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피플]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축가 자하 하디드

건축물이 곧 지형이다

시작단계부터 완공까지 기대와 우려 속에 큰 관심을 모았던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가 3월 21일 문을 열었다. 개관을 앞둔 지난 3월 11일 DDP의 건축가 자하 하디드방문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자리에는 자하를 취재하기 위한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러나 DDP의 운영 방향을 소개하고 패트릭 슈마허(자하 하디드 건축설계사무소 파트너이자 상임 디자이너)의 건축소개가 있기까지 그녀는 등장하지 않았다. 얼마 후 그녀는 스타 건축가답게 DDP의 잔디공원을 가로지르며 골프장에서나 봄직한 카트를 타고 등장했다.
그녀는 1993년 독일 바일 암 라인의 ‘비트라 소방서’를 첫 완공작으로 시작해 굵직한 건축 프로젝트를 맡아왔을 뿐 아니라 각종 디자인 전시를 수차례 열며 2004년에는 여성 건축가 최초로 프리츠커상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가도를 달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그녀 건축의 주변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어색한 부조화, 지나치게 큰 규모와 비용의 효율성 등을 지적하기도 한다. DDP 역시 이러한 우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따가운 시선 속에 개관한 DDP의 건축적 핵심, 더 나아가 자하의 건축철학은 무엇일까.
자하 하디드가 건축관으로 내세우는 중심은 두 가지다. ‘커브(curve)’ 와 ‘어버니즘(urbanism)’. 무빙 이미지가 난무하는 현대 도시 사회에서 그녀의 건축은 정적으로 멈추지 않고 함께 흘러간다. 불규칙하고 복잡한 곡선을 사용하여 어느 공간에 위치하든지 마주하는 이미지는 무한히 변화하여 건물 내부 어디에도 같은 뷰가 보이지 않는다. 자하와 함께 내한한 페트릭 슈마허는 DDP에 대해 “얼개가 없이 자연스레 이어지는 곡선이 전체 건물을 구성한다”라며 “지붕이 잔디로 덮여 있는 것만 봐도 건축물이 존재하는 것 자체로 새로운 지형을 인공적으로 창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시적인 감각과 흐르는 듯한 곡선은 창문 없이 외부를 장식한 45,133장의 알루미늄 패널과 기둥없이 이어지는 내부에서 강조된다.
DDP를 둘러싼 또 다른 비판은 건물 주변의 역사에 대한 고려가 미흡하다는 점과 필요이상으로 크게 지어진 것 아니냐는 규모(총사업비 4840억원, 연면적 8만5320㎡)의 문제였다. 이에 대해 자하는 “건물의 용도에 맞게, 의뢰자의 희망에 따라 설계했다. 어떠한 근거로 규모가 크다고 하는지 반문하고 싶다”며 방어적이면서 공격적인 입장을 취했다. 더 이상의 질문은 무의미했다. DDP에 대한 논란은 결국 주체 없이 공회전하는 메아리였다. 규모가 그녀의 선택이 아니었다면 주변 환경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한 그녀의 입장은 어떠한가. “DDP는 형태적 독창성과 주변과의 조화를 중시한 작품이다”라며 곡선을 사용해 도시의 특성을 살려 “건물 자체가 하나의 지형임”을 강조했다. 페트릭 슈마허는 “DDP 이전 그 자리에 있던 야구장의 역사성을 설계에 반영했다. 경기장의 조명탑을 보존하였고 설계에서 경기장의 느낌을 살렸다”라고 부연 설명했다.
peo2최초의 3D 비정형 건축으로 주목받는 DDP에 대해 자하는 일단 “성공적”이라 자평했다. 안도 다다오, 알바로 시자 등 외국 유명 건축가의 작품이 국내에 지어진 경우 무조건적 주목을 받듯 DDP가 과연 서울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일단 자하 하디드란 여성 건축가의 이름을 국내 대중에게 널리 알린 점에서는 ‘성공적’ 이다. 건물 개관과 함께 DDP에서는 작은 숟가락부터, 가구와 신발 보석 등 그녀가 디자인한 40여 점을 소개하는 전시를 3월 26일까지 열었으며 2차로 4월 4일부터 5월 31일까지 1차 전시품 외의 건축 모형과 샹들리에 등을 선보이는 <자하 하디드_360도 전>을 선보인다.
다음 행보는 도쿄 올림픽경기장(2020)이다. DDP 설계자로 선정됐을 때와 유사하게 일본 언론에서도 자하의 건축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과연 일본에서는 어떤 도시적 건축을 만들어낼지 그리고 그녀가 말하는 역사성과 지역적 특수성이 도쿄에서는 어떤 형태로 구현될지 궁금하다. 이슈를 몰고 다니는 그녀의 예술행보는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만하다. 

임승현 기자

[현장] Art Fair Tokyo 2014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는 일본 미술시장의 현주소

올해로 9회를 맞이한 <아트페어 도쿄>가 3월 6일 VIP 오픈을 시작으로 7, 8, 9일 사흘 동안 도쿄국제포럼 전시장에서 열렸다. 고미술에서부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영역을 대상으로 하는 <아트페어 도쿄>는 갤러리(Galleries), 아티스틱 프랙티스(Artistic Practice), 도쿄 리미티드(Tokyo Limited), 프로젝트(Projects), 디스커버 아시아(Discover Asia), 지-플러스(G-Plus), 아웃라인(Outlines) 등 7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이번 페어에는 일본을 비롯한 한국, 스페인, 인도네시아 등의 157개 갤러리가 참여했고, 국내 갤러리로는 갤러리 스케이프와 갤러리 엠이 참가했다.
2012년부터 아트페어도쿄는 지정학적 한계성과 일본 고미술, 크래프트부터 현대미술까지의 너무나 방대한 영역을 포괄하는 데서 발생하는 구조적 진부함을 해소하고 분위기를 일신하고자 고민하고 노력해왔다. 특히 젊은 디렉터 다카히로 가네시마를 영입한 이후 아트페어의 구성을 세분화해서 다듬고, 해외 주요 컨템포러리 갤러리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홍보 활동을 벌여왔다. 이에 ‘리뉴얼’된 <아트페어 도쿄>는 ‘지역 아트페어’의 이미지를 벗고 국제적이며 컨템포러리한 이미지로 어필함과 동시에, 페어 특유의 조직력을 극대화시켜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데에 큰 힘이 되었다.
아트페어도쿄의 ‘오버하지 않는’ 적절한 섹션 나누기도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인데, 특히 디스커버 아시아에는 서울을 비롯하여 타이베이, 홍콩, 마닐라, 자카르타의 ‘젊은’ 갤러리들이 초청되었고, ‘지-플러스’ 섹션에서는 지-도쿄(G-Tokyo, 도쿄 내에 있는 컨템포러리 갤러리들이 모여 개최한 아트페어)에 참여하던 갤러리들이 여러 그룹으로 나뉘어 협업해 전시 형태의 부스를 선보였다. 김정욱, 정지현 등 한국 작가를 꾸준히 소개해 온 갤러리 스케이프는 도쿄라는 도시의 규모에 비하면 작은 규모지만, 내실 있는 <아트페어 도쿄>를 통해 컬렉터 층을 일본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에로 넓히게 되었다.
이같은 긍정적인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아트페어 도쿄>는 아시아 주요 도시의 기존 아트페어들과 마찬가지로 지난해 <아트바젤>이 성공적으로 홍콩에 입성함으로써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아트페어는 미술계의 모든 구조가 얽혀있는 유기체이며 예술의 고결함과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의 반어적 성질로 인식되는 상업성이 공존하면서 ‘가치’를 만들어내는 자리다. 미술계 구성체의 복합적 이해관계가 한 자리에 모인 아트페어에서 참여기관 모두가 만족할 만한 균형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 균형점에 최대한 근접하는 아트페어가 정당성과 지속성에 힘입어 명성을 유지할 것인데 적어도 이 부분에서는 국내의 아트페어들과 마찬가지로 <아트페어 도쿄>도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야 할 부분일 것이다.

김윤경・갤러리 스케이프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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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Art Space

중국 작가 쑹둥(宋東, 사진)과 한국 작가 김길후의 개인전이 송원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이장욱 큐레이터가 기획한 이번 전시는 ‘최후의 수장고’를 주제로 한중 두 작가 각자의 방식으로 선보인다. 첫 번째 주자인 중국 설치미술가 쑹둥의 전시(3.22~4.18)를 관통하는 핵심 단어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한다는 뜻의 ‘비흔교집(悲欣交集)’이다. 2층으로 구성된 전시장은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설치작업으로 보인다. 지하 2층에는 비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한 12명의 초상과 재난 현장을 담은 영상작업을 배경으로 중국 침대 60개가 9층으로 쌓여 있다. 플라스틱 거울이 벽면 전체를 채운 지하 1층에는 지하 2층의 설치작과 연결되어 가축의 깃털로 만든 학 두 마리가 놓여 있다. 쑹둥(사진)은 “침대는 생사가 교차하는 환승역입니다. 아래층이 끊임없이 반복되어 시작도 끝도 없는 현실의 세계라면 위층은 천상의 세계를 표현한 것입니다.
거울 속에 반사되는 모습도 끊임없이 변하고, 새도 모두 허상이죠. 최후의 수장고에 무엇을 담을 수 있을까요? 결국 담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그는 이번 전시가 ‘올해에 열리는 전시 중 나에게 가장 중요한 전시’라고 강조했다.

 

hot2최정아갤러리에서 3월 6일부터 27일까지 <Space:Life&Routine>란 제목의 기획전을 열었다. 풍경을 소재로 작업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모은 전시로 김대수 박노을 정직성 황선태 김병주가 참여했다.일상을 둘러싼 풍경을 시대의 흐름 속에서 변하는 사회적 해석으로 조명한 작가들의 독창적 시각을 볼 수 있다.

hot3서완 이윤희 정혜윤 한성재 한수정 현정윤 6명의 젊은 작가가 우리 전통악기를 재해석해 다채로운 작품을 만들어냈다. 3월 13일부터 31일까지 space k 서울에서 중요무형문화재 장인과 젊은 현대미술 작가들이 참여한 ‘아티잔스(ARTisans)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선보였다. 6명의 작가는 전통 현악기 제조기술을 보유한 이영수, 이동윤 장인과 함께 한 워크숍을 통해 악기를 직접 만들며 그 영감을 작업 속에 담아냈다. 예술을 통해 전통과 동시대가 교감한다는 취지 하에 루이비통코리아가 기획 및 후원을 맡았다.

 

hota35실재 세계를 그대로 캔버스에 옮기는 작가 박성환의 개인전 〈영적(靈的)-실재 그 자체의 세계_우주 최초 창시(創始)〉가 3월 5일부터 16일까지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에 위치한 가온갤러리에서 열렸다. 작가는 스스로 회화를 표현하는 미학에 대해 “우주 시대의 미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평한다.

 

hota36서양화가 강승애의 17번째 개인전이 3월 19일부터 25일까지 선화랑에서 열렸다. 말기 암 환자를 돕기 위해 마련된 이번 전시에 작가는 따뜻하고 선명한 색감으로 씨앗, 새싹, 풀잎, 둥지, 빛 등 자연의 생명력을 암시하는 풍부한 이미지를 선보여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고, 자연과 함께 공명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았다.

 

hota373월 19일부터 25일까지 가나인사아트센터 지하 전시실에서 조각가 허진욱의 첫 번째 개인전이 열렸다. 작가는 버려진 스테인리스 스틸판과 봉을 하나 하나 붙여 형태를 만든 다음 갈고 광을 내어 꽃과 나비, 사람의 형상을 만들었다. 작품 내부에는 조명을 설치해 전시장 작품의 그림자가 비치는 환상적인 분위기가 연출됐다.

hota38김선형 경인교대 교수의 개인전이 3월 12일부터 25일까지 갤러리 토포하우스에서 열렸다. 푸른색을 기조로 강렬한 붓의 움직임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 특유의 필획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캔버스는 단순하면서도 힘찬 기운으로 가득하다.

hota39한지 부조회화의 대표 작가 박철의 개인전 <紙에 壽福을 담다>가 3월 1일부터 5월 4일까지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영은미술관에서 열린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한지로 멍석, 문틀, 떡살 등 오늘날 사라져가는 토속적인 오브제에서 차용한 작업을 선보인다. 또한 1991년부터 지속적으로 ‘앙상블’을 연구해온 작가는 멍석이나 고서와 바이올린, 첼로 등 동양과 서양, 옛것과 새것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작품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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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염색의 현대적인 해석을 모색하는 작가 장혜홍의 개인전 <화양연화>가 3월 1일부터 5월 23일까지 수원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행궁재갤러리에서 열린다.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을 염색물감과 아크릴물감을 함께 사용한 염색기법으로 그려내어 은은한 아름다움을 전달하고, 스와로브스키와 진주를 더해 화려함을 표현했다.

hota42한국의 전통을 현대적 미감으로 재해석한 작가 오승윤의 개인전이 2월 21일부터 3월 23일까지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렸다. 음양오행을 상징하는 오방색과 십장생 등에서 우리의 삶의 기원을 찾고 한국의 상징적인 사물과 표현들에서 민족전통의 뿌리를 찾는다. 〈풍수〉 〈바람과 물의 역사〉등 초기작부터 이어지는 작가의 예술세계를 볼 수 있다.

hota43해학과 향수를 자극하는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 토시마츠 구레모토 개인전이 3월 18일부터 30일까지 갤러리 담에서 열렸다. 오랫동안 회화작업을 해온 작가의 조각은 회화성이 짙다. 15점의 조각을 선보인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바쁜 일상에서 자아를 잃고 살아가는 샐러리맨의 모습을 양쪽이 다르게 그려진 눈, 벼랑 끝을 붙잡은 팔 등으로 표현하는 등 힘겨운 현실을 해학적이면서도 담담하게 나타냈다.

hota44아트스페이스 갤러리 정미소는 2011년 <미디어극장전>에 참여했던 작가 중 지속적으로 새로운 화두를 모색하는 작가들의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그 첫 전시로 심철웅의 개인전 <De-Sp[l]ace>(3.6~23)를 선보였다. 작가는 서울성곽의 흔적을 다각도로 보여주며 성벽 이면에 담긴 시간성을 복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2011년 전시 이후 작가의 작업 양상과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다.

hota45아날로그 방식을 통해 자연과 인체를 독창적이고 구조적인 시선으로 담는 사진가 스칼렛 호프트 그라플랜드의 국내 첫 개인전이 2월 22일부터 4월 19일까지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린다. 〈Unlikely Landscape〉란 제목의 이번 전시는 작가가 오지를 찾아다니며 만난 자연과 토착민의 모습을 계획하고 조정하여 생산해낸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는 사진을 찍기 전 끊임없는 모색과 구상을 통해 자연의 모습을 철저히 “계획하고 생산”한다고 말한다.

hota46작가 최성환의 개인전이 3월 10일부터 4월 11일까지 삼성동에 위치한 카이노스갤러리에서 열린다정감어린 배경과 따듯한 색채로 표현된 풍경과 간간히 등장하는 인물의 모습은 도시의 각박한 환경에서 벗어나 서정적이고 향토적인 감성을 전한다. 작가는 소재를 과감히 생략하고 골격만을 화면에 배치하여 관객에게 잊혀 가는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여 동화적 상상력을 북돋워준다.

hota47윤곽이 간결하고 명확한 회화를 선보이는 작가 김성은의 개인전 가 3월 14일부터 29일까지 에프앤아트스페이스에서 열렸다. 현재 외국계 금융사 사내변호사로 근무 중인 작가는 자신을 둘러싼 사무실 풍경을 그렸다. 회사에서 근무하며 자신의 삶이 매몰되지 않도록 절대적인 시선을 갖고 주변을 둘러보며 이를 팝아트적인 작품으로 나타냈다.

hota48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독자적 회화세계를 개척한 작가 박영대의 개인전 〈보리, 생명의 소리〉가 3월 12일부터 19일까지 청주예술의전당에서 열렸다. 섬세한 필치, 울렁이는 생동감으로 보리에 생명을 더한 사실적 표현의 작품과 추상으로 보리를 표현한 작품 등 일관된 소재를 다채롭게 표현함으로써
그의 농익은 회화관을 확인할 수 있다.

hota49<창조적 역설전>은 2011년 타계한 故 이원일 큐레이터를 추모하며, 생전에 그가 기획한 미완의, 동명의 전시를 재구성한 것이다. 2월 21일부터 3월 6일까지 쿤스트독에서 열린 이 전시는 이경호 이이남 이탈 세 작가의 작품과 이 큐레이터의 아카이브 자료로 구성되었다. 결국 이 전시는 고인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인 셈이다.

hota50문화공장 오산에서 <뜻밖의 풍경>(3.7~4.17)이란 제목으로 기획전을 연다. 풍경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하는 9인의 작가 김동기 김종구 노주환 박철호 송대섭 심영철 이성실 임근우 한석현이 참여했다. 풍경의 범위를 미시적 의미의 자연을 넘어 인공, 가상현실 등으로 확장시켜 다양한 해석을 시도하며 우리를 둘러싼 환경 이면에 담긴 의미를 찾아간다.

hota51아트선재센터는 북촌 일대 5개 갤러리(갤러리 인, 갤러리 스케이프, 이화익갤러리, 원앤제이갤러리, 옵시스 아트)와 함께 <하늘 땅 바다>(2.22~3.23)를 연계전시로 진행했다. 아트선재센터와 호주 브리즈번을 중심으로 호주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미디어아트를 기획 및 지원하는 MAAP가 공동 주최한 이번 전시는 한국, 중국, 호주 3개국을 순회하며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동시대 예술가 20여 명의 ‘수평선(horizon)’을 표현하는 독창적이고 도전적인 영상작업을 선보였다. 이 전시는 중국 상하이(4.20~7.20, OCT-OCAT Contemporary Art Terminal, Shanghai)와 호주 브리즈번(9~11월, MAAP SPACE, Griffith University Art Museum)으로 순회할 예정이다.

hota52단국대 예술대 학장인 작가 조기주의 개인전 <삶의 흔적들 1998-2014>이 2월 27일부터 3월 9일까지 금호미술관에서 열렸다. 작가는 원형과 편형 캔버스에 흑연과 시멘트를 칠한 후 얼룩처럼 물감덩어리를 부착해 현재까지 이어진 자신의 흔적을 표현했다. 물성이 강조된 작품들로 우연과 의도 사이, 의미와 무의미 사이의 무한한 반복을 통해 그 속의 균형잡기를 시도한다.

hota53작가 다음이 깊이 있는 맛과 멋을 즐기는 자리를 마련했다. 2월 27일부터 3월 28일까지 〈윤회매, 차를 피우다〉라는 제목으로 가인갤러리에서 윤회매를 전시했다. 윤회매란 벌인 만든 꿀에서 생긴 밀랍을 재료로 매화의 형상을 만든 것을 뜻한다. 특히 2월 27일에는 다음과 함께 산당 임지호, 행위예술가 신용구, 해금연주자 강은일이 참여해 매화의 멋을 다각도로 즐길 수 있는 합동 퍼포먼스를 벌였다.

hota54<Body and Nature전>이 3월 11일부터 4월 25일까지 분당에 위치한 사진전문갤러리 아트스페이스J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그간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4명의 작가를 선보이는 기획전이다. 몸을 주제로 탐구하는 가브리엘라 후크(Gabriela Huk), 카야 도브로볼스카(Kaja Dobrowolska), 로테 플뢰 크리스텐센(Lotte Fløe Christensen), 한경은이 주인공으로 이들의 사진은 몸을 매개로 인간의 내면을 성찰한다.

hota55hota562008년부터 도쿄, 서울, 홍콩 등 아시아 주요 도시에서 선보여온 <아시아호텔아트페어(AHAF)>가 지난 2월 28일부터 3월 2일까지 마르코 폴로 홍콩 호텔에서 열렸다. 호텔 객실을 전시장으로 활용한 이번 행사에는 홍콩, 중국, 일본, 한국의 갤러리 70곳이 참여해 5000여 점을 선보였다. 본전시장인 호텔 외에도 하버시티 내외부 곳곳에 설치미술가 이은숙의 (위), 조각가 정욱장의 (왼쪽) 등 대형 작품들을 설치해 현지 매체와 일반 관람객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이번 행사에는 800여 명의 방문객이 다녀갔으며, 약 10억 원의 수익을 창출했다. AHAF 이사장을 맡은 황달성 금산갤러리 대표는 “홍콩은 세계 경제 금융의 중심지로 미술시장이 급부상했지만 아직 기초예술 분야가 약한 편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컬렉터층이 두텁지 않고 미술시장이 어렵지만 우수한 예술가가 많아 공급 면에서 풍부하다. AHAF는 아시아의 중요 작가들을 프로모션하고 홍콩을 중심으로 아시아 미술시장의 활로를 개척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홍콩=이슬비 기자

[특별기획] 미술과 通한 사람들 – 사진, 처음 만나는 자유_신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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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처음 만나는 자유

아나운서 신성원

무거워진 마음을 끌어안고 지낼 자신이 없을 때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금세 마음이 사뿐사뿐 가벼워질 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일단 카메라를 들었고 일단 나갔고 일단 셔터를 눌렀다. 그렇게 시간을 버티다 보면, 입술 끝도 살짝 올라가 있고 머릿속도 텅 비워졌다. 일에 치여 놓쳐버린 수많은 일상의 순간들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카메라에 담아내고 싶었다. 그러면서 스스로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며 감동받고 행복해 하는 지인들을 보면 내가 먼저 행복했다. 그러다가 누구도 포착하지 못했을 것 같은 아름다운 풍경을 찍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듯 뿌듯하기까지 했다. 이 오래된 습관은 사진을 좋아하던 친구와 어울리던 10년 전쯤부터 시작되었다. 셔터스피드나 조리개 수치, 심도 같은 카메라의 기술들은 잘 몰랐어도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프레임 안에 담고 그것이 누군가의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건 참 근사한 일이었다. 정확하면서도 맥락에 딱 맞는 적확한 단어로 말해야 하는 방송과는 다르게 사물과 상황에 감성적으로 접근하고 표현하는 사진은 마음마저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게다가 사진에 집중하는 동안의 나는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다. 누구도 의식하지 않았고 남의 시선에 눈 돌릴 여유가 없었다. 그저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할 뿐이었다. 무엇에 그렇게 몰입해본 게 얼마 만인지 몰랐다.
언젠가부터 집을 나설 때는 무조건 카메라가 동행했다. 찍고 싶은 장면은 한 번 놓치면 다시는 찍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후 생긴 버릇이기도 했다. 함께 여행할 친구가 없어도 카메라를 들고 떠나면 든든했고 사진을 찍으면서 자유로웠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이름도 낯설고 지리적으로도 머나먼 나라, 쿠바다. 내가 갔을 땐 우기에 접어들 무렵인 5월이었는데, 적도 부근의 나라라서 그런지 하루 종일 뜨거운 햇빛이 쏟아졌다. 아침에 샤워를 하고 길을 나서자마자 곧바로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그 무더운 곳에서 나에겐 남보다 항상 짐 하나가 더 있었다. 카메라와 렌즈 몇 개를 넣은 묵직한 가방은 마치 달팽이의 집이나 거북의 등처럼 늘 내 등 뒤에 붙어 있었다. 그 무거운 가방을 짊어진 채로 여기저기 다녔다. 체 게바라의 도시로 알려져 있는 산타클라라에 갔을 땐 쨍쨍 내리쬐는 한낮의 태양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무려 2km를 걸은 적도 있었다. 시내 광장에서 체 게바라 기념관까지 물 한 모금도 못 마시고 걷는 그 길은 누군가에게는 짧다면 짧을 수도 있는 거리겠지만 나에겐 고행의 길처럼 느껴졌다. 안 그래도 더위에 괴로운데 무거운 카메라 가방 때문에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티셔츠는 이미 흥건하게 젖었다. 카메라 따위 던져버리고 싶었다.
이 풍경들 다 머릿속에 담아가면 될 텐데 왜 굳이 사진으로 남기겠다고 하는 건지. 스스로를 책망했다. 얼마나 좋은 풍경을 담겠다는 건지. 그리고 이 무거운 카메라가 무슨 소용인지. 스스로를 원망했다. 그래도 끝끝내 포기하지 못한 것은 그렇게 고생해서 찍은 사진들에는 나조차 잊고 있었던 내 생각과 감정들이 오롯이 투영되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때의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보고 있으면 기억과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어 그 시간과 공간에서 가졌던 생각들과 감성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돌파구가 필요했던 때,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던 열정을 다 바칠 무엇이 절실했던 때 사진을 만났다. 카메라의 파인더를 통해서 팍팍한 현실을, 지루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아름다운 풍경에 푹 빠지기도 했고, 매일 반복되는 우리네 소박한 삶의 또 다른 이면을 찾아보려 애쓰기도 했다. 사진작가 다이앤 아버스(Diane Arbus)는 “사진이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고,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허가증”이라고 말했다. 사진을 알게 되면서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을 위한 무언가에 푹 빠져보는 경험을 할 수 있었고, 다이앤 아버스의 말처럼 자유로 향하는 허가증을 갖게 되었다.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 세상을 보는 동안만큼은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다. 복잡했던 세상의 모든 고민은 내려놓은 채로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어서 살 것 같았다. 나는 살아있었고, 나는 자유로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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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원은 <문화공감 신성원입니다>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밤10시 라디오에서 인사하고 있는 KBS의 아나운서다. 1997년 KBS 24기 아나운서로 입사해 KBS음악실, 문화탐험 오늘, 시사플러스, 문화읽기 등 시사 교양 프로그램을 맡아왔다. 2009년 3월 <신성원의 사진일기전>을 열었고 같은 해 12월 에세이 《속삭임》을 출간했다. 얼마 전 상명대 문화예술대학원을 졸업하며 방송국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연작을 선보였다.

[특별기획] 미술과 通한 사람들 – 패션은 안경이다_김홍기

패션은 안경이다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

사람들은 나를 패션 큐레이터라고 부른다. 책을 쓰면서 저자 소개란에 그렇게 적은게 화근이었을까? 사람들은 특화된 직업명에 대해 궁금해 했다. 미술사를 공부했는지, 혹은 패션계에서 일한 이력을 갖고 있는지, 심지어는 올 계절에 유행하는 패션 트렌드에 대해 알려달라고 한 이도 있다.
이 자리를 빌려 말하지만, 나는 대학에서 미술사를 비롯한 패션관련 영역을 공부한 적이 없다. 패션에 대한 관심은 대형 유통업체에서 패션 바이어로 우연하게 일하게 되면서, 내 업무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독한 맘을 먹고(?) 독학을 시작했던 게 그 출발점이다. 아동복 바이어로 성장하면서 다양한 패션기업들과 디자이너들을 만나야 했는데, 그때마다 느낀 건 패션에 대한 누적된 지식 없이 관련 업무를 깊게 이끌어가는 건 힘들다는 점이었다. 무엇보다 매년 봄/여름 가을/겨울로 나뉘어 생산된 수많은 옷 중, 시장에서 먹힐 만한 것들을 선별하고 관리하는 일,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왜 특정한 옷을 선택하고 다른 것은 버릴까 하는 생각들을 구체적으로 해야 했다. 어떤 상품은 세일(Sale)을 위해 가격을 인하하고 업체와 함께 시장을 만들어가야 했다. 책임을 함께 지고 싶었고, 그 과정에서 특유의 복식업계 및 디자인계 언어들에 친숙해져야 했다. 대학시절 영화를 부전공하면서 영상미학을 비롯해 문화이론, 기호학 등을 공부한 것이 큰 힘이 되었다. 요즘 뜨는 말로 인문학적인 패션 공부를 하게 된 셈이다.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항상 이질적인 영역들을 결합시켜서 제3의 것들을 만드는 걸 좋아한다.
유학을 위해 떠난 영국 여행길에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봤던 시각의 구조〈 Fabric of Vision전〉은 내 인생을 바꿨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그림 속 패션에 나타난 주름의 의미를 통해 각 시대의 미감과 사회적 체계, 사람들의 열망의 코드를 읽어내는 전시였다. 머리를 탁 칠 수밖에 없었다. 패션에 대해 나름대로 공부해왔다고 했고, 대학시절부터 갤러리를 자주 다니며 작은 판화작품부터 컬렉팅을 해왔던 내가 미술사를 비롯한 인문학이 패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두 개의 영역이 어떻게 공동의 땅을 경작하는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지를 몸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오랫동안 독학해온 복식사에 대한 나만의 입장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 결과물이《 샤넬 미술관에 가다》이다.
서양미술사의 명작에 나오는 옷의 의미들을 다층적으로 풀었던 것. 책을 쓰는 문제를 앞에 두고 머뭇거리고 있을 때, 내게 용기를 준 이가 있다. 바로 영국 법조계의 스타 변호사 앤소니 줄리어스다. 그는 홀로코스트 문제를 변호하다가 관심을 갖게 된 유대인 미술에 대해 연구하며《 미술과 우상》이란 책을 냈다. 무엇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미술을 역사적으로 공부하고 자신의 일과 관심사를 결합시켜 풀어내는 작업을 한다는 게 신선하게 느껴졌다. 4년에 걸쳐 자료를 다시 모으고 편집하면서 책을 썼다. 이 과정에서 패션이란 렌즈로 미술전시를 하게 될 경우, 생산적인 교집합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구체화했다.
패션의 역사는 당대의 옷 스타일을 묘사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패션은 일상에서 입는 옷이란 오브제를 미학적으로 표현, 승화시키는 기본적인 문화 활동인 동시에 지역적 차이와 시대적 변화의 방향을 반영하는 변화의 바로미터다. 인간이 입는 사물이란 점에서 일상성을 사유할 수 있고, 특정한 지리적 경계 내부의 사람들, 즉 공동체가 수용할 수 있는 미감의 수준에서 입을 수 있는 것들, 패셔너블(fashionable)의 개념을 정의한다는 점에서 사회성을 띤다. 패션은 그 자체로 삶과 예술, 실천과 미학, 생산과 소비, 개인의 취미와 집단정신을 연결하는 삶의 현장이 된다. 되짚어보면 패션이란 단어가 그저 한 벌의 옷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 많은 발언을 할 수 있는 오브제인지를 알게 된다. 나는 옷에 담긴 이런 정신성들을 전시란 양식을 통해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고 싶었을 뿐이다. 내가 지금껏 저술에 온 힘을 쏟은 것은 옷이란 사물을 전시하기에 앞서, 패션이란 개념의 외연을 확장하고 지금껏 ‘패션’을 규정해온 우리 사회가 협소한 시각을 넘고자 한 시도였다.
최근에 나온《댄디, 오늘을 살다》도 그런 연장선이다. 19세기 중반 프랑스 사회는 새롭게 등장하는 유통체계와 패션의 논리로 뒤덮였다. 이때 새롭게 부상하는 지배적 스타일에 저항하는 정신의 소유자들이 등장했는데 이들을 댄디라고 부른다. 댄디즘은 일종의 생활철학으로서 삶의 많은 부분에 적용될 수 있다. 음식을 먹고 소비하는 섭생의 방식에서 옷차림, 신체를 가꾸는 일, 정치적 올바름을 실천하는 방식 등 다양한 측면을 성찰할 수 있다. 한국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 속에 나타난 소비문화와 패션에 대한 해석들을 함께 소개함으로써, ‘우리나라’ 작가들의 감성을 통해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큐레이팅이란 어떤 점에서 보면 삶을 위한 편집된 태도를 갖는 것이다. 패션이한 벌의 옷을 넘어, 그것을 입는 인간의 표정과 태도를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인간의 행위는 항상 이해관계로 연결된 이들의 시각 속에서 새롭게 해석된다. 패션을 큐레이팅하는 일은 제2의 피부라 불리는 옷을 해석하는 안경을 사람들에게 씌워주는 일이다. 좌와 우를 가로지르며(안경에서 코에 걸치는 부분을 브리지(Bridge)라고 한다) 누군가의 가교가 되는 일을 하고 싶다. 평생 패션이란 황홀한 소울메이트와 업고 빨고 사랑하며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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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기는 국내 1호의 패션 큐레이터.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면서 연극영화와 의류학을 복수전공했다. 졸업 후 신세계에 입사해 아동복과 상품기획을 익혔다. 현대미술과 패션을 독창적인 시선으로 결합한 저술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으며 방송활동을 통해 대중과의 소통을 꾸준히 하고 있다. 저서로는 《샤넬, 미술관에 가다》 《하하 미술관》 등이 있으며 《패션디자인 스쿨》 《패션 디자이너로 살아남기》 등을 번역했다. 그의 글을 읽고 소통을 원한다면 www.facebook.com/fashioncurator1 혹은 twitter.com/fashioncurator에 들어가보면 된다.

[특별기획] 미술과 通한 사람들 – 암에 대한 시각예술적 리서치_노상익

암에 대한 시각예술적 리서치

외과의사 노상익

‘C25.0 췌장암, 전씨, 81세/남, 서울 홍은동 거주
수술은 성공적이었으며 그의 통증, 황달, 전신쇠약은 해소되었다.
3기 췌장암 수술 후 항암/방사선 치료를 받으며 14개월을 생존하였고 2011년 1월 12일 사망하였다.’

연작 ‘Biography of cancer’ 중 세 번째 부분 ‘RESULTs’ 작업에 포함된 도큐먼트의 일부이다. 환자의 개인자료, 임상차트 기록, 여러 가지 감시 장치의 모니터링, 다양한 검사결과, 수술 등 일반인이 보기엔 난해하고 이해불가능하며 무미건조한 기록물들이 병원의 캐비닛과 전자차트에서 튀어나와서 전시장에 걸릴 수 있는 이유는 이런 기록물들이 품고 있는 다양한 의미 때문이다. 이 작업은 고통을 받고 있는 ‘암환자’에 대한 것이 아니다. 동시대에서 감추기에는 너무 흔해진 ‘암’이라고 하는, 불멸하는 질병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성격을 이해하고 행동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려는 시도이며 그것이 가지고 있는 비유적, 의학적, 과학적, 사회적 함의를 탐구하는 작업이다.
2008년 전 세계적으로 760만 명이 ‘암’으로 사망하였다. 이런 비극적인 세계지표 위에서 작업이 시작되었다. 의학 논문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리서치였다. ‘암’을 둘러싼 다양한 함의에 대하여 시각예술적 질문을 던지려고 하는데 그것이 어쩔 수 없이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나서 우선 과거의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미 흘러갔지만 아직 흘러가지 않고 정지 상태에 있는 엄청난 분량의 자료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물리적으로는 지나간 시간이지만 그 시간이 아직도 에너지를 가지고 살아 있음을 느꼈다.
먼저 자료 수집의 룰을 만들고 리스트를 완성한 뒤 다양한 루트를 통한 접촉을 시도했다. 자료의 양이 많아지고 현대예술이 포용할 만한 수사를 포함시키기 위한 사고의 전개와 고리를 풀기 위해 체계적인 방법론이 필요했는데, 이미 말랑말랑한 머리는 한참 지난 후여서 어쩔 수 없이 가장 익숙한 의학 논문의 형식을 차용했다 (효과적이기는 하다). 의학 논문과는 전혀 별개의 작업을 하려는데 방법은 그것과 똑같은 것을 사용하니 아이러니했다. 작업을 ‘Introduction’ ‘Material and Method’ ‘Result’ ‘Conclusion’ ‘Discussion’의 다섯 부분으로 나누었고 현재와 미래의 자료를 위해 전향적 데이터베이스도 구축했다.
실제 작업에서는 다양한 함의의 내러티브를 포함하기 위한 이미지의 컨텍스트가 중요했고 도큐먼트와 사진자료의 발굴, 생산뿐만 아니라 수용되는 지점까지 고려해야 했다. 이러한 것들에 실패하면 어떤 수사를 가져다 붙여도 단순히 자료를 수집해서 나열하고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작업은 ‘암’을 매개로 만나게 되는 의사, 환자, 그 주변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투쟁, 환상, 희망, 절망, 죽음과 생존에 대한 작업이다. 작업에 등장하는 환자들은 존재하며, 실제로 내가 만난 이들이다. 신원을 보장하려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지만 인지 못하는 와중에 공개된 것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부디 그들의 신원과 영역을 존중해 주기 바라고, 이러한 시각자료가 훗날 2000년대 초반을 살았던 한 외과의사가 남긴 가치 있는 아카이브가 되기를 희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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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익은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간담췌외과 전문의로 서울중앙보훈병원에서 근무 중이다.  암 환자들의 진단에서부터 진료, 수술, 수술 이후에 이르기까지의 전체 과정을 기록한 자료들을 선별하여 작업을 하는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2012년에는 란 타이틀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그의 작품이 궁금하다면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된다.
홈페이지: http://jasonnoh.com/

[특별기획] 미술과 通한 사람들 – 조선 초상화는 왜 자랑스러운가_이성낙

조선 초상화는 왜 자랑스러운가

피부과 의사 이성낙

필자가 초상화에 눈을 뜬 계기는 반세기 전 의과대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뮌헨 의과대학 마르히오니니(Alfred Marchionini) 교수는 학기 마지막 피부학 강의를 ‘미술품에 나타난 피부 질환’이란 주제로 마무리하였다. 저런 시각에서도 예술에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우쳤다. 그 강의는 필자가 피부학을 전공하며 서양 초상화에서 병변(病變)을 찾는 ‘습관’을 가지게 된 동기가 된다.
1975년에 귀국하며 동양화에서는 피부 병변을 찾아볼 수 없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였다. 부끄럽지만 동양화 하면 아름다운 산수화만 생각하였나 보다. 그런데 어느 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조선시대 초상화를 만난다.
《 한국귀인초상대감(韓國貴人肖像大鑑)》을 편찬한 이강칠(李康七, 1926~2007) 선생을 만나는 큰 행운이 따랐다. 선생은 조선시대 초상화가 얼마나 꾸밈없이 정교하면서 정직하게 제작되었는지를 강조하며《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숙종 14년, 1688)에 정확히 기록된 초상화 제작 지침을 필자에게 가르쳐주었다. 즉 ‘한 가닥의 털(一毛), 한 올의 머리카락(一髮)이라도 달리 그리면 안 되었었다’고. 이는 필자의 논문 <초상화에 나타난 백반증(白斑症) (Vitiligo auf einem historischen Portrat)>이 독일 피부학 전문 학술지《DerHautarzt》(1982)에 실리는 것으로 이어졌다. 논문에서 초상화에 나타난 병변인 ‘하얀 피부’와 정상 피부의 경계 부위가 불규칙하게 더 검게 그려진 것은 초상화의 안료(顔料)가 변색된 결과가 아니라, 백반증의 전형적 증상인 경계과색소침윤(境界過色素浸潤, marginal hyperpigmentation)이 선명하게 묘사된 것임을 지적했다. 즉 병변이 임상적으로 활성화하면 더 검게 되었다가 하얗게 변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번져 나가는 임상적 현상과 일치한다고 했으며, 조선시대《 승정원일기》를 인용해 임상적 신빙성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했다. 편집위는 이 논문의 임상적 과학성을 인정해 학술지에 게재하였다. 이는 조선 초상화가 과학적으로 인증 받은 생생한 증언이다. 한국 미술사에 큰 이정표라 아니할 수 없다.
spec15-4대학원 과정에서 필자는 조선시대 초상화를 더 넓게, 더 깊이 연구하면서 초상화에 담긴 사회성에 눈을 돌리게 된다. 유럽 초상화에서는 예상보다 적게 피부 병변을 확인할 수 있고, 동양 초상화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 초상화에서도 드물게 볼 수 있으며, 일본 초상화(고승의 초상화 예외)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에 눈을 뜬다.
특히 두창(痘瘡), 일명 마마병(媽媽病, small pox)과 초상화를 키워드로 동양 초상 미술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관련 문헌을 살펴보면 명(明) 태종(太宗) 주원장(朱元璋, 1328~1398)이 두창에 감염되었던 점. 17~19세기에 한반도는 물론 중국과 일본 열도에서도 전염성이 강한 두창이 만연했는데도 두창의 상흔(傷痕)을 중국 초상화에서는 아주 드물게 볼 수 있고 일본 초상화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데 반해 왜 조선시대 초상화에서만 두창의 상흔을 쉽게 볼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화가가 대상자의 얼굴을 화폭에 옮기면서 두창의 상흔을 ‘있는데도 못 본 듯’ 주관적으로 그렸고 조선의 화가는 대상자의 얼굴에서 보이는 피부 병변을 우직하리만큼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화폭에 옮긴 것이다. 조선 초상화는 과시성과는 거리가 먼, 거부감을 줄 수 있을 피부 증상마저 가감 없이 화폭에 옮겼다는 사실과 맥을 같이한다.
더욱 경외(敬畏)스러운 것은 심한 두창 상흔이 있는 ‘외모 장애자’인데도 초상화의 대상자들이 영의정을 비롯해 높은 관직에 올랐다는 사실에서 당시 사회의 포용성을 보았다. 당시 선비 사회의 정서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 던지는 조용하지만 강한 메시지이다. 조선 초상화에는 자랑스러운 조선의 시대정신(Zeitgeist)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서다. ●

이성낙은 피부과 의사를 은퇴하고 미술사학을 전공하기 위해 일흔이 넘은 나이에 명지대 미술사학과 대학원생으로 돌아갔다. 2014년 《조선시대 초상화에 나타난 피부 병변(病變) 연구》로 석사논문을 썼다. 독일 뮌헨 유학에서 귀국 후, 1975년부터 전국 박물관과 사찰, 사당을 찾아다니며 조선시대 초상화를 살펴보고 우리 그림에 나타난 피부병을 연구해왔다. 현재 가천의대 명예총장이자 (사)현대미술관회 회장직을 맡고있다.

[특별기획] 미술과 通한 사람들 – 미술을 위한 화학, 미술재료학_전창림

미술을 위한 화학, 미술재료학

바이오화학공학과 교수 전창림

미술대학에서 강의하며, 미술대학 교재를 출판했고, 명화를 해설하는 책을 내기도 했는데, 디자이너들이 모이는 색채학회에서 제가 내미는 명함을 본 분들은 대개 깜짝 놀랍니다. 미술 전공이 아니라 생소한 바이오화학공학과 교수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화학과 미술이 무슨 관계인가? 진학 상담을 할 때도 미술계로 가는 사람이 화학에 관심 있을 리 없습니다. 그러나 미술가와 과학자가 거의 동의어였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특별한 천재가 아니라도 중세의 화가들은 직접 물감을 만들며 상당한 화학지식을 갖추고 있었고, 공학과 재료에 관한 높은 지식을 갖춘 미술가들이 있었기에 기술적으로도 실현이 쉽지 않은 조형구조의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남겼습니다.
저는 미술대학을 진학하려던 꿈을 가지고 있었으나 아버지의 강압(?)에 의해 화학을 전공했습니다. 미술의 꿈을 못 버리고 유학지를 프랑스로 정하여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으나 화학이 너무 어려워 한눈을 팔지 못하였고 결국 화학과 교수까지 되었습니다. 그런데 화학에 눈을 뜨고 보니 이 화학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특히 벤젠의 구조는 그 자체가 아름다운 육각형 조형물입니다. 특히 이 육각형 고리에 약간의 방울(산소 원소 표시가 O2이기 때문)이 달린 아스피린 구조를 보면 조화와 균형과 약간의 파격이 어우러지면서 심플한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환희를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화학자 중에 미술에 관심을 가진 분은 거의 없습니다.
제가 전공하는 화학을 비롯하여 기술공학 분야는 효율성과 유용성을 놓고 다툽니다. 아름다움은 그 다음이죠. 그러나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진리는 어느 분야에서나 통합니다. 이 말의 역(逆)도 진리입니다. 맛 좋은 떡이 아름답습니다. 요즘은 제품마다 성능은 거의 비슷하여 디자인이 중요하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이 나오기까지 성능을 발전시키려는 피눈물 나는 과정이 있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제야말로 기술과 미학의 완전한 융합이 필요한 시대라고 하겠습니다. 화학은 기본적으로 어떤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학문입니다. 이렇게 태어난 새로운 물질은 새로운 성질과 형태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물질로 새로운 조형물을 만들면 새로운 예술이 되겠지요. 전통적인 재료로 만드는 작품에 수많은 미술가가 끝없이 도전하여 이제는 하늘 아래 새것이 있겠는가 하는 데까지 왔습니다. 지금까지 써 왔던 재료만으로는 표현양식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재료를 바꿔야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이제 재료에 대한 연구가 미술가에게 필요합니다. 화학이 미술에 절대적인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결국 미술은 시각적 결과를 작품으로 만듭니다. 그 시각적 결과물을 만드는 재료를 철저히 알지 못하고 어떻게 그 재료가 나타내는 모든 성질과 형태적 변화를 미술에 응용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저는 미술대학에서 미술재료학과 색채화학을 강의합니다. 또한 미술작품에 숨어 있는 과학적 요소들과 화학적 문제들에 대한 글을 쓰고 있기도 합니다. 저의 책《 미술관에 간 화학자》가 미술과 화학을 융합하였다고 대입 논술교재로도 쓰인다고 합니다만 저는 ‘미술과 화학의 융합’이라기보다는 ‘미술가를 위한 화학’을 제 필생의 업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미술가들에게 꼭 필요한 화학과 재료에 관한 지식을 발전시키고 학문으로 정립하여 각 미술대학에 강좌를 개설하고 그 강좌를 담당할 미술과학자를 길러내는 일입니다. 이러한 미술과학을 체계적으로 교육받은 미술가는 자기 작품을 세대를 넘어 보존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갖추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재료를 사용하여 다양하고 새로운 표현 기법도 응용할 수 있습니다. 융합과 통섭을 외치는 시대에 우리 미술가들은 좀 더 넓은 시각으로 새로운 재료와 미술재료학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많지 않지만 미술을 위한 화학과 융합학문을 정립하는 데 뜻을 같이 할 분이 많아지기를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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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림은 한양대 화학공학과와 동 대학원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국립대학교에서 고분자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물감과 안료의 변화나 색의 특성 등 미술과 화학의 접점을 찾고자 노력한다. 현재 홍익대 과학기술대학 바이오화학공학과 교수, 대학원 색채전공 강의교수로 재직 중이며 대한화학회, 공업화학회, 한국화학공학회 회원이자 한국색채학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특별기획] 미술과 通한 사람들 – 그림이 법의학과 만나니 억울함의 탈도 벗겨지더라_문국진

그림이 법의학과 만나니 억울함의 탈도 벗겨지더라

법의학자 문국진

인권이 침해된 범죄사건이 발생하면 법의학적 감정(鑑定)을 의뢰하게 된다. 이때는 사람만이 아니라 각종 증거물들이 대상이 되며, 사인(死因)을 밝히기 위해서는 시신도 부검한다. 만일 시일이 오래 경과하여 시신이나 증거자료가 없는 경우에는 속수무책으로 손을 놓게 되는 것이 지금의 법의감정 분야 실정이라 하겠다. 필자는 이러한 경우 고인과 관계되는 문건이나 창작물이 남아 있다면 이를 분석해 법의학이 목적하는 인권의 침해 여부를 가려낼 수 없을까를 생각해왔다. 이런 생각의 이면에는 정신의학에서의 병적학(Pathography)
이 있었다. 이미 고인이 된 문호나 장인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정신분석을 실시함으로써 살아생전 작가의 정신적 질병이나 당시의 심리상태 등을 알아내는 것이 바로 병적학이다. 현존하지 않는 인물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문헌이나 작품 분석을 통해 고인의 정신분석이 가능하다는 것은 법의학계에서도 매우 고무적인 것으로 생각 되었다. 따라서 고인의 유물이나 문헌 및 작품 등을 통해 법의학 분야에서도 사인이나 인권의 침해 여부를 추출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가능성 여부를 시험해보기에 이르렀다.
spec19첫 번째 시험 대상은 화가 반 고흐의 작품이었다. 그는 권총 자살을 시도했는데 이틀이 지나서야 사망했기 때문에 타살 또는 사고사라는 의견이 분분했으며 사인에 대해 많은 의문을 남겼다. 필자는 그의 작품과 문헌들을 면밀히 검색하여 그의 사인은 ‘총상으로 인한 급성법발성 복막염’이며 ‘자살’이라는 것을 알아냈고, 이를《 반 고흐 죽음의 비밀》(2003)
이라는 저술로 펴낸 바 있다. 각종 문건의 분석을 마치 시체를 부검(剖檢)하듯 시행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러한 문헌검색을 ‘문건부검(Book Autopsy)’이라 칭했다. 그리고 남아 있는 창작물 등의 흔적을 탐지하고 탐구하여 진실을 밝힌다는 의미에서 법의학의 이런 분야를 ‘법의탐적론(Medicolegal Pursuitgraphy)’이라 칭하기로 했다. 법의탐적론의 대상이 되는 각종 창작물 중에서도 미술작품이 가장 좋은 분석 대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화가는 역사화나 인물화 등을 그릴 때 시대가 부여하는 목적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고증을 참작하고 철학적 지성과 자신만의 미적 혼(魂, 예술적 영감)을 융합해 작품을 완성하기 때문에 미술작품은 곧 그 환경과 시대를 증언하는 무언의 증인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보는 이의 안목과 전문성에 따라 그 해석에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즉 어떤 의미에서는 그림을 감상한다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는 그 행위자체가 제2의 창작행위라 할 수도 있다. 이는 그림을 보는 감상자 각자의 경험과 전문성에 따라 마음속에는 자기만의 독특한 감상결과가 생겨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림을 감상할 때 화가의 미적 기교보다 현 시대적 비판에서 우러나는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했는지를 중점적으로 봤다. 그 결과 명화들 가운데는 인권에 대한 침해를 경고하고, 인권의 수호를 찬미하는 등의 여러 형식으로 표현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때로는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것도 있었다. 즉 스페인의 거장 고야의 <벌거 벗은 마하>(1800)의 모델이 누군가에 대하여 작가가 함구하였기 때문에 사회적 문제로 비화해 200여 년간 의문의 화제가 되어 오던 것을 작품들의 법의탐적론적 분석으로 모델은 알바 공작부인이 아니라는 것을 가려내어 오랫동안 불명예스러운 소문에 시달리던 알바공작 가문이 이제는 떳떳해질 수 있게 되었으며, 고인이 된 알바 공작부인의 영혼도 시름을 풀고 고이 잠들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미술작품의 법의탐적론적 분석으로 억울했던 누명을 벗길 수 있었다는 것은 이 학문의 필요성을 말해주는 쾌거라 하겠다. 동시에 앞으로 이 분야의 연구가 더욱 활발해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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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국진은 대한민국 1호 법의학자이자 국과수 창립 멤버이다. 1925년생으로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국과수에 들어가 법의관으로 활동했다. 대학교 3학년 때 우연히 본 후루하다 다네모노가 쓴 《법의학 이야기》에서 “사람에게는 생명도 중요하지만 권리도 그에 못지않게 소중하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학이 임상의학이라면, 사람의 권리를 다루는 의학은 법의학이다.”라는 구절을 읽고 법의학의 길에 들어섰다.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예술가의 사인(死因)과 작품을 의학적 관점에서 규명하고 해석하는 ‘법의 예술 병적학’ 분야로 여전히 수사 중이다.

[특별기획] 미술과 通한 사람들 – 판소리와 풍속화, 조선후기 아방가르드 예술

판소리와 풍속화, 조선후기 아방가르드 예술

국어국문학과 교수 김현주

판소리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나에게 그림은 더 이상 한가롭게 감상하고 즐기는 여기적 대상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풍속화는 내 학문 속 깊숙이 들어와 앉아 자기를 학술적으로 대우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건 어찌보면 불행한 일이다. 학문적으로 연결되면 그림이라는 즐거움의 대상도 괴롭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풍속화를 학문적인 시선으로 골똘하게 바라봐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판소리와 풍속화가 지닌 비슷함에 푹 빠져버린 것이다.
풍속화가 판소리 연구자인 내게 의미를 지닌 존재로 다가온 건, 처음에는 신기한 현상일 뿐이었다. 대학 시절 서예와 동양화를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 산수화도 좋았지만 풍속화에 관심이 더 많이 갔다. 풍속화에 보이는 유려한 붓놀림을 흉내내면 붓글씨를 활용한 새로운 묵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품어봤던 것이다. 어쨌든 김홍도와 신윤복을 비롯해 윤두서, 조영석, 강희언, 김득신 등 많은 풍속화가의 작품을 뜯어봤던 그때 경험이 판소리를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되살아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일이다. 특히《춘향전》에서 이도령과 방자가 광한루 구경을 나갔다가 그네 뛰고 목욕하는 춘향을 발견하고 혹하는 묘사 장면이라든가, 야밤에 춘향집으로 은밀하게 이동하고 춘향과 통정하는 모습을 그리는 장면을 읽으면서 나는 곧바로 혜원의 <단오풍정>, <월하정인>, <야금모행>, <연소답청>, <삼추가연> 등의 그림들을 머리에 떠올렸던 것이다. 마치 춘향전 작가가 그런 그림들을 보고 서술한 것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물론 화공이
《춘향전》을 읽고 그런 그림을 그렸을 수도 있다는 거꾸로의 논리도 가능하다. 이렇게 신기한 그림과 사설의 연상작용이 판소리와 풍속화를 연결하는 내 이력의 첫걸음이 되었다.
spec16처음엔 정황상의 유사함에서 시작되었지만 좀 따져보니 판소리와 풍속화 양자가 만나는 지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대상을 클로즈업한 상태에서 아주 자세하게 뜯어보는 사실주의적 성향을 보인다든지, 당시 금기시되는 환경 속에서 과감하게 성적 노출을 감행한다든지, 대상을 희화화하여 우스꽝스럽게 표현한다든가, 여러 각도의 시선들을 배치하여 자유분방하고 발랄한 관점을 드러내는 구조상의 상동성 같은 것도 볼 수 있었다. 양자가 비슷해진 것은 시대적인 상황과 분위기가 밑바탕이 되었겠지만 둘 사이의 상상력 차원의 교류도 작용하지 않았겠나 판단된다. 소설 작가에게 당시의 풍속화나 민화가 주는 회화적 상상력이 어느 정도는 작동하지 않았을까.《춘향전》의 언어 자질을 정밀하게 따지다보면 강렬한 시각적 어휘소(語彙素)들이 널려 있음을 보고 놀라기도 한다. 어떻게 이런 강렬한 원색의 색채소, 매우 역동적인 형상소와 동작소가 나타나게 된 것일까? 그건 당시의 색채와 운동감각을 주도했던 풍속화와 민화를 빼고 말하긴 어렵다고 본다.《춘향전》 언어의 이러한 회화성은 춘향전의 영상화 작업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난 보고 있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에서 춘향이 그네를 뛸 때 흰색 붉은색 꽃들이 어지럽게 떨어지는 장면을 카메라가 잡고 있는데, 그건 ‘백백홍홍난만중(白白紅紅爛漫中)’이라는《춘향전》 언어를 가지고 고민한 결과가 아닌가. 소설 작가에게 회화적 상상력이 작동한다면, 풍속화가에게는 소설적 상상력이 작동하지 않았을까. 신윤복의 <혜원전신첩> 소재 그림 대다수는《이춘풍전》이나《왈자타령》,《절화기담》 등과 같은 당시의 세태소설들과 테마, 분위기, 정조, 표현방식 등에서 상당한 유사함을 보이고 있다. 이로 미루어보건대 혜원은 유곽이 있는 뒷골목과 거기 사람들의 생태를 꿰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세책가의 소설본들을 빌려 읽는 데도 관심이 아주 많았던 듯하다.
내가 풍속화와 판소리에 견인되었던 이유의 하나는 화공과 광대의 그 치열했던 삶에 공감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숱한 난관에도 불굴의 의지로 그림과 소리를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켰다. 판소리 광대들은 천민으로부터의 계급적 해방, 그리고 무당 집안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비원을 소리에 담아내고 있고, 풍속화 화공들도 신분의 한과 사회적 냉대 등의 환경 속에서 시대정신을 화폭에 담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들의 도전적인 실험정신과 투철한 장인정신이 없었다면 전대에는 존재하지 않다가 조선 후기에 찬연하게 등장한 아방가르드 예술로서의 풍속화와 판소리가 그렇게 높은 수준으로 도약하지는 못했으리라.
내가 문화사적인 전체 맥락 속에서 조선후기 문학과 판소리를 보고 있는 한 풍속화는 아마도 역동적인 모습으로 항상 내게 다가올 것 같다. 거울처럼 상대가 되는 장르를 비추면서 문화론적인 반사작용을 할 것이므로. ●

김현주는 서강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춘향전의 연행론적 연구》를 박사학위논문으로 썼다. 현재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고전서사체 담화분석》 《구술성과 한국서사전통》 《판소리 담화 분석》등을 저술했다. 판소리와 풍속화를 소설과 회화적 상상력으로 서로 소통하는 존재로 보고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연구한 《판소리 소설을 읽으며 풍속화를 보다》를 펴냈다. 이 저서에서 정조시대 문학과 회화에 주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