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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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킴 Sunny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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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 니 킴 Sunny Kim
1969년 태어났다. 암스테르담 릿트벨드 아카데미 대학 회화과, 뉴욕 쿠퍼 유니온 대학 회화과, 뉴욕 헌터대학원 종합매체과를 졸업했다. 2001년 개인전 〈교복 입은 소녀들〉을 시작으로 5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한국, 베이징, 뉴욕, 런던 등에서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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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 뛰어들기”

이번 전시는 자연의 빛에 관한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전시실 위 창을 열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나를 들뜨게 했다. 아침. 정오. 오후. 밤. 맑은 날과 흐린 날. 끊임없이 변화하는 그 빛과 함께 스스로 생성하는 풍경을 상상했다. 이 시간성이 나의 풍경으로 들어와 그 곳에 어떤 생명력을 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나의 작업에 자주 등장하는 ‘교복 입은 소녀들’이 사라지면서 주체가 되어버린 ‘풍경’은, 아름답기도, 그리고 무섭기도 하며, 눈앞에 있는 듯하나 계속해서 뒷걸음치듯 닿을 수 없는 시공간에 존재한 채 낯선 모습으로 우리 앞에 놓여있었다. 마치 길을 잃었을 때 마주치는 풍경처럼, 알고 있지만 순간 생경함으로 다가오는 자연의 요소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나는 상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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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입은 소녀들〉 캔버스에 아크릴 162×75cm(각) 2009~2017

이번 전시의 주제는 “Leap in the Dark / 어둠에 뛰어들기” 이다. 이 제목은 이번 작업을 진행하면서 느꼈던 나의 태도에 관한 생각에서 만들어졌다.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행하는 ‘뛰어들기’는 맹목적이기도 하지만 절대적이기도 하다. 어둠 속에서 길을 찾는 느낌처럼 불안하거나 두려운 감정들이 강하게 나를 짓누르기도 했지만, 오로지 그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었다.

유년기의 기억은 현실화될 수 없었고, 개인이 통제할 수 없었던 시대의 삶 속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기억 속 잔상으로 남아있는 나의 미래의 모습이었다. 내가 겪을 수 없었던 것. 나의 미래일 것이라 확신했던 시간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교복 입은 소녀들’을 통해서 표현하고자 했던 나의

기억, 혹은 만들어진 기억들은 이런 복잡한 감정들의 연결고리를 찾고 그 속에서 내가 경험할 수밖에 없었던 불완전함을 완벽한 이미지로 만들려는 의지와 함께, 그것은 미미하고 나약한 존재들에 부여해주고 싶은 정당성. 존재성. 그런 것들이 아닐까. 결국 소녀들은 그림 속에서 상실감을 무디게 해주는 ‘완벽한 이미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2012년과 2014년에 큐레이터 배은아와 함께 만든 퍼포먼스 “정물”과 “풍경”은 내가 그림을 통해 계속해서 질문하고 있던 이미지의 ‘reality’ 혹은 ‘realness’에 대한 고민을 다른 매체로 풀어보는 시간들이었고, 그림이 가지고 있는 평면성이 삼차원의 공간에서 세분화되어 수많은 겹이 형성되는 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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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풍경〉 합판에 채색, 철사, 석고붕대, 거울, 싱글 채널 비디오 루프, 43분 41초 244×732×244cm 201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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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구조를 띈 세 개의 공간에 풍경, 그곳을 배회하는 교복 입은 소녀들, 구조물 〈풍경〉, 그리고 소녀들의 초상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구조물 〈풍경〉은 퍼포먼스에서부터 고민해 오던 것들이 한곳에 모여 새로운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는 과정을 겪었다. 영상이 그림 위에 투사되고 그림 속의 소녀들이 빛이 되어 또다시 그림 속에서 움직인다. 이 작업은 마음 속 공간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모든 것이 본연의 모습을 질문하며 위태롭고 불안하지만 공존하는 그림 속 공간을, 실제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은,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보고 싶은 나의 욕구에서 출발했다. 그동안 내가 작업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심리적인 영역을 다시 한 번 실제공간으로 불러내어, 그림과 영상과 오브제가 공존하는 방을 만드는 것이었다. 상실감과 불안한 감정이 투영된 이 방은 하나의 이미지로서 존재한다. 이 이미지는 불투명한 삶 속에서도 결코 정지될 수 없는, 살아있는 생명력을 느끼게 해주는, 우리가 붙잡고 있어야 하고 기억해야만 하는 끈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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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홍순