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희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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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생. 홍익대 예술학과 졸업, 동 대학원 예술학 석사, 미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전시감독(2013),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교육사업본부장(2016~2020), 제주비엔날레 예술감독(2022)을 역임했고, 최근까지 제주문화예술재단 가파도 AiR 총감독, 홍익대 영상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등으로 활동했다. 한국조형디자인학회 우수논문상(2008), 홍익대 대학원 논문 공모전 최우수상(1997) 등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 『한국미술과 여성』(공저, 카리출판사, 2015), 『Virtual Reality_가상의 현실, 현실의 가상』(편저, 호응책책, 2021) 등이 있다. 《해킹푸드》, 국제전자예술심포지엄 《영원한 빛》(2019,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CT 페스티벌 《감각과 지식사이》(2018,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액체 달(Liquid Moon)》(2010, 뒤셀도르프 플랑디갤러리)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현재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직을 맡고 있다

박남희 백남준아트센터 신임 관장은 지난 11월 23일 ‘21세기 유산 공동체 시대, 초연결 공유의 플랫폼’을 기관의 비전으로 수립, 발표하였다. 그에 따른 세 가지 전략 목표로 ‘포스트백남준을 위한 예술과 기술의 실험, 발굴, 연구’, ‘백남준 예술의 재가치화, 유산 공통체 확장’, ‘공공성과 차별 없는 미래적 연대’를 꼽으며, 세계평화의 가치가 요구되는 현시점에 인간과 기술의 미래를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며 다양한 예술작품을 제시한 백남준처럼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백남준아트센터를 기대해달라는 포부를 밝혔다. 박 신임 관장을 만나 백남준아트센터의 방향성과 그 전략, 그리고 기획자로서의 활동을 들어 보았다.

취임 후 2개월가량 지났다. 그간의 소회를 말해 달라.
백남준아트센터는 백남준 예술정신을 받아 안은 곳으로, 개관 이래 15년 동안 축적된 노하우와 인적 자원, 그리고 연구, 전시를 통해 쌓아온 네트워크 등 자산이 많아 그것들을 기반으로 글로벌한 예술기관으로서 활발한 국제활동을 펼쳐나가고자 한다. 큐레이터, 테크니션, 아키비스트 등 모두가 한뜻으로 백남준 예술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는 기관에 와서 이분들을 존경하면서 그 역할에 일조하고자 한다. 이 기관에서 백남준 예술의 확장자, 발신자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어 뜻깊고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겠다.

개방형 공모를 통해 관장으로 선정되었다.
백남준아트센터에 지원한 배경이 궁금하다. 동시대 미술의 기본적인 동력 중 하나가 미디어라고 생각하는데, 미디어로 미래의 예술을 예견한 것이 백남준의 생각이었기에, 백남준의 근원으로 돌아가 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미디어아트와 동시대 미술이 별개의 세상이 아니라 하나로 융합되는 세상 안에서 그 비전을 백남준 예술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00년 초반 일주 아트하우스의 매체 연구 학술모임에서 아트 앤 테크 관련 해외 학술지와 잡지들을 통해 초기 연구를 시작했고, 2000년대 들어와서 매체의 연구가 로테크부터 하이테크까지 확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각 매체 연구를 이어갔다. 2016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교육사업본부장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전시 테크니션, 융합예술 기획자, 디지털 아키비스트 등의 전문 인력 양성에 집중하면서 미디어가 예술에서 직접적인 도구이자 동시에 많은 다른 사회와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2018~19년 ‘ACT 페스티벌’이라는 미디어 페스티벌을 총괄하면서 미디어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고, 이어 2019년 세계의 도시를 노마드적으로 이동하는 ‘국제전자예술심포지엄’을 카이스트, 광주시, ACC가 컨소시엄으로 유치하여 예술감독을 맡으며 미디어의 국제적인 양식을 체득했다. 이후 홍익대 MR 미디어랩의 제안으로 프로젝트를 하며 영상커뮤니케이션 대학원에서 VR-AR 콘텐츠 전공 초빙 교수를 맡게 되었다. 이러한 활동이 미디어 히스토리가 이어지는 과정이었고, 이 과정에서 그 본령이 백남준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관장 공모에 지원했다. 그러니까 미디어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2000년부터 2023년까지 한 20년간 스펙트럼을 넓혀가면서 미디어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미디어를 통해 전 지구의 평화라고 하는 메시지와 백남준의 예술정신을 이어서 나도 뭔가 보탬이 되고 싶다는 취지에서 백남준아트센터에
지원했고 임용이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그동안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지만, 전시감독과 관장의 역할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백남준아트센터라는 기관의 장으로서 역할 중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가?
첫 번째는 공공성인데, 공공성을 기반으로 한 기관장 역할을 위해 백남준아트센터가 가져야 하는 공공의 윤리와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다. 두 번째는 기관장은 기관을 잘 운영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에 운영과 경영을 위한 사고로의 전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전환에서 핵심적인 것은 존중과 배려, 협업 세 가지 가치이다. 특히 한 작가 미술관의 특성상 오랫동안 연구해온 연구자와 기획자에 대한 존중이 중요하다. 더불어 많은 관계 기관과 이해관계자에 대한 배려를 놓치지 않아야 겠다 생각한다. 또한 미술관 직원 29명, 종사자 간의 조화로운 협업 구조에 대해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기관이 하나의 목소리, 목표를 가지고 달려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정착시키는 일, 그에 따른 정책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

21세기 유산 공동체 시대, 초연결 공유의 플랫폼

‘21세기 유산 공동체 시대, 초연결 공유의 플랫폼’이라는 기관의 비전을 도출했다. ‘유산 공동체’의 의미와 백남준아트센터가 지향하는 공유 플랫폼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유산 공동체’라고 하는 키워드는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공유 개념의 예술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술가의 결과물로서의 예술은 천재적인 개인의 산물이 아니라 사회적인 생산이고, 사회를 관통하는 시대 정신이라는 공유적 가치가 있다. 예술은 공유적 가치와 시대 정신을 담은 것으로, 동시대의 염원과 좌절, 희망을 관통해서 미래에 대한 무언가를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남겨진 예술은 유산 공동체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공유의 가치를 확산시켰으면 한다. 백남준의 작품이 900여 점 있는데 센터에 279점이 있고, 600여 점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다. 이 작품들을 공유적인 가치 안에서 보면,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나누고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유산 공동체이니까 스미소니언에 있는 유산이든, 아니면 스테델릭미술관에 있는 작품이건 우리 공공의 자산이자 유산이라는 의미에서 공동으로 연대해서 연구하고 가치를 증폭하여 상호 간의 시너지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유산 공동체 시대’라는 아젠다가 중요했다. 말씀드렸듯이 모든 기관을 연결해서 같이 연구하고, 그 연구를 토대로 전시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다음 단계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가치 체계를 같이하는 기관들과 컬렉션이 공유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유형이든 무형이든 확산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닐까? 그래서 ‘초연결’이 정신적인 연결이기도 하고, 실제로는 시간과 공간의 연결이기도 하고, 미디어 또는 미디어 작가에 대해 서로서로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초연결성’이라고 하는 키워드를 냈다. 흩어져 있는 유산을 연결해서 백남준 예술의 재가치화, 백남준 예술정신의 확산을 실현하는 하나의 구조,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백남준 〈굿모닝 미스터 오웰〉(스틸) 1984 제공:백남준아트센터

 첫 번째 전략 목표인 ‘포스트백남준을 위한 예술과 기술의 실험, 발굴, 연구’는 기존의 백남준아트센터의 역할과 방법상 어떤 차별성을 가지고 있는가?
세 가지 핵심 키워드로 ‘예술-기술’, ‘유산 공동체’, ‘재가치화’를 얘기했는데, 여기에서 핵심은 ‘포스트백남준’이다. 예술-기술 영역의 연구자와 예술가 발굴과 그들을 보여줄 수 있는 장을 만들려고 한다. 기존에도 이런 역할을 해왔지만, 지속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도록 프로그램화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신진작가의 발굴과 지속 지원이라는 한 축이 있고, 연구자에게도 힘을 실으려고 한다. ‘백남준 예술학 (가칭)’이 학문으로 정립된 국제학회가 필요하다 판단하여 ‘백남준 예술학 국제학회’를 만드는 것이 포스트백남준 연구의 핵심 사안이 될 것이다. 1년에 한 번 학회에서 만나 백남준 예술의 재가치화를 논의하고, 예술과 기술에 대한 실험을 이어 나가는 형식을 생각한다. 국제적인 관계망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라 2024년에는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가동해 국제학회로서 위치를 가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두 번째는 백남준과 동시대 예술가들을 결합하는 방식을 신진작가 발굴 모델로 한 꼭지 마련하여 작가 발굴과 활동의 무대를 제공하려 한다.

국내외 미디어아트 작가와 미디어아트센터, 미술관 등과 협업하여 ‘유산 공동체’ 시대, 공공재로서의 백남준 예술의 재가치화 추진을 선언하였다. 구체적인 계획과 내용에 대해 말해 달라.
국내외 미디어아트센터, 미술관 등과의 협업은 2024년에 구체화 된다. 지금 계획되고 있는 부분은 네덜란드의 하버 프론트 센터와 미디어 센터들이 협력한 AI 기반의 메타버스형 전시와 아직 논의 중이지만 스미소니언의 기록물을 공동으로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예정이다. 스미소니언이 백남준아트센터와 더불어 가장 많은 유산을 나눠 가진 곳인데, 아직 연구가 미진한 부분이 많아 공동 연구의 기반을 마련하려고 한다. 그리고 부산현대미술관에서 2024년 백남준 특별전을 준비하고 있는데, 2022년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백남준 탄생 90주년 특별전으로 선보인 《아방가르드는 당당하다》가 초안이 되는 전시를 공동기획하여 부산 시민들에게 백남준 예술을 선보이려고 한다. 이런 것들이 유산 공동체 시대를 실현하는 첫 번째 발걸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해킹푸드》 ACC 전시 전경 2019 공간디자인 최두진

김수자 〈호흡〉 장소 특정적 필름 설치 가변 크기 2016 제주비엔날레 전시 전경 2022 제공: 박남희

2024년 전시로 《굿모닝 미스터 오웰 2024》와 《빅브라더 블록체인》 개최 계획을 발표했다. 두 작품 모두 〈굿모닝 미스터 오웰〉40주년을 출발점으로 설정하고 있다. 2014년에 개최한 《굿모닝 미스터 오웰 2014》와 어떤 차별화를 추구하고 있는가?
〈굿모닝 미스터 오웰〉 이 1984년에 제작되어 40주년이 됐으니 전시에서 그 차이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고민 중이다. 2014년과 2024년의 차이, 그리고 1984년과의 차이를 제시하는 키워드를 학예실에서 준비하고 있다. 1984년 당시의 연결은 도시 간의 연결이었다면, 지금의 시대정신에서 요구하는 연결의 의미는 무엇인가? 2024년에는 ‘평화’라고 보는데, 정보를 통해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며 도시 간을 연결한다는 것이 초기 백남준 정신이었다면, 지금 그 가치가 소통되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전쟁과 기아 등 세계에서 벌어지는 다성성(多聲性)이 소통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 지구가 서로의 아픈 곳을 들여다보고 미약한 지점들을 나누며 평화를 이끌어내는 소통의 긍정적인 메시지를 드러내려 한다. 백 선생이 실험하신 원격, 현전, 텔레프젠스 (Telepresence)가 잘 드러나는 예술 언어를 발굴하는 중이다. 그 용어를 바탕으로 다성성을 통한 전지구적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인류학적 관심에서 행성적 사고로

다양한 전시와 프로젝트의 예술감독으로 활동했다. 기획자로서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주제는 어떤 것이 있는가?
초기에는 인류학적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다. 인류 전체를 바라보는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가 인간 중심적 사고가 가진 한계를 깨닫고 전환을 맞이하게 된 건 2018년 무렵이다. 2018년 이전은 인류학적 관심사가 주제화되는 방식을 인류학적으로 연결해 보는 시기였고, 2018년 이후는 인류라는 말로 저질러진 자행에 대한 반성, 인류세 시대에 대한 분석적 태도들이 생겼다. 그러다 인간-비인간, 물질-비물질의 경계 없음의 사고관에 이르렀다. 어떻게 보면 행성적 사고관으로 물질의 일부로서의 인간,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에 대해 다시 보는 관점을 가지고 전시나 글에 지속적으로 투영하고 있다.

본인의 프로젝트 중 대표적인 프로젝트로 꼽는 것은 무엇인가? 그 이유는?
《해킹푸드》(2019, 국립아시아문화전당)는 음식이 인간의 생존방식을 결정하지만, 동시에 얼마나 관습화된 영역인지, 그리고 기술 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으로, 결국 우리를 구별 짓는 가장 중요한 프레임이 음식이라는 이야기를 기술을 통해 보여준 흥미로운 프로젝트 중 하나이다.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감각과 가장 첨단의 기술이 결합했을 때 상황들이 어떻게 바뀌는가가 전시의 핵심적인 이야기이다. 디자인, 미디어 등 여러 영역이 교류하면서 만들어진 융합형 전시였다. 그리고 행성적 사고와 기후위기 시대의 인간에 대한 반성적, 실천적 대안을 2022년 제주비엔날레를 통해 풀어냈다. 핵심적인 키워드는 ‘공생’으로, 지구는 하나의 운명 공동체라는 것을 깨닫고, 로컬의 독자성, 자율성 그리고 야생성을 확보하면서 연결되어야 하며, 아름다운 푸른 별 지구가 다시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반성적인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선배 기획자로서 후배 기획자들에게 주는 조언 한마디 부탁한다.
그동안 연구의 시기와 기획의 시기를 교차로 가져왔다. 연구 기간을 오래 가지고 기획을 하는 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주제 의식을 잘 전달하게 하는 것 같다. 리서치 기반의 기획을 할 때 그 내용이 내 안에서 오래 농축되어야 더 밀도있고 의미있는 전시들이 만들어지더라는 나의 경험을 들려주고 싶다. 기획의 영역은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전시의 표출이 아니라 담론을 형성하고 인식을 바꾸고 사회에 메시지를 남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구와 이를 담론화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심지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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