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는 이 전시를 !

따뜻해진 날씨에 발맞춰 흥미 있는 전시들이 열린다. 그중 월간미술 에디터가 뽑은 몇 가지 전시를 소개한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팬데믹에 보통의 일상은 더욱 아득하게 느껴지지만 예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예술은 끊임없이 그리고 만든 이야기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피어나는 꽃을 보듯 새로운 전시를 들여다보자.

멀고도

구나, 이민지, 이소의, 차미혜
1.30~3.3 온수공간

본 전시는 비정형의 어둠이 동시대에 발생하는 무수한 관점의 빗나감, 미끄러짐, 균열을 대변할 수 있다고 가정하며, 단순히 어둠의 명사적 정의에 집중하기보다 어둠이 도래한 이후의 상황에 관한 서술에 집중한다. 전시는 크게 상징적 의미의 어둠을 경험하는 주체의 내적 사유로부터 시작되는 이해의 틈, 서술불가능성을 형상화하는 데 집중한 작업들(구나, 차미혜)과 개인과 타자, 세계 사이의 접점에서 발생하는 시차와 거리감을 서사화하는 시각(이민지, 이소의)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참여 작가인 구나, 이민지, 이소의, 차미혜는 저마다의 시각으로 어둠을 관찰하거나 수행하며 일반적인 현실의 영역 밖의 감각을 진동시킨다. 구나는 회화와 조각, 사운드 설치를 통해 밝음과 하나의 쌍처럼 연결된 어둠을 연상시키는 낮잠, 계곡, 주름, 목소리의 형상을 그려낸다. 이민지는 몸의 이동이 제한된 상황에서 눈이 인터넷과 과거의 이미지들 사이를 부유하며 과거와 현재, 미래 사이의 시간축을 끊임없이 통과하는 경험을 다룬 영상 및 사진 작품을 선보인다. 이소의는 영상을 통해 까마득히 지나간 과거와 사적인 기억을 상징적 매개를 통해 재활성화하고, 그 속에서 삶과 죽음, 탄생과 소멸과 같은 우주의 스펙트럼을 떠올린다. 차미혜는 심리적 거리로 인해 발생하는 대화의 엇갈림, 파편화된 관계의 가까워짐과 멀어짐을 비가시적인 목소리와 함축적인 영상으로 풀어낸다.

이소의, 낭독하는 이름, 2019, 3 채널 비디오, 사운드, 8’48’’

앵글

베르나르 브네
2020.11.7~5.8 갤러리508

매년 전세계를 누비며 왕성한 활동을 해온 베르나르 브네의 올해 첫 개인전으로 작가의 최신작 « 앵글 Angles » 작업을 조각과 드로잉으로 구성하여공개한다. 창작의 개념적 접근과 해석으로 수학적 도형을 응용한 « 앵글 »시리즈는 1960년대에 평면작업으로 시작되었다. 작가의 주관적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작품의 객관성을 강조한 개념적이며 미니멀적 작업으로 2015년부터 입체조각으로 발전시켰다. « 앵글 » 시리즈는 두개의 선이 만나는 각(angle)을 통해 베르나르 브네 작업의 모토를 이루는 선Line의 역동성과 독립성을 보여준다.

공유지: Common land

김유정, 구기정
1.22~3.14 LAD

복합공간 라드의 개관 기획전《 공유지 : Common land 》는  인간 중심적인 자연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바탕으로 자연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자연이라는 대상을 경제적인 효용가치로 환원해왔던 인간은 자연개발, 기후변화, 환경보호 등의 서로 상이한 거대담론을 스스로의 번영을 위한 과정에서 파생시켜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한정된 시선에 국한된 자연만을 바라보고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 전시는 인간에게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다루어진 자연의 여러 모습을 표현하고, 이를 통해 자연에 대한 보다 다차원적인 경험과 새로운 영감을 나눌 수 있길 기대한다.

반그늘 잠식지_물의 시원Ⅱ, 틸란드시아 식물, 그물, 욕실의 여러 오브제들, 2021

우주전쟁 그러나 시에스타

이창원, 안경수, 최선, 황문정, 심승욱
2.5~3.21  수애뇨339

심승욱은 감염병 시대를 어떻게 담아낼지 고민하다가 외계인 침공으로부터 생존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우주전쟁〉 이미지와 제2차 세계대전 전쟁터에서도 낮잠을 즐기던 스페인과 이탈리아 병사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심승욱, 안경수, 이창원, 최선, 황문정은 각각의 방식으로 이 황망한 시대를 표현했다.

Another…Meditation

송영숙
2.17~3.31 아트파크

우리가 잊고 있던 자연의 근원적인 풍경이자 배경이 되었던 대상을 주목하는 송영숙이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장소와 시간, 날씨, 계절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변화하는 구름을 채집했다. 보정 없이 작가가 대면한 자연의 시각적 운율과 색상 그대로를 담은 이미지들은 일상을 새롭게 관조하게 한다.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

윤석남
2.17~4.3 학고재

전시의 부제 “역사를 뒤흔든 여성 독립운동가 14인의 초상”은 독립운동사에서 이제까지 주목받지 못한 투사들의 이야기가 전시의 주제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윤석남은 적은 수의 자료를 바탕으로 ‘서술된’ 역사에서 제외되었던 독립운동가들의 얼굴을 그렸다. 인물의 정신을 담아내는 것에 가장 큰 의미를 두는 한국 초상화의 전통에 따라, 작가는 면밀하게 여성 독립투사들의 얼굴을 남겨 사진을 넘어선 기록물을 제작했다. 때로는 위엄 있고 때로는 결의에 찬 인물화는 22명 위인의 정신과 작가의 의지가 만나 복원된 우리의 역사다. 인물화 외에도 윤석남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신작 〈붉은 방〉(2021)도 만나볼 수 있다. 붉은 종이 작업과 이름 없는 여성들의 초상이 새겨진 나무 조각들은 약 100년 전 이 땅을 지키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분투한 이들을 기린다. 학고재 본관에는 독립운동가 14인, 온라인 전시관 오룸(OROOM)에는 8인을 그려낸 채색화, 드로잉, 그리고 텍스트가 공개된다. 물론 설치작품을 제외한 채색화 22점과 드로잉 32점은 모두 오룸에서 감상할 수 있어, 인물들의 고고한 심지를 한층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다.

(왼쪽부터) 〈김마리아 초상〉 한지 위에 분채 210×94cm 2020 〈박진홍 초상〉 한지 위에 분채 210×94cm 2020 〈정칠성 초상〉 한지 위에 분채 210×94cm 2020

〈붉은 방〉 혼합매체 가변크기 2021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  -  역사를 뒤흔든 여성 독립운동가 14인의 초상〉 전시 전경

글: 문혜인
자료제공: 온수공간, 갤러리508, LAD, 수애뇨339, 아트파크,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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