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Report | SYDNEY ] Biennale of Sydney
올해로 45주년을 맞은 시드니비엔날레(Biennale of Sydney, 3.16~6.11)는 여러모로 비엔날레의 문법에서 비켜서 있는 듯하다. 생각해보라. 유럽과 미주대륙이 동시대 미술사를 양분하여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데 그 외 지역에서 열리는 비엔날레는 늘 경계 밖의 주변인으로 내몰리지 않았는가?
올해로 45주년을 맞은 시드니비엔날레(Biennale of Sydney, 3.16~6.11)는 여러모로 비엔날레의 문법에서 비켜서 있는 듯하다. 생각해보라. 유럽과 미주대륙이 동시대 미술사를 양분하여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데 그 외 지역에서 열리는 비엔날레는 늘 경계 밖의 주변인으로 내몰리지 않았는가?
등장 그 자체로 퍼포먼스를 완성하는 부부작가 에바와 아델레(EVA&ADELE). 이 둘의 모습은 비엔날레나 아트페어 등 세계미술빅이벤트 현장에서 쉽게 발견된다. 그들의 작품을 모은 회고전이 베를린의 미 컬렉터스룸에서 8월 27일까지 열린다. 연중 8개월 가량을 퍼포먼스를 벌이고자 해외에서보낸다는 그들. 고전적 의미의 성 경계를 넘나드는 그들을 《월간미술》이 전시장에서 직접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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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너머 출렁이는 폴리팝의 달콤함
최금수 | 전시기획자, 이미지올로기연구소 소장⠀⠀⠀⠀⠀⠀⠀⠀⠀⠀⠀⠀⠀⠀⠀⠀⠀⠀⠀⠀⠀⠀⠀⠀
섬이다. 한반도의 반쪽을 차지하는 대한민국은 3면이 바다에 둘러싸이고 북쪽은 비무장지대로 가로막힌 이념 절벽이라 안타깝지만 참말로 섬이 맞다. 물론 깊은 원한이 맺혀있기에 사람들은 그 절벽을 너무나 아파하고 원망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냉전의 결과인 분단이 장기화하면서 서로에 대한 미움은 미성숙한 국가의 내부통치를 위해 이용되었다. 그 결과 남과 북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법적으로 금기시하고 대치 상황은 일상적인 위기감으로 변절되었다. 그리고 근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 섬나라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익숙해진 불안감을 즐기며 너무나 평온한 일상을 살아간다. 기나긴 적응의 세월 탓에 북에 대한 이질감은 무관심으로 변했으며 구체적이지 않은 막연한 두려움만 출렁일 뿐이다.
지난겨울 이후 한반도 상황은 남북 교류를 모색하며 분단의 위기와 긴장이 해소될 거라는 낭만적 기대에 부풀어 있다. 이제 섬나라를 벗어나 대륙을 누빌 철도를 준비하기도 하며 예전 ‘낭만적 통일론자’들의 어눌한 발언이 무색할 정도로 무지갯빛 급류를 타고 있다. 정치적 통일이야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국가들이 풀어야 할 과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몇 년 새 냉전의 기억을 추스르는, 민족분단을 주제로 하는 예술가들의 작품 발표가 잦아지던 차에 한국현대미술에서도 작금의 해빙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국가적 통일이야 쉽지 않겠지만 종전협정 체결 또는 민간교류의 물꼬가 조만간 트일 듯한 조짐이 체감되기에 예술가들의 ‘분단 해소’를 위한 노력들이 부각되고 있음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코리안 아메리칸 미디어아티스트 천민정의 작품에서도 기나긴 분단이 결과한 오해와 폭로의 함성이 가득하다. 미술사적 양식에서 보자면 사회주의권 선전화(宣傳畵)와 현란한 팝아트를 섞은 당당한 형상과 선명한 색상들 덕분인지 천민정의 프로파간다는 무척 힘이 있고 감각적으로 밝다. 그리고 섬나라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환경을 넘어선 입장이라서 그런지 그의 상상력은 매우 자유분방하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미지들이 과감하게 등장하는 그의 작업은 섬나라 관람자의 입장에서는 결코 편안한 그림은 아니다. 더구나 두 개의 이질적인 나라가 지루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어느 쪽인가를 선택하려는 습관에 젖어있는 섬나라 사람들에게 천민정의 작품은 다소 공포심을 일으키기도 한다.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전체주의 또는 민족주의적 상징 풍경들은 예술의 영역을 벗어나 정치적 선전물로 가치관을 교정하려는 작업의 일환처럼 사명감 또는 부담스러움을 조장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천민정은 이 부담스러움을 해결하기 위해 달콤한 롤리팝을 끌어들였다. 무지갯빛 회오리를 담은 미끈미끈한 롤리팝은 미디어아티스트 천민정에 의해 폴리팝(POLIPOP ; Political Pop Art)으로 변환된다. 그 달콤함으로 중화시킨 이념적 이미지들은 곧바로 몽환적인 천민정의 이미지 세계로 들어오라고 재촉한다. 이미 알고 있지만 천민정은 정치인이 아닌 예술가임을 다시금 확인시키는 절차인 것이다. 이제야 두 개의 나라 어느 편도 아닌 예술의 영역에서 차분히 작품을 감상할 여유가 생긴 셈이다.
‘김일순 교수’가 전파하는 어머니의 사랑
그리고 김일순. 낯설지만 익숙한 이름의 김일순은 천민정이 고안해낸 가상의 인물이다. 그의 직업은 ‘화가, 해군사령관, 농부, 학자, 교수, 두 아이의 어머니이며 하나의 인간’이다. 때때로 천민정은 김일순이 되어 “세상은 북한의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파한다. 김일순의 등장과 함께 구비된 선물들은 층층히 쌓인 1만 개의 초코파이와 미술사 강연을 동영상으로 저장한 USB이다. 마치 북한에 살포하기 위해 날리는 비닐풍선에 넣어졌던 내용물들처럼 북한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전해지는 달달함과 호기심을 담고 있다. 그렇지만 김일순의 그간의 행보를 보자면 체제 풍자꾼이라기보다는 인간애를 바탕으로 한 평화주의자에 가깝다. 그 달달함과 호기심의 범위가 북한이라는 특정지역으로 좁혀진 것은 사실이나 최근에는 ‘모성애’라는 지도자적 품성에 더 심취해 있는 것을 볼 때 김일순은 민족분단 때문에 잊고 살아온 ‘촌스럽지만 당당한 어머니’로 좀 더 건강한 미래에 대한 생각들을 설파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역시 천민정의 예술세계에서 가상활동으로 실재의 행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작품 속에서 가상인물 김일순의 아들 ‘김시운’과 딸 ‘김시아’가 북한 어린이로 등장하는데 이들 또한 수고롭게 직접 분장한 천민정의 친자녀다. 이 해맑은 어린이들은 끊임없이 ‘행복’에 대해 되묻게 하는데 이는 굳이 한반도에 국한할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천민정은 이에 대해 “그림 속에 보이는 행복한 얼굴은 각 나라마다 행복의 정의가 다를 수 있고 딱 한 가지 방식으로 정의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면에서 천민정의 작품 배경이 되는 풍경들도 북한의 달력 사진이나 선전화 등에서 따온 것인데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최근 김일순 교수는 북한 주민과 어린이를 위한 10회의 미술사 강연 동영상을 제작하여 USB에 담았다. 그 강의의 주제는 ‘미술과 인생’, ‘미술과 음식’, ‘미술과 돈과 권력’, ‘추상미술과 꿈’, ‘페미니즘, 우리는 평등한가’, ‘미술, 삶의 문제, 그리고 사회정의’, ‘리믹스와 차용미술’, ‘미술과 기술’, ‘미술과 침묵’, ‘미술과 환경’ 등이다. 제목만 보아도 인간의 삶에 대한 철학적 문제를 짚는 내용이다. 더구나 미디어아티스트 천민정의 발랄함이 더해지면서 캐릭터와 영상의 짜임이 유명 유튜버 수준을 넘고 있다. 얼핏 무거운 주제들인데 밝은 미래를 생각하는 김일순 교수의 섬세함이 느껴진다.
2017년 이텐 코헨 갤러리 뉴욕에서 열린 〈엄마: 매스게임-어머니의 사랑으로 북한을(UMMA: MASS GAMES – Motherly Love North Korea)〉 (2017.10.20~1.11)을 보면 천민정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더욱 명료해지도록 노력하는 것 같다. 특히 ‘엄마 UMMA’라는 이미지를 빌려 한반도를 넘어 세상의 모든 자식을 끌어안으려는 시도인데 그가 염두에 둔 실천적 미술행동에 좀 더 다가서는 느낌이다. 단기간 소모되는 정치적 예술이라기보다는 인류애를 바탕으로 한 예술영역에서의 정치적 발언인 셈인데 김일순의 품성으로 보아 충분한 현명함을 지녔을 것이라 짐작된다. 단지 걱정되는 것은 아직도 존재하는 섬나라 사람들의 어설픈 편견이다.
몇 달 전만 해도 막막했던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있음을 반기면서 예술가로서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21세기 들어 세계 예술에서 무수한 다양성을 확보한 것은 실로 고무적인 일이다. 한국현대미술계의 환경 또한 많이 넓어진 것이 사실이다. 어차피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다.’라는 해석을 내릴 수도 있겠으나 분명 예술과 정치의 다름을 느낀다. 때때로 예술보다 정치의 속도가 너무 느림을 한탄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사회적 삶에 서 반성의 계기를 만드는 예술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으리라는 신뢰는 여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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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민 정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메릴랜드 미술대학 이미징&디지털 아트 석사, 스위스 유럽대학 대학원 연계과정(EUFIS)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철학 박사를 받았다. 인사아트센터(2005), C. Grimaldis 갤러리(볼티모어 2008), 성곡미술관(2012), 트렁크갤러리(2014)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국내외에서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현재 미국 메릴랜드 미술대학(Maryland Institute College of Art) 교수로 재직하며 이탠 코헨 갤러리 소속 작가로 한국과 미국에서 활동 중이다. 올해 9월에 열리는 〈2018부산비엔날레〉에 참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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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미술 >⠀Vol.401 | 2018. 6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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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설 미술관이 펼치는 개관 전시에는 많은 고민과 의도가 담긴다. 새롭게 선보이는 자리인 만큼 공간이 추구하는 가치관을 전시에 녹여내기 때문이다. 작가를 섭외하거나 작품을 선정할 때에도 공간의 지향성을 고려해 신중히 선정한다. 지난 16일에 부산현대미술관이 많은 이목과 관심 아래 문을 열었다. 개관한 주 주말에는 2만명이 방문했다고 한다. 성황리에 오픈한 부산현대미술관이 처음으로 선보이는 기획 전시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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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는 ‘동시대성’.
개관과 동시에 개최한 다섯 개 전시에는 공통점이 있다. 회화나 조각처럼 고정된 작품이 아닌 뉴미디어 아트, 설치, 영상 등 공간에 따라 변하며 동시대를 반영하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부산현대미술관은 미술관 운영 방향을 ‘자연,뉴미디어,인간’이라고 밝혔다. “우리 사회의 단면을 돌아보고, 다가올 미래를 전망하고,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예술의 의미를 전달하는 동시대적 미술관”을 목표로 한다고 부산현대미술관 초대관장 김성연은 전한다.
미술관 1층 로비에 영구설치한 <토비아스 레베르거: 가끔이나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은 나 자신뿐이다> 에서 동시대 미술과 예술의 복합적 기능에 집중하는 미술관의 지향점을 발견할 수 있다. 토비아스 레베르거는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작가로 비엔날레 공간을 ‘대즐 패턴’(Dazzle Pattern)으로 디자인해 명성을 떨쳤다. 대즐 패턴(Dazzle Pattern)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이 적의 시각을 교란하기 위해 사용한 굵은 줄무늬 패턴이다. 부산현대미술관 로비에 설치된 작품에도 이 패턴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독창적 문양을 통해 ‘인지 과정’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며 공간과 장르에 구분 받지 않고 폭넓은 영역에 걸쳐 작업을 선보인다. 동시대 미술의 독창적인 매체 사용을 보여주는 대표적 작가다. 미술관은 토비아스 레베르거의 작품을 영구설치하며 동시대 미술과 장르의 변화, 특히 예술의 복합적 기능 결합에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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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을숙도’에 위치한 미술관
개관하기 전, 부산현대미술관은 ‘대형마트 같다’는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 다양한 매체에서 부산현대미술관의 밋밋하고 네모난 건물을 비판했다. 이런 평가에 대응해 미술관은 건물 외벽에 식물을 수직으로 심은 <수직정원>을 기획했다. 프랑스 식물학자 패트릭 블랑의 작품<수직정원>은 국내에 자생하는 175종의 식물을 미술관 외벽에 심은 프로젝트다.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수직정원>의 식물이 잘 자라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던 염려와는 다르게 식물들은 이내 푸른색을 자랑하며 관람객을 맞았다. 현재 방문객의 촬영 명소로 활약하는 중이다.
부산현대미술관은 천연기념물 제179호인 ‘을숙도’에 위치한다. 특수한 지역에 자리한 만큼 미술관은 주변 경관을 헤치지 않으며 자연과 어우러져야 한다는 과제를 안았다. 자연스레 미술관 외벽을 장식한 <수직정원>에 이목이 쏠렸다. “<수직정원>은 계속 살아 있으면서 자라는 생태계와도 같다. 이기대 해국을 비롯해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자라는 종을 선택해 심었다.” 패트릭 블랑은 미술관의 과제를 명확히 해결했다. 그는 한국의 기후를 이해하고 부산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하는 종을 선별해 <수직정원>을 제작했다. 작품은 ‘자연과 예술의 관계에 집중하는 문화공간’이라는 미술관의 목표와 부합하며 자연과 하나 되는 복합문화공간으로서 미술관의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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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새로운 문화예술바람
<토비아스 레베르거: 가끔이나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은 나 자신뿐이다> ,<수직정원> 외에 세 개의 전시도 볼거리다. 최근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태국작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작품 < 증발 > ,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참여작가 전준호의 <꽃밭명도> 등 국내외적으로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미술관은 전시 외에도 어린이 예술도서관을 포함해 다양한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아트 프로젝트를 개최한다. 어린이 예술도서관은 을숙도 갈대숲을 모티브로 조성해 책과 예술작품을 함께 담은 도서관이다. 이달 26일부터 시범 운영한다. 사람, 자연, 뉴미디어가 어우러진 문화예술플랫폼으로서 부산현대미술관이 지역공동체에 좋은 영향을 가져오길 기대해본다. 개관기념 전시는 8월 1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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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민경 (monthlyartmedi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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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강현실, 블록체인, 4차산업혁명, 빅데이터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예술은 그 가치와 경험을 확장하는 단계로 이미 진입중이다. 데이터 아카이빙과 증강현실을 기반으로 관람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엘리펀트 스페이스의 등장도 그 지점 어디쯤이 아닐까.
6월 넷째 주, WHAT U MUST SEE 5.
오는 6월 22일부터 25일까지 4일 간 부산 벡스코 제1전시장에서 부산 국제 화랑 아트페어(BAMA)가 열린다. 올해로 7회를 맞이하는 이번 행사는 10개국 102개의 화랑이 참가하며, 3천 여 점의 작품이 선보인다.
피크닉은 전시공간, 카페, 레스토랑, 디자인 스토어가 공존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지난달 오픈했지만,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입소문이나 방문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피크닉의 공간과 첫 개관전으로 펼치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 Life, Life >를 살펴보자.
이동연 지음 《예술@사회》 학고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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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에 발간된 이동연 한예종 한국예술학과 교수의 《예술@사회》는 200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서 예술이 처한 상황을 서술하고 발전을 위한 조건을 제시하는 책이다. ‘예술과 노동/예술과 복지/예술과 도시재생/예술과 시간/예술과 검열/예술과 행동/예술과 기술/예술과 거버넌스’라는 여덟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마다 주제와 관련된 현재 상황을 진단하고 올바른 정책의 방향을 제시한다.
저자는 현재 한국에서 예술이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증거로 예술과 돈을 분리하는 경향 때문에 예술가가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수를 요구하거나 받지 못하는 점, 늘어난 정부 소유의 창작 공간이 오히려 예술가의 자생적 공간을 해침으로써 자립을 어렵게 만들기도 하는 점, 예술가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든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상황을 비관적으로만 바라보진 않는다. 위기 ‘덕분에’ 예술가가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예술을 통해 사회에 기여함으로써 ‘예술 노동의 사회적 자본’을 마련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추리 미군기지 건설 반대 예술행동, 용산 참사나 세월호 침몰, 블랙리스트 사건과 같은 사회 문제에 ‘파견 예술가’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시민혁명에 앞장섬으로써 예술이 사회와 적극적으로 관계 맺으며 그 실천적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다른 한편으로 저자는 예술가의 노동 가치가 정당하게 인정받고 그들의 사회적 위치가 안정될 수 있도록 돕는 예술 정책에도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그는 예술가들이 창작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박정희 정권부터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예술에 대한 검열의 계보를 음반, 웹툰, 영화, 게임을 예로 들어 정부의 통제를 매우 강하게 비판한다. 또한 2011년 제정된 ‘예술인 복지법’이 졸속으로 만들어져 실효를 거두고 있지 못함을 지적하고 정책의 패러다임이 구제에서 권리로, 선제적 대응으로, 함께 상생하는 것으로 변화하기를 촉구한다. 더불어 현재의 예술 정책은 예술 거버넌스가 실종된 위기를 맞이했다고 진단하는데, 이를 극복할 방향으로 거버넌스의 철학과 담론을 지속적으로 토론할 것, 예술 거버넌스 매개의 중심에 예술가가 있을 것, 예술의 지원 체계 안에 수평적 네트워크를 구축할 것, 기업의 참여를 독려할 것 등을 제안한다. 나아가 최근 이슈가 되는 ‘예술과 기술의 융합 현상’도 중요하게 다룬다. 특히 한국에서 4차 산업혁명 담론이 새로운 기술혁명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만 생각한다고 지적하며 그보다 더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은 기술혁명이 가져다줄 개인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라고 주장한다.
‘예술 노동’의 특수한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함의가 이루어져 예술가들이 적절한 보상, 지원 아래 인정받을 수 있기를 촉구하는 책의 메시지는 사실 교과서적인 담론에 머물기 쉬운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관련 분야를 연구하고 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전문가답게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우리 예술이 처한 위기를 직접적으로 드러낸 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계기로 이를 방지할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보다 많은 사람이 이 사안에 대해 고민하면 좋겠다. 책에서 저자는 예술은 ‘특수한’ 노동 형태이며 ‘특수한 가치’가 있다고 거듭 강조한다. 예술의 특수성에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예술이 현재 처한 위기를 타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바람처럼 이 책을 통해 ‘생각하고 상상하고 계획하는 예술가의 시간’이 의미 있는 노동의 시간이며 눈에 보이거나 돈으로 환산하기 힘들어도 예술적 효과는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이 공감하기를 바란다.
또한 서문에서 저자는 그간 책을 어렵게 쓴다는 지적을 받아온 터라 쉽게 쓰려 애썼다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여러 미학자의 이론을 인용했음에도 어렵지 않게 읽혔다. 예술의 사회적 가치가 궁금한 일반인, 내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매길 수 있는지 알고 싶은 예술가, 예술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 책을 추천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이다.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책 한 권으로 얻을 수는 없다. 하지만 다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침반 역할은 분명 해줄 수 있을 것이다.
| 정하윤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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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숙 | 미술사
최근 미국에서는 필라델피아 중심지에 있는 스타벅스 매장에서 사람(백인)을 기다리던 젊은 흑인청년 두 명이 경찰에 체포되는 사건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매장 직원은 그들이 주문하지 않은 채 앉아있었다는 이유로 경찰을 불렀다. 두 청년에게 수갑이 채워지는 이 장면은 현장에 있던 백인여성에 의해 그대로 촬영되었고 배포되어 엄청난 공분을 일으켰다. 필자는 그중 한 명이 남편이 가르치는 대학을 졸업한 학생이라는 말을 전해 듣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경영대학을 졸업한 재원도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는 것, 이것이 피부색이 검은 그들이 미국에서 처한 절대적인 운명이다.
이 같은 일은 인종 및 여성 차별주의자로 극우적인 정책을 펴나가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현 정권하에서 더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불법이민자들이 추방되고 합법이민자들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불편하며 흑인은 범죄자로, 여성은 남성의 성적 노리개로 그들의 위치를 재점검당하는 상황에 당황하고 있다.
이 뉴스를 보면서 뉴뮤지엄에서 한창 진행 중인 트리엔날레 <저항의 노래들>에 출품된 흑인 작가 윌머 윌슨 4세(Wilmer Wilson IV, 1989~)의 작품들이 겹쳐지며 떠올랐다. 작가가 사는 필라델피아 거리의 자동차 윈드쉴드에 끼워놓은 광고지, 거리의 벽이나 전봇대에 스테이플로 찍어 고정시켜 놓은 전단지들을 거두어 확대, 합판 위에 붙인 후 공업용 스테이플을 촘촘히 박았다. 은빛의 철로 만들어진 수천수만 개의 스테이플은 조명 아래에서 물결 같은 그림자를 만들며 그 뒤에 숨은 흑인 형상을 언뜻언뜻 보여준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남겨둔 부분만 그대로 노출된다.
<Nev>(2017)에는 흑인남자의 늘어진 두 손과 샴페인 병만이 드러나며 <Afr>(2017)에는 한 손엔 총이 들려져 있고 다른 한 손은 총을 쏘는 듯한 제스처를 한 흑인의 손이 노출되었다. 죄 없는 흑인청년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지는 뉴스를 본 후 이 작품은 가슴에 비수를 꽂는 듯한 아픔으로 다가왔다.
벽에 세워진 윌슨의 스테이플 작업 바로 앞에는 알루미늄 파이프로 만든 놀이터의 그네 세트가 설치되었다. 위에는 빨간 벽돌 한 장이 놓여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그네를 타는 순간 벽돌은 떨어져 아이의 머리를 칠 것이라는 일촉즉발의 위기감을 조성한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작업하는 흑인 여성작가 다이아몬드 스팅리(Diamond Stingly, 1990~)의 작품 <E.L.G.>이다. 그 작업 옆에는 태풍이 지나간 후의 잔재를 보는 듯한 노르웨이 작가, 티릴 하셀크니페(Tiril Hasselknippe, 1984~)의 미니멀한 메탈작업 <발코니(Balconies)>(2018) 시리즈가 전시장의 침묵 속에서 유럽이 직면한 난민 문제를 언급한다.
이번이 4회째인 뉴뮤지엄의 트리엔날레는 2011년 영국의 경제학자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이 만든 용어, 프레카리아트(Precariat) 계급과 그들의저항(sabotage)을 주제로 한다. 정규직을 가질 수 없어 이 직장에서 저 직장으로 떠돌아다니는 불안정한 노동계층, 그래서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없으며 희망을 버린 사람들, 여성(가정주부, 미혼모 등), 노숙자, 실업자, 임시직장인을 비롯 고학력의 예술인, 작가, 프리랜서, 대학의 시간강사들,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밀려난 숙련공 등이 프레카리아트이다. 문제는 자본주의의 극대화에 따른 이 같은 현상이 21세기에 들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신자본주의, 신자유주의가 빠르게 스며들며 전 세계적으로 프레카리아트 계급의 불안을 이용한 신국수주의의 등장마저 부추기고 있다.
알렉스 가텐필드(Alex Gartenfeld, 마이애미 현대미술관)와 함께 이번 트리엔날레의 큐레이터를 맡은 게리 캐리온-무라야리(Gary Carrion– Murayari)는 전시 카탈로그에서 스탠딩의 이론을 인용하며 이번 트리엔날레가 “자본주의의 특성인 착취와 지배의 구조에 대한 저항을 요구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두 큐레이터는 지난 3년 동안 24회에 걸쳐 인터넷 연결이 불가능한 지역 등을 포함,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작가들을 방문했다.
6명의 미국작가를 비롯 전 세계 19개국에서 선정된 25세부터 35세까지의 참여작가, 컬렉티브, 그룹 등 26명 대부분은 자신의 나라에서 실제로 사회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액티비스트들이기도 하다. 전시작의 80% 이상이 이번 트리엔날레를 위해 만들어진 신작이며 참여작가 대부분이 미국에서 처음으로 전시를 갖는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작가 하룬 군-살리 (Haroon Gunn-Salie, 1989~)는 머리가 없는(혹은 잘린) 남성 17명이 쭈그리고 앉아있는 조각을 광산에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는 소리를 배경으로 설치한 작품 <센제니나(Senzenina, 남아공의 반인종격리정책 노래)>(2018)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12년 17명씩 두 곳에서 파업을 하던 34명의 광부가 경찰에게 총살당한 마리카나 참살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미술, 정치와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다
근 미국의 주요 전시에 수직, 도자기, 태피스트리 등 노동집약적 핸드메이드 작업이 대거 등장하고 있는데 이번 트리엔날레 역시 예외는 아니다. 러시아 작가 제냐 마치네바(Zhenya Machneva, 1988~)는 하나 둘 사라지는 소련의 공장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흰색 회색이 주조를 이루는 모노톤의 수직 작품(<CHP–14>(2016)) 등 태피스트리 시리즈로 소련의 몰락을 조용히 증언한다. 필리핀의 시안 데이릿(Cian Daylit, 1989~) 역시 태피스트리로 필리핀의 식민지 역사를 되새긴다. 이들은 의도적으로 수공예적 작업과정을 택함으로써 신자본주의 경제체제와 더불어 미술작품까지 대량생산, 테크놀로지를 이용하는 현대미술의 상황에 저항한다.
다니엘라 오티즈 (Daniela Ortiz, 1985~)는 페루에서 태어나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작업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큐레이터들은 오티즈에게 페루로 돌아가 출품작을 만들도록 요청했다. 오티즈는 뉴욕에 있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동상 모형에서 머리를 없앤 <콜럼버스>(2018) 등 스페인 식민정치에 망가진 페루의 과거와 현재를 50cm 높이의 실내장식용 작은 도자기 시리즈로 고발하고 있다.
흑인, 아프리카인들의 삶을 거침없는 붓질과 화려한 색조로 그려낸 작가들의 페인팅도 아름답다. 아이티 출신으로 마이애미에 거주하는 톰 엘-사이아(Tomm El-Saieh, 1984~)의 환상적인 추상, 트랜스젠더로 의료 조치를 거부당해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치료를 받지 못하면서 눈이 먼 멕시코 작가 마누엘 솔라노(Manuel Solano, 1987~)가 기억으로 그린 인물화, 미국 흑인여성들이 느끼는 고립감을 표현한 하와이 출신의 제니바 엘리스(Jenniva Ellis, 1987~)의 오일 페인팅, 축출된 독재자 무가베의 얼굴을 그린 짐바브웨의 그레샴 타피와 냔데(Gresham Tapiwa Nyande, 1988~), 케냐의 체무 녹(Chemu Ng’ok, 1989~) 등의 작품들이다.
비디오작업으로는 중국에서 태어나 네덜란드에서 작업하는 쉔신(Shen Xin, 1990~)의 한국어로 상영되는 비디오 <나이팅게일의 도발(Provocation of Nightingale)>(2017~2018)이 1층 로비 갤러리에 설치되었다. 이밖에 홍콩의 왕핑(Wong Ping, 1984~), 중국의 쑹타(Song Ta, 1988~) 등 중국작가 세 명의 비디오가 선정돼 눈길을 끈다.
미국에서 유일하게 전 세계 젊은 작가들의 작업을 진단하는 정기전인 뉴뮤지엄의 올 트리엔날레는 전통적 방법으로 작업하는 작가들을 선호함으로써 아날로그적 접근방식을 택했다. 디지털 시대를 주제로 한 지난 2015년 트리엔날레와 크게 대비되는 것이다.
뉴뮤지엄의 외진 계단 한쪽에는 알제리아 작가, 리디아 오라만(Lydia Ourahmane, 1992~)의 작업 <유한성(Finitude)>(2018)이 설치되어 있다. 설치된 소리의 울림으로 벽에 칠해진 석회가 서서히 떨어져 바닥에 가루가 쌓이는 작품이다.
작품을 통한 작가들의 저항과 프로파간다가 조용히 그리고 서서히 잘못된 정치와 사회구조를 변화하는 힘이 되기를 기도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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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숙 |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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