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here_ 화가의 자화상

2018. 3. 2 – 5. 20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whiteblock.org 


서용선, 자화상-퓌토 연작, 종이에 아크릴, 65.5x50c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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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에레trahere는 라틴어로 ‘끌다’, ‘이끌어내다’,‘끄집어 내다’라는 뜻을 가진다.

화가의 자화상은 미술사의 오랜 연구 주제 중 하나다. 많은 화가들이 자신의 자화상을 남겼다. 서양미술에서 초기 자화상은 종교화나 역사화 등을 제작하는 전문 화가의 서명 혹은 증인의 역할을 했다. 점차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자의식이 발달하면서 자화상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했으며 자신의 모습을 기록하거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자화상을 그렸다.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화가는 자화상에 자신의 현실을 투영하게 된다. 따라서 자화상은 그것을 그린 화가에 대한 정신분석학적인 해석은 물론이고 당대의 예술가들이 처해 있는 상황과 사회 현상까지 두루 읽어낼 수 있도록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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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욱, 자화상 A, 캔버스에 아크릴, 116.8x91c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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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 초대된 서용선, 유근택, 최진욱은 꾸준히 자화상을 제작하고 화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동시에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관심을 작업을 통해 드러낸다. 최진욱의 <그림의 시작>(1990)에서 시작된 ‘작업실 그림’은 자신의 삶의 현장인 작업실과 작업실 거울에 비친 작업하는 자신의 모습, 즉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서 자신을 주제로 삼는다. 마찬가지로 서용선은 5미터에 달하는 대형작품 <자화상>(2017)에서 커다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사다리에 매달리고 비계를 설치해 작업하는 자신의 모습을 나열, 중첩해서 그려 넣었다. 유근택은 신작 <끝에 서 있는>(2018)을 통해 자신이 언급한 “항상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절벽 끝에 서 있는 것처럼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는 화가에게 있어서 자기 자신을 그린다는 행위는 어쩌면 거의 유일한 현존을 바라보는 일일 것이다.”라며 화가로서 삶의 고통을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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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택, <끝에 서 있는>, 한지에 먹, 호분, 템페라, 148x162cm,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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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작가가 모두 자화상을 그리는 이유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유근택 작가는 “문득 나 자신이 궁금해 질 때나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지에 대해, 또는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해 생각이 나지 않을 때, 화가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면서 또 다른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된다.”라고 말했으며 최진욱은“1992년경부터 나는 다시 긴장감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다시 자화상을 유화로 그리기 시작 했는데…”, “나는 그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자화상을 그렸는데,…”라고 말했다. 또한 서용선은 2016년 한 인터뷰에서“해외에있을 때, 혹은 아직 무엇을 그려야 할지 구체적인 계획이 없을 때 주로 자화상을 그렸다”고 말했다. 이처럼 화가들에게 있어 자화상은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로 생각하고 작품의 실마리를 푸는 계기가 된다.

자신을 재현의 대상으로 삼아 그리는 자화상은 자신의 초상을 그리는 것을 넘어 자신을 발견하고 내면의 모습을 끌어내는 것이다. 자화상은 화가 개인의 얼굴이지만, 동시에 동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얼굴을 대변하기도 한다. 전시는 5월 2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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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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