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동시대이슈전
<Fantasy>

2021.04.09 – 2021.06.27
성남큐브미술관 기획전시실


2020년대는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지만, 어쩐지 연도를 말하거나 표기할 때면, 왠지 모를 낯선 감각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건 유년시절 꿈꾸었던 미래 사회의 시간대가 현재와 동일 시간대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년시절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통해 첨단 기술이 가득한 미래 사회의 모습을 상상해 왔다. 1982년 개봉한 영화 ‘블레이드 러너’나 1989년 KBS TV에서 방영한 애니메이션 ‘2020원더키디’ 등에서 보여주었던 2020년대의 모습과 현재의 2020년대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 보인다. 자동차는 여전히 하늘 위가 아닌 4개의 바퀴로 도로 위를 달리고 있으며, 집안에서 음식을 만들고 청소를 해주는 인공지능이 탑재된 인간형 로봇 또한 만나볼 수 없다. 무엇보다 여전히 정복되지 않은 암, 감기, 전염병 등과 같은 각종 질병은 인류에게 숙제로 남아 있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COVID-19) 바이러스는 전 세계로 확산되며,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국내 상황도 심각한 수준으로 사상 유례없는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국·공립 미술관을 비롯한 시설은 오랜 기간 문을 닫아야 했고, 비엔날레, 아트페어 등의 국제 행사는 연이어 취소되었다.

성남큐브미술관은 2021년 동시대이슈전 첫 전시로 비대면의 시대에 대한 이야기로 문을 연다. 올해 설날에는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떡국을 먹지 못하는 상황까지 생겨났다. 지극히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도 통제되고 제한된 상황이 발생하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회사로 출근하지 않고 재택근무를 하는 직장인, 온라인으로 집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 생필품을 마트가 아닌 집에서 구매하는 주부의 모습들은 이제는 우리 주변 흔한 풍경이 되었다. 낯설고 어색할 것만 같았던 방식들이 이제는 점차 익숙해지며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성남큐브미술관도 장기간 휴관에 들어가야 했다. 사람과 예술이 직접 대면하고 소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온라인 전시플랫폼은 비대면으로 관람객과의 소통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대안이 될 수 있었다. 이미지와 수용자 간의 상호작용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지금,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과 같은 다양한 형식의 전시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예술의 본질, 가치 측면에서 생각해 보았을 때 이러한 가상의 공간에 재현된 디지털, 정보 형태의 예술작품이 수용자에게 예술이 주는 심미적 경험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는 실존(實存)하는 세상이지만, 마치 가상(假想)과 공상(空想)이 어우러진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이번 전시 동시대이슈전<판타지>는 가상과 현실이 혼재된 세상을 살아내고 있는 동시대 우리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김익현, 김진우, 김희천, 윤석원, 이재원, 조이경, 허수빈 등 7명의 작가들의 시선을 통해 최근 비대면이 일상화되고 있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가상(假想)에 대해 조명해보고자 한다. 참여작가 김익현은 ‘이동’이라는 주제로 지난 몇 년간 다녀왔던 여행지와 현재 공항의 모습을 비교 편집하여 과거와 현재, 가상과 현실을 잇는 작품 ‘42,000피트’(2020)를 통해 우리는 매 순간 어딘가로부터 연결되어져 이동이 가능한 세상을 살아가지만, 어느 순간 연결의 제한으로 이동이 멈춘 상황에서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에 대해 정작 자세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자각과 작동 원리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어디론가 이동되고 있는 세상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김진우는 누구나 한 번쯤 떠올려 보았을 생명의 근원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파고든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문명은 어떻게 발전했을까? 그렇게 시작된 ‘진화의 비밀 : #J-1’(2017)는 작가가 구현한 세계관을 통해 만들어낸 정체불명의 물체이다. 이는 지구가 현재까지 존재할 수 있게 해준 다양한 에너지의 공급원이였으며,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진화에 관여한 근원과 같은 존재로 인식된다. 작가의 기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예술적 상상력이 결합 된 독특한 가상의 세계를 선보인다. 김희천은 기술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나 어떠한 변화를 생성해 내는지 집중한다. 작품 ‘랠리’(2015)는 가상과 실재가 공존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며 느끼는 감각을 영상매체를 통해 보여준다. 기술의 발전은 실재와 가상, 이미지와 본질의 관계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실재가 가상화되기도 하고 가상이 실재화가 되기도 한다. 작품 속 반사된 이미지로 점철된 시공간 너머로 우리는 서로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을까?에 대한 작가의 질문은 비대면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윤석원의 회화는 이 시대를 투영하고 사유하는 기록물과도 같다. 작품 ‘MAY’(2020)는 현재 우리의 모습을 여과 없이 펼쳐 보인다. 어느 평범한 결혼식의 모습이지만 신랑, 신부, 하객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팬데믹으로 외출 시 마스크 착용이 필수가 된 세상에서 마스크는 더 이상 주목받는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 마스크라는 현재 우리 사회를 상기시키는 상징물을 등장시켜 현실의 고단함과 안타까운 감정을 자아낸다. 이재원은 사건, 경험, 가상이라는 주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며 ‘가상을 관통하는 사건과 감각’에 주목한다. ‘구체풍경’(2019)은 광화문이란 작가 개인사적 경험이 담겨있는 장소를 배경으로 수용자는 구체 안에 렌즈를 통해 작가가 무의식적으로 사유화한 공간에 들어간다. 작품 안에서 작가가 바라본 풍경 속 시선과 수용자의 시선이 쌍방향성을 가지며 수용자에 의해 작품이 완성되며 매번 변화하게 된다. 이를 통해 ‘바라본다’라는 행위가 가지는 절대적 기준이 항상 절대적이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조이경은 영화의 한 장면과 빛을 통해 잠재되어 있던 기억들을 재소환 시킨다. ‘저 샤워기는 그 샤워기가 아니였음에도 불구하고,’(2015)는 1960년대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도 히치콕 감독 영화 <사이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와 똑같이 재현된 무대장치가 아님에도 우리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기억을 소환하고 시각화하게 만든다. 재현과 소환이라는 미술적 장치를 통해 진실과 거짓이 혼재된 현대사회라는 커다란 무대에서 온전한 자기 자신의 삶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허수빈은 빛이라는 매체를 통해 동시대적 상황과 감성을 담아낸다. 기존 예술이 이미지 밖에서 이미지를 수용했다면, 허수빈의 작업은 이미지 공간 안에서 이미지를 수용하는 방식을 요구한다. 작품 ‘그 날 이후’(2021)에 등장하는 각각의 창문에는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게 된다. 평범한 일상의 한 귀퉁이를 펼쳐보이듯 작가의 채집된 감정의 기억들은 상호작용성을 가지며, 수용자에게 심미적 경험을 제공한다.

팬데믹(pandemic)으로 우리는 조금 빠르게 비대면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미술관의 장기간 휴관, 비대면 운영은 기존 미술관이 가지고 있던 기능과 역할, 가치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기술과 접목된 새로운 방식의 전시형식은 미술관의 확장적 측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얻기도 했다. 이번 팬데믹으로 기존의 확립된 질서와 제도 등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으며, 우리는 과거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비대면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과거 해방과 6.25전쟁, 군사 쿠데타와 민주화 항쟁 등의 커다란 사회적 격변기들 속에서도 우리의 아버지들이 이겨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지금의 사회적 과도기를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이번 전시가 코로나19로 지친 당신에게 새로운 세상에 대해 대면하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글: 하연지
자료 제공: 성남문화재단

© (주)월간미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