하더라도 1차적인 레이어는 단순하다. 결국 ‘방’이다. 이해를 떠나 관객이 즐길 수 있는 작업을 바란다.”
임승현 기자

고재욱 인물 (2)고재욱 Koh Jaewook
1983년 태어났다.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독일 코에스펠트에서 열린 을 시작으로 4차례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2013년 첫 개인전을, 2014년에는 으로 두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NEW FACE 2015 김윤희

자연과 인간이 유쾌하게 공존하는 세상

오늘날 동양화가들은 심리적 부담감이 크다. 동양화의 전통적 요소와 동시대적 변화를 어떻게 풀어낼지에 대해 고민이 많기 때문이다. 풍경을 그리는 작가 김윤희 역시 마찬가지다. 작가는 최근 만삭의 몸으로 5번째 개인전 <기묘한 설레임>(2014.12.6~12)을 인천 갤러리 지오에서 열었다. 그녀는 자신의 작업이 “산수나 풍경으로 정형화되기보다는 이미지 그 자체로 인식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김윤희는 강원도, 서울 일대의 풍경을 스케치하기 위해 답사를 다니고 동네의 특성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데 집중했다. 예를 들어 서울 한남동이 강변북로로 둘러싸인 모습을 마치 왕관처럼 캐릭터화했다.
요즈음 작가는 장소에 대한 해석을 개인적인 감수성으로 환원하기보다 그림을 보는 이가 풍경을 이미지 자체로 대면하고 그림에서 독특한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풍경의 패턴화된 형태, 도트, 색면 처리 등도 인간과 자연이 맺고 있는 유기적 관계 속에서 새로운 공간 개념을 제시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해당한다.
김윤희가 그리는 풍경은 이상향도 아니고 그렇다고 삭막하지도 않다. 인간의 거주 공간은 마치 아이들의 장난감 블록처럼 자유롭게 구성되지만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조화로운 공간으로 표현돼 있다. 여기에서 자연 풍경은 회색톤의 먹으로, 동네 풍경은 컬러풀한 아크릴 채색으로 대비를 이루는 것이 특징적이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은 대결구도가 아니라 그림 안에서 색다른 어울림을 이루는 것이다.
김윤희는 동양화의 특성이 한계처럼 느껴지더라도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떠안는 방식을 취한다. 때로는 동양화의 전통을 뛰어넘어 마음껏 변주를 시도한다. 일반적으로 동양화가들은 먹을 통해 붓자국을 강조하지만 그녀는 먹을 하나의 색으로 사용한다. 자연이라서 먹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색으로서 먹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아크릴의 검은색은 먹만큼 풍부한 색의 깊이를 표현하지 못하단다.
그녀에게 동양화는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기 위한 풍부한 토양이자 원천이다.
김윤희의 근작들은 이번 전시 제목처럼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면서 느낄 수 있는 하나의 감수성으로 ‘기묘한 설레임’을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과거 동양화에 자연을 이상향으로 바라보는 전통적인 관점이 배어있다면 작가는 지금의 현실이 반영된 자연관이란 무엇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연을 통해 아름다움과 휴식을 느끼고자 했다. 작가는 직접적으로 주장하진 않지만 이런 감수성이 오히려 인간이 자기 중심적으로 자연의 리듬을 파괴하고 현대문명을 성립해온 근원은 아닌지 반성한다. “자연과 사람이 만들어낸 공간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자꾸 변화하는 과정이라 생각해요. 이 공간 속에서 기묘한 느낌, 그리고 이전에 알지 못했던 설레임을 찾고 싶어요. 서로 다른 두 감성이 만나서, 실제로 존재하지만 사람들이 포착하지 못하고 잃어버리는 공간감을 드러내는 것이죠.” 하지만 그녀의 작업은 인간의 삶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공간의 유쾌함을 드러내기 위해 제목을 지을 때도 나름대로 고민하는 편이다.
김윤희의 작업은 여전히 어떤 변화를 위한 출발점에 서있다. 지금의 시도가 차곡차곡 축적되도록 작업량을 늘리고 앞으로는 대형 작업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리고 작업도 좀 더 단순한 형태로, 평면적으로 변모시킬 계획이다. 그러다보면 지금까지 화면에 보여주었던 전통적인 필선이 없어질 수도 있다. 그러면서 작가는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지점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고민이라고 밝혔다.
이슬비 기자

art141212_02김윤희 Kim Yoonhee
1984년 출생했다. 덕성여대 동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홍익대학교 대학원 동양화과 박사과정 중이다. 2008년 관훈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을 시작으로 5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Special Artist] 유근택

지금 여기, 우리 삶의 행복은 오늘에 없는가

다양한 실험을 모색해 한국화의 지평을 넓힌 작가 유근택의 개인전 <끝없는 내일>(11.6~12.28)이 OCI미술관에서 열린다. 유근택은 ‘지금’ ‘여기’의 실경에 주목해 구체적인 일상을 담은 한국의 진경을 과감없이 선보인다.

전영백 홍익대 교수

유근택의 작업에 대한 이런 저런 글들은 한국화(동양화) 영역의 리더 격인 중견작가의 ‘실험성’을 찬양(?)하는 내용이 주종을 이룬다. 다수의 눈이 역시나 비슷하다. ‘실험’이란 말은 신진이나 작가의 초기 경력을 소개할 때 자주 쓰이는 말인데, 중견 중에서도 ‘고참’인 작가의 경우라 독특하다. 그런데 뭉근한 회오리가 몰아치며 무서운 힘을 내듯, 중견의 실험이나 명장의 혁신은 그 지긋한 영향력이 젊음의 순간적 변혁보다 큰 법이다. 더구나 그의 작업은 개인적 실험이라기보다 한국화의 새로운 모색으로 보이기에.
유근택의 수묵채색 회화전이 대규모로 열리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작업한 회화 60여 점이 ‘끝없는 내일’이라는 제목으로 수송동 OCI미술관에 펼쳐 있다. 그의 실험이 더 진척된 게 분명하다. 이번 전시에선 “그를 굳이 한국화가라 부를 필요가 있을까?”라는 철없는 질문까지 들 정도다. 가까이 눈을 붙여 재료를 확인하지 않으면 거의 유화인 줄 안다. 그래서 우린 자문하게 된다. 어디까지 이어받고 무엇을 떨쳐내는 건가. 동시에 무엇을 들여오고 어디까지 열어두는 건가. 지금 우리가 관심 있게 볼 일은 유근택이 과감하게 밀고 가는 실험성의 내용 자체이다.
전시의 중심을 차지하는 그의 <산수> 연작 10점은 가로 2.7m, 세로 1m 크기의 대작이다. 한지에 수묵채색으로 그린 회화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표현 기법이 유화를 닮아있다. 동양화와 서양화의 구별을 무색게 하는 그림들이다. 그런데, 전통화의 재료와 매제를 유념치 않고 마주하는 이 풍경에서, 관람자는 동양과 서양을 모두 느낀다. 눈으로 보며 개인적으로 지각한 풍경이란 점에서 서양화의 시각을 지니고, 회화의 골격과 구조가 되는 먹선들이 전체 구성을 이루기에 한국화의 산수를 떠올린다. 더욱이 긴 폭의 전통 산수화를 수평으로 펼치는 파노라마 정경은 역시 동양적 시각구조이다.
그의 전시에서 확인하듯, 다양하게 전개되는 한국화의 표현언어는 오늘날 젊은 작가들에게 고무적이다. 한지와 먹, 그리고 채색이란 재료의 기본은 살리되 그 외 템페라를 도입, 두꺼운 마티에르를 구사한다. 호분(胡粉)이야 한국화에서 본래 쓰는 것이지만, 이를 유화물감 쓰듯 겹치고 올려서 두껍게 표현하는 색채 구사는 한국화의 관습을 탈피한 것이다. 이렇듯 표현의 이탈은 새로운 감성을 불러오고 시각적 효과는 확장된다.
미술의 창작은 과거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이를 현재에 맞게 바꿔야 하는 것이다. 유근택이 한국화 장르에서 포기하지 않는 것과 과감히 버리는 것을 생각할 때, 흥미로운 건 그러한 취사선택이 대립적이거나 택일의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단, 그의 수묵채색화는 실제 풍경에 기반을 둔 지극히 개인적 시각이란 점에 주목한다. 이는 서양 모더니즘에 근거한 개인주의의 발현이라 말할 수 있다. 동시에, 실사(實寫)는 이미, 또 언제나 심상(心象)의 투영이라는 동양미학의 태도를 지닌다. 양자는 전혀 다르지만, 유근택의 회화에서 무리 없이 섞인다. 객관의 묘사가 바로 심상의 표현인 동양적 태도는 그의 회화에서 세계를 보는 개인 주체의 서구적 시각과 자연스레 맞물린다.
필자가 특별히 주목하는 게 바로 이 점이다. 유근택 회화에서는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매듭’이 두드러지지 않고, 그 ‘충돌’이 유연하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회화가 가진 ‘모호성(ambiguity)’의 실체라 여기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글을 살펴보면, 많은 비평가가 이 모호성을 주목했지만 이를 그의 그림이 지닌 표현기법으로만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주의적 해석은 유근택 회화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다. 모호함이 작가의 특징적 표현기법이함은 모호한 표현에 대한 단순한 묘사일 뿐이다.
다시 말해, 그가 동양화에 입문하여 습득하기 시작한 먹과 채색의 사용, 그리고 여기에 템페라와 호분 등으로 붓질한 뒤 주걱으로 뭉개어 초점을 흐리며 표면에서 동요하는 색채의 효과 등은 모호한 기법에 대해 묘사한 것일 뿐, 이 기법과 연관된 내용은 아니다. 필자의 생각은, 다양한 실험을 통한 표현상의 모호성이 동양과 서양을 교섭하는 회화적 공간을 형성한 것이라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호성이 가진 ‘중간 영역’의 특성 및 ‘독자적 공간성’은 그의 그림면(picture plane)에 확보된 이질성과의 완충지대와 다름없다. 때문에 그의 회화 표면층에서 벌어지는 동양과 서양의 충돌은 붓질의 완충작용을 통해 흔들리고 동요한다. 이러한 회화적 운동감은 모호한 공간의 층위를 이룬다고 말할 수 있다.
요컨대 이러한 문화 충돌이 순전히 호분과 템페라, 그리고 먹을 통해 이뤄지니 그 반복된 운필의 농밀한 색채 감각이 어느새 현대회화의 다채로운 표현언어를 만들어내는 상황이다. 그래서 그의 모필사생(毛筆寫生)이 미키마우스며 피카추 인형, 그리고 자전거, 빨래, 변기를 그려내도 별반 어색하지 않다. 또 멋진 산수를 묘사하는 준법(皴法)으로 물 빠진 충주호나 황량한 돌산을 그리고, 아파트의 커튼 줄이나 실내의 화분 등 도심 속 평범한 일상을 그려도 나름 그럴듯해 보이는 거다. 한국화의 논법에 일상의 생활이 녹아들면서 그의 회화표면은 모호해진다.
이렇듯 회화의 문화교섭 과정에서 유근택이 과감히 버린 것이 있다면, 화가의 정신을 짓누르던 거대 서사이다. 그의 그림의 공간에선 한국화의 관념적 정신주의가 붕괴되고, 그 자리에 물질적 개인주의가 들어온다. 동경의 세계는 일상생활이 대치하고,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던 시적 공간에 실제 삶의 리얼리티가 그 민낯을 들이민다. 지극히 일상적인 개인의 체험은 이상적 세계와 동떨어진 채, 그 뒤죽박죽된 현실의 혼란과 모순, 그리고 갈등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래서 그가 보여주는 실제는 아름답거나 행복하지 않다. 차라리, 현실의 긴장이 평정에의 동경을 밀착되게 요구하고, 지금의 혼란이 미래의 행복을 절실하게 불러온다고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을 그리는 그의 그림은 언제나 내일을 지향한다. 전시의 제목이 <끝없는 내일>인 이유이다.
따라서 작가가 회화 전면에 제시하는 소위 ‘일상’이란 그리 단순치 않다. 일상을 풍경에 녹일 때, 그는 “조선시대 겸재 정선이 진경산수를 그릴 때의 태도”로 임한다고 했다. 진경산수가 실생활의 진(眞)풍경으로 전환되는 셈이고, 그 내용은 예측불가하게 다양하며 복잡하게 된 거다. 한국화에서 동경했던 공통의 이상세계는 존재하지 않고, 각자의 일상 속에 스며있는 불안과 욕망, 그리고 긴장 등의 복합적 정서가 그림의 표면에서 맴돈다. 그래서 그의 일상의 모습은 확실한 내러티브가 아닌, 은밀하고 비밀스럽고 뭔가 숨은 느낌의 이야기다.
그렇듯 구체적이지 않고 함축적인 일상의 표현은 그의 회화를 구상과 추상 사이 어딘가에 위치시킨다. 구상의 외양을 갖춘 추상적 내용이 유근택 회화의 모호함의 실체일 수 있다. 이러한 역설이 회화의 평면에 일종의 ‘사이 공간’을 형성한 것이다. 이것이 일본인 평론가 미네무라 도시아키가 유근택 회화를 논하며, “눈과 대상 사이의 중간지대”나 혹은 “자립적 회화 공간”이라 명명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미네무라 도시아키, <언어, 재잘거림, 침묵, 때로는 소음>, 2005 도쿄 21+yo갤러리에서 열린 유근택 개인전 카탈로그 서문 참조) 여하튼 그가 확보한 회화면의 자립적 공간은 주체와 대상, 작가와 세상 사이에 존재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예컨대, 이번 전시에 선보인 <말하는 벽> 연작은 그것이 구상이긴 하나, 제시하는 내용은 알 수 없다. 스토리 라인은 미확정이다. 서울 경복궁 근처 옛 미국대사관저를 두른 높은 돌담장과 그 아래 모인 아이들 모습을 구체적 설명 없이 암시적으로 제시했다. 세밀하게 묘사된 사간동 돌담벼락에서 소곤거리는 아이들의 불안한 뒷모습과 벽의 세밀한 디테일이 묘하게 어울려 뭔가 숨은 일상의 비밀을 애매한 상태로 제시한다. 그림의 소재인 벽이 주는 단절감은 그 앞에 모인 아이들의 은밀한 소외를 암시하는 것일지도. 그러한 비밀스러운 정서와 복합적 감정이 얽혀 있어 이 그림의 ‘구상성’을 의심하게 된다. 요컨대, 유근택 그림의 모호성은 그것이 그의 표현기법뿐 아니라 내용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최근 작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작가는 이 작업들의 주제가 “지독하게 조여진 삶 속에서 또 다른 욕망과 꿈을 간직하며 인내하는 지금 한국인들의 정서 그 자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보는 내용은 “서양문화가 스며들어와 동양문화와 충돌하는 개념”이며 “우리 삶이 뒤죽박죽된 비빔밥 같은 세상임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전시를 거듭 보면서 유근택이 자신의 작업에서 풀어내려는 화두는 결국 이질성에 대한 주체적 수용이란 생각이 굳어진다. 문화적 충돌의 회화적 대응에 보인 그의 표현언어는 대체로 상징과 은유를 활용하고, 때론 팝아트의 모티프와 포토몽타주의 기법을 쓰고, 그래서 신표현주의, 인상주의, 팝 회화, 초현실주의 같은 서구의 이름에 기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을 넘어서는 가장 중요한 미적 태도는 주관적으로 재구성하는 ‘관망’의 자세이다. 이것이 동양화의 재료에서가 아닌 보다 근본적으로 그를 한국화가로 여길 수 있는 궁극적 특징이라 여긴다.

유근택 (9)

<말하는 벽>(맨 오른쪽) 한지에 수묵채색 184×209cm 2014

유근택 회화가 지닌 ‘모호성’의 의미
유근택이 깊은 고민과 실험 후 한국화의 현대화를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스타일로 제시한 때는 1991년 관훈미술관에서 연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한 1990년대 초이다. 작가로서의 성장 배경에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에 걸친 수묵화운동과, 1980년대 중반 무렵부터의 채색화운동이 있었다. 1984년 홍익대 동양화과에 입학, 한국화 분야의 중심부에서 ‘현대화’에 대한 요구를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꼈던 그다.
1980년대 후반은 한국화단에서 서구미술의 영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던 때였다. 말하자면, 그 다양하고 자유로운 표현방식에 비해 전통과 관습에 매인 한국화의 경직성에 답답함이 더하고 비교될 수밖에 없던 시기였다. 독일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퍼진 신표현주의의 거침없는 표현은 그에게 강한 영향을 주었다. “그때 가장 충격을 받았던 것이 안젤름 키퍼나 바젤리츠 등의 화집이었다”고 작가는 술회한다. 그의 말마따나 산수화와 사군자를 관습적으로 배우던 한국화 분야의 예비 작가들에겐 “혼란”과 “갈등”이었다. 이러한 한국화단의 위기의식이 그에겐 ‘약’으로 작용한 듯하다.
유근택의 작업에서 중요한 변화는 1999~2000년의 <창밖을 나선 풍경> 연작과 <다섯 개의 정원> 연작 등에서 볼 수 있다. 이는 2001~2004년에 제작된 <풍경> 연작이나 <사라짐에 대한 경의> 연작으로 이어지며 유근택 회화의 뚜렷한 표현언어를 형성했다. 정원이나 수풀 등의 풍경에서 짧은 필획이 무수히 반복되며 현대적 산수화의 열린 가능성을 보였다. 파묵(破墨)과 선염(渲染)을 적절히 구사하며, 호분과 수묵으로 다양한 기법을 운용하는 그의 회화는 공간에 두꺼운 재질을 쌓아가며 중첩된 형상들 사이 잔잔한 운동과 흔들리는 율동을 연출한다. 그리고 이 운필의 동요가 일어나는 곳이 바로 모호한 공간이다.
더불어 2000년대 초부터 자주 등장한 일상의 풍경을 팝의 감각으로 다룬 실내 정경의 그림들은 묘하게도 영국의 현대회화와 통한다.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가 영국 북부의 풍경을 보고 그린 실경 회화의 자연스러움이나, 키타이(R.B Kitaj)의 팝아트 회화는 파스텔과 같이 흐릿한 기법과 몽타주 방식에서 예기치 않은 공통점을 보여준다. 작가가 의식하지 못한 동시대의 미적 유사성이 다른 문화의 코드에서 드러난다는 점이 흥미롭지 않은가. 영국의 리얼리즘이 유근택 회화의 실제성과 통하는 면이라 말할 수 있겠다.
그러한 생각으로 이번 전시의 <산수> 연작으로 돌아온다. 거울에 비친 반영인 듯, 아니면 데칼코마니 기법처럼 호수 주변의 풍광과 수면에 비친 경치의 구분이 없다. 실제와 허상을 담은 하나의 풍경이다. 멀리서 보면 동양화의 구성과 관조가 느껴지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엉뚱하게도 파블로 피카소, 르네 마그리트, 마르셀 뒤샹 등의 작품이 물 위를 둥둥 떠다닌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진풍경을 보이는 또 다른 풍경엔 서구의 이질적 기호들이 호수면을 부유한다.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 맥도날드 로고, 그리고 디즈니 캐릭터와 같은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아이콘들이다. 이질성은 어떻게든 수용될 일이다. 관건은 ‘비판적 거리감’을 확보하고, 관조하며 중심을 잡는 일이다. 그리고 내 삶을 위해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 유근택의 회화처럼 말이다.
수묵채색을 기조로 하는 한국화의 대표 주자로서 유근택이 보여주는 오늘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관념적이고 보편적인 한국화의 코드를 끊고 대면하는 ‘지금, 여기’이기에, 비록 온갖 잡스러운 오브제가 난무하는 공간일지라도 그 모습을 관망하는 중심이 느껴진다. 이것이 남루한 오늘, 이 자리에서 꿈과 희망을 내일로 미루더라도 우리가 불행하지 않을 수 있는 확실한 근거이다. 끝없는 내일이 펼쳐진다 해도 현실의 문제를 껴안고 갈 수 있는 한국화의 자신감이다.●

유근택 (8)
유근택은 1965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홍익대학교 동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1년 관훈갤러리에서 연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25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서울, 베이징, 타이베이 등지에서 열린 기획전에 참여했다. 석남미술상(2000),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2003), 하종현미술상(2009)을 수상했다. 현재 성신여대 동양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Artist Review] 남경민

이상한 방, 낯선 작업실

남경민은 자신이 동경하는 화가들의 그림을 차용해 그들의 화실을 꾸몄다.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풍경 속에 머물다>(11.7~12.19)에서 그는 고전을 소재로 우리나라 옛 화가들의 방 안 풍경을 그렸다. 그의 작품은 꼼꼼한 소품 묘사와 눈길을 사로잡는 색상으로 재현과 상상의 혼합,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는 듯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양한 서술의 방식이 공존하는 그가 그린 방을 찾아가 본다.

 박영택   경기대교수

현대란 역사적 연대기상의 고정된 한 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늘 새롭게 되려는 노력의 표현’(서동욱)을 지칭한다. 현대미술 역시 그렇다. 진정한 현대미술이란 현재의 삶과 문화에 대응해 그것에 대한 올바른 사유에 바탕을 둔 미술적 행위일 것이다. 단지 동시대라는 시기에 국한된 미술행위를 일컫는 말이 아니다. 진정한 현대미술은 현대라는 시기의 삶이 생각하도록 요구하는 문제들에 미술이 밀착하고 대응하는 일이다. 자신이 처한 현재의 삶에 대해 사유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힘이 있어야 삶을 밀고 나갈 수 있다. 현대미술은 그런 맥락 아래 출현한다. 그리고 그것은 타자와의 마주침을 전제로 한다. 다른 이의 삶과 생각과 마주치면서 비로소 한 미술가의 다양한 실험과 작업이 펼쳐지는 것이다. 고정된, 절대적인 미술의 어법이란 없다. 미술이란 개념도 늘 변화의 과정 속에서 단련된다. 니체는 고정적 진리란 없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진리의 나타남이란 ‘관점 수립의 문제’이다. 새로운 진리를 바라보는 관점은 기존의 가치와 진리에 대한 비판에서 나오며 그 기존의 가치를 비판에 부치는 것이 바로 ‘힘의 의지’다. 존재자들이란 힘의 외관이기에 힘의 의지는 존재자들이 서로 부정하지 않고 차이를 지닌 상태로 나타나게 해주는 요소이다.
니체에 따르면 존재자들이 자기를 부정하지 않고, 다른 존재자를 부정하지도 않고, 다른 존재자와의 차이를 지닌 채 자신의 본성 가운데 머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니체를 이은 들뢰즈를 비롯 탈근대철학자들이 제기한 중요한 문제의식 중 하나는 ‘나’에 집착하는 존재론을 깨는 것이었다. ‘나’란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나’를 아우른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이고 ‘생성’이라고 한다. 그러니 나를 알려면 “문밖의 낯선 기호”(들뢰즈)와 부딪쳐야 한다. 그때 비로소 사유가 발생한다. 외부와의 마주침이 없으면 사유와 생성과 변화는 없다. 변화의 계기는 낯선 기호와의 마주침에서 온다. 장자 (莊子)에 의하면 자신이 옳다는 판단을 중지해야 우리는 타자의 움직임에 맞게 자신을 조율하는 섬세한 마음을 회복할 할 수 있다고 한다. 그 긴장된 균형, 판단 중지의 마음을 일컬어 ‘천균(天鈞)’이라 한다. 그것은 자신의 삶과 문화의 시스템에 길든 익숙한 일상의 세계를 벗어나는 길이자 라캉 식으로 말하면 상징적인 것이 지배하는 세계를 벗어나 현실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니 작업의 궁극적 의미는 우리가 어떻게 ‘자기 중심성으로부터 벗어나 탈중심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하는 문제이자 진정한 새로움이란 타자와의 마주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메시지의 전달에 있다고 본다. 그럼 어떻게 타자를 만나지?
남경민은 자신이 동경하는 화가들의 그림을 차용해 방을 꾸몄다. 과거 거장들과의 영혼의 교감을 꿈꾸었다고 한다. 작가가 그린 그들의 방, 작업실은 허구의 방이자 환영에 속한다. 미술사를 참고한 공간 연출인 셈이다. 방이란 사적인 공간이고 개인적인 기호와 취향을 반영하는 물건들로 채워져 있다. 작가는 자신이 욕망하는 대상들로 방을 만들었다. 조선시대 단원과 혜원, 겸재 및 신사임당의 그림이 민화와 함께 그려져 있다. 그 사이로 베르메르나 모네의 그림 등도 슬쩍 끼워져 있다. 서안과 거문고, 경대, 촛대와 서책을 비롯해 문방사우들이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는 공간은 그대로 선비들의 사랑방을 연상시킨다. 작가는 조선시대로 우리들을 초대한다. 이전에는 서양 작가들의 작품이 주종을 이루었다면 이번 근작은 조선시대로 옮겨왔다. 작가에 의하면 동양을 잘 알고 싶다는 욕망, 그래야 서양 것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라고 한다. 또한 동양화를 ‘현대화’ 하고자 하는 바람도 깃들어 있다. 자신을 이루고 있는 동양적인 것, 전통을 이해해야 나를 온전히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이며 더불어 지금의 내 안에는 서양과 동양이 혼재하기에 그 둘의 혼융된 상태를 보여주는 화면이 결국 자신의 초상일 것이라는 말이다. 해서 그려진 그림은 시공을 초월하고 기존 자료를 자의적으로 배열해서 이룬 상상화다. 사실 역사란 상상될 수밖에 없다. 남겨진 제한된 유물과 단편적인 기록에 의거해 빈 부분들을 상상력으로 채운 것이 역사다. 작가는 조선시대 겸재나 단원이 거주하고 그림을 그리던 공간, 방 안을 상상해 그렸다. 당시의 물건들, 그림들이 차지하고 있지만 그 사이로 낯선 존재들이 개입하고 침입한다. 허구적인 이 방 안 풍경의 연출은 정교한 기법에 힘입어 깔끔하게 자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균질하게 마감된, 비교적 커다란 화면에 빼곡하게 자리한 물건들, 화사한 색상으로 도포된 화면, 부분적인 음영 처리, 사라진 그림자, 원근법에 기반을 두면서도 평면적인 화면, 창과 거울, 그림(액틀) 등으로 서로가 서로를 비추고 반영하면서 만들어진 복잡한 공간 연출 등이 눈에 띈다.

동・서양이 조화된 화실
최근 많은 작가가 이렇게 모방과 차용, 패러디 및 이질적인 양식의 공존, 낯선 기호의 충돌, 재현과 가상이 공존하는 묘한 그림을 그려나간다. 기존의 장르개념이나 확고하고 중심적인 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이자 ‘나’ 이외의 타자들을 적극 수용하려는 의도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그래서 동서양 미술의 융합, 원근법과 동양화기법의 절충, 고전의 패러디 등이 다반사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의미 있는 작업인지,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 작업인지는 의문이다. 어쩌면 낯선 기호, 이질적인 양식의 공존이라는 손쉬운 해결책으로 알리바이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신사임당의 <초충도> 속의 나비가 동영상으로 날아다니거나 전기의 <매화서옥도〉 속 주인공이 특정 캐릭터로 대체되거나 책가도를 사진으로, 민화를 플라스틱 오브제로 만들어내는 여러 작업을 과연 어떻게 볼 것인가는 무척 곤혹스럽다. 이처럼 오늘날 젊은 작가들의 전통에 대한 인식과 그 해석은 이전과는 조금 다르다. 그들은 한국미술의 정체성에 대한 과도한 고민 대신 원본(전통)의 자유로운 참조와 이에 대한 독창적 번역을 과감하게 구사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 전통이미지라는 텍스트는 고유한 의미를 발현하는 오리지널리티로서의 권위를 지닌 것이라기보다는 원본의 무게가 탈각된, 언제든지 인용하고 조합할 수 있는 수많은 텍스트 중의 하나로 기능한다. 그저 여러 정보 중 하나가 된다. 그에 따라 이 복수적 텍스트들은 언제 어디서든지 작가에 의해 조작 가능한 수많은 기표로 다루어지고 서로는 자유롭게 접합되고 연쇄된다. 우리 문화 속에 내장되어 온 시각적 텍스트들이 당대 텍스트들과 마구 뒤섞이면서 작품은 다차원의 공간으로 재영토화하고 그 의미는 무수하게 복수화되어 산개한다.
남경민의 그림 속에는 옛사람들이 사용하던 기물과 당시의 그림들이 있는 방에 반복해서 날개, 날개가 담긴 투명 유리병, 화병에 꽂힌 꽃, 스노 볼, 해골, 나비, 손거울 등이 박혀있다. 일종의 알레고리 역할을 하는 도상들이다. 꽃, 해골, 불 켜진 초(꺼진 초), 하나뿐인 날개 등은 죽음, 덧없음 그리고 좌절을 상징하는 도상들일 것이다. 다분히 바니타스 정물화의 도상들을 연상시킨다. 모방해서 그린 그림들 역시 죽은 이들의 그림이다. 화사하고 환하고 명징하게 다가오는 그림 속 이미지들은 실은 부재와 죽음, 소멸 그리고 부재하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동되고 동시에 그것들로 인해 영향 받은 자신의 내면을 고백하는 장치들이다.
작가의 그림은 이미 존재하는 것들, 영향 받은 것들, 그로 인해 형성된 ‘나’를 재현한다. ‘나’는 이처럼 무수한 타자, 낯선 기호들로 직조되어 있다. 화가들은 미술사를 통해 접한 옛그림을 통해 배우고 깨닫는다. 거장들의 작품을 통해 그림을 익힌다. 미술관과 화집을 통해 영향 받는 것이 화가다. 남경민은 화집 속의 그림들을 차용해서 방을 꾸몄다. 거장들의 작업실이고 작은 규모의 미술관이다. 화면 가장자리에 그려진 커튼은 이곳이 연극무대처럼 가상으로 이루어졌음을 들여다보라는 배려다. 따라서 방을 채우고 있는 무수한 이미지는 저마다 의미를 지니며 서사적 역할을 한다. 단원과 겸재의 방은 그들이 그린 그림, 그림 속에 등장하는 공간, 그들의 생애와 관련된 물건들로 구성되어 있다. 방 안에 있는 그림과 창문을 통해 보이는 그림 속 실제 풍경, 거울에 비친 장면 등이 모두 동일한 그림에서 파생되어 선회한다. 따라서 공간은 다층적인 공간, 열린 공간으로 무수히 확장되어 나가는 느낌을 준다. 실재와 가상이 놀이한다. 눈속임과 트릭이 교차한다. 작가는 이렇게 익숙하지만 한 공간에 공존하면서 낯섦을 유발시키는 기호들을 매끈하고 정교하게 그렸다. 유화로 그려지고 쓰여진 고서화와 한문글자는 익숙한 대상들을 무척 낯설게 한다.
남경민은 한 화면 안에 이른바 동양화와 서양화를 뒤섞었다. 특히 동양화가 유화기법으로 그려져 있다. 고전을 소재로 사실적인 기법(극사실에 유사한)의 그림을 그렸으며 실내를 그린 그림은 정물과 풍경을 동시에 끌어안는다. 개별적인 소품들을 꼼꼼히 재현하고 장식한 그림이자 숨은 그림 찾기처럼 보는 이들을 즐겁게 참여시키는 그런 그림이다. 그리고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렇게 이질적인 문화, 기호가 충돌하고 교차한다. 따라서 이 그림 안에 절대적인 것이란 없다. 고유한 것, 확고한 것, 단일한 중심은 부재하고 상이한 것들이 어우러져 완성된다. 차이를 지닌 것들이 모종의 중심으로 수렴되지 않은 채 그들 각자의 고유성을 유지하면서 존재한다. 그렇게 그려진 그림은 익숙한 장면이고 일상적인 풍경이지만 어딘지‘언캐니’하다. 친근하면서도 낯선 느낌, 그러니까 원래 낯익은 것이지만 동시에 망각된 것이기에 의식에는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다. 불안한 모호함에서 발생한 ‘낯익은 낯섦’이라고나 할까. 근대 이후 한국미술은 동양과 서양의 갈등과 차이 속에서 어떻게 한국적인 현대미술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해왔다. 그런데 이 ‘한국적 현대미술’ 혹은 ‘전통의 현대화’란 것이 문제적이다. 그것이 과연 실체 있는 것이 될 수 있나? 그 단어가 성립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전통의 현재화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 것처럼 전통에 기반을 둔 한국현대미술이란 것도 무척 애매보호하다. 이 ‘번역’의 문제를 가장 고통스럽게 인식한 이는 박이소였다. 그는 불가능한 두 영역의 순진한 조우 대신에 그 충돌, 차이, 마찰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인식한 이다.
남경민은 정보를 재배치하고 이를 사실적인 기법으로 공들여 그린 ‘이상하면서도 예쁜’방을 만들었다. 자기를 이루는 ‘타자’들을 수집했다. 그러고는 이를 재배치했다. 디지털 시대에 정보의 차용과 가상의 연출은 보편적인 어법이 되었다. 이는 동시대미술의 주된 방법론이다. 그 사진·영상이미지의 매끈한 피부 또한 그렇게 이식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보들의 가상적 연출만은 아니다. 그 이상의 감정이나 해석이 빠지면 그림은 공허해진다. 작가의 뜨거운 몸을 관통한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붓질의 맛이나 그림 전체의 회화적 느낌, 여운 등은 그곳에서 나온다. 그림은 한 작가의 몸이 만든다. 아니 몸을 관통해서 나온 것이 예술이다. 정보와 가상의 연출, 집요한 그리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그림이 과연 전통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는지,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작가의 몸, 결이 어떻게 화면 위로 배어 나오는지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남경민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덕성여대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1999년 갤러리 담에서 열린 <창-드러남, 드러나지 않음>을 시작으로 총 9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했다. 2006년에는 제6회 송은미술대상전 우수상을 차지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사비나미술관 송은문화재단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