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JINJU
불가능한 계획
ARTIST REVIEW
이진주는 1980년생으로 홍익대에서 동양화 학사 학위와 석사 학위를 받았고 성균관대 유학동양한국철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홍익대 동양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9년 러시아 트라이엄프갤러리, 2018년 인도네시아 에드윈스 갤러리, 2018년 강원국제비엔날레, 2017년 아라리오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진행했으며, 2021년 벨기에 한국문화원,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러시아 모스크바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다. 이진주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아라리오뮤지엄, 송은문화재단, OCI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사진 제공:작가
이진주는 여성, 신체, 개인적 경험의 풍경을 작가만의 초현실적 분위기로 치환한다. 2023년 화이트 큐브 서울 개관전에 참여한 유일한 한국인으로 네덜란드 마레스(Marres)미술관과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 개인전, 송은 《파노라마》를 동시에 진행할 만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동양화 채색 기법을 응용한 섬세한 표현으로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물에 집중하게 하는 작가는 빛을 흡수하는 검은색 안료를 사용해 깊이감과 몰입감을 선사한다. 회화의 ‘보는 방식’에 대한 차별화된 관점과 경험을 제안하는 작가는 광목천을 이용한 긴 구조의 설치물을 통해 관객 스스로가 작품 주변을 선회하게 한다.
불가능한 계획
조숙현 | 미술비평, 아트북프레스 대표
불가능한 것을 실현하고자 하는 시도가 언제나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현대사회의 ‘가성비 게임’을 역주행하기 때문이다. 반칙은 허용되지만 이탈은 그저 로그아웃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그 ‘실패’의 순간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의 깨달음과 아름다움은 성공이 아닌 실패의 순간에 깃들어 있을 때가 더 많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진주의 작업을 처음 접한 것은 2017년 가을, 강원국제비엔날레(2018)를 준비하면서 국내 작가를 섭외할 때였다. 삼청동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작가의 개인전을 접했고,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가와 작품을 알게 되었다. 이후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에서 추진한 영상 프로그램 Cooking Korean Art’에서 ‘현대미술 작가와 한식’이라는 주제로 같이 일하게 되었고, 2021년 아트북프레스에서 이진주 아트북을 출간하였으니, 짧지 않은 기간 작가와 작품을 접하게 된 셈이다.
최근 이진주 작가가 세계적인 갤러리 화이트큐브에 전시하면서 새삼 더 큰 주목과 관심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현대미술 큐레이터와 비평가로 활동하면서 약간의 허탈감을 느끼는 순간이 있는데, 바로 이럴 때이다. 동양화는 미술 중에서도 ‘마이너 장르이다보니 상대적으로 세간이나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 때문에 큐레이터로서 필자는 본의 아니게 다른 이들보다 좀 더 일찍 그리고 더 많이 ‘좋은’ 작가들을 접하게 되는데, 그 작가들이 대중적으로 그리고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을 때 ‘얼리 팬(early fan)으로서 일종의 소외감과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치사함이 고개를 내미는 것이다. 비물질성이 물질성을 넘어서지 못하는 현실의 벽이 비평가의 치사함을 건드린다. 그러므로 비평가의 항변은 세간이 아직 알지 못하는 작가의 뒷모습, 혹은 오해와 에피소드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것으로 채워진다. 이 글 역시 이진주의 작품 표면을 걷어내고 그 층위에 섞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으로 전개하고자 한다.
〈사각〉 린넨에 채색 122×488cm, 122×488cm, 122×244cm, 122×220cm 2020 아라리오뮤지엄 소장
《사각》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전시 전경 2020~2021
〈사각〉(부분) 린넨에 채색 122×488cm, 122×488cm, 122×244cm, 122×220cm 2020
모순의 도돌이표: 현실과 초현실/망각과 기억
이진주의 작업을 처음 접하는 이들의 반응은 대략 몇가지로 예측할수있다. 첫째 아름답다” 둘째 초현실적이다.” 셋째 기이하다.” 이런 반응을 종합해보면, 작가가 구축하고 성취하는 작업세계의 아름다움과 스타일을 파악할 수 있다. 작가의 근작 <사각>(2020)을 보면, 세 면의 캔버스를 채우는 큰 회화의 스케일과 이진주의 작업을 처음 접하는 이들의 반응은 대략 몇가지로 예측할수있다. 첫째 아름답다” 둘째 초현실적이다.” 셋째 기이하다.” 이런 반응을 종합해보면, 작가가 구축하고 성취하는 작업세계의 아름다움과 스타일을 파악할 수 있다. 작가의 근작 <사각>(2020)을 보면, 세 면의 캔버스를 채우는 큰 회화의 스케일과 조형성, 그리고 한눈에 다가오는 ‘근사한 스타일 등이 압도적으로 관객을 매혹한다. 이 점은 광목천과 동양화 안료, 끝없이 깊은 검은색 등 다른 회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대체 불가능한 이진주만의 회화 과정과 스타일이 성취한 시각예술의 쾌거이다 초현실성과 기이함은 작업 속으로 좀 더 들어가면 보이는 디테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풍경과 사물과 인물이 혼재한 캔버스에는 초현실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황폐한 교외 풍경 앙상한 겨울나무와 로드킬 당한 짐승 등) 검은 팬티스타킹을 입은 여인과 아이, 화분, 운동화, 그리고 손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렇게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이 한 폭에 나열될 때 각자의 이야기를 의뭉스럽게 품고 있는 인상을 전반적으로 풍기면서 이진주의 회화는 미스터리한 매력을 뿜어낸다. 가령 눈 내리는 겨울 시골 밭에서 검은 팬티스타킹을 입고 있는 여인이 아이를 끌어안고 있고 밖에는 로드킬 당한 노루가 누워 있으며 옆에는 깨진 화분과 끈이 풀린 운동화 한짝이 나뒹굴고 있는 그림을 바라보는 관람객의 마음은 난감하지 않을까? 더욱이 그 그림이 도저히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면, 아마도 그 미스터리를 풀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 미스터리를 추리하고자 할 때 가장 소용없지만 가장 흔하게 동원하는 것은 아마도, 오브제 하나하나에 실린 의미를 추론하고 알레고리를 적용하고자 하는 방식일 것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허무하게도, 완전히 잘못되었다. 이진주의 그림에서 그녀가 실제로 겪지 않은 것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황폐한 겨울의 풍경은 그녀의 작업실이 있는 파주의 실제 풍경을 그린 것이고 등장하는 인물도 그녀와 주변 인물들, 그리고 굉장한 의미를 내포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사물 하나하나는 모두 그녀의 주변에 있는 것들을 그린 것이다. 다만 이런 사물과 풍경의 조합은 작가의 직관에 의해 재편된다.
다만 이것이 ‘심리풍경화’라고 한다면 조금은 수용 가능한 부분이 있다. 작업 전반에 깔려있는 예민하다 예민한 날카로움과 어두운 면은 작가의 심리가 반영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작업에 흔하게 등장하는 손은 작가의 내면 깊은 곳에 위치한 두려움 – 회화 작가로서 ‘손’을 다치거나 잃어버리게 된다는 망상에서 기인하며, <사각> 등에서 등장하는 탁류나 쓸쓸한 풍경, 혹은 모순적인 순환 등은 작가가 바라보는 현실과 세계 정치의 모순을 내적인 풍경으로 재조합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진주의 작업을 ‘초현실적인 풍경으로 던지는 질문으로 바라보기보다는 ‘현실의 묘사를 통한 작가의 내적 고백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사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초현실인가? 라는 질문의 경계를 명확하게 가르는 것이 언제나 설득가능하지는 않다. 그것은 의식과 무의식이 혼재된 풍경을 그려내는 작가의 작품 앞에서는 더더욱 질문의 힘을 잃을 것이다. 다음은 현실과 초현실이라는 단순한 구분보다 더 깊숙이 그녀의 작품을 분석한 안소연 평론가의 비평을 인용하고자 한다.
“뜯겨 나간 책장처럼, 말의 덩어리는 더이상 읽을 수 없게 조각나버렸다. ‘빈 곳에 갇혀버린 말의 흔적들은 이제 불분명한 형태의 중얼거림으로 존재한다. 모리스 블랑쇼의 기다림 망각」에 등장하는 말처럼, “그녀는 망각하고 있다. 알 수 없는 공간에 갇힌 익명의 몸과 도무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들이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희미하게 떠오르지만, 어쩌면 그것은 다시 블랑쇼의 표현대로 ‘기억보다 더 흡사한 것처럼 보였던 망각이었을지도 모른다.”1
모리스 블랑쇼의 글과 이것을 인용한 안소연의 글에 의하면, 기억은 공유 못한다. 다만 망각 속에서 우리와 공동체는 희미하게 연결될 뿐이다. 망각혹은 기억의 구분이 그녀의 회화에서 유효한 이유는 이진주의 심리 풍경화를 해석하는 방식의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극사실적인 묘사가 기이한 풍경이 되는 현상, 이것은 작가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회화로 감각하기’를 이해하는 데 큰 힌트가 된다.
1 안소연 「기억이 아닌, 망각의 서사」 2020
〈네개의 질문〉 광목에 채색 202.5×437cm 2019
〈한〉 광목에 채색, 이정배 블랙 44×34cm 2023
〈외〉 광목에 채색, 이정배 블랙 44×34cm 2023
회화의 실험: 관점의 돌출과 함몰, 사각과 시야
이진주가 회화로 성취한 독특한 세상은 회화의 2차원적인 평면을 끊임없이 이탈하고자하는 욕망으로 가득차 있다. 그 욕망은 실제로 작은 돌출과 함몰의 결과를 도출하기도 한다. 혹은 보이기와 안보이기, 또는 보여주기와 숨기기의 트럭을 시도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작가의 신체성을 넘어 관람자의 신체성까지 고려된다는 점에서 언급할 만하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숨바꼭질 그것은 기억과 망각을 넘나들고 초현실과 현실의 경계를 무력하게 한다. 이진주는 내가 본 것’, ‘내가 바라보는 세계’를 묘사나 고발, 혹은 퀴즈가 아닌 지극히 감각적인 세계로 전달한다. 지극히 평범하고 사진적이기까지 한 이미지에서 출발한 그것들은 작가가 남다른 시선으로 발견하고 바라보고, 눈여겨본 시각적 ‘감각’을 통해 전달된다. 2차원의 정적이고 정지된 이미지 너머의 시선들이 끊임없이 오고가면서 무언가를 연상시키고, 회화를 재발견하며, 이어 나름의 해석이 진행된다. 즉, ‘회화로 감각’하기가 총체적으로 실현된다. 이런 접근 방식으로는 이미지를 포함하여 물질적인 것보다는 비물질적인 것에 무게를 두는 편이 훨씬 유용하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언급한 이진주의 작품에 대한 오해 혹은
몰이해(기억과 초현실)를 거두어 내는 데 도움이 된다.
이를테면 작가의 작업 중에서 아들을 그린 ‘블랙 페인팅’을 보면(이 그림은 사실 작가의 아들이 아파 누워 있을 때 작가가 관찰하고 그린 그림이다) 아이의 얼굴을 덮고 있는 솜털들이 과도하게 섬세히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작가가 본 세계나 세상이 일반적인 ‘평범한 관찰과 차별점을 이루고 있으며, 관찰 대상의 색채 형태 그리고 일반적인 관념과 느낌 너머의 무언가를 환기하거나 촉발하는 어떤 세계를 향한 작가의 관점과 염원이 담겨 있다. 이런 현실과 전혀 다른 감각과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작가의 바람은 회화로 감각하기를 넘어 ‘회화로 세상을 확장하기’의 챕터로 넘어가며, 이것은 작가가 추구하는 회화의 궁극적인 의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작가가 그려내는 심리적 풍경은 작가가 바라보고 관찰한 것들이 시간을 거쳐 내면에 쌓이면서 표출될 때, 작가가 마주했던 시간들이 과도한 세밀함과뾰족함과 예민함으로 표현되고 구축되는 회화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접근 방식이기 때문이며, 더 본질적으로는 작가가 회화를 대하는 자세를 대변한다.
작가의 작품은 때로 정말 튀어나온다. 그것은 캔버스의 조형성을 통해 획득되는데, 캔버스의 측면을 바라보면 그것은 납작하지 않고 볼록하며, 평평하지 않고 비스듬한 각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미묘한 각도는 작가 혹은 관객들 개개인이 각자 가지고 있는 시각과 관점의 불안정함, 가변성을 대변한다. 그런가하면 <사각> 역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와 게임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더 부각시키고 그 지대 중에서도 감추는 것과 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혹은 무감각의 인식 안에 있지만 중요한 것들을 인지시키는 일종의 고발성이 실려 있는 작업이다. 그녀 작업의 아름다움이 일종의 서늘함을 품고 있는 것은 아마도 이런 이유가 숨어 있어서가 아닐까.
현재 아라리오갤러리 제주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는 작가의 이런 관점과 시각 게임의 새로운 실험 중 하나이다. 아주아주 작은 공간이 있다. 이 공간에서 작가는 꽉찬 작업을 전시하고 의도적으로 한눈에 작품이 들어오지 않도록 배치했을 뿐만아니라 보이지 않는 작업을 설치했다. 사면으로 이루어진 작품의 이면에도 그린 양면 회화를 설치함으로써 관람객이 신성한 전시장의 작품에 손대지 말것)을 어기고 작업의 밑으로 기어들어가 이면을 일부러 보지 않는 이상, 그 작업은 바닥에 위치한 흑경에 비친 그림자로만 인식될 뿐이다. 이 작업과 작품은 관람자의 신체성까지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면에 그려진 어두운 세계는 어느 정도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무언가 잘못되어 있다)을 반영하되, 작가가 성취하고자 하는 회화 실험의 끝으로 조금 더 다가간 작업이다. 그것은 작가의 궁극의 예민함이 표현되고 새로운 세계를 찾으려고 하지만 다시 회화 안으로 회귀한다. 이진주의 계획이 실현 불가능한 이유는 회화의 장르 안에서 망각과 기억, 현실과 초현실을 계속 서성거리기 때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회화의 실험은 계속 나아갈 원동력을 가진다.
〈선명한〉 광목에 채색, 이정배 블랙 88.7×65.5cm 2023
〈연〉 광목에 채색 29×37cm 2016
〈비좁은 구성〉 광목에 채색, 월넛 나무, 블랙 거울 88×330cm, 88×177cm, 88.3×319cm, 88.3×156.2cm(2) 2021~2023
《비좁은 구성》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 전시 전경 2023 제공: 작가, 아라리오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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