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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 스미스 《자유낙하》

키키 스미스 〈탄생〉 (사진 앞) 청동 99.1×256.5×61cm 2002
키키 스미스 〈지배〉(사진 오른쪽) 6개의 패널, 스테인드글라스, 마우스 블로운 유리에 검은색 페인트, 에나멜 채색, 각 252.7×254.7cm 전체 252.7×515.6cm 2012
작가 및 페이스갤러리 제공

키키 스미스 〈무제 lll(구슬과 함께 있는 뒤집힌 몸)〉 백색 청동, 유리구슬, 철사 가변설치 인물 94×37.5×48.3cm 구슬: 375.9×37.5×0.6cm 1993

산책하는 인간
염하연 기자

키키 스미스(KIki Smith, 1954~)의 첫 아시아 미술관 개인전 《자유낙하(Free Fall)》는 평생 다매체적 실험을 지속해 온 작가가 오랜 시간 빚어낸 결과물들을 밀도가 낮은 설치로 보여주는 전시다. 70세를 목전에 두고 있는 키키 스미스의 작업의 궤적은 빽빽한 숲을 지나 비로소 자유로이 소요할 수 있는 산책의 들판에 다다르는 과정과도 같았다.
이번 전시는 신체 구상조각으로 1980년대부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 온 키키 스미스의 조각, 판화, 사진, 태피스트리, 아티스트북 등 140여 점을 선보이는 방대한 규모의 회고전이다. 전시 제목인 ‘자유낙하’는 키키 스미스가 1994년에 제작한 판화이자 아티스트북 형식의 작품 제목이기도 한데, 매체와 서사의 한계를 두지 않고 자유롭게 오간 스미스의 작업 태도를 함축하는 적절한 제목이다.
전시는 연대순 나열을 바탕으로 키키 스미스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몇몇 구조적 특성에 기초해 ‘이야기의 조건: 너머의 내러티브’, ‘배회하는 자아’, ‘자유낙하: 생동하는 에너지’ 세 가지 카테고리로 구성된다. ‘이야기의 조건: 너머의 내러티브’는 설화, 동화, 종교, 민화 등 다양한 뿌리로부터 창조된 스미스의 내러티브를, ‘배회하는 자아’는 스미스의 작품세계에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던 판화와 사진 매체의 반복성을, ‘자유낙하: 생동하는 에너지’는 신체에 주목했던 1980~90년대 작품에서부터 최근작까지 작가의 궤적을 관통하는 에너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스미스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젠더 이슈가 신체예술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1980년대, 그로테스크한 인체와 장기를 묘사한 작품과 1990년대에 제작한 인물의 전신상 등을 통해서다. 여성의 신체에 새겨진 고정관념을 아득히 넘어서 충격과 불쾌감을 안겨주었던 이 작품들은 이상화된 인체의 극단에서 배설, 생리, 출산처럼 터부시되는 인체의 순간들을 영원한 조각으로 제시했다. 이 작업들로 스미스는 전복적인 페미니스트처럼 비쳤고, 실제로 그렇게 여겨지기도 했다. 1990년대 이후 판화와 사진 매체를 접하면서 스미스는 자신의 모습을 작품에 등장시켰고, 두 매체의 반복성에 주목하며 주변의 자연과 생명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2000년대 이후 스미스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기보다는 신비롭고 서정적인 서사를 생성하는 자신 주변의 미시적 세계로 눈길을 돌리게 된다. 종이, 테라코타, 유리, 현대미술이 외면해 왔던 공예 등 취약성을 가진 재료들을 사용한 작업들도 작품의 주제와 맥을 같이하며, 거대한 저항적인 명제보다는 주변의 사소한 것들에서 생의 즐거움과 자유로운 창조성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역사가 그러하듯 삶의 단면과 그것에서 파생된 작품들은 결코 단절되지 않고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내면을 풍요롭게 하고 외연을 확장하게 되는데, 스미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이 과정을 스미스는 ‘정원 거닐기’, ‘자유낙하’, ‘어슬렁거리기’, ‘배회하기’라는 자유로운 움직임에 비유했다. 어떤 사조에도, 매체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배회하며 매체의 실험을 지속하는 삶의 태도는 마치 모든 것을 편견 없이 흡수하고, 자신의 내면에서 그것을 다시 창작의 도구로 삼는 산책하는 인간의 태도와도 닮아 있다.

왼쪽 〈꿈〉 에치젠 고조 기즈키 종이에 에칭 59.6×125.1cm 1992
오른쪽 키키 스미스 〈라스 아니마스〉 종이에 포토그라비어 152.7×125.1cm 1997 작가 및 유니버설 리미티드 아트 에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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