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찬효: 서양의 눈

2020. 3. 13 – 5. 13

한미사진미술관 삼청

photomuseum.or.kr


배찬효, < 마녀사냥 > ⓒ 배찬효

배찬효는 서양 사회에서 동양 남자로서 느낀 ‘소외’를 사진으로 시각화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소외감으로 인한 불편함을 드러냈으며 자신이 속한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문화 편견을 다양한 사진 작업으로 탐구해왔다. 그렇게 < 자화상 >으로 시작해 < 동화책 >, < 형벌 >, < 마녀사냥 > 프로젝트를 10여 년에 걸쳐 < 의상 속 존재 > 연작으로 엮었다. 작가는 작업에 직접 서양 여성으로 등장하면서 자신을 타자화 한 문화의 중심으로 들어가 역으로 그들을 타자화했다. 그간 작업을 진행하면서 그는 ‘타자’가 겪는 집단적 폭력이 정당화되는 원인과 과정의 중심에 인간의 절대적 믿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마주했다. 특히, 마녀사냥은 정의와 진리로 규정 지어진 절대적 믿음이라는 탈을 쓴 권력집단이 행한 소수집단에 대한 탄압이었다. 이를 주제로 한 < 마녀사냥 > 작업은 종교가 사회 질서였던 시기의 사회 금기였던 ‘마녀’와 과학적 사고가 사회 질서의 중심에 있는 현시대의 ‘타자’를 동일선상에 놓고 표현한 작업이다. 

배찬효, < 마녀사냥 > ⓒ 배찬효

다름으로 구분 지어진다는 것은 대상 간의 비교와 기준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데, 결국 그 기준을 세운 이에게 우월성을 부여하는 우월 관계가 성립된다. 서양은 마녀사냥과 같은 과거의 과오를 이제는 반성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절대적 믿음을 이용해 민족, 인종, 문화의 우월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로 소수집단에 대한 억압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 마녀사냥 > 작업과 함께 그 연장선상의 작업으로 이번에 선보이는 신작 < 서양의 눈 >을 통해 배찬효는 우월적 관계의 폭력성을 드러내며, 구분되어지는 것에 대한 상대적 관점을 표현하고자 한다. 비주류에게 행하는 주류의 폭력성을 그리고 그것을 정당화시키는 절대적 믿음에 주목했다. 종교와 신화 그리고 미신의 정의와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작업의 대상으로 삼으며 절대성에 대한 항변을 시각적 결과물로 구체화했다. 

배찬효, < 사자의 서 > ⓒ 배찬효

제단은 종교 내에서 신을 숭배하는 종교적 행위로 인간이 만들어낸 대상에 절대적 믿음과 종교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업 각각을 하나의 제단으로 완성해 자신만의 제단을 통해 부여되는 절대성을 경험해보고자 했다. 다양한 종교적 제단들을 형식적으로 충돌시키면서 절대성을 경험하는 동시에 그 절대성에 대한 ‘비틀어 보기’인 것. 결국 작업은 현대사회에서 다양한 폭력의 근원인 절대성에 대한 믿음을 도구화한 ‘폭력성’을 드러내고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것들의 편에서 항변한다.

< 서양의 눈 > 전시 전경 | 사진: 한미사진미술관

그동안 작업은 작가 자신, 그러니까 동양 남자라는 한 개인과 서양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이번 작업은  인간 자체, 사회, 문화로 담론의 영역이 확장한다. 또한, 이번 작업은 < 의상 속 존재 >의 연장선상이기도 하지만 형식 면에서 아주 새로운 시도이기도 하다. < 서양화에 뛰어들기 > 작업에서도 진행했듯, 신작에서도 사진 이미지가 종이가 아닌 동물 가죽에 프린트가 되는데 이는 절대적 가치인 동물 가죽을 훼손하는 결과물이다. 동물의 죽음에 관대한 인본주의적 사고와 그 절대성에 대한 불편함을 표현한다. 또한 돌, 나무와 사진 이미지를 교합해 전시함으로 인간과 함께 존재하는 자연에 대한 ‘의미 부여하기’를 시도하며 표현법을 확장했다. 사진이라는 매체의 물질적 한계는 작가에게 도전 대상이었는데, 끊임없는 노력 끝에 입체 자연물과의 조화를 통해 사진이라는 2차원적 고정적 형태의 관점을 확장한 것이다. 

 배찬효, < 오시리스 > ⓒ 배찬효

배찬효의 작업은 서양과 동양의 구분에서 출발했지만 우리도 마찬가지로 나와 다른 인종, 나와 다른 혈통의 사람들을 쉽게 ‘타인’으로 규정하고 그들과 나 사이에 선을 긋는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한다. 그의 작업은 일종의 부당함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의 관계에서 쉽게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함에 ‘질문하기’를 시도하고 그것에 대한 작가의 감정과 표현에 집중한 결과물이다.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어떤 표현을 하던 배찬효만의 짜임새 있는 구성과 뛰어난 장식성의 결과물이 관람자로 하여금 유기적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 의상 속 존재 > 연작을 마무리하고 확장된 영역으로 넘어서는 이번 신작을 통해, 끊임없는 질문하기와 사진적 매체의 한계에 대한 적극적 도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자료제공 : 한미사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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